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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Author: 가하
유진은 아버지의 말에 입을 꾹 닫은 채 베란다에서 빗자루를 들고 와 깨진 도자기를 깨끗이 청소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엄마 아빠, 먼저 데려다주고 와서 다시 설명해드릴게요.”

정명학은 강지찬을 힐끗 쳐다봤고 지찬은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럼 이만 가보겠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찾아뵙죠.”

문이 닫히고 나서야 유진은 길게 숨을 토해냈다.

강지찬은 그런 유진을 빤히 지켜보면서 알면 알수록 더 흥미로운 여자라고 생각했다.

잠깐 전의 독기 가득한 모습은 만약 한빈엄마가 끝까지 사과하지 않았다면 진짜로 꽃병으로 찔러버릴 기세였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한없이 약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선을 넘는다면 무슨 일이든 해낼 수 있었다.

“뭘 봐요?”

유진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오늘 화장을 하지 않아 희고 깨끗한 얼굴에 약간의 위태로움마저 비쳤지만, 표정만은 여전히 단호했다.

엘리베이터가 도착하자 강지찬이 먼저 들어갔고 도발하듯 유진을 쳐다보며 물었다.

“들어오기 겁나요?”

유진은 이렇게 된 마당에 뭐가 겁나냐고 생각했다.

전에 일들은 둘째치고 오늘 그의 등장은 참으로 시기적절했다. 그가 오지 않았다면 얼마나 더 한빈엄마에게 시달려야 했을지 몰랐다.

그녀가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자마자 강지찬이 확 그녀를 덮쳐 엘리베이터 벽으로 밀었다.

유진의 턱을 살짝 잡은 채 흥미롭게 물어오는 지찬이였다.

“아깐 좋았죠?”

유진은 하마터면 자리에서 폭발할 뻔했다.

“이거 놔요, 뭐 하는 거예요?”

손가락으로 전해지는 부드럽고도 매끈한 촉감에 지찬은 그날 밤을 떠올리며 저도 모르게 손가락을 부드럽게 쓸었다.

목소리도 알게 모르게 살짝 갈라져 있었다.

“아까 좋았냐고요, 대답해요.”

“미쳤어요?” 한빈엄마가 사과한 일을 말하는 것인데 말투는 왜 둘 사이의 말 못 할 일을 얘기하는 듯 야릇하게 깔고 있는지 몰랐다.

강지찬은 그녀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나만 따라오면, 계속 좋게 해줄게요.”

“...” 유진은 뭐라 답하면 좋을지 몰랐다. 미친 것이 분명했다. 여색을 즐기지 않는다니, 유진의 눈에는 그저 변태가 따로 없었다.

“내가 불쌍해 보여서 만만한가 보죠?”

유진은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강지찬씨, 제가 얘기했죠. 다시는 우리 사이에 어떠한 일로도 엮이고 싶지 않다고.”

“띵”하는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도착했다.

정유진은 단번에 지찬을 밀쳐냈다. 다행히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강지찬은 유진을 홱 엘리베이터에서 잡아끌며 그녀에게 뭔가를 던졌다.

유진이 무의식적으로 잡고 보니 반지가 들려있었다.

한빈이 프러포즈 할 때 줬던 반지로 항상 끼고 있다가 그날 밤 이후 보이지 않았었는데 유진은 이미 헤어진 마당에 찾으러 다니지도 않았었다.

“이게 왜 당신한테 있죠?”

“그날 밤 침대 위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호텔 직원이 찾고는 저한테 돌려줬죠.”

“...” 그날 밤의 일은 다시는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인제야 깨달았다.

‘그럼 그냥 반지 돌려주러 온 건가? K그룹의 대표가 이렇게 한가해도 되나?’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입을 꾹 다물고 있는 유진을 보며 강지찬이 참지 못하고 짓궂게 장난쳤다.

“나만 따라오면 더 큰 걸 줄게요.”

유진의 얼굴이 확 어두워지며 짧게 한마디만을 내뱉었다.

“꺼져요!”

말을 마치고는 엘리베이터에 올라탔고 서서히 닫히는 문을 바라보며 강지찬이 입꼬리를 씨익 말아 올렸다.

아파트 단지를 나서자 길 건너편에 한빈이 소희를 안은 채 위로를 건네고 있는 듯 보였다.

강지찬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한빈을 바라보더니 풉 비웃고는 차에 올랐다.

경호원이 바로 말을 꺼냈다.

“강 대표님, 어르신께서 오늘 밤 식사하러 오시라고 하십니다.”

“식사” 두 글자에 강지찬의 얼굴이 무섭게 굳어졌다.

“시간 없다고 해.”

길 건너편의 한빈도 강지찬을 발견하고는 경악한 표정으로 소희에게 물었다.

“방금 강지찬 만났어?”

소희와 엄마는 시선을 맞췄다. 반나절 정유진의 험담을 하고 있던 그들은 강지찬의 기역자도 꺼내지 않았던 것이다.

한빈은 이 두 여인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았다.

“누구 맘대로 정유진을 찾아간 거야? 내가 죽는 꼴을 그렇게 빨리 보고 싶어서 그래?”

소희가 울면서 변명했다.

“우리도 강지찬이 정유진 집에 나타날 줄은 몰랐지. 나랑 이모 둘 다 네가 괴롭힘당하는 게 싫어서...”

한빈은 소희의 변명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방금 지찬의 눈빛으로 볼 때 분명히 무슨 의도를 숨기고 있었다.

정유진이 지찬과 함께라는 사실에 또다시 짜증이 밀려왔다.

원래 자신의 소유였던 것이 이렇게 다른 사람에게 뺏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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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록수 사업을 따내기 위해 정유진은 고객의 수요에 따가 세 가지 방안을 내놓았다.조예원은 방안을 확인한 뒤, 자신감에 차서 말했다.“네가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너 없었으면 이렇게 큰 계약은 건드릴 엄두도 못내고 남들한테 넘어가는 걸 보고만 있었겠지. 상상만하는데도 끔찍해!”“너랑 수다 떨 시간 없어. 나 나가봐야 해.”정유진이 시간을 확인하며 말했다.“어디 가?”“반지 돌려주러.”조예원은 그녀의 팔목을 잡고 말했다.“나랑 같이 가.”싸우러 가는 것도 아닌데 정유진은 괜찮다고 말하려 했지만 이미 조예원은 외출 준비를 하고 있었다.“가자. 그 나쁜 자식 회사에 가는 거지? 키키도 데려갈까?”정유진은 못 말린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나 싸우러 가는 거 아니야.”스튜디오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헤어진 자세한 내막을 알게 하고 싶지 않았다.한빈의 회사는 번화가의 가장 비싼 건물에 위치해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내린 정유진과 조예원은 당황함을 금치 못했다.깨끗하게 정리가 되어 있던 로비에 서류와 쓰레기가 쌓여 있고 안내데스크와 경비실 직원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조예원은 정유진에게 안으로 들어가 보자고 눈짓했다.안으로 들어가는데 한빈과 소희가 다투는 소리가 들려왔다.“뭐야? 건물이 텅텅 비었잖아?”조예원은 목소리를 낮추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 자식 완전히 망했나 본데? 그런데 어쩌다가 이렇게 빨리….”놀란 건 정유진도 마찬가지였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며칠이나 지났다고.강지찬이 이 정도로 빨리 움직일 줄은 그녀의 예상밖이었다.직원을 몇백 명이나 두고 있던 회사가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다니.사무실은 텅 비어 있고 쓰레기만 잔뜩 쌓여 있었다.한빈은 도대체 뭘 한 거지?그가 예전에 했던 말은 신빙성이 없었다. 강지찬 같은 인물이 아무런 이유도 없이 한 회사를 멸망으로 몰아가지는 않았을 테고 그녀가 모르는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물론 정유진은 그 이유 따위는 궁금하지 않았다. 반지만 돌려주면 그와의 인연은 여기서 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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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유진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한발 한발 그에게 다가갔다.최근 며칠간 그는 수도 없이 자기 반성을 하며 괴로워했다.자신이 조금 더 판단능력이 있었더라면 저런 나쁜 인간들에게 당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그녀는 자신이 사람을 볼 줄 몰라서 한빈 같이 이기적인 사람에게 이용당했다고 생각했다.그런데 인간이 이 정도로 악할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다.조예원은 어디서 찾은 건지 야구방망이를 들고 안으로 들어왔다.“한빈 이 나쁜 자식, 넌 오늘 죽었어!”“악! 왜들 이래?”소희가 비명을 지르며 한빈의 등 뒤로 숨었다.정유진은 그들에게 달려드는 친구의 손목을 잡아 멈춰세웠다.극도의 분노는 그녀를 더 차분하고 이성적으로 만들었다.상심? 슬픔?저 인간을 상대로 그런 감정은 사치였다.“유진아, 이거 놔. 내 오늘 저 자식이랑 끝장을 볼 거야!”조예원은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아 펄펄 날뛰었다.“한빈,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정유진은 싸늘한 시선을 한빈에게 고정한 채로 말했다.“손 더럽힐 필요 없어. 그럴 가치도 없는 인간이야.”밝혀진 진실 앞에 한빈은 적반하장으로 나왔다.“너한테 강지찬을 찾아가서 부탁하라고 한 건 내 잘못 맞아. 하지만 그 상황에서 내가 뭘 할 수 있었겠어? 나도 강지찬 그 놈에게 당한 피해자라고! 나라고 그러고 싶었을 것 같아?”정유진은 그런 한빈이 우습기만 했다.“뻔뻔함은 여전하네. 잘못은 다 다른 사람이 했고 자기는 피해자라는 논리. 진짜 강지찬이 아무 일도 없었는데 일부러 당신에게 칼을 빼들었다고 생각해? 대체 나한테 뭘 얼마나 많이 숨긴 거야?”한빈이 큰소리로 말했다.“나도 강지찬한테 당했어. 유진아, 나 믿어줘. 난 너를 사랑해. 너무 사랑해서 순결을 지켜주고 싶었던 나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소희가 헛소리한 거야. 이 여자 말을 믿는 거 아니지?”남자의 뻔뻔함에 정유진은 웃음만 나왔다.소희는 할 말이 많았지만 한빈이 가로막고 있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정유진을 노려보기만 했다.정유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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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9화

    강지아는 오늘 돌아온다는 말을 아무에게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연회장을 한 번 둘러본 뒤 바로 빠져나왔다. 강지찬과 정유진을 놀라게 하고 싶지 않았다.강지아가 집에 들어가자 집사들은 깜짝 놀라더니 얼른 그녀를 반갑게 맞이했다.다음 날 아침, 강지아는 선물 꾸러미를 들고 새언니가 있는 마당으로 갔다.“고모!”“고모.”두 아이가 달려와 강지아에게 안겼다.“우리 연우가 더 예뻐졌네. 우빈이도 점점 귀여워지고 있어.“귀여운 게 아니라 멋진 거지!”강우빈이 가슴을 치며 말했다.“그래그래, 멋지네. 역시 우리 우빈이야!”녀석은 거만한 수탉처럼 가슴을 앞으로 내밀며 어깨를 쭉 폈다.“새언니, 이 녀석 누구를 닮은 거예요? 새언니도 아닌 것 같고 우리 오빠도 닮은 것 같지 않네요.”정유진은 호호 웃었다.“어렸을 때 오빠 사진 봐봐. 가슴을 저렇게 펴는데 꼬리가 있었더라면 하늘 높이 치켜올렸을 거야. 두 남매 모두 네 오빠 닮은 것 같아. 어쨌든 나는 아니야.”그러자 연우가 말했다.“내 미모는 그래도 엄마를 더 많이 닮았지.”집안 분위기는 아주 화기애애했다.하인들이 아이들에게 아침을 먹이기 위해 데리고 간 후에야 강지찬이 입을 열었다.“어젯밤에 돌아온 거야? 연회에 갔었어?”강지아는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귀신은 속여도 우리 오빠는 못 속인다니까. 가서 한 번 둘러보고 나왔어.”“볼 게 뭐가 있다고?”강지찬이 어두운 안색을 보이자 정유진은 혹시라도 강지아가 서운해할까 봐 얼른 강지찬을 툭 친 뒤 화제를 돌렸다.“방씨 아주머니가 아침에 네가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좋아하는 크리스털 찐만두를 했어. 오랜만에 먹는 거지?”강지아는 정유진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새언니, 내 눈치 보지 않아도 돼요. 난 괜찮아요.”아침밥을 먹은 뒤 강지아는 잠깐 눈을 붙이고 나서 집을 나섰다.진수혁의 기존 문신 가게는 오래된 동네에 있었기에 지금은 대부분 철거했다. 그러면서 진수혁도 이사를 가게 되었다.가게 때문에 형편이 빠듯해 강지아의 빈 집에서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8화

    최신애가 깨어났을 때 온유한과 현채영은 옆에 없었고 임유희만 그녀 옆을 지키고 있었다.“유한이는?”“유한 오빠는...”임유희의 안색이 안 좋았다.“접대가 있다며 현채영 씨를 데리고 갔어요.”화가 난 최신애는 또다시 기절할 뻔했다.“친엄마가 기절했으면 병원에서 효도하고 반성할 생각은 안 하고 또 그 천한 년을 데리고 술 마시러 갔다고?”최신애는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고 머리도 어지러웠다.옆에 있던 임유희가 그녀를 위로하며 말했다.“어머님, 진정하세요. 유한 오빠 아마 중요한 술자리가 있어서 그런 것일 거예요. 어머님의 혈압이 낮아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갔어요.”“내가 죽어야만 나를 엄마라고 생각할 것 같구나!”임유희도 그녀를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랐다.본인도 매우 슬펐기 때문이다.그녀도 아무런 명분 없이 온씨 저택에 머무른 것을 매우 후회하고 있었다.그녀와 현채영이 한집에 사는 것을 아는 외부 사람들이 뒤에서 어떻게 비웃을지 상상도 할 수 없었다.중요한 것은 온유한이 현채영을 데리고 다니면서 사람들 눈에 자주 띄었지만 정작 본인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다.현채영 같은 여자와 비교당한 생각만 하면 임유희는 속이 울렁거렸다.가장 견딜 수 없는 것은 현채영에게 졌다는 것이다.강지아에게 진 것은 인정할만했다. 막강한 강씨 가문이고 온유한과는 어릴 때부터 친했기에 그럴만하다고 생각했다.하지만 현채영은?집안이 망해 명예도 없는데 온유한은 그녀를 보물처럼 아끼고 어디나 데리고 다닌다.임유희는 손톱이 손바닥에 박힐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연회에는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고 서울의 명망 있는 대갓집 규수들은 거의 다 왔다.강지찬은 정유진을 데리고 왔고 한규진도 연예계에서 잘나가는 아역 배우였던 여자친구와 함께 왔다.최의현은 약혼녀를 데리고 왔고 최금성은 당연히 화령을 데리고 왔다.온유한이 현채영과 함께 나타나자 사람들의 시선이 그들에게로 쏠렸다.이 자리에 현채영의 옛 애인도 있었기 때문이다.반면 온유한은 아무것도 모르는 듯 현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7화

    대화를 나눈 후에야 온유한은 강지아에게 문신해준 사람이 진수혁이라는 것을 알았다.그녀가 타투이스트와 친구가 된 것을 온유한은 모르고 있었다.“지아가 그쪽 이름을 문신으로 새긴 거 보면 많이 사랑한 것 같은데 왜 헤어진 거야?”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말했다.“지아에게 내가 어울리지 않으니까.”맥주를 다 마신 뒤 온유한은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진수혁은 쓰레기를 치운 뒤 샤워를 했다.진수혁은 이 집에 살고 있긴 했지만 강지아의 안방이 아니라 게스트 룸에 묵었다.샤워를 마친 뒤 강지아에게 문자를 보냈다.[네 전 남자친구와 한바탕 싸웠어.]강지아에게서 바로 답장이 왔다.[누가 이겼어?][당연히 내가 이겼지, 네 전 남자 친구 몸도 별로 안 좋았어. 반쯤 취했거든.][앞으로는 손 쓰지 마. 감당 못 하니까.][마음이 아픈 거야?][내가 마음 아플 게 뭐가 있겠어. 진작 헤어진 사람인데.][언제 돌아와? 단골 술집 가서 술이나 한잔하자.][곧 갈 거야, 돌아가면 연락할게.]이날 밤 온유한과 현채영 두 사람 모두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오후가 되어서야 온씨 저택에 얼굴을 비쳤다.현채영이 종이백을 들고 있는 걸 보니 쇼핑을 하고 온 모양이었다.임유희를 본 현채영은 반갑게 인사했다.“임유희 씨, 퇴근했나 봐요? 오늘 쇼핑하다가 임유희 씨와 잘 어울리는 치마가 있어서 샀어요.”현채영은 치마를 꺼내 보이며 말했다.“마음에 드는지 한 번 봐요.”이런 체면치레에 임유희는 순간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아니요. 괜찮아요.”약간 울먹거리는 임유희의 목소리에도 현채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우리 사이에 왜 예의를 차리고 그래요. 이 치마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서 산 거예요. 유희 씨가 나보다 날씬해서 안 입으면 나도 못 입는단 말이에요. 나와 유한 씨가 특별히 임유희 씨를 위해 산 건데.”그러자 옆에 있던 최신애가 종이봉투를 바닥에 내던지며 말했다.“누가 이따위 치마가 필요하대? 너 지금 일부러 이러는 거지? 온유한이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6화

    임유희가 돌아오자 최신애는 얼른 하인더러 저녁 식사를 차리라고 지시했다.마침 현채영이 없으니 임유희와 온유한에게 좋은 시간을 마련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그런데 음식이 다 나오기도 전에 온유한이 술을 마시러 나가자 임유희도 밥을 먹지 않고 바로 방으로 들어갔다.최의현과 단둘이 술을 마시기로 약속한 온유한인지라 강지찬을 부르지 않았다.“현채영을 집으로 데려갔다면서?”“응.”최의현은 순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몰랐다.“그럼 집안이 시끌벅적하겠구나, 임유희에 현채영까지.”술을 한 모금 마신 온유한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두 사람은 룸을 예약하지 않고 밖에 있는 테이블에 앉았다.“며칠 후면 지찬이네 아들 생일인데 갈 거야?”온유한은 양복 주머니에서 작은 상자를 꺼내 최의현에게 건넸다.안에는 순금에 보석을 박은 금 자물쇠가 들어있었다. 뭘 선물해야 좋을지 몰라 비싼 것으로 선택했다.선물을 받은 최의현이 물었다.“안 갈 거야? 지아가 올지도 모르는데.”술을 마시던 온유한은 한참 뒤에야 말했다.“안 가.”최의현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너 설마 진짜로 현채영과 그런 사이야? 일부러 네 엄마 화나게 하기 위해 만나는 줄 알았는데... 아니, 너 도대체 무슨 생각인데?”온유한은 술을 한 모금 더 마신 후 말했다.“지아와 진작 헤어졌고 강씨 가문과도 인연을 끊었는데 내가 가서 뭐해?”“너 이 자식...”최의현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내뱉을 기세였다.“너 그냥 화가 나서 이러는 거지?”온유한이 피식 웃었다.“서원준과 약혼하면 내가 큰 선물 보낼게.”“너 정말 미쳤구나.”최이현이 한마디 했다.두 사람은 적당히 마신 후, 에이프릴 홀에서 나왔다. 시계를 보니 아직 열한 시가 되지 않았다.최의현은 약혼녀의 전화를 받고 먼저 가버렸고 온유한은 차 열쇠를 운전 기사에게 건넸다.관자놀이를 주무르며 눈을 감은 온유한은 집만 생각하면 짜증이 났다.“오늘은 집에 가고 싶지 않아요.”운전 기사는 백미러로 그를 힐끗 쳐다본 뒤 말했다.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5화

    현채영은 두 손가락으로 카드를 집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어머님, 카드 안에 얼마 있는데요?”“20억.”현채영이 입을 삐죽거리자 최신애가 냉소를 지었다.“왜 적어? 네 집에 20억은커녕 2천만 원이라도 있긴 해?”현채영은 어깨를 한 번 들썩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어머님, 제가 바보 같아 보이나요? 유한 씨에게 시집오면 온씨 가문 사업이 모두 내 것이 될 텐데 고작 20억으로 유한 씨를 포기하라고요?”그러자 최신애가 현채영에게 삿대질하며 말했다.“유한이에게 시집가고 싶어? 꿈 깨! 눈치가 있으면 돈 들고 꺼져.”현채영은 카드를 최신애 앞으로 밀며 말했다.“제가 나갈지 말지는 어머님이 결정하는 게 아니라 유한 씨가 결정하는 거예요.”“너!”이때 마침 현채영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전화를 받은 현채영은 전화기 너머의 사람을 향해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오 대표님이시네요? 오랜만이에요. 오 대표님... 생각이요? 당연히 했죠. 너무 보고 싶어요... 저녁이요? 알겠어요. 그럼 저녁에 뵐게요.”최신애의 안색이 순식간에 변했다.“너! 너 다른 남자와 노닥거리는 걸 유한이 알아?”현채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님, 유한 씨는 당연히 모르죠. 하지만 오 대표님은 그저 친구일 뿐이에요. 오랜만이라 만나서 술 한잔 마시는 거니까 유한 씨도 뭐라고 하지 않을 거예요.”이런 여자를 온유한이 아내로 맞이하기 위해 집으려 데려왔다니! 최신애에게는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정말 가문이 망하는 꼴을 보고 싶어 환장했나...“너 이거, 이거...”화가 난 최신애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며 말도 잇지 못했다.“유한이에게 네 민낯을 똑똑히 알리고 말 거야. 널 내쫓게 할 거야.”그 말에도 현채영은 대수롭지 않은 얼굴로 대꾸했다.“말하세요. 유한 오빠가 어머님을 믿을까요. 아니면 저를 믿을까요?”최신애는 말문이 막혔다.오후에 꿀잠을 잔 현채영은 온유한이 퇴근하기 전에 메이크업을 하고 집을 나섰다.온유한이 돌아오자마자 최신애는 바로 가서 고자질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4화

    최신애는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열받아 죽겠네. 유한이가 가면 갈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조금 전에 한 말 무슨 뜻이야? 밖에서 현채영과 자고 오겠다는 얘기야?”임유희는 심장이 쿡쿡 찌르는 것 같았다.첫 만남 때 절친이 힘을 내라고 북돋우는 데 용기를 얻어 그에게 다가가 연락처를 물었지만 그는 다정하면서도 단호하게 대답했다.“여자친구가 있어요.”그때 강지아가 너무 부러웠다.지금의 온유한은 더 이상 그녀를 설레게 했던 온유한이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어머님, 아니면 저 그냥 집에 갈게요. 제가 여기 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요. 오히려 유한 오빠를 더 화나게 하는 것 같아요.”“안돼. 네가 가면 저 여자가 더 함부로 나댈 거야. 내일부터 출근이잖아. 운전 기사에게도 얘기했으니 앞으로 네 출퇴근 픽업을 책임질 거야. 퇴근하자마자 집에 와. 저런 여자와 넌 달라. 넌 네 할 일만 해. 나머지는 나에게 맡기고.”이 말에 임유희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이날 밤 온유한과 현채영은 진짜로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다음 날 정오에야 얼굴을 비쳤다.그 모습을 본 최신애는 현채영에게 눈을 희번덕인 뒤 온유한을 향해 말했다.“유한아, 오늘 평일인데 병원에 안 가봐도 돼? 넌 어중이떠중이들과 달라. 앞으로 온씨 가문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는 사람이야.”그러자 현채영이 온유한의 팔짱을 끼며 웃었다.“어머님, 유한 씨를 잘 모르시나 봐요. 어제 저녁에 간 석식 자리가 평범한 술자리는 아니에요. 단지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밖에서 하룻밤 묵은 것뿐이에요. 알다시피 저와 유한 씨 다 성인이고 집에서는 좀 불편한 것도 있어서.”그 말에 최신애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무슨 뜻이지? 아들이 이 천한 년과 잤다는 뜻인가?이제 서른다섯 살이나 먹은 온유한인지라 이런 것들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지만 3년 전에 임유희도 건드리지 않았고 아마 강지아도 건드리지 않았을 것으로 최신애는 짐작했다.그런데 이 뻔뻔한 천한 년과 잤다고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3화

    다행히 주방에서 매일 죽을 끓였기에 현채영의 앞에 죽 한 그릇이 놓여졌다.그러나 한 입 맛본 현채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맛이 이상해요. 음식 재료를 안 좋은 거 쓰신 거 아니에요?”화가 난 최신애는 테이블을 탁 하고 쳤다.“먹기 싫으면 먹지 마! 여기가 네 집인 줄 알아? 교양이 하나도 없네!”최신애의 이런 모습에도 현채영은 전혀 화를 내지 않았고 그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어머님이 안 좋은 거 드실까 봐 걱정돼서 그러죠. 어떤 사람들은 안 좋은 물건을 좋은 것이라고 속여서 팔아요. 먹는 음식은 자기가 즐겨 먹는 음식이어야 할 뿐만 아니라 음식 재료 자체도 좋아야 하는 거 아니겠어요?”말을 마친 현채영은 죽을 내려놓으며 옆에 있는 하인을 향해 말했다.“집에 두유 있나요? 없으면 따뜻한 우유 한 잔 주세요.”성격이 좋은 온혁진도 자리가 가시방석이라 밥을 먹자마자 출근했다.최신애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임유희 앞인지라 뭐라고 말하지 못했다.두유와 찐만두 두 개를 먹은 현채영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온유한에게 말했다.“어젯밤 늦게 자서 난 조금만 더 잘게. 안 그러면 피부가 안 좋아져.”그 말에 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한마디 했다.“방 앞까지 데려다줄게.”“어머님, 유희 씨, 그럼 전 먼저 일어날게요.”현채영은 온유한의 팔짱을 끼며 한마디 인사하고는 온유한과 같이 자리를 떴다.그 모습에 화가 난 최신애는 옆에 있는 임유희를 다독이며 말했다.“너무해! 유한이가 일부러 나 화나게 하려고 그러는 것이니 넌 신경 쓰지 마.”임유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그런데 어머님, 유한 오빠가 저를 점점 더 차갑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최신애도 한숨을 내쉬었다.“3년 전 그날, 너희 둘이 진짜로 잤더라면 좋았을 텐데… 유한이가 어떤 애인지 내가 제일 잘 알아. 그때 강지아가 아무리 좋아도 널 건드린 이상 분명 책임지려 했을 거야.”사실 그 일은 임유희에게 언급하기조차 싫은 인생의 오점이었다.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2화

    최신애는 건강상의 이유를 대면서 임유희더러 온씨 저택에 머물라고 했다.하지만 뜻은 분명했다. 온유한과 자주 부딪히면서 정을 쌓으라는 것이었다.일찍 최신애의 이런 수법을 경험한 온유한은 두 번 다시 그녀에게 휘둘리지 않았다.“어머님이 편찮으시니 저도 남아서 모실게요.”현채영이 웃으며 말하자 온유한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사람 많으면 시끌벅적한 게 좋지 뭐. 우리 어머니도 시끌벅적한 거 좋아하니까 승낙할 거야.”최신애는 또 한 번 테이블을 내리칠 뻔했지만 가까스로 참고 싸늘하게 말했다.“아니야. 유희만 있어도 돼.”현채영이 웃으며 말했다.“어머니, 어려워하지 마세요. 임유희 씨는 일도 나가야 하잖아요. 저는 시간이 많으니 어머니와 같이 쇼핑도 하고 꽃도 기를게요. 모르시겠지만 제가 차도와 꽃꽂이, 그리고 장기까지 다 배웠어요. 참, 피아노와 바이올린도 칠 줄 알아요. 답답하시면 피아노 한 곡 쳐 드릴게요.”최신애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이렇게 뻔뻔한 여자는 처음이라 최신애는 순간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다.온유한은 최신애가 뭐라고 하기 전에 옆에 있는 하인에게 지시를 내렸다.“뒤에 있는 두 객실을 치워 주세요. 당분간 임유희 씨와 현채영 씨가 묵을 거예요.”하인은 최신애의 눈피를 살폈고 최신애는 이내 화를 냈다.“온유한, 대체 뭘 어쩌려는 거야?”온유한이 최신애를 바라보며 말했다.“아니면 채영이는 나와 같은 방 쓰게 할까요?”“너 정말!”최신애가 임유희를 집에 남겨두겠다고 하는 한 온유한도 현채영을 집에 남겨둘 것임을 주위 사람들은 이내 알아챘다.최신애는 화가 났지만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임유희의 부모님은 화가 나서 밥도 먹지 않고 가버렸지만 임유희는 온유한의 집에 남겨 뒀다.결국 최씨 가문 사람들만 온씨 저택에 남아 밥을 먹게 되었다. 하지만 최신애는 여전히 최금성이 온유한을 설득하기를 바랐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기에 형더러 와서 나를 타이르라고 하는 거야?”최금성은 피식 웃었다.“그러니까, 나도 몰라.”

  • 짜릿해서 결혼했어요   제881화

    분위기가 싸늘해졌고 임유희 부모님의 안색도 매우 어두웠다.임유희는 눈앞에 있는 사람이 3년 동안 좋아했던 온유한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정말 가슴이 찢어질 듯했다.온유한은 주위 사람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현채영을 끌어안고 안으로 들어가 앉았다.온씨 집안 하인들도 현채영을 쫓아낼 엄두를 내지 못했다.임근우가 테이블을 치며 말했다.“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요? 이 집 사람들은 내 딸이 안중에도 없나요?”최신애가 일 처리를 제대로 못 하긴 했지만 임근우가 면전에서 책상을 두드리는 것을 온혁진은 참을 수 없었다.애초에 임씨 가문이 대놓고 온씨 가문의 뒤를 쫓아다니지 않았더라면 온씨 가문은 임씨 가문을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이 모든 일은 최신애가 저지른 것이었기에 온혁진은 최신애에게 이 난장판을 넘기고 본인은 찻잔을 들고 빠져나왔다.최씨 가문 식구들도 마찬가지로 좌불안석이다. 보다 못한 최금성의 엄마 황은숙이 최신애를 도와 상황 수습에 나섰다.타이르고 위로하느라 거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되었다.이때 임유희가 일어서더니 온유한에게 다가갔다.그나마 안색은 조금 전에 비해 한결 누그러졌다.“유한 오빠, 나가서 얘기 좀 해요.”온유한이 다리를 꼰 채 말했다.“우리가 할 얘기가 있나? 그리고 그쪽과 같이 나가면 우리 채영이가 질투할 거야.”옆에 있던 현채영이 한마디 했다.“가봐, 질투 안 할 테니.”온유한이 눈썹을 치켜올리며 물었다.“정말 질투 안 할 거야?”현채영이 콧소리를 내며 말했다.“내가 질투할지 말지는 가보면 알 거 아니야?”두 사람은 앞에 서 있는 임유희를 아랑곳하지 않고 대놓고 대화를 주고받았다.주먹을 꽉 쥔 임유희는 기가 막혀 숨이 안 쉬어질 정도였다.“그래. 하고 싶은 말이 뭔데?”온유한이 자리에서 일어나 바깥으로 나갔다.임유희는 심호흡을 여러 번 하고 나서야 온유한을 향해 말했다.“일부러 그러는 거죠? 날 난처하게 하고 어머니와 맞서는 이유, 다 강지아 씨 때문이죠?”온유한은 피식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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