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영이 연재준을 열렬히 사랑했을 때 그에게 그녀는 이용해 먹기 좋은 도구에 불과했다.그녀가 목숨을 잃을 뻔했던 상황에서도 그는 관심 한번 주지 않았다.그래서 그녀는 사랑을 그만두기로 했다.연재준은 매사에 차분하고 이성적인 그녀가 싫었다. 자고로 여자란 남자에게 기댈 줄도 알고 약한 모습도 보여줘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녀에게서 그토록 보고 싶었던 눈을 반짝이며 웃은 모습을 보게 되었다.하지만 그 미소가 향한 곳은 그가 아니었다.그녀가 결혼하던 날, 대기실에 그가 찾아왔다. 그는 그녀의 앞에 무릎을 꿇고 하얀 발에 유리구두를 신겨주며 애원하듯 말했다.“이 결혼 무효야. 나랑 여길 떠나자. 분명 우리가 먼저 만났고 사랑했잖아….”
더 보기연회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저는 좋다고 했어요. 왜냐하면 이건 저희 남편을 대신해 복수할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저는 현씨 가문을 떠나 크로노스를 데리고 레온 가문으로 돌아갔습니다.”연회 부인이 15년 동안 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있으면서 외부 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조용히 지냈기에 사람들의 기억은 점차 흐릿해졌고, 그 사이 진실과 거짓이 뒤섞였다.현 회장이 몇 마디 말을 흘리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현씨 가문의 사모님이 레온 가문의 연회 부인이라고 믿게 되었고, 그로써 이야기는 완벽히 마무리되었다.연회 부인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다니엘 부인은 78세의 연세에도 불구하고 눈썰미가 여전히 날카로웠습니다. 그분은 크로노스를 주의 깊게 관찰했고, 레온 가문을 이끌 인물은 오직 크로노스뿐이라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분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습니다.”그녀는 말을 이어갔다.“다니엘 부인은 서두르지 않았습니다. 크로노스를 위해 몇 가지 시험을 준비했고, 크로노스는 이를 완벽히 통과한 후 레온 가문의 후계자 자격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후계자로 인정받은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아 다니엘 부인은 세상을 떠났어요.”연회 부인은 담담히 회상하며 말했다.“그분은 생의 마지막 해에 모든 일을 정리하셨습니다. 어릴 적에는 다니엘 부인의 엄격한 교육 방식 때문에 항상 거리감을 느꼈지만, 마음속으로는 깊이 존경하고 있었습니다. 다니엘 부인은 제가 아는 가장 훌륭하고 독립적인 여성이었어요. 그녀는 결혼, 자식, 감정에 얽매이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인생 목표는 레온 가문이라는 거대한 배가 끝없이 항해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죠.”잠시 말을 멈춘 그녀는 쓴웃음을 지으며 덧붙였다.“그래서 마지막 순간에도 다니엘 부인은 저를 용서한 것이 아니었어요. 레온 가문에 필요한 후계자가 제 아들 크로노스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를 받아들인 것뿐입니다. 저를 받아들인 건 아니었죠.”이야기를 듣던 유월영은 외할머니인 다니엘 부인을 직접
연회 부인은 차분히 대답했다.“그건 현씨 가문의 전 사모님이었던 방 여사님께 감사드려야 해요. 그분은 아주 온화하고 친절한 분일 뿐 아니라, 매우 뛰어난 항해 탐험가이기도 하죠.”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덧붙였다.“혹시 오늘 밤 이후 생길지도 모를 터무니없는 소문들이 방 여사님의 명예를 훼손하지 않도록 미리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방 여사님과 현 회장님의 이혼은 저와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제발 모든 여성을 사랑의 틀에 끼워 넣지 말아 주세요.”이어 방 여사님에 대해 설명했다.“방 여사님은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분이셨어요. 고양이와 강아지만 데리고 배로 카리브해를 건너며 그 시간을 즐기셨죠. 그녀의 용기와 추구하는 바는 정말 놀랍습니다. 제가 처한 상황을 알게 되신 방 여사님은 저희 비밀을 지켜주셨고, 저를 그녀의 신분으로 숨겨주셨습니다.”연회 부인은 방 여사님의 도움을 떠올리며 말했다.“그 15년 동안 저는 현씨 가문의 사모님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네 가문의 사람들에게 쫓기지 않았죠. 현 회장님과 방 여사님의 은혜는 평생 잊지 못할 것입니다.”그 15년 동안 연회 부인은 거의 외출하지 않았고, 외부에는 병으로 요양 중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현 회장의 사회적 지위 덕분에 아무도 그녀에 대해 함부로 말하지 않았고, 오랫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현씨 가문의 사모님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도 없었다.또한, 현 회장은 새로 가정부들을 고용했고, 가정부를 매수해도 비밀을 알아낼 수 없게 조치했기에 연회 부인은 아들 현시우와 함께 안전하게 숨어 지낼 수 있었다.연회장에는 외국인 손님들이 다수 참석해 있었고, 이들은 동시통역을 위해 이어폰을 착용하고 있었다. 단순히 의사소통을 위한 것이라 여겨졌던 이어폰의 진짜 용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그중 한 외국인이 질문했다. “왜 다니엘 부인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았나요? 그분께 복수를 부탁하거나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었을 텐데요?”연회 부인은 자리에 앉으며 조용히 대답했다.“우리 다니엘 부인
유월영은 이 사건이 반드시 밝혀질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었다.지금의 네 가문은 자신들을 보호하거나 반격할 능력을 잃었고 과거에 그들을 도와주던 사람들조차 이제는 등을 돌리고 있었다.유월영이 한 가문씩 무너뜨리고 마지막에 한꺼번에 책임을 물으려 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네 가문을 한 번에 무너뜨리면 국내 경제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을 우려해 위에서 그녀의 계획을 방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이제 네 가문은 주목할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고, 그들이 어떤 영향을 미치지도 못하게 되었다.판사 또한 공정하게 판결을 내릴 수 있는 상황이 된 것이다.연회 부인은 눈을 감고 아래에서 들려오는 소란스러운 소리를 애써 외면하려 했다.그녀는 10년간 함께했던 사랑하는 연인을 떠올렸다.그들의 결혼식은 오늘 유월영의 결혼식처럼 화려하거나 대단하지 않았지만, 고해양은 진심을 다해 그녀에게 최고의 로맨스를 선사했었다.그는 해바라기 씨앗을 사서 한적한 땅에 뿌리고 날마다 물을 주고 비료를 주며 정성껏 돌보았다.그렇게 황금빛 해바라기가 만발했을 때, 그 꽃밭에서 그들은 결혼식을 올렸다.그녀가 물었다.“언제 이 꽃들을 심었어요?”그가 대답했다.“당신을 좋아하게 된 그날부터요. 당신을 좋아하게 된 순간, 나는 당신과 결혼하기로 결심했어요. 그래서 그날부터 이 꽃을 심기 시작했고, 여기에서 당신을 위한 결혼식을 올리겠다고 다짐했죠.”레온 가문에서 태어난 연회 부인은 이미 부와 명예를 모두 경험했기에 외적인 것에 흔들리지 않았다.그러나 한 사람의 진심은 그녀를 평생 잊지 못하게 했다.추억에서 깨어난 연회 부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녀는 우연히 아래에서 들려오는 손님들의 작은 목소리를 들었다.“임신 중이었던 딸이 혹시 고민서 씨 아닌가요?”연회 부인은 미소를 머금고 조용히 말했다.“여러분의 추측이 맞습니다. 제 딸 고민서는 고해양 씨와 저의 딸입니다.”그 순간, 누군가 유월영의 손을 잡았다.고개를 돌려보니 연재준이었다.“그때 네 가문은 이 장부
연회장의 음악은 멈추지 않았다.오케스트라는 잔잔한 ‘G선상의 아리아’를 연주하고 있었고 맑고 고요한 곡조는 마치 달빛 아래 다뉴브강 물결처럼 천천히 흘러나왔다.이야기 역시 이 곡조처럼 서서히 전개되었다.연회 부인이 작게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그이가 잘못했을까요? 네, 잘못했죠. 처벌받아야 하나요? 네, 당연히 처벌받아야 합니다.”“하지만 그의 사형은 정당했을까요? 저는 법의 공정을 믿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민심을 선동하여 사법부를 압박하지 않았다면, 그의 사형은 다른 결론을 맞았을 가능성이 있었을 겁니다.”연회 부인이 말하지 않은 사실이 있었다.그 모든 것이 무너지고 새롭게 시작되던 시기에, 아직 규칙이 완벽하지 않았던 그 시대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이었다.고해양만이 잘못을 저지른 것이 아니었다.사건이 터지기 전, 아무도 그것이 금지된 일이라고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새로운 규칙은 갑작스럽게 나타났고, ‘법은 과거로 소급하지 않는다’는 원칙 또한 그 이후에야 제기되고 시행되기 시작했다.그 시절, 집행자들조차 혼란 속에서 결정을 내리지 못했으니, 만약 그 네 가문의 무자비한 압박이 없었다면 고해양은 그렇게까지 몰리지 않았을 가능성이 컸다.그러나 그들은 사건을 극단적으로 몰아갔고, 여론을 조작했으며, 고해양은 결국 재판에서 사형을 선고받았다. 연회 부인은 고개를 들며 물었다.“그 사람들은 왜 고해양 씨를 해하려 했을까요?”“그 이유는 간단해요. 그들이 원했던 건 고해양 씨가 가진 산업과 시장이었고, 그가 죽지 않으면 반격해 자신들이 저지른 짓을 폭로할까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들 또한 함께 무너질 게 분명했으니까요.”연회 부인은 잠시 숨을 고른 뒤 말을 이었다.“제가 아무 근거 없이 떠드는 게 아닙니다. 증거를 가지고 있어요.”그녀는 눈을 깜빡이지 않고 카메라를 응시했다.마치 그 렌즈를 통해 과거의 그들과 눈을 마주치려는 듯했다.그녀는 손에 들고 있던 봉투를 열어 두꺼운 책자를 꺼냈다.
“제가 고집을 부리자, 다니엘 부인은 제가 저의 어리석은 행동에 대해 언젠가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며, 그때가 돼도 자신은 한 푼도 도움을 주지 않을 거라고 매정하게 말씀하셨어요. 그리고는 저와 관계를 끊으셨죠. 저 역시 레온 가문을 완전히 떠났습니다.”다니엘 부인은 독재적이고 오만하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었다.딸이 자신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녀는 단호했다.“딸이 말을 듣지 않으면 내쫓는 거죠. 딸에게 굽힐 이유가 뭐가 있겠어요?”연회 부인은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자부심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하지만 그분은 틀렸습니다. 다니엘 부인이 처음으로 잘못 보신 거죠.”연회 부인의 목소리에는 강한 확신이 담겨 있었다.“그분은 제가 결혼한 남자가 단지 외모만 멀끔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아, 맞다, 여담이지만 고해양 씨는 정말 잘생긴 사람이었어요. 크로노스를 보면 알 수 있을 겁니다. 두 사람은 부자지간이라기보다는 한 틀에서 찍어낸 것 같거든요.”“하지만 잘생긴 외모는 그의 장점 중 가장 사소한 부분에 불과했어요. 그는 학문에서도, 테니스에서도, 그리고 사업에서도 최고였습니다.”“맨손으로 시작해 불과 5년 만에 자신만의 회사를 창립했고, 직원 수가 100명을 넘어섰죠. 그리고 3년 뒤, 작은 회사는 해양 그룹으로 성장했습니다.”“그 후 2년이 지나자 그는 신주시를 넘어 전국적으로 가장 유명한 기업가 중 한 명이 되었고, 정부의 중대한 프로젝트도 그에게 맡겨졌습니다.”연회 부인은 자랑스러운 듯 말을 이었다.“무일푼에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사람이 되기까지, 그에게는 단 10년밖에 걸리지 않았어요. 출발점은 낮았지만 그의 가능성은 무한했습니다.”“그 10년 동안 우리는 결혼식을 올렸고, 장남을 낳았으며 딸도 임신했죠. 저는 아들과 딸을 모두 데리고 남편과 함께 마르세유로 돌아가 어머니를 찾아뵐 계획이었어요. 그녀에게 직접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이번에는 그녀가 틀렸고, 제가 맞았다는 것을요. 저는 결코 비참한 삶을 살지
“그 유명한 다니엘 부인은 레온 가문의 구세주이자 귀족 사회의 전설이었지만 동시에 제 악몽이기도 합니다. 농담이 아닌, 진짜 악몽이었습니다.”연회 부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녀는 연회 부인이라는 신분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후 이렇게 진지한 적이 거의 없었다.평소 화려하고 사치스러우며 유흥에 빠져 살던 그녀였지만 이 순간만은 자신의 과거를 차근차근 풀어놓기 시작했다.“천재는 자신과 다른 사람 사이의 차이를 잘 모르죠. 다른 사람들도 자신과 같을 거라고 자기 생각을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들을 마치 쓸모없는 사람처럼 여기면서요. 제 어머니도 그랬습니다.”“제 어머니는 타고난 ‘상업 천재'였어요. 전 그런 사람을 본 적이 없었죠. 상업적 직감, 통솔 능력, 결단력까지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습니다. 제 눈에는 그분보다 뛰어난 상인도 없었어요.”연회 부인은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그래서 제 어머니는 제가 12살 때 옥스퍼드 사전보다 더 두꺼운 상업 이론서를 외우지 못했다고 제가 지능이 부족한 멍청이라고 생각했어요. 맙소사, 어떤 애가 12살에 그런 걸 외울 수 있겠어요? 그때 저는 글자도 제대로 읽지 못했는데 말이죠.”하객들이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그 자리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그 전설적인 여성을 기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여성은 상업계에서 어둠처럼 군림하는 존재였기 때문이다.연회 부인은 작게 한숨을 쉬고 이어 말했다.“내 어린 시절은 그런 어머니의 분노와 경멸 속에서 보냈어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대우를 받으면 안 됐어요.”“그래서 저는 18살 때, 어느 비 오는 밤에 짐 싸서 집을 떠났어요.”“전 한국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대학도 다니며 같은 수준의 친구들을 만나 정상적인 학습 환경을 경험했죠. 그곳에서 저는 책 읽는 게 그렇게 무서운 일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어요. 매일 아침 기분 좋게 일어났고 심지어는 연애할 여유도 생겼죠. 가난한 남자와 함께요.”그 남자를 이야기할 때 연회 부인의 눈은 그녀 위의 크리스탈 조명보다 더 빛
저녁의 연회는 정원 중심에 위치한 건물에서 열렸다.이곳은 레온 가문의 집주인들이 자주 사용하는 개인 연회 장소였다.건물 주변에는 크고 작은 꽃들이 어지럽게 자리를 잡고 있었고 미풍에 실려 장미 향기가 가득 퍼졌다.정문 앞에는 거대한 분수대가 있었고 밤이 되자 베르사유 궁전을 따 디자인한 분수대가 화려한 분수 쇼를 시작했다.소리와 빛 그리고 물의 특수 효과까지 더해져 조각상은 마치 생명력을 얻은 듯 보였고 손님들은 17세기 유럽 궁전의 화려함과 웅장함을 간직한 바로크 예술의 절정기를 경험할 수 있었다.연회장 내 역시 사치와 예술이 조화를 이루었다.1500개 이상의 크고 작은 크리스탈로 만들어진 샹들리에들이 행사장을 둘러싸고 있었고 벽과 바닥은 검은색 미러 타일로 마감되어 화려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냈다.유월영과 연재준은 이 검은색과 금빛의 낭만적인 분위기 속에서 첫 춤을 추며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그 후, 자유로운 사교 시간이 이어졌다. 손님들은 편안히 자리에 앉아 음식을 즐기거나 춤을 추거나 자유롭게 대화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유월영은 칵테일을 한 모금 마시고 주위를 둘러보다 연회 부인과 눈이 마주쳤다.두 사람은 서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시작할 때가 되었다.연회 부인은 손에 와인 한 잔을 들고 우아하게 무대 위로 올라갔다.그녀는 보라색 긴 드레스를 입고 있었고 드레스는 심플했지만 화려한 다이아몬드 장식이 어깨를 감싸며 귀부인 같은 느낌을 주었다.무대 위에 놓인 마이크를 잡고 가볍게 기침하며 손님들의 시선을 집중시켰다. 그 후, 미소를 지으며 말을 시작했다.“안녕하세요, 여러분. 바쁜 일정을 쪼개어 이렇게 저희 가문 결혼식에 참석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여러분께 한 잔 올리겠습니다.”연회 부인은 술잔을 높이 들었고 하객들도 이에 답하며 잔을 함께 들었다.연회 부인은 품위 있게 말을 이었다.“오늘 저희가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너그럽게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준비한 만큼 모든 것이 완벽하지 않았던
립스틱은 장미색으로 부드럽고 은은한 느낌을 주어 그녀의 의상과 잘 어울렸다.유월영이 살짝 미소 지으며 말했다.“정말 여러모로 꼼꼼하네요.”연재준이 립스틱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그녀의 등을 감싸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안해.”유월영이 살짝 턱을 들어 그의 어깨에 기대며 물었다.“이번엔 또 뭐 때문에 미안한 거죠?”연재준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때, 당신 전화를 끊지 말았어야 했는데.”그가 전화를 끊지 않았다면 아마 유월영은 유산하지 않았을 것이고 두 사람의 아이는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이 이야기가 꺼내지자 유월영의 마음은 다시 무거워졌다. 어떤 일들은 시간이 지나도 절대 희미해지지 않는다.연재준은 그녀의 마음을 알아채고 가만히 그녀의 등을 따라 부드럽게 쓸어내렸다.유월영이 물었다.“그때 왜 전화를 끊었던 거예요?”연재준이 잠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그때 왜 당신 전화를 끊었는지 기억이 안 나서 3년 전에 일부러 통신사에 가서 통화 기록을 조회해 봤어. 전화를 끊은 정확한 시간을 확인하고 그날 내 일정을 확인해 보니 그날은 한 모임에 참석했더라고.”“함께 식사하던 사람들은 신혼부부였는데 자신들의 연애 이야기를 자랑스럽게 떠들었어. 고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다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고 하면서. 당신도 알겠지만, 내 고등학교 시절은 그렇게 즐겁지만은 않았어. 그런 얘기를 들으면서 현시우와 당신이 생각났던 거야. 그러다 당신의 전화를 받고 홧김에 전화를 끊었던 것 같아.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그는 다시 한번 미안한 듯 말했다.“미안해.”유월영은 그의 설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하지만 그녀는 연재준과 다시 시작하기로 결심한 상태였고 그 문제를 파고드는 건 서로에게 짐이 될 뿐이었다.그래서 유월영은 그의 품을 벗어나며 말했다.“이제 그 얘기는 묻어두죠.”연재준이 그녀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그러다 유월영이 갑자기 손을 들어 그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나른하게 말했다.“복잡한 생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연재준의 페부에 다시 은은하게 통증이 퍼져왔고 그는 기침을 참기 위해 애썼다.‘여기서 이러면 월영이가 걱정할 게 뻔해.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 어떤 일이 있어도 이걸 망쳐서는 안 돼.’그는 익숙하게 호흡을 조절하며 기침을 억누른 뒤 조용히 진정했다.그때 뜸을 들이던 노현재가 이어 말했다.“그런데 검사 결과 임신이 아니었어. 그래서 샘플을 바꿀 필요도 없었고 그냥 형한테 있는 결과를 그대로 전달한 거야.”노현재는 연재준의 이글거리는 표정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계속해서 말했다.“하지만 월영 씨는 그 검사 결과를 믿지 못했고 여전히 자신이 임신했다고 생각했지.”연재준은 마음속으로 화를 가까스로 누르면서도 서지욱을 탓할 수 없었다.이런 중요한 얘기를 왜 끊어서 얘기하면서 사람 애간장을 태우는지 따지고 싶었지만 참았다. 그저 유월영이 다시 유산의 아픔을 겪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도하며 연재준이 입을 열었다.“임신하지 않았다고 하니 다행이네.”“그냥 작은 오해였던 거야.”노현재가 느긋하게 말했다.“두 사람 사이에 오해가 워낙 많았어야지. 이런 거 하나쯤은 별일도 아니잖아.”연재준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 손에 든 빈 잔을 보며 말했다.“앞으로는 이런 오해 없을 거야.”그때 복도 끝에서 인기척이 들리자 연재준이 고개를 돌렸다. 유월영이 드레스를 들고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노현재는 손을 들어 유월영에게 인사하고 먼저 연회장으로 들어갔다.유월영이 가까이 다가와 호기심 어린 목소리로 물었다.“현재 씨랑 무슨 얘기 했어요?”연재준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반지를 문지르며 숨김없이 대답했다.“3년 전 그때 당신이 임신한 줄 알았다는 얘기.”유월영이 놀란 얼굴로 그를 바라보다 담담하게 대답했다.“전에 유산하고 몸이 많이 약해졌었어요. 그래서 건강검진을 받았고 특히 자궁 관련 검사를 했는데 의사 선생님이 다시는 임신하기 어렵다고 하더라고요.”연재준은 가슴이 저려왔다.그는 한숨을 쉬며 주위를 둘러본 뒤 유월영을 살짝 벽으로
수술이 끝나 병실로 옮겨질 때까지도 유월영은 자신이 유산으로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을 제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그녀를 병실로 데려간 간호사는 인적 사항을 등록하기 위해 그녀에게 물었다.“유월영 환자분, 가족들은 어디 계신가요?”유월영은 초점을 잃은 눈으로 천장만 올려다볼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간호사가 재차 물었다.“유월영 씨, 가족들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이때, 약품을 정리하던 다른 간호사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나한테 줘. 그거 내가 입력할게. 환자가 구급차에 실려올 때 신분증이랑 카드 나한테 줬었어. 바로 등록하고 비용 결제하면 된다고. 아마 이 환자는….”유월영은 그제야 입술을 달싹이며 힘겹게 입을 열었다.“저는 가족이 없어요.”진한 소독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그녀는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이 점점 더 진실되게 다가왔다. 그녀는 길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뱉다가 더는 참지 못하고 눈물을 떨구었다.깊은 절망감이 찾아왔다.수술을 마친 유월영은 홀로 병원에서 사흘간 입원해 있었다.그 동안 그녀를 찾아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나흘 째 되던 날, 드디어 연재준에게서 전화가 왔다.“유 비서, 무단 결근 3일이면 충분히 휴식하지 않았어? 지금 옷 입고 서덕궁으로 와.”남자의 목소리와 함께 시끄러운 배경 음악과 여자들의 웃음소리까지 같이 전해져 왔다. 유월영은 지금 입원 중이라고 말해야 할까 잠시 고민했다.“유 비서.”낮게 깔린 중저음 목소리가 재차 전해졌다.화가 많이 났다는 증거였다.유월영은 하려던 말을 도로 삼키고 그대로 병원을 나와 택시를 잡아타고 부랴부랴 서덕궁으로 향했다. 그녀는 가는 길에 차 안에서 화장을 했다.목적지에 도착하자 그녀는 대충 립스틱을 입술에 바르고 카운터로 직행했다.“해운그룹 연 대표님이 계신 방이 어디죠?”고개를 든 어린 남직원은 눈앞의 미모의 연인을 보고 수줍게 웃으며 다급히 길을 안내했다.“연 대표님은 1번 룸에 계십니다. 제가 안내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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