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고개를 저었다.“모처럼 회사에 안 나가도 된다고 그냥 집에서 자고 싶대.”“그래.”인나는 하영의 팔에 팔짱을 끼며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이제 출발하자.”하영은 주변을 살피더니 물었다.“유준 씨는?”“현욱 씨가 그러는데 처리할 일이 좀 남아서 조금 늦게 온다고 우리한테 먼저 출발하라고 했대.”“그래, 잠깐만 기다려. 주희 씨한테 얘기하고 올 테니까.”하영은 주희를 찾으러 주방에 들어가 몇 마디 얘기를 나누고, 애들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제 출발하자!”위층에 있던 캐리는 맨발로 창가에 서서 아래층 상황을 살폈다.그리고 하영과 사람들이 출발하자마자 얼른 옷을 갈아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는데, 주방 정리를 마치고 나오던 주희와 딱 마주치고 말았다.캐리는 주희를 붙잡고 물었다.“다들 확실히 출발했지?”주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캐리를 쳐다보았다.“뭘 그리 긴장하고 그래요? 혹시 하영 언니 몰래 딴짓하러 가려는 건 아니죠?”“몰래라니 그게 무슨 말이야.”캐리가 중얼거리듯 한마디 했다.“내가 남자친구도 아닌데, 그래도 알게 하고 싶지 않아.”주희가 눈을 가늘게 떴다.“캐리, 뭔가 수상한데요.”“애들은 몰라도 돼.”케리는 주희의 머리를 헝클었다.“나 먼저 나갈게! 이따 집에 올 때 맛있는 거 사 올게.”“저 오늘 집에 없으니까 사 올 필요 없어요!”캐리가 손을 흔들었다.“그래, 알았어.”집에서 나와 차에 오른 캐리는 어딘가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자 이내 웃으며 입을 열었다.“지금 어디야? 데리러 갈게!”15분 뒤 캐리는 보기에 평범해 보이는 라면 가게에 도착했다. 캐리는 가게를 한 번 둘러보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자신을 등지고 앉아있는 한 여자를 발견하고 나서야 표정을 풀고 다가가 맞은편에 앉아서 여자에게 물었다.“맛있는 거 사준다고 했는데, 왜 이런 곳에서 만나자고 했어?”“내가 좋아하는 곳이야.”여자는 천천히 젓가락을 내려놓더니 고개를 들어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
“부진석이랑 이상한 사이라고? 잘 들어 부진석이 도와주려고 했을 때 하영은 거절했어! 24시간 항상 하영의 곁을 지켰는 줄 알아? 그 사람도 해외에서 연수 때무에 바쁘게 보내면서 가끔 하영이 사는 곳에 찾아와 먹을 것을 사주는 정도였다고, 강하영은 혼자 고생하더라도 남의 도움은 받으려 하지 않는 긍지가 있는 사람이란 거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야!”“희원 씨는 재벌집 딸이지만 하영은 아니야. 예전에 정유준이랑 만났던 것도 양아치같은 아버지와 병원에 입원한 엄마 때무이었어! 나는 당신들 같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어. 조금만 소문이 돌면 뒤에서 뭐라고 수군대잖아. 그럴 자격이나 있다고 생각해?”할 말을 마친 캐리는 자리에서 일어났다.“할 말은 여기까지야. 내가 희원 씨랑 연애할 생각을 하다니 눈이 삐었나 봐. 여기까지 하자. 멍청한 여자!”한바탕 욕을 들은 희원의 안색이 굳어졌다.‘강하영이 정말 그런 사람이라고?’희원은 믿을 수 없었다.‘만약 정말 그런 긍지가 있었다면 애초에 왜 유준 오빠의 잠자리 파트너가 된 건데?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웃기지 말라고 그래! 수석 비서자리까지 올라갈 정도로 능력이 있었잖아! 그 정도 월급이면 생활비로 부족했을까?’희원은 생각할 수록 역겨웠다.‘착한 척하는 그 연기력으로 배우가 되지 않은 게 안타까울 정도네! 그런 사람을 절대 우리 집안으로 돌아오게 할 수 없지! 그건 집안의 수치이자 돌아가신 고모를 욕보이게 하는 거야!”‘그리고 강하영은 절대 유준 오빠랑 같이 있을 자격 없어!’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희원은 휴대폰에서 유준의 전화번호를 찾아 한참 생각하더니, 문자를 입력하기 시작했다.그리고 전송 버튼을 누르려다가 다시 멈췄다.‘아직 증거도 부족한데 강하영이 여기저기 남자를 홀리고 다닌다는 걸 어떻게 밝히지?’강하영을 노리기보단 부진석한테서 증거를 찾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 희원은 자리에서 일어났다.소씨 집안.송유라는 거실에 앉아 희원이 밥 먹으러 집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희원은
희원이 위치를 보내왔을 때, 예준도 텍스트 변환을 거의 마쳤고, 대충 훑어보던 예준의 시선은 김형욱이라는 세글자에 고정되었다.양다인의 녹음 파일에서 몇 번이고 강하영과 정유준을 상대하기 위해 도움을 청한 적이 있었다.‘김형욱이란 사람은 누구지? 양다인과는 언제부터 알고 지낸 거야? 하영과 정유준 그 두 사람에게 원한이라도 갖고 있는 걸까?’예준은 음성을 파일 안에 옮기고 암호를 설정한 뒤 휴대폰을 챙겨 희원을 만나러 갔다.20분 후, 목적지에 도착한 예준은 희원이 혼자 길가에서 휴대폰을 하고 있는 모습을 발견하고, 차에서 내리며 물었다.“네 친구는?”희원은 진작에 생각해 둔 핑계를 댔다.“먼저 가서 놀라고 했어.”예준은 더 묻지 않고 희원을 데리고 아이스크림 가게로 향했다.입춘에 들어선 날씨는 살을 에이듯 추웠지만, 아이스크림 가게는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다.예준과 희원은 잠시 대기하고 나서야 종업원이 자리로 안내했고, 예준은 희원에게 망고 빙수와 여러가지 디저트를 주문해 주고 입을 열었다.“희원아, 왜 출근할 생각 없어?”“지금은 아직 출근하고 싶지 않아.”희원은 말을 이었다.“아직 해야 할 일이 조금 남았거든.”예준은 끝까지 따져 물으면 희원이 입을 꾹 다무는 성격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냥 알았다고 대답했다.그러자 희원이 먼저 참지 못하고 물었다.“오빠는 내가 요즘 뭘 하는지 궁금하지 않아?”“얘기하고 싶었으면 먼저 얘기했겠지.”예준이 웃으며 얘기하자 희원은 입술을 오므리고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오빠는 왜 굳이 강하영을 가족으로 받아들이려는 거야?”그러자 예준의 입가의 미소가 사라졌다.“희원아, 너는 하영이를 미워하지 마.”그 말에 희원은 격분하고 말았다.“나는 몸을 함부로 굴리는 여자는 우리 집안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해! 그 순진한 척하는 얼굴 뒤에 무슨 꿍꿍이가 있는지 누가 알아?”“너는 나도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해?”예준이 희원을 응시하며 물었다.“당연히 아니지!”희원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
“그럼 전문적인 흥신소를 찾으면 되지, 왜 나한테 부탁하는 건데?”그러자 예준이 웃었다.“네가 바로 이런 일에 전문인 기자잖아. 게다가 중요한 일이라 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어.”그 말에 희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다른 사람은 믿을 수 없는데, 나는 믿을 수 있단 얘기지? 겉으로는 강하영만 관심하는 것 같아도, 나도 신경 쓰고 있었던 거야!’생각에서 빠져나온 희원은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예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오빠가 나 믿어 준다고 하니까, 내가 꼭 도와줄게!’점심 12시.리조트에 주차된 차가 한 대도 없는 것을 보고 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이 시간에 온천에 놀러 오는 사람들이 꽤 많을 텐데.”“헤헤…….”인나가 헤벌쭉 웃으며 대답했다.“그건 우리 대표님한테 물어봐야지.”하영은 그제야 알아차렸다.“설마 이 리조트 전체를 통째로 빌린 거야?”인나는 힘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혹시 지난번 같은 일이 일어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휴가온 사람들을 전부 보냈거든.”아이들을 지켜주기 위해 이 정도까지 하는 유준의 행동에, 하영의 마음에 따뜻한 기류가 흘러 들어오는 것 같았다.차에서 내리자,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매니저와 종업원이 얼른 다가와 짐을 들어줬고, 위층에 올라가자 세 방이 나란히 붙어 있는 스위트 룸 방문을 열어 주었다.매니저는 하영의 뒤에서 웃으며 물었다.“강하영 씨, 점심식사 준비가 다 되었는데, 방으로 가져다 드릴까요, 아니면 식당에 내려가서 드시겠습니까?”하영이 인나를 보며 물었다.“인나, 너는 어쩔 거야?”식“내려 가서 먹자. 아니면 방안에 음식 냄새로 꽉 찰 것 같아.”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정유준 대표님께서 일정을 짜주셨습니다. 점심식사를 마치고 잠시 쉬고 계시면, 전문가가 와서 마사지해드릴 겁니다. 3시쯤이면 온천에 들어가실 수 있고, 저녁식사 메뉴는 일본요리입니다. 아이들은 저희 직원들이 책임지고 놀아 드릴 겁니다.”하영은 아이들을 직원들한테 맡기는 게 안심이 되지 않아
하영은 속으로 자신을 비웃었다. 결국 유준은 여전히 마음 가장 깊은 곳에 박혀 있었는데, 이제와서 스스로를 속이는 게 무슨 소용이 있는지 싶었다.이럴바엔 차라리 정유준과 제대로 얘기를 나눠 봐야겠다고 생각했다.점심식사를 마친 후, 매니저와 종업원이 아이들을 데려갔고, 하영과 인나는 자리에 앉아 커피를 마시다가 마사시 샵으로 향했다.현욱은 두 사람을 문 앞까지 바래다 줬고, 문이 닫기자 마자 얼른 조금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가서 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유준이 전화를 받자 현욱이 들뜬 어조로 입을 열었다.“유준아, 두 사람 마사지 받으러 갔으니까, 나 지금 가서 준비할게.”유준은 짜증섞인 어조로 대답했다.“나 산 중턱에서 반 시간이나 기다렸어!”현욱은 로비로 향하며 입을 열었다.“인나 씨부터 챙기느라 그랬지, 나 곧 아빠될 사람이잖아.”“쓸데없는 얘기하지 마.”유준은 눈앞에 쌓여 있는 물건들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둘이서 이걸 다 준비할 수 있다고 생각해?”“의지만 있으면 못해낼 일이 없어! 혼자서 다 못하면 내가 도와줄게.”그러자 유준이 냉랭하게 대답했다.“부디 내가 밖에서 반 시간이나 떨면서 기다린 게 헛된 일이 아니길 바랄게.”“그럴 리가 없잖아! 내가 너랑 하영 씨를 이어주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돈을 팔았는데! 1분도 더 못 기다려?”그 말에 유준은 코웃음을 쳤다.“확실히 나 도와주기 위한 거 맞아? 너를 위한 게 아니라?”“나 참, 일석이조 몰라? 꼭 그런 식으로 얘기 해야겠어? 잠깐만 기다려!”마사지샵에서 인나는 옷을 벗으며 하영에게 물었다.“하영아, 너 요즘 정유준을 어떻게 생각해?”하영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왜 갑자기 그렇게 물어봐?”그러자 인나는 웃으며 대답했다.“나는 네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있었으면 좋겠어서 그러지.”하영은 침대 옆에 앉으며 얘기했다.“솔직히 얘기하면 여전히 좋아하는 것 같아.”“그냥 좋아할 뿐이야?”인나가 추궁하기 시작했다.“사랑이 아니고?”인나의 물음에
인나가 더 얘기하고 싶어 하지 않자, 하영도 더 묻지 않았다.“하영아…….”“응?”“난 네가 너무 부러워.”인나의 탄식에 하영은 눈을 뜨고 인나를 바라보며 물었다.“뭐가 부러운데?”“정유준이 너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눈에 보이니까. 누군가를 사랑하는 사람의 눈빛은 숨길 수가 없거든.”인나는 하영이 대답하기 어려운 화제를 다시 꺼냈다.“그나저나.”“왜?”“설날 전날에 말이야. 너랑 정유준이 위층에 한참이나 있었는데, 진석 씨는 전혀 속상해 보이지 않더라.”하영은 다시 천장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어쩌면 이제 단념했겠지.”“아니.”인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을 이었다.“6년이나 너한테 좋아하는 마음을 품고 곁을 지켰는데,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아무리 단념했다고 해도 적어도 속상하고 마음이 아팠을 거야. 그런데 진석 씨 표정은 시종일관 차분했거든.”“진석 씨 마음을 헤아려 본 적은 없지만, 나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야.”“그건 진석 씨 본인이 원해서 한 일이잖아. 너는 분명 계속 거절 의사를 밝혔고.”“아니.”하영은 숨을 돌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지난해에 내가 양다인 일을 마무리 지으면 진석 씨와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가해 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거든.”“뭐?”인나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너 진석 씨한테 좋아하는 마음이 안 생긴다며.”“나도 내가 너무 이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 그렇게 얘기했던 건, 결혼하기 좋은 사람이라 생각했기 때문이야.”“뜻대로 되지 않는 건 언제나 하늘의 뜻이지. 그렇다고 부진석을 위해 남은 인생을 걸 수는 없잖아.”“그냥 너무 미안해서 그래.”“만약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면?”인나가 물었다.“부진석의 눈빛은 전혀 속상해 보이지 않았어.”“그렇다면 참 다행이고.”인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갑자기 몸을 돌리더니 하영을 향해 물었다.“하영아, 너 혹시 그거 발견했어?”“뭐?”“진석 씨는 분명한 감정을 드러낸 적이 없다는 거!”인나는 마치 놀라운 일이라도 발견한 것처럼 충격받
유준은 손을 들어 소매 단추를 풀었다.“쓸데없는 짓이야.”현욱의 눈가에 경련이 일었다.“그럼 너는 여자들이 뭘 좋아한다고 생각하는데?”“차라리 돈으로 주면 되잖아.”유준은 현욱을 힐끔 쳐다보며 얘기했다.“그럼 자기가 원하는 물건도 살 수 있는데.”그러자 현욱은 헛웃음을 지었다.“너는 로맨틱한 면이라곤 하나도 없네. 그러니까 하영 씨한테 차이지.”유준의 표정이 싸늘하게 변했다.“그 입 다물어.”현욱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일이나 하자!”오후 5시 30분.인나와 하영은 안마사의 부름에 잠에서 깼고, 하영은 휴대폰을 꺼내 시간을 확인했다.“벌써 5시 30분이네…….”인나는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현욱 씨한테 할 일은 다 했냐고 물어 봐야겠네.”“할 일?”하영은 의아한 표정으로 미간을 좁혔다.“현욱 씨 마사지 받는 중 아니었어?”인나는 깜작 놀라 이내 해명하기 시작했다.“다 끝났냐고 묻는다는 게 말이 헛 나왔어.”하영은 어딘가 수상쩍은 인나를 보며 얘기했다.“나한테 뭐 숨기지 마.”“내가 뭘 숨긴다고 그래?”인나는 헤벌쭉 웃었다.“나 그런 못 미더운 친구 아니야.”인나는 현욱에게 전화를 걸었고, 통화 연결음이 한참 울려도 전화를 받지 않자 인나는 미간을 찌푸렸다.“현욱 씨 왜 전화를 안 받지?”하영는 침대에서 내려와 옷을 갈아입으며 얘기했다.“혹시 잠든 거 아닐까?”“몰라 한 번 더 해봐야겠네.”인나가 다시 전화를 걸었지만, 여전히 전화를 받지 않았다.“이 자식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인나는 씩씩거리며 휴대폰 화면을 마구 비볐고, 하영은 옷을 건넸다.“일단 옷부터 갈아입고 찾으러 가 보자.”‘어떻게 찾아…….’인나는 속으로 투덜거렸다.‘그 자식은 정유준과 하영을 이어줄 방법이 있다면서 오후에 정유준 찾으러 갔단 말이야.’인나는 현욱이 뭘 꾸미는지도 모르는데, 정유준에 대한 하영의 마음을 떠보라고 했다. 그리고 하영이 마음이 있는 것 같으면 오케이 사인을 보내라고 했던 것이다.
두 사람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도 못하고 있을 때, 복도의 불이 전부 꺼지더니 흔들리는 촛불만이 복도 전체를 밝혀주었다.복도는 어두웠지만 로맨틱한 분위기가 감돌았고, 그때 매니저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두 분 저를 따라 앞으로 가시죠.”하영과 인나는 장미 꽃잎을 밟으며 앞으로 향하기 시작했고, 정성스럽게 꾸며진 복도와 로비를 거쳐 뒤에 있는 정원에 도착했다.오솔길 옆에는 정교하게 만든 작은 랜턴들이 놓여져 있었는데, 그 불빛은 뒷산으로까지 이어져 있었다.그때 하영의 심장이 빠르게 두근대기 시작했다. 정유준이 바로 이 산길의 끝에 서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하영아, 나 저기 걸어가기 무서워.”하영이 인나를 보며 물었다.“왜?”인나는 산길을 가리키며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저기 오솔길 어두컴컴해서 너무 무서워…….”인나는 하영의 손을 잡으며 얘기했다.“괜찮아. 매니저님도 계시고 나도 곁에 있잖아.”인나는 하영에게 꼭 붙어서 한 손으로 배를 감싸고 대답했다.“그, 그래…….”두 사람이 천천히 앞으로 다가가며 산길로 통하는 첫 번째 계단을 디뎠을 때, 갑자기 귓가에 펑펑하는 소리가 울렸다.“꺄악-”인나는 깜짝 놀라 얼른 하영을 껴안았고, 하영도 처음에는 놀랐지만 곧이어 하늘에 아름다운 불꽃이 펼쳐지기 시작했다.인나는 눈을 번쩍 뜨고 하영과 같이 하늘을 바라보았다.첫 번째 불꽃이 터졌을 때 하늘에는 K&J의 자모가 나타났고, 하영의 눈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나랑 정유준 성의 앞 글자를 딴 거야?’이어 두 번째 불꽃이 하늘에 발사되면서 터지는 동시에 W&B 자모가 나타났다.입을 틀어막은 인나의 눈에는 감동의 물결이 일렁였다.“하영아……, 두 사람이…… 준비했나 봐…….”인나는 감동에 북받쳐 말을 잊지 못했다. 그저 하영과 정유준을 이어주기 위한 준비라고만 생각했는데, 현욱이 그동안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게 다 이걸 준비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하영의 눈동자엔 화려한 불꽃이 비쳤고, 그녀는 코끝이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