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슨은 현욱을 몰랐지만, 그는 존슨의 사진을 본 적이 있었기에 그녀를 보자마자 이름을 불렀다.“존슨?”자료를 들고 있던 존슨은 고개를 돌려 현욱을 위아래로 살펴봤다.“누구?”현욱은 앞으로 다가가며 얘기했다.“저 유준이 친구이자 예전에 인나 씨 의상 디자인을 맡겼던 사람이기도 하죠. 현욱이라고 합니다.”존슨은 비로소 현욱을 알아봤다.“그렇군요! 그런데 무슨 일로 불렀죠?”“유준을 찾으러 왔나요?”존슨은 손에 든 서류를 흔들어 보였다.“새 디자인의 디테일 부분을 디자인 팀과 상의해 보고, 견본을 만들 때 조심하라고 얘기해 주러 왔죠.”“유준은 지금 자리에 없는데, 전화해 보지 않았어요?”그러자 존슨이 웃으며 대답했다.“정유준에 관한 연락처는 하나도 저장한 적 없다고 하면 믿겠어요?”‘그걸 누가 믿어?’하지만 견본을 만드는 일이라면 현욱도 잘 알고 있었다. 그건 인나가 책임지던 일이었기 때문이다.현욱은 이것도 인나를 찾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다.“혹시 저를 믿으신다면 주의 사항들을 저한테 얘기하면 제가 전달해 드릴게요. 왜냐하면 두 사람 지금 같이 있거든요.”현욱의 말에 존슨은 깜짝 놀랐다.“정유준은 분명 내 제자랑…….”“하영 씨가 사고를 당해 입원한 사실을 모르고 있었어요?”현욱은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스승이라는 사람이 뭐 이래? 이렇게 떠들썩한 기사도 보지 못 했다고?’“입원? 어느 병원인데요? 많이 다쳤어요? 심각해요? 지금은 어때요?”존슨은 질문공세를 퍼부었고 현욱은 하나하나 대답해 줬고, 그제야 긴장된 안색이 풀리기 시작했다.“그럼 괜찮네요. 간호할 사람도 많으니 내가 없어도 되네요.”“…….”‘참 진부하지 않은 사람이네.’존슨은 디자인 원고를 들어 현욱의 품에 안겨줬다.“그럼 현욱 씨가 대신 전해줘요. 번호 남기면 주의사항은 문자로 보내줄게요.”“네.”현욱은 부리나케 F시 F구에 있는 병원에 도착해 유준에게 전화를 걸었고, 곧 유준의 잠긴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무슨 일이야?”현욱은 입원동
그리고 굳은 얼굴로 들어와 죽을 침대맡에 내려놓았다.“여긴 무슨 일이죠?”현욱은 몸을 일으켜 자료를 집어들었다.“존슨이 디자인 원고의 몇 가지 부분을 얘기할 게 있다고 해서요.”“정말 허울 좋은 핑계를 잘 대네요!”인나가 경멸하듯 쳐다보자, 현욱은 미간을 찌푸린 채 하영을 한 번 쳐다보고 입을 열었다.“나가서 얘기하는 게 어때요?”인나는 거절하고 싶었지만, 업무에 관한 일은 피면할 수 없으니 따를 수밖에 없었다.“대표님, 하영의 죽은 여기 놔뒀으니, 이따가 일어나면 먹여주세요.”말을 마친 인나는 병실을 나섰고, 현욱도 뒤를 따랐다.편의점에서 인나는 우동을 사서 유리창 옆에 앉았고, 현욱도 콜라 하나를 들고 인나의 곁에 앉았다.그리고 서류를 인나에게 건네주고 존슨이 보낸 문자를 보여주었고, 인나는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존슨이 보낸 문자를 열심히 적어갔다.현욱은 곁에서 가만히 일에 몰두하니 인나를 지켜보다가, 일이 끝나고 입을 열었다.“우리 얘기 좀 할까?”“할 얘기 없어!”인나는 휴대폰을 다시 가방에 넣고 우동을 먹었다.“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봤어요. 나라도 분명 인나 씨처럼 생각했을 것 같았어요.”인나는 현욱을 무시하고 그저 음식을 밀어넣었고, 현욱은 계속 설득했다.“인나 씨, 내가 잘 처리할 게요…….”“현욱 씨.”인나가 차분한 표정으로 현욱의 말을 끊었다.“나 정말 그만 두고 싶어요.”그러자 현욱의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인나 씨, 한 번만 더 기회를 줘요.”인나는 손에 들고 있던 우동을 내려놓고 진지한 얼굴로 현욱을 바라보았다.“그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현욱은 약간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게 무슨 뜻이죠?”“내가 바라는 건 그냥 평범한 일상이에요. 하지만 현욱 씨 어머니가 끼어들면서 우리 관계가 완전히 깨져버렸잖아요. 그러니까 이대로 가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뜻이에요.”“나한테 시간을 좀 줘요. 내가 반드시 잘 해겨할게요!”현욱이 다급하게 얘기했지만 인나는 고개를 저었다.“싫어요. 현욱 씨
하영이 산소마스크를 뺀 것을 보고 일행은 깜짝 놀랐고, 예준이 유준에게 물었다.“하영이 깨어난 거야?”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어, 깨어나서 10분도 안 되어 다시 잠들었어.”“엄마가 깨어나셨대!”세희가 격동되어 세준을 보며 물었다.“오빠도 방금 들었지?”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예준을 바라보았다.“삼촌, 엄마랑 얘기할 수 있어요?”예준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세희는 이미 침대 맡에 다가가 하영을 부르기 시작했다.“엄마, 제 얘기 들려요? 제가 왔어요!”세희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하영은 천천히 눈을 떴고, 모두가 조용히 하영을 주시하고 있었다.하영은 애틋한 눈으로 세희와 세준을 바라보았고, 메마른 입술을 열어 힘없이 애들을 불렀다.“세준아, 세희야.”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하영을 불렀고, 하영은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그래, 엄마 다 듣고 있어.”말을 마친 하영은 애들 뒤에 서 있는 소진호와 송유라 부부를 발견하고 송유라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소예준은 하영의 표정을 눈치 채고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해 줬다.“하여아, 네 건강이 회복되고 정식으로 소개해 줄게.”예준의 말에 하영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하영의 곁에 좀 더 머물다가 예준은 삼촌 부부와 애들을 데리고 병원을 떠났고, 유준은 몸을 일으켜 침대 맡에 있는 죽을 들었다.“다 식었네. 내가 새로 사올게.”하영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못 먹을 것 같으니 필요 없어요.”유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점심도 얼마 안 먹었는데 조금이라도 먹어.”“여기 얼마나 있었어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이 어두운 어조로 대답했다.“사흘.”‘사흘이나?’하영은 깜짝 놀라 유준을 바라보았다.‘여기 병실에 사흘이나 있었다고? 잠잘 곳이 있다고 해도 여기서 많이 불편했을 텐데.’하영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다시금 떠올랐고, 하영은 시선을 피하고 입을 열었다.“얼른 돌아가세요.”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
유준은 주먹을 꽉 쥐고 심호흡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억눌렀다.“숨겨도 좋고, 속여도 좋아!”유준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른 건 다 상관없어. 내가 신경 쓰는 건 강하영이란 여자의 생사거든!”그 말에 하영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아이들 친부에 대해선 왜 묻는 건데요?”“그냥 알고 싶어서 그랬어. 너랑 소예준 관계를 알게된 후 애들의 친부가 누군지 궁금했거든.”유준은 아이들이 자기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아이들을 언급할 때마다 하영이 이성을 잃을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더 이상 하영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무사하기만 하면 애들의 친부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유준의 씁쓸한 감정을 직시할 수 없었던 하영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하영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하영도 애들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모질게 마음 먹고 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아빠 사랑을 박탈했다.하영은 눈을 감고 차오르는 눈물을 숨겼다.방안에는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고, 유준은 고개를 돌린 하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하영아,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을 거야?”하영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를 억눌렀다.“모르겠어요!”그 말에 유준의 눈가에 쓸쓸함이 떠올랐다.“그럼 이제부터 내 방식으로 나에 대한 적대심을 없애줄 생각이야.”그 말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하영이 미처 물어보기 전에 유준은 이미 병실를 떠났고, 유준이 나가자마자 인나가 퉁퉁 부은 눈으로 들어왔다.하영이 깨어있는 것을 본 인나는 얼른 눈을 비비고 표정을 바꾸었다.“하영아, 일어났어? 죽은 먹었고?”하영은 인난의 눈을 응시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울었어?”인나는 코를 훌쩍이며 하영의 곁에 앉았다.“나 괜찮아.”“목소리마저 힘이 없잖아. 괜히 나 걱정시키지 마.
하영은 정유준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그런데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그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하영이 생각을 마치기 전에 인나가 또 말을 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너 자신이 아니라도 애들 생각을 해야지.”하영이 쓴웃음을 지었다.“마음에 대려가지 않는 게 진석 씨도 있잖아.”“진석 씨가 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어야 오래가는 법이야. 너 진석 씨 좋아해?”하영은 인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그것 봐. 대답할 수 없지? 그렇다는 건 정유준이 네 마음에서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다는 얘기잖아.”하영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사람 마음이란 건 어쩔 수 없는 거야.”인나는 마치 연애 박사처럼 얘기했다.“하긴, 나처럼 귀엽고 깨어있는 사람이 드물긴 하지!”“자아도취에서 그만 벗어나지 그래?”인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칵테일바.현욱은 유준을 끌고 술을 마시러 가서, 인나가 얼마나 그에게 무정했는지 울면서 토로했고, 유준은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런 현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낡은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이 오는 법이야.”현욱은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너는 왜 그 얘기를 교훈 삼지 않는 건데?”유준은 술은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나는 새로운 사람따위 필요없거든, 다시 하영이랑 잘해볼 생각이야.”“그래……, 뭐?”뒤늦게 반응한 현욱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다시 하영 씨랑 잘해볼 생각이라고? 이번에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거야?”유준은 현욱을 째려보았다.“무슨 문제라도 있어?”“문제 없지! 그런데 다시 잘해볼 수 있다고 확신은 들어? 하영 씨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던데.”현욱은 천천히 손에 든 술잔을 돌렸다.“그래서 뭐? 나한텐 그냥 하영이면 돼.”현욱은 소름이 돋았다.‘정유준이 언제부터 사랑꾼이 된 거지? 이것도 나쁘진 않지. 예전엔 하영 씨만 헌신했는데, 정유준도 여자한테 차이는 감정을 느껴봐야지. 사랑이란 참 힘들다니까…….’현욱은 그
하영의 몸이 약간 굳어졌다.“혼자 먹을 수 있어요.”말을 하며 하영은 숟가락을 건네받으려 했지만 유준이 그런 그녀의 손을 밀어버렸다.“얼른 회복해서 김제로 돌아갈 생각해야지, 괜히 손 쓰지 마!”“…….”유준의 차가운 어조에 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였으니, 계속 이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하영은 억지로 유준이 먹여 주는 죽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그제야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번째 숟가락을 떠 먹여주는 순간 캐리가 병실로 들어왔다.그리고 유준이 하영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을 본 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두, 두 사람…….”캐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고, 하영과 유준은 멍한 표정으로 캐리를 바라보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캐리의 하얀 피부색은 어느새 까맣게 타버린 것이다. 캐리가 유준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하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 그쪽 상황은 어때?”캐리가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유준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더니, 계속 죽을 떠먹여 주었다.“우선 밥부터 먹어!”“그래, 우선 먹어야지.”캐리도 넋을 잃고 저도 모르게 따라 한마디 했고, 하영도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죽을 다 먹고 난 후 유준은 곁에서 서류를 보기 시작했고, 캐리는 침대 옆에 앉아 사과를 깎아 주었다.“보내기로 한 물건은 전부 전해줬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아이들도 참 불쌍하더라고…….”하영은 조용히 앉아 캐리가 전하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래도 잘 마무리한 셈이네.”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비록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지만.”“그래도 언론 쪽은 아주 크게 반영됐어!”캐리는 얘기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하영에게 실검을 보여주었다.“네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인터넷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모르지?”하영이 실검을 클릭하고 대충 훑어보니, 모두가 그녀를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말뿐이었다.“안 봐도 돼. 회사에 도움
하영은 소진호와 송유라를 꾸벅 인사를 건넸고, 두 아이는 하영의 곁으로 뛰어왔다.세희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오늘은 컨디션 많이 좋아보이네요!”하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천천히 회복되면 많이 좋아질 거야.”세희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부적을 꺼내 하영에게 건네주었다.“엄마, 이거 드릴게요.”약간 놀란 하영이 자세히 보니 위에는 평안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순간 코끝이 시큰해진 하영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고마워.”“엄마, 우리는 점심에 주희 누나랑 돌아갈 생각이니까, 몸조리 잘하고 일찍 돌아오세요.”세준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병원 이전 수속을 밟고 김제로 돌아갈 생각이야.”말을 마친 하영은 예준을 보며 얘기했다.“오빠, 이틀 동안 애들을 봐주느라 고생했어.”“고생한 건 내가 아니야.”예준은 얘기를 하며 삼촌 부부를 바라봤고, 하영도 예준의 시선을 따라 소진호와 송유라를 보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이들을 챙겨줘서 고마워요.”“가족끼리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송유라가 웃으며 얘기하자 하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족이라니 무슨 뜻이지?’하영은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예준을 쳐다보자, 예준은 애들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엄마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먼저 주희 누나랑 바람 좀 쐬고 올래?”두 아이는 순순히 대답하고 주희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삼촌 부부와 함께 침대 옆에 앉은 예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영아, 네 동의 없이 외숙모가 너한테 연락하게 한 건 미안해.”“?”예준은 손을 들어 소진호와 송유라를 가리키며 소개했다.“이분들은 우리 외삼촌과 외숙모셔.”그 얘기를 들은 하영의 눈빛에 점차 경계심이 들면서 예준을 향해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오빠, 이러는 건 좀 곤란해!”그러자 예준이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영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삼
“아버지는 네 아버지한테 주영이랑 이혼해서 소씨 집안을 떠나거나, 아니면 교도소에 보낼 거라고 큰소리 쳤었다. 너의 아버지는 고집도 세고 책임도 강한 사람이라, 너랑 주영이를 위해서 교도소에 가더라도 절대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단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영은 자기 아버지랑 철저히 척을 지기 시작하면서, 만약 네 아버지를 끝까지 쫓아내겠다면 연을 끊겠다고 했다. 그래서 너희 부모님은 소씨 집안에서 한 푼도 가지지 못하고 떠나게 된 거야.”“처음엔 우리도 너희 부모님한테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너무 강요를 한 탓인지 우리와도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어. 우리도 5년이나 찾아 다녔지만, 그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고, 형사가 집에 찾아와서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됐단다.”하영은 이불을 꽉 움켜쥐고 소진호를 향해 물었다.“사인이 뭐라고 했어요?”“익사라고 했어.”하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자살이요?”소진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우리는 너의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지 않아. 왜냐하면 자기 자신보다 너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인데, 절대 어려운 일이 있다고 주영을 내팽겨치는 사람이 아니거든.”“자살이 아니면 범인은 누구죠?”하여이 다급한 어조로 묻자 삼촌 부부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어.”“그럴 리 없어요!”하영은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만약 정말 타살이라면 증거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혹…….”하영은 말 끝을 흐렸다.‘만약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단서가 없을 수 있어?’소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것봐. 우리도 분명히 아는 사실이지만 증거가 없잖아.”하영은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그럼 우리 어머니는요?”소진호는 멈칫하더니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메인 어조로 얘기했다.“주영은 자살이었어. 우리가 찾아냈을 땐 대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후였거든.”송유라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