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의 몸이 약간 굳어졌다.“혼자 먹을 수 있어요.”말을 하며 하영은 숟가락을 건네받으려 했지만 유준이 그런 그녀의 손을 밀어버렸다.“얼른 회복해서 김제로 돌아갈 생각해야지, 괜히 손 쓰지 마!”“…….”유준의 차가운 어조에 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였으니, 계속 이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하영은 억지로 유준이 먹여 주는 죽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그제야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번째 숟가락을 떠 먹여주는 순간 캐리가 병실로 들어왔다.그리고 유준이 하영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을 본 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두, 두 사람…….”캐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고, 하영과 유준은 멍한 표정으로 캐리를 바라보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캐리의 하얀 피부색은 어느새 까맣게 타버린 것이다. 캐리가 유준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하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 그쪽 상황은 어때?”캐리가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유준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더니, 계속 죽을 떠먹여 주었다.“우선 밥부터 먹어!”“그래, 우선 먹어야지.”캐리도 넋을 잃고 저도 모르게 따라 한마디 했고, 하영도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죽을 다 먹고 난 후 유준은 곁에서 서류를 보기 시작했고, 캐리는 침대 옆에 앉아 사과를 깎아 주었다.“보내기로 한 물건은 전부 전해줬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아이들도 참 불쌍하더라고…….”하영은 조용히 앉아 캐리가 전하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래도 잘 마무리한 셈이네.”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비록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지만.”“그래도 언론 쪽은 아주 크게 반영됐어!”캐리는 얘기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하영에게 실검을 보여주었다.“네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인터넷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모르지?”하영이 실검을 클릭하고 대충 훑어보니, 모두가 그녀를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말뿐이었다.“안 봐도 돼. 회사에 도움
하영은 소진호와 송유라를 꾸벅 인사를 건넸고, 두 아이는 하영의 곁으로 뛰어왔다.세희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오늘은 컨디션 많이 좋아보이네요!”하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천천히 회복되면 많이 좋아질 거야.”세희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부적을 꺼내 하영에게 건네주었다.“엄마, 이거 드릴게요.”약간 놀란 하영이 자세히 보니 위에는 평안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순간 코끝이 시큰해진 하영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고마워.”“엄마, 우리는 점심에 주희 누나랑 돌아갈 생각이니까, 몸조리 잘하고 일찍 돌아오세요.”세준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병원 이전 수속을 밟고 김제로 돌아갈 생각이야.”말을 마친 하영은 예준을 보며 얘기했다.“오빠, 이틀 동안 애들을 봐주느라 고생했어.”“고생한 건 내가 아니야.”예준은 얘기를 하며 삼촌 부부를 바라봤고, 하영도 예준의 시선을 따라 소진호와 송유라를 보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이들을 챙겨줘서 고마워요.”“가족끼리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송유라가 웃으며 얘기하자 하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족이라니 무슨 뜻이지?’하영은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예준을 쳐다보자, 예준은 애들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엄마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먼저 주희 누나랑 바람 좀 쐬고 올래?”두 아이는 순순히 대답하고 주희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삼촌 부부와 함께 침대 옆에 앉은 예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영아, 네 동의 없이 외숙모가 너한테 연락하게 한 건 미안해.”“?”예준은 손을 들어 소진호와 송유라를 가리키며 소개했다.“이분들은 우리 외삼촌과 외숙모셔.”그 얘기를 들은 하영의 눈빛에 점차 경계심이 들면서 예준을 향해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오빠, 이러는 건 좀 곤란해!”그러자 예준이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영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삼
“아버지는 네 아버지한테 주영이랑 이혼해서 소씨 집안을 떠나거나, 아니면 교도소에 보낼 거라고 큰소리 쳤었다. 너의 아버지는 고집도 세고 책임도 강한 사람이라, 너랑 주영이를 위해서 교도소에 가더라도 절대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단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영은 자기 아버지랑 철저히 척을 지기 시작하면서, 만약 네 아버지를 끝까지 쫓아내겠다면 연을 끊겠다고 했다. 그래서 너희 부모님은 소씨 집안에서 한 푼도 가지지 못하고 떠나게 된 거야.”“처음엔 우리도 너희 부모님한테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너무 강요를 한 탓인지 우리와도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어. 우리도 5년이나 찾아 다녔지만, 그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고, 형사가 집에 찾아와서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됐단다.”하영은 이불을 꽉 움켜쥐고 소진호를 향해 물었다.“사인이 뭐라고 했어요?”“익사라고 했어.”하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자살이요?”소진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우리는 너의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지 않아. 왜냐하면 자기 자신보다 너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인데, 절대 어려운 일이 있다고 주영을 내팽겨치는 사람이 아니거든.”“자살이 아니면 범인은 누구죠?”하여이 다급한 어조로 묻자 삼촌 부부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어.”“그럴 리 없어요!”하영은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만약 정말 타살이라면 증거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혹…….”하영은 말 끝을 흐렸다.‘만약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단서가 없을 수 있어?’소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것봐. 우리도 분명히 아는 사실이지만 증거가 없잖아.”하영은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그럼 우리 어머니는요?”소진호는 멈칫하더니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메인 어조로 얘기했다.“주영은 자살이었어. 우리가 찾아냈을 땐 대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후였거든.”송유라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관할 세무서와 경찰서.”갑자기 유준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고, 모두의 시선이 그의 몸에 집중되었다.예준이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몰래 엿듣는 습관이 있는 줄은 몰랐네.”유준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문 쪽을 힐끗 쳐다봤다.“문도 열려 있어서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던데?”송유라는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유준에게 되물었다.“관살 세무서는 무슨 뜻이지?”유준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만약 타살이라면 하영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눈여겨보던 것을 건드렸을 가능성도 있겠죠.”하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만약 상업 경쟁에 휘말리게 된 경우 모든 계약서는 기록이 남으니까, 이 방면에서 먼저 조사해 볼 수 있다는 뜻이죠?”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비서 노릇을 괜히 한 건 아니네.”하영은 유준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예준을 보며 얘기했다.“오빠, 아버지가 근무 당시 입찰 기록을 알아봐 줄 수 있어?”“그래, 그건 나한테 맡겨.”“하영아, 이번 일은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알아볼 테니까, 너는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송유라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럴게요……. 삼촌, 외숙모.”송유라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하영의 손을 잡았다.“그래, 네가 나를 외숙모라고 불러주니 이번 생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예준이 삼촌 부부를 모시고 밥 먹으러 간 후에야 하영은 유준을 보며 물었다.“유준 씨는 밥 먹으러 안 가요?”유준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며 입을 열었다.“허시원이 가져올 거야.”하영은 유준의 휴대폰을 잠시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많이 바쁘면 먼저 김제로 돌아가요.”유준은 행동을 멈추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영을 바라보았다.“만약 바쁘지 않으면 여기 남아도 상관없어?”“…….”‘저렇게 생각할 줄 알았으면, 방금 그
비밀번호를 입력하자마자 대화창이 열렸고, 양다인이 보내온 문자가 떴다.“유준 씨, 희민이랑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영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그 문자를 바라보았다.‘이거……, 정유준 휴대폰이잖아…….’하영은 방금 별생각 없이 비밀번호를 입력했는데 그건 그녀의 생일이었다. 유준도 하영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양다인이 유준에게 보낸 문자를 보게 될 줄이야. ‘희민이랑 정유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그건 분명 내 아들이잖아. 게다가 양다인한테 학대까지 당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양다인을 곁에 둘 수 있어? 그러면서 왜 나한테 경계심을 없애겠다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본인도 모르는 거야?’하영은 휴대폰을 다시 침대맡에 놓아두고 앞에 있는 반찬을 보았는데, 갑자기 입맛이 사라졌다.하영은 심장이 욱신거리는 느낌에 다시 이성을 되찾은 것 같았다. 유준의 몇 마디 말과 가식적인 행동에 그 말이 전부 진짜라고 믿는 게 아니었다.몇 분 뒤에 병실로 돌아온 유준은 하영이 냉담한 표정으로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안 먹어?”유준이 침대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왼손을 사용하는 게 불편해?”하영은 천천히 눈을 들어 유준을 바라보며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그만 돌아가요.”유준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어조도 약간 퉁명스럽게 변했다.“내가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여기 남아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하영이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김제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유준의 눈빛이 점점 어둡게 변했다.‘대체 왜 이러는 거지? 방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가시를 세우는 거야?’“그렇게 내가 갔으면 좋겠어?”“그래요!”유준이 차가운 어조로 되묻자, 하영도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양다인을 곁에 두고 싶다면 두 사람의 행복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유준의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생각을 하며 유준은 테이블 위에 놓인 휴대폰과 서류를 챙기고 병실을 떠났고, 나가기 전에 시원에게 하영을 돌봐 주라고 분부했다.시원도 방금 안에서 다투는 소리를 들었고, 자기 상사가 쓸쓸히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보더니 몸을 돌려 병실로 들어섰다.‘강하영 씨한테 할 말은 해야겠어!’하영의 앞으로 다가간 시원이 진지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강하영 씨가 왜 저희 대표님한테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강하영 씨가 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일을 제쳐두고 여기로 달려왔어요. 그리고 강하영 씨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걸 보고 한 시도 떠나지 않고 밖에서 지키면서, 먹지도 잠을 자지도 않고 하영 씨만 깨어나길 기다렸단 말입니다. 심지어 직접 간호까지 해주고 계시는데 대체 왜 대표님한테 이렇게 대하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그만 하세요.”하영은 고개를 숙이고 잠긴 목소리로 얘기했다.“허시원 씨도 가세요.”하영은 불륜녀가 되고 싶지 않았고, 정유준의 양다리에 맞장구쳐주고 싶지도 않았다.양다인에 관한 일이라면 할 말이 없었고, 시원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강하영 씨, 대체 왜 이러는 건데요? 대표님이 뭐가 부족해요? 강하영 씨 회사가 막 발전하기 시작할 때 대표님이 뒤에서 얼마나 많이 도왔는지 모르죠? 강하영 씨를 위해 귀찮은 사람들을 치워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내에 김제에서 입지를 다졌겠어요?”하영의 눈빛이 흔들렸다.‘나를 도와줬다고? 그래서 뭐? 양다인이 나한테 준 상처에 대한 보상인가? 떠올리고 싶지 않은 과거는 전부 양다인 때문에 일어난 건데 내가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 아직도 양다인이랑 연락을 주고받고 있는데 그걸 어떻게 참아?’유준이 양다인의 빽이 되어주면 하영이 앞으로 얼마나 더 괴로운 일을 당하게 될지 감히 상상도 할 수 없었고, 절대 참을 수 없었다.‘나가세요!”하영은 싸늘한 어조로 얘기했다.“강하영 씨.”허시원은 여전히 포기할 수 없었다.“다른 사람들에겐 잘 대해주면서 왜 대표님한테만 모질게 구는데요?”하
하영은 천천히 몸을 돌리고 왼손으로 눈을 가렸다.“우리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인나는 턱을 받치고 얘기했다.“도리로 따지면 정유준이 다시는 양다인과 접촉하지 않는 게 맞아. 양다인이 희민이한테 그런 짓까지 했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겠어?”“만약 감정이 남아있다면?”하영이 비웃었다.“그건 더욱 말이 안 되지!”인나가 분석하듯 얘기했다.“생각해 봐, 만약 진석 씨가 네 자식을 학대했다면 좋아할 수 있겠어? 그리고 만약 진석 씨가 정유준의 모든 신분을 훔쳤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면 좋아할 수 있어?”“아니.”하영은 고민도 해보지 않고 대답했다.“그럼 됐잖아.”하영은 팔을 내리고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그럼 정유준과 양다인은 지금 무슨 상황인데?”“맞아!”인나가 이해할 수 없는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며 물었다.“어떤 상황인지 왜 직접 묻지 않는 건데?”“그 사람과 양다인에 대한 일로 얘기하고 싶지 않아.”하영은 상처를 받은 트라우마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인나는 어떻게 설득해야 할지 몰라 그저 말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언제쯤 병원 이전할 거야?”하영은 그제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의사한테 물어봐 줄래? 될 수만 있다면 오늘 바로 돌아가고 싶어.”인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래. 지금 가서 물어볼고, 될 수 있으면 바로 수속 밟을게.”30분 후.병실로 돌아온 인나는 하영에게 김제에 있는 병원에 먼저 연락해야 이전 수속을 밟을 수 있다고 전했고, 하영은 별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오후가 되자 인나는 다른 침대에 누워 휴대폰을 놀다가 그대로 잠들어 버렸고, 하영도 잠시 눈을 붙이려 할 때, 베개 밑에 있던 휴대폰이 두 번 진동했다.휴대폰을 꺼내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하던 하영이 눈을 찡그리며 대화창을 열자 주원의 문자가 눈에 들어왔다.[지금쯤이면 정신을 차렸을 것 같아 문자 보냅니다. 이번 자선활동 정말 쉽지 않네요.]하영은 주원이 그녀의 말을 기다리고 있다는 걸 알고 있기에 답장을 보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주원이
양다인은 숨을 고르고 웃으며 다가갔다.“아저씨.”물고기 밥을 들고 있던 정창만의 손이 움찔하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양다인을 쳐다보고 계속 물고기들에게 밥을 줬다.정창만은 양다인이 가까이 다가와서야 입을 열었다.“네가 감히 먼저 여기까지 찾아올 줄은 몰랐구나.”양다인은 웃으며 답했다.“무슨 말씀인지 잘 모르겠네요.”정창만은 코웃음을 치며 무거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내 손자한테 무슨 짓을 했는지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해?”양다인은 눈썹을 치켜올렸다.“다 지나간 일이잖아요. 지금은 희미의 목숨을 구해준 생명의 은인이란 말이에요.”바로 이것 때문에 정창만도 양다인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막지 않은 것이다. 정창만은 손에 든 물고기 밥을 옆에 있는 바위 우에 올려두고 의자에 앉았다.“무슨 일로 찾아왔는지 얘기해 봐.”양다인도 따라 앉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이번에 이렇게 찾아온 건 정주원 씨 때문이에요.”정창만은 양다인과 정주원의 일을 다 알고 있다는 듯 차분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정주원은 너랑 아무런 상관이 없는데, 할 얘기란 게 뭐지?”정창만읨 물음에 양다인은 그가 무슨 얘기를 하든 신경 쓰지 않고 얘기했다.“주원 씨가 강하영한테 접근하려는 것도 알고, MK로 들어가려 하는 것도 알고 있어요. 두 가지 일 모두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정창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양다인을 바라보았다.“너한테 정유준을 설득해서 주원이를 회사로 들여보낼 그만한 능력이 있단 말이냐?”“설득할 자신은 없지만 타협시킬 방법은 있어요.”“무슨 방법인데?”“강하영이요.”정창만은 미간을 찌푸렸다.“강하영이랑 무슨 상관이지?”양다인은 본인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유준 씨가 강하영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기는지 아저씨도 잘 아시죠?”“그놈이 지금 그 여자 옆에 있다는 건 알고 있다.”정창만이 코웃음을 치며 얘기했다.“그럼 아저씨께서 강하영과 정주원 씨의 약혼을 강요한다면요?”정창만이 거절하려고 입을 떼려 했지만, 미처 얘기하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