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산소마스크를 뺀 것을 보고 일행은 깜짝 놀랐고, 예준이 유준에게 물었다.“하영이 깨어난 거야?”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어, 깨어나서 10분도 안 되어 다시 잠들었어.”“엄마가 깨어나셨대!”세희가 격동되어 세준을 보며 물었다.“오빠도 방금 들었지?”세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예준을 바라보았다.“삼촌, 엄마랑 얘기할 수 있어요?”예준이 미처 대답하기 전에 세희는 이미 침대 맡에 다가가 하영을 부르기 시작했다.“엄마, 제 얘기 들려요? 제가 왔어요!”세희의 말이 떨어지게 바쁘게 하영은 천천히 눈을 떴고, 모두가 조용히 하영을 주시하고 있었다.하영은 애틋한 눈으로 세희와 세준을 바라보았고, 메마른 입술을 열어 힘없이 애들을 불렀다.“세준아, 세희야.”아이들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하영을 불렀고, 하영은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그래, 엄마 다 듣고 있어.”말을 마친 하영은 애들 뒤에 서 있는 소진호와 송유라 부부를 발견하고 송유라가 왜 이 자리에 있는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소예준은 하영의 표정을 눈치 채고 부드러운 어조로 설명해 줬다.“하여아, 네 건강이 회복되고 정식으로 소개해 줄게.”예준의 말에 하영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았다.하영의 곁에 좀 더 머물다가 예준은 삼촌 부부와 애들을 데리고 병원을 떠났고, 유준은 몸을 일으켜 침대 맡에 있는 죽을 들었다.“다 식었네. 내가 새로 사올게.”하영은 지그시 눈을 감고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못 먹을 것 같으니 필요 없어요.”유준은 눈썹을 치켜 올렸다.“점심도 얼마 안 먹었는데 조금이라도 먹어.”“여기 얼마나 있었어요?”하영의 물음에 유준이 어두운 어조로 대답했다.“사흘.”‘사흘이나?’하영은 깜짝 놀라 유준을 바라보았다.‘여기 병실에 사흘이나 있었다고? 잠잘 곳이 있다고 해도 여기서 많이 불편했을 텐데.’하영의 심장이 뛰기 시작하면서 복잡한 감정이 다시금 떠올랐고, 하영은 시선을 피하고 입을 열었다.“얼른 돌아가세요.”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의자
유준은 주먹을 꽉 쥐고 심호흡을 하면서 고통스러운 감정을 억눌렀다.“숨겨도 좋고, 속여도 좋아!”유준은 온몸의 힘이 빠져나간 듯 천천히 입을 열었다.“다른 건 다 상관없어. 내가 신경 쓰는 건 강하영이란 여자의 생사거든!”그 말에 하영은 깜짝 놀라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아이들 친부에 대해선 왜 묻는 건데요?”“그냥 알고 싶어서 그랬어. 너랑 소예준 관계를 알게된 후 애들의 친부가 누군지 궁금했거든.”유준은 아이들이 자기 아이일 가능성이 높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니면 아이들을 언급할 때마다 하영이 이성을 잃을 필요가 없었다.하지만 더 이상 하영을 의심하고 싶지 않았다. 그저 무사하기만 하면 애들의 친부가 누구인지는 상관없었다.유준의 씁쓸한 감정을 직시할 수 없었던 하영은 그의 시선을 피했다. 하영도 힘들기는 마찬가지였다.하영도 애들의 양육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은 마음에, 모질게 마음 먹고 애들이 마땅히 누려야 할 아빠 사랑을 박탈했다.하영은 눈을 감고 차오르는 눈물을 숨겼다.방안에는 질식할 정도로 무거운 분위기가 흘렀고, 유준은 고개를 돌린 하영의 얼굴을 바라보며 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하영아, 내가 어떻게 해야 더 이상 나를 몰아붙이지 않을 거야?”하영은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를 억눌렀다.“모르겠어요!”그 말에 유준의 눈가에 쓸쓸함이 떠올랐다.“그럼 이제부터 내 방식으로 나에 대한 적대심을 없애줄 생각이야.”그 말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자는 얘기인가?’하영이 미처 물어보기 전에 유준은 이미 병실를 떠났고, 유준이 나가자마자 인나가 퉁퉁 부은 눈으로 들어왔다.하영이 깨어있는 것을 본 인나는 얼른 눈을 비비고 표정을 바꾸었다.“하영아, 일어났어? 죽은 먹었고?”하영은 인난의 눈을 응시하며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울었어?”인나는 코를 훌쩍이며 하영의 곁에 앉았다.“나 괜찮아.”“목소리마저 힘이 없잖아. 괜히 나 걱정시키지 마.
하영은 정유준이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는 반박하지 않았다.‘그런데 정말 모든 걸 내려놓고 다시 그 사람과 만날 수 있을까?’하영이 생각을 마치기 전에 인나가 또 말을 이었다.“솔직히 말해서 너 자신이 아니라도 애들 생각을 해야지.”하영이 쓴웃음을 지었다.“마음에 대려가지 않는 게 진석 씨도 있잖아.”“진석 씨가 왜? 사람은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이랑 있어야 오래가는 법이야. 너 진석 씨 좋아해?”하영은 인나의 질문에 대답할 수 없었다.“그것 봐. 대답할 수 없지? 그렇다는 건 정유준이 네 마음에서 완전히 잊혀지지 않았다는 얘기잖아.”하영은 반박할 말이 없었다.“사람 마음이란 건 어쩔 수 없는 거야.”인나는 마치 연애 박사처럼 얘기했다.“하긴, 나처럼 귀엽고 깨어있는 사람이 드물긴 하지!”“자아도취에서 그만 벗어나지 그래?”인나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칵테일바.현욱은 유준을 끌고 술을 마시러 가서, 인나가 얼마나 그에게 무정했는지 울면서 토로했고, 유준은 그저 무덤덤한 표정으로 그런 현욱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낡은 것을 버려야 새로운 것이 오는 법이야.”현욱은 술을 벌컥벌컥 마셨다.“너는 왜 그 얘기를 교훈 삼지 않는 건데?”유준은 술은 한 모금 마시고 대답했다.“나는 새로운 사람따위 필요없거든, 다시 하영이랑 잘해볼 생각이야.”“그래……, 뭐?”뒤늦게 반응한 현욱은 충격받은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다시 하영 씨랑 잘해볼 생각이라고? 이번에 적극적으로 대시하는 거야?”유준은 현욱을 째려보았다.“무슨 문제라도 있어?”“문제 없지! 그런데 다시 잘해볼 수 있다고 확신은 들어? 하영 씨 그렇게 쉬워 보이지 않던데.”현욱은 천천히 손에 든 술잔을 돌렸다.“그래서 뭐? 나한텐 그냥 하영이면 돼.”현욱은 소름이 돋았다.‘정유준이 언제부터 사랑꾼이 된 거지? 이것도 나쁘진 않지. 예전엔 하영 씨만 헌신했는데, 정유준도 여자한테 차이는 감정을 느껴봐야지. 사랑이란 참 힘들다니까…….’현욱은 그
하영의 몸이 약간 굳어졌다.“혼자 먹을 수 있어요.”말을 하며 하영은 숟가락을 건네받으려 했지만 유준이 그런 그녀의 손을 밀어버렸다.“얼른 회복해서 김제로 돌아갈 생각해야지, 괜히 손 쓰지 마!”“…….”유준의 차가운 어조에 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 확실히 회사에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더미같이 쌓였으니, 계속 이렇게 누워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하영은 억지로 유준이 먹여 주는 죽을 받아먹을 수밖에 없었다.그제야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두 번째 숟가락을 떠 먹여주는 순간 캐리가 병실로 들어왔다.그리고 유준이 하영에게 죽을 떠먹여 주는 모습을 본 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두, 두 사람…….”캐리는 충격받은 표정으로 말까지 더듬었고, 하영과 유준은 멍한 표정으로 캐리를 바라보았다. 불과 며칠 사이에 캐리의 하얀 피부색은 어느새 까맣게 타버린 것이다. 캐리가 유준의 손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것을 보고 하영은 어색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그, 그쪽 상황은 어때?”캐리가 막 입을 떼려던 순간 유준이 날카로운 시선을 보내오더니, 계속 죽을 떠먹여 주었다.“우선 밥부터 먹어!”“그래, 우선 먹어야지.”캐리도 넋을 잃고 저도 모르게 따라 한마디 했고, 하영도 그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죽을 다 먹고 난 후 유준은 곁에서 서류를 보기 시작했고, 캐리는 침대 옆에 앉아 사과를 깎아 주었다.“보내기로 한 물건은 전부 전해줬으니까 걱정할 필요 없어. 그 아이들도 참 불쌍하더라고…….”하영은 조용히 앉아 캐리가 전하는 얘기를 조용히 듣고 있었다.“그래도 잘 마무리한 셈이네.”하영이 쓴웃음을 지으며 얘기했다.“비록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됐지만.”“그래도 언론 쪽은 아주 크게 반영됐어!”캐리는 얘기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하영에게 실검을 보여주었다.“네가 혼수상태에 빠져있는 동안 인터넷에서 무슨 일들이 일어났는지 모르지?”하영이 실검을 클릭하고 대충 훑어보니, 모두가 그녀를 용감하다고 칭찬하는 말뿐이었다.“안 봐도 돼. 회사에 도움
하영은 소진호와 송유라를 꾸벅 인사를 건넸고, 두 아이는 하영의 곁으로 뛰어왔다.세희는 두 손으로 턱을 받치고 생글생글 웃는 얼굴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 오늘은 컨디션 많이 좋아보이네요!”하영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천천히 회복되면 많이 좋아질 거야.”세희는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부적을 꺼내 하영에게 건네주었다.“엄마, 이거 드릴게요.”약간 놀란 하영이 자세히 보니 위에는 평안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순간 코끝이 시큰해진 하영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고마워.”“엄마, 우리는 점심에 주희 누나랑 돌아갈 생각이니까, 몸조리 잘하고 일찍 돌아오세요.”세준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병원 이전 수속을 밟고 김제로 돌아갈 생각이야.”말을 마친 하영은 예준을 보며 얘기했다.“오빠, 이틀 동안 애들을 봐주느라 고생했어.”“고생한 건 내가 아니야.”예준은 얘기를 하며 삼촌 부부를 바라봤고, 하영도 예준의 시선을 따라 소진호와 송유라를 보고 진심으로 감사 인사를 전했다.“아이들을 챙겨줘서 고마워요.”“가족끼리 그런 말 하는 건 아니지.”송유라가 웃으며 얘기하자 하영은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족이라니 무슨 뜻이지?’하영은 영문도 모른 채 다시 예준을 쳐다보자, 예준은 애들의 뒤로 다가가 어깨를 툭툭 쳤다.“엄마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 먼저 주희 누나랑 바람 좀 쐬고 올래?”두 아이는 순순히 대답하고 주희를 찾으러 밖으로 나갔고, 아이들이 나가자마자 삼촌 부부와 함께 침대 옆에 앉은 예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영아, 네 동의 없이 외숙모가 너한테 연락하게 한 건 미안해.”“?”예준은 손을 들어 소진호와 송유라를 가리키며 소개했다.“이분들은 우리 외삼촌과 외숙모셔.”그 얘기를 들은 하영의 눈빛에 점차 경계심이 들면서 예준을 향해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오빠, 이러는 건 좀 곤란해!”그러자 예준이 어쩔 수 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영아, 할아버지는 할아버지고, 삼
“아버지는 네 아버지한테 주영이랑 이혼해서 소씨 집안을 떠나거나, 아니면 교도소에 보낼 거라고 큰소리 쳤었다. 너의 아버지는 고집도 세고 책임도 강한 사람이라, 너랑 주영이를 위해서 교도소에 가더라도 절대 이혼은 안 된다고 했단다. 나중에 그 사실을 알게 된 주영은 자기 아버지랑 철저히 척을 지기 시작하면서, 만약 네 아버지를 끝까지 쫓아내겠다면 연을 끊겠다고 했다. 그래서 너희 부모님은 소씨 집안에서 한 푼도 가지지 못하고 떠나게 된 거야.”“처음엔 우리도 너희 부모님한테 돌아오라고 설득했지만, 어쩌면 우리가 너무 강요를 한 탓인지 우리와도 완전히 연락을 끊어버렸어. 우리도 5년이나 찾아 다녔지만, 그 어떤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고, 형사가 집에 찾아와서야 너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알게 됐단다.”하영은 이불을 꽉 움켜쥐고 소진호를 향해 물었다.“사인이 뭐라고 했어요?”“익사라고 했어.”하영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자살이요?”소진호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우리는 너의 아버지가 자살했다고 믿지 않아. 왜냐하면 자기 자신보다 너의 어머니를 더 사랑하는 사람인데, 절대 어려운 일이 있다고 주영을 내팽겨치는 사람이 아니거든.”“자살이 아니면 범인은 누구죠?”하여이 다급한 어조로 묻자 삼촌 부부의 얼굴에 고통스러운 기색이 떠올랐다.“아무런 단서도 찾지 못했어.”“그럴 리 없어요!”하영은 격앙된 어조로 말을 이었다.“만약 정말 타살이라면 증거가 없을 리가 없잖아요! 혹…….”하영은 말 끝을 흐렸다.‘만약 아버지를 죽인 범인이 돈과 권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어떻게 단서가 없을 수 있어?’소진호는 쓴웃음을 지었다.“것봐. 우리도 분명히 아는 사실이지만 증거가 없잖아.”하영은 억지로 감정을 억누르며 물었다.“그럼 우리 어머니는요?”소진호는 멈칫하더니 순간 눈시울이 붉어지며, 목메인 어조로 얘기했다.“주영은 자살이었어. 우리가 찾아냈을 땐 대량의 수면제를 복용한 후였거든.”송유라의 얼굴은 이미 눈물범벅이 되어있었다.
“관할 세무서와 경찰서.”갑자기 유준이 밖에서 들어오면서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고, 모두의 시선이 그의 몸에 집중되었다.예준이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몰래 엿듣는 습관이 있는 줄은 몰랐네.”유준은 어두워진 눈빛으로 문 쪽을 힐끗 쳐다봤다.“문도 열려 있어서 듣고 싶지 않아도 들리던데?”송유라는 그 문제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히려 유준에게 되물었다.“관살 세무서는 무슨 뜻이지?”유준은 의자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만약 타살이라면 하영의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 눈여겨보던 것을 건드렸을 가능성도 있겠죠.”하영이 미간을 찌푸렸다.“우리 아버지가 다른 사람의 이익을 건드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군요. 만약 상업 경쟁에 휘말리게 된 경우 모든 계약서는 기록이 남으니까, 이 방면에서 먼저 조사해 볼 수 있다는 뜻이죠?”유준은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비서 노릇을 괜히 한 건 아니네.”하영은 유준의 말을 신경 쓰지 않고 예준을 보며 얘기했다.“오빠, 아버지가 근무 당시 입찰 기록을 알아봐 줄 수 있어?”“그래, 그건 나한테 맡겨.”“하영아, 이번 일은 우리도 최선을 다해서 알아볼 테니까, 너는 다른 건 신경 쓰지 말고 몸조리나 잘하고 있어.”송유라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그럴게요……. 삼촌, 외숙모.”송유라는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하영의 손을 잡았다.“그래, 네가 나를 외숙모라고 불러주니 이번 생은 죽어도 여한이 없겠구나!”하영은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웃었다.예준이 삼촌 부부를 모시고 밥 먹으러 간 후에야 하영은 유준을 보며 물었다.“유준 씨는 밥 먹으러 안 가요?”유준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내며 입을 열었다.“허시원이 가져올 거야.”하영은 유준의 휴대폰을 잠시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입을 열었다.“많이 바쁘면 먼저 김제로 돌아가요.”유준은 행동을 멈추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하영을 바라보았다.“만약 바쁘지 않으면 여기 남아도 상관없어?”“…….”‘저렇게 생각할 줄 알았으면, 방금 그
비밀번호를 입력하자마자 대화창이 열렸고, 양다인이 보내온 문자가 떴다.“유준 씨, 희민이랑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하영은 놀란 표정으로 멍하니 그 문자를 바라보았다.‘이거……, 정유준 휴대폰이잖아…….’하영은 방금 별생각 없이 비밀번호를 입력했는데 그건 그녀의 생일이었다. 유준도 하영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사용하고 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그런데 공교롭게도 양다인이 유준에게 보낸 문자를 보게 될 줄이야. ‘희민이랑 정유준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린다고? 그건 분명 내 아들이잖아. 게다가 양다인한테 학대까지 당한 적이 있는데! 어떻게 양다인을 곁에 둘 수 있어? 그러면서 왜 나한테 경계심을 없애겠다는 말을 했는데? 얼마나 웃기는 일인지 본인도 모르는 거야?’하영은 휴대폰을 다시 침대맡에 놓아두고 앞에 있는 반찬을 보았는데, 갑자기 입맛이 사라졌다.하영은 심장이 욱신거리는 느낌에 다시 이성을 되찾은 것 같았다. 유준의 몇 마디 말과 가식적인 행동에 그 말이 전부 진짜라고 믿는 게 아니었다.몇 분 뒤에 병실로 돌아온 유준은 하영이 냉담한 표정으로 침대에 멍하니 앉아있는 모습을 보고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왜 안 먹어?”유준이 침대 곁으로 다가와 앉았다.“왼손을 사용하는 게 불편해?”하영은 천천히 눈을 들어 유준을 바라보며 냉담한 태도를 보였다.“그만 돌아가요.”유준의 눈빛이 싸늘해지더니, 어조도 약간 퉁명스럽게 변했다.“내가 몇 번을 얘기해야 알아들어?”“여기 남아서 무슨 소용이 있어요?”하영이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김제에 당신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기서 이러고 있어?”유준의 눈빛이 점점 어둡게 변했다.‘대체 왜 이러는 거지? 방금 전까지 괜찮았는데 왜 갑자기 가시를 세우는 거야?’“그렇게 내가 갔으면 좋겠어?”“그래요!”유준이 차가운 어조로 되묻자, 하영도 딱딱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양다인을 곁에 두고 싶다면 두 사람의 행복을 깨뜨리고 싶지 않았다.유준의 주위 공기가 싸늘하게 식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