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리어를 끌고 나가는 순간 마이바흐가 들어왔다.정유준은 차 안에서 짐을 들고 문 앞에 멈춰 선 강하영을 한눈에 보았다.그는 차에서 내려 강하영에게 다가가 물었다.“뭐 하러 가?”강하영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정 사장님께서 이미 결정을 내리셨으니 제 입장도 고려해 주세요.”정유준은 짐을 훑어보고 찬웃음을 띄우며 물었다.“너를 보내주게?”강하영은 평온하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네!”정유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의사 선생님과 함께 있으려고? 이렇게 급해?”정유준이 화가 나서 짐을 찰까 봐 강하영은 두 캐리어를 몸 뒤로 합쳤다.“정 사장님께서 원하는 대로 생각하세요. 제가 이전에 말한 것처럼 저는 다른 사람의 감정에 개입하는 제3자 노릇을 하지 않아요. 정 사장님께서 한 달 후에 약혼한다 해도 저는 애인 노릇을 하지 않습니다.”그녀가 이렇게 말하자 정유준은 온몸에 찬 기운이 흘렀다.“내가 한 달 후에 약혼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지?”강하영은 입가에 찬 웃음을 지었다.“직접 한 말도 잊으셨나요? 시간과 장소를 제공해 회억해 드릴까요?”강하영의 말속엔 가시가 박혀있었다. 정유준 뿐만 아니라 그녀도 이 가시에 찔렸다.정유준의 얼굴은 어두워졌다. 이 여자는 다른 남자 앞에서 모든 감정을 드러내더니 유독 자신 앞에서만 늘 화나고 싶을 정도로 냉랭한 태도를 보인다. 그에게만 가시 박힌 말을 하는 습관을 길러놓았다.정유준의 두 눈은 얼음이 진 것처럼 차가웠다. 그는 강하영을 향해 한 걸음 다가섰다.“계약을 끝낸다? 강하영, 그 대가를 감당할 수 있어?”“감당하기 어려워요. 그래도 난…….”강하영이 대답했다.“강하영! 마지막 한 달이야. 한 달 후 계약을 끝내!”정유준은 반항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하게 말했다. 한 달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다.그러나 강하영은 어머니의 임종 유언을 어기고 싶지 않았다.“정 사장님, 제가 감당해 볼게요.”말이 떨어지자 남자는 한참 동안 침묵했다.이젠 정유준이 승낙하겠지 하고 생각하고 있을
이때 강성문은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수염이 덥수룩 한 채 우뚝 솟은 빌딩을 보고 있었다.나쁜 계집애, 감히 그 허름한 곳에 보내 많은 고생을 시키다니.오늘 꼭 이 년에게 업보가 무엇인지 톡톡히 알게 해야 한다!강성문은 생각에 잠겼다가 갑자기 목청을 돋우며 소리쳤다.“강하영! 이 빌어먹을! 내려오지 못해!”빌딩 내의 경비원은 일찍이 강성문을 주의해 보았지만 그가 빌딩만 쳐다보기에 쫓아내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외치면 회사 이미지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급히 뛰어나와 제지했다.“이보세요. 회사 밖에서 소리 지르지 마세요.”강성문은 바닥에 대고 침을 뱉으며 소리쳤다.“너희들이 뭔데 나를 막아! 내가 내 딸을 찾는데 너희들이 무슨 상관이야?”경비원은 눈살을 찌푸렸다.“가족을 찾는 거면 전화하세요.”강성문은 노발대발했다.“배터리가 없어서 그래! 너희들이 불러와!”“딸 이름이 뭐예요?”경비가 물었다.“강하영! 강하영이라고 해!”이 말을 듣고 막 차에서 내린 양다인은 몸을 멈추었다. 양다인은 교활한 눈빛을 반짝이며 앞으로 다가갔다.“아저씨, 강하영의 아버지세요?”“넌 누구야?”강성문은 고개를 돌려 의아하게 바라보았다.“저는 강하영의 동료예요. 무슨 일로 강하영을 찾으세요?”양다인은 친절한 미소를 지으며 물었다.강성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이 계집애를 찾아 결판을 낼 거야! 돈을 받아야 해! 감히 이 아비를 경찰서에 보내다니! 이 빌어먹을!”양다인은 일부러 충격적인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머나 세상에. 강하영이 이런 짓을 하다니?”강성문은 노발대발했다.“다 키우니 젠장!”“화나실 만하네요. 이렇게 할까요? 돈은 제가 드릴 테니 전화번호를 주세요.”양다인이 말했다.“일이 있으면 저에게 메시지를 보내세요. 제가 전해드릴게요. 회사 아래층에서 소란을 피우면 아저씨의 체면에 손상이 올 수 도 있어요. 그렇죠?”강성문은 돈을 준다니 눈이 밝아졌다. 그는 급히 전화번호를 주었다.양다인은 웃으면서 10만 원을 꺼내어 강성
강하영은 전화를 끊고 실검을 보니 인기 검색어가 보였다.[모 유명 기업의 수석 비서가 뜻밖에도 대의멸친하여 그의 아버지를 감옥에 보냈다!]강하영은 얼굴색이 창백해지며 떨리는 손가락으로 댓글을 눌렀다.[세상에나! 이런 사람이 있다니. 어떻게 유명 기업의 비서를 하지?][이 회사에서 출근하는 내 친구가 그러는데 이 여자가 정부래!][이런 사람은 상장회사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신입사원한테 나쁜 본보기가 되어주니 망치는 짓이다!] [쓰레기! 나쁜 년! 구역질 나!]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악플들이 끊임없이 눈에 들어왔고 강하영은 마치 얼음창고에 빠진 것 같았다. 여론이 한 사람에 대한 파괴력이 얼마나 강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우인나는 강하영의 안색이 달라지자 황급히 물었다.“왜 그래? 어디 아파?”강하영은 당황하여 침을 삼키며 휴대폰을 우인나에게 넘겨주었다.화면에 뜬 내용을 보더니 우인나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누가 함부로 기사를 썼어?”강하영은 손바닥을 조르며 자신을 진정시켰다.당시 아버지를 체포하려고 경찰을 불렀을 때 병원의 많은 환자가 목격했다.그런데 왜 이 뉴스가 진작에 나온 것이 아니라 이제 와서 터졌을까?강하영은 곰곰이 생각하다가 또 휴대폰을 들고 검색해 보았지만 동영상은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마음속으로 잠시 병원 안의 가족과 환자를 배제하였다.강하영은 고개를 들어 우인나를 바라보았다.“우인나, 이 뉴스를 처음 발표한 블로거와 시간을 찾아줘.”우인나도 걱정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하지만 넌 일단 먼저 돌아가야 해. 그 사람이 널 괴롭히려고 하니 지금도 어딘가에서 주시하고 있을 거야. 일찍 떠나지 않으면 더 많은 사람을 불러 못살게 굴 가봐 두려워.”우인나의 말이 끝나자마자 허시원의 전화가 들어왔다. 강하영은 전화를 받으며 우인나와 함께 밖으로 나와 익숙한 차를 보자마자 함께 차에 탔다.차에 앉자 허시원의 목소리가 울렸다.“강 비서. 사장님께서 이미 실검을 내렸어요. 요 며칠 난원에서 나가지 마세요. 며
강성문은 문을 열면서 복도를 힐끗 보더니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않자 그제야 강하영을 들어오게 했다.강하영이 의자에 앉자 강성문은 그녀를 한 바퀴 훑어보며 물었다.“나한테 뭘 가져 왔는데? 물건은?”“어, 차 안에 놓고 가져오는 걸 깜빡했네요.”강하영은 헛소리했다.“그럼 돈은?”강성문은 반신반의하며 물었다.“돈은 줄 수 있어. 하지만 이 일은 나에게 진실을 말하길 바래요.”강하영은 강성문을 바라보았다.강성문은 안색이 어두워지며 말투도 거칠어졌다.“나는 아무것도 모르니 나에게 묻지 마!”강하영의 눈에는 분노가 이글거렸다.“다른 사람과 짜고 나를 헐뜯지 않았다고 감히 하늘에 계신 엄마에게 맹세할 수 있어요? 맹세할 수 있으면 오늘 당신에게 500만을 줄 테고 아니면 이 일은 당신이 한 짓이야!”강성문은 이 말을 듣고 눈을 번쩍 뜨며 노발대발했다.“강하영! 감히 나와 이렇게 말하다니! 네가 염치가 없이 다른 사람의 애인 노릇을 하니 내 체면도 다 구겨졌어! 다른 사람이 말한 것이 다 사실이야! 매춘부 같으니라고!”강하영은 가슴이 떨릴 정도로 추웠다. 그는 친아버지로부터 이렇게 험한 말을 들을 줄 생각지도 못했다.그는 아버지가 이런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요행을 바라기도 했다.강하영은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저한테 이렇게 대하면 많이 챙겨주시던가요?”강성문은 목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맞아! 돈을 받고 했어! 너 어찌할 건데? 너는 나한테 돈을 줬니?”“내가 돈을 안 줬어요? 이 말을 할 때 양심을 더듬어 보세요!”강하영은 화가 나서 눈시울을 붉혔다.“양심?! 그래, 좋아. 네가 양심이라고 하니 내가 양심이 무엇인지 보여 줄게.”강성문이 손찌검을 하려고 하자 강하영은 가슴이 벌컥 내려앉았다.강하영은 얼른 일어나 문 옆으로 다가가며 경고했다.“손찌검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고 있죠?”강성문은 전혀 듣지 않고 탁자 위의 재떨이를 집어 던졌다.강하영은 재떨이를 피할 수 있었는데 쏜살같이 달려들어 그녀의 머리를 잡고 주먹을
정유준은 찬웃음을 날렸다.“팔아?”강성문은 헤헤거리며 웃었다.“돈을 좀 주고 나를 놔주면 당신에게 말할게요.”정유준의 눈 밑에는 조소하는 기색이 떠올랐다.“말해봐, 생각해볼게.”“강하영은 내 아이가 아니라 양운희가 입양했어. 당시 나는 양운희와 사귀기 위해 함께 강하영을 키우겠다고 약속했어.”강하영이 입양된 아이라고?강하영도 고아였어?정유준은 눈썹을 찌푸리다가 갑자기 갑자기 이상한 부분이 떠올라 물어보았다.“어디서 입양했어?”강성문은 고개를 저었다.“이 부분은 몰라요. 그러나 양운희에게 입양증이 있는데 거기엔 적었을 거요.”“입양증이 어디에 있어?”정유준이 물었다.강성문은 긴장한 지 침을 삼키며 대답했다.“집을 팔 때 분리수거해서 처리한 듯…….”잠시 생각에 잠기던 정유준이 또 물었다.“질문이 하나 더 있어. 강하영이 왜 당신을 구치소에 보냈지?”“양심이 없어서지.”이 물음에 강성문은 화가 났다.“또 맞고 싶어?”정유준은 불쾌한지 눈살을 찌푸렸다.강성문은 얼른 진실을 말할 수밖에 없었다.“내가 걔 엄마를 때렸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더는 나의 빚을 갚지 않으려고 그럴 수도 있지.”정유준은 눈빛이 어두워지며 경호원에게 지시했다.“이 녹음을 처리한 후 각 언론사에 보내.”다음날. 강하영은 이마가 아파 잠에서 깼다. 눈을 뜨자 정유준이 소파에 앉아 서류를 보는 모습이 보였다.강하영은 혼수상태에 빠지기 전에 정유준이 나타나 구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정유준은 또 생명을 구해주었다.정유준은 항상 그녀의 위급한 순간에 나타나 구해주었다. 이 부분에 대해서 강하영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따라서 그에 대한 감정을 떨쳐 버리고 싶을 때마다 하지 말아야 할 기대를 하게 된다.마음은 따뜻해졌지만 강하영은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강하영은 입을 오므리다가 손에 꽂힌 주삿바늘을 보더니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정유준이 데려왔으니 자신이 임신한 사실을……강하영은 얼른 낮은 목소리로 정유준을 불렀다.“사장님.”정
강하영은 멍해져 양다인을 노려보며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양다인은 웃으며 말했다.“왜 긴장해? 당신이 긴장해야 할 일이야?”말을 마치자 양다인은 얼굴의 웃음기를 싹 거두었고 눈 밑에는 음산한 기운이 떠올랐다.“네가 이렇게 뻔뻔스럽게 내 남자친구의 아이를 뱄으니 실검은 너에 대한 첫 번째 벌칙에 불과해!”강하영은 마음속의 증오를 주체할 수 없었다.“양다인! 당신은 업보가 두렵지도 않아? 밤에 눈을 감으면 꿈에 나의 어머니가 찾아와 목숨을 내놓으라고 할까 봐 무섭지 않아?”양다인은 눈썹을 치켜세웠다.“목숨을 바친다고? 살아서 나를 이기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죽었는데 별수가 있어?”강하영은 머리가 찢어질 듯이 아파 났다. 당장 양다인을 갈기갈기 찢어버리고 싶었으나 이성이 그녀를 제지했다.양다인을 건드리기만 하면 이 여자는 즉시 고개를 돌려 정유준을 찾아 하소연할 것이다.고의로 화나게 해서 함정에 빠지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강하영은 심호흡하며 분노를 억눌렀다.“양다인, 정유준과 명분이 있어?”양다인은 오만하게 대답했다.“이제 20일 후면 난 유준 씨의 약혼녀가 될 거야.”강하영이 또 물었다.“그럼 지금은 무슨 관계지?”양다인이 말했다.“당연히 남녀 친구 사이지.”강하영은 비웃으며 물었다.“자칭한 거야? 그러나 그는 나에게 너희들은 지금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말했어.”양다인의 얼굴빛이 변했다.“나를 속일 생각 하지 마!”“나는 아직 그이랑 함께 살고 있어. 이것이 가장 좋은 증명이 아닌가?”강하영은 웃는 듯 마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양다인의 눈빛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지금은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그럴 거야. 그러는 넌? 우리 앞으로 함께 있을 줄 뻔히 알면서도 그를 붙잡고 있으니 도대체 누굴 비굴하게 구는 거야?!”강하영이 말했다.“미혼남과 미혼녀가 각자 필요한 것을 취하는 것뿐인데 무슨 잘못이 있어?”“너!!”양다인은 강하영을 노려보았다. 잠시 후, 그녀는 웃기 시작했다.“강하영, 넌 얼마 정도
남자의 진중하고 냉엄한 얼굴을 보면서 강하영의 머릿속에는 그와 양다인이 함께 자는 장면이 스쳐 지나갔다.가슴이 쓰라리게 아팠지만 또 메스꺼워졌다.강하영은 손을 들어 정유준의 손을 밀치면서 비꼬아 말했다.“정 사장님! 제가 어떻게 도발했어요?”정유준은 차가운 웃음을 날렸다.“막 출장을 다녀왔는데 너는 나한테 큰 선물을 주었어.”큰 선물……강하영의 가슴속에 냉기가 차올랐다. 양다인은 그녀가 임신한 사실을 정유준에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쨌든 이렇게 하는 것은 그녀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무슨 말인지 이해가 안 돼요.”강하영은 시선을 피했다.“불안해?”강하영의 혼란스러움을 본 정유준은 눈빛이 더 차가워졌다.“이젠 남자를 집 앞까지 데려와 썸을 타?”강하영은 부진석이 난원 입구에서 한 행동을 생각하자 냉소를 금치 못했다.。이러면 썸? 그럼 그는?강하영의 눈 밑에는 분노의 불씨가 타올랐다. 그는 고개를 들어 정유준을 바라보았다.“정유준, 당신은 양다인을 제외하고 모든 사람이 더러워 보이나요? 그럼 당신은요? 양다인랑 자고도 저를 건드린 건 또 뭐죠? 나는 남겠다고 약속을 했지만 다른 여자와 한 남자를 공유할 순 없어요. 당신이 함부로 하는데 왜 나는 안되죠? 나한테 돈을 주기 때문인가요?”강하영은 깊은숨을 쉬더니 눈가에 눈물이 고였다.“그럼 당신과 함께 보낸 3년이라는 시간은 뭐가 되죠? 정유준! 나는 처음으로 사람이 이렇게 이기적일 수 있다는 것을 발견했어요. 저는 당신이 저에게 가장 기본적인 공평과 존중을 주기를 바라요! 다른 건 저는 지금까지 아무것도 요구한 적이 없어요.”울먹이며 소리를 지른 강하영은 정유준을 밀치고 방을 뛰쳐나갔다.정유준은 제자리에 멍해 서 있는 채 준수한 얼굴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나타났다. 그는 강하영이 자신을 보고 이런 표정을 짓는 것을 처음 보았다. 혐오, 반감, 그리고 실망이 더 많았다.여태껏 약함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강한 강하영이 처음으로 그의 앞에서 눈물을 흘렸다. 심장은
강하영은 잠깐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녀는 별장에 발을 들여놓은 후 소예준이 우울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이런 보일 듯 말듯 하는 슬픈 정서가 사람의 가슴을 억누르니 숨이 막히게 했다.“저의 아버지, 어머니는 이미 돌아가셨어요. 누이동생만 남았는데 행방이 묘연해요.”소예준은 말을 마치고는 또 진열대에 있는 앨범을 펼쳐서 강하영에게 건네주었다.“이 사진들을 보고 나면 나를 오해하거나 적대시하지 않을 거예요.”강하영이 사진첩을 펼쳐보니 여자와 어린 여자아이의 사진이 수두룩했다. 몇 페이지를 넘기자 강하영은 미안해졌다. 소예준이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눈매는 소예준의 어머니뿐만 아니라 여자애와도 비슷했다.다만, 그녀는 어머니가 있었다.강하영은 사진첩을 소예준에게 돌려주었다."지난번에 내가 오해해서 미안해요. 빨리 여동생을 찾길 바래요.”소예준은 물끄러미 강하영을 바라보다가 한참이 지나서야 머리를 끄덕였다.“만약 어디로 갈지 모르겠으면 여기서 주무세요.”강하영은 잘 모르는 사람의 집에 사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소 사장님, 핸드폰을 빌려주시겠어요?”소예준은 핸드폰을 건네주며 말했다.“그렇게 부르지 마세요. 그냥 이름을 부르면 돼요.”강하영은 잔잔한 미소를 띠며 우인나에게 전화했다.간단한 대화를 하고는 이내 휴대폰을 소예준에게 돌려주었다.“제 친구가 데리러 올 거예요. 고마워요.”우인나는 십여 분 만에 소예준의 집 앞에 도착했다.강하영은 작별인사를 하고 우인나의 차를 탔다.“하영아, 이 잘 생간 사람은 누구야?”우인나의 두 눈이 빛났다.“소 씨네 사장님, 소예준이야.”강하영이 대답했다.3대가 문의 사람이라는 말을 듣자 우인나는 더 묻지 않았다.우인나는 차에 시동을 걸며 물었다.“어떻게 된 일이야? 핸드폰은?”강하영도 자신이 한심했다.“정유준과 싸우고 뛰쳐나왔는데 핸드폰을 깜빡했어.”우인나도 멍해졌다.“한번 임신하면 3년은 멍청해진다고 하더니, 너 혹시 벌써 멍해진 거야?”강하영은 우인나를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