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쪽으로 가!”유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분부했다.스텔라월드.하영은 애들 손에 이끌려 이것저것 놀이기구를 타다가 이제야 관람차 밑에 와서 줄을 섰다.희민은 고개를 들어 수백 미터 상공에 있는 관람차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이런 놀이기구는 타지 못했다.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세준이 희민이에게 물었다.“희민아, 어디 아파?”그러자 희민은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나 괜찮아…….”말이 끝나기 바쁘게 희민은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다.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하영과 지영은 희민이 토하는 것을 발견했고, 하영은 얼른 희민을 품에 껴안았다.“희민아. 대체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희민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힘없이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높아요…….”“높아?”세희가 고개를 들어 지금 한창 돌고 있는 관람차를 쳐다보았다.“알 것 같아요! 엄마, 희민 오빠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거예요!”하영은 희민을 돌아보며 물었다.“희민아, 정말 고소공포증 있는 거야?”“네…….”희민은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그럼 왜 미리 얘기 안 했어?”하영은 가슴이 아픈지 희민의 등을 토닥여줬다.희민은 입술을 깨물더니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다들 신나하는데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하영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희민을 껴안고 달래줬다.“괜찮아. 그냥 놀이기구일 뿐이잖인데 다른 놀이기구 놀면 되지.”그때 살짝 눈을 든 희민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그럼 엄마는 괜찮으세요?”“그럼. 세희랑 세준이 그리고 할머니 셋이서 타고 엄마는 우리 희민이랑 아래서 기다리면 돼.”“희민 오빠가 안 타면 나도 타지 않을래요, 엄마!”“저도 딱히 관심 없으니 희민이 곁에 있을게요.”세희의 말에 세준도 따라 입을 열자, 하영은 조금 난처해졌다.‘그렇다고 이모를 혼자 타게 할 수는 없는데.’지영이 손을 뻗어 하영의 옷자락을 끌었다.“하영 씨는 애들이랑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
하영은 얼른 몸을 일으켜 지영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스태프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경고했다.“고객님, 이러시면 위험해요!”그쪽으로 갈 수 없었던 하영은 그저 지영을 향해 외칠 수밖에 없었다.“이모, 절대 문 열면 안 돼요. 거기 얌전히 앉아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지영은 다 안다는 뜻으로 하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하영은 지영이 앉은 관람차를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스태프가 재촉해서야 아래로 내려왔다.“엄마.”희민은 엄마를 너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얼른 입을 열었다.“할머니가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사러 가요.”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하영은 애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는 길에도 하영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관람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몇 분 뒤, 지영이 앉은 관람차가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자 하영의 마음도 따라 조마조마해 났다.관람차가 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하영은 손발에 힘이 쫙 빠졌다.‘이모가 안에서 겁먹진 않았겠지? 아무것도 만지지 말아야 할 텐데.’관람차 안.관람차가 지면에서 높아짐에 따라 한눈에 보이는 김제의 아름다운 절경에 지영의 마음도 차분해지기 시작했다.지영은 자기와 함께 관람차에 탔던 남자가 누군지 떠올랐다.그 남자의 이름은 주진우였다.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인지 그의 모습은 지영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다.지영은 천천히 눈을 감고 주진우의 다정한 말투와 행동들을 떠올렸다.그녀는 주진우와 열애 중에 함께 관람차를 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관람차가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진우는 지영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주진우와 결혼 한 달을 앞두고 있을 때 정호영의 눈에 들고 말았다.상대방은 지영을 억지로 정씨 집안으로 데려가 자기와 결혼할 것을 강요했고, 따르지 않는다면 주진우를 없애 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다.그 사실을 알게 된 주진우는 미친 듯이 정씨 집안에 찾아가 지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정호영을 화나게 한 결과는 뻔했다. 주진우는 숨만
스텔라월드 입구.유준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스텔라월드 안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를 듣게 됐고,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그는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시원과 경호원은 얼른 앞으로 뛰어가 유준을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유준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였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밀친 뒤, 숨 막히는 어지러움을 억지로 참으며 몸을 일으켜 스텔라월드로 다가갔다.그때 스텔라월드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모든 사람이 관람차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김호진이 스텔라월드 직원을 찾아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자, 직원은 허둥대며 대답해 줬다.“관람차 하나가 추락했어요!”허시원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비어 있는 곳을 쳐다봤다.‘족히 200미터 높이는 되는 것 같은데, 저기서 사람이 떨어졌으면 희망이 없겠지…….’직원의 말을 들은 유준의 눈빛에 순간 공포가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가슴 한 구석에 고통이 밀려왔다.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유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움츠러들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강하영…….”그리고 긴 다리로 빠르게 관람차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시원과 경호원은 모두 깜짝 놀랐다.‘대표님, 그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관람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익숙한 울부짖음 소리가 유준의 귀에 흘러들어왔다.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얼른 많은 인파를 헤치고 유준을 들어가게 했다.유준이 부서진 관람차 앞까지 달려가니 하영과 아이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관람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바닥은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유준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에 얼른 앞으로 다가가 하영을 잡아 일으켰다.“강하영,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친 덴 없어?”하영의 두 눈은 넋이 나간 듯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유준의 손에 잡혀 있었다.유준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강하영! 대답해!”남자의 날
하영은 쉬지 않고 울어대는 세희를 안아 들고 등을 토닥여줬고, 세희는 하영의 목에 얼굴을 묻고 끊임없이 흐느꼈다.“엄마, 할머니가 떠나는 건 싫어요. 흑흑, 이대로 떠나보내기 싫어요…….”하영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세희의 작은 몸을 힘껏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미안, 엄마가 할머니를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했어. 엄마 잘못이야…….”세준과 희민도 퉁퉁 부은 눈으로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다.“왜?”그때 갑자기 제자리에서 서서 꼼짝도 않고 있던 유준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는데, 말투엔 가늠할 수 없는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하영은 자책과 자괴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미안해요.”온몸에 싸늘한 기운을 잔뜩 품은 유준이 입술을 꾹 깨물며 하영 앞으로 다가왔다.“강하영, 대체 왜 나를 망가뜨리고, 우리 어머니까지 망가뜨리려 했는지 얘기해 봐!”‘망가뜨린다고?’하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망가뜨리려 했다고요?”“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모르는 척할 거야?”유준은 피식 웃었다. 그의 싸늘한 눈빛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하영의 얼굴을 베었다.“강하영, 잘 들어.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까!”유준의 싸늘한 말투에는 짙은 위협이 담겨있었고, 차가운 얼굴에서 어느 때보다 강한 원망을 느낄 수 있었다.유준이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몸을 돌려 떠난 뒤에도 하영은 한참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하영이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인나가 집으로 찾아왔다.별장으로 뛰어 들어온 인나는 소파에 홀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하영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인나는 하영의 곁에 다가와 앉으며 하영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하영아…….”하영은 힘없이 머리를 인나의 어깨에 기대고 쉰 목쇠로 “응.”이라고 대답했다.“하영아, 너무 자책하지 마. 이번 일은 네 잘못이 아니잖아.”인나가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건네자,
하영은 유준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그 일이 유준 씨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줬을까?’생각만 해도 하영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그때 우인나가 또 말을 이었다.“하영아, 지금 문제는 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해서 언론에 공개했냐는 거야.”하영은 인나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 짐작이 맞다면 아마 정주원인 것 같지만, 실검 제목을 보면 마치 내가 사람을 시켜 언론에 공개한 것처럼 나와 있어.”하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분석하기 시작했다.“왜냐하면 지영 이모 곁에 늘 내가 있었기 때문이지.”“정주원?”인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공개하고 싶으면 진작에 하지 왜 오늘에야 하는 건데?”하영도 거기서 생각이 막혔다. 그래도 이 사실을 폭로할 수 있는 사람은 정주원밖에 없었다.이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테니까.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사람은 자신과 대립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부러 유준이 하영을 미워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그를 망칠 수 있으니까.만약 하영만 노린 것이라면 그건 틀림없이 양다인이다.‘하지만 양다인은 유준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왜 유준 씨한테 그런 짓을 한 걸까?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사랑이 원망으로 바뀐 건가?’“하영아, 혹시 양다인은 아닐까?”인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하영은 몸을 곧게 폈다.“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냐!”말을 하며 하영은 휴대폰을 꺼내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금 뒤에 휴대폰에서 예준의 부드러운 어조가 흘러나왔다.“하영아.”“오빠, 양다인이 요즘 누구랑 만났는지 알아?”“그건 나도 잘 몰라. 왜 무슨 일 있어?”하영이 예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 소예준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알았어. 내가 사람을 보내 잘 감시해 보라고 할 테니까 너도 조심해. 네 결백을 밝힐 증거를 찾기 전까지 유준의 성격으로 분명 너를 귀찮게 할 거야.”하영은 눈을 내리깔며 대답
정창만은 눈을 가늘게 뜨고 댓글을 읽어 내려갔다.“기사가 너무 웃기는 거 아냐? 딱 봐도 대중들이 MK 대표랑 그 유명 여성 기업가를 겨냥하길 바라는 거잖아.”“맞는 말이야. 이 언론사는 우리를 바보로 아나? 이유 없이 아무 근거도 없는 사실을 날조하여 남을 헐뜯길 바라는 의도가 분명하잖아. 이 일의 원흉은 바로 그 정씨 집안이야!”“50대 중반 나이에 스무 살 여자랑 강제로 결혼하려 하다니, 정말 역겨워!”“다행히 MK 그룹이 정유준 대표 손에 있으니 다행이지, 그렇지 않으면 언젠가 그 영감탱이 때문에 비호감으로 망했을 거야!”“MK 대표님이 놀이공원을 매장시켜 버리려는 거 너무 멋있어! 그런 놀이공원은 영업정지 시켜야 돼, 너무 위험하잖아!”“다들 국민 청원에 올립시다. 그 늙은이가 권력과 영향력을 이용해서 멋대로 사람을 해친다고 말이에요!”“백지영 씨,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다음 생엔 정씨 집안의 그런 위험한 놈은 다시 만나지 않길 바랄게요.”그 댓글을 전부 확인한 정창만은 얼굴이 새파랗게 변하며 휴대혼을 바닥에 내팽개쳤다.“전부 헛소리야! 헛소리!”정창만은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그 X이 내 아들을 유혹했는데 오히려 우리 잘못이란 말이야?”집사가 얼른 다가가 위로를 건네기 시작했다.“어르신, 화 푸세요! 제 생각엔 어르신을 욕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일을 고발한 사람이 한 짓인 것 같습니다!”정창만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그러니까 그놈이 일부러 언론에 이런 기사를 내보내게 하고 또 댓글 알바까지 청해서 여론을 내 쪽으로 돌렸단 말이야?”“네, 표면상으론 큰 도련님의 억울함을 풀어주려는 것 같지만 사실은 대중을 이용해서 이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것 같습니다. 만약 사람들이 진실을 알게 되면 누구를 옹호할까요?”“정유준 그 불효자식 말고 또 누가 있겠어?”“네, 셋째 도련님은 모두의 동정을 받을 겁니다. 그런데 어르신께서 이때 큰 도련님을 회사에 들여보내면 회사 주식이 크게 폭락
다음날.애들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하영은 다들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점심 때쯤 우인나가 문자로 지영이 묻힌 곳을 알려주었다.하영은 지영이 지냈던 방에 앉아 휴대폰 속에 있는 지영의 사진을 한참이나 묵묵히 지켜봤다.그때 소예준이 오늘 소씨 어르신의 생일을 잊지 말라고 문자로 귀띔해 줬다.이제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가 왔다!하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영의 방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입구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의아한 표정으로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발길에 대문이 열리더니 많은 경호원이 뛰어 들어와 하영을 끌고 가려 했고, 하영은 깜짝 놀라 몸부림치기 시작했다.“당신들 누구야? 이것 놔!”경호원은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하영의 얼굴에 감쌌고, 이내 의식을 잃은 하영은 그들 손에 이끌려 차에 끌려 들어갔다.위층에 있던 세 녀석들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급히 뛰어 내려가 상황을 살피려다가 하영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얼른 뒤쫓아가려 했지만 그녀를 태우는 차는 이미 빠르게 사라지고 없었다.세희는 조급해하며 울음을 터뜨렸다.“저 사람들은 누구야? 왜 엄마를 데려가는 건데? 엄마…….”희민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는 차 번호판을 보고 입을 열었다.“할아버지야.”세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그 사람이 왜 엄마를 데려가는 건데?”“나도 모르겠어!”희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세준아, 잠시 컴퓨터 좀 쓸게.”“그래!”희민과 세준은 세희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고, 희민은 제일 빠른 속도로 정창만 집안의 모든 CCTV를 해킹한 뒤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뒤에 통화가 연결되자 희민이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아빠, 할아버지가 엄마를 데려갔어요.”지금도 무덤에 있던 유준은 희민의 말에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러다 묘비 위에 박힌 어머니의 흑백 사진을 보고 다시 무덤덤한 기색으로 돌아오
양다인은 연신 피식 웃었다.‘MK가 정주원 손에 안 들어가면 뭐 어때?’정창만은 정유준의 능력을 이용해, 그가 이루어낸 성과를 전부 정주원에게 넘기면 그만이다.‘정유준에게 유리할수록 MK는 점점 더 성장해 나가겠지. 나는 앞으로 정주원의 아내가 될 사람이니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어. 어르신이 유일하게 아끼는 자식이 바로 정주원이니까!’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양다인의 얼굴에 답답한 기색이 나타났다.‘오랫동안 주원 씨랑 연락이 끊긴 것 같은데, 대체 뭐 하는 거야?’“아야…….”양다인이 한창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 하필 그때 스타일리스트가 실수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양다인이 아파서 소리 지르자 스타일리스트는 깜짝 놀라 얼른 손을 치우고 사과를 건넸다.“정말 죄송합니다, 양다인 씨! 실수였어요!”양다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타일리스트를 쏘아보더니 그대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며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죽고 싶어서 그래?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병신이야?”스타일리스트는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떨구었다.“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양다인은 스타일리스트를 노려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양다인은 귀찮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문자를 보내온 사람이 정주원인 것을 보고 이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문자를 확인했다.[미안해요. 요즘 사고가 생겨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많이 다쳤어요? 어느 병원인데요?][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인 씨, 기사 봤어요. 혹시 다인 씨가 언론에 얘기한 겁니까?]그 문자에 양다인은 잠시 멈칫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설마 내가 언론에 얘기했다고 탓하는 건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당부했어야지.’양다인은 슬쩍 떠보는 식으로 물었다.[왜 그게 저라고 생각하는 거죠?][양다인 씨한테만 얘기했으니까요.][제가 얘기했다면 어떨 것 같아요?][실망이네요. 저는 양다인 씨를 믿고 얘기해준 건데, 다인 씨는 제게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