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애들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았기 때문에 하영은 다들 집에서 쉬고 있으라고 했다.점심 때쯤 우인나가 문자로 지영이 묻힌 곳을 알려주었다.하영은 지영이 지냈던 방에 앉아 휴대폰 속에 있는 지영의 사진을 한참이나 묵묵히 지켜봤다.그때 소예준이 오늘 소씨 어르신의 생일을 잊지 말라고 문자로 귀띔해 줬다.이제 행동을 개시해야 할 때가 왔다!하영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지영의 방안을 천천히 둘러본 뒤 몸을 일으켰다.그리고 아래층에 내려오자마자 입구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의아한 표정으로 현관으로 다가갔다. 그때 쾅-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의 발길에 대문이 열리더니 많은 경호원이 뛰어 들어와 하영을 끌고 가려 했고, 하영은 깜짝 놀라 몸부림치기 시작했다.“당신들 누구야? 이것 놔!”경호원은 대답대신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하영의 얼굴에 감쌌고, 이내 의식을 잃은 하영은 그들 손에 이끌려 차에 끌려 들어갔다.위층에 있던 세 녀석들은 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급히 뛰어 내려가 상황을 살피려다가 하영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얼른 뒤쫓아가려 했지만 그녀를 태우는 차는 이미 빠르게 사라지고 없었다.세희는 조급해하며 울음을 터뜨렸다.“저 사람들은 누구야? 왜 엄마를 데려가는 건데? 엄마…….”희민은 입술을 꾹 다문 채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는 차 번호판을 보고 입을 열었다.“할아버지야.”세준이 싸늘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그 사람이 왜 엄마를 데려가는 건데?”“나도 모르겠어!”희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세준아, 잠시 컴퓨터 좀 쓸게.”“그래!”희민과 세준은 세희를 데리고 방으로 돌아갔고, 희민은 제일 빠른 속도로 정창만 집안의 모든 CCTV를 해킹한 뒤 정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뒤에 통화가 연결되자 희민이 다급한 소리로 외쳤다.“아빠, 할아버지가 엄마를 데려갔어요.”지금도 무덤에 있던 유준은 희민의 말에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러다 묘비 위에 박힌 어머니의 흑백 사진을 보고 다시 무덤덤한 기색으로 돌아오
양다인은 연신 피식 웃었다.‘MK가 정주원 손에 안 들어가면 뭐 어때?’정창만은 정유준의 능력을 이용해, 그가 이루어낸 성과를 전부 정주원에게 넘기면 그만이다.‘정유준에게 유리할수록 MK는 점점 더 성장해 나가겠지. 나는 앞으로 정주원의 아내가 될 사람이니 원하는 건 다 가질 수 있어. 어르신이 유일하게 아끼는 자식이 바로 정주원이니까!’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양다인의 얼굴에 답답한 기색이 나타났다.‘오랫동안 주원 씨랑 연락이 끊긴 것 같은데, 대체 뭐 하는 거야?’“아야…….”양다인이 한창 화가 나 있는 상태인데, 하필 그때 스타일리스트가 실수로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겼다.양다인이 아파서 소리 지르자 스타일리스트는 깜짝 놀라 얼른 손을 치우고 사과를 건넸다.“정말 죄송합니다, 양다인 씨! 실수였어요!”양다인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스타일리스트를 쏘아보더니 그대로 상대방의 뺨을 때리며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죽고 싶어서 그래? 손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병신이야?”스타일리스트는 얼굴을 감싼 채 눈물을 떨구었다.“죄송합니다! 앞으로 조심할게요!”양다인은 스타일리스트를 노려보고는 다시 자리에 앉았고, 그때 그녀의 휴대폰이 울리기 시작했다.양다인은 귀찮은 표정으로 휴대폰을 확인하다가 문자를 보내온 사람이 정주원인 것을 보고 이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문자를 확인했다.[미안해요. 요즘 사고가 생겨서 한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었어요.][많이 다쳤어요? 어느 병원인데요?][걱정할 정도는 아닙니다. 다인 씨, 기사 봤어요. 혹시 다인 씨가 언론에 얘기한 겁니까?]그 문자에 양다인은 잠시 멈칫했다. ‘이게 무슨 뜻이지? 설마 내가 언론에 얘기했다고 탓하는 건가?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면 처음부터 당부했어야지.’양다인은 슬쩍 떠보는 식으로 물었다.[왜 그게 저라고 생각하는 거죠?][양다인 씨한테만 얘기했으니까요.][제가 얘기했다면 어떨 것 같아요?][실망이네요. 저는 양다인 씨를 믿고 얘기해준 건데, 다인 씨는 제게
“몰라? 너랑 불효자 놈이 손을 잡고 나와 주원이한테 한 짓을 잊었어?”하영은 어지러움을 참으며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뭘 했다고 그러시는 겁니까?”“아직도 모르는 척할 거야?”정창만은 화를 벌컥 냈다.“정말 좋은 무대를 꾸몄더구나! 먼저 여론을 들끓게 만들고 그 뒤에 이 사실을 해명해서 모두가 우리 부자를 비난하게 만들었잖아! 그렇게 되면 주원이 회사로 들어갈 수 없게 막을 수 있으니 어부지리 아니야?”묵묵히 정창만의 말을 듣고 있던 하영은 그제야 자신이 여기를 끌려온 이유를 알고 피식 웃었다.“그건 제가 한 일이 아니에요. 유준 씨도 마찬가지로 본인에게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저한테 좋을 게 뭐가 있죠? 저는 정유준 씨와 다시 만날 생각 따위 없는데 어부지리라니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요?”정창만은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이곳에 돌아오고 정말 한 번도 유준이와 다시 만날 생각이 없었다고 자신할 수 있어? 만약 아니라면 왜 그놈 어머니를 곁에 두고 돌봐준 거지?”하영은 정창만을 똑바로 직시하며 이를 악물고 몸을 일으켰다.“제가 지영 이모를 길에서 주웠다고 하면 믿을 수 있겠어요?”“웃기지도 않는군!”정창만은 하영을 비웃었다.“세상에 그런 우연한 일이 있을 거라고 믿을 것 같아?”하영은 정창만이 믿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주먹을 꽉 쥐었다.하지만 무서울 정도의 우연은 하영도 가끔 놀라울 정도였다.“할 말이 없는가 봐?”정노인의 질문에 하영은 확고하고 차분한 어조로 대답했다.“제가 한 적도 없는 일을 인정 할 수는 없어요!”“언제까지 그렇게 억지를 부릴 수 있는지 두고 보겠다!”정창만은 경호원 쪽으로 고개를 살짝 돌리고 입을 열었다.“인정할 때까지 손 좀 봐줘라!”경호원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영의 앞으로 다가와 손을 쳐들자 하영이 다급히 입을 열었다.“어르신, 한 가지 묻고 싶은 게 있어요!”정창만은 경호원을 향해 잠깐 멈추라는 손짓을 했다.“묻고 싶은 게 뭐지?”하영은 이를
희원은 도톰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예준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그래. 어제 금방 귀국했어. 그런데 오빠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었어? 대체 어느 아가씨를 보고 있었던 거야?”예준은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무도 안 보고 있었어.”소희원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예준이 보고 있던 방향을 둘러보다가 양다인을 발견한 순간, 눈빛에 강한 불쾌감이 떠올랐다.“오빠가 보기엔 양다인이 이모랑 닮은 것 같아? 나는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예준은 입가에 미소를 거두었다.‘혈연관계도 없는 두 사람이 닮았을 리 없잖아.’어쩌면 시선을 느꼈는지 양다인도 갑자기 소예준 쪽을 쳐다보더니, 희원을 발견하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다가 곧 할아버지의 친손녀라는 것을 떠올린 양다인은 자기 핸드백을 힐끔 쳐다보더니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희원을 향해 다가갔다.희원은 양다인이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고, 바로 앞까지 도착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화려한 드레스를 입어도 딱히 재벌 집 아가씨 기품은 안 나네.”양다인은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그냥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만 안 하면 다행이지.”양다인은 핸드백에서 정교한 선물함 하나를 꺼내 희원에게 건네주었다.“희원아, 이건 오늘 첫 대면 선물. 예전에 우리 사이에 있었던 오해도 이번에 풀었으면 좋겠어. 어쨌든 우리도 자매잖아.”소희원이 그 박스를 힐끔 쳐다보고 손을 뻗어 박스를 열자 안에는 다이아몬드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그러자 소희원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가 왜 나한테 다이아몬드 팔찌를 선물하는 거지?’이 팔찌는 MK산하의 신제품인데 가격은 거의 3억에 달했다.희원은 눈을 들어 양다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지금 내 환심을 사려는 건가?’그리고 약간 떠보듯 질문을 던졌다.“고마워. 그런데 나는 선물 같은 거 준비하지 못했는데, 괜찮지?”“괜찮아. 너는 내 사촌 동생인데 당연히 귀국 선물 정도는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사실 비난의 대상은 정유준의 어머니였겠지만, 이번 사건은 누가 마치 뒤에서 조작이라도 한 듯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누가 한 짓인지 소예준은 관심이 없었다.그리고 정씨 집안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정창만이 하영을 데려갔다면 절대 참을 수 없었다.소예준은 떠나기 전 소씨 집안을 돌아보았다.‘5년이나 참고 견뎠지만 끝내 해방을 얻지 못하게 됐구나!’남자는 핸들을 꽉 쥐고 빠른 속도로 차를 달렸다.정씨 집안 저택.검은색 승용차 몇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마이바흐 차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려 저택 앞에 우뚝 멈춰 섰다.온몸으로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는 남자의 싸늘한 표정은 마치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여 곁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그때 허시원이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대표님, 지금 강하영 씨도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정유준은 아무 말도 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들어서니 희미한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유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거실 바닥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있는 하영을 발견하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몇 초간 시선이 머물렀다가 유준은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둔 뒤 정창만을 향해 다가갔다.정창만은 곁눈질로 유준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왜? 저 여자를 구하러 왔어?”“제 어머니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유준의 싸늘한 어조에 정창만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알면 뭐가 달라져? 내가 직접 가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배웅하랴?”유준의 눈빛에 조롱의 빛이 스쳤다.“아버지가 나타나셨다면 가시는 길이 편치 않으셨을 겁니다.”“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래?”정창만이 벌컥 화를 냈고, 그 고함에 경호원에게 맞아 정신을 잃었던 하영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강렬한 고통을 겨우 참던 하영의 시선이 어디선가 나타난 유준의 몸으로 향했다.‘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로 온 거
정창만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좋아. 그러니까 이 여자는 이제 너한테 아무 가치도 없다는 얘기지?”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하영을 돌아보았다.“들었어? 너는 이제 저 불효자 놈의 버리는 카드에 불과할 뿐이다. 이용 가치가 끝났으니 버림받은 거야! 사랑? 그딴 감정도 없는 놈을 위해 왜 굳이 어머니에 관한 소문을 퍼뜨려 호감을 얻으려는 거야? 이제 곧 죽게 될 텐데 너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는구나!”하영은 겨우 눈을 들어 정창만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니, 쉰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당신은 비참하지도 않아요?”정유준 어머니에 관한 일은 더 이상 해명하기도 지쳤다. 정씨 집안식구들은 고집불통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데 더 이상 무슨 설명을 하겠는가?하영의 말에 정창만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비참할 게 뭐가 있지?”그러자 강하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세상에서 가장 아끼던 아들이 자기 여자를 건드렸는데 그걸 용서할 수 있다니, 비참하지도 않아요?”짜악-하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창만은 하영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죽고 싶어 발악하는구나! 오늘 그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마!”말을 마친 정창만이 경호원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하영의 머리를 겨누었다.“멈춰!”모두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예준이 서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었다.정창만을 멈추게 한 뒤 예준은 얼른 하영의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하영을 보고 어디를 잡아줘야 할지 몰랐다.하영은 예준을 보자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오빠……, 나 집에 가고 싶어…….”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냘픈 하영의 목소리에 순간 예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을 꾹 참고 있던 그는 목소리마저 떨려왔다.“그래, 집으로 데려다줄게.”예준은 하영을 안아 들고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들어 싸늘한 표정으로 정창만을 바라보았다.“어르신, 오늘 일은 꼭 기억할 겁니다. 우리 사이에 진 빚은 나중에 천천히 갚도록 하죠!
예준은 분노하며 김호진의 손을 뿌리쳤다.“정유준! 언젠가 오늘 네 행동을 후회할 날이 올 거야! 하영이 네 곁으로 돌아가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는 한 번이라도 하영에게 믿음을 준 적이 없으니까!”그 말을 남기고 예준은 하영과 함께 떠나버리고 말았다.싸늘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유준의 눈가엔 풀리지 않는 침통함이 담겨있었다.하영이 그런 짓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유준은 절대 그런 식으로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유준은 입을 꾹 다문 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시선을 돌려 마이바흐가 세워져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홀로 서 있는 그의 외로운 자태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하영은 병원으로 옮겨졌다.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을 때 그의 머리와 몸에는 상당히 많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상처를 봉합할 때 하영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지 신음조차 내지 않았고, 심지어 미간조차 찡그리지 않았다.소예준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식으로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다. 그는 하영이 아직 유준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정유준의 말은 하영에게 깊은 상처로 돌아왔을 것이다.저녁.우인나는 걱정이 되어 하영을 보러 왔고, 하영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바로 눈물을 터뜨렸다.“하영아…….”우인나가 흐느끼며 하영의 이름을 불렀다.“얼마나 아팠을까…….”하영은 천천히 눈을 뜨고 우인나 쪽을 바라보더니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울지마.”그러자 인나는 더욱 서럽게 울면서 하영의 손을 꼭 잡았다.“그러니까 여기로 돌아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꼴이 이게 다 뭐야.”하영은 손가락을 약간 움직였다.“인나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인나는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뭔데? 얘기해 봐, 꼭 들어줄게.”“나 대신 애들 좀 돌봐줘. 내가 병원에 있는 거 얘기하지 말고, 캐리한테도 알리지 마. 그냥 회사 일만 잘 처리해 달라고 전해줘.”하영이 잠긴
세준은 의자에서 뛰어 내려오며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이모한테 묻고 싶은 게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가요.”“그래…….”억지로 세 녀석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자, 인나는 마치 범죄자가 된 기분으로 세 녀석에게 심문당했다.“엄마가 입원하셨는데 왜 거짓말하세요?”세준이 제일 먼저 싸늘한 어조로 묻자, 세희도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엄마 보러 가고 싶어요. CCTV로 엄마가 심하게 구타당하는 걸 봤단 말이에요!”희민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병원에 엄마 보러 가셨어요?”아이들의 연속된 질문에 인나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괜히 나 난처하게 하지 마. 너희들 걱정할까 봐 비밀로 해달라고 한 거야.”그러자 세준이 피식 웃었다.“그럼 우리가 묻지 않았으면 끝까지 거짓말할 생각이었어요?”“이모, 엄마는 어떻게 됐어요?”희민도 입술을 꾹 깨문 채 우인나의 답을 기다리는 듯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나 참, 너희들 엄마가 누군데? 내가 갔을 때 아주 멀쩡해 보였어! 가벼운 찰과상이고 다른 덴 아무 문제 없어! 지금은 그저 휴식이 필요한 것뿐이니까, 몸조리만 잘하고 집으로 돌아올 거야.”인나는 거짓말을 하며 귀까지 빨개지는 것 같았다.‘이 녀석들이 지금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 거야?’세희는 작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됐어. 엄마는 우리가 걱정하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까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좋겠어.”세준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이모, 오늘부터 엄마의 건강 상태를 사실대로 보고해 주세요.”인나는 깜짝 놀랐다.‘얼마 만에 저렇게 살가운 목소리로 이모라고 불러주는 거야?’비록 목적이 다분했지만 그래도 꽤 듣기 좋았다.“그래! 알았어. 매일 너희들 대신 하영의 상황을 살펴봐 줄게. 됐지?”“수고해 주세요.”희민도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고, 인나는 그런 희민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어 줬다.“우리 희민이, 이모한테 뭘 그리 섭섭하게 얘기하고 그래?”그러자 희민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