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원은 도톰한 입술을 삐죽 내밀고 예준에게 다가와 팔짱을 끼며 애교를 부렸다.“그래. 어제 금방 귀국했어. 그런데 오빠 내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었어? 대체 어느 아가씨를 보고 있었던 거야?”예준은 슬며시 웃으며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소리 하지 마. 아무도 안 보고 있었어.”소희원은 믿지 못하겠다는 듯 예준이 보고 있던 방향을 둘러보다가 양다인을 발견한 순간, 눈빛에 강한 불쾌감이 떠올랐다.“오빠가 보기엔 양다인이 이모랑 닮은 것 같아? 나는 하나도 안 닮은 것 같은데.”예준은 입가에 미소를 거두었다.‘혈연관계도 없는 두 사람이 닮았을 리 없잖아.’어쩌면 시선을 느꼈는지 양다인도 갑자기 소예준 쪽을 쳐다보더니, 희원을 발견하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그러다가 곧 할아버지의 친손녀라는 것을 떠올린 양다인은 자기 핸드백을 힐끔 쳐다보더니 만면에 웃음을 띤 채 희원을 향해 다가갔다.희원은 양다인이 자기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콧방귀를 뀌었고, 바로 앞까지 도착한 뒤에야 입을 열었다.“화려한 드레스를 입어도 딱히 재벌 집 아가씨 기품은 안 나네.”양다인은 여전히 상냥한 미소를 띤 채 입을 열었다.“그냥 할아버지 얼굴에 먹칠만 안 하면 다행이지.”양다인은 핸드백에서 정교한 선물함 하나를 꺼내 희원에게 건네주었다.“희원아, 이건 오늘 첫 대면 선물. 예전에 우리 사이에 있었던 오해도 이번에 풀었으면 좋겠어. 어쨌든 우리도 자매잖아.”소희원이 그 박스를 힐끔 쳐다보고 손을 뻗어 박스를 열자 안에는 다이아몬드 팔찌가 눈에 들어왔다.그러자 소희원은 약간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이 여자가 왜 나한테 다이아몬드 팔찌를 선물하는 거지?’이 팔찌는 MK산하의 신제품인데 가격은 거의 3억에 달했다.희원은 눈을 들어 양다인을 훑어보기 시작했다.‘지금 내 환심을 사려는 건가?’그리고 약간 떠보듯 질문을 던졌다.“고마워. 그런데 나는 선물 같은 거 준비하지 못했는데, 괜찮지?”“괜찮아. 너는 내 사촌 동생인데 당연히 귀국 선물 정도는
이 사실을 알고 있던 예준은 미간을 찌푸렸다.사실 비난의 대상은 정유준의 어머니였겠지만, 이번 사건은 누가 마치 뒤에서 조작이라도 한 듯 여론이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한 것이다.누가 한 짓인지 소예준은 관심이 없었다.그리고 정씨 집안의 싸움에 끼어들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지만, 정창만이 하영을 데려갔다면 절대 참을 수 없었다.소예준은 떠나기 전 소씨 집안을 돌아보았다.‘5년이나 참고 견뎠지만 끝내 해방을 얻지 못하게 됐구나!’남자는 핸들을 꽉 쥐고 빠른 속도로 차를 달렸다.정씨 집안 저택.검은색 승용차 몇 대가 집 앞에 멈춰 섰다.마이바흐 차 문이 열리고 검은 양복을 차려입은 남자가 차에서 내려 저택 앞에 우뚝 멈춰 섰다.온몸으로 서늘한 기운을 뿜어대는 남자의 싸늘한 표정은 마치 유령처럼 보이기도 하여 곁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숨소리조차 낼 수 없었다.그때 허시원이 앞으로 다가와 입을 열었다.“대표님, 지금 강하영 씨도 이곳에 있다고 합니다.”정유준은 아무 말도 없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고, 거실에 들어서니 희미한 피비린내가 확 풍겨왔다.유준은 미간을 찌푸린 채 거실 바닥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있는 하영을 발견하고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몇 초간 시선이 머물렀다가 유준은 다시 싸늘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둔 뒤 정창만을 향해 다가갔다.정창만은 곁눈질로 유준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왜? 저 여자를 구하러 왔어?”“제 어머니 일을 알고 계셨습니까?”유준의 싸늘한 어조에 정창만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알면 뭐가 달라져? 내가 직접 가서 마지막 가는 길이라도 배웅하랴?”유준의 눈빛에 조롱의 빛이 스쳤다.“아버지가 나타나셨다면 가시는 길이 편치 않으셨을 겁니다.”“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어서 그래?”정창만이 벌컥 화를 냈고, 그 고함에 경호원에게 맞아 정신을 잃었던 하영이 천천히 눈을 뜨기 시작했다.강렬한 고통을 겨우 참던 하영의 시선이 어디선가 나타난 유준의 몸으로 향했다.‘저 사람이 어떻게 여기로 온 거
정창만은 큰 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좋아. 그러니까 이 여자는 이제 너한테 아무 가치도 없다는 얘기지?”그 말을 끝으로 천천히 하영을 돌아보았다.“들었어? 너는 이제 저 불효자 놈의 버리는 카드에 불과할 뿐이다. 이용 가치가 끝났으니 버림받은 거야! 사랑? 그딴 감정도 없는 놈을 위해 왜 굳이 어머니에 관한 소문을 퍼뜨려 호감을 얻으려는 거야? 이제 곧 죽게 될 텐데 너한테 눈길조차 주지 않는구나!”하영은 겨우 눈을 들어 정창만을 바라보며 입술을 달싹이니, 쉰 목소리가 입에서 흘러나왔다.“당신은 비참하지도 않아요?”정유준 어머니에 관한 일은 더 이상 해명하기도 지쳤다. 정씨 집안식구들은 고집불통이라 아무리 설명해도 다른 사람 말은 들으려 하지 않는데 더 이상 무슨 설명을 하겠는가?하영의 말에 정창만은 미간을 찌푸렸다.“내가 비참할 게 뭐가 있지?”그러자 강하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세상에서 가장 아끼던 아들이 자기 여자를 건드렸는데 그걸 용서할 수 있다니, 비참하지도 않아요?”짜악-하영의 말이 끝나자마자 정창만은 하영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죽고 싶어 발악하는구나! 오늘 그 소원을 들어주도록 하마!”말을 마친 정창만이 경호원의 손에서 총을 빼앗아 하영의 머리를 겨누었다.“멈춰!”모두가 소리가 들려온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소예준이 서늘한 표정으로 입구에 서 있었다.정창만을 멈추게 한 뒤 예준은 얼른 하영의 쪽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온몸이 상처투성이가 된 하영을 보고 어디를 잡아줘야 할지 몰랐다.하영은 예준을 보자 코끝이 찡해지며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오빠……, 나 집에 가고 싶어…….”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가냘픈 하영의 목소리에 순간 예준의 눈시울이 붉어졌고, 눈물을 꾹 참고 있던 그는 목소리마저 떨려왔다.“그래, 집으로 데려다줄게.”예준은 하영을 안아 들고 이를 악문 채 고개를 들어 싸늘한 표정으로 정창만을 바라보았다.“어르신, 오늘 일은 꼭 기억할 겁니다. 우리 사이에 진 빚은 나중에 천천히 갚도록 하죠!
예준은 분노하며 김호진의 손을 뿌리쳤다.“정유준! 언젠가 오늘 네 행동을 후회할 날이 올 거야! 하영이 네 곁으로 돌아가지 않은 게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해! 너는 한 번이라도 하영에게 믿음을 준 적이 없으니까!”그 말을 남기고 예준은 하영과 함께 떠나버리고 말았다.싸늘한 표정으로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는 유준의 눈가엔 풀리지 않는 침통함이 담겨있었다.하영이 그런 짓을 벌이지만 않았다면, 유준은 절대 그런 식으로 그녀를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유준은 입을 꾹 다문 채 숨을 깊게 들이쉬고 시선을 돌려 마이바흐가 세워져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홀로 서 있는 그의 외로운 자태는 어딘가 쓸쓸해 보였다.하영은 병원으로 옮겨졌다.응급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겨졌을 때 그의 머리와 몸에는 상당히 많은 붕대가 감겨 있었다.상처를 봉합할 때 하영은 고통을 느낄 수 없는지 신음조차 내지 않았고, 심지어 미간조차 찡그리지 않았다.소예준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지만 어떤 식으로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다. 그는 하영이 아직 유준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그러니 정유준의 말은 하영에게 깊은 상처로 돌아왔을 것이다.저녁.우인나는 걱정이 되어 하영을 보러 왔고, 하영이 온몸에 붕대를 감고 힘없이 침대에 누워있는 것을 보고 바로 눈물을 터뜨렸다.“하영아…….”우인나가 흐느끼며 하영의 이름을 불렀다.“얼마나 아팠을까…….”하영은 천천히 눈을 뜨고 우인나 쪽을 바라보더니 애써 미소를 지어 보였다.“울지마.”그러자 인나는 더욱 서럽게 울면서 하영의 손을 꼭 잡았다.“그러니까 여기로 돌아오면 안 된다고 했잖아. 꼴이 이게 다 뭐야.”하영은 손가락을 약간 움직였다.“인나야, 내 부탁 하나만 들어줄 수 있어?”인나는 코를 훌쩍이며 물었다.“뭔데? 얘기해 봐, 꼭 들어줄게.”“나 대신 애들 좀 돌봐줘. 내가 병원에 있는 거 얘기하지 말고, 캐리한테도 알리지 마. 그냥 회사 일만 잘 처리해 달라고 전해줘.”하영이 잠긴
세준은 의자에서 뛰어 내려오며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이모한테 묻고 싶은 게 있으니 위층으로 올라가요.”“그래…….”억지로 세 녀석을 따라 위층으로 올라가자, 인나는 마치 범죄자가 된 기분으로 세 녀석에게 심문당했다.“엄마가 입원하셨는데 왜 거짓말하세요?”세준이 제일 먼저 싸늘한 어조로 묻자, 세희도 울먹이며 입을 열었다.“엄마 보러 가고 싶어요. CCTV로 엄마가 심하게 구타당하는 걸 봤단 말이에요!”희민의 얼굴엔 걱정이 가득 차 있었다.“병원에 엄마 보러 가셨어요?”아이들의 연속된 질문에 인나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였고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괜히 나 난처하게 하지 마. 너희들 걱정할까 봐 비밀로 해달라고 한 거야.”그러자 세준이 피식 웃었다.“그럼 우리가 묻지 않았으면 끝까지 거짓말할 생각이었어요?”“이모, 엄마는 어떻게 됐어요?”희민도 입술을 꾹 깨문 채 우인나의 답을 기다리는 듯 그녀를 뚫어지게 응시했다.“나 참, 너희들 엄마가 누군데? 내가 갔을 때 아주 멀쩡해 보였어! 가벼운 찰과상이고 다른 덴 아무 문제 없어! 지금은 그저 휴식이 필요한 것뿐이니까, 몸조리만 잘하고 집으로 돌아올 거야.”인나는 거짓말을 하며 귀까지 빨개지는 것 같았다.‘이 녀석들이 지금 나를 범죄자 취급하는 거야?’세희는 작은 머리를 축 늘어뜨리며 입을 열었다.“됐어. 엄마는 우리가 걱정하는 걸 싫어하시는 것 같으니까 그냥 모르는 척하는 게 좋겠어.”세준은 굳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이모, 오늘부터 엄마의 건강 상태를 사실대로 보고해 주세요.”인나는 깜짝 놀랐다.‘얼마 만에 저렇게 살가운 목소리로 이모라고 불러주는 거야?’비록 목적이 다분했지만 그래도 꽤 듣기 좋았다.“그래! 알았어. 매일 너희들 대신 하영의 상황을 살펴봐 줄게. 됐지?”“수고해 주세요.”희민도 낮은 소리로 입을 열었고, 인나는 그런 희민의 작은 얼굴을 살짝 꼬집어 줬다.“우리 희민이, 이모한테 뭘 그리 섭섭하게 얘기하고 그래?”그러자 희민은
현욱은 연기로 자욱하게 뒤덮인 응접실로 들어가 유준의 곁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막 상황을 알아보려던 현욱은 유준의 입술 가장자리에 생긴 멍과 붉게 충혈된 두 눈을 보고 침묵을 지키더니, 묵묵히 잔에 술을 따랐다.“혼자서 마시면 재미없잖아. 나랑 같이 마셔.”그리고 유준의 손에 든 잔에 자기 잔을 부딪치고 바로 원샷을 한 뒤, 곧바로 잔을 채우기 시작했다.유준은 그런 현욱을 유심히 주시하더니 한참 뒤에 입을 열었다.“강하영에 관한 것을 물어보려고 온 거지?”현욱은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내가 친구의 생사보다 다른 사람의 생사를 중요하게 여길 것 같아?”그러자 유준이 입꼬리를 올리며 피식 웃었다.“확실히 그건 아니지만, 궁금한 건 못 참는 녀석이지.”“유준아.”현욱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기분이 안 좋은 건 알고 있지만, 그런 식으로 가시 돋친 말로 나 상처 주지 마!”유준은 손에 든 잔을 내려놓고 차분한 눈빛으로 한 곳을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그런 짓을 벌였으니 절대 용서할 수 없어.”“아직도 하영 씨가 언론에 알렸다고 생각해?”현욱의 질문에 유준은 기다란 손가락으로 술잔의 가장자리를 매만졌다.“맞아. 그리고 왜 어머니를 혼자 관람차에 타게 했는지 이해할 수 없어.”그러자 현욱은 혀를 찼다.“유준아, 관람차는 사고야. 설마 그것도 하영 씨가 한 일이라고 의심하는 건 아니지?”유준은 현욱을 힐끔 쳐다봤다.“나 아직 그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아!”그러자 현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것참 다행이네. 아니면 하영 씨는 죽어도 누명을 벗지 못할 거야.’“언제 하영 씨한테 가볼 생각이야?”유준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술잔을 들어 술을 한 모금 마신 뒤 술잔을 내려놓고 입을 열었다.“내일!”그러자 현욱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진심이야? 인나 씨말을 들어보면 하영 씨 지금 상태가 말이 아니라고 하던데.”“내가 알 바 아니지!”유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말을 이었다.“나는 이 일이 가시처
하영은 피식 웃었다.“정유준 씨, 제가 당신 어머니 곁에 있었다고 제가 한 일이에요? 그래서 저한테 좋을 게 뭐가 있는데요? 한 번의 복수로 쾌감을 얻으려고?”“아니면 뭔데?”“저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요! 당신 능력으로 누가 한 짓인지 알아낼 수 없겠어요? 제가 왜 당신한테 미움받을 걸 각오하고 그런 짓을 벌이겠어요?”유준은 하영을 뚫어지게 응시했지만 그녀의 표정은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유준이 아무 말도 없자 하영은 힘없이 입을 열었다.“당신한테 복수할 이유도 없고, 당신도 저한테 미안한 일 한 적 없어요. 5년 전 당신이 양다인 때문에 저를 구하지 않았을 때도 원망한 적 없어요. 그저 당신과 아무 상관 없는 곳으로 멀리 떠나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그 말에 유준의 심장이 갑자기 따끔해 났다.“좋아. 그럼 그 일은 네가 한 짓이 아니라고 치자. 그럼 왜 우리 어머니를 혼자 관람차에 타게 했는데?”그 일이 언급되자 하영의 눈빛이 순간 어두워지더니 자책 가득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미안해요.”“미안하다면 네가 한 잘못이 사라지기라도 해?”유준의 눈빛에 분노가 차오르기 시작했다.“제정신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잖아!”“저도 처음엔 말렸어요. 그런데 이모가 기어이 혼자 올라간다고 해서 직원한테 얘기하는 사이 벌써 올라갔더라고요…….”“내가 그딴 변명을 믿을 것 같아?”유준이 크게 화를 내며 하영의 말을 끊었다.“죽은 사람은 말이 없다는 거 몰라?”하영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유준의 분노에 찬 시선을 똑바로 바라봤다.“그렇게 생각하면서 왜 여기까지 찾아와서 따지는데요?”하영은 더는 성질을 참지 못하고 그동안 억눌린 감정을 전부 쏟아냈다.“제 설명이 당신한테 중요하긴 해요? 대체 어떤 대답이 듣고 싶어서 그래요? 기어이 제가 당신 어머니를 해쳤다는 대답을 들어야 속이 시원해요?”멘탈이 무너진 하영이 고래고래 소리 지르자, 갑자기 유준이 손을 뻗어 하영의 턱을 움켜잡았다.하영의 얼굴을 움켜잡
그때, 아침 식사를 마치고 학교 갈 준비를 하던 애들은 유준을 발견하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고, 인나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정 대표님.”인나의 부름에 유준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고 고개를 끄덕인 다음 다시 희민이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희민아, 가자.”희민은 가방끈을 꽉 쥐고 입을 꾹 다문 채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고, 심지어 시선마저 피했다.유준은 그 모습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희민이 대체 뭘 주저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예전에는 가자고 하기만 하면 바로 따라오던 녀석이 언제부터 불러도 꿈쩍도 안하는 버릇이 생긴 거지?’“정희민!”유준의 말투는 한층 더 차가워졌고, 얼굴에도 불쾌한 기색이 떠올랐다.“소리 지르지 마세요!”세희는 퉁퉁 부은 눈으로 유준을 노려보았다.“매번 나타날 때마다 희민 오빠 데려갔잖아요. 분명 희민 오빠도 우리 엄마 아들인 걸 잘 알면서!”그러자 유준의 눈을 가늘게 떴다.“그게 어떻다는 거지? 보호자가 여기 있으니 정희민의 거취도 내가 정해!”세희는 멍한 표정으로 유준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지만, 유준의 말투에서 좋은 뜻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옷자락을 꽉 쥐고 있던 세희는 하마터면 잊을 뻔했다. 어제 CCTV에서 엄마가 심하게 구타당하고 있을 때 곁에서 구해주지도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유준의 모습을 말이다.‘아빠는 나쁜 사람이니까 절대 좋아하지 않을 거야! 이런 아빠라면 나도 필요 없어!’세희는 용기를 내 희민의 곁으로 종종걸음으로 뛰어갔다.그리고 희민의 손을 덥석 잡은 세희는 예쁜 눈망울로 고개를 들어 정유준을 쏘아봤다.“그게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절대 희민 오빠를 데려갈 수 없어요!”순간 유준의 주변 공기가 서늘해지더니 말투도 한층 더 차갑게 들려왔다.“지금 내 인내심을 테스트하는 건가?”유준의 무서운 기세에 겁에 질린 세희는 작은 몸을 움츠렸다.그리고 눈빛에 두려움이 떠오르더니 머릿속에는 강백만이 그녀의 머리채를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