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요!”희민은 앞으로 다가가 유준의 소매를 잡아당기며 입을 열었다.“어서 가요!”눈앞의 광경을 보고 유준의 얼굴은 점점 저 무서울 정도로 굳어졌다.마치 처음부터 끝까지 어머니를 해친 강하영을 유준이 잘못 비난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참 가식적이란 말이야. 대체 무슨 짓을 했기에 애들이 엄마 말이라면 철석같이 믿는 거지? 우리 어머니를 그렇게 위했다면 왜 혼자서 관람차를 타게 한 거야?’유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시선을 거두고 무서운 얼굴로 별장을 떠났다.차 안으로 돌아온 희민은 실망 가득한 얼굴로 유준을 바라보았다.“엄마는 저 때문에 관람차에 타지 않은 거예요. 제가 고소공포증이 있거든요. 아니면 지금쯤 다 같이 추락했을 거예요!”유준의 검은 눈동자가 순식간에 움츠러들면서, 머릿속에는 희민이 얘기한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하지만 유준은 그래도 믿을 수 없었다!언론에서 어머니가 모욕당한 사실이 공개된 후로 강하영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어버렸다.이틀 뒤.하영은 희민이 전학 간 소식을 듣게 됐지만, 정확히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었다.다행히 머리가 총명했던 희민이 휴대폰으로 하영에게 연락을 취했다.이틀간 푹 휴식하고 나니 하영은 걸을 수 있었고, 몸에 골절이 없는 것을 다행이라고 여겼다.기껏해야 채찍에 맞아 피부와 살갗이 찢어진 정도였다.오늘따라 햇살이 유달리 좋아 간병인이 하영에게 산책이라도 나가지 않겠냐고 묻자, 하영도 동의하고 간병인과 함께 병원 아래에서 천천히 돌아다니며 햇빛 쪼임을 했다.간병인은 하영을 부축해 벤치에 앉게 한 뒤 입을 열었다.“강하영 씨, 오늘 바람도 조금 부는 것 같은데 제가 담요라도 가져다드릴까요?”그러자 하영도 고개를 끄덕였다.“네, 고마워요. 그럼 물컵도 가져다주세요.”“네, 알겠습니다.”간병인이 떠나고, 하영은 따스한 햇살을 향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기분도 조금 차분해지는 느낌이었다.조금 떨어진 곳에서 휠체어에 탄 채 경호원에 의해 밖에서 바람을 쐬고 있던 정주원이 하영
하영은 입술을 달싹이며, “정말 싫어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가 결국 말을 바꿨다.“우리가 잘 아는 사이도 아닌데, 미워할 정도는 아니죠.”“그래요?”정주원은 조금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제 생각이지만 하영 씨는 인터넷에 떠도는 소문을 믿지 않는 것 같네요.”“믿든 안 믿든 무슨 상관이죠?”“다만 정씨 집안이 싫은 건 사실이에요.”그러자 주원의 안색이 약간 어두워졌다.“이유가 뭔지 물어도 될까요?”하영은 살짝 웃으며 눈을 떠 주원을 바라보았다.“제 몸에 있는 상처 안 보여요? 다 당신 아버지 덕분이죠!”그 사실을 전혀 몰랐던 주원은 눈살을 찌푸렸다.“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어요?”하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정창만이 그녀를 오해한 사실을 주원에게 알려주자, 주원은 미안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죄송해요. 아버지가 연세가 좀 많으셔서 일 처리에 있어서 조금 극단적일 수 있어요.”하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주원은 잠시 침묵하다가 잠시 뒤에 입을 열었다.“유준은 하영 씨 보러 안 왔어요? 제가 알기로 두 사람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고 들어서요.”“어차피 와도 싸우기밖에 안 할 텐데, 그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두 사람 예전에…….”“그쪽도 방금 예전이라고 했잖아요!”하영이 주원의 말을 끊었다.“만약 또 그 사람을 언급할 거라면 그만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미안해요. 제가 괜한 얘기를 꺼냈네요.”주원은 눈을 내리깔았다.“제가 이렇게 된 것도 유준이 때문이거든요.”하영은 그를 힐끗 바라보며 떠보듯 물었다.“원망스럽지 않아요?”주원은 쓴웃음을 지었다.“어차피 제 잘못이니, 잘못을 만회할 수 있다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수 있어요.”하영은 속으로 피식 웃었다. 만약 주원이 어떤 사람인지 모르고 있었다면 그의 말을 믿었을지 모른다.겉모습은 온화하고 점잖아 보이지만 실제로는 짐승보다 못 한 인간이다!그렇지 않았다면 지영이 왜 그를 보자마자 당장 뛰어가서 이 악마의 목을 조르지 않고 오히
양다인은 고개를 홱 돌려 누군지 물어보려 할 때 방문이 열리고 소희원이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냐?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었어?”양다인은 바로 부드러운 태도로 안색을 바꿨다.“미안, 방금 통화하느라 못 들었어. 할아버지가 왜?”“무슨 일 있으면 부르지도 못해?”소희원이 코웃음을 치자 양다인은 얼른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아니야. 내려가 할아버지 뵈러 가자.”“그럴 필요 없어!”소희원은 팔짱을 끼고 방문 앞을 막아섰고, 양다인은 그런 희원의 모습을 보고 인내심 있게 물었다.“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라도 있어?”“맞아!”희원은 소파를 바라보며 물었다.“잠깐 들어가도 돼?”그러자 양다인은 몸을 옆으로 비키며 길을 터줬다.“들어와.”희원은 방 안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여전히 도도한 자태를 뽐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다인의 눈빛에 혐오감이 스쳤지만, 억지로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나한테 할 얘기 있어?”“왜 유준 오빠를 속였어?”희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양다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뭘 속였는데?”그러자 희원이 피식 웃었다.“뭐긴 뭐겠어? 감정도 그렇고 아이 일도 그렇고, 설마 모른다고 얘기하진 않겠지?”“그건…….”양다인은 해명하기 시작했다.“예전에 유준 씨를 너무 사랑해서, 나도 모르게 속이고 말았어.”“쌤통이야!”“뭐?”희원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양다인이 다시 되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이제 다 끝난 사이니까 다시는 유준 오빠를 건드리지 마!”그 말에 양다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약간 굳어졌다.양다인은 소희원이 지금 자기한테 와서 유준에게 딴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하러 온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언제부터 내 일에 상관했다고 이러는 거야?’소씨 집안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면, 소희원이 이런 식으로 건방 떠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양다인은 꾹 참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희원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이제 무슨 부탁인지 얘기해 봐.”“정주원 씨를 도와서 주원 씨가 유준 씨 어머니를 모욕했다는 누명을 벗겨줘!”“절대 안 돼!”희원은 생각도 안 해보고 바로 거절했다.“유준 오빠가 난처해지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정유준 씨가 너랑 결혼할 것 같아?”양다인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네가 안 한다고 해도, 유준 씨는 너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할 말은 끝났으니까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 어차피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을 테니까.”그러자 희원은 벌컥 성질을 냈다.“유준 오빠한테 미움받기를 원하는 거 아냐? 절대 안 해!”“정유준을 아버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너!”양다인은 그런 희원을 비꼬자 희원은 양다인을 쏘아보았다.양다인은 얼른 웃는 얼굴로 희원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걱정하지 마. 이번 일만 잘하면 앞으로 소씨 그룹을 통째로 가질 수 있잖아. 절대 소예준한테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나도 회사 일엔 관심 없어.”소희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다인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참 뒤에 그녀에게 물었다.“설마 정주원을 마음에 둔 건 아니겠지?”“맞아!”“앞으로 정씨 집안은 정주원의 것이 될 거야! 그러니 내가 정주원 곁에 있고, 네 아버지도 소씨 그룹을 다시 손에 넣게 된다면, 우리 둘은 앞으로 김제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될 거야!”‘미친년!’희원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타협하는 척했다.“좋아. 일단 우리 아버지를 회사에 복귀시켜 주면 나도 네 부탁 들어줄게!”“알았어!”양다인은 소희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봐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를 회사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건, 똑같이 다시 내쫓을 수 있으니까.그때 희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좋아. 네가 먼저 약속을 지킨 뒤 정주원 씨를 도와줄 방법을 상의해 보자.”소희원은 양다인의 방을 나섰고, 문이 닫히던 순간 그녀의 눈가에 불쾌한 빛
“나도 모르죠!”현욱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얼른 전화 받아봐요.”현욱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았다.“하영 씨, 무슨 일이야?”현욱의 물음에 하영은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 공장에서 갑자기 환불해 주겠다면서 비워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죠!”그 말에 인나와 현욱 두 사람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환불?’인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욱을 쳐다봤고, 현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얼른 하영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럴 리가 없어! 나, 나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배 대표님, 애초에 반년 동안 계약하기로 약속했는데, 신용은 지키셔야죠!”그러자 현욱의 표정이 점점 진지하게 변했다.“자세한 건 내가 회사에 가서 확인해 보고 내일 연락 줄 테니까, 너무 급해하지 마.”“알았어요!”통화가 끝나자 인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현욱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설마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죠?”현욱도 이제 슬슬 지쳤다.“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공장은 현욱 씨가 하영한테 임대해준 것이고, 현욱 씨 공장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화를 내는 인나를 보며 현욱은 속으로 정유준의 가족들에게 따지고 싶었다‘두 사람이 싸우는데 왜 애꿎은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는 거야? 지금 내 신용을 바닥에 짓밟아 버리는 것도 아니고.’헌육은 얼른 인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일단 침착해요. 지금 바로 처리하러 가면 되잖아요.”“최대한 빨리 해결하세요. 아니면 우리는 끝이니까!”말을 마친 뒤 차에서 내린 인나가 문을 쾅 하고 세게 닫아버리자 현욱의 심장마저 떨려왔다.인나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현욱은 차에 시동을 걸며 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지나서야 전화기에서 유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만약 공장 때문에 전화한 거라면 끊어도 좋아.”“정유준!”현욱은 유준의 이름을 다
배현욱이 별장을 뛰쳐나간 뒤 유준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떠올랐다.유준이 증거를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거는 일이 터지기 전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다음날.밤새 증거를 찾은 현욱은 금방 침대에 누웠을 때 인나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현욱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고 전화를 받으려고 했는데 그만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배현욱 씨! 어떻게 됐어요? 어제 밤새 소식이 없더니, 해명 하나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전화기에서 인나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고,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앉은 현욱의 미간엔 피곤이 가득 쌓여있었다.“일단 침착하고 내 얘기부터 들어봐요.”현욱의 잠긴 목소리에 인나의 화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 봐요.”현욱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인나 씨, 우선 사과할게요. 사실 그건 내 공장이 아니에요.”“뭐라고요?”인나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현욱 씨 공장이 아니라니, 처음에 분명 현욱 씨 거라고 했잖아요!”현욱은 더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은 그 기자만 찾으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기자는 진작에 도망쳤는지 종적을 감췄다.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가족들마저 전부 데리고 떠난 모양이었다.마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일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약간의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그건 유준의 공장이에요. 처음부터 정유준이 나한테 그 공장을 하영 씨한테 임대하라고 부탁했거든요.”그러자 인나는 피식 웃었다.“만약 정유준이 환불해 준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한테 이 사실을 평생 숨길 생각이었어요?”“유준의 어머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정유준이 왜 강제로 공장을 비워달라고 하겠어요?”“그게 하영이와 무슨 상관이죠? 이미 충분히 자책하고 있는 애한테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나도 아무 상관 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밤새 단서를 찾아봤어요.”“그래요? 그래서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임 부장, 왜 대답이 없어요?”“완공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캐리는 미간을 찌푸렸다.“한 달이면 많은 건 아니네요. 저쪽 공장 측에서 시간을 일주일 줬는데, 이제 그 나머지 시간이 문제네요!”수진은 침묵을 지켰고, 캐리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들어간 뒤 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하영이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캐리, 공장에 재고는 확인했어?”“물어봤는데 지금은 재고가 아예 없대! 회사 주문량이 지금 너무 많아!”하영은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꾹꾹 눌렀다.주문량이 너무 많이 골치가 아프긴 또 처음이었다.현재 공장 상황에 대해서 현욱한테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캐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누웠다.“G, 언제쯤 돌아올 수 있어? 네가 없으니 불안해.”하영은 자기 몸에 난 상처들을 둘러봤다.“일주일은 걸릴 거야…….”“아직도 일주일이나 걸려? 공장 사장과는 연락해 봤어? 뭐라고 얘기해?”“아직 소식이 없어.”“젠장!”캐리는 저도모르게 욕설을 퍼부었다.“지금 우리랑 장난해?”“그런 건 아닐 거야.”하영은 나름 분석하기 시작했다.“계약서에 분명 위약금은 3배라고 적혀 있거든. 우리를 갖고 놀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팔 수는 없겠지.”“그렇다면 우리랑 해보자는 거네!”캐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맞아. 공장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일주일만 시간을 줄 수 있다고 했지?”“그래! 그런데 일주일 안에 공장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줄 알아? 지금 우리 원단은 완전히 자급자족 상태인데 공장을 찾으려면 반드시 방직 라인과 의류 생산 라인을 같이 찾아야 하잖아!”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알았어.”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또다시 몸에 감겨있는 붕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휴대폰을 꺼내 다른 의류 공장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 할 때,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강하
비에파 회사의 의류 공장은 김제에서 세 번째로 큰 공장으로, 생산 속도도 빠른 동시에 방직 라인도 갖추고 있었다.그러니 오늘 밤 반드시 구만욱에게 도움을 요청해 이번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오후 4시.하영은 간병인에게 옷장 안에 옷을 전부 꺼내달라고 했고, 간병인은 하영이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며 물었다.“강하영 씨, 몸이 채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퇴원하시려고요?”“네, 잠시 일 때문에 나가봐야 하거든요. 만약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면 집에 뭐 좀 가지러 갔다고 전해 주세요.”“꼭 가야 해요?”간병인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상처가 벌어지게 되면 다시 꿰매야 할지도 몰라요.”그러자 하영이 가볍게 웃었다.“그냥 접대일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접대요? 강하영 씨,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돼요!”“네, 안심하세요. 저도 속에 숫자가 있어요.”간병인은 하영이 결심을 굳힌 것을 보고 더 얘기를 하지 않았고, 하영이 옷을 갈아입고 병실을 나선 뒤에야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소예준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간병인도 더 신경쓰지 않았다.하영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니 똑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던 중주원을 마주쳤다.주원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물었다.“벌써 퇴원해도 괜찮아요?”하영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네.”“보아하니 퇴원 수속도 밟지 않고 몰래 빠져나가는 모양이네요.”하영은 눈은 웃지 않고 입꼬리만 올린 채 주원을 바라보았다.“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 같네요.”그러자 주원이 미소를 지어보였다.“같이 입원해 있는 동료 환자지간의 관심이라고 해두죠.”“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그쪽 상처가 저보다 더 심해 보이거든요.”“지금 제 상처를 걱정해 주는 겁니까?”“아뇨. 그냥 얘기해 본 거예요.”“강하영 씨는 정말 직설적이네요.”“모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나눠줄 정도로 여유롭지 못 해서요.”하영의 말이 끝나자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주원은 손을 들었다.“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