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인은 고개를 홱 돌려 누군지 물어보려 할 때 방문이 열리고 소희원이 그녀의 방문 앞에 서서 불쾌한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냐? 할아버지가 몇 번이나 불렀는데 못 들었어?”양다인은 바로 부드러운 태도로 안색을 바꿨다.“미안, 방금 통화하느라 못 들었어. 할아버지가 왜?”“무슨 일 있으면 부르지도 못해?”소희원이 코웃음을 치자 양다인은 얼른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아니야. 내려가 할아버지 뵈러 가자.”“그럴 필요 없어!”소희원은 팔짱을 끼고 방문 앞을 막아섰고, 양다인은 그런 희원의 모습을 보고 인내심 있게 물었다.“나한테 하고 싶은 얘기라도 있어?”“맞아!”희원은 소파를 바라보며 물었다.“잠깐 들어가도 돼?”그러자 양다인은 몸을 옆으로 비키며 길을 터줬다.“들어와.”희원은 방 안에 들어와 소파에 앉아 여전히 도도한 자태를 뽐냈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양다인의 눈빛에 혐오감이 스쳤지만, 억지로 웃으며 앞으로 다가갔다.“나한테 할 얘기 있어?”“왜 유준 오빠를 속였어?”희원이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양다인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내가 뭘 속였는데?”그러자 희원이 피식 웃었다.“뭐긴 뭐겠어? 감정도 그렇고 아이 일도 그렇고, 설마 모른다고 얘기하진 않겠지?”“그건…….”양다인은 해명하기 시작했다.“예전에 유준 씨를 너무 사랑해서, 나도 모르게 속이고 말았어.”“쌤통이야!”“뭐?”희원이 낮은 소리로 중얼거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양다인이 다시 되물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어차피 이제 다 끝난 사이니까 다시는 유준 오빠를 건드리지 마!”그 말에 양다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약간 굳어졌다.양다인은 소희원이 지금 자기한테 와서 유준에게 딴마음 품지 말라고 경고하러 온 곳이라는 것을 깨달았다.‘언제부터 내 일에 상관했다고 이러는 거야?’소씨 집안사람들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다면, 소희원이 이런 식으로 건방 떠는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았을 것이다.양다인은 꾹 참으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희원은 다시 소파에 앉았다.“이제 무슨 부탁인지 얘기해 봐.”“정주원 씨를 도와서 주원 씨가 유준 씨 어머니를 모욕했다는 누명을 벗겨줘!”“절대 안 돼!”희원은 생각도 안 해보고 바로 거절했다.“유준 오빠가 난처해지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아!”“정유준 씨가 너랑 결혼할 것 같아?”양다인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네가 안 한다고 해도, 유준 씨는 너 신경 쓰지 않아! 어차피 할 말은 끝났으니까 돌아가서 잘 생각해 봐. 어차피 잃는 것보다 얻는 게 더 많을 테니까.”그러자 희원은 벌컥 성질을 냈다.“유준 오빠한테 미움받기를 원하는 거 아냐? 절대 안 해!”“정유준을 아버지보다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너!”양다인은 그런 희원을 비꼬자 희원은 양다인을 쏘아보았다.양다인은 얼른 웃는 얼굴로 희원의 곁에 앉아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걱정하지 마. 이번 일만 잘하면 앞으로 소씨 그룹을 통째로 가질 수 있잖아. 절대 소예준한테 돌아가는 일은 없을 거야. 물론 나도 회사 일엔 관심 없어.”소희원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양다인을 빤히 쳐다보더니, 한참 뒤에 그녀에게 물었다.“설마 정주원을 마음에 둔 건 아니겠지?”“맞아!”“앞으로 정씨 집안은 정주원의 것이 될 거야! 그러니 내가 정주원 곁에 있고, 네 아버지도 소씨 그룹을 다시 손에 넣게 된다면, 우리 둘은 앞으로 김제에서 아무도 건드릴 수 없는 위치에 서게 될 거야!”‘미친년!’희원은 속으로 욕설을 퍼부었지만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일부러 타협하는 척했다.“좋아. 일단 우리 아버지를 회사에 복귀시켜 주면 나도 네 부탁 들어줄게!”“알았어!”양다인은 소희원이 약속을 지키지 않을까 봐 두렵지 않았다. 그녀의 아버지를 회사로 복귀시킬 수 있다는 건, 똑같이 다시 내쫓을 수 있으니까.그때 희원이 자리에서 일어났다.“좋아. 네가 먼저 약속을 지킨 뒤 정주원 씨를 도와줄 방법을 상의해 보자.”소희원은 양다인의 방을 나섰고, 문이 닫히던 순간 그녀의 눈가에 불쾌한 빛
“나도 모르죠!”현욱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혹시 무슨 일 생긴 건 아닌지 얼른 전화 받아봐요.”현욱은 알았다고 대답한 뒤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았다.“하영 씨, 무슨 일이야?”현욱의 물음에 하영은 애써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입을 열었다.“배 대표님, 공장에서 갑자기 환불해 주겠다면서 비워달라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주시죠!”그 말에 인나와 현욱 두 사람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환불?’인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현욱을 쳐다봤고, 현욱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아 얼른 하영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그럴 리가 없어! 나, 나는 한 번도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 없어!”“배 대표님, 애초에 반년 동안 계약하기로 약속했는데, 신용은 지키셔야죠!”그러자 현욱의 표정이 점점 진지하게 변했다.“자세한 건 내가 회사에 가서 확인해 보고 내일 연락 줄 테니까, 너무 급해하지 마.”“알았어요!”통화가 끝나자 인나는 아랫입술을 꾹 깨물며 현욱을 뚫어져라 쳐다봤다.“설마 이 사실을 몰랐다고 하지는 않겠죠?”현욱도 이제 슬슬 지쳤다.“나는 정말 모르는 일이에요!”“공장은 현욱 씨가 하영한테 임대해준 것이고, 현욱 씨 공장이라고 얘기했잖아요. 그런데 이제 와서 모른다는 게 말이 돼요?”화를 내는 인나를 보며 현욱은 속으로 정유준의 가족들에게 따지고 싶었다‘두 사람이 싸우는데 왜 애꿎은 나한테까지 불똥이 튀는 거야? 지금 내 신용을 바닥에 짓밟아 버리는 것도 아니고.’헌육은 얼른 인나를 다독이기 시작했다.“일단 침착해요. 지금 바로 처리하러 가면 되잖아요.”“최대한 빨리 해결하세요. 아니면 우리는 끝이니까!”말을 마친 뒤 차에서 내린 인나가 문을 쾅 하고 세게 닫아버리자 현욱의 심장마저 떨려왔다.인나가 집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현욱은 차에 시동을 걸며 유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참 지나서야 전화기에서 유준의 낮게 깔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만약 공장 때문에 전화한 거라면 끊어도 좋아.”“정유준!”현욱은 유준의 이름을 다
배현욱이 별장을 뛰쳐나간 뒤 유준의 얼굴에 차가운 조소가 떠올랐다.유준이 증거를 찾아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증거는 일이 터지기 전날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다음날.밤새 증거를 찾은 현욱은 금방 침대에 누웠을 때 인나한테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현욱은 현재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잠시 생각해 보고 전화를 받으려고 했는데 그만 손가락이 미끄러지며 통화버튼을 누르고 말았다.“배현욱 씨! 어떻게 됐어요? 어제 밤새 소식이 없더니, 해명 하나 하는 게 그렇게 어려워요?”전화기에서 인나의 고함소리가 울려 퍼졌고, 머리를 긁적이며 일어나 앉은 현욱의 미간엔 피곤이 가득 쌓여있었다.“일단 침착하고 내 얘기부터 들어봐요.”현욱의 잠긴 목소리에 인나의 화도 조금은 누그러졌다.“어떻게 된 건지 얘기해 봐요.”현욱은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입을 열었다.“인나 씨, 우선 사과할게요. 사실 그건 내 공장이 아니에요.”“뭐라고요?”인나가 새된 소리를 질렀다.“현욱 씨 공장이 아니라니, 처음에 분명 현욱 씨 거라고 했잖아요!”현욱은 더 숨기고 싶지 않았다. 이번 일은 그 기자만 찾으면 해결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 기자는 진작에 도망쳤는지 종적을 감췄다.휴대폰 번호도 바꾸고 가족들마저 전부 데리고 떠난 모양이었다.마치 배후에 보이지 않는 손이 이 일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약간의 단서도 찾을 수 없었다.“그건 유준의 공장이에요. 처음부터 정유준이 나한테 그 공장을 하영 씨한테 임대하라고 부탁했거든요.”그러자 인나는 피식 웃었다.“만약 정유준이 환불해 준다고 하지 않았으면, 나한테 이 사실을 평생 숨길 생각이었어요?”“유준의 어머니한테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정유준이 왜 강제로 공장을 비워달라고 하겠어요?”“그게 하영이와 무슨 상관이죠? 이미 충분히 자책하고 있는 애한테 대체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나도 아무 상관 없다는 거 알고 있어요. 그래서 밤새 단서를 찾아봤어요.”“그래요? 그래서 알아낸 거라도 있어요?”
“임 부장, 왜 대답이 없어요?”“완공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릴 거예요.”그러자 캐리는 미간을 찌푸렸다.“한 달이면 많은 건 아니네요. 저쪽 공장 측에서 시간을 일주일 줬는데, 이제 그 나머지 시간이 문제네요!”수진은 침묵을 지켰고, 캐리도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무실에 들어간 뒤 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마자 하영이 다급한 어조로 물었다.“캐리, 공장에 재고는 확인했어?”“물어봤는데 지금은 재고가 아예 없대! 회사 주문량이 지금 너무 많아!”하영은 머리가 지끈거려 미간을 꾹꾹 눌렀다.주문량이 너무 많이 골치가 아프긴 또 처음이었다.현재 공장 상황에 대해서 현욱한테서 지금까지도 연락이 없으니 이제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캐리는 의자에 등을 기대며 누웠다.“G, 언제쯤 돌아올 수 있어? 네가 없으니 불안해.”하영은 자기 몸에 난 상처들을 둘러봤다.“일주일은 걸릴 거야…….”“아직도 일주일이나 걸려? 공장 사장과는 연락해 봤어? 뭐라고 얘기해?”“아직 소식이 없어.”“젠장!”캐리는 저도모르게 욕설을 퍼부었다.“지금 우리랑 장난해?”“그런 건 아닐 거야.”하영은 나름 분석하기 시작했다.“계약서에 분명 위약금은 3배라고 적혀 있거든. 우리를 갖고 놀기 위해 그렇게 많은 돈을 팔 수는 없겠지.”“그렇다면 우리랑 해보자는 거네!”캐리가 이를 악물며 말했다.“맞아. 공장에서 찾아온 사람들이 일주일만 시간을 줄 수 있다고 했지?”“그래! 그런데 일주일 안에 공장을 찾는 게 그리 쉬운 줄 알아? 지금 우리 원단은 완전히 자급자족 상태인데 공장을 찾으려면 반드시 방직 라인과 의류 생산 라인을 같이 찾아야 하잖아!”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입을 열었다.“그래.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알았어.”전화를 끊은 뒤 하영은 또다시 몸에 감겨있는 붕대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가, 휴대폰을 꺼내 다른 의류 공장 사장한테 전화를 걸어 물어보려 할 때, 낯선 전화가 걸려왔다.“여보세요.”“강하
비에파 회사의 의류 공장은 김제에서 세 번째로 큰 공장으로, 생산 속도도 빠른 동시에 방직 라인도 갖추고 있었다.그러니 오늘 밤 반드시 구만욱에게 도움을 요청해 이번 난관을 헤쳐 나가야 한다.오후 4시.하영은 간병인에게 옷장 안에 옷을 전부 꺼내달라고 했고, 간병인은 하영이 옷을 갈아입는 걸 도와주며 물었다.“강하영 씨, 몸이 채 회복되지도 않았는데 퇴원하시려고요?”“네, 잠시 일 때문에 나가봐야 하거든요. 만약 의사 선생님이 묻는다면 집에 뭐 좀 가지러 갔다고 전해 주세요.”“꼭 가야 해요?”간병인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상처가 벌어지게 되면 다시 꿰매야 할지도 몰라요.”그러자 하영이 가볍게 웃었다.“그냥 접대일 뿐이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접대요? 강하영 씨, 술은 절대 마시면 안 돼요!”“네, 안심하세요. 저도 속에 숫자가 있어요.”간병인은 하영이 결심을 굳힌 것을 보고 더 얘기를 하지 않았고, 하영이 옷을 갈아입고 병실을 나선 뒤에야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다.그런데 소예준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간병인도 더 신경쓰지 않았다.하영이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했고, 문이 열리니 똑같이 아래층으로 내려가고 있던 중주원을 마주쳤다.주원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이내 웃으며 물었다.“벌써 퇴원해도 괜찮아요?”하영은 엘리베이터에 들어서며 무덤덤하게 대답했다.“네.”“보아하니 퇴원 수속도 밟지 않고 몰래 빠져나가는 모양이네요.”하영은 눈은 웃지 않고 입꼬리만 올린 채 주원을 바라보았다.“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것 같네요.”그러자 주원이 미소를 지어보였다.“같이 입원해 있는 동료 환자지간의 관심이라고 해두죠.”“고맙지만 사양할게요. 그쪽 상처가 저보다 더 심해 보이거든요.”“지금 제 상처를 걱정해 주는 겁니까?”“아뇨. 그냥 얘기해 본 거예요.”“강하영 씨는 정말 직설적이네요.”“모르는 사람에게 관심을 나눠줄 정도로 여유롭지 못 해서요.”하영의 말이 끝나자 마침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고, 주원은 손을 들었다.“
현욱은 사진을 다시 서류 봉투에 넣은 뒤 천천히 손을 내렸다.“미안. 이 일엔 더 이상 관여하지 않을게.”현욱은 유준의 입장에서 고려해 봐야 했다.만약 이 일이 현욱한테 일어났다면, 어쩌면 그도 인나를 의심했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자기 어머니의 참혹한 모습을 지켜봤을 유준의 심정이 어땠을지 감히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다.자신의 친어머니가 눈앞에서 피투성이 된 채 죽어있다면, 누구라도 이성을 잃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유준은 서랍을 잠근 뒤 자리에서 일어나 시계를 확인했다.“또 할 얘기 있어?”“너랑 점심 같이 먹으려고 했지. 어디 나가려고?”“접대가 있으니 그만 돌아가 봐.”“그래, 알았다.”5시 30분.하영은 블랑제리 레스토랑 아래에 도착했다.올라가기 전 하영은 인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혹시라도 접대가 늦어져 애들과 전화통화하기로 약속한 시간에 맞출 수 없을지도 모르니까.인나가 우울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았다.“하영아.”하영은 인나의 목소리가 이상한 것을 눈치 채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목소리가 왜 그래?”인나는 약간 자책하는 하는 것 같았다.“하영아, 무슨 얼굴로 너를 대해야 할지 모르겠어. 공장에 대한 사실 나도 들었어. 그게 MK의 의류 공장이래.”혹시 인나에게 무슨 일 생긴 건 아닐까 걱정했던 하영은 그제야 안도하며 위로를 건넸다.“걱정할 필요 없어. 위약금 받아내서 다른 공장을 찾으면 한 달은 충분히 버틸 수 있어.”“진짜야?”“그럼.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애들은? 곁에 있어?”다급히 묻는 인나의 말에 하영이 웃으며 답해줬다.“금방 유치원에서 돌아왔어. 잠깐 바꿔줄까?”그러자 하영은 시간을 다시 확인했다.“응, 몇 마디만 할게.”인나는 계단 입구에서 위층을 향해 소리쳤다.“세희야, 세준아. 엄마한테서 전화왔어!”곧 전화기 너머로 애들이 급하게 계단을 뛰어내려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엄마!”울먹이는 세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엄마, 보고 싶어요.”세준도 곁에서 한 마디 보탰다.“엄마
하영이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그 모습을 마침 유준과 허시원이 보게 됐다는 것이다.허시원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방금 저 분 강하영 씨 같은데요.”“그래.”유준은 약간 어두운 눈빛으로 대답했다.“강하영 씨 지금 입원 중인 거 아니었어요? 왜 여기로 온 거죠? 지금 몸상태로 술을 드시면 안 될텐데.”허시원이 질문을 늘어놓자 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한 눈으로 시원을 쳐다봤다.“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지 그래?”시원은 그제야 괜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유준은 그대로 하영의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같은 시각, 303호 룸.하영은 구만욱과 악수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구 사장님, 제가 사장님이 좋아할만한 술을 가져왔어요.”하영은 술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웨이터에게 술을 열어달라고 하자, 구만욱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역시 강 대표는 시원시원하다니까. 이 술은 내가 평소에 아까워서 마시지 못 하던 술이었는데.”그러자 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구 사장님은 농담도 잘 하신다니까요. 사모님한테 들었는데 캐비닛에 좋은 술이 참 많다고 하던데요.”‘사모님’이란 단어에 구만욱의 웃는 얼굴이 조금 부자연스러워졌다.“그냥 전업주부가 뭘 알겠어요?”웨이터가 술 두껑을 따주자 하영은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구만욱에게 술을 따랐다.“구 사장님, 간만에 뵙는데 제가 방금 말실수를 한 것 같네요. 부디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하영은 일부러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구만욱은 김제에서도 변태로 명성이 자자했으니까.당신 아내의 연락처도 갖고 있으니 너무 지나치게 굴지 말라고 경고하는 셈이었다.구만욱은 하영이 직접 술까지 따라주며 좋은 태도를 보이자 웃으며 답했다“이런 사소한 일로 내가 강 대표한테 화 낼 것 같습니까?”말을 하며 구만욱은 자기 손을 술잔을 건네던 하영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안 그래요?”그러자 하영의 몸이 살짝 굳더니 교묘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