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모르고 있었던 사실은 그 모습을 마침 유준과 허시원이 보게 됐다는 것이다.허시원은 잠시 놀란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대표님, 방금 저 분 강하영 씨 같은데요.”“그래.”유준은 약간 어두운 눈빛으로 대답했다.“강하영 씨 지금 입원 중인 거 아니었어요? 왜 여기로 온 거죠? 지금 몸상태로 술을 드시면 안 될텐데.”허시원이 질문을 늘어놓자 유준은 미간을 찌푸리고 불쾌한 눈으로 시원을 쳐다봤다.“그렇게 궁금하면 직접 가서 물어보지 그래?”시원은 그제야 괜한 말을 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시선을 거두었다.“죄송합니다, 대표님.”유준은 그대로 하영의 건너편 방으로 들어갔다.같은 시각, 303호 룸.하영은 구만욱과 악수를 한 뒤 자리에 앉았다.“구 사장님, 제가 사장님이 좋아할만한 술을 가져왔어요.”하영은 술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웨이터에게 술을 열어달라고 하자, 구만욱은 눈을 반짝이기 시작했다.“역시 강 대표는 시원시원하다니까. 이 술은 내가 평소에 아까워서 마시지 못 하던 술이었는데.”그러자 하영은 웃으며 대답했다.“구 사장님은 농담도 잘 하신다니까요. 사모님한테 들었는데 캐비닛에 좋은 술이 참 많다고 하던데요.”‘사모님’이란 단어에 구만욱의 웃는 얼굴이 조금 부자연스러워졌다.“그냥 전업주부가 뭘 알겠어요?”웨이터가 술 두껑을 따주자 하영은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구만욱에게 술을 따랐다.“구 사장님, 간만에 뵙는데 제가 방금 말실수를 한 것 같네요. 부디 기분 상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하영은 일부러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구만욱은 김제에서도 변태로 명성이 자자했으니까.당신 아내의 연락처도 갖고 있으니 너무 지나치게 굴지 말라고 경고하는 셈이었다.구만욱은 하영이 직접 술까지 따라주며 좋은 태도를 보이자 웃으며 답했다“이런 사소한 일로 내가 강 대표한테 화 낼 것 같습니까?”말을 하며 구만욱은 자기 손을 술잔을 건네던 하영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안 그래요?”그러자 하영의 몸이 살짝 굳더니 교묘하게
그런데 구만욱의 손은 하영의 어깨를 천천히 쓰다듬기 시작했다.“강 대표님, 나는 말이죠 기분 좋게 술을 마신 뒤에 사업 얘기를 하는 걸 좋아하거든요.”그 뜻을 모를 리 없는 하영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그녀가 술에 취하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원하는 바를 이루게 되면 그 어떤 부탁도 다 들어주겠지.하영은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구 사장님도 저희 회사 사정을 잘 알고 계실 거예요. 지금 제 사정은 공장이 아직 완공되지 않은 것입니다. 구 사장님도 겪어봐서 아실 테지만 문제에 부딪치게 되면 해결하기 얼마나 어려운지 잘 아시잖아요. 이번만 함께 일하게 되면 앞으로 서로 돕고 발전할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 좋은 기회 아닐까요?”구만욱은 하영의 어깨에 걸친 손을 조금씩 움직이더니 웃음을 터뜨렸다.“강 대표님, 우리 회사는 지금 아주 순조롭게 잘 돌아가고 있어요. 문제에 부딪친 건 내가 아니라 강 대표잖아요.”구만욱이 하영의 곁으로 바짝 붙어 하영의 얼굴에 술냄새를 풍겼다.그는 손을 뻗어 하영의 들어올렸는데, 눈빛에 드리운 욕망의 빛이 서서히 강해지기 시작했다.“부탁을 하려면 그럴 듯하게 해야죠.”하영의 눈빛이 서늘하게 식어갔다.“구 사장님께서 함께 일할 의사가 없으시면…….”쾅!하영의 말이 채 끝나기 전에 누군가 방 문을 세게 걷어찼다.두 사람이 깜짝 놀라 고개를 쳐들자, 유준이 싸늘한 기운을 풍기며 그들을 향해 다가오기 시작했다.구만욱은 잠시 멍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손을 거두고 자리에서 일어섰다.“정, 정 대표님? 대표님께서 왜 여기…….”구만욱의 말이 끝나기 전에 유준은 그의 멱살을 잡고 얼굴에 주먹을 꽂았다.하영은 깜짝 놀라 토끼 눈이 되었고, 정유준이 대체 왜 이곳에 나타났는지 미처 상황을 파악하기 전에 유준은 또 발을 들어 구만욱의 배를 세게 걷어찼다.구만욱은 고통스러운지 연신 소리질렀다.“정 대표님! 할 말이 있으면 좋게 얘기로 하시죠. 제발 때리지 마세요!”유준은 곁눈질로 허시원을 향해 입을
유준의 마음이 어쩐지 조금 풀리기 시작했다.“내 어머니 일에 대해서, 아직 설명하지 않았잖아!”“설명이요?”하영은 피식 웃었다.“좋아요! 해드리죠!”하영은 유준을 향해 턱을 쳐들더니 그의 손바닥을 끌어다 자기 목에 올려놓았다.“설명은 여기 있으니까 원하면 가져가세요!”손끝으로 하영의 뜨거운 체온이 느껴지자 유준의 침울한 눈동자가 가늘어지기 시작했다.“강하영, 나 자극하지 마!”“자극?”하영의 목소리는 약간 떨리고 있었다.“그렇게 한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니잖아요! 정유준 씨, 그렇게 제가 한 짓이라고 단정한다면 차라리 저를 죽여요! 내 목숨따위 필요없다는 얘기는 그만하고! 몇 번이고 당신한테 의심받을 바에야 차라리 당신 손으로 죽여서 어머니 옆에 보내지 그래요? 제가 당신 어머니를 해쳤다고 직접 인정하길 원하시잖아요. 잘 들어요.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 됐어요? 제가 일부러 당신한테 복수하려고 당신 어머니를 해친 거라구요. 당신이 괴로움에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요. 이제 만족해요?”하영은 말끝마다 유준을 자극하고 있었다. 그녀는 더 이상 유준이 몇 번이고 그의 어머니를 언급하는 것을 견딜 수 없었기 때문이다.하영의 심리적 스트레스는 그의 어머니가 돌아간 뒤에도 전혀 나아진 적이 없었다. 그녀도 이제 지쳤으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닥쳐!”유준은 당장이라도 하영의 목을 조르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손을 거두어 들이려 했지만, 하영이 그런 그의 손을 꽉 잡았다.어쩌면 취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하영은 이때 거의 이성을 잃은 듯 했다.“정유준 씨, 차라리 절 죽여줘요!”화가 잔뜩 나 있는 유준의 눈은 점점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닥쳐! 닥치라고 했잖아!”“어차피 저한테 믿음이 없잖아요. 그럼 이렇게 괴롭히지 말고 통쾌하게 죽여주세요!”하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유준을 향해 실망스럽다는 듯 소리질렀다.이어 유준의 손이 움츠러 들더니 빠르게 하영의 목을 잡아 당긴 뒤, 고개를 숙여 그녀의 입술을 깨물었다.한차례
소예준은 3층에 도착하자마자 303호로 향하고 있는데, 다른 방에서 책상에 엎드린 채 쓰러져 있는 하영을 발견하고 얼른 겉옷을 벋어 하영의 몸에 덮어주었다.하영은 깜짝 놀라 벌떡 일어났다가 소예준을 보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돌렸다.하영은 퉁퉁 부은 눈을 숨기려 했지만 결국 예준의 눈에 띄고 말았다.“하영아, 왜 울었어?”예준이 몸을 숙이고 묻자 하영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거짓말을 했다.“상처가 벌어져서 너무 아파서 울었어.”하영은 정유준을 언급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면 예준이 또 당장 유준을 찾아가 싸울지도 모른다.하영의 말에 예준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가자, 병원에 데려다 줄게. 다음부터 무슨 일이 있든 말도 없이 빠져 나오면 안 돼.”예준의 말투는 부드러웠지만 그 속엔 절대 거절할 수 없다는 뜻이 담겨 있었다.“알았어.”하영이 몸을 일으키며 대답했다.소씨 집안.양다인은 저녁 식사를 마친 뒤 소백중을 끌고 함께 바둑을 두자고 했다.그러자 소백중은 껄껄 웃으며 물었다.“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불어서 나랑 바둑을 두려는 게야?”양다인은 소백중에게 차를 따라주며 약간 쓸쓸한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할아버지, 죄송해요. 그동안 제가 걱정 많이 끼쳐드렸죠? 차라리 할아버지께 폐를 끼쳐드리기 보다 국제 아파트로 돌아가 지내려고요.”소백중은 그 말에 깜짝 놀랐다.“얘가 지금 무슨 소리르 하는 거야? 집에 지낼 곳도 많고 돌봐줄 사람도 있는데 왜 굳이 나가서 살겠다는 거야?”양다인은 차를 따라 소백중 앞으로 내밀었다.“할아버지, 저는 그저 짐덩이잖아요.”“네가 왜 짐덩이라는 거야?”소백중은 이내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설마 또 누가 너 괴롭혔어?”그러자 양다인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제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소백중이 굳은 표정으로 찻잔을 내려놓자 양다인은 고개를 푹 숙였다.“할아버지, 삼촌네 식구들이 금방 돌아왔는데, 저를 반기지 않는 것 같아서요. 오빠가 지금 회사
소백중은 약간 의외라는 얼굴로 양다인을 힐끗 쳐다보며 흡족하다는 눈빛을 하고 있었다.소진호도 양다인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며 따로 고맙다는 인사를 더 전하지 않았다.이번 일은 이렇게 결정되고 부부는 소백중과 몇 마디 더 나눈 뒤 방으로 돌아갔고, 그때 소희원이 방문을 열며 물었다.“아빠, 방금 양다인이 불러서 무슨 얘기 했어요?”소진호는 복도를 한번 살핀 뒤 문을 닫고 대답했다.“양다인이 할아버지한테 나 회사로 복귀시켜달라고 하더구나.”그 말에 소희원은 깜짝 놀랐다.‘양다인의 몇 마디 말에 해결될 문제였다고?’서민희도 의자에 앉으며 약간 어두운 표정을 지었다.“여보,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생각해요?”“글쎄, 난 여전히 그 애가 내 동생의 딸이라는 생각이 안 들어!”“아빠, 할아버지도 인정하셨고, 친자확인도 다 했는데 두 분이 아니라고 생각하셔도 소용없잖아요!”서민희는 바보 같은 딸을 보며 입을 열었다.“희원아, 너는 괜히 이번 일에 끼어들지 말고 어서 네 방으로 돌아가.”소희원은 입술을 달싹이며 뭐라고 얘기하려다가, 그저 고개를 끄덕인 뒤 방으로 돌아갔다.문을 닫은 뒤 소진호가 자리에 앉으며 입을 열었다.“여동생은 생전에 고지식한 성격이라 말을 빙빙 돌려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어. 게다가 어떤 일로 누구에게 비위를 맞춰주는 법도 없었는데, 양다인 저 아이의 성격은 내 여동생이랑은 완전히 달라!”서민희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쳤다.“네, 그래도 이번에 어렵게 회사로 복귀하게 됐으니 반드시 예준이를 도와 회사 일을 잘 처리해 줘요. 어쨌든 우리가 빚진 건 사실이니까요. 우리가 제때 아버님을 말렸으면 아가씨와 서방님도 그렇게 목숨을 잃지 않았을 거예요.”소진호는 서민희의 손등을 다독였다.“양다인이 저렇게까지 호의를 보이는데, 우리도 그럴듯하게 대응해 줘야겠지.”“알았어요. 당신은 안심하고 회사 일에 집중해요. 양다인은 집에서 내가 잘 지켜보고 있을게요. 만약 소씨 집안의 재산을 노릴 것 같으면 바로 당신한테 얘기할게요.”“그
전화를 끊은 뒤에도 하영 마음의 의구심은 여전히 풀리지 않았다.그때 마침 예준이 화장실에서 나왔고, 하영은 잠시 고민하다가 이 사실을 그에게 알렸다.소예준은 자리에 앉으며 웃는 얼굴로 하영을 바라보았다.“네 생각은 어떤데?”“나도 잘 모르겠어. 만약 내가 수진 씨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내가 수진 씨를 못 믿는 것처럼 보이잖아.”소예준도 고개를 끄덕였다.“이상한 점을 못 찾겠으면 차라리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어때? 다만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건, 수진 씨는 일 처리에 있어서 늘 신중한 편이잖아. 이번에 너를 도와 찾은 공장엔 문제가 없을 테니까 안심해도 될 것 같아.”강하영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그래, 알았어. 일단 그렇게 해야겠어.”예준은 휴지를 뽑아 손을 닦았다.“하영아, 삼촌 만나 보고 싶지 않아?”그 말에 하영은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삼촌?”“그래. 삼촌네 부부가 금방 귀국하셨는데 만약 네가 아영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 분명 기뻐하실 거야.”예준의 말에 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오빠, 나 아직은 친척들을 대면할 생각 없어. 오빠만 있으면 충분하거든.”예준은 더 이상 설득하지 않았고, 간병인이 도시락을 챙겨 오자 그제야 병실을 떠났다.다음날.하영이 금방 아침 식사를 마쳤을 때 누군가 병실 문을 두드렸다.간병인이 문을 열자, 허시원이 서류를 든 채 서 있었다.“강하영 씨.”허시원이 병실에 들어서며 하영을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하영은 자신의 병실에 나타난 허시원을 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허 비서님이 무슨 일이죠?”“이것 때문입니다.”허시원은 손에 든 서류를 하영에게 건넸다.“사실 어제 일 때문에 대표님께서 적당한 의류 공장을 찾으라고 당부하셨거든요. 이건 계약서입니다.”하영은 계약서를 힐끗 쳐다보고 건네받지 않았다.“허 비서님, 공장이라면 이미 찾았으니 도움은 필요 없어요.”하영의 말에 허시원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하지만 강하영 씨는 어젯밤…….”하영은 그저 웃었다.“저도 회사
“당신이 이기면 어떤 요구든 들어줄 수 있어요. 물론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너무 무리하지 않다면 말이죠.”존슨이 유준의 말을 끊자 그가 물었다.“그럼 여사님의 요구는 뭡니까?”“저는 별다른 요구 없어요. 그저 당신의 마지막 요구가 궁금할 뿐이죠. 그래서 꼭 이겼으면 좋겠으니 기대하고 있을게요.”말을 마친 존슨은 전화를 끊었다.흔히 자신만만한 사람은 꼭 이긴다는 법은 없다고 생각하며 유준은 피식 웃었다.예전엔 그저 존슨을 통해 캐리를 회사에 데려오려 했지만 지금 존슨의 역할이 캐리보다 더 컸다.캐리가 MK로 넘어온다고 해도 꼭 유준을 위해 열심히 일하리란 보장도 없는데, 굳이 그럴 필요가 있겠는가?같은 시각.존슨은 정유준과의 통화를 끝내고 바로 하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영은 그때 마침 휴대폰을 보고 있었는데 존슨이 전화를 걸어오자 바로 받았다.“스승님.”존슨은 하품을 하며 입을 열었다.“자기, 나 내일 김제로 갈 거니까 방 잡아줘.”그러자 하영이 웃으며 답했다.“그건…….”“참!”하영의 말을 채 꺼내기도 전에 존슨이 또 말을 이었다.“방금 정말 재미있는 일이 있었는데. 나한테 전화를 건 발신자 IP주소가 김제인데, 글쎄 감히 내 실력에 도전하겠다지 뭐야?”그러자 하영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스승님, 대체 누가…….”“정말 재미있어. 기한은 3일이라고 했거든. 그리고 사이트에 올려서 투표수에 따라 승부를 정하자고 하더라. 나 참, 나한테 하루면 가능한 일인데 말이야.”존슨이 재차 말을 끊자 하영 얼굴의 미소가 사라졌다.“스승님, 저기…….”“안 되겠어. 벌써부터 막 흥분되는 거 있지? 하영아, 너는 우리 둘 중에 누가 이길 것 같아?”하영은 주먹을 꾹 쥐었다.“스승님 일단 제 얘기…….”“맙소사, 반드시 그 건방진 놈을 이길 거야! 대체 어떤 건방진 놈인지 두고 봐야겠어!”“…….”존슨은 한참 혼자서 떠들어 대다가 하영이 아무 말도 없는 것을 눈치채고, 하던 말을 멈춘 뒤 그녀에게 물었다.“왜 그래?
양다인은 화를 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미친 거 아냐? 주원 씨가 해명하면 오히려 욕만 더 얻어먹게 될 거야!”소희원은 코웃음을 쳤다.“기다려 보면 되잖아.”“너 때문에 주원 씨가 망가지게 되면, 네 아버지도 다음 주부터 회사로 나갈 수 없을 줄 알아!”소희원은 양다인을 힐끗 쳐다보았다.“급해하는 꼴이 말이 아니네.”양다인은 부끄럽고 분한 나머지 벌컥 화를 냈다.“너!”“우리는 한배를 탄 사람이잖아.”소희원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귀띔해 줬다.“그러니까 너한테 불리한 일은 하지 않아. 오후 3시 30분에 라방 공유해 줄 테니까,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 봐.”말을 마친 희원이 자리를 뜨자, 양다인은 화가 나면서도 다급한 마음에 희원의 뒷모습을 뚫어지게 노려봤다.‘소희원, 만약 이번 일을 해결하지 못하면 반드시 대가를 치러야 할 거야.’3시 30분, 병원.정주원이 창가에 앉아 독서를 하고 있을 때, 병실에 간호사 한 명이 들어오더니 주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정주원 씨, 검사를 위해 혈액을 채취하겠습니다.”책을 든 정주원의 손이 약간 멈칫하더니 천천히 눈을 들어 앞에 서 있는 낯선 간호사를 쳐다보았다.간호사가 주원의 곁으로 다가오자 주원도 아주 협조적으로 팔을 들었다.간호사는 소독된 면봉을 꺼내어 주원의 팔을 문질러 주면서 두 눈은 그의 얼굴을 주시했다.“정주원 씨, 요즘 꽤 인기가 많으시던데요.”뜬금없는 한마디에 정주원의 눈이 가늘어지더니 이내 어떻게 된 영문인지 눈치채고 슬며시 웃었다.“네, 꽤 많은 사람이 저를 비난하고 있어서 어쩌다 보니 유명인이 되었네요.”“본인이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세요?”간호사의 질문에 주원은 책을 내려놓고 조금 어두워진 목소리로 답했다.“이미 엎질러진 일인데 제가 지금 잘못했다고 얘기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요?”간호사가 바늘을 꽂으며 말을 이었다.“보아하니 조금도 참회하는 것 같지 않군요!”“입으로만 참회한다고 하는 게 아니라 차라리 동생에게 잘못을 만회하는 게 진짜 참회가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