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의 간호사는 전부 아버지가 안배해 준 사람들이라 매일 똑같은 사람들이 병실을 드나든다.그런데 오늘만 유독 낯선 얼굴에 이상한 말까지 하는데, 누군가 의도적으로 탐문하러 왔다는 사실을 눈치챌 수 있었다.정주원은 느릿느릿 휴대폰을 들어 답장을 보냈다.[양다인 씨는 항상 본인만의 생각을 갖고 있군요.]문자를 받은 양다인은 망연자실했다.‘이게 무슨 뜻이지? 대체 지금 어떤 기분으로 답장을 보낸 거야? 기분이 좋다는 거야 나쁘다는 거야?’양다인은 슬쩍 확인해 보려 했다.[지금 정주원 씨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할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만약 제멋대로 결정한 것을 탓하신다고 해도 받아들일게요.]‘정말 조심스러운 아가씨네.’정주원의 눈가에 경멸의 빛이 스치더니 비릿한 미소를 띠고 천천히 답장을 보냈다.[지난번이든 이번이든 한 번도 양다인 씨를 탓한 적 없어요.]주원의 답장에 양다인은 깜짝 놀랐다.‘화난 적 없어? 정주원 씨 성격이 너무 좋은 거 아냐?’만약 정유준이었다면 벌써 싸늘한 표정을 보였을 것이다.양다인이 뭐라고 답장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을 때, 정주원한테서 또 문자가 왔다.[만약 다음에도 이런 일이 있다면 미리 나와 상의했으면 좋겠어요.]그러자 양다인의 얼굴에 바로 화색이 돌았다.‘그렇다는 건 앞으로 계속 연락해도 된다는 뜻이지?’양다인은 들뜬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다.[고마워요 주원 씨, 입원했다고 들었는데 병문안 가도 돼요?]정주원은 바로 병원과 병실을 양다인에게 보내줬다.양다인은 흥분된 표정으로 휴대폰을 껴안고 침대에서 뒹굴뒹굴 굴렀다.‘내일 예쁘게 준비하고 정주원 씨 만나러 가야지! 어떻게든 좋은 인상을 남겨서 이런 자상하고 대범한 남자를 꼭 손에 넣고 말 거야!’MK.허시원은 문을 두드리고 정유준의 사무실에 들어섰다.유준은 한창 영상 회의 중이었는데 허시원이 들어오자 각 지사 부장들한테 말했다.“오늘은 여기까지 하죠.”회의를 종료한 뒤 유준은 낮은 소리로 시원에게 물었다.“무슨 일이야?”허시원
“이모, 얼른 오빠를 혼내 줘요. 이모를 잠들지 못하게 하려고 일부러 얼굴을 꼬집은 거예요!”세희가 세준이를 덥석 잡으며 못되게 웃어 보였는데, 드러난 송곳니가 꽤 사랑스러웠다.우인나가 깜짝 놀라 물었다.“내가 잠들었어?”그 말에 세희와 세준은 이상한 눈빛으로 인나를 바라보더니 세희가 먼저 입을 열었다.“이모, 벌써 사흘째 우리한테 동화책 읽어주다가 잠들었어요.”세준도 우아하게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보통 돼지들이 본인이 잠든 줄도 모르고 있다죠.”인나는 이를 악물고 세준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이게 다 너희 둘 때문이잖아.”말을 마친 인나는 침대에 벌러덩 누워 하품을 했다.“애들을 보는 게 이렇게 힘든 줄 몰랐지. 하영이는 그동안 어떻게 버텼는지 참 대단해.”하영의 말이 나오자 두 녀석은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엄마는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네요. 상처는 많이 좋아졌을까요?”세희의 목소리가 침울해 보였다.세준은 세희의 머리에 손을 올려 다독여 줬다.“조급해해도 소용없어. 그저 얌전히 집에서 엄마가 돌아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돼.”세희는 고사리 같은 손을 들어 세준의 손을 껴안았다.“오빠, 나 엄마 보고 싶어.”“보고 싶으면 전화하면 되지!”세준이 입을 열기 전에 인나가 미리 허락한 뒤, 침대맡에서 휴대폰을 들어 하영의 연락처를 찾아 음성 버튼을 눌러 세희에게 건네주었다.“엄마한테 하고 싶은 말 해서 보내.”세희는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얼른 휴대폰을 잡고 입을 열었다.“엄마, 자요?”세준도 휴대폰을 가져와 한마디 했다.“엄마, 이모 너무 재미없어요. 우리한테 동화책 읽어준다고 했으면서 혼자서 잠든다니까요.”화장실에서 세수를 마치고 나오던 하영은 문자음이 두 번 울리는 것을 듣고 휴대폰을 확인하니 인나가 음성 메시지를 보내왔다.음성 메시지를 클릭하니 이내 두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두 아이의 귀여운 목소리에 하영의 얼굴에 웃음꽃이 번지기 시작하면서 이제 애들한테도 휴대폰을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다.“엄마 아직 안
하영은 무덤덤하게 대답했다.“괜찮으면 됐어. 계약금은 네가 알아서 해. 얼마 안 가 MK에서 위약금을 보내올 거니까.”공장에 관한 일을 이미 인나한테서 전해 들은 캐리는 불만을 토로했다.“네가 찾은 남자들은 하나같이 왜 다 그 모양이야? 며칠 전에 모처럼 정유준 그 자식을 달리 보게 됐는데, 이제 보니 역시 쓰레기잖아…….”캐리의 불평이 시작되기만 하면 끝이 없었다.캐리가 요즘 정신없이 바삐 보냈다는 걸 하영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끊지 않고 실컷 욕하게 내버려뒀다.한참 욕을 퍼붓던 캐리가 지쳐갈 때쯤에야 하영이 입을 열었다.“내일 비서한테 얘기해서 애들한테 휴대폰 좀 가져다주라고 해.”“뭐? 드디어 애들한테 휴대폰 사 주는 거야? 그런 일은 나한테 맡겨! 내가 알아서 할게!”“요즘 바빠서 집에 갈 시간도 없다며?”“맞아! 요즘 이틀 동안 회사에서 잤거든. 마침 내일 나도 옷 갈아입으로 집에 가봐야 하니까 이만 끊을게. 이따가 공장 가서 물건 옮기는 거 지켜봐야 하거든.”“자기 자신과 직원들을 너무 혹사하지 마. 시간이라면 아직 며칠 남았잖아.”“고객들은 기다려 주지 않아! 쉬고 있어, 이만 끊을게! 밖에서 싸돌아다니지 말고 일찍 돌아와!”“알았어.”다음날.아침 일찍 일어난 양다인은 씻고 나서 어젯밤 신중히 고른 옷을 입고, 예쁘게 화장까지 마쳤다.거울 속에 우아하고 부드러워 보이는 모습을 바라보며 양다인은 만족스럽다는 듯 핸드백을 들고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소백중은 그때 아침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아침 일찍 일어난 다인을 보고 약간 놀란 표정을 지었다.“다인아, 지금 6시인데 벌써 일어난 거냐?”순간 양다인의 얼굴에 쑥스러운 빛이 스쳤다.“할아버지, 오늘 약속이 있어서 나가봐야 하거든요.”소백중은 양다인을 훑어보더니 입을 열었다.“다인아, 너 설마 정유준 그놈 만나러 가는 건 아니겠지?”그러자 양다인은 얼른 부인하기 시작했다.“절대 아니에요. 친구가 입원했는데 다른 애들이랑 다 같이 병문안 가기로 했어요.”
하영도 주원을 발견하고 담담하게 웃었다.“이번에도 우연은 아니겠죠?”“그건 확실히 아닌 것 같네요. 하영 씨가 내려온 것을 보고 저도 내려왔어요.”주원이 웃으며 인정하자 하영은 벤치에 몸을 기대며 침착한 표정으로 주원을 주시했다.“혹시 무슨 목적이라도 있나요? 아니면 그저 저랑 얘기를 나누고 싶어서?”주원은 휠체어 방향을 돌려 하영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후자라고 해두죠.”하영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그와 거리를 두었다.“저한테 할 얘기가 있으시면 바로 하시죠.”“하영 씨는 유준이를 많이 미워하죠?”주원이 기회를 찾아 입을 열자 하영은 보온병 뚜껑을 열며 입을 열었다.“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네요.”“그럼 제가 알아맞혀 볼까요? 하영 씨가 이렇게까지 다쳤는데도 유준이가 보러오지 않는 걸 보면 두 사람 사이에 분명 문제가 생겼을 겁니다.”하영은 주원의 분석 따위 듣고 싶지 않았다.“그렇다고 해도 그쪽과는 상관없는 것 같네요.”“이대로 이용만 당하고 버림받으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주원은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하영에게 물었다.“제가 받아들이지 못한다고 해서 복수할 방법이나 있겠어요?”“왜 없다고 생각해요?”정주원이 되묻는 물음에 하영은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았다.“정주원 씨, 어제 방송에서는 지금 이런 태도가 아니라 분명 자책하고 계셨잖아요.”“지금 저의 태도는 어떤데요?”“지금 저더러 정유준 씨한테 복수하라고 부추기고 있잖아요. 아닌가요?”주원의 물음에 하영은 싸늘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어제 방송에서 보인 태도라면 지금쯤 저한테 그만 내려놓으라고 설득해야죠.”주원은 하영이 이 정도로 직접적일 줄은 예상치 못했다.“하영 씨와 저는 입장이 다르죠.”“하지만 정주원 씨 말을 들어보면 제가 당신의 칼잡이가 돼주길 바라는 것 같아서요. 제가 정유준한테 복수를 하면 정주원 씨도 이득을 얻는 것처럼 말이죠.”“강하영 씨는 정말 똑똑한 여성이에요. 강하영 씨 같은 여자는 소중히 여겨야 한다고 생각해요.”“그래서 정주원 씨
‘강하영, 또 나랑 같은 남자를 놓고 빼앗을 셈이야? 감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원 씨랑 알고 지냈었다니!’양다인은 방근 정주원이 하영의 손목을 잡은 것을 똑똑히 보았다.‘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친해진 거지? 여자가 지조도 없이! 정유준한테 접근하더니 이제는 정주원과도 만나는 거야? 그딴 짓을 하고도 벼락 맞을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봐?’‘안 돼, 절대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주원 씨의 마음을 완전히 나한테 돌려야 해!’양다인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정주원의 휠체어가 이쪽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질투심을 감추고, 억지로 환히 웃으며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정주원 씨!”양다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원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양다인을 발견한 주원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고, 눈가엔 약간 경멸의 빛이 스쳤다.사실 방금 그가 하영의 손목을 잡을 때부터 이미 양다인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양다인처럼 욕망이 넘치는 여자라면 그 광경을 보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주원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양다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인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양다인은 이를 악물었다.‘내가 방금 이 자리에 없었다면 그런 광경도 보지 못했겠지!’양다인은 과일바구니와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들어 보였다.“어젯밤엔 쉬고 있을 것 같아서 오늘에야 찾아왔어요.”그리고 정주원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정주원 씨, 얼른 쾌차하길 바랄게요.”주원은 웃는 얼굴로 곁에 서 있는 경호원에게 물건을 받으라고 눈치 줬다.경호원이 다가와 선물을 받은 뒤 입을 열었다.“도련님, 병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그래.”그리고 주원은 양다인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인 씨도 나랑 같이 올라가요.”“네.”병실에 도착하자 양다인은 주원을 부축해 소파에 앉았다.경호원이 다인과 주원에게 물을 따라준 뒤 병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그때 정주원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내 앞에서 얼쩡대는 거야! 네가 원하던 정유준을 돌려줬잖아. 그런데 왜 또 주원 씨한테 집적대는 거야?”양다인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구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양다인이 화나서 씩씩대는 모습을 보고 하영은 자신의 짐작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지영 이모의 신분을 폭로한 사람은 바로 양다인이 틀림없었다.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다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나한테 돌려줘?”하영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이었다.“유준 씨가 너한테는 그저 물건이었나 봐?”그 말에 양다인은 멈칫했다.“내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어?”“아니야?”하영은 양다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너는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리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이번엔 정주원이랑 어울리는 거야?”“나랑 정유준은 이미 끝난 사이인 거 몰라?”양다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이제 솔로니까 나한테도 남자를 선택할 권리는 있어!”강하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정주원에게 잘 보이려고 정유준의 어머니까지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거야?”충격에 빠진 눈빛으로 하영을 쳐다보던 양다인의 눈빛은 크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그, 그게 무슨 허튼소리야?”“허튼소리인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하영은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양다인, 그런 무서운 짓을 저지르고 그 사람들이 너 찾아올까 봐 겁나지도 않아? 혹시 꿈속에서 눈을 떴을 때 뒤돌아본 적 있어? 그들은 어쩌면 항상 네 주변에 있다가 네 목숨을 앗아갈 기회만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양다인은 하영의 눈빛에 겁을 먹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양다인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고 호흡마저 거칠어졌다.“괜히 이상한 말로 겁주려 하지 마!”하영은 웃는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보아하니 정주원이 너한테 꽤 중요한가 봐?”양다인은 주먹을 꽉 쥐고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하영을 째려봤다.“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하영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네가 내 병실에 찾아온 이유는 두 가지뿐이겠지. 정주원 곁
하영은 이마를 짚었다.“스승님, 제가 실수로…….”“실수로 넷째를 가졌다고?”존슨은 더욱 흥분에 겨워 들떴다.“안 되겠어. 이번에야말로 내가 제대로 돌봐줘야지.”“넘어졌어요! 스승님! 제가 실수로 넘어졌다고요!”하영의 말이 끝나자 존슨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실망한 듯 한 마디 던졌다.“쳇, 난 또 네가 임신한 줄 알았네. 재미없게.”하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제가 다친 건 중요하지 않아요?”“그게 뭐가 중요해? 사람이라면 넘어져서 좀 다칠 때도 있잖아. 어느 병원인지 얘기해 봐. 지금 갈게.”하영은 병원 주소와 병실을 알려줬고, 한 시간쯤 지나자 존슨이 도착했다. 병실 문이 열리는 순간 하영은 온몸에 화려한 빨간색을 두른 존슨이 높은 구두를 신고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존슨은 오래 마흔이 되었지만, 철저한 관리를 통해 25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 스타일은 용감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매력을 보여줬다.존슨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병실에 들어서더니, 하영의 두 팔과 이마에 감은 붕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맙소사, 한동안 만나지 않았더니 이런 식으로 자해하고 있었던 거야?”‘자……, 자해?’하영은 어이가 없었다.존슨이 소리를 지르며 병실에 들어서더니 발로 문을 걷어차 닫은 뒤 하영의 곁에 앉았다.그리고 꽃다발을 하영의 품에 안겨준 뒤에 그녀의 팔을 잡아 상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존슨의 행동은 다소 거칠었고, 상처를 건드린 탓에 하영은 그만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아파요.”존슨은 하영의 팔에 감긴 붕대를 한 번에 찢어버리고 상처를 꿰맨 자국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거 누가 봉합한 거야?”“의사 선생님이요.”존슨의 질문에 하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진작에 다쳤다고 얘기했으면 바로 날아와서 내가 직접 봉합해 줬을 텐데. 이건 너무 못생겼잖아. 흉터로 남을 거야.”“괜찮아요. 흉터 제거술을 받으면 돼요.”하영은 팔을 뺐다.비록 스승님의 봉합
현욱은 유준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한참만에야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설마 지금 나더러 댓글 알바를 시켜 투표하게 하란 거야?”‘세상에! 내 친구가 언제부터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됐지?’“우인나가 네 미래의 배우자라며?”유준이 비꼬기 시작했다.“그런데 그정도도 못 해 주겠어?”현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게 지금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아무리 봐도 이건 인나 씨랑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게다가 지금 나를 끌어들이는 입장이면서 돈까지 내가 대야 한다고?’유준은 미련을 버린듯 뒤로 벌러덩 누웠다.“유준아, 너 비겁하다고 얘기하는 사람 없었어?”유준이 불쾌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사업가들은 그저 이익만 따질 뿐이거든.”현욱은 이를 악물고 눈을 흘겼다.“좋아. 내가 내 돈으로 댓글 알바를 살게.”“그래, 일이 성사되면 내가 슬쩍 우인나의 신분을 밝힐 거야. 우인나가 얻은 투표수만큼 디자이너로서의 몸값도 오르겠지. 이 일은 우인나한테도 좋은 일이잖아.”현욱은 유준이 거기까지 생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확실히 유준의 말대로 우인나가 경쟁에서 이겼다는 게 밝혀지고, 상대방 신분까지 알려지면 인나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되겠지.게다가 강하영 쪽도 상황을 알아봤자 할 말이 없을 것이다.어쨌든 우인나와 관련 된 일이니 양쪽 어느 편에 서서 얘기하기도 난처하게 된다.그 중의 모든 이해관계를 대충 알게 된 현욱은 혀를 내둘렀다.“이건 정말 반칙이잖아.”“반칙?”유준이 피식 웃었다.“존슨은 세계에서 유명한 디자이너야. 내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해?”“하긴 없으니까 존슨을 MK로 영입할 생각을 했겠지.”현욱이 분석하기 시작했다.“그런데 하영 씨한테 그렇게 대해도 정말 괜찮겠어?”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머니 때문에라도 강하영과는 이제 가능성이 없어.”현욱은 고개를 돌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유준을 바라보았다.“유준아,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