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하영, 또 나랑 같은 남자를 놓고 빼앗을 셈이야? 감히 나도 모르는 사이에 주원 씨랑 알고 지냈었다니!’양다인은 방근 정주원이 하영의 손목을 잡은 것을 똑똑히 보았다.‘대체 언제부터 저렇게 친해진 거지? 여자가 지조도 없이! 정유준한테 접근하더니 이제는 정주원과도 만나는 거야? 그딴 짓을 하고도 벼락 맞을까 봐 두렵지도 않은가 봐?’‘안 돼, 절대 이대로 가만있을 수는 없어. 어떻게든 주원 씨의 마음을 완전히 나한테 돌려야 해!’양다인이 한참 생각에 잠겨 있을 때 정주원의 휠체어가 이쪽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하고는 빠르게 질투심을 감추고, 억지로 환히 웃으며 기둥 뒤에서 걸어 나왔다.“정주원 씨!”양다인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주원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양다인을 발견한 주원은 별로 놀라는 기색이 없었고, 눈가엔 약간 경멸의 빛이 스쳤다.사실 방금 그가 하영의 손목을 잡을 때부터 이미 양다인이 나타난 것을 발견하고 일부러 그런 행동을 했던 것이다.양다인처럼 욕망이 넘치는 여자라면 그 광경을 보고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주원은 부드러운 눈빛으로 양다인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다인 씨가 여긴 어쩐 일이에요?”양다인은 이를 악물었다.‘내가 방금 이 자리에 없었다면 그런 광경도 보지 못했겠지!’양다인은 과일바구니와 품에 안고 있던 꽃다발을 들어 보였다.“어젯밤엔 쉬고 있을 것 같아서 오늘에야 찾아왔어요.”그리고 정주원 앞으로 가까이 다가갔다.“정주원 씨, 얼른 쾌차하길 바랄게요.”주원은 웃는 얼굴로 곁에 서 있는 경호원에게 물건을 받으라고 눈치 줬다.경호원이 다가와 선물을 받은 뒤 입을 열었다.“도련님, 병실로 돌아가시겠습니까?”“그래.”그리고 주원은 양다인을 바라보며 물었다.“다인 씨도 나랑 같이 올라가요.”“네.”병실에 도착하자 양다인은 주원을 부축해 소파에 앉았다.경호원이 다인과 주원에게 물을 따라준 뒤 병실을 나가며 문을 닫았다.그때 정주원이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왜 자꾸 내 앞에서 얼쩡대는 거야! 네가 원하던 정유준을 돌려줬잖아. 그런데 왜 또 주원 씨한테 집적대는 거야?”양다인은 감정을 억제하지 못하고 마구 소리 지르기 시작했고, 양다인이 화나서 씩씩대는 모습을 보고 하영은 자신의 짐작에 확신을 갖기 시작했다.지영 이모의 신분을 폭로한 사람은 바로 양다인이 틀림없었다.하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양다인을 향해 천천히 다가가기 시작했다.“나한테 돌려줘?”하영은 웃음을 터뜨리더니 말을 이었다.“유준 씨가 너한테는 그저 물건이었나 봐?”그 말에 양다인은 멈칫했다.“내가 언제 그렇게 얘기했어?”“아니야?”하영은 양다인을 위아래로 훑어봤다.“너는 이용 가치가 없으면 버리는 사람이잖아. 그래서 이번엔 정주원이랑 어울리는 거야?”“나랑 정유준은 이미 끝난 사이인 거 몰라?”양다인은 앙칼진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이제 솔로니까 나한테도 남자를 선택할 권리는 있어!”강하영은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그래. 정주원에게 잘 보이려고 정유준의 어머니까지 구렁텅이에 밀어 넣은 거야?”충격에 빠진 눈빛으로 하영을 쳐다보던 양다인의 눈빛은 크게 당황하는 것 같았다.“그, 그게 무슨 허튼소리야?”“허튼소리인지 아닌지는 네가 제일 잘 알겠지!”하영은 눈을 가늘게 뜨기 시작했다.“양다인, 그런 무서운 짓을 저지르고 그 사람들이 너 찾아올까 봐 겁나지도 않아? 혹시 꿈속에서 눈을 떴을 때 뒤돌아본 적 있어? 그들은 어쩌면 항상 네 주변에 있다가 네 목숨을 앗아갈 기회만 노리고 있을지도 몰라!”양다인은 하영의 눈빛에 겁을 먹고 뒤로 주춤주춤 물러났다.양다인의 얼굴은 이미 창백해졌고 호흡마저 거칠어졌다.“괜히 이상한 말로 겁주려 하지 마!”하영은 웃는 얼굴로 시선을 거두었다.“보아하니 정주원이 너한테 꽤 중요한가 봐?”양다인은 주먹을 꽉 쥐고 표독스러운 눈빛으로 하영을 째려봤다.“대체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하영은 다시 침대로 돌아가 앉았다.“네가 내 병실에 찾아온 이유는 두 가지뿐이겠지. 정주원 곁
하영은 이마를 짚었다.“스승님, 제가 실수로…….”“실수로 넷째를 가졌다고?”존슨은 더욱 흥분에 겨워 들떴다.“안 되겠어. 이번에야말로 내가 제대로 돌봐줘야지.”“넘어졌어요! 스승님! 제가 실수로 넘어졌다고요!”하영의 말이 끝나자 존슨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이내 실망한 듯 한 마디 던졌다.“쳇, 난 또 네가 임신한 줄 알았네. 재미없게.”하영의 눈썹이 꿈틀거렸다.“제가 다친 건 중요하지 않아요?”“그게 뭐가 중요해? 사람이라면 넘어져서 좀 다칠 때도 있잖아. 어느 병원인지 얘기해 봐. 지금 갈게.”하영은 병원 주소와 병실을 알려줬고, 한 시간쯤 지나자 존슨이 도착했다. 병실 문이 열리는 순간 하영은 온몸에 화려한 빨간색을 두른 존슨이 높은 구두를 신고 들어오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존슨은 오래 마흔이 되었지만, 철저한 관리를 통해 25세 정도로밖에 보이지 않았다.남자처럼 짧게 자른 머리 스타일은 용감하면서도 자유분방한 매력을 보여줬다.존슨은 장미 꽃다발을 들고 병실에 들어서더니, 하영의 두 팔과 이마에 감은 붕대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맙소사, 한동안 만나지 않았더니 이런 식으로 자해하고 있었던 거야?”‘자……, 자해?’하영은 어이가 없었다.존슨이 소리를 지르며 병실에 들어서더니 발로 문을 걷어차 닫은 뒤 하영의 곁에 앉았다.그리고 꽃다발을 하영의 품에 안겨준 뒤에 그녀의 팔을 잡아 상처를 살펴보기 시작했다.존슨의 행동은 다소 거칠었고, 상처를 건드린 탓에 하영은 그만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렸다.“아파요.”존슨은 하영의 팔에 감긴 붕대를 한 번에 찢어버리고 상처를 꿰맨 자국을 유심히 지켜보더니 경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거 누가 봉합한 거야?”“의사 선생님이요.”존슨의 질문에 하영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진작에 다쳤다고 얘기했으면 바로 날아와서 내가 직접 봉합해 줬을 텐데. 이건 너무 못생겼잖아. 흉터로 남을 거야.”“괜찮아요. 흉터 제거술을 받으면 돼요.”하영은 팔을 뺐다.비록 스승님의 봉합
현욱은 유준의 말이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며 잠시 멍한 표정을 지었다.그리고 한참만에야 그 말뜻을 알아차리고 눈을 크게 뜨며 입을 열었다.“설마 지금 나더러 댓글 알바를 시켜 투표하게 하란 거야?”‘세상에! 내 친구가 언제부터 이렇게 파렴치한 인간이 됐지?’“우인나가 네 미래의 배우자라며?”유준이 비꼬기 시작했다.“그런데 그정도도 못 해 주겠어?”현욱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게 지금 왜 이렇게 되는 건데? 아무리 봐도 이건 인나 씨랑 전혀 상관없는 일인데, 게다가 지금 나를 끌어들이는 입장이면서 돈까지 내가 대야 한다고?’유준은 미련을 버린듯 뒤로 벌러덩 누웠다.“유준아, 너 비겁하다고 얘기하는 사람 없었어?”유준이 불쾌한 표정으로 피식 웃었다.“사업가들은 그저 이익만 따질 뿐이거든.”현욱은 이를 악물고 눈을 흘겼다.“좋아. 내가 내 돈으로 댓글 알바를 살게.”“그래, 일이 성사되면 내가 슬쩍 우인나의 신분을 밝힐 거야. 우인나가 얻은 투표수만큼 디자이너로서의 몸값도 오르겠지. 이 일은 우인나한테도 좋은 일이잖아.”현욱은 유준이 거기까지 생각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확실히 유준의 말대로 우인나가 경쟁에서 이겼다는 게 밝혀지고, 상대방 신분까지 알려지면 인나의 가치는 상황에 따라 변하게 되겠지.게다가 강하영 쪽도 상황을 알아봤자 할 말이 없을 것이다.어쨌든 우인나와 관련 된 일이니 양쪽 어느 편에 서서 얘기하기도 난처하게 된다.그 중의 모든 이해관계를 대충 알게 된 현욱은 혀를 내둘렀다.“이건 정말 반칙이잖아.”“반칙?”유준이 피식 웃었다.“존슨은 세계에서 유명한 디자이너야. 내가 이길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다고 생각해?”“하긴 없으니까 존슨을 MK로 영입할 생각을 했겠지.”현욱이 분석하기 시작했다.“그런데 하영 씨한테 그렇게 대해도 정말 괜찮겠어?”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어머니 때문에라도 강하영과는 이제 가능성이 없어.”현욱은 고개를 돌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을 하고 있는 유준을 바라보았다.“유준아,
양다인은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쳤다.“누군 잡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알아?”“대체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건데?”“나 하나만 더 도와줘.”양다인의 말에 희원은 미간을 찌푸렸다.“또 도와달라고?”그러자 양다인이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아직 한 주가 지나지 않았다는 거 잊지 마. 네 아빠 아직은 집에서 기다리고 계시잖아.”소희원의 안색이 바로 변했다.“그 일로 자꾸 협박할 생각하지 마!”예전에 정주원을 도와준 것도 유준한테 미안해 죽을 것 같은데, 양다인이 만약 이번에도 유준한테 불리한 일을 시킨다면 절대로 들어주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왜 그런 말을 하는 거야? 내가 내 동생을 협박할 리 없잖아.”양다인은 희원의 어깨를 툭툭 치며 입을 열었다.“나는 그냥 어떻게 하면 정주원을 내 남자로 만들 수 있는지 몰라서, 대신 좋은 방법 좀 생각해 달라고 부탁하려던 거였어.”희원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유준 오빠를 상대하려는 게 아니고?”“지난번에도 유준 씨한테 불리한 일은 안 했잖아. 나는 그저 주원 씨를 돕고 싶을 뿐이야.”양다인의 말에 희원이는 그제야 적개심을 내려놓았다.“정주원한테 뭘 하려고?”“너 어차피 지금 출근하는 것도 아니니까 나 좀 도와서 정주원과 강하영의 관계를 알아봐 줘.”“강하영?”희원은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강하영은 이미 죽었잖아?”희원은 분명 사촌오빠한테서 하영이 죽었다고 들은 적이 있었다.“안 죽었어. 죽은 척한 거지!”희원은 어리둥절해지고 말았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희원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고 양다인이 또 말을 이었다.“정주원과 강하영이 지금 엄청 가깝게 지내는 것 같은데, 네가 나 좀 도와서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누는지 지켜봐 줘.”양다인이 직접 나서는 건 너무 눈에 띄기 때문에 그럴 수 없었다.게다가 정주원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어쩌면 그녀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르니, 지금 가장 적합한 사람은 소희원밖에 없었다.희원은 그제야 정신을 차렸다.‘유명한 여성 기업
희원은 고개를 끄덕였지만 하영을 언급하자니 조금 민망했다.예전에 철이없을 때 강하영을 욕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네.”희원의 자신 없는 목소리에 서주희도 뭔가 눈치챈 듯싶었다.“희원아, 사람이란 성장하기 마련이야. 너도 이젠 예전보다 많이 성숙해진 것 같으니까 엄마가 하나만 부탁할게. 괜찮지?”“말씀하세요.”“엄마 대신 강하영을 좀 지켜봐 줘. 그리고 지금 네 오빠랑 어떤 사이인지도 알아보고.”“알았어요. 마침 양다인도 강하영을 지켜봐 달라고 했거든요.”“왜 너한테 그런 일을 시켜?”서주희가 미간일 찌푸리며 물었다.희원은 양다인이 아빠의 회살일로 자신을 협박했던 사실부터 시작해서 강하영과 정주원 사이에 있었던 일까지 빠짐없이 서주희에게 얘기했다.그러자 서주희는 그저 가볍게 웃었다.“마음이 무겁고, 질투심에 오만하기까지 한 사람은 절대 소주영의 딸일 리가 없어. 다만 증거를 찾기 전까진 좋은 사이를 유지하도록 해.”“엄마, 저는 그 여자가 싫어요. 그냥 이유도 없이 싫다니까요!”“싫은 것도 일종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잖아.”서주희가 부드러운 미소를 띠고 말을 이었다.“양다인의 약점을 잡기 전까지 참는 것도 중요해.”희원은 꽤 많은 것을 깨달았다.“알았어요, 엄마.”오전 9시.희원은 마스크와 모자를 꾹 눌러쓰고 병원에 나타났다.그리고 양다인이 알려준 대로 하영과 정주원의 병실 앞에서 한 바퀴 돌아보고 양다인에게 문자를 보냈다.“두 사람 아직 만나지 않았어. 마주치면 얘기할게.”그리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은 뒤 적당한 곳에 앉아 기다려보기로 했다.하영의 병실.존슨은 밤새 디자인을 완성한 뒤 소파에 벌러덩 누웠다.“드디어 끝났어!”그때 마침 화장실에서 나오던 하영이 존슨의 디자인을 보고, 그녀의 곁으로 다가가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스승님, 정말 이걸 제출할 생각이에요?”“왜? 내 디자인에 의견 있어? 나는 이대로 내보낼 생각이야!”“…….”디자인이 조금 거칠다고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매우 독특하고 세부적인
정주원도 유준이 사랑하는 여자가 자기 곁에 서 있을 때, 질투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고통에 일그러진 얼굴과 슬픔에 허우적대는 모습을 상상만 해도 기분이 너무 좋았다.주원은 온몸의 피가 끓어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셋째는 정말이지 흥분을 주체할 수 없게 하는 존재라니까!’하영은 주원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이상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머리에 소름이 쫙 끼치는 동시에 바로 도망치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사이코…….’‘맞아, 바로 이 단어야.’비록 남자의 얼굴에서 약간의 감정 변화도 느낄 수 없었지만, 그 느낌만은 확실히 전해졌다.하영은 역겨움을 겨우 참으며 대답했다.“좋아요. 그렇게 하죠.”두 사람의 대화는 멀지 않은 곳에 있던 희원이 전부 듣고 있었다.‘지금 유준 오빠 얘기를 하고 있는 거야? 정주원한테는 이유가 있다지만, 강하영은 대체 무엇 때문에 그러는 거지?’‘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에?’희원은 생각을 하며 이 일을 양다인에게 알렸다.소식을 접하게 된 양다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정주원 씨 혹시 강하영을 이용해 유준 씨를 상대하려는 건가?’양다인은 입술을 깨물었다.‘15년간 해외에서 지내면서 정유준을 원망하게 된 건가?’‘아니! 혹시 정주원이 김형욱일 가능성은?’김형욱은 강하영에게 손을 쓰려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유준을 노린 행동이었다.게다가 정주원도 지금 유준에 대한 진짜 태도를 보여줬으니…….사소한 일들이 떠오를수록 양다인은 점점 소름이 돋기 시작했다.‘안 돼, 당장 알아봐야겠어!’양다인은 누군가를 떠올리고 바로 휴대폰을 들어 연락처를 찾기 시작했다.다름 아닌 예전에 양다인을 도와줬던 MK의 기술팀 직원에게 문자를 보냈다.[사람 한 명 알아봐 줘! 알아내면 삼천오백만 원 줄게!]지금 양다인에게 돈은 중요하지 않았다.중요한 건 정주원이 바로 김형욱이 옳은지 아닌지에 대한 사실이었다.만약 사실이라면 반드시 빠르게 정주원을 자기 남자로 만들어야 했다.그래야만 상대방 손에 있는 본인의 약점이 새어
겁에 질린 듯 뒤로 한 걸음 물러서던 양다인의 두 눈은 전혀 믿을 수 없다고 얘기하고 있었다.곧이어 양다인은 휴대폰을 꼭 쥐고 싸늘한 눈빛으로 병실 문을 뚫어져라 쳐다봤다.‘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 정주원 씨와 강하영이 함께 있게 해서는 안 돼!’정주원이 강하영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고,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된다면 위험한 건 본인밖에 없었다.그때 하영과 간병인이 과일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에 익숙한 실루엣을 발견하고 순간 발길을 멈추고 자세히 관찰하기 시작하다가, 상대방이 고개를 돌리자 깜짝 놀라 두 눈을 크게 떴다.하영은 상대방을 향해 걸어가며 입을 열었다.“진석 씨.”부진석은 발길을 멈칫하더니 고개를 돌려 하영을 바라보았다.“하영아.”미처 말이 끝나기 바쁘게 하영은 싸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돌아와서 이제 나한테 얘기도 없어?”그러자 진석의 부드러운 미간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이 떠올랐다.“화내지 마. 너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했는데 결국 이렇게 들켜버렸네.”그 말에 하영은 그제야 감정을 눌렀다.“다음엔 미리 얘기해줘. 그래야 데리러…….”하영은 곧 본인의 상처가 아직 채 낫지 않은 것을 깨낳고 말끝을 흐렸다.부진석도 하영이 환자복을 입고 있는 것을 보고 미간을 찌푸렸다.“네가 왜 병원에 있는 거야?”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얘기하자면 길어. 진석 씨가 없는 동안 많은 일이 있었거든.”진석의 눈가에 걱정으로 한가득 뒤덮이더니 프런트에 있는 간호사를 향해 고개를 살짝 끄덕인 뒤, 하영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갔다.사무실.부진석은 문을 닫은 뒤 하영을 자리에 앉히고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대체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간단하게 설명해 봐.”하영은 최대한 간단하게 지영 이모와 정창만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진석에게 얘기해줬다.진석의 눈동자는 충격에 뒤덮였고, 한참 뒤에 정신을 차리더니 얼른 하영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리고 붕대로 칭칭 감긴 팔을 보고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