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이 막 입을 떼려고 할 때 유준이 또 물었다.“강하영, 나한테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고 맹세할 수 있어?”분노가 가득 찬 말투에서 비굴함마저 느껴지자 하영은 가슴이 아팠지만, 두 사람의 악연을 언젠가 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리고 그 결과는 서로가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 것이다!하영은 욱신거리는 가슴의 통증을 꾹 참으며 입을 열었다.“고마움에 보답하기 위해 병원에 찾아갔던 거예요. 정유준 씨, 제 맹세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중요한 건 제가 우리 감정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거예요, 이제 알겠어요?”“그딴 건 몰라!”유준이 크게 화를 냈다.“왜 너만 이 감정에서 멋대로 발을 빼려는 건데? 나를 대체 어떻게 생각했던 거야!”하영은 힘없이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그걸 지금 저한테 물었어요? 그럼 유준 씨는 대체 저를 뭐로 여겼는지 본인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5년 전에 저를 당신의 정부로 여겼다가 나중에야 유준 씨를 구한 사람이 저라는 걸 알고 미친 듯이 찾아다니기 시작했죠. 그런데 여전히 그 사실을 몰랐다면 어땠을까요? 지금도 양다인이랑 사이좋게 지내지 않았을까요? 사실 유준 씨는 저를 사랑하는 게 아니에요. 모르겠어요? 유준 씨가 사랑한 건 당신을 구해준 그 여자고, 그 여자가 마침 저일 뿐이죠. 그게 다예요!”유준은 멍한 표정으로 갑자기 반박할 단어가 떠오르지 않았다.하영이 얘기한 것도 사실이지만, 지금 그녀를 포기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유준은 온 몸에 힘이 다 빠진 듯 무기력하게 물었다.“꼭 이렇게까지 매몰차게 대해야겠어?”“네!”하영의 눈가에 눈물이 핑 돌았지만 눈물을 꾹 참고 대답했다.유준은 피식 웃었다.“좋아. 너도 내 말 잘 들어, 내 아들한테도 엄마가 필요해!”말을 마친 유준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하영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마지막 말이 대체 무슨 뜻이지? 지금 감정적으로 안 되니까 우리 희민이로 협박하는 건가? 기어이 두 사람을 엮어야 속이 편한 거야?’저녁.현욱은 인나와
식사를 마치고 인나는 아크로빌로 향했다.하영이 마침 애들을 데리고 산책하러 나가려 할 때 인나의 차가 정원으로 들어오는 것을 발견했다.“이모가 왔네요!”세희가 인나의 차 옆으로 뛰어갔고 차에서 내린 인나를 향해 작은 손을 쳐들었다.“이모 안아주세요!”인나는 세희를 안아 들고 작은 코를 문질러줬다.“우리 세희, 어디 나가는 길이야?”세희는 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랑 산책하러 가요. 이모도 같이 갈래요?”“좋아!”인나는 세희를 안고 하영의 곁으로 다가왔다.“하영아, 나도 같이 가. 마침 너한테 부탁할 일이 있어.”하영은 인나가 부탁이 있다는 말에 약간 놀라고 말았다.“그래, 가자.”산책하는 길에 인나는 애들과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에야 하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하영아, 존슨 언니한테 연락해 줄 수 있어?”“스승님은 왜? 혹시 디자인하고 싶은 옷이라도 있어?”“그래! 현욱 씨가 나한테 옷을 제작해 주고 싶다고 했거든.”그러자 하영의 눈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약혼식? 아니면 결혼식에 입을 옷?”하영의 말에 인나는 얼굴을 붉혔다.“에이, 나도 몰라. 그냥 그 마음이 기특한 거지.”“알았어!”하영이 흔쾌히 대답했다.“지금 바로 전화해 볼게.”하영은 휴대폰을 꺼내 먼저 문자를 보냈다.“스승님, 바빠요?”펴옷에 하영은 존슨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존슨이 하영에게 급한 일 없으면 안부도 묻지 말라고 했기 때문이다. 혹시 무슨 일 있으면 미리 문자를 보내면 바쁘지 않은 상황에서 연락을 주겠다고 했던 것이다.문자를 보내자마자 존슨에게서 전화가 걸려 왔는데, 전화기 너머로 존슨이 웃으며 물었다.“G, 무슨 볼일인지 짧게 얘기해 줘. 나 지금 S국에서 미팅 중이거든.”“…….”‘또 남자랑 데이트하러 가신 모양이네.’하영이 간단하게 우인나가 부탁한 사실을 전하자 존슨이 웃으며 대답했다.“그런 사소한 일은 부탁할 필요 없어. 그런데 지금 당장은 갈 수 없을 것 같아.”하영이 인나에게 말을 전하자, 인나가 직접 전화
일요일.하영은 오늘 놀이공원으로 놀러 가기로 지영과 세 아이한테 약속한 적이 있었다.티켓을 구매한 뒤 하영은 애들과 지영을 데리고 출발했고, 도착했을 땐 시계가 10시를 가리켰다.12월이 다가오는 날씨는 춥지도 덥지도 않아 매우 편안했고, 놀이 기구도 전부 돌아가고 있었다.지영은 스텔라월드에 들어서자마자 중심에 있는 높은 관람차를 뚫어지게 쳐다봤다.하영은 그런 지영의 마음을 눈치채고 물었다.“이모, 관람차 타고 싶어요?”“응.”지영은 관람차를 바라보며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예전에 누구랑 탔던 것 같은데…….”“저 알 것 같아요!”그때 곁에 있던 세희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분명 할머니 남자 친구였겠죠!”하영은 쓴웃음을 지었다.“세희야, 함부로 얘기하면 못써.”그러자 세희는 혀를 홀랑 내밀었다.“엄마, 저 할머니랑 농담한 거예요.”“남자 친구?”지영이 멍한 표정으로 되묻자 하영이 얼른 말을 돌렸다.“이모, 세희가 그냥 해본 말이에요. 관람차 타고 싶으시면 이따가 다 같이 타러 가요.”그러자 지영의 눈이 휘어지며 활짝 웃었다.“좋아. 일단 애들이 놀고 싶은 것부터 놀자!”“할머니 만세!”세희는 환호하며 지영의 손을 끌고 범퍼카 쪽으로 향했고, 하영도 세준과 희민의 손을 잡고 뒤를 따랐다.소씨 집안.양다인은 잠에서 깨자마자 기자의 전화를 받았고, 나른한 말투로 물었다.“무슨 일이죠?”“양다인 씨, 저희 쪽에서 기사로 내보낼 내용을 전부 작성했는데, 지금 발표해도 괜찮을까요?”양다인은 시간을 확인하고 하품하며 대답했다.“꽤 빠르네요. 다 썼으면 내보내면 되지 왜 전화했어요?”기자는 웃으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 그럼 지금 바로 발표할게요.”전화를 끊은 양다인은 휴대폰에서 정유준의 사진을 찾아 손끝으로 무해할 정도로 아름다운 얼굴을 그으며 탄식했다.‘유준 씨, 나 원망하지 마. 당신이 나 밀어내지만 않았어도 이렇게까진 하지 않았을 거야. 탓하려면 강하영을 탓해.’10분도 채 안 된 시간에 기자가 발표한 기
“그쪽으로 가!”유준이 싸늘한 목소리로 분부했다.스텔라월드.하영은 애들 손에 이끌려 이것저것 놀이기구를 타다가 이제야 관람차 밑에 와서 줄을 섰다.희민은 고개를 들어 수백 미터 상공에 있는 관람차를 보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는 고소공포증이 있어 이런 놀이기구는 타지 못했다.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턱턱 막혀왔다.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세준이 희민이에게 물었다.“희민아, 어디 아파?”그러자 희민은 억지로 고개를 저었다.“나 괜찮아…….”말이 끝나기 바쁘게 희민은 배를 부여잡고 바닥에 토하기 시작했다.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하영과 지영은 희민이 토하는 것을 발견했고, 하영은 얼른 희민을 품에 껴안았다.“희민아. 대체 무슨 일이야? 어디 아파?”희민은 어지러움을 느끼며 힘없이 겨우 한 마디를 짜냈다.“높아요…….”“높아?”세희가 고개를 들어 지금 한창 돌고 있는 관람차를 쳐다보았다.“알 것 같아요! 엄마, 희민 오빠는 고소공포증이 있는 거예요!”하영은 희민을 돌아보며 물었다.“희민아, 정말 고소공포증 있는 거야?”“네…….”희민은 고개를 떨구고 대답했다.“그럼 왜 미리 얘기 안 했어?”하영은 가슴이 아픈지 희민의 등을 토닥여줬다.희민은 입술을 깨물더니 우물쭈물하며 입을 열었다.“다들 신나하는데 분위기 망치고 싶지 않았어요.”하영은 안타까운 심정으로 희민을 껴안고 달래줬다.“괜찮아. 그냥 놀이기구일 뿐이잖인데 다른 놀이기구 놀면 되지.”그때 살짝 눈을 든 희민의 눈빛이 반짝이는 것 같았다.“그럼 엄마는 괜찮으세요?”“그럼. 세희랑 세준이 그리고 할머니 셋이서 타고 엄마는 우리 희민이랑 아래서 기다리면 돼.”“희민 오빠가 안 타면 나도 타지 않을래요, 엄마!”“저도 딱히 관심 없으니 희민이 곁에 있을게요.”세희의 말에 세준도 따라 입을 열자, 하영은 조금 난처해졌다.‘그렇다고 이모를 혼자 타게 할 수는 없는데.’지영이 손을 뻗어 하영의 옷자락을 끌었다.“하영 씨는 애들이랑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나
하영은 얼른 몸을 일으켜 지영 쪽으로 달려가려 했지만 스태프가 그런 그녀를 막아서며 경고했다.“고객님, 이러시면 위험해요!”그쪽으로 갈 수 없었던 하영은 그저 지영을 향해 외칠 수밖에 없었다.“이모, 절대 문 열면 안 돼요. 거기 얌전히 앉아서 아무것도 만지지 마세요!”지영은 다 안다는 뜻으로 하영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고, 하영은 지영이 앉은 관람차를 뚫어지게 응시하다가 스태프가 재촉해서야 아래로 내려왔다.“엄마.”희민은 엄마를 너무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얼른 입을 열었다.“할머니가 아이스크림 드시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우리 사러 가요.”지금으로선 별다른 방법이 없었기에 하영은 애들을 데리고 아이스크림을 사러 갔다.가는 길에도 하영은 시름이 놓이지 않는지 관람차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몇 분 뒤, 지영이 앉은 관람차가 제일 꼭대기에 올라가자 하영의 마음도 따라 조마조마해 났다.관람차가 바람에 흔들리기라도 하면 하영은 손발에 힘이 쫙 빠졌다.‘이모가 안에서 겁먹진 않았겠지? 아무것도 만지지 말아야 할 텐데.’관람차 안.관람차가 지면에서 높아짐에 따라 한눈에 보이는 김제의 아름다운 절경에 지영의 마음도 차분해지기 시작했다.지영은 자기와 함께 관람차에 탔던 남자가 누군지 떠올랐다.그 남자의 이름은 주진우였다.시간이 너무 오래 흘러서인지 그의 모습은 지영의 기억 속에 흐릿하게 남았다.지영은 천천히 눈을 감고 주진우의 다정한 말투와 행동들을 떠올렸다.그녀는 주진우와 열애 중에 함께 관람차를 타러 온 적이 있었는데, 관람차가 가장 높은 곳까지 올라갔을 때 진우는 지영에게 프러포즈를 했다.그러나 바람과는 달리 주진우와 결혼 한 달을 앞두고 있을 때 정호영의 눈에 들고 말았다.상대방은 지영을 억지로 정씨 집안으로 데려가 자기와 결혼할 것을 강요했고, 따르지 않는다면 주진우를 없애 버릴 것이라고 협박했다.그 사실을 알게 된 주진우는 미친 듯이 정씨 집안에 찾아가 지영을 돌려달라고 요구했다.정호영을 화나게 한 결과는 뻔했다. 주진우는 숨만
스텔라월드 입구.유준은 차에서 내리자마자 스텔라월드 안에서 들려오는 거대한 소리를 듣게 됐고, 순간 날카로운 무언가가 심장을 찌르는 듯한 고통에 그는 심장을 부여잡고 바닥에 주저앉았다.시원과 경호원은 얼른 앞으로 뛰어가 유준을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니까?”유준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였고, 옆에 있는 사람들을 밀친 뒤, 숨 막히는 어지러움을 억지로 참으며 몸을 일으켜 스텔라월드로 다가갔다.그때 스텔라월드 안은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고 모든 사람이 관람차 쪽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김호진이 스텔라월드 직원을 찾아가 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묻자, 직원은 허둥대며 대답해 줬다.“관람차 하나가 추락했어요!”허시원은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비어 있는 곳을 쳐다봤다.‘족히 200미터 높이는 되는 것 같은데, 저기서 사람이 떨어졌으면 희망이 없겠지…….’직원의 말을 들은 유준의 눈빛에 순간 공포가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가슴 한 구석에 고통이 밀려왔다.문득 어떤 생각이 떠오르자, 유준의 눈동자가 순식간에 움츠러들더니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강하영…….”그리고 긴 다리로 빠르게 관람차 방향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그 모습에 시원과 경호원은 모두 깜짝 놀랐다.‘대표님, 그러다 정말 죽을지도 모릅니다!’관람차가 있는 곳에 도착하자 익숙한 울부짖음 소리가 유준의 귀에 흘러들어왔다.곁에 있던 경호원들이 얼른 많은 인파를 헤치고 유준을 들어가게 했다.유준이 부서진 관람차 앞까지 달려가니 하영과 아이들이 충격과 슬픔에 빠져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고, 관람차에 타고 있던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바닥은 새빨간 피로 물들어 있었다.유준은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 느낌에 얼른 앞으로 다가가 하영을 잡아 일으켰다.“강하영,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다친 덴 없어?”하영의 두 눈은 넋이 나간 듯 생기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상태로 유준의 손에 잡혀 있었다.유준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낮은 소리로 으르렁거렸다.“강하영! 대답해!”남자의 날
하영은 쉬지 않고 울어대는 세희를 안아 들고 등을 토닥여줬고, 세희는 하영의 목에 얼굴을 묻고 끊임없이 흐느꼈다.“엄마, 할머니가 떠나는 건 싫어요. 흑흑, 이대로 떠나보내기 싫어요…….”하영은 가슴이 미어지는 것을 느끼며 세희의 작은 몸을 힘껏 껴안고 눈물을 흘렸다.“미안, 엄마가 할머니를 제대로 지켜드리지 못했어. 엄마 잘못이야…….”세준과 희민도 퉁퉁 부은 눈으로 어떤 위로를 건네야 할지 몰랐다.“왜?”그때 갑자기 제자리에서 서서 꼼짝도 않고 있던 유준이 잠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는데, 말투엔 가늠할 수 없는 쓸쓸함이 깃들어 있었다.하영은 자책과 자괴감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미안해요.”온몸에 싸늘한 기운을 잔뜩 품은 유준이 입술을 꾹 깨물며 하영 앞으로 다가왔다.“강하영, 대체 왜 나를 망가뜨리고, 우리 어머니까지 망가뜨리려 했는지 얘기해 봐!”‘망가뜨린다고?’하영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미간을 찌푸렸다.“제가 망가뜨리려 했다고요?”“여기까지 와서 아직도 모르는 척할 거야?”유준은 피식 웃었다. 그의 싸늘한 눈빛은 마치 예리한 칼날처럼 하영의 얼굴을 베었다.“강하영, 잘 들어.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을 거야! 어머니 장례식을 치르고 나면 내가 직접 찾아갈 테니까!”유준의 싸늘한 말투에는 짙은 위협이 담겨있었고, 차가운 얼굴에서 어느 때보다 강한 원망을 느낄 수 있었다.유준이 경호원들을 거느리고 몸을 돌려 떠난 뒤에도 하영은 한참 제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하영이 집으로 돌아오고 얼마 지나지 않아 우인나가 집으로 찾아왔다.별장으로 뛰어 들어온 인나는 소파에 홀로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있는 하영의 모습을 보고 가슴이 아팠다.인나는 하영의 곁에 다가와 앉으며 하영의 어깨를 감싸 주었다.“하영아…….”하영은 힘없이 머리를 인나의 어깨에 기대고 쉰 목쇠로 “응.”이라고 대답했다.“하영아, 너무 자책하지 마. 이번 일은 네 잘못이 아니잖아.”인나가 안타까워하며 위로를 건네자,
하영은 유준이 어떤 유년 시절을 보냈을지 감히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그 일이 유준 씨한테 얼마나 큰 상처를 안겨줬을까?’생각만 해도 하영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왔고, 그때 우인나가 또 말을 이었다.“하영아, 지금 문제는 대체 누가 이런 말도 안 되는 사실을 일부러 왜곡해서 언론에 공개했냐는 거야.”하영은 인나의 말에 잠시 생각에 잠겼다.“내 짐작이 맞다면 아마 정주원인 것 같지만, 실검 제목을 보면 마치 내가 사람을 시켜 언론에 공개한 것처럼 나와 있어.”하영은 마음을 가라앉히고 분석하기 시작했다.“왜냐하면 지영 이모 곁에 늘 내가 있었기 때문이지.”“정주원?”인나는 이해가 가지 않았다.“공개하고 싶으면 진작에 하지 왜 오늘에야 하는 건데?”하영도 거기서 생각이 막혔다. 그래도 이 사실을 폭로할 수 있는 사람은 정주원밖에 없었다.이 사실은 극소수의 사람들만 알고 있을 테니까.그리고 이 소식을 접한 사람은 자신과 대립 관계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일부러 유준이 하영을 미워하도록 유도하는 동시에 그를 망칠 수 있으니까.만약 하영만 노린 것이라면 그건 틀림없이 양다인이다.‘하지만 양다인은 유준 씨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왜 유준 씨한테 그런 짓을 한 걸까? 손에 넣을 수 없으니 사랑이 원망으로 바뀐 건가?’“하영아, 혹시 양다인은 아닐까?”인나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있자, 하영은 몸을 곧게 폈다.“그럴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냐!”말을 하며 하영은 휴대폰을 꺼내 소예준에게 전화를 걸었고, 조금 뒤에 휴대폰에서 예준의 부드러운 어조가 흘러나왔다.“하영아.”“오빠, 양다인이 요즘 누구랑 만났는지 알아?”“그건 나도 잘 몰라. 왜 무슨 일 있어?”하영이 예준에게 오늘 있었던 일들을 간단하게 설명해 주자, 소예준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알았어. 내가 사람을 보내 잘 감시해 보라고 할 테니까 너도 조심해. 네 결백을 밝힐 증거를 찾기 전까지 유준의 성격으로 분명 너를 귀찮게 할 거야.”하영은 눈을 내리깔며 대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