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 유현진은 SNS에 이혼 합의서가 첨부된 게시글 하나를 올렸다.“싱글, 만남 추구. PS: 생리적으로 건강한 사람 우선”그녀의 이 게시글은 예전에 그녀가 아무런 예고도 없이 한주 강씨 가문에 시집갔던 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SNS를 뜨겁게 달구었다.헤어지고 난 후, 전 남편이 남성 불임이라는 뉘앙스를 풍기는 게시글을 올리다니.정말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걸까?강한서는 유언비어를 퍼뜨린 언론사를 고소하여 그들이 파산할 지경에 이르게 만든 독한 남자다. 그런 그가 아무런 재산도 갖지 않고 이혼한 전처가 자신을 이런 식으로 얘기하도록 내버려 둘 리가 있을까?하지만 20분이 흐른 후, 누리꾼들은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목격한다. 유현진의 게시글 아래, 새롭게 가입한 계정으로 ‘누군가’가 댓글을 달았다. “날 블랙리스트에서 내보내 줘.”
Lihat lebih banyak손주며느리에 대한 애정을 잔뜩 드러내고 나서야 정인월은 본론으로 들어갔다. “한서야, 내가 법사님에게 민 실장과 민서 사주팔자를 봐달라고 했어. 연말쯤이 두 사람이 결혼하기 제일 좋은 시기라고 하는데 너무 오래 기다려야 해서 마음이 불안하구나.”눈을 파르르 떨던 강민서가 무의식적으로 민경하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민경하는 강민서를 향해 씩 웃어 보였고 저도 모르게 빨갛게 귓불을 물들인 강민서는 재빨리 시선을 돌렸다. 강한서가 웃으며 물었다. “할머니가 왜 불안하세요.”정인월이 말했다. “민 실장처럼 좋은 애가 민서 성격에 못 이겨 도망갈까 봐 그러지. 두 사람이 금방 서로를 알아가면서 민서가 조금이라도 본성을 드러내지 않고 착한 척할 때 아예 결혼을 시켜버리려고 그랬지. 나중에라도 본성이 드러난다고 해도 이미 결혼을 한 이상 민 실장이 후회해도 소용없잖아. 하지만 길일이 되려면 아직도 멀었으니 차라리 약혼이라도 해서 일단 임자가 있다고 못이라도 박아서 못 가게 하면 어떨까, 생각 중이야.”강한서: ...강민서가 어두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할머니! 할머니한텐 제가 얼마나 눈엣가시 같아서 이렇게까지 하시는 거예요!”휴대폰 너머로 순간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곧 어색한 정인월의 웃음소리가 들렸다. “민서야, 네 오빠 곁에 있었니? 밀 실장과 데이트 안 갔어?”민경하가 웃음을 참으며 대답했다. “아뇨, 아직 퇴근 전이라서요.”정인월: ...“하하, 다 같이 있었던 모양이구나. 시끌벅적하네. 하하.”정인월이 바득, 이를 갈았다. ‘이 요망한 손자 놈이, 정말! 할머니를 이렇게 놀려먹어!’어차피 모두 들었다고 하니 정인월은 아예 대놓고 얘기를 꺼내기로 했다. “민 실장, 약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할 생각 있어?”강민서가 주먹을 꽉 움켜쥐고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잠시 침묵하던 민경하가 입을 열었다. “아가... 민서 씨가 원한다면요. 전 상관없어요.”강민서의 심장이 세차게 뜀밖질했다. 쿵쾅쿵쾅. 마치 주변은 온통 자신의 심
휴대폰이 물에 빠지는 소리와 함께 전화가 뚝 끊겼다. 휴대폰을 옆에 놓는 강한서를 보며 민경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강한서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마 뒷담화 당사자에게 들킨 것 같아요.”민경하: ...‘어쩐지 좋아하시는 것 같은 건 착각인가?’“주씨 가문은 요즘 어때요?”강한서가 민경하에게 물었다. 민경하는 곧바로 강한서는 주강운에 관해 묻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주 변호사님은 얼마 전 장씨 가문 따님과 맞선을 보셨어요.”멈칫한 강한서가 물었다. “장준이 외동아들 아니었어요?”민경하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실은 사모님 조카분이세요. 부모님 두 분 다 돌아가셔서 한 달 전 장준 씨의 본가로 호적을 옮기셨어요. 아마 그분을 이용해 정략결혼을 맺을 생각인 것 같아요. 양쪽 가문에서 모두 적극적으로 두 분의 만남을 추진하고 있어요.”그 말에 강한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강운이는 누구보다 장씨 가문의 작태를 싫어해요. 걔는 절대 그 인간들과 어떤 관계로도 엮이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입술을 짓이기던 민경하가 나지막이 말했다. “대표님. 납치 사건의 모든 디테일까지 신경 쓴 사람이에요. 무서울 정도로 치밀한 사람이라고요. 정말 그런 사람에 관한 대표님의 판단이 정확할 거라고 생각하세요?”멍해진 강한서는 입을 꾹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강한서는 민경하가 하려는 말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전엔 줄곧 이해가 되지 않았다. 왜 납치범은 강한서를 주강운으로 착각을 한 걸까. 그러다 기억을 회복한 강한서는 강으로 뛰어내리기 직전까지 내몰던 납치범이 귓가에 속삭이던 말을 떠올렸다. “내 탓 하지 마. 그러게 누가 너더러 이 정장을 입으래?”강한서도 처음엔 정장과 납치가 대체 무슨 상관인 건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그날 강한서가 입은 화이트 정장은 한현진이 선물한 것이었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강한서는 한현진에게 직접 왜 그날 그 슈트를 입으라고 한 건지 물었다. 그러자 한현진도 어이가 없다는 듯 말했다.
“네.” 성월이 나간 뒤 서해금은 초조하게 사무실을 서성였다. 비록 상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 전화는 8년 전의 협박 전화를 떠올리게 했다. 오랜만에 찾아온 불안감이 그녀를 조여 왔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전화기를 들어 박안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당신 8년 전 일... 정말 완벽하게 처리한 거 맞아?” 박안수는 대답 대신 되물었다. “왜 그래?” 서해금은 이마를 문지르며 말했다. “또 그런 전화가 왔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전화.” 박안수는 잠시 멈칫하다가 말했다. “잘못 걸려 온 전화일 수도 있잖아.” “그럴 리 없어. 다시 걸었는데 아무도 받지 않았어. 이 느낌 8년 전이랑 똑같았어. 당신 정말 깨끗이 정리한 거 맞아? 설마 한현진 때처럼 대충 얼버무리고 넘어간 건 아니겠지? 이러다 우리 다 죽어.” “아니야. 확실하게 끝냈어. 진정해.” “내가 어떻게 진정해? 당신이 어정쩡하게 처리한 탓에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불안한지 몰라?” 박안수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냥 전화 한 통이잖아. 아무런 증거도 없어. 8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는데 지금에서야 문제가 생길 리가 없잖아. 괜한 의심은 넣어 둬.” 박안수는 잠시 고민하더니 덧붙였다. “일단 번호 조사해 봐. 나도 직접 가서 확인해 볼게.” 서해금은 마음을 가라앉히며 조용히 물었다. “만약 정말 문제가 생기면... 우리 어떻게 하지?” 박안수는 잠시 침묵하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너희를 지킬 거야. 걱정하지 마.” 서해금은 목소리가 한층 부드러워졌다. “당신 조금만 더 참아. 조금만 더 버티면 끝이야. 우리 반드시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박안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금아, 난 네 말 믿어.” 전화를 끊은 후 서해금의 눈빛에는 방금까지의 다정함이 사라졌다. 필요하다면 박안수를 희생양으로 삼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녀 역시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차라리 좀 한현진처럼 해봐. 쓸모없는 이미지만 안 만들어도 사람들이 뭐라고 안 하잖아. 이미지라는 건 말이야 일단 만들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그 기준으로 널 평가하는 거야. 다른 직원들은 열심히 일하는데 너만 놀고 있으면 어떻게 아무런 불만도 없을 수가 있겠어?” 송가람을 훈계할 때마다 서해금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어릴 때부터 엘리트 교육을 받아 온 자기 딸이 왜 직장에서는 이런 모습인지. 그녀는 수없이 말했다. 회사에서는 조용히 지내라, 말투에 권위적인 태도를 담지 마라, 부하 직원들을 다룰 때는 상과 벌을 적절히 섞어라, 어떤 일이 닥치든 함께 나아가야 한다는 인상을 줘라, 설령 어쩔 수 없이 선택해야 할 상황이 오더라도 사람들이 네가 불가피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게 만들어라, 공적인 자리에서는 반드시 체면을 챙겨야 한다. 하지만 결과 송가람은 하나도 마음에 새기지 않았다. 송가람은 서해금이 오랜 시간 닦아 놓은 길을 따라 회사에 들어왔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송가람은 그 길을 완전히 망가뜨리고 있었다. 반면 한현진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하기 싫지만 아버지 뜻에 따라 할 수 없이 한다는 태도로 들어왔다. 그러니 사람들은 한현진에게 큰 기대를 걸지 않았다. 그런데 그녀가 뭘 하나라도 해내기만 하면 의외로 능력이 있다고 평가하게 된다. 서해금이 송가람에게 아무리 탄탄한 기반을 깔아줘도 송가람이 직원들의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깔린느를 맡긴다 한들 결국 감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송가람은 손을 꼭 쥔 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한현진은 사람 마음을 간파하는 데에 도가 텄다고. 연기력도 수준급이고.” “진짜든 연기든 그게 중요해? 네 일부터 제대로 해. 비서 바꾸고 싶다고? 좋아. 그럼 오늘부터 네 업무는 남한테 떠넘기지 마. 야근할 거면 제대로 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너도 똑같이 해. 버티지 못하겠으면 전부 퇴근시키든가. 그리고 야근할 때 호텔에서 음식
“강한서는 요즘 연락 있어?”강한서는 거의 그녀에게 연락하지 않았다. 언제나 송가람이 먼저 연락하곤 했다. 그러나 그런 속마음을 엄마인 서해금에게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서해금은 항상 남자와의 관계에서 주도권을 쥐라고 경고했으며 절대 남자에게 끌려다니지 말라고 했다.송가람은 동연과의 관계에서는 주도권을 확실히 쥐고 있었고 동연은 그녀의 말이라면 다 따랐다. 하지만 강한서는 달랐다. 그가 먼저 연락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송가람이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강한서는 절대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아니었다. 가끔은 친구라는 명목으로 꽃을 보내며 안부를 전해왔다.송가람이 한 걸음 다가가면 강한서는 한 걸음 물러나는 방식으로 그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 균형이 송가람을 미치게 했다. 다가가면 물러서고 물러서면 다시 다가오는 그 행동이 송가람을 더 혼란스럽고 더 깊이 빠져들게 했다.그렇지만 서해금에게 이 사실을 털어놓으면 또 혼날 것이 뻔했다. 아마도 그로 인해 강한서와의 관계가 멀어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에 송가람은 즉시 고개를 저으며 부인했다.“안 해.”“그럼 그날 어떻게 떠봤는데? 좀 더 자세히 말해봐.”송가람은 자신이 고작 벌레 한 마리에 놀라 쓰러졌다는 사실을 말하는 게 민망해서 거짓말을 했다.“그날 한현진한테 뜨거운 물 부어서 오빠 반응 보려고 했는데 그날따라 그 집 가정부가 계속 거실에 있어서 기회를 찾을 수가 없었어. 게다가 한현진은 항상 날 경계하고 등을 보이지 않으니까 엄마가 시킨 대로 하기 어려웠어.”“엄마 너무 의심하는 거 아니야? 오빠가 한현진 볼 때 눈빛이 엄청 차가웠어. 그 두 사람은 대화가 잠깐이라도 길어지면 바로 싸우기 시작했는데 오빠가 연기를 그렇게 잘할 리가 없잖아. 기억 안 나? 어렸을 때 오빠가 농구하다가 선생님 사무실 창문을 깨버렸을 때 모두가 오빠를 감싸줬는데도 바로 자기가 한 일이라고 승인했잖아. 오빠는 절대 거짓말 못 하는 사람이야.”“어렸을 때랑 지금
서해금은 외투를 벗어 옆에 있는 옷걸이에 걸며 담담하게 말했다.“알고 있어.”“알면서 왜 그 여자를 부른 거야?”송가람은 여전히 이해할 수 없었다.“그 여자랑 오빠가 어떤 관계였는데... 정말 그 여자가 엄마를 위해서 일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안 할 이유는 없잖아?”서해금은 조용히 차를 따르며 대답했다.“해외에서 진짜 잘 나갔더라면 내가 제시한 조건을 받아들일 리가 없겠지. 그렇게 잘 나간다면서 왜 나한테 오겠어?”송가람은 잠시 멈칫했다가 물었다.“그럼 그 이력서 다 가짜란 말이야?”“이력서는 당연히 진짜지.”서해금은 전기 포트 타이머를 설정하고 조용히 자리에 앉았다.“하지만 해외에서 그럭저럭 살아온 건 사실이야. 기초도 없고 인맥도 없는 한국인인데 해외 업계에서 자리를 잡는 게 얼마나 힘든지 너도 알잖아? 게다가 이혼하고 전 남편 가족들도 그 여자를 꺼렸지. 재산도 크게 받은 게 없고. 그런 상태로 해외에 남아서 그냥 그렇게 살아간다면 사람들이 그 사람을 언급할 때는 결국 동정만 할 거야.”“문채영은 자존심도 강하고 야망 있는 여자야. 성인이 되었을 때 가정이 파탄 나면서 어려움을 겪었지만 그때 민준은 그저 지켜보기만 했어. 그때 민준이 뭘 해줄 수 있었겠어? 위로 한마디, 포옹 하나? 그런 거로 위로 되었을 거라고 생각해?”“문채영은 감정에 휘둘리는 여자가 아니야. 자신이 원하는 게 무엇인지 너무 잘 알고 있어. 그렇지 않았다면 왜 민준을 거절하고 자신보다 10살이나 많은 남자랑 결혼했겠어? 미래가 불확실한 소년보다는 이미 성공한 남자가 주는 안정감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거야.”“지금은 어리지도 않잖아. 내가 초대했으면 문채영도 내가 뭘 하려는지 알 거야. 내 제안을 받아들였다는 건 이미 선택을 한 거야. 사람을 쓰려면 의심하지 말고 믿어야지. 다시 만날 때는 네가 가진 편견 좀 내려놔. 문채영과 함께라면 너 결승에 갈 수 있어.”송가람은 조심스레 물었다.“엄마 나 결승에 들게 도와주려고 문채영 초대한 거 아니지? 문채
송민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세은이는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에 안 들면 사람을 무시하는 스타일이야. 내가 암만 말이 많아도 사람들이 날 공기처럼 무시하는 걸 제일 싫어해. 그저 사진 한 장이잖아. 그냥 그냥 두면 되지. 사실 꽤 귀엽잖아.”한현진은 정신을 차리고 주세은을 몰래 쳐다봤다. 한현진은 왠지 주세은이 이 사진에 꽤 신경을 쓰는 것처럼 느껴졌다.“현진 언니.”주세은이 나직이 한현진을 부르자 한현진은 대답했다. “왜?”주세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오빠는 저 사람 아버지도 아니면서 왜 저 사람 사진을 지갑에 넣어두는 거예요?”한현진은 잠시 고민한 후 목을 다듬으며 대답했다.“꼭 아버지만 지갑에 사진 넣으라는 법도 없지.”“그럼 왜 넣은 거예요?”한현진은 나직이 말했다.“무슨 냄새 맡지 못했어?”주세은은 감정에 대한 인지가 매우 둔감하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알아차릴 수 있는 감정의 흐름을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그녀의 후각은 예민하기 그지없었다. 한 번은 강한서가 자신에게 입을 맞추자 한현진은 부끄러워하며 얼굴을 붉혔다. 그 상황에서 한현진은 주세은과 둘만 남았을 때 어떻게 설명할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주세은이 입을 열었다.“저 사람 언니 좋아해요. 저 사람이 내보내는 페로몬은 구애의 신호인데 왜 가람 언니 앞에서는 항상 언니한테 그렇게 차갑게 대해요?”한현진은 그 말을 듣고 물을 삼키다 말고 거의 뿜을 뻔했다. 그녀는 그때 처음 알았다. 정말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향기로 감지할 수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현진은 주세은이가 감정 인지는 둔감하지만 상대방이 내뿜는 페로몬의 향기를 통해 그 사람의 감정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주세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고개를 저었다.“나도 잘 모르겠어.”한현진은 이어서 덧붙였다.“문채영 씨는 오빠의 첫사랑이었어. 거의 우리 형수 될 뻔했던 사람이야. 그런데 어떻게 서해금이랑 엮이게 된 건지 모르겠어. 어쨌든 가능한 한 접촉 안 하는 게 좋
박수 소리가 잦아들자 서해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문채영 씨도 인사 말씀 부탁드립니다.”문채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한현진과 잠시 눈을 마주친 후 시선을 돌렸다.“안녕하세요. 문채영입니다. 서 대표님의 요청으로 이렇게 합류하게 되어 너무 큰 영광이에요. 개인 사정으로 입사가 늦어진 점 사과드립니다. 비록 총괄이라는 직책을 맡았지만 저도 여러분과 같은 조향사고 그저 경험이 조금 더 많고 행운이 좀 더 잘 따랐을 뿐이라고 생각합니다.”그녀의 목소리는 차분하지만 카리스마가 다분했다.“조향은 경험보다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믿는 바입니다. 저의 작은 노하우가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너무 큰 만족감을 얻을 것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그녀의 겸손한 태도와 진정성 있는 발언은 많은 사람들의 호감을 샀다. 현진 옆에 있던 동료들이 속닥거렸다.“예상과 달리 겸손하시네.”“맞아. 원래 저 정도 위치에 있는 능력자라면 프라이드 때문에 어울리기 힘들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역시 선입견은 무섭다니까.”“서 대표가 송가람을 결승까지 올려주려는 수작인가? 이건 뭐 챌린저가 브론즈 버스 태워주겠단 거잖아?”“챌린저도 듀오 가능? 이건 완전 티밍이잖아요.”“쉿~! 조용히 해. 잘리고 싶어?”2회 연속 우승이라... 주세은에게 기회가 있을까? 한현진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드리웠다.한현진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주세은에게 눈길을 돌렸으나 걱정과는 달리 아무 일 없다는 듯 폰 게임 삼매경에 빠진 그녀를 보고 할 말을 잃었다.“세은아, 압박감 너무 느끼지 마.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해. 우승 못하더라도 네가 최고야.”현진은 오빠가 알려준 방식으로 세은을 위로하려 할 찰나, 세은은 별일 아니라는 듯 고개를 들며 입을 열었다.“저 저분 뵌 적 있어요.”“어디서?”“오빠...” 순간 뭔가를 의식한 듯 말끝을 흐리더니 세은은 말을 바꿨다.“누구 지갑 속에서요.”한현진은 그 누구가 오빠 송민준이라는걸 바로 알 수 있었다.강한서가 말하길 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 중이에요?”한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주세은이 고개를 돌려 옆에서 수다 떠는 동료들을 가리켰다.“듣고 있었어요.”한현진도 옆으로 다가가 귀를 기울였다.“서 대표님이 무슨 일로 이렇게 다 모이게 했을까?”“소문에 의하면 조향계 레전드 인물을 영입했다던데. 올해 콘테스트 우승을 노린다나 봐.”“대체 누군데? 입사하는데 임원들까지 모일 정도라니.”“siren이라고 아세요?”“사이렌? 무슨 신호야 그건?”“모르세요? 그 유명한 '사이렌' 향수 만든 사람 말이에요. 원료 가격 폭등시킨 그 레전드 인물이요.”동료들이 흥분하자 목소리가 점점 높아졌다.“2년 연속 우승한 그 분 맞아? 해외에 정착한 거로 아는데. 연봉 아무리 높게 준다고 해도 외국 대기업보다는 못 할 것 같은데 어떻게 모셔 온 거지?”“외국 생활이 적응 안 됐나 보지 뭐. 제 친구도 음식이 입에 맞지 않아 고액 연봉도 포기하고 돌아왔잖아요. 그 정도 스펙이면 연봉은 문제도 아니라고요.”“그래서 그 사람 이름이 뭐라고?”한현진도 귀를 쫑긋 세웠다. 그녀도 서해금이 스카우트한 사람이 꽤 궁굼했다.“이름도 되게 이뻐요, 저도 딱 한 번 들어보긴 했는데...”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홀 문이 열리며 서해금이 송가람 일행을 이끌고 들어왔다.서해금 옆에는 하얀 블라우스에 검은 롱스커트 차림의 여성이 서 있었다. 얼굴을 확인하기도 전에 한현진의 시선은 그녀의 손목에 걸린 보라색 비취 팔찌에 꽂혔다.“저 팔찌 어디서 본 것 같은데...”한현진이 기억을 뒤집어 보려고 할 그때, 그 여성분이 고개를 돌리자 두 사람은 눈이 마주쳤다. 그 순간, 한현진은 그 자리에 굳고 말았다. “아, 생각났어요. 문채영이라고 했어요. siren도 본인 이름에서 따온 거라고 하던데.”동료가 이름을 기억해 내며 덧붙였다.서해금이 고액 연봉으로 스카우트해 왔다던 사람이 문채영이라니, 한현진은 놀라움을 금치 못해 멀뚱멀뚱 보고만 있었다. 현진은 오빠한테서도 들은 바가 없던 일이라 생각이 복
“23번 유현진 씨, 가족분께 연락하셨나요?“이제 간호사가 몇 번째로 유현진을 재촉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고개를 숙여 휴대폰을 흘긋 확인해보았으나 강한서에게 건 전화는 여전히 응답이 없는 상태였다.한주시 북부 환형 육교에서 연속 차량 충돌 사고가 발생하며 버스 한 대가 옆으로 기울다 강에 빠져버렸다. 그로 인해 수십 명의 부상자가 병원으로 이송되었고 그들의 가족들이 하나둘씩 병원에 도착했지만 오직 그녀의 남편은 늦도록 연락되지 않았다.처참했던 사고 현장이 여전히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사고 당시 느꼈던 공포보다 이 순간 밀려오는 서운함에 마음이 더 아팠다.“유현진 씨?”간호사의 부름에 유현진이 번뜩 정신을 차렸다. 그녀의 셔츠는 핏자국으로 얼룩져 있었는데 그 덕분에 새하얀 얼굴이 더 창백해 보였다. 그녀는 목소리가 갈라지고 몰골이 처참했으나 여전히 품위 있게 대답했다.“죄송합니다. 연락되지 않는 것을 보니 지금 좀 바쁜 것 같아요. 제가 직접 사인해도 될까요?”“안타깝지만 그럴 수 없어요. 만약 가족분께서 사인할 수 없다면 병원에 남아 좀 더 지켜봐야 할 거예요. 뇌진탕은 빠른 진단을 내릴 수 없으니까요. 병원에선 당신의 생명과 안전을 책임져야 해요.”유현진은 입술을 꾹 닫고 망설이다가 고개를 들었다. “그럼 제가 다시 전화를 걸어 볼게요.”그녀는 휴대폰을 들고 병실 밖으로 나왔다. 의료 기기를 담은 플라스틱 카트를 들고 지나가던 두 간호사를 만나자 그녀가 몸을 살짝 움직여 길을 비켜줬다. 그때, 간호사 중 한 명이 말했다.“16번 환자, 누군지 알아요?““아뇨. 누구죠?““송민영 몰라요? 엄청나게 유명해요! 얼마 전에 찍은 핫한 드라마 ’비밀의 연인‘에서 여주인공 역할을 맡은 분이에요.““저런! 그분, 많이 다치셨어요?““조금 늦게 오셨어요. 그리고 팔에 스친 상처가 있긴 한데 그때 이미 약간 아문 상태였어요. 하지만 연예인들 얼굴이 간판이잖아요. 당연히 우리 같은 일반인과 비길 수 없죠. 내가 만약 송민영과 같은 얼굴과 몸매...
Kom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