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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작가: 조십일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2-28 17:33:40
뜨거운 열기가 귓가에 뿜어지고 달아오른 체온까지 더해 유현진의 귓불을 뜨겁게 달구었다. 다만 그녀는 복부에 난 멍 때문에 몹시 괴로워하며 입술이 하얗게 질렸다.

다행히 불이 꺼져있어 그는 아무것도 보지 못했다.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의 목젖에 키스했다. 강한서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짙은 눈빛으로 머리를 숙이고 그녀의 목덜미를 한입 물었다. 곧이어 유현진이 담담한 어투로 말했다.

“나 오늘 배란기야, 할 때가 됐어.”

강한서는 몸이 굳어지더니 눈가에 스친 욕망도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살짝 분노에 찬 말투로 물었다.

“네 머릿속엔 온통 이 생각뿐이야?”

유현진은 천장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뜨거웠던 귓불도 서서히 열기가 식었다.

“너희 엄마가 계속 날 다그치잖아. 나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아닌데, 차라리 너 정자 기증할래? 그럼 내가 시험관시술 할게.”

강한서가 비난 조로 되물었다.

“엄마가 재촉한 게 아니라 네가 사모님 자리를 지키지 못할까 봐 아이라도 낳으려는 거 아니야?”

유현진은 가슴을 후벼 파듯 아팠지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옅은 미소만 지었다.

“맞아, 네가 날 버리면 어떡해? 이렇게 해서라도 우리 둘 사이를 더 단단하게 만들어야지.”

강한서는 단추를 채우고 짜증 섞인 눈길로 그녀를 쳐다봤다.

“이런 데 신경 쓰지 마. 난 아이 안 가질 거야.”

유현진의 미소 짓던 얼굴이 조금 굳어졌다. 그녀는 문밖을 나서려는 강한서를 불러세웠다.

“강한서, 넌 대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아니면 내 아이를 갖기 싫은 거야?”

강한서는 걸음을 멈추고 차갑게 쏘아붙였다.

“뭐가 다른데?”

유현진은 주먹을 꽉 쥐고 대답했다.

“같은 뜻이라면 결혼도 아무 의미 없겠지. 이혼해 그냥.”

“네 마음대로 해.”

강한서는 이 한마디를 내뱉은 후 문을 박차고 나갔다.

유현진은 베개를 문에 힘껏 내던졌고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다음 날 아침, 조깅을 마치고 돌아온 강한서는 식탁 앞에 앉아 메일을 확인했다.

아침을 준비한 지 반나절이 됐지만 그는 도통 수저를 들지 않았다. 이에 가정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대표님, 음식을 데워드릴까요?”

강한서는 시계를 보더니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현진이더러 내려와서 밥 먹으라고 해요.”

위층으로 올라갔던 가정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 내려왔다.

“대표님, 사모님이... 안 보여요. 이런 걸 남기셨어요.”

“뭔데요?”

그는 물으며 물건을 건네받았다.

종잇장엔 ‘이혼합의서’라는 글자가 눈에 띄게 적혀있었다.

강한서는 굳은 얼굴로 한 장씩 펼쳐보더니 낯빛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집, 차 그리고 주식까지 반반으로 나눈 걸 보자 화가 나서 실소를 터트렸다.

“생각은 야무지네!”

다만 이혼 사유를 본 순간, 그의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

“남편의 난임으로 정상적인 부부생활을 유지할 수 없어 부부관계가 깨졌습니다.”

강한서는 어두운 표정으로 휴대폰을 꺼내 들어 유현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그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로 울려 퍼졌는데 조금은 얄밉게 들렸다. 강한서는 이를 악물고 그녀에게 물었다.

“무슨 뜻이야?”

“서류에 적힌 그대로야.”

유현진이 담담하게 말했다.

“사인하면 알려줘. 가서 수속 마치고 앞으론 남남으로 지내.”

강한서의 이마에 핏줄이 튀어 올랐다.

“이혼 사유가 무슨 뜻이냐고 묻잖아!”

유현진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을 이어갔다.

“네가 볼 땐 우리 관계가 정상적인 것 같아? 사실 진작 너한테 얘기하려 했어, 한서야. 시간 될 때 병원에 한번 가봐. 어머님이 맨날 나한테 한약을 지어주시는데 내가 아무리 많이 먹어도 무슨 소용이겠어? 문제 있는 사람은 바로 너잖아.”

“유현진!”

말을 마친 그녀는 강한서에게 반박할 기회조차 주지 않은 채 전화를 툭 끊어버렸다.

강한서의 얼굴이 잔뜩 일그러졌고 이에 가정부가 화들짝 놀라 숨도 제대로 고르지 못했다. 유현진은 줄곧 얌전하고 온순한 사모님인데 왜 아무 말 없이 이혼을 결정한 걸까? 게다가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했길래 대표님이 이토록 화를 내시는 걸까?

유현진은 말을 내뱉은 후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이 3년 동안 그녀는 한주 강씨 가문에서 줄곧 억눌려있었다.

다만 후련했던 기분도 잠시, 그날 저녁 호텔 매니저가 그녀의 방문을 두드리면서 더는 이 방에 묵을 수 없다고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유는 바로 그녀가 이곳에 묵을 때 사용한 것이 강운 그룹에서 주문 제작한 룸 키였기 때문이다. 룸 키가 정지됐으니 그녀도 더는 이 스위트룸에 묵을 수 없었다.

유현진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

“물론 그 룸 키는 더이상 사용할 수 없지만 고객님께서 직접 재결제하시면 됩니다. 저희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 고객님, 재결제해드릴까요?”

매니저가 상냥하게 말했다. 이 또한 비즈니스라 손님을 밖으로 몰아낼 리는 없었다.

유현진은 입술을 꼭 깨물며 모든 것이 강한서의 복수라고 굳게 믿었다.

오전에 통화를 마치자 저녁에 바로 그녀의 룸 키를 정지시키다니, 이보다 더 비겁할 순 없었다.

‘내가 전에 눈이 멀었지. 어떻게 저런 녀석을 좋아할 수가 있어?’

“네, 결제해요.”

유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

“며칠 더 결제해드릴까요?”

“일단 한 달만 해주세요.”

“네. 모두 2억3320만 원입니다. 30일을 채우지 못하신 부분은 예약 취소 수수료가 30% 부과됩니다. 지금 바로 로비로 이동하셔서 비용을 지불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유현진은 입이 쩍 벌어졌다. 그녀는 머리를 쓸어 넘기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실례지만 아까 첫 번째 질문을 다시 해주시겠어요?”

매니저는 그녀의 웃음에 멍하니 넋을 놓고 말았다. 유현진은 안 웃을 땐 몹시 도도해 보이지만 미소를 짓는 순간 농염한 자태가 사람을 빠져들게 만드는데 가히 절색이라 할 수 있다.

매니저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몇 초 뜸 들인 후에야 질문을 반복했다.

“고객님, 재결제해드릴까요?”

유현진은 옅은 미소를 머금고 대답했다.

“아니요, 괜찮아요. 체크아웃하죠.”

매니저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사실 좀 더 저렴한 스위트룸으로 바꿔 매달 몇백만 원에서 몇천만 원을 충분히 지불할 수 있지만 잠시 고민한 그녀는 체크아웃하기로 했다.

강한서가 그녀의 룸 키를 정지했으니 아마 그녀의 신용카드도 정지할 게 뻔하다.

재산분할을 반반으로 한 것은 그녀가 홧김에 쓴 내용이다. 결혼 전에 유현진은 집이며 차며 일전 한 푼 내놓지 않았기에 그녀의 몫은 아예 없었다. 혼후 재산은... 사실 그녀는 강한서의 혼후 재산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반반으로 나누는 건 절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잘 알고 있다.

지난 3년 동안 그녀의 노고를 생각하여 몇십억을 나눠준다면 당연히 좋을 테지만 일전 한 푼 없이 빈몸으로 내쫓는 것도 강한서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기에 그녀는 반드시 나중을 위해 계획을 세워야 한다.

어쨌거나 사치스러운 생활에서 검소한 생활로 돌아오는 건 힘든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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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10화

    그녀는 손을 움찔하더니 문을 열 용기가 사라져 몸을 돌려 화장실로 향했다.누구와 결혼하든 똑같다니. 그녀를 선택한 것에 별다른 이유는 없었고 그 사람이 아닌 아무라도 괜찮았던 것이다.그녀는 밖에서 10분 남짓 있다가 마음을 추스르고 다시 돌아갔다.문을 열자 음식들이 모두 테이블에 올려져 있었다. 강한서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확인하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신미정이 그녀에게 앉으라고 손짓하고는 물었다.“왜 이렇게 오래 걸렸어?”유현진이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죄송해요, 방금 속이 좀 더부룩해서요.”신미정은 멈칫하며 그녀의 얼굴을 살폈고 확실히 안색이 창백해졌고 립스틱도 조금 벗겨진 모습에 물었다.“괜찮아? 병원 갈까?”“그럴 필요까진 없어요. 이젠 괜찮아요, 어머니.”신미정이 말했다.“그래도 병원에 가 봐. 임신이면 어떡해?”방금까지 신미정이 왜 그녀의 건강을 걱정하는지 의아했던 그녀는 이제야 신미정의 저의를 알았다. 그녀는 유현진이 임신했을 가능성을 생각하여 행여나 자신의 핏줄이 잘못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다. 유현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답했다.“알겠어요, 어머니.”신미정은 더는 캐묻지 않았다. 그들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지만 유현진은 마치 외부인처럼 대화에 끼지 못했다.그릇에 갈비가 놓이고 유현진이 고개를 돌려 강한서를 보았다. 강한서는 그녀를 보지도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먹고 싶은 거 있으면 알아서 먹어.”아니, 그녀는 외부인이 아니다. 유현진은 가족 모임에 참석한 연기자로서 강한서와 각자 알아서 배역에 맞게 연기하면 되는 것이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그녀는 왠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연기가 필요해? 좋아, 맞춰줄게.’이내 그녀는 아주 매운 닭고기 요리를 강한서의 입가에 가져가며 말했다.“여보, 이거 먹어봐.”강한서는 움찔하더니 이상하다는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유현진은 싱긋 웃으며 부드러운 표정을 지었다.매운 음식을 싫어하는 강한서에게 그녀는 일부러 매운 닭고기 요리를 준 것이다.‘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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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 챕터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7화

    한 때는 재벌가 사모님 모임의 중심이었던 여자가 결국은 모든 사람들의 경멸과 멸시의 대상이 되었다. 그녀는 이젠 더 이상 이 바닥에서 살아갈 수 없을 것이다. 강한서의 페이스북은 점차 새로운 댓글이 달리며 악플을 덮어갔다. 실시간 검색어도 점차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했다. 그중 순위가 제일 높은 검색어는 [강한서 수능 성적]이었다. 발표회가 시작하기 전, 많은 사람은 강한서의 일반적인 재벌 2세와 별반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굳이 다른 점을 얘기하자면 강한서는 그동안 특별한 스캔들도 없이 조용하게 지낸 편이라는 것뿐이었다. 그러나 잠잠하게 지내 온 재벌 2세든, 한껏 존재감을 드러낸 재벌 2세든 네티즌에게는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들에게 재벌 2세는 그저 조상 대대로 물려받은 재부로 손쉽게 좋은 환경과 기회를 누리며 살아온, 아무리 능력이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일반인은 누리지도 못할 사회적 지위와 재부를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누군가 강한서의 수능 성적을 공개했을 때,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수능 만점???][이게 무슨 어나더레벌의 엄친이야?]특례가 있었던 것은 아닐지 의문이 들었지만 강한서는 단순히 본인의 실력으로 수능 만점을 맞았다. 그리고 곧 고등학교 시절 강한서의 성적도 어쩐 일인지 전부 공개가 되었다. 뿐만 아니라 네티즌들은 현재 한성의 핵심팀을 이끄는 사람 역시 강한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팀은 강한서 본인을 포함해 많은 상을 수상한 전적이 있는 팀이었다. 강한서가 대학원 시절 제출한 논문도 주목을 끌었다. 그리고 곧 많은 대학원생들은 그 논문은 바로 전업 저널에서 읽었었던 논문이며 심지어 자신의 논문에도 인용한 적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전문가는 강한서의 논문은 박사 이상의 학벌을 가진 사람이 쓸 수 있는 수준의 논문이라고 말했다...그렇게 많은 사실이 공개되자 사람들은 순간 한성 그룹의 젊은 대표야말로 진정한 천재라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강한서 본인은 그 어떤 인터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6화

    [사람들은 늘 모성애를 노래해요. 엄마의 사랑이라는 게 위대하긴 하죠. 하지만 모든 엄마에게 모성애가 있는 건 아녜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를 옭아매고 자신의 이익을 취하는 엄마에게 아이가 반항을 했다고 해서 그게 불효가 되는 건가요?한서는 졸업 후 지금까지 몇 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매년 학교에 기부하고 있어요. 학교에 장학금 재단까지 설립해 성적이 우수하고 생활이 어려운 아이들을 돕고 있고요. 작년엔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전할 편지를 적어달라고 했어요. 저희는 한서가 아이들에게 열심히 공부해서 나중에 유능한 인재가 되길 바란다는 내용을 쓸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한서는 아무런 고민과 걱정 없이 행복하게 자라기를 바란다고 적었더라고요. 한서는 늘 자기 마음속에 있는 어린 꼬마를 안고 살았던 거예요. 한서가 졸업한지 이젠 10여 년이 흘렀어요. 저희도 그동안 자주 연락하지는 않았고요. 그러다 2년 전 제 남편이 수술을 받게 되었고 해외 유학 중인 아이 때문도 저도 양쪽을 오가며 몇 년 사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있었어요. 하지만 한서는 어디서 그 소식을 들은 것인지 사람을 보내 제 남편의 입원 수속을 도와줬어요. 한서는 누구보다 훌륭한 학생이었어요. 저희 반 학생이 한서 한 명이 아니었고 선생님으로써 아이들 한 명 한 명, 전부 똑같이 마음을 써야 했어요. 그래서 제가 한서에게 특별히 더 잘해준 것도 아니었어요. 전 그저 한서의 담임을 맡았던 평범한 교사였죠. 게다가 지금은 이미 퇴직했고 한서의 사업에도 그 어떤 도움이 되지 않아요. 그럼에도 한서는 담임이었던 저에 대한 고마움을 잊지 않아준 아이예요. 그런 아이가 또 어떻게 친어머니를 버리는 짓을 할 수 있었겠어요?불과 몇 분 전, 이 글을 쓰고 있는 저를 보며 아들이 올리지 말라고 설득하더군요. 지금 여론이 그리 긍정적이지는 않으니 제가 쓴 글 때문에 괜히 저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고 말이예요. 하지만 전 무섭지 않아요. 누구 보다 한서가 어떤 아이인지 잘 알고 있는 제가 조용히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5화

    [이젠 다 어른이 되었으니 저도 고생 끝에 낙이 오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결혼을 하더니 저와 점점 멀어졌죠.]신미정은 송씨 가문의 눈에 날까 두려웠던 것인지 며느리에 관해선 그저 스치듯 짧게 얘기했다. 그녀는 또 긴 편폭을 들여 자신과 신표의 관계를 설명했다. 신표는 어린 시절의 강한서를 구해 준 적이 있었고 신미정은 배은망덕한 인간처럼 그런 동생을 모른 척 할 수는 없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신미정은 그것이 잘못된 방법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이젠 신씨 가문 일에 손을 뗐다며 지금은 그저 아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뿐이라고 했다.신미정은 아마 실력 있는 사람을 찾아 도움을 받은 것 같았다. 일이 이 지경이 되도록 다투고 나서야 그녀는 비로소 강한서와의 사이가 틀어지는 것은 그녀에게 그 어떤 좋은 점도 없다는 것을 인식했다. 오히려 이 일을 빌어 강한서를 가스라이팅하여 본인이 계속 강씨 가문 사모님이로서의 모든 권한을 누리는 것이 신미종의 목적인 것 같았다. 신표는 이미 신미정에게서 등을 돌렸고 강단해는 아내와 아들이 있었기에 모든 걸 버리며 신미정을 거둘 수도 없었다. 그러니 지금 신미정에게 강한서는 유일한 희망이었다. 하지만 언제든 뒤에서 칼을 꽂을 수 있는 사람을 한현진은 강한서 곁에 둘 수 없었다. 신미정이 페이스북에 올린 장문의 피드에 달린 댓글은 두 패로 나뉘었다. 신미정을 이해한다는 여론은 싱글맘의 힘든 처지를 이해하며 아무런 이유 없이 도박하는 동생을 도운 것도 아니고 아들을 구해준 적이 있으니 당연히 은혜를 갚아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은 그저 신미정의 말에 어이가 없다는 태도였다. 아픈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가고, 아이를 보살피는 건 엄마가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 아닌가? 왜 신미정에겐 그것이 아이를 가스라이팅하는 이유가 된 것일까?강한서가 신표의 도박 빚을 갚아주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 그는 심지어 10년 동안 신표를 도와주는 신미정을 묵인해줬다. 강한서는 10년을 참고 나서야 더는 돈을 주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것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4화

    그 키워드들은 하나씩 검색어 순위에 올랐다. 게다가 관련 피드의 내용은 [산군의 바람]의 한 마디에 아무런 실질적인 증거 없는 단순한 언변으로 여론 몰이를 한 계정의 피드와는 전혀 달랐다. 관련 피드에는 모든 증거가 차례대로 나열되어 있었다. 신미정이 직접 서명하고 손도장까지 찍은 부양 포기 각서, 계좌 이체 기록, 신표가 도박했다는 증거와 신미정이 신표를 대신해 도박 빚을 갚은 영수증까지 전부. 네티즌들은 그 증거들은 한데 모아 간단하게 정리했다. 증거로 올라온 캡쳐본만으로도 신미정이 400억에 가까운 돈을 가져갔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돈은 신미정이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데 사용된 것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친정집 동생들을 도와주는 곳에 쓰였다. 인터넷은 순간 토론의 열기로 뜨거워졌다. [부동산 매매도 없이 1년 사이 400억이라니. 역시 재벌은 우리 같은 서민이 상상할 수 있는 삶이 아니야.][한 달에 20억이 넘는 부양비라... 저희 엄마가 이 기사를 못 보게 해주세요. 제가 드리는 20만 원은 엄마에 대한 모욕이라 오해하실까 봐 걱정이에요.][아들은 다리 밑에서 주워온 자식이고, 동생은 친동생네. 감정 완료.] [여론이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바뀌었네요. 한성 홍보팀 정말 대단한데요. 몇 시간 사이 신제품 인기도 급상승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쉽게 강한서 대표의 결백을 주장하다니. 생각들 좀 해봐요. 벼랑 끝에 몰린게 아니라면, 어떤 엄마가 이런 가정사를 인터넷에 폭로하겠어요? 본인 친동생에게 주머니까지 탈탈 털어 주는 사람이 아들에겐 왜 이렇게 각박하게 굴겠어요? 진위를 떠나서, 강한서 대표는 정말 아무 잘못이 없을까요?][사건의 진위를 따지지 않으면 뭘 따지겠다는 거야?][역시 세상은 넓고 미친 X는 많네. 엄마가 강한서 대표 돈으로 삼촌 도박 빚을 갚아줬는데 그 사실을 안 강한서 대표가 자금 지원을 끊었다는 이유로 엄마는 모자 관계를 끊고 심지어 인터넷에 버림받았다는 루머까지 퍼뜨렸는데, 이와중에 강한서 대표는 자기가 뭘 잘못했는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3화

    한성우가 뭔가를 알아차린 듯 눈을 번뜩였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아주머니를 강한서 인생에서 없애버릴 계획이었던 거예요?”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강한서가 그 여자의 노후자금을 주는 건 말릴 생각이 없어요. 하지만 그 여자가 그깟 혈연관계를 빌미로 강한서를 진흙탕에 끌어들이려 한다면 전 그런 기회조차도 줄 생각이 없어요.”말하며 한현진은 눈을 가늘게 떴다. “신씨 가문이 파산했으니 잘 됐네요.”가족마저 등을 돌리고 아무 것도 남지 않은데다 명성까지 전부 잃었으니 이제 신미정은 그 어떤 파장도 일으키지 못할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한현진의 눈에 갑자기 앞줄에 앉아 있는 강단해의 모습이 들어왔다. 강단해를 본 한현진이 조용해졌다. ‘저 아저씨도 있었지, 참. 작은어머니는 저 시동생과 형수 사이의 일을 전혀 모르시는 건가?’한성 그룹의 발표회는 인공지능 전기차를 피날레로 끝을 맺었다. 클래식 음악이 다시 울려 퍼지고 발표회장의 불빛이 밝아졌다. 한성 그룹의 임원들이 차례로 무대에 올라 수많은 취재진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인터뷰가 끝난 후에는 피로연도 준비되어 있었다. 이 인터뷰는 신제품 관련 질문을 받기 위해 마련된 것이었다. 하지만 이런 자리에도 스캔들이나 캐려는 기레기는 존재했다. 다른 사람과는 정상적인 질문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던 기자들이 강한서의 차례가 오자 질문의 노선을 바꿨다. “강 대표님, 요즘 [산군의 바람]이라는 유명 페이스북 계정에서 언급한 강한서 대표님의 생모 부양권 포기 발언이 사실인가요?”“강 대표님, 인터넷에 떠도는 대표님 관련 스캔들이 이번 신제품의 매출에 영향이 있을 것 같나요?”“강 대표님께서 생모를 버리셨다는 얘기가 인터넷에서 큰 이슈를 얻고 있습니다. 네티즌들이 댓글에 한성 제품 보이콧을 외치고 있는데, 이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기레기들은 마치 개떼처럼 모여들어 강한서를 에워쌌다. 그들은 마이크를 강한서의 코앞까지 들이밀었다.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강한서는 연예인도 아니었던지라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2화

    시작부터 이번 신제품 발표회의 히든카드를 내던졌으니 뒤이어 공개될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치는 당연히 한껏 끌어올려졌다. 한성 그룹은 심지어 연예계에서 오스카 공로상 수상으로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명망 높은 배우를 홍보모델로 내세웠고 발표회에 초청했다. 전자제품과 드론의 전시를 마치자 예정되었던 발표회의 시간은 벌써 절반이 지났다. 하지만 현장의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았다. 심지어 누군가 사람들을 대동하여 구호를 외치기 시작했다. “AI 집사! AI 집사!”그 모습에 강한서가 씩, 미소 지었다. 안 그래도 잘생긴 얼굴의 그가 웃기까지 하자 무대의 조명마저도 부드러워지는 것 같았다. 자리에 앉아 무대 위의 명석하고 재치까지 넘치는 남자를 보고 있는 한현진의 심장은 쿵쾅쿵쾅 뛰었다. 그녀의 머릿속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무대 위에서 빛나는 저 남자가 바로 내 남편이라니.’자긍심이 마음속 깊은 곳에서 끓어올랐다. 그녀는 순간 사람들이 왜 무대로 뛰어올라가 공개 프러포즈를 하는지 이해가 되는 것 같았다. 내 남자라고 선언하지 못하는 것이 한탄스러울 뿐이었다. 사랑에 정신줄을 놓은 이성을 가다잡고 한현진은 다시 발표회에 몰입했다. 강한서가 말했다. “사실 오늘 이 제품을 공개할 계획은 없었어요. 하지만 이건 여러분과의 오래된 약속이니까요. 또 이 제품은 이번 신제품 중 제일 기대되는 제품 1위에 선정된 아이이기도 해요. 자, 올라요.”무대의 조명이 출구 쪽을 비추었고 관객들은 숨을 죽이고 이목을 집중했다. 잠시 후, 베이백스와 비슷한 체형이지만 커다란 눈을 가진 로봇이 무대 뒤에서 미끄러지며 다가왔다. 바퀴 달린 로봇의 등장에 사람들의 얼굴에는 순간 실망의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계단 앞에 도착한 루나는 로봇 다리를 내딛어 스스로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그 모습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강한서가 말했다. “걸어서 내려와.”루나는 어린 아이 같은 목소리로 불쌍하게 입을 열었다. “아빠, 걷는 건 배터리 소모가 많아요.”루나의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1화

    한현진이 수수료를 얘기하자 머릿속으로 잠시 계산기를 두드리던 한성우가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 “좋아요. 나중에 두 개 구매할게요.”한현진이 눈웃음을 지었다. “약속한 거예요. 이따 발표회 끝나면 계약서에 사인하러 가요.”말을 마친 한현진이 고개를 돌려 고여정을 쳐다보았다. “여정 씨, AI 로봇 좋아해요...?”한성우가 눈을 씰룩였다. ‘아주 현모양처 납셨네. 발표회가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주변 친구들에게 예매부터 받다니.’현장의 불빛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그리고 곧 무대 위의 스크린이 켜지며 한성 그룹의 로고가 나타났다. 사면팔방에 위치한 스피커에서는 전형적인 아나운서 톤으로 발표회의 시작을 알리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한성 그룹은 오프닝 공연으로 국립교향악단을 초청해 한성 그룹 소비자 브랜드의 주제곡인 [꿈을 좇는 사람들] 라이브를 선보였다. 웅장한 기세의 합창은 현장의 많은 사람이 오랫동안 기다려왔던 신제품 발표회의 개박을 장식했다. 강한서 부양 포기, 한성 보이콧 등 단어가 난무하던 발표회의 라이브 방송 댓글은 전 국민에게 익숙한 선율이 울려 퍼지자 점차 [어나더레벨 한성 발표회]라는 단어로 뒤덮이기 시작했다. 한성 그룹은 국내 스마트 기기 산업 개발의 선두에 서 있는 회사로 가입된 사용자만 수천만 명에 달했다. 한성의 제품은 가전제품부터 자동차, AI 집사까지 이미 국민 생활의 곳곳에 스며들었다. 게다가 끊임없이 기술을 업그레이드하면서 새로운 혁신을 이끌어왔기에 한성은 수많은 충실한 유저를 보유하고 있었다.그들은 한성이 한 발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있도록 독촉할 뿐만 아니라 한성이 3년 동안 누적하다 제출한 성과에 큰 기대를 갖고 있었다. 강한서가 말했듯이 사람들은 그의 사생활에 관심을 가질 정도로 한가하지 않았다. 진심으로 오늘의 이 발표회를 기다려온 사람들은 결코 댓글로 보이콧이나 외쳐대는 인간이 아니었다. 격앙된 대합창은 순간 관중들의 마음을 벅차오르게 했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마지막 음이 공기 중에 흩어졌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20화

    인터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들 프로패셔널한 기자들이라 아무도 인터넷에 떠도는 기사에 대해선 질문하지 않았다. 강한서는 처음으로 공개석상에 모습을 드러냈고 많은 기자들은 오늘이 첫 만남이었다. 다들 한성 그룹의 핵심 부서를 이끄는 사람이 젊고 능력이 있을 뿐만 아니라 외모까지 출중하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그는 연예계의 웬만한 연예인보다도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가진 아우라는 연예인이 감히 비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차분하고 진중한 것은 물론 가벼운 유머감각까지 겸비하고 있었다. 소문으로 듣던 인정사정없는 이미지와는 전혀 달랐다. 전업적인 질문에도 강한서는 거침없이 대답했다. 이번 인터뷰는 전처럼 한성 그룹과의 사전 미팅을 거쳐 합의하에 진행된 것이 아니었다. 이번 인터뷰에서의 질문은 전부 기자들이 인터넷으로 모집한 것이었다. 신제품에 대한 전문가의 의문도 있었고 마니아층의 제품에 대한 기대 섞인 질문도 있었다. 강한서는 모든 질문에 성의 있고 또 그럴듯하게 대답했다. 인터뷰 도중 여자 스태프 한 명이 물을 가져오며 발을 삐끗했다. 그 여자는 그대로 강한서의 품으로 넘어졌고 그는 손을 들어 상대방을 부축했다. 여자의 얼굴을 마주한 강한서는 잠시 멍해졌다. 그러나 그는 곧 손을 떼고 대답을 이어갔다. 여자 스태프가 얼굴을 붉히며 불려나갔다. 대기실에 있는 한현진은 생방송을 통해 그 장면을 지켜보았다. 그녀는 아무렇지 않은 태도로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한현진은 눈살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강민서는 기가 막힌다는 듯 대놓고 한현진에게 물었다. “넌 눈이 멀었어?”한현진이 강민서를 힐끔 쳐다보았다. “맞고 싶어?”한현진을 노려보던 강민서가 한참 만에야 입을 열었다. “딱 봐도 저 여자가 일부러 오빠 몸 위로 쓰러진 거잖아. 평지에서 넘어지는 사람이 어디 있어?”한현진이 태연하게 말했다. “힐이 높아서 실수로 발목을 삐는 것도 흔히 있는 일이야. 오늘 발표회는 모든 일환이 다 너무 중요해. 이런 자리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219화

    회사의 수익이 직원의 수입과 바로 직결되니 직원들의 원동력을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었다. 주식이 낳은 수입으로 인재를 회사에 묶어두고 그렇게 묶어둔 인재로 기술을 발전시켰다. 그 10여 년 동안 한성 그룹은 강단한 손에서 첫 전성기를 맞이했다. 하지만 강단한이 사망하고 강단해가 그 자리에 앉으며 그 규정은 하나씩 변해갔다. 강단해는 몇 몇 대주주들과 상의하여 직원 손에 있던 주식을 꽤 많이 회수해왔다. 한 기업 대부분의 재부가 몇몇 임원 손에 들어갔으니 발전은 당연히 침체될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강단한이 그동안 회사를 탄탄하게 키워왔고 정인월이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강단해를 누르고 있었기에 한성 그룹은 그렇게 오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은 10년 전, 강한서가 나타나기 전까지 쭉 지속되었다. 처음엔 아무도 강씨 가문의 장손을 취급해주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아직 졸업도 하지 못한 청년이 무슨 바람을 일으킬 수 있겠냐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강한서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들여 그들에게 젊은 피의 무서움을 증명했다. 강한서가 회자 자리에 오르는 걸 강단해가 꺼리는 이유는 강한서가 아버지의 못 다 이룬 꿈을 이어갈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주식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면 수입은 줄어들 것이고 그렇다면 강단해는 더 이상 인심을 살 수 없게 된다. 전 직원이 회사의 주식을 갖도록 하는 것, 모든 회사의 대표가 이런 패기와 능력을 갖춘 건 아니었다. 한성 그룹은 국내에서도 랭킹 3위 안에 드는 회사였다. 하지만 지금의 강한서든 당시의 강단해든 단 한 번도 세계 부자 순위에 이름을 올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직원 소유 제도를 실시하는 기업 중에서 한성은 단연 1위를 차지했다. 강한서가 이루고자 하는 것은 발전과 기술 혁신이었다. 그는 주식을 직원에게 나눠줄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자금을 기술 연구 개발에 투자했다. 돈은 그에게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강한서가 원하는 건 한성 그룹을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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