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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Author: 조십일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02-28 17:33:40
유현진이 이를 꽉 깨물었다.

‘오늘 부탁할 일만 없었더라면 당장 이 자식을 발로 확 차버리는 건데! 멀쩡하게 생겨서 왜 얄미운 말만 골라서 하는지, 참. 그냥 말 섞지 말아야지!’

유현진은 스스로를 위로하며 얄미운 남자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그녀는 다 작성한 문자를 민경하에게 보내며 말했다.

“경화로의 ‘화원 향료’라는 가게에서 사면 돼요. 그 집에 향료 종류가 많아서 한꺼번에 다 살 수 있을 거예요.”

“고마워요, 사모님.”

유현진이 자신을 무시한 뒤로 강한서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게 이십여 분이 지나 약속한 레스토랑에 도착했다.

유현진이 차에서 내리려는데 강한서가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목을 빼려 했다.

“움직이지 마!”

강한서의 힘이 어찌나 센지 그녀의 힘으로는 도저히 뺄 수가 없었다. 그런데 네 번째 손가락이 갑자기 차갑게 느껴지면서 다이아몬드 반지가 나타났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어안이 벙벙했다. 이건 그들의 결혼반지였는데 아름드리 펜션에서 나올 때 결혼반지도 함께 두고 나왔었다.

그는 처음으로 그녀에게 결혼반지를 끼워주었다. 결혼식 날 송민영이 나타나는 바람에 강한서는 결혼식이 채 끝나기도 전에 현장을 떠났다. 결국 그녀는 결혼반지를 스스로 손가락에 꼈다.

“엄마가 보시고 괜히 이것저것 물어볼까 봐 그래. 별 뜻은 없어.”

강한서는 그녀의 손을 내려놓았다. 그의 퉁명스러운 말투에 유현진은 생각에서 헤어나왔다. 그녀는 손을 거두며 덤덤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 나도 내 주제를 알아.”

그러고는 차 문을 열고 먼저 차에서 내렸다. 강한서는 어두운 얼굴로 뒤따라 내렸다.

강한서에게 여동생이 하나 있었는데 이름은 강민서였다. 올해 대학교를 갓 졸업하고 두 달 전 친구와 함께 졸업 여행을 갔다가 어제 돌아왔다.

한주 강씨 가문의 가장 막내인 데다가 태어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아버지가 돌아간 바람에 집안 어른들은 특히 그녀에게 더욱 많은 사랑을 주었다. 그러다 보니 안하무인에 오만방자한 성격이 되고 말았다.

금방 시집왔을 때 사실 유현진은 시누이와 잘 지내고 싶어 그녀의 비위를 맞췄다. 하지만 강민서는 집안 어른들 앞에서와 그녀와 단둘이 있을 때의 태도가 완전히 달랐다.

그동안 사이가 좋아지기는커녕 점점 갈등만 심해졌다. 강한서는 늘 강민서 편만 들기 때문에 결국 속상하고 억울한 건 그녀였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면 송민영이 없었더라도 그녀와 강한서는 백년해로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출신, 가정환경 그리고 인생 관념까지 그들은 어느 것 하나 맞는 게 없었다.

그들은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예약룸에 도착했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 보니 강민서와 신미정이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두 모녀는 얼굴이 꽤 비슷하게 닮아있었다. 하지만 신미정은 오랜 세월 쌓아온 고귀한 분위기를 풍겼고 강민서는 훨씬 더 앳되고 상큼했다.

유현진을 보자 강민서의 표정이 급변했다. 그런데 강한서와 눈이 마주친 순간 달콤하게 웃으며 애교를 부렸다.

“오빠! 배고파 죽는 줄 알았어. 엄마가 기어코 오빠가 온 다음에 음식을 올리라고 하지, 뭐야. 왜 이제야 와!”

강한서는 그녀를 힐끗 보며 말했다.

“입에 묻은 기름을 닦고나 말하면 조금 더 믿었을 텐데.”

강민서는 말문이 턱 막혔다.

“짜증 나! 오빠 선물도 사 왔는데 이럴 거야?”

남매가 몇 마디 주고받은 뒤 신미정이 그들을 말렸다.

“됐어, 그만하고 얼른 앉아.”

그러고는 유현진에게 시선을 옮겼다.

“현진아, 종업원한테 음식 올리라고 해.”

사실 종업원이 바로 문 앞에 있어 부르면 될 일이었지만 굳이 그녀에게 시켰다. 아무래도 평소 그녀를 부려 먹는 게 적응됐나 보다.

전에 저택에서 가족 모임을 할 때도 그녀는 늘 끝자리에 앉았다. 왜냐하면 그 자리가 식구들의 심부름을 하기 편했기 때문이다.

이젠 습관이 되어 유현진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는데 강한서가 그녀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그러고는 강민서에게 말했다.

“민서야, 네가 가서 말해. 말하는 김에 와인도 한 병 가져오라고 하고.”

강민서는 언짢아하며 툴툴거렸다.

“새언니가 나간다잖아.”

그러자 강한서가 덤덤하게 말했다.

“이 사람은 엄마가 어떤 술을 좋아하는지 몰라.”

유현진은 그의 손을 뿌리치며 말했다.

“나 알아. 노블 와인 맞죠, 어머님?”

신미정이 고개를 끄덕였다. 유현진은 자리에서 일어나 문밖으로 나갔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강한서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갔다.

종업원과 얘기한 뒤 다시 룸 안으로 들어오려는데 강민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새언니 만만치 않은 사람이야. 엄마 취향뿐만 아니라 할머니 취향까지 빠삭하게 알고 있다니까? 상류층 행세를 하려고 아주 난리야, 진짜. 그때 할머니가 왜 두 사람 결혼 허락했는지 정말 이해가 안 가. 차라리 송민영이 더 낫겠어.”

손잡이를 잡고 있던 유현진은 도무지 발걸음이 떼어지지 않았다. 강민서의 말이 끝나고 강한서의 목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누구랑 결혼하든 다 똑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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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미정은 신표가 자신의 편에 서게 하기 위해 몰래 그에게 돈을 쥐어주기도 했다. 도박을 끊는 건 금연을 하는 것과 비슷했다. 오랜 시간 손을 대지 않을 땐 괜찮았지만 일단 다시 시작하기만 하면 멈추기가 힘들었다. 신표는 또다시 도박장의 단골이 되었고 연년생 아이를 낳은 이윤하는 신표와 회사를 관리할 정력이 없었다. 어렵게 일으킨 회사는 또다시 휘청거렸다. 그러나 그 당시 마침 강한서는 한성을 혼자 이끌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되자 신미정은 강씨 가문의 이름으로 신표에게 투자자를 끌어다주었다. 이윤하는 모든 정력을 아이들의 교육 문제에 퍼부었고 회사 일에는 점점 손을 놓게 되었다. 그녀는 신표가 도박을 하든 말든 가만히 놔두었다. 어차피 신씨 가문의 재산은 대부분 이윤하가 관리하고 있었다. 신표가 도박으로 날린 돈은 전부 신미정이 몰래 그에게 준 것이었다. 얼마 전 주강운이 말한 두 사람의 이혼 소송의 원인은 아마 신표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 그쪽으로 몰래 돈을 빼돌리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나중에 한현진이 강한서와 그 얘기를 꺼냈을 때 강한서는 재산은 어차피 이윤하가 관리하고 있고 내연녀와 새 살림을 꾸릴 용기 따위도 없고 돈이 생기면 바로 도박장으로 달려가는 신표를 어떤 눈 먼 여자가 따라다니겠냐고 했다. 젊은 시절의 신표는 연예인과 견주어도 꿀리지 않는 외모를 가진 남자인 것은 분명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곧 50대가 되는 아저씨였다. 그러니 뭘 보고 그런 남자의 내연녀가 되려고 할까? 중년을 향하는 나이가 마음에 들어서? 아니면 도박꾼이라는 직업이 마음에 들어서?이 일은 생각할수록 이상한 분위기를 풍겼다. 잠시 생각에 잠겼던 한현진이 송민준에게 말했다. “오빠, 이윤하 행적을 알아봐줘요. 채무 상황도요.”다음 날 송민준이 소식을 전해왔다. 이윤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빈해시로 향했다. 그녀의 계좌엔 16억이 들어온 기록이 있었고 그 돈을 보낸 사람은 신표였다. 그리고 신표의 계좌에는 신미정이 한현진에게서 받은 20억이 들어온 기록이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6화

    신씨 가문은 진작 신미정이 결혼 후 몰락하기 시작했다. 신씨 가문의 아들딸이 가진 것이라곤 그저 외모가 전부였다. 두 사람은 아무리 힘을 합쳐도 그럴듯한 아이디어 하나 내지 못하는 수준이었다. 만약 강씨 가문이 아니었다면 신씨 가문은 진작 재벌이라고도 말하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 것이다.강한서가 신미정이 강씨 가문 사모님이라는 명분으로 동생에게 끌어준 자금줄을 전부 끊은 후 전부터 안 좋던 회사 정황은 나날이 바닥을 찍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 신표의 아내가 돈을 빼돌려 도망갔다고? 한현진은 그것이 사실일 거라고 믿지 않았다. 이혼도 하지 않은 상황에 아들딸을 데리고 어디로 도망갈 수 있을까? 설사 도망갔다고 해도 신표에게 돈이 있을 땐 가만히 있다가 하필 돈 떨어진 이 타이밍에?게다가 강한서의 외숙모는 그리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신표는 도박 중독이었다. 신씨 가문 절반 이상의 재산은 전부 신표가 도박으로 날린 것이었다. 그러니 그가 아무리 준수한 외모의 소유자였어도 신씨 가문과 어울리는 집안에서는 도박꾼에서 딸을 시집보내기를 원하지 않았다. 신표의 아내인 이윤하는 신씨 가문에서 지방에 있던 지인을 통해 소개 받은 사람이었다. 그녀는 가정 형편도, 외모도 평범했고 억척스러운 여자였다. 신표는 30대 중반이 되어서야 결혼했고 그가 결혼할 때 강한서는 이미 곧 고등학교에 입학할 나이가 되었다. 그러니 강한서는 그때의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당시 강한서의 외할아버지는 이미 세상을 떠났고 외할머니도 몸이 편치 않으셨다. 결혼식을 준비는 전부 신미정이 짊어지게 되었다. 신미정은 이윤하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이윤하를 거칠고 교양 없는 여자라 생각했고 못생기고 평범한 집안 때문에 신씨 가문에 그 어떤 도움에 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모친이 이윤하를 며느리로 콕 점 찍어둔 상태라 어쩔 도리가 없었다. 이 결혼을 막을 희망이 보이지 않자 신미정은 결혼식에서 이윤하의 기를 눌러 줄 계획을 세웠다. 예물 교환 순서에 사용될 화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5화

    그녀는 그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떠올리며, 멍하니 있던 그 뚱뚱한 물고기를 보다가 참지 못하고 발로 작은 돌멩이를 툭 차 연못에 던졌다.‘퐁당!’ 소리와 함께 뚱뚱한 물고기가 깜짝 놀라 몸을 홱 뒤집었고, 그 꼬리짓에 옆에 있던 작은 잉어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정인월은 눈썹을 씰룩이며 바라봤다.“아이고, 저 건들건들한 짓거리... 왜 우리 큰손주랑 똑같냐?”한현진은 자신이 한 일을 깨닫고 슬그머니 발을 뒤로 뺐다. 그리고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할머니~”그때 은서가 깡충깡충 달려와 한현진의 다리를 꼭 끌어안으며 애교를 부렸다.“이모, 왜 이제 왔어요! 은서 이모 보고 싶었단 말이에요~”한현진은 은서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이모가 너 주려고 작은 선물 좀 사느라 늦었어.”“선물이요?”은서의 눈이 반짝이며 한현진의 소매를 잡아끌었다.“어디 있어요? 빨리 가요!”한현진은 은서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먼저 이 오빠랑 차에 타 있어. 이모는 할머니랑 잠깐 얘기 좀 하고 갈게.”은서는 고개를 끄덕이며 순순히 원율의 손을 잡고 차로 갔다. 아이가 자리를 떠나자, 정인월은 물었다.“그래서, 무슨 얘기를 나눴니?”한현진은 감추지 않고 모든 것을 정인월에게 말했고, 정인월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졌다. 그녀는 한참 후에야 입을 열었다.“그럼 어떻게 하려고?”한현진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한서 씨를 망치게 두진 않을 거예요. 200억은 신미정의 협박값이 아니에요. 그 돈으로 신미정과 한서 씨의 혈연관계를 끝낼 생각이에요.”그녀는 이어 덧붙였다.“물론, 그 돈이 순순히 그 사람 손에 들어가게 두진 않을 거예요.”할머니는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래. 집안을 정리할 때가 된 것 같구나.”그 말을 하고는 갑자기 기침을 터트렸다. 한현진은 급히 다가가 정인월의 등을 토닥이며 진정시켰다. 그리고는 차를 따라 정인월의 잔에 차를 채워드렸다.“할머니, 건강 잘 챙기셔야 해요.”정인월은 차를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4화

    “안 돼!”신미정은 초조한 목소리로 말했다.“2주는 너무 길어! 일주일 안에 끝내!”한현진은 살짝 찡그리며 대답했다.“열흘은 줘요. 일주일로는 정말 돈을 마련할 수 없어요.”신미정은 믿지 않는 눈치였다.“한서가 가진 돈이 얼마나 되는지 내가 모를 것 같아?”한현진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말했다.“설마 나더러 한서 씨에게 돈을 달라고 하라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큰 금액을 요구하면, 당신은 한서 씨가 돈의 용도를 추궁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아니면 당신이 내게 돈을 요구하라고 시켰다는 걸 직접 말하길 바라요?”신미정은 강한서의 감정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협박에 넘어가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애초에 그녀가 찾아온 상대는 한현진이었다.하지만 강한서가 한현진을 너무 철저히 보호하고 있어 접근할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죽은 남편의 유산을 건드릴 생각을 한 것이었는데, 운 좋게 한현진이 직접 나타난 것이다.한현진의 말에 신미정은 잠시 차분함을 되찾았다. 잠깐 고민한 뒤, 신미정은 입을 열었다.“좋아, 열흘은 줄게. 하지만 열흘 뒤에도 내가 원하는 금액을 못 받으면, 너 기다려!”신미정이 자리를 떠난 뒤, 한현진은 담담하게 말했다.“차 안에 녹화된 영상 복사해 주세요.”원율은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알겠습니다.”그는 곧 녹화를 복사하기 시작했다. 한현진은 그가 작업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말했다.“오늘 일은 한서 씨에게 말하지 마요. 그게 어려우면 지금 이 자리에서 떠나요. 제가 두 달 치 월급을 더 챙겨드릴 테니 다른 직장을 찾아요.”원율은 다급히 말했다.“사모님, 대표님이 저를 고용하실 때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사모님의 사람입니다. 사모님의 안전에 관련된 일이 아니면 개인적인 일은 보고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습니다.”한현진은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요. 이제 본가로 가요.”원율은 대답하며 녹화 파일이 담긴 휴대폰을 그녀에게 건넸다. 그는 차를 돌려 강씨 집안의 본가로 향했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3화

    한현진은 신미정을 한 번 흘긋 쳐다보며 말했다.“한서 씨는 매달 당신 계좌로 생활비를 송금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동안 당신이 회사 계좌에서 빼돌린 돈의 증거도 가지고 있죠. 당신이 이길 수 있을 것 같아요?”신미정은 냉소를 지으며 대답했다.“내가 이기든 지든 상관없어. 그런 추문이 퍼지면, 한성의 주가와 한서 선거 표에 아무 영향도 없을 거라고 생각해?”한현진의 미소가 서서히 사라졌다. 세상에 이런 뻔뻔하고 비열한 어머니가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자신의 아들의 인생을 망칠 정도로 이기적인 사람이었다.서해금과 백혜주는 그렇게 악독해도 자식들만큼은 끝까지 보호했다. 그런데 신미정은 대체 뭔가?한현진은 그녀를 말없이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그렇게 많은 돈을 어디에 쓰려고요?”신미정은 짜증스럽게 대꾸했다.“너랑 상관없어. 돈만 보내면 돼. 기한은 3일이야. 안 주면 바로 한서를 고소할 거야!”한현진은 차분하지만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부모와 자식이라는 증거가 없었으면, 진심으로 한서 씨가 당신 친아들이라는 걸 의심했을 거예요. 당신은 한서 씨를 사랑하지도 않았으면서 왜 낳았어요? 낳았으면 왜 돌보지 않았고요? 한서 씨가 이렇게 어렵게 이룬 걸 왜 또 망치려는 거죠? 당신 같은 사람이 어떻게 어머니예요?”신미정은 이를 악물며 대답했다.“우리 모자는 원래 잘 지내고 있었어. 네가 나타나기 전까지는! 네가 재앙이야! 한서가 날 이렇게 대하니 내가 무정한 건 당연하지!”“과시하려고 아들이 물에 빠지도록 내버려둔 게 당신 말로는 잘 지낸 거라고요?”한현진의 말은 신미정의 아픈 곳을 건드린 듯했다. 신미정은 갑자기 격앙된 목소리로 말했다.“네가 뭘 알아? 내가 한서를 엄격하게 키우지 않았으면 지금처럼 될 수 있었겠어?”그 뻔뻔한 논리에 한현진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신미정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할 생각이 없는 듯 다시 냉랭한 태도로 물었다.“말 돌리지 말고, 그 돈 줄 거야, 안 줄 거야?”한현진은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2화

    한현진은 시선을 거두고 진씨에게 말했다.“아저씨, 은서를 데리러 왔어요.”진씨가 대답했다.“은서는 피아노 연습 중입니다. 제가 모시고 가겠습니다.”한현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뒤따르려던 순간, 신미정이 그녀를 불러 세우고는 분노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한현진, 네가 나를 강씨 집안에서 쫓아내고 우리 모자를 갈라놓았으니 아주 만족스럽겠지?”한현진은 걸음을 멈추고 담담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뭐, 나쁘지 않아요. 당신이 조금 더 오래 갇혀 있었다면 더 좋았겠지만요.”신미정의 눈에 증오가 스쳤지만, 이내 억눌렀다. 그녀는 손을 꽉 움켜쥐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얘기 좀 하자.”한현진은 미소를 지으며 차갑게 말했다.“저희 사이에 대체 무슨 얘기를 할 게 있다고 생각하시죠?”한현진은 신미정이 왜 감옥에 가게 되었는지 잊지 않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를 해치려 했던 여자에게 절대 두 번째 기회를 줄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한 가지 궁금한 점이 있었다. 신미정이 왜 갑자기 시아버지의 유산을 요구하기 시작했을까?비록 신미정이 강씨 집안에서 쫓겨났고, 강한서가 그녀와의 인연을 끊으며 최소한의 생활비만 제공했지만, 강민서는 그녀를 완전히 외면하지 않았다.강민서는 여전히 신미정에게 애정이 남아 있었다. 비록 과거에 함정에 빠뜨린 적이 있더라도, 신미정이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준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었다.신미정이 풀려난 날, 강민서는 그녀를 찾아갔고 약간의 돈도 건넸다.강한서가 이 사실을 한현진에게 말하며 은근히 물었다.“내가 민서를 막아야 할까?”한현진은 속으로 헛웃음을 지었다.‘자기 속셈을 모를 줄 아나!’강한서는 신미정을 도와주려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막아섰다가 나중에 신미정이 돈 때문에 사고라도 치면 강민서가 자신을 원망하고 사이가 멀어질까 봐 걱정했던 것이다.하지만 또 막지 않으면 한현진이 오해할까 두려워 문제를 그녀에게 떠넘긴 것이었다.한현진은 애초에 강민서를 막을 생각이 없었다.강민서는 반항적인 성향이 강했기에 억누르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1화

    강한서가 주강운을 잘 아는 만큼, 그는 단기간에 성급하게 어떤 결정을 내릴 사람이 아니었다.은서는 간민혜의 유일한 혈육이었다. 주강운은 최소한 아이를 위해서라도 신중히 행동하며, 이익과 손실을 저울질할 것이 분명했다.한현진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은서를 데려와 펜션에서 지내게 하는 게 어때? 할머니께서 연세도 많으시고, 은서를 돌볼 체력이 없으시잖아. 그리고... 강운 씨 입장에서 보면 은서는 간민혜가 준 치욕의 상징일 텐데, 만약 병이 도져서 은서에게 화풀이라도 한다면 어쩌지?”강한서는 처음엔 주강운이 그럴 리 없다고 말하려 했다. 그를 잘 안다고 믿었으니까.하지만 그 말은 입안에서 맴돌다 삼켜졌다.만약 정말로 그를 이해했다면, 전에 있었던 납치 사건이 벌어지지 않았겠지.그는 잠시 침묵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네 말대로 해.”사실 강한서가 한성우를 통해 주강운에게 은서의 출생 비밀을 넌지시 알린 데는 또 다른 의도가 있었다.주씨 집안을 이용해 문지상의 진짜 사망 원인을 찾아내려는 계획이었다.강한서는 여전히 문지상이 그런 사람이었을 거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그렇지 않았다면 그는 그 어깨장을 그렇게까지 소중히 간직하지 않았을 것이다.다음 날, 한현진은 직접 강씨 집안의 본가로 가서 은서를 데려왔다.그런데 뜻밖의 인물을 마주쳤다.신미정이 구류에서 풀려나 있었다. 그녀는 잔뜩 선물을 들고 정인월을 찾아왔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모양이었다.한현진이 도착했을 때, 그녀는 붉어진 눈으로 진 기사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진 기사, 제발 시어머니께 잘 말씀 좀 해줘.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서 그래. 딱 한 번만 만나게 해주면 안 돼?”진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사모님, 이제 그만 돌아가세요. 어르신께서 몸이 불편하시다며 손님을 받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더는 저희를 곤란하게 하지 말아주세요.”신미정은 계속 사정하며 설득했지만, 진 기사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러자 신미정의 눈빛이 달라졌다.결국 억눌렀던 본심이 드러났다.“내가 강씨 집안을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70화

    한현진은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그날 문지상이 간민혜의 죽음을 두고 강한서에게 했던 말이었다.“주씨 집안 사람들이 한 짓이죠, 그렇죠?”그리고 주강운을 언급하며, 원망이 가득한 목소리로 물었다.“왜 죽은 사람이 그 녀석이 아니죠?”문지상은 주강운, 나아가 주씨 집안 전체에 대한 깊은 적대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주강운은 문지상을 전혀 몰랐다.그렇다면 문지상의 분노는 간민혜와 관련된 어떤 사건 때문일 가능성이 컸다.강한서는 그동안 이 일의 전말을 수없이 되짚어봤지만, 이 부분만큼은 아무리 생각해도 풀리지 않았다.그래서 사건의 핵심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여겼다. 그날의 교통사고로 인해 차량에 있던 모든 녹음 파일이 전부 소실되었다. 차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아무도 알 수 없었다.하지만 간민혜가 위독했던 순간, 그녀는 강한서에게 문지상에게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을 뿐, 주강운에 대해선 단 한 마디도 남기지 않았다.어떤 상황이었길래 사랑했던 연인이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상대에게 한마디조차 남기고 싶지 않을 수 있을까?강한서는 한현진과 이별의 위기를 겪었을 때, 오직 그녀가 살아남기를,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온 마음을 다했다. 그 많은 사랑을 표현하기에도 시간이 너무 짧다고 느껴질 만큼.하지만 간민혜는 수술실로 들어가기 전에 여전히 말할 힘이 있었음에도 주강운에 대해선 한 번도 언급하지 않았다.강한서는 어렴풋이 간민혜가 주강운을 미워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생각했다.그래서 그녀는 삶의 끝자락에서도 그에게 단 한 마디조차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강한서가 말했다.“둘이 헤어졌을 때는 감정이 가장 좋았을 때였어. 헤어지기 한 달 전만 해도 강운이는 나한테 약혼반지가 너무 비싸면 간민혜가 안 받을까 봐 두렵다고 말했고, 간민혜는 나한테 강운이 건강 상태를 계속 물어보며 걱정했지. 그런데 주씨 집안 사람들을 만나고 난 뒤에, 무시당하고 모욕당한 후로는 완전히 떠났어.”한현진은 찡그리며 말했다.“그 때문이라고? 그런데 당신이 전

  • 사모님의 블랙리스트에 대표님이?!   제2169화

    한현진은 마음이 복잡하고 초조했다.한편으로는, 만약 정설희의 죽음이 정말로 장준과 관련이 있다면, 장씨 집안이 그 사진을 이용해 강한서를 곤경에 빠뜨릴까 봐 걱정되었다.그들은 이미 대비책을 마련했지만, 적과 같은 손해를 보는 상황은 결코 최선의 해결책이 아니었다.다른 한편으로는, 무의식적으로라도 주강운이 정서희를 도와 진짜 범인을 찾아내길 바라고 있었다.그녀는 한때 부지런하고 성실했던 소녀가 이렇게 이유도 모른 채 세상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느꼈다.강한서는 그녀의 고민을 알아채고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으며 말했다.“걱정 마. 네 남편 그렇게 만만한 사람 아니야. 뭐든지 다 막을 수 있어.”한현진은 한숨을 쉬며 강한서를 껴안았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당신, 예전에 강운 씨한테 숙주씨 집안 간민혜를 찾으려 했던 일을 알렸지. 그래서 둘이 사고를 당한 것 때문에 죄책감을 느껴서 계속 참고 있는 거 아니야?”강한서는 잠시 침묵한 뒤 조용히 답했다.“꼭 죄책감 때문만은 아니야. 현진아, 나랑 강운이는 단지 어릴 적 친구였던 것만이 아니야. 강운이는 날 대신해 얻어맞고 목숨까지 잃을 뻔했어.”이 일은 한성우조차 알지 못했다.그는 단지 주강운이 19살 때 싸움에 휘말려 야구 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두개골 내출혈이 생겼고, 중환자실에 일주일이나 있다가 일반 병실로 옮겨졌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다.사실 이 사건은 복잡한 일이 아니었다.강한서는 학창 시절 공부에만 몰두하며 연애 같은 것엔 관심이 없었다.하지만 그의 뛰어난 외모는 많은 여학생의 관심을 끌었다.인근 예술 대학의 한 여학생이 교류회에서 강한서에게 첫눈에 반해, 여러 번 학교에 찾아왔다.학과 전체가 예술대학 학생이 강한서에게 반했다는 걸 알 정도였다. 하지만 강한서는 그녀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심지어 동기들이 농담 삼아 그녀에 대해 얘기했을 때, 그는 얼굴을 찌푸리며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강한서는 단순히 사실을 말했을 뿐이었지만, 지나치게 직설적인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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