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진은 헤어 드라이기 전원을 끄고 말리다 만 머리를 빗으며 말했다.“연기 전공하지 그랬어. 너한테 제격인 것 같은데.”차미주가 조심스럽게 가방을 만지며 이를 악물고 말했다.“오늘 얘랑 같이 잘 거야. 꿈에서 부자 돼야지!”“마음대로 해. 하지만 자기 전에 그것 좀 예쁘게 찍어줘.”차미주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사진은 왜? 설마 인스타에 업로드하려고? 누구 샘나게 해서 죽일 일 일어?”“아냐.”유현진이 앉으며 답했다.“팔려고.”“뭐?”“내일 강한서랑 이혼하러 가. 이혼하고 집 하나 장만하려고. 남산 병원과 가까운 곳이면 좋겠어. 인테리어도 마쳐서 바로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곳으로. 엄마도 더 가까이에서 모실 수 있고 얼마나 좋아. 예전에 근처 집들 알아본 적 있는데 마음에 드는 집은 가격이 비싸더라고. 나한테 있는 돈으로는 집 마련하고 나면 얼마 남지 않아. ‘정상에서’ 쪽에서 연락이 왔는데 내가 오디션에서 떨어졌대. 이혼하면 돈이 부족할 테니 그거라도 팔아서 보태야겠어.”“오디션에서 떨어졌다고?”차미주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네가 붙은 건 이미 정해진 일이었잖아. 계약서만 준비하면 된다며. 왜 갑자기 탈락이래?”“나도 물어봤는데 그냥 나랑 안 맞대. 투자자 한 명이 내 목소리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하나 봐. 음색이 너무 성숙하다나.”“흥! 분명 누군가 연줄로 따냈을 거야. 아니면 어떻게 정해진 결과를 번복할 수 있어? 누구랑 계약했는지 알아?”“됐어. 계약서도 쓰지 않았고 구두로 약속한 건 원래 효력이 없어. 그냥 재수가 없었다고 생각하지 뭐.”차미주는 씩씩대며 “낙하산” 을 욕하다가 강한서를 욕했다.“너는 너무 물러 터졌어. 나였으면 바로 강한서가 바람난 증거를 모아서 재산을 몽땅 차지하겠어. 가만두지 않았을 거라고!”“상관없어.”유현진이 시선을 떨구며 말했다.“이젠 신경 쓰지 않아.”오늘 강한서가 내뱉은 말과 그녀를 거리에 버린 사건으로 인해 유현진은 현실을 직시하고 빨리 이혼하여 관계를 청산하기만을
유현진은 얘기하려고 했던 말이 가시처럼 목에 걸려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그래, 강한서가 어떻게 내 버팀목이 되겠어.’“유현진?”강한서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상대방의 이상한 침묵에 그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몇 초 뒤, 유현진의 목소리가 들렸다.“오늘은 일이 있어서 힘들겠어. 다음에 하면 안 될까?”강한서가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다음에 하자고? 유현진, 내가 그렇게 한가한 사람 같아? 이혼을 입에 달고 살던 사람은 너야. 관건적인 순간에 사라진 사람도 너고. 대체 뭐 하자는 거야?”창백한 안색의 유현진은 갈라진 목소리로 답했다.“오늘은 정말 일이 있어. 거기로 갈 수가 없는 상황이야. 네가 편한 시간으로 정해. 무조건 갈게.”“네 장단에 맞춰 놀아줄 시간 없어!”쌀쌀맞게 답한 강한서는 전화를 끊어버렸다.유현진은 폰을 손에 들고 자조적으로 웃었다.매번 강한서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그는 없었다. 실망이 계속되면 기대도 없는 법이다.그녀는 홀로 쓸쓸하게 조용한 대기실에 앉아 있었다. 억겁의 시간과도 같은 한 시간이 흘렀고 간호사가 그녀에게 병동을 옮긴다는 소식을 전했다.하현주는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의사는 유현진에게 그녀의 신체 기능이 쇠퇴하고 있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일렀다.유현진은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고 간병인더러 따뜻한 물을 받아달라고 했다.그녀가 수건을 가지러 가는 모습에 간병인이 급히 말했다.“유현진 씨, 제가 할게요.”“괜찮아요. 제가 할게요. 언니는 쉬세요. 필요하면 부를게요.”그녀의 말에 간병인 역시 병실을 나갔다.유현진은 수건을 적셔 하현주의 몸을 닦았다.사고가 나고 지금까지 6년이 흘렀다. 하현주 역시 이런 상태로 6년 동안 누워있었다.그녀의 모든 근육은 수축되었고 병상에 누워있는 그녀의 몸은 마치 산송장과도 같았는데 매일 수액으로 목숨을 유지할 뿐이었다. 몸도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그녀는 언제라도 유현진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인간은 이상하다. 유현진이 어릴 때 하현주
낮에 날씨가 따뜻한 덕분에 훈훈한 저녁 바람이 불어왔다. 유현진은 집으로 돌아가는 대신 옥상에 바람 쐬러 올라갔다.휴대폰에는 페이스북 DM을 제외하고 차미주가 보낸 카톡밖에 없었다. 그녀는 어디로 갔는데 아직도 돌아오지 않냐고 물었다.유현진은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엄마 보러 왔어.”차미주는 재빨리 답장했다.“어머님은 괜찮아?”“그냥 그래.”“무소식이 희소식이라잖아. 어느 날 갑자기 기적이 찾아오면 의식을 회복할지도 몰라.”그녀의 위로에 유현진은 그나마 기분이 좋아졌고, 이내 답장했다.“네 말처럼 됐으면 좋겠어. 저녁에 먼저 자, 오늘 좀 늦게 들어갈 것 같아.”“알았어. 일 있으면 연락해.”유현진은 그녀에게 하트 이모티콘을 보냈다.“찰칵.”순간 주위가 번쩍 빛이 났다. 재빨리 고개를 돌린 유현진은 몇 미터 떨어진 곳에 휴대폰을 들고 있는 모범생처럼 생긴 남자를 발견했는데, 마침 렌즈가 그녀를 향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꿈쩍도 하지 않고 그녀만 쳐다보았다.고개를 돌린 그녀를 보자 남자는 살짝 놀란 듯 멋쩍게 웃어 보였다.유현진은 입을 꾹 닫고 걸음을 옮겨 남자를 향해 다가가 휴대폰을 낚아채더니 싸늘한 말투로 말했다.“남의 사진을 함부로 찍으면 초상권 침해라는 걸 몰라요? 비번이 뭐죠?”어리둥절한 남자는 피식 웃으면서 숫자 몇 개를 말했다.“0712요.”화면 잠금을 해제하자 갤러리에는 방금 찍은 아래층 야경 사진이 한 장 있었는데, 그녀의 사진은 보이지 않았다.플래시가 터지고 나서 휴대폰을 빼앗기까지 단 몇 초밖에 걸리지 않았기에 상대방은 사진을 삭제할 틈이 없었다. 유일한 가능성은 애초에 그녀의 사진을 찍지 않았다는 것이다.유현진은 할 말을 잃었다. 이러한 대형 참사를 대체 어떻게 만회해야 한단 말인가.방금까지 기세등등하던 그녀는 무슨 수로 이미지를 회복해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는데, 상대방이 먼저 말을 걸었다.“죄송합니다. 단지 아래층 경치가 너무 아름답다고 생각했을 뿐, 오해하게 할 의도는 없었습니다.”유현진도
“약 잘못 먹었냐?”주강운은 들어서면서부터 얼굴에 미소가 끊이질 않았다. 그와 오랫동안 알고 지낸 한성우는 늘 차분하고 점잖은 그의 모습만 보다가 이렇게 어리숙한 표정은 처음인지라 괜스레 등골이 오싹했다.주강운은 옆 테이블에 기대어 앉아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방금 옥상에서 어떤 여자를 만났어.”“뭐?”“내가 도촬하는 줄 알고 휴대폰을 빼앗아가더니 나한테 막 뭐라 하는 거야.”한성우는 눈을 가늘게 떴다.“그런데 기분은 왜 좋아 보이는 거지? 그 여자가 마음에 들었냐?”주강운은 웃기만 할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한성우도 문득 호기심이 들었다. 그는 강한서, 주강운과 소꿉친구였는데, 집안 세력만 따져보았을 때 살짝 약한 편에 속했다. 반면, 한주 주씨 가문과 한주 강씨 가문은 한주시에서 거의 막상막하였고, 주강운 역시 강한서처럼 외동아들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후계자 교육을 철저하게 받고 자랐다.하지만 몇 년 전 주강운이 병에 걸려서 회복하는데 무려 2년이 넘게 걸렸고, 그 뒤로 부모님들도 생각을 바꾸셨는지 크게 관여하지 않았다. 그가 하고 싶은 대로 놔두고 아들의 행복을 우선순위로 정했다.그동안 그는 음악도 배우고, 그림도 그렸으며, 스키도 하고, 레이싱에 빠진 적도 있었다. 관심있는 분야가 한 두 가지가 아니었지만, 하필이면 이성을 멀리해서 사생활이 백지장처럼 깨끗했다. 결국 한성우는 한동안 그의 성적 취향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마저 했었다.따라서 지금 여자한테 관심을 보이는 그를 보자 호기심을 감출 수가 없었다.“네가 말한 그 여자 예뻐?”주강운은 방금 마주친 유현진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녀는 반쯤 말린 긴 머리를 어깨에 늘어뜨린 채 고개를 살짝 들어 먼 곳을 응시하고 있었는데, 어슴푸레한 불빛 속에서도 매끈하고 탄력이 넘치는 피부와 또렷한 이목구비가 돋보였다. 어쩌면 생얼마저 감탄을 금치 못할 정도로 아름다운 사람일지도 모른다.물론 그의 손에서 휴대폰을 빼앗아가는 모습이 더욱 흥미진진하며 임펙트가 강했다.“예뻐.”“이
”이혼이라고? 그게 무슨 말이야?”주강운은 궁금한 듯 물었다.강한서가 결혼 했을 당시 그는 병을 치료하느라 결혼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게다가 대부분 외국에서 지냈기에 강한서의 아내를 만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한성우를 비롯한 사람들한테서 자주 전해 들었다. 얼굴은 예쁜데 너무 착해서 오히려 매력이 떨어지는 그런 여자라고 했다.그때 양심이 하나도 없는 친구 놈들은 단톡방에서 강한서가 3개월 안에 무조건 이혼한다고 내기까지 했었다. 하지만 3개월이 지나 또 다른 3개월이 흘러갔고,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3년이 훌쩍 넘었다.이제 두 사람의 사이가 꽤 돈독해졌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돌아오자마자 이혼한다는 말을 듣게 될 줄은 몰랐다. 한성우의 말투에서 유추해보면 강한서의 아내가 먼저 이혼을 제기했다는 건데, 결국 그는 호기심을 감추지 못했다.이 화제를 언급하는 순간 한성우는 통증 따위 잊어버리고 흥미진진한 얼굴로 말했다.“있잖아, 며칠 전에 우리 둘이 회사에서 한서의 와이프를 마주쳤단 말이야. 한서는 와이프가 자기를 미행하는 줄 알았는데, 와이프 분은 안중에도 없는 듯 한바탕 난리를 피우더니 그냥 가버렸어. 그런데 이놈이 글쎄 부부싸움이라고 우기는 거 있지?”강한서의 표정이 어두워졌다.“그 입 닥쳐.”한성우는 혀를 찼다.“차였으면서 말도 못 하게 해?”강한서의 이마에 핏줄이 불끈 솟아올랐다.주강운이 한성우의 다리를 툭 치자 그는 이쯤에서 물러나 때맞춰 화제를 바꿨다.“참, 한서가 남산 병원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잖아. 지인을 통해 그 여자 좀 알아봐달라고 하면 안 돼?”강한서가 물었다.“웬 여자?”한성우는 방금 병원에서 일어난 일을 한껏 과장해서 설명했다.강한서도 한성우와 마찬가지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지만, 예상외로 거절하지 않고 자세히 캐물었다.“어떻게 생겼는데?”한성우가 너스레를 떨었다.“강운의 말을 들어보면 이 세상에 내려온 천사이지 않을까 싶어.”주강운이 피식 웃었다.“뭐, 분위기는 제법 비슷한데, 한 성깔 하던걸
그 말을 들은 유현진은 막 피어오른 희망이 한순간에 사그라들었고, 이내 의기소침한 목소리로 물었다.“그럼 단지 우연이라는 말인가요?”의사가 위로를 건넸다.“그건 모르는 일이에요. 눈동자가 움직인다는 건 나쁘지 않은 현상이죠. 다만 단정 짓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뜻입니다. 어쨌거나 의식을 잃은 지 좀 오래되어서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말씀해주세요.”유현진이 고개를 끄덕였다.“감사합니다.”의사가 떠난 후 유현진은 침대 옆에 앉아 한참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병원을 나서기 전에 그녀는 간병인에게 팁을 챙겨줬지만, 상대방은 안 받겠다고 한사코 거절했다.유현진이 말했다.“아주머니, 받으세요. 제가 평소에 자주 오는 것도 아니고 아주머니께서 모든 일을 케어해주시는데 이것마저 거절하면 마음이 편치 않네요. 앞으로 우리 엄마가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저한테 연락해주세요.”“당연하죠. 그게 제 일인걸요.”이렇게까지 얘기하는 그녀 때문에 간병인도 더는 거절하지 못했다....밤늦게 아파트에 도착했을 때 차미주는 여전히 깨어 있었는데, 단톡방에서 문자를 보내느라 무아지경이었다. 옆에는 TV가 틀어져 있었고, 마침 ‘보이스’라는 예능 프로그램이 방송 중이었다.“왔어?”유현진은 대답하고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푹신한 소파에 몸을 맡기자 온종일 팽팽하던 긴장이 그제야 조금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꼴이 그게 뭐니? 어머님은 괜찮아?”“아직은.”유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이혼은 못 했어.”“난 또 뭐라고.”차미주는 그녀의 입에 체리 한 알을 넣어주었다.“오늘 실패했다고 해도 나중에 다시 만나서 해결하면 되잖아.”유현진은 그녀가 말한 것처럼 긍정적으로 여기지는 않았다. 오후에 걸려온 전화에서 강한서의 말투를 들어보면 아마도 자신이 일부러 약속을 어긴 줄 알고, 심지어 또다시 ‘밀당’한다고 오해하는 느낌이 강했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놓치면 다시 약속을 잡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였다.그녀는 강한서에게 문자를 보내
“그건 내가 너에 대한 확신이 있기 때문이야. 네 덕에 별장에서 살아보길 기대하고 있으니까 얼른 대답하라고.”유현진은 한숨을 내쉬었다.“좀 더 생각해볼게. 촬영은 다음 달이라서 아직 시간은 많아.”다음날 유현진은 아침 일찍 물건을 챙겨 한성그룹으로 찾아갔다.강한서와 결혼한 3년 동안 이 건물에 발을 들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지만, 이혼 때문에 처음 찾아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유현진은 옷매무새를 정리하고 심호흡을 하더니 안으로 들어갔다.한성 그룹은 한주시를 대표하는 기업으로서 건물은 한주시에서 가장 번화한 곳에 있었다. 혁신적인 건물 외관은 이미 한주시의 유명한 랜드마크가 되었고, 내부는 웅장하고 화려하며 사람들의 모습이 비칠 정도로 반짝반짝 빛나는 천장이 돋보였다.그녀는 호기심 어린 표정을 지우고 곧장 프런트 데스크로 걸어갔다.“안녕하세요, 대표님 사무실은 어디 있죠?”젊고 잘생긴 청년이 프런트 데스크를 지키고 있었는데, 목소리마저 듣기 좋았다.“혹시 예약하셨을까요?”유현진은 고개를 저었다.“죄송합니다. 사전에 약속이 없으면 대표님께서는 손님을 접대하지 않습니다.”유현진이 말했다.“그럼 전화해서 유현진이 찾는다고 말해주시겠어요?”프런트 남자직원은 깔끔한 옷차림에 예의도 바르고 미모까지 갖춘 그녀를 보자 사실인지 아닌지 확인하기도 전에 전화를 걸었다.얼마 안 되어 상대방은 전화를 끊었고, 이내 남자직원이 예의 바르게 말했다.“죄송합니다. 대표님께서 유현진이라는 사람을 모른다고 하십니다.”유현진은 어이가 없었다. 이건 대놓고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그 사람은 제 남편이에요. 다시 전화해서 물어봐 주시겠어요?”프런트 남자직원은 귀신이라도 본 듯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는데, 마치 아내란 사람이 남편과 연락이 닿지 않는다는 게 말이 되냐고 하는 것 같았다.유현진은 휴대폰을 꺼내 강한서와 같이 찍은 사진을 찾아서 자신 있게 말했다.“이제 믿을 수 있겠죠?”프런트 남자직원은 예의상 미소를 지었다.“둘이 같이
사람들이 잇달아 고개를 돌렸고, 강한서는 한참이 지나서야 겨우 기침을 멈추었는데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다들 대표님이 조금 전 업무 보고에 불만이 있는 줄 알고 감히 찍소리도 못했다.강한서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살짝 틀더니 민경하와 나지막이 몇 마디 주고받고는 다시 똑바로 앉아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계속하시죠.”모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고, 민경하는 소리소문없이 회의실을 나섰다.아래층 접견실.유현진은 소파에 앉아 무료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의 잡지를 뒤적거리고 있었다.등 뒤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민경하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사모님, 왜 연락도 없이 찾아오셨어요?”길을 안내하던 프런트 남자 직원은 동공이 마구 흔들렸다.‘저 사람이 진짜 대표님의 와이프라고? 그렇다면 대표님은 왜 모르는 척한 거지?’하지만 더 중요한 건 방금 사모님이란 사람한테 그런 사진을 찍어줬다는 사실이었다.남자 직원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순간 500대 기업에서의 커리어가 끝장났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장난이 이토록 심한 부부가 어디 있냐는 말이다.유현진은 잡지를 내려놓았다.“전화했는데 민 실장님이 너무 바빠서 못 들었나 보죠.”민경하는 유현진이 연락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받으면 안 된다는 대표님의 지시에 모른 체할 수밖에 없었다.그는 비아냥거리는 유현진의 말뜻을 눈치채지 못한 척 말을 이어갔다.“정말 죄송합니다. 아까 회의 중이라서 휴대폰은 사무실에 두고 갔어요. 물론 사무실을 나서기 전에 제대로 알려주지 못한 제 탓입니다. 비서 사무실의 안내원이 신입이라서 일할 때 누락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인데 애꿎은 사모님께 폐를 끼쳐드렸네요. 이쪽으로 오시죠.”그의 말에는 허점이 전혀 보이지 않았다. 방금 강한서가 그런 사람을 모른다고 했을 때 현장에 없었더라면 그녀는 철석같이 믿었을지도 모른다.모두 한통속이라니!두 사람이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후에야 민경하가 물었다.“사모님, 회사에는 어쩐 일이시죠?”유현진은 손에 든 박스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