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약 평소였다면 수현은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거다.하지만 지금의 그는 이 일을 진지하게 추궁하고 있었다. 그리고 현재 두 사람은 마주 보고 있었고 절박하게 진실을 원했던 수현은 이 물음을 물은 후, 시선을 줄곧 소영의 얼굴에 두면서 표정의 미세한 변화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조금이라도 정신줄을 놓았다간 진실과 함께 스쳐 지날까 봐 걱정되었다.그래서 그는 지금 소영의 변화를 하나도 놓치지 않았다. 원래 가늘게 뜨고 있던 두 눈은 이제 위험한 기색이 역력했다.“기억하지? 좋아. 그럼 물어볼 게 있어.”소영은 정신을 차린 후, 아까 표정 관리가 철저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식하고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착한 자태를 되찾았다. 그리고 수현을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지만 되게 오래 지난 일 아니야? 왜 갑자기 이 일을 꺼내? 설마 그때 내가 수현 씨 핸드폰 망가뜨린 건 아니지?”“아니야.”“그럼 뭔데?”수현은 복잡한 시선으로 그녀를 보았다.“왜 그랬어?”소영은 숨통이 턱 막히는 것만 같았다.‘알, 알고 있었어? 아니면 왜 이렇게 묻는데?’그녀는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다.“뭐, 뭐? 그때 스팸 메시지 한 통 삭제했을 뿐인데, 왜 그래?”이 말을 듣자, 수현의 표정은 순간 어두워졌다.“내가 언제 스팸 메시지라고 했어?”“...”소영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너 되게 긴장한 것 같다?”“난...”“그때 네가 삭제한 거 스팸 메시지 아니었지? 그렇지?”수현의 시선은 마치 칼날 같았고 소영의 어깨를 쥔 손에도 점점 힘이 들어갔는데 마치 그녀의 뼈를 부수기라도 할 듯싶었다.소영은 찌릿한 아픔을 느끼고 눈썹을 찌푸렸다.“수현 씨, 나 아파.”하지만 수현은 듣지 못한 것처럼 여전히 손에 힘을 넣었고 눈빛도 더 어두워졌다.“말해. 그때 삭제한 메시지가 도대체 뭐야? 윤아가 나한테 보낸 거지? 임신했다고 말하지 않았어?”“아니야, 난 아니야...”처음에 아프다고 말했을 때 소영은 수현이 자신을 조금이라도 걱정해 주기를 바랐
수현은 차갑게 석훈을 한 번 쳐다본 후, 시선을 다시 소영에게 돌렸다.“똑바로 말해.”“나, 난 수현 씨가 도대체 뭘 말하는지 잘 모르겠어. 만약 메시지 일이라면 이미 알려줬잖아. 내가 삭제한 건 그냥 아무 쓸모가 없는 스팸 메시지였고 다른 건 없었어. 아까 수현 씨가 말한 임신 메시지는 난 몰라.”수현은 이 말에 가볍게 비웃었다.“모른다고? 난 핸드폰을 계속 갖고 다녔어. 너 외에 다른 사람에게 핸드폰을 준 적이 없다고. 네가 내 핸드폰을 가져갔을 때 하필 스팸 메시지를 지웠고, 또 하필 그때 내가 윤아가 보낸 메시지를 받지 못했어. 세상에 어떻게 이 정도로 우연한 일이 있어?”지금 소영은 이미 눈물범벅이 된 상태였다.“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나도 수현 씨한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어. 하지만 그날 지운 건 맹세코 스팸 메시지야. 수현 씨가 말한 그건 난 정말 몰라. 수현 씨,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도 몰라? 만약 수현 씨를 해칠 마음이 있다면 강에 뛰어들어 수현 씨를 구하지 않았을 거야. 난 수현 씨를 위해 목숨도 버릴 수 있는데...”목숨을 구한 일을 꺼내자, 수현의 표정에는 드디어 조금의 변화가 생기면서 소영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에 힘도 조금 풀렸다.소영은 이걸 보자 눈물을 뚝뚝 떨구었다.“난 윤아 씨가 수현 씨한테 뭘 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제발 날 믿어줘. 난 언제나 수현 씨 편이야. 어떤 일이 발생하든 수현 씨를 해치지 않을 거고, 그렇게 떳떳하지 못한 일을 하지 않을 거야.”수현은 여전히 소영의 말에 믿음이 가지 않았다.그러나 소영이 그의 목숨을 구한 일을 꺼내니 수현은 확실히 마음이 약해졌다.그녀가 목숨도 마다한 채 강에 뛰어들어 자신을 구한 걸 떠올리자 그는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소영이 아니었다면 강에서 죽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정말 소영이 메시지를 지웠다고 해도 그녀가 인정하지 않으니 수현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생명의 은인에게 지나치게 몰아붙일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신세를 지고 은혜를 입었
윤아는 두 아이와 함께 병실에 들어간 다음, 밖에 일에 관심을 두지 않았다.심지어 중간에 밖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려와 아이들이 궁금해 미칠 지경이어도 그녀는 아주 담담하게 행동했다.“훈아, 윤아. 밖에 일에 신경 쓰지 마.”“하지만...”윤이는 조용히 말했다.“고독현 아저씨가 다른 사람이랑 싸우는 것 같단 말이에요. 엄마, 정말 말리지 않을 거예요? 만약 아저씨가 다치기라도 하면...”이 말을 듣자, 윤아는 참지 못하고 윤이를 한 번 바라보았다.“윤이는 고독현 아저씨가 많이 걱정돼?”윤이는 큰 눈을 동그랗게 떴는데 아무런 꿍꿍이도 없는 모습이었다.“고독현 아저씨가 윤이랑 오빠한테 벌로 계속 밥 사겠다고 했단 말이에요. 만약 아저씨가 다치면 우리한테 밥 사주지 못하잖아요.”“...”윤아는 어이가 없어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진수현 이 인간 정말, 내가 자고 있을 때 아이들에게 무슨 소리를 한 거야?’“윤아, 걱정하지 마. 만약 고독현 아저씨가 맞아서 다치기라도 한다면 엄마가 밥 사줄게. 응?”윤아는 두 아이를 부드럽게 교육했다.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병실 문이 열리면서 수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뭘 말하고 있었어?”윤아는 수현이 이렇게 빨리 들어올 줄 몰라 멈칫했다.원래 소영과 석훈이 함께 그를 찾아왔기 때문에 꽤 오래 상대할 거라고 생각했었다.윤아는 고개를 돌려 수현의 뒤를 보았지만 익숙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그러나 수현은 윤아가 뭘 찾는지 알아챈 듯 이렇게 말했다.“안 봐도 돼. 돌아가라고 했어.”이 말에 윤아는 시선을 거두었다.수현은 윤아를 보며 메시지 일이 떠올랐다.비록 소영이 인정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이상한 반응을 보니 거의 확신할 수 있었다.소영의 말 대로 그녀는 수현을 해치는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대가 그가 아닌 윤아라면 어떻게 될까?확신할 수 있는 건 그녀는 분명 수현을 대하듯 윤아를 대하지 않을 거다.뒤에 벌어질 일들을 떠올린 후, 수현은 윤이와 훈이를 한눈 보고 아이들에게 다가
수현은 못 말린다는 표정을 지었다.“왜 그렇게 생각해? 난 그냥 묻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래. 나한테 임신했다는 메시지를 보낸 다음 누가 널 만나러 갔어?”윤아는 멈칫했다. 그때 메시지를 보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영이 그녀를 찾아와 그 말을 했었다.수현은 윤아의 표정을 보자 분명 누가 그녀를 찾아갔다는 생각이 들었다.“정말 누가 널 찾아갔어? 누구야?”윤아는 직접 대답하는 대신 수현을 바라보았다.“지금 이걸 왜 물어보는 거야? 내가 말하면 믿을 수 있어?”놀랍게도 수현도 진지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만약 내가 너도 믿지 못한다면 또 누굴 믿을 수 있는 건데?”그의 눈빛은 매우 진지했는데 그녀가 무슨 말을 해도 믿을 것 같았다. 이런 믿음에 윤아는 어릴 때로 돌아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그때 두 사람 사이의 감정은 두말할 것 없이 좋았다. 비록 사랑 정도 까지는 아니었어도 서로는 서로에게 가장 믿음직한 사람이었고 모든 정서와 비밀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때는 두 사람 사이에 제삼자도 끼지 않았다.하지만 나중에... 두 사람은 모두 컸고 중간에도 다른 많은 것들이 자리를 잡았다.“윤아야?”윤아가 계속 말이 없자 수현은 그녀를 불렀다. 윤아는 정신을 차린 후, 수현을 한참 동안 보다가 결국 한마디를 던져주었다.“확실히 누군가가 날 찾아왔었어. 하지만 그게 누군지 안다면 넌 엄청 놀랄 걸. 강소영 씨야.”소영의 이름을 듣고 수현이 아주 놀랄 거라고 생각했지만 그는 지금 이미 예상했다는 표정을 지었다.윤아의 마음속 의혹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래서 그녀는 또 한마디 물었다.“네가 강소영 씨한테 날 찾아오라고 하지 않았어?”“뭐?”“내가 왜 강소영한테 널 찾아오라고 했겠어?”윤아는 수현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그의 미세한 표정을 하나도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의 반응을 보니 거짓은 아닌 듯했다.그녀는 입술을 꾹 다물며 속으론 여전히 믿음이 가지 않아 수현을 계속 떠보았다.“난 네 핸드폰에 메시지를 보냈어. 네가 보내
“다 물어봤지?”윤아는 담담한 표정으로 수현을 보았다.“네가 알고 싶었던 일을 다 알았으니까 이제 더는 날 귀찮게 하지 좀 말아줄래?”이 말을 듣자, 수현은 고개를 번쩍 들며 믿을 수 없다는 듯 그녀를 보았다.“난 그 메시지를 보지 못했고 너한테 아이를 포기하라고 하지도 않았어. 너도 방금 알았잖아. 그래도 날 밀어낼 거야?”윤아는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메시지를 보지 못한 게 내 탓이야? 넌 핸드폰을 다른 곳에 함부로 두지 않는 사람이야. 하지만 넌 강소영 씨한테 핸드폰을 여러 번 빌려줬어. 그러니까 설령 무슨 일이 벌어졌다고 해도 그건 네가 감당해야 할 결과야. 진수현, 비 오는 그날 잊지 않았지? 네가 클럽에 있을 때 내가 장난으로 보낸 메시지를 받고 클럽에 우산을 건네러 갔다가 아래층에서 네 친구들한테 놀림당한 일 말이야.”“그거 알아? 클럽에 가기 전에 난 금방 병원에서 임신 진단을 받았었어.”윤아의 말에 수현은 주먹을 꽉 쥐었는데 동공마저 흔들렸다.“그땐 나도 참 단순했어. 이 기회에 너한테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었거든. 비록 우린 쇼윈도 부부였어도 아이가 생겼으니까 너한테 알려주면 어쩌면 네가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뭐, 아쉽게도 클럽에 가자마자 한바탕 희롱이나 당했지만 말이야.”전에 그녀에게서 이런 얘기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지금 이걸 들으니 수현은 온몸이 차갑게 식으면서 벼랑 끝에 떨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좋은 소식의 기쁨을 그와 함께 나누려고 했지만 결국 장난의 주인공이 되어 버렸다.어쩐지 그날 집에 돌아갔을 때 윤아가 비에 흠뻑 젖은 모습이더라니...그때 그녀는 얼마나 절망스러웠을까?더욱 끔찍한 건 그날 저녁에 수현이 그녀에게 이혼을 제안했었다.그래서 임신처럼 중요한 일을 메시지로 보냈던 거구나... 아무리 용기를 내도 자신을 마주할 엄두가 없었을 거다.이렇게 생각한 수현은 마음속에 후회만 한가득 남아 있었다.“미안해. 그땐 나도 몰랐어...”미안하다는 수현의 말을 들었지만
여기까지 생각한 윤아는 어쩔 수 없이 이렇게 말했다.“다른 사람이랑 만날 생각이 없어. 난 그냥 혼자 두 아이랑 살 거야.”“그렇다면 왜 내가 도와주면 안 돼?”그는 씁쓸한 마음으로 간신히 입을 열었으나 목이 메어와 목소리도 잘 나오지 않았다.“어쨌든...내가 아이들 친 아버지잖아.”“그냥 혈연관계가 있을 뿐, 뭐 중요하지 않아.”윤아는 담담하게 한마디 했다.중요하지 않아...중요하지 않아...수현의 귀가엔 윤아가 한 이 말만 맴돌았다.그는 휠체어에 앉은 윤아를 한참 동안 바라본 후, 쓴웃음을 지었다.하긴, 혈연관계가 있다고 뭐 달라질 게 있나. 5년이나 되는 시간 동안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는데.하지만 윤아가 다른 남자를 만나지 않겠다는 소리를 듣자 수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만약 그녀 곁에 다른 사람이 없다면 어쩌면 앞으로 기회가 있을지도 모른다.지금 가장 중요한 건 그녀의 건강이었다.생각을 정리한 후, 수현은 얼른 윤아에게 가장 유리한 결단을 내렸다.“좋아. 네가 말한 대로 할게.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네 몸 상태야. 아직 검사 결과가 나오지 않았어.”이 말을 듣자, 윤아는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수현을 한눈 보았다. 그녀와 다투지 않고 너무 빨리 동의해서 그런지 윤아는 조금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설마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지 않겠다는 말을 듣고 마음을 접은 건가?역시나, 남자의 독점욕은 참...5년 전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윤아는 고개를 푹 숙이면서 차가운 웃음을 지었다.수현은 이걸 눈치채지 못했다. 설령 눈치챘어도 지금의 그는 그저 모른 척할 수밖에 없었다.검사 결과가 나온 후, 윤아의 이마 상처에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한 수현은 그제야 그녀에게 퇴원 절차를 밟아 주었다.퇴원한 다음 수현은 윤아와 아이들을 집에 데려다주었다.원래 윤아는 수현을 집에 들이고 싶지 않았지만 문이 열리자마자 수현이 두 아이를 데리고 잽싸게 들어가는 바람에 입을 열 기회도 없었다.그녀가 문어구에 서서
여기까지 듣자, 윤아는 더는 입을 열지 않았다.윤아가 말이 없는 것을 본 수현은 그녀에게 눈길을 돌렸다. 아마 윤아의 표정이 이상한 것을 발견하고 그는 얼른 설명했다.“오해하지 마. 널 나무라는 게 아니야. 그냥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 보니까 여러 가지 재미있는 활동이 필요하고 생각해서 그래.”윤아는 조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네 뜻은 알겠지만 불가능한 일이야. 설마 그런 활동 장소를 집에 만들 거야?”그러나 놀랍게도 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응.”“...”원래 수현에게 이런 장소를 아무나 집에 지을 수 있는 거냐고 불평을 토로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입에서 말이 나오려고 할 때 수현의 전 재산과 전에 귀국할 때 그녀에게 준 거액의 재산을 생각하니 순간 말문이 막혔다.단언컨대 그녀가 허락하기만 하면 그는 분명 사람을 시켜 집에 아이들이 놀 공간을 만들 것이다.“어때?”역시나 그녀가 대답하지 않자 수현은 또 물었다.윤아는 조금 짜증이 났지만 두 아이 앞에서 심한 말을 내뱉고 싶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돌려 도우미에게 말했다.“아이들을 데리고 내일 시간표를 보러 가주시겠어요?”계속 로봇처럼 옆에서 대기하고 있던 도우미가 이 말을 듣자 얼른 다가와 알겠다고 했다.“알겠습니다.”그리고 도우미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아이들이 자리를 뜨자마자 윤아는 얼른 말했다.“병원에서 잘 얘기하지 않았어? 나랑 두 아이를 놔주기로 했잖아.”“응.”수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약속했었어. 하지만 그거랑 너한테 제안한 게 모순돼?”“아니야. 난 그냥 네 제안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왜?”“왜라고? 필요 없기 때문이야. 그리고 그런 공간을 마련할 돈도 없고. 알겠어?”이 말을 하는 건 사실 거절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수현이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모르겠다.“돈은 나한테 있어. 사람을 시켜 만들어 놓으라고 할 테니까 너랑 아이들은 그냥 이사 오기만 하면 돼.”윤아는 눈썹을 찌푸렸다.“그건 전에 우리가 얘기했던 거랑 다르잖아.”
“그리고 당신이 원하지 않는 건 그렇다고 쳐. 근데 아이들한테는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 애들도 원하지 않는지?”“내 아이들이니 내 말을 들어야지.”윤아는 쌀쌀하게 대꾸했다.그런 윤아의 태도에도 수현은 화를 내지 않고 차분히 얘기했다.“내일 사람 불러서 설계도를 만들 거야. 설계도를 보고 당신 마음에 들면 그때 다시 시공을 시작할게. 오늘은 우선 푹 쉬어. 상처에 물이 안 닿게 조심하고. 잘 때는 엎드려 자지 않도록 해. 일단 요 며칠 휴가를 내고 일을 하지 않는 게 좋겠어.”“얘기 끝났어?” 수현이 아무리 다정한 말을 건네도 윤아의 태도는 차갑기만 했다. “데려다줘서 고마워. 할말 끝났으면 이만 돌아가 줘.”수현은 그런 그녀의 태도에 아랑곳하지 않고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그럼 갈게.”문이 닫히고 방안은 조용해졌다. 윤아는 갑자기 이 모든 게 현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전에는 귀찮게 굴던 그가 이번에는 자기 말을 고분고분 따르자 윤아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한참 지나고 가정부가 들어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사모님”선우가 데려온 가정부라는 걸 떠올린 윤아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선우 씨랑 연락했나요?”몇십 년 일해온 가정부는 바로 윤아의 뜻을 알아차리고 대답했다. “사모님, 염려하지 마세요. 비록 사장님이 저희를 고용하셨지만 제가 모시는 분은 사모님입니다.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사모님의 사생활은 누구에게도 누설하지 않습니다.” 윤아는 내심 마음에 들었다. 모든 가정부가 이정도 소양을 가지면 좋을 텐데. 흡족해하는 그녀를 보면서 가정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부자들 집에서 일하는 것도 고액 연봉 직업이어서 가정부들은 주인집에 해가 되는 일은 하지 않는 편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고용주와 뭔가 있다면 집세를 그에게 돌려주지도 않았을 것이다. ...윤아의 집에서 나온 수현은 가로등 아래에 한참을 서있었다. 운전기사도 그의 부름이 없자 길가에 차를 댄 채로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수현이 마침내 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