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혜가 자신을 도와주지 않자, 시운은 얼굴이 창백해져 어쩔 수 없이 그 잔을 손에 들어 한 입에 마셔버렸다.다 마신 뒤, 시운은 기침을 몇 번 하더니 나간 목소리로 말했다.“다 마셨으니까 가도 돼요?”지훈은 다시 술을 따랐다.“평소에 이렇게 고객을 대하나요? 한 잔만 마시고 가요? 그러니까 업적이 바닥이지.”술잔이 다시 차서 시운한테 돌아왔다.“주량이랑 사람 됨됨이는 연습해야 하는 겁니다. 계속 마시세요.”이렇게 시운이 연속 세 잔을 마시자, 눈앞이 핑핑 돌았다.“저 진짜 못 마시겠어요.”지훈이 가볍게 웃었다.“정말 못 마시겠을 때일수록 더 마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연습하겠어요?”“저 진짜 안 되겠어요...!”시운이 말도 제대로 못 하는 것을 본 소혜가 기침했다.“도련님, 오늘은 여기까지 해. 시운이 더 마시면 안 될 거 같아.”지훈은 네 번째 잔을 시운의 앞에 놓고 웃으며 말했다.“많이 마시면 좋은 점이 또 있어. 술 마신 뒤에 진실을 얘기하지. 너희 안 지 3년 됐는데 시운 씨가 너한테 숨기고 있는 게 있을 텐데?”“뭐야?”소혜는 바로 앉아 있지 못하는 시운을 누르며 물었다.“시운, 너 나한테 숨기는 거 있어?”시운은 여전히 눈도 바로 뜨지 못했다.‘누나한테 숨긴 일.’시운은 그때의 일이 증거가 없다고 지금까지 소혜를 속이고 있었다.지훈이 까밝힌다고 해도 시운은 지훈이 일부러 그런다고 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옷을 시운이 소혜에게 줬고 3년을 알고 지낸 사람이 시운이니까 말이다. 지훈이 바로 껴든 사람이라고 시운이 잡아떼면 그만이다.시운은 자신의 혀를 꽉 깨물면서 정신을 차리려고 했다. 그는 소혜를 바라보려고 노력했다.“누나, 저 계속 말 못한 일이 있는데, 저 누나 좋아해요.”이 말을 다 하자마자 시운은 쓰러져 버렸다.시운의 고백을 들은 지훈은 표정이 일그러져 밖으로 나가버렸다.“아, 도련님, 어디가?”소혜는 지훈이 급히 나가는 것을 보자 두 종업원에게 팁을 쥐여주고는 시운을 잘 부탁한다고
저녁이 되자 소혜는 방에 놓인 유일한 침대를 보고 어떻게 자야 할지 고민에 잠겼다.이론적으로 보면 두 사람은 이제는 부끄러움이 없는 사이가 되어 같이 자도 별문제는 없지만 섹시한 몸이 옆에 있으니, 군침이 계속 나왔다.그래서 소혜는 치료하는 기간 동안 소파에서 자기로 했다.소혜는 베개와 이불을 들고 일어나려는데 욕실에서 나온 지훈과 눈이 마주쳤다. 얇은 가운을 걸친 지훈을 보고 소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아래로 향했다.“안녕.”지훈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물어보았다.“지금 나랑 말한 거야?”“응? 맞아, 맞아.”소혜는 시선을 아래에서 위로 옮기려고 노력했다.“그, 너희 얼른 자. 난 소파에서 잘게.”소혜가 고양이처럼 허리를 말고 가려고 하는데 지훈이 막았다. 그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소파에서 잔다고? 왜?”“음, 젊은 남녀가 이렇게 한 침대에서 자는 건 좀 아니지 않아...?”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건 맞지, 근데.”지훈은 소혜를 바라보며 예쁜 미소를 지었다.“나 이젠 여자 안 좋아하니까 너랑 한 침대에서 자도 괜찮지?”소혜가 대답했다.“그런 거 같네.”‘지훈이 지금 여자를 좋아하니까 같이 살아도 별문제는 되지 않지.’침대가 소파보다 훨씬 편했기에 소혜는 바로 아까 한 말을 취소했다.“그럼, 신경 안 쓰고 편하게 잔다?”소혜는 편안한 이불 속으로 들어가 베개를 베고 말했다.“굿나잇!”소혜가 전날 밤에 잘 못 잤고 아침에 또 일찍 일어나서 눕자마자 잠에 들었다.지훈이 잠옷으로 갈아입고 핸드폰으로 업무를 처리하고 나서 침대에 누웠을 때, 소혜는 이미 침대의 절반 이상을 점령하고 곤히 자고 있었다.지훈은 이불을 빼앗지 않고 반대쪽에 누워 소혜의 이마에 가볍게 입맞춤하고 말했다.“잘자.”...자는 내내 꿈을 꾸지 않고 푹 잤다.이튿날 아침 8시, 소혜는 여전히 꿈나라에 빠져 있었다.소혜는 잘 때 자세가 다양했는데, 옆으로 다리를 뻗어서 자고 있거나 바로 누워서 대자로 잤다.자세가 독특했지만,
소혜는 어릴 적부터 나라를 무서워했다. 진태수는 말로 아이를 설득하려고 했지만, 나라는 손부터 나갔었다.전에 도준이 소혜가 스틱스에서 자주 부르는 남자 모델의 이름을 채팅방에 보내 나라는 소혜를 쫓아다니며 머리를 스님처럼 깎아 절에 보내려고 했었다.그런 나라가 집에 왔고 더 이상 도망칠 곳이 없다고 느낀 소혜는 겁이 났다.소혜는 머리를 쥐어 잡으며 창문으로 뛰어내릴지, 옷장에 숨을지 고민하고 있었다. 그러자 지훈이 이미 다 씻고 옷도 갈아입은 상태였다. 셔츠에 정장을 차려입은 지훈은 소혜를 침대에서 안아 내렸다.“얼른 가서 씻어. 나 먼저 가서 어머니랑 얘기 좀 하고 있을게.”“잠깐만!”소혜는 지훈을 잡아당겼다.“우리 엄마 손에 힘이 엄청나게 세! 맞으면 엄청 아프다고! 괜찮겠어?”문에 귀를 대고 가만히 듣고 있던 나라는 소혜의 말을 듣고 문을 박차고 들어갈 뻔했다.그러나 곧이어 지훈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소리야, 어머니 딱 보면 엄청 박식하시고 도리 따지실 거 같아 보이셔. 그리고 어머니 고등학교 선생님이시고 대학 입학시험 최고 득점자도 나왔다면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어머니면 자랑스러워해야지.”지훈은 말하며 조심스럽게 문틈을 바라보았다.소혜는 지훈이 한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나라에 대해 더 세게 말했다.“박식? 날 항상 엄청나게 세게 때렸어! 우리 엄마 날 욕할 때, 그런 나쁜 말을 랩처럼 한다고! 난 너한테 말했어? 나가서 우리 엄마한테 공격당하면 내 탓 아니야!”소혜가 어떻게 말하던지 지훈은 듣는 척도 하지 않고 그저 소혜의 얼굴에 붙은 먼지를 떼 주었다.“넌 어머니의 친딸이잖아. 그러니까 너한테 엄격하게 대하시는 건 당연한 거야. 얼른 옷 갈아입어, 조금 있다가 우리 같이 밥 먹자.”“도련님!”지훈이 나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소혜는 지훈이 대신 손에 땀이 났다.지훈이 안방에서 나가는 소리가 들리자, 나라는 몰래 엿듣던 행동을 멈추고 벽에 걸린 그림을 보는 척했다. 지훈이 나오자 나라는 기침을 하면서
여기까지 생각한 나라는 진지하게 말했다.“지훈아, 네가 좋은 아이라는 건 잘 알아, 근데 우리 소혜는 너랑 안 어울려.”“어머니, 소혜 엄청나게 똑똑하고 컴퓨터도 잘 다뤄요. 근데 전 그냥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는 사람이라 제가 소혜보다 못합니다.”나라는 당황했다.“아니, 내 말뜻은...!”“어머니, 저 어머니 말씀 잘 이해했습니다.”소혜는 웃음을 거두고 진지하게 나라를 바라보았다.“어머니께서 소혜를 자주 꾸지람하시지만, 소혜를 가장 사랑하신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입으로는 규칙을 잘 지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하지만 소혜가 자유를 잃지 않고 행복하게 살았으면 하시는 어머니가 제일 고생이 많으십니다.”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처음으로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사람이 생기자 나라는 눈시울을 붉혔다.“내가 소혜 걱정 안 하면 누가 하겠어? 우리 애는 어릴 때부터 말을 잘 안 들었어. 나는 우리 애가 부자가 되는 걸 바라지도 않아. 그저 건강하게, 고모처럼만 안 됐으면 했지.”명주의 얘기를 하자 나라는 목이 메어 말하지 못했다.지훈은 휴지를 건네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어머니께서 하시는 걱정은 저도 하고 있습니다. 저도 소혜가 저희 집안에 들어와서 살면 적응하지 못할까 봐 저희 결혼하고 나면 민씨 저택에서 나와 소혜가 좋아하는 곳에 집을 마련할 생각입니다.”지훈의 말을 들은 나라는 깜짝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갔다.“결혼한 뒤에? 소혜랑 결혼한다고?”“네.”지훈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저랑 소혜 이미 결혼을 약속했어요.”“응?”나라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녀는 안방을 가리키며 말했다.“결혼을 약속했다고? 우리 소혜가?”“네, 근데 소혜가 아직 제 프러포즈를 받아들이지 않아서 어머니 의견도 들어보고 싶어요.”밖에서 지훈과 나라가 얘기를 나누고 있을 때, 방에 있던 소혜는 가마 위에 놓인 개미처럼 뒹굴었다.나라가 들어와서 자신을 욕할까 봐 소혜는 화장실에 숨었다.시간이 일분일초 지나고 소혜의 다리가 저려오는데
‘툭’하는 소리와 함께 소혜의 손이 아파졌다. 나라는 소혜를 노려보았다.“지훈이는 아는 것도 많고 이렇게 얌전한데 왜 욕해야 하는데? 네 꼴 좀 봐! 평소에는 내가 참지만, 지훈이랑 결혼도 결정했으니까 얌전하게 안 지내면 네 다리를 문질러 버린다?”소혜는 빨개진 손등을 감싸며 말했다.“뭘 결정했다고? 지금 무슨 말씀하세요?”“결혼을 앞둔 애가 왜 이래?”“결혼?!!”소혜는 믿을 수 없었다.“내가 언제 결혼한다고 했어요? 전 프리랜서라고요! 이렇게 고정적인 사무직은 못 해요!”나라가 말했다.“뭐라고? 지훈이 집안 좋지, 인품 좋지,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지훈처럼 좋은 애한테 시집 안 가면 누구한테 가려고?”나라가 화가 난 것을 알아차린 소혜는 고집을 세우지 않았다.“저 결혼 안 할 거예요. 평생 엄마 딸 할 거예요!”“그럴 필요 없어! 너 20년 넘게 날 화가 나게 했는데, 평생 날 화 나게 할 거니? 나 돌아가자마자 날자 알아볼 테니까, 그날에 너 결혼 안 하면 네 다리 없는 줄 알아!”소혜가 투덜댔다.“다리 뭉개지면 못 가요.”“다시 한번 말해봐!”나라가 손을 들자, 지훈이 가로막았다.“어머니, 저랑 소혜 씨 만난 지 얼마 안 돼서 소혜 씨 아직 고민 중인나 봐요. 우리 일단 아침 식사를 해요. 제가 맛집 알고 있어요.”...아침 식사를 하러 가자, 지훈은 소매를 걷고 식기를 물에 헹궜다. 주문할 때, 물어보지 않았지만 다 소혜가 좋아하는 것으로 골랐다.지훈이 이렇게 소혜를 위하는 것을 본 나라는 고개를 끄덕이며 핸드폰으로 영상을 찍었다.“여러분, 우리 딸이랑 우리 사위에요.”소혜는 깜짝 놀라 입에 있던 죽을 뱉어냈다. 그녀는 다급히 손을 저었다.“아니. 캑캑캑, 아니에요...!”지훈은 휴지로 소혜의 얼굴을 닦아주었다.“천천히 먹어.”나라는 웃으며 말했다.“우리 소혜 너무 좋아 말도 제대로 못 하네요.”지훈은 소혜의 등을 쳐주며 웃으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안녕하세요. 저는 민지훈이라고 합니다. 소혜와 어
소혜는 지훈의 표정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고 불안함에 젖어 있었다.“너랑 결혼하는 게 싫은 게 아니라, 결혼이라는 자체가 싫어!”지훈은 자신의 기분을 애써 숨기며 대답했다.“응, 알았어.”소혜는 지훈의 목소리가 안 좋은 것을 발견하고 고개를 돌려 확인했다.“음, 도련님, 혹시 기분 나빠? 설마 나랑 정말 결혼하려는 건 아니지?”지훈이 고개를 들어 소혜를 바라보았다.“그럼 넌? 결혼 상대가 나라면 고민해 볼래?”준비도 없이 훅 들어오자, 소혜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지훈과 결혼하면...?’“한 명만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 지훈과 결혼하겠지? 근데 결혼이란 거 꼭 해야 해?”“그렇구나.”지훈의 목소리를 듣자, 소혜는 자신이 생각한 것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는 것을 깨달았다.지훈이 가까이 다가오면서 여우 같은 웃음을 지었다.“그래서 내가 네 첫 번째 선택이라는 거잖아? 그럼 유일한 선택이야?”소혜는 피하고 싶었지만, 지훈이 그녀의 허리를 감싸 쥐고 흔들었다. 지훈의 목소리를 조금 낮아졌다.“소혜야, 나 알고 싶어. 알려줘.”더 이상 피할 수 없자 소혜는 침을 삼켰다.“다그치지 마, 나 생각 좀 해보자.”소혜의 머릿속에 결혼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시운, 재욱 등 남자 모델들을 그 장면에 넣어봐도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소혜야, 다 생각했어?”지훈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다그쳤다. 지훈의 아름다운 두 눈은 보는 사람이 빠져들게 했다.지훈에게서 맡아지는 향기로운 냄새에 소혜는 숨을 쉬기 어려웠다. 그녀는 인공 호흡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혜는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고 대답했다.“일위이기도 하고 유일한 선택이야.”누가 먼저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인공 호흡이 진행되고 있었다.두 사람이 멀어지자, 소혜는 사랑에 빠진 듯한 지훈의 얼굴을 보고 물었다.“도련님, 병 나은 건가?”지훈은 깜짝 놀랐다는 듯이 대답했다.“낫고 있는 거 같은데?”지훈의 눈이 반달처럼 휘었다.“소혜, 너무 대단해!”“응? 내가?”자신이 뭘 했
소혜는 나비에게 퀵이 잘못 온 것 아니냐고 물었다. 나비는 웃으며 대답했다.“뭐 그런 걸 잘못 보내겠어. 조금 있다가 어떻게 입는지 보내 줄게. 제일 인기가 많은 걸로 보내준 거야! 보통 사람이면 주지도 않아.”소혜는 나비가 보내온 사진을 봤는데, 입기 몹시 어려웠다.소혜는 울상을 지으며 말했다.“처음부터 너무 어려운 거 주신 거 아니에요? 저 이런 거 입으면 그런 여성스러움은 하나도 없고 돼지처럼 못생기지 않을까요?”소혜는 나비가 알려준 것을 받아 적었다....저녁 8시.지훈은 저녁 식사가 담긴 주머니를 들고 들어왔다. 지훈이 이미 도우미를 시켜 소혜에게 저녁밥을 보냈지만, 회식 때 먹은 음식이 맛있어서 소혜 생각이 나 사 왔다.문을 열고 들어가니 집안이 어두컴컴했다.‘자나? 야행성 고양이가 혹시 어디 아픈가?’지훈은 눈썹을 찌푸리고 빠른 발걸음으로 방에 들어가 불을 켜고 이불을 잡아당겼다.“소혜, 왜 그래?”“아!”소혜는 지훈이 잡아당기려는 이불을 힘껏 잡아당겼다.“아니, 아니! 이렇게 하는 거 아니야!”힘이 들어간 소혜의 목소리에 지훈은 걱정을 조금 뒤로 미루고 부드럽게 말했다.“그럼, 어떻게 하면 돼?”소혜는 목을 빼내고 지훈에게 불을 끄라고 눈치를 주었다.“먼저 불을 꺼야 해.”지훈은 소혜의 말대로 불을 껐다. 불을 끄자, 지훈이 그제야 침대맡에 켜놓은 초를 발견했다.‘소혜가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는 거 같은데...?”지훈은 하얗고 긴 초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소혜는 만족스럽다는 듯이 초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손에 적어 놓은 종잇장을 보며 생각했다.‘첫 번째, 초를 켠다. 완성! 두 번째는 뭐였지? 아, 맞다!’소혜는 부스스해진 머리를 이리저리 굴렸다.“눈 감고 여기 침대에 앉아.”지훈이 웃었다.“소혜야, 나 먼저 거기 앉고 눈 감으면 안 돼? 아니면 혹시 넘어져서 널 깔면 안 되니까.”소혜는 순서를 바꿔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했다.“그래!”지훈은 웃으며 대답했다.“고마워.”침대에 앉으
소혜가 입은 것은 지훈의 옷이었다. 이것은 나비가 가르쳐 준 것이다. 지훈이 소혜의 순수한 성격을 좋아하기에 지훈의 옷을 입으면 지훈이 더 좋아한다는 것이다.“여자의 체온으로 딱딱한 셔츠를 녹이면 왜 안 좋아하겠어? 그 필수용품도 꼭 준비하고!”소혜는 나비가 얘기한 대로 했다.그러나 소혜가 기대했던 지훈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고 지훈의 웃음소리만 들려왔다.처음에는 웃음을 참더니 후에는 참을 수 없어 지훈은 웃으며 말했다.“소혜야, 지금 나 웃으라고 이렇게 준비한 거야? 나 지금 엄청나게 신나.”“뭐? 신나?”‘난 그러려고 준비한 게 아닌데, 넌 재미로 받아들이네? 너무 해!’지훈은 자신의 정장을 입고 넥타이까지 맨 소혜를 보고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소혜가 입은 바지는 너무 길어 누구라도 보면 안 웃을 수 없는 광경이다.지훈이 웃을수록 소혜는 자신이 비굴해짐을 느꼈다.“됐어. 안 놀아!”소혜는 씩씩거리며 정장을 벗어 던졌다.‘아, 뭐야. 더워서 죽는 줄 알았는데, 이런 대우라니!’땅에 발을 디디는 순간 바지가 너무 길어 소혜는 넘어질 뻔했다. 그녀는 화가 나 바지도 벗어버렸다. 지훈의 셔츠가 길어서 괜찮았다.소혜는 지훈이 사 온 음식이 무엇인지 보려고 하는데 지훈이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잠깐만.”소혜는 자신이 그제야 정확한 방식으로 접근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고 지훈이 아직도 자신을 비웃는 줄 알고 소리쳤다.“뭔데, 아직도 웃고 싶어?”촛불의 불빛이 약해서 안방에는 그 흰색 셔츠 빼고는 잘 보이지 않았다.지훈이 소혜가 입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주자, 가녀린 손목이 보였다.두 쪽 다 걷어줬지만, 지훈은 여전히 그녀의 손목을 놓지 않고 바라보았다.“아까 물어본 거 아직 대답 안 했는데.”‘심장이 왜 이렇게 빨리 뛰어? 내 생각해?”“맞아, 네 생각해.”지훈이 쓰다듬어준 손목은 벌레가 기어다니듯 간지러웠다. 소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지훈은 소혜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겼다.“소혜야, 너 내 병 치료해 준다며?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