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민국 일가의 얼굴이 완전히 어두워졌다.특히 위민국은 수십 마리의 파리를 삼킨 것처럼 속이 뒤틀렸다.자기가 긴급하게 부른 도움의 손길이 임지환과 이런 인연이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홍 시장, 이 사람이 홍 시장 딸의 목숨을 구한 은인은 맞지만 오늘 일이랑 그거랑 별개로 봐야 할 게 아니야? 이 사람이 유진헌과 공모하여 우리 가족에게 폭력을 행사한 건 형사 사건으로까지 번질 수 있어. 내 아내는 얼굴이 망가졌고 아들은 심각한 상처를 입었어... 이 사건에 대해 만족스러운 답을 주지 않으면 우리 위씨 가문은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야.”위민국은 자기 명문대가의 배경만 내세운다면 임지환이 홍 시장에게 아무리 큰 은혜가 있더라도 홍진이 공정하게 처리할 수밖에 없을 거라고 확신했다.“위 국장,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임 대사를 건드리겠다면 그때는 내가 사심이 가득한 태도로 대할 수밖에 없을 테니 단단히 각오하셔야 할 겁니다.”홍진의 목소리는 우렁찼고 태도 또한 단호했다. 임지환을 위해서라면 주저 없이 위씨 가문과도 결별할 태세였다.“홍진, 오냐오냐해 주니까 우리가 만만하게 보여? 아무리 네가 시장이라고 해도 우리 위씨 가문이 박살 내고 싶은 사람은 절대 구할 수 없어.”위민국은 화가 치밀어 올라 거칠게 말이 나오기 시작했다.“홍 시장님, 다시 잘 생각해 보세요. 저런 촌놈 하나 때문에 우리 가문을 적으로 돌리는 건 현명한 선택이 아닐 거예요.”도홍희도 옆에서 남편을 거들었다.“내가 분명히 말했을 텐데, 당신들 귀가 먹었어? 아니면 이해력이 딸리는 거야? 임 대사를 건드리는 건 곧 나 홍진을 적으로 돌리는 거고 설령 그게 위씨 가문이라도 마찬가지야.”홍진은 단호하게 대꾸하며 두 사람의 위협을 아랑곳하지 않았다.홍진의 태도에 위민국은 분노에 차서 물었다. “대체 저런 듣보잡 촌놈이 누구길래 네가 이렇게 목숨 걸고 지키려 드는 거야?”“임 대사가 누구냐고? 임 대사는 우리 홍씨 가문의 소중한 귀빈이야. 게다가 임 대사는 무술 대가이기도 해. 전
말을 마치자 임지환은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뭐 어쩌자고? 날 때리기라도 하겠다는 거야? 너 따위가 감히?” 위민국은 눈살을 찌푸리며 당당하게 대들었다.용산시 감찰국 국장인 위민국은 유진헌보다 훨씬 높은 직위에 있었다. 임지환이 아무리 눈에 뵈는 게 없어도 그 정도로 무모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관을 봐야 눈물이 나오겠네?” 하지만 위민국의 예상과 달리 임지환은 손을 들어 그대로 따귀를 후려쳤다.찰싹!위민국은 순간 얼굴을 스치는 강한 바람을 느꼈다.아무런 반응도 할 새 없이 위민국은 그대로 바닥에 나가떨어졌다. 그러나 임지환의 발걸음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고 천천히 도홍희에게 다가갔다.“임 대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겠습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오만하게 굴던 도홍희는 남편이 가차 없이 당하는 모습을 보고 순간적으로 화들짝 놀라 벌벌 떨며 싹싹 빌었다.“걱정 마. 난 여자를 때리지 않아.” 임지환은 차갑게 도홍희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럼 다행이네요. 당신이 날 때리지만 않는다면 뭐든지 협상할 수 있어요.”도홍희는 순간 안도의 한숨을 쉬며 마음을 놓았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널 그냥 놔줄 거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야.”임지환은 냉랭하게 한마디 던지고 허리에서 은침 하나를 꺼내 들었다.“당신... 대체 뭘 하려는 거예요?”도홍희는 임지환의 손에서 서늘한 기운을 발산하는 은침이 반짝이는 것을 보고 오싹한 기운이 온몸을 관통하는 것을 느꼈다. 공포에 질린 도홍희는 남편과 아들을 두고 그대로 도망치려 했다.“내 앞에서 도망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임지환은 잔잔하게 웃으며 들고 있던 은침을 그대로 던졌다.슉!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은침은 정확히 도홍희의 목뒤의 한 혈에 박혔다. 순간, 도홍희는 목에서 따끔한 고통을 느꼈지만 이내 온몸에 아무런 이상이 없는 듯 보였다.“겨우 이 정도인가? 이 녀석이 뭔가 대단한 양반인 줄 알았더니 결국엔 그냥 허풍이었구나.”도홍희는 자기가 무
이런 횡재할 좋은 기회를 놓칠 수는 없었다. “임 대사,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홍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나는 상관없어.”임지환이 돈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홍진이 이미 입을 뗀 상황이라 굳이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임지환은 단지 교제를 귀찮아했을 뿐, 세상 물정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홍진이 위씨 가문과 적으로 돌리게 될 위험을 무릅쓰고 자기편을 들어주는 이상, 임지환도 홍진에게 체면을 세워줄 생각이었다.“얼마를 원해? 금액을 말해 봐.” 위민국은 굴욕감을 억누르며 말했다. 굴욕스러워도 어쩔 수 없었다. 위민국은 오늘 상당한 돈을 꺼내지 않으면 일이 쉽게 끝나지 않을 거란 걸 잘 알고 있었다.“내가 금액을 정하면 그게 많든 적든 넌 무조건 불만스러울 거야.”임지환은 문득 고개를 돌려 한 사람을 보며 말했다. “이렇게 하지, 양 팀장이 금액을 말하는 게 어때?”“내가?” 양서은은 그 말에 깜짝 놀라 자기를 가리키며 믿기지 않는 표정을 지었다.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그래, 너와 위씨 가문은 어느 정도 친분이 있잖아. 그런 네가 금액을 정해야 이 위 국장이 내가 바가지 씌운다고 생각하지 않을 거잖아.”“서은아, 신중하게 말해. 위 삼촌은 너만 믿을게.”임지환이 배상금 결정권을 미래의 며느리에게 넘긴 것에 대해 위민국은 크게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양서은은 어쩔 수 없이 굳은 마음을 먹고 말했다. “제 생각에는... 6억 원 정도가 적당할 것 같아요.”“6억이라고? 서은아, 너 진짜 이 삼촌의 심장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구나.”위민국은 양서은의 제안을 듣고 기가 차서 심장마비가 올 뻔했다.“감사히 받아들여. 내가 금액을 정했으면 20억 정도는 가뿐히 넘겼을 거야.”유진헌이 옆에서 천하의 위씨 가문이 뭐 이렇게 인색하냐며 슬그머니 조롱했다.“그래, 우리 양 팀장 체면을 봐서 그 금액으로 결정하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화제를 끝내려 했다.임지환에게는 이 돈이 그저 먼지 같은 존재였
“제가 주최해야 할 중요한 회의가 있어서요. 시간 나시면 제 집에 들러서 차 한잔하세요. 우리 서연이 틈만 나면 임 대사가 언제 오냐고 귀 아프게 졸라대네요.”홍진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한 후 병실을 나섰다.“임 대사님, 앞으로 제 도움이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불러주세요. 바로 달려가겠습니다.”유진헌도 홍진이 떠나는 것을 보고 더 이상 머물지 않고 병실을 떠났다.두 사람이 떠난 후에야 임지환은 비로소 평안한 마음으로 평화를 누릴 수 있었다.임지환은 양서은 앞으로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네가 부탁한 일은 다 해결했으니 이제 날 저택까지 데려다줘야겠어.”“그 정도는 맡겨만 줘.”양서은은 쓸데없는 생각을 떨쳐내고 고개를 끄덕이며 수락했다.임지환이 양서은과 함께 떠나려던 그 순간, 심창진이 갑자기 말을 꺼냈다. “임 대사님, 잠시만요!”“아직 뭔가 더 있어요?”임지환은 그 말에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 물었다.“사실, 임 대사님께 도움을 청하고 싶어서요.” 심창진이 어색하게 웃으며 말문을 열었다.“무슨 도움이요?”“사실 우리 병원에 최근 환자가 하나 들어왔습니다. 그 환자의 뇌가 심각한 충격을 받아 지능이 손상되었는데 혹시 진료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심창진은 기회를 놓칠까 봐 어쩔 수 없이 직설적으로 병원의 상황을 설명했다.“병원에 의사도 많은데 내가 왜 굳이 봐야 하죠?” 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질문을 던졌다.“우리 병원 의사들이 신비하고 대단한 의술을 갖춘 임 대사님과 비교할 자격이나 있겠습니까? 더구나 이 환자는 좀 특별한 경우라서 우리 병원 의사들이 전부 손을 놓고 있어요.”심창진은 어색하게 변명했다.“미안하지만 거절할게요.”임지환은 단호하게 거절했다.“임 대사님, 제발 한 번만 도와주세요.” 하지만 심창진은 포기하지 않고 애원했다.“내가 치료해 주면 병원 의사들 체면은 어디에 둬야 하겠어요? 게다가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면 그들은 뒤에서 내 험담을 하느라 여념이 없을 테죠. 이런 피곤하고 별 이득이 없는 일을 누가 좋
“너라는 사람은 어쩌면 변덕 부리는 속도가 우리 여자들보다 더 빨라?”옆에서 듣고 있던 양서은이 장난스럽게 말을 걸었다. 요 며칠 시간을 함께 보내며 양서은은 임지환이 농담을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래서 임지환에게 치는 장난도 점점 더 대담해졌다.“사실 그 환자랑 나도 꽤 인연이 있어.”임지환이 간단하게 설명하고 심찬진에게 말했다. “심 원장, 길 안내 부탁드릴게요.”“임 대사님, 정말 감사드립니다.”임지환이 받아들여 주자 심창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미소를 지었다. 심창진은 두 손을 모으며 감사의 뜻을 표했고 신나서 어쩔 수 없어 하는 표정으로 흔쾌히 두 사람을 병실로 안내했다.배씨 가문 어르신 배국권의 슬하에는 손자가 두 명뿐이었다. 큰손자 배인국은 임지환이 손수 식물인간으로 만들어 놓았으니 아마 지금쯤 해외로 치료를 받으러 갔을 것이다. 그러니 이 병원에 있는 사람은 분명 배준영일 것이다.임지환은 배준영을 무척 싫어하지만 필경 유란이 그를 다치게 한 것이었기에 자기가 직접 치료해 주면 배씨 가문 사람들이 트집을 잡지 않게 하는 데 좋을 것이다.“심 원장님, 여기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임지환 일행이 병실에 들어서자 배준영의 주치의 장민우가 다가와 인사했다. 그리고 그 순간, 임지환은 예리하게 장민우의 눈빛에서 다소 당황한 기색을 읽어냈다.“민우 씨, 요즘 15번 침대 환자 다루기 힘들다고 늘 내게 불평하지 않았나요? 그래서 오늘 내가 어렵게 임 대사님을 모셔 왔어요. 이분이라면 틀림없이 이 환자를 제대로 치료해 주실 겁니다.”심창진이 뒷짐을 지고 병실에 온 이유를 설명했다.“임 대사님이라고요? 혹시 그 홍씨 가문 아가씨를 치료하신 신의를 말씀하는 건가요? 그분은 제 롤 모델이십니다. 근데 왜 안 보이시죠?”장민우는 심창진의 말을 듣자마자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임 대사가 어디에 있는지 찾기 시작했다.“그분은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여기에 계시죠.”심창진은 임지환
“솔직히 말하면 환자 가족들이 문제입니다. 특히 환자 엄마는 완전히 무지막지한 아줌마라서 간호사들이 조금이라도 실수하면 욕을 퍼부어대니... 결국 간호사들이 그 아줌마 아들을 돌보려 하지 않게 되었죠. 그래서 이런 상황이 발생한 겁니다. 하지만 원장님, 걱정하지 마세요. 환자는 아직 병원에 있을 겁니다. 제가 사람을 시켜서 꼭 찾아오겠습니다!” 장민우가 가슴을 두드리며 약속했다.“임 대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이렇게 큰 웃음거리가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심창진은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사과했다.하지만 임지환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건 심 원장 책임이 아니에요. 환자 가족들의 고집스러움은 저도 이미 경험해 봤거든요. 당신 병원의 의사들과 간호사들이 고생이 많겠네요.”임지환은 전 장모님의 고집불통과 막무가내로 나가던 모습을 떠올리며 깊이 공감했다.“환자가 사라졌다면 우리도 그만 돌아가자. 나도 수사대에 처리해야 할 급한 일이 있어.”양서은은 휴대폰을 확인하고는 서둘러 말했다.“심 원장, 오늘은 이만합시다. 다음에 시간 될 때 다시 올게요.”임지환은 심창진에게 인사를 하고 양서은을 따라 입원 병동을 떠났다.“임 대사님은 시장조차도 깍듯이 모셔야 하는 분인데 이런 거물급 인물을 겨우 모셔 왔더니 이렇게 뒤통수를 쳐? 배씨 가문은 복이 없는 건가 보군.”심창진은 임지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사람을 빨리 찾아요. 해가 지기 전에 배준영을 못 찾으면 민우 씨 책임을 제대로 물을 겁니다.”심창진은 장민우를 꾸짖고 떠나려 했다.“이봐, 창진아, 병원에서 널 한참을 찾았어. 여기 있었구먼.”바로 그때, 배씨 가문 어르신 배국권이 배지수와 함께 병실 입구에 나타났다.“국권아, 왜 이제야 왔어?”뒤늦게 나타난 배국권을 본 심창진은 저도 모르게 책망했다.“왜? 내 귀한 손자가 사라졌다는 말을 듣자마자 바로 온 건데, 그게 내 책임이라도 된다는 건가? 너희 병원 책임이 아니고?” 배국권이
“양 팀장, 아까 갑자기 그렇게 서두르던데 무슨 일이라도 있나?”병원 지하 1층 주차장에서 차 뒷좌석에 앉아 있던 임지환이 물었다.“이번에는 큰 문제가 생겼을지도 몰라.”양서은은 얼굴이 굳어진 채 입을 열었다. “방금 받은 소식에 따르면 세관 쪽에서 정체불명의 사람들이 대거 입국했다고 해. 우리 수사국 추측이긴 하지만 거미줄 조직의 멤버들일 가능성이 커.”“네 말은 탐랑이 외부 지원을 요청했다는 거야?”임지환은 별 신경 쓰지 않는 듯 다리를 꼬며 말했다.“좀 진지해질 수 없어?”양서은은 조금 조급해하며 말했다. “이 사람들이... 아마 널 노리고 온 것 같아.”“그래서 뭐 어쩌라고? 난 그들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 임지환은 무심한 표정으로 유유히 말했다.“네가 무술 대사고 실력이 뛰어나다는 건 알아. 하지만 거미줄 조직은 전 세계에서 랭킹 2위에 있는 강력한 킬러 조직이잖아. 아무리 네가 강해도 한 사람이 조직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양서은은 미간을 찌푸리며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아무리 봐도 임지환의 안전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날 잘못 건드리기만 하면 그냥 그 자식들을 깡그리 처리해버리면 되잖아.”하지만 임지환은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홀가분한 어조로 말했다.다른 사람들에게 거미줄 조직이 대단하게 보일지 몰라도 임지환에게는 별거 아닌 존재였다.“네가 진대하 한 사람을 죽였다고 해서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이라고 착각하지 마. 거미줄 조직은 전 세계에 조직원을 두고 있어. 심지어 국가 원수들도 너처럼 그 조직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감히 말하지 못해.”양서은은 임지환의 말을 듣고 아니꼬운 눈빛으로 흘겨보며 말했다.임지환은 뭐든지 잘하지만 너무 오만해 딴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았다.“믿지 않으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난 더 이상 길게 설명하기도 귀찮아.”임지환은 느긋하게 말했다. “어쨌든 내 안전을 걱정할 필요 없어. 네 안전이나 잘 챙겨.”“내가 네 안
이 사람은 다름 아닌 배준영이었다.“어서 일어나!” 임지환은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배준영은 고개를 들어 임지환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팔을 감싸 쥐고 중얼댔다. “팔... 아파...”배준영의 망연자실한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임지환은 말없이 배준영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맥이 떠다니며 혼란스러운 것을 보니 확실히 정신상태가 이상한 징후가 있군.”임지환은 맥을 짚은 후 배준영이 미친 척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정말 이 세상은 참 공평해. 이게 바로 인과응보가 아니겠어? 네가 저지른 죄가 이렇게 되돌아올 줄 몰랐겠지?”“아파...”배준영은 임지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팔을 감싸 쥐며 중얼댔고 입가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딱 봐도 모자란 동네 형 같아 보였다.“됐어, 일단 널 병실에 돌려보내자.”임지환은 차 안에 앉아 있는 양서은에게 말했다. “먼저 이 녀석을 병원에 데려다줄 테니까 넌 차를 몰고 입구에 가 날 기다려.”“알겠어.”양서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출발시켰다.양서은이 떠난 후 임지환은 멍한 눈빛의 배준영을 보며 말했다. “네가 진짜 미쳤든, 미친 척하든 상관없어. 이게 너희 배씨 집안을 마지막으로 돕는 거니까 앞으로는 제대로 반성하고 잘 살아야 해. 다시는 잘못된 길을 가면 그때는 진짜 끝장이야.”말을 마친 임지환은 허리춤에서 은침을 꺼내 배준영을 치료하려고 했다.“멈춰!”바로 그때, 차갑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임지환의 동작을 제지했다.임지환이 고개를 돌리자 엘리베이터에서 배지수가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누나...”배준영은 배지수를 보자마자 임지환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에게 달려갔다.“준영아, 괜찮아?”배지수는 바보가 된 동생을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보며 안았다.“누나... 아파...”배준영은 방금 넘어져 생긴 상처를 가리키며 임지환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임지환, 네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내 동생한테 손을 댔어?”배지수는 배준영의 지목을 보자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