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다름 아닌 배준영이었다.“어서 일어나!” 임지환은 일부러 큰 소리로 외쳤다. 배준영은 고개를 들어 임지환을 초점 없는 눈으로 바라보며 팔을 감싸 쥐고 중얼댔다. “팔... 아파...”배준영의 망연자실한 눈으로 말하고 있었다.임지환은 말없이 배준영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맥이 떠다니며 혼란스러운 것을 보니 확실히 정신상태가 이상한 징후가 있군.”임지환은 맥을 짚은 후 배준영이 미친 척하는 것이 아님을 확신했다.“정말 이 세상은 참 공평해. 이게 바로 인과응보가 아니겠어? 네가 저지른 죄가 이렇게 되돌아올 줄 몰랐겠지?”“아파...”배준영은 임지환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팔을 감싸 쥐며 중얼댔고 입가에서 침이 흘러나왔다. 딱 봐도 모자란 동네 형 같아 보였다.“됐어, 일단 널 병실에 돌려보내자.”임지환은 차 안에 앉아 있는 양서은에게 말했다. “먼저 이 녀석을 병원에 데려다줄 테니까 넌 차를 몰고 입구에 가 날 기다려.”“알겠어.”양서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를 출발시켰다.양서은이 떠난 후 임지환은 멍한 눈빛의 배준영을 보며 말했다. “네가 진짜 미쳤든, 미친 척하든 상관없어. 이게 너희 배씨 집안을 마지막으로 돕는 거니까 앞으로는 제대로 반성하고 잘 살아야 해. 다시는 잘못된 길을 가면 그때는 진짜 끝장이야.”말을 마친 임지환은 허리춤에서 은침을 꺼내 배준영을 치료하려고 했다.“멈춰!”바로 그때, 차갑게 울려 퍼지는 목소리가 임지환의 동작을 제지했다.임지환이 고개를 돌리자 엘리베이터에서 배지수가 뛰어나오는 것이 보였다.“누나...”배준영은 배지수를 보자마자 임지환의 손을 뿌리치고 그녀에게 달려갔다.“준영아, 괜찮아?”배지수는 바보가 된 동생을 연민이 가득한 눈으로 보며 안았다.“누나... 아파...”배준영은 방금 넘어져 생긴 상처를 가리키며 임지환을 손가락으로 지목했다.“임지환, 네가 또 무슨 짓을 한 거야? 왜 내 동생한테 손을 댔어?”배지수는 배준영의 지목을 보자 쌀쌀한 표정을 지으며
“네가 임 대사라고? 이런 유치한 농담 그만하지 않을래? 임 대사를 아는 사람들 귀에라도 들어가면 네가 어떻게 죽을지도 모를 거야. 실력도 없으면서 억지로 잘난 척하려는 모습이 정말 역겹기만 해. 임지환, 예전에는 그저 너에게 실망했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구역질이 나.”배지수의 연이은 비난에도 임지환은 침묵을 유지했다.“왜? 내가 아픈 곳을 찔러서 말문이 막힌 거야? 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배지수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임지환이 반박이라도 했다면 오히려 그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었을 것이다.하지만 임지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허세만 부릴 줄 알았지 사실 알맹이는 겁쟁이인 남자였다.“어차피 내가 지금 뭐라고 변명해도 네겐 한마디도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 임지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네가 나에게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네 동생을 치료하는 거야. 시간이 더 지나면 나조차도 손을 댈 수 없게 될 거야.”임지환은 배준영의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임지환도 배준영을 완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괜찮아. 이미 준영이를 치료할 사람을 찾았으니. 네 호의는 고맙지만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어. 네가 아직도 남자로서의 자각심을 갖고 있으면 더 이상 나에게 집착하지 마. 지금 세상에서는 자기가 키워낸 사업이 없으면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조차도 널 무시할 거야.”배지수는 일부러 말을 멈추고 임지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해?”“네 눈에는 권력과 지위가 그렇게 중요해 보여?”임지환의 눈에 선명한 실망이 서렸다.“임지환,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치하구나. 권력과 지위는 당연히 중요하지. 그것들이 있어야 강한시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우리 배씨 집안도 번창할 수 있을 게 아니야? 몇십 년 후, 우리 배씨 집안도 이씨 가문처럼
임지환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날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최근에 거미줄 조직 킬러들이 대거 입국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임 선생님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명령을 구하러 왔습니다.”유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이 파리 같은 것들과 상대할 시간이 없어.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 버려. 맞다, 영사들의 상태는 어떻지? 영사들이 움직이기 힘들다면 내가 직접 나서도 괜찮아.”임지환의 영사들이 천종한과의 싸움에서 모두 크게 다쳤다. 그래서 임지환은 영사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용주님께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들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습니다. 제가 보증하건대, 거미줄 조직 놈들은 절대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없을 겁니다.”유란이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가서 해치워!”임지환은 손을 내저으며 지시했다.주작이 키운 영사들은 태생부터 살육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거미줄 조직 같은 폭력적인 킬러들을 상대할 때는 더 폭력적인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사람을 죽이는 자에게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무서운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영사들의 생존 신조이며 임지환이 적을 다루는 방식이었다....“미안해, 오래 기다렸지?”임지환이 병원 문을 나서서 이내 양서은의 차에 올랐다.“환자를 데려다주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설마 병원 간호사한테 눈이라도 돌린 거야?” 양서은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임지환은 머리를 들고 양서은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병원 간호사들이 다들 너처럼 예쁘다면 네 말대로 시선이 돌아갈 수도 있겠어.”“쳇, 바람둥이 같으니. 날 넘볼 생각은 하지도 마!”양서은은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임지환을 빤히 노려보고는 바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양서은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 게 분명했다.30분 후, 두 사람은 용은 저택에 도착했다.“양 팀장님, 드디어 오셨군요.”“팀장님 지시에 따라 저희는 부두에서 장천을 막았습니다.”
용은 저택은 무려 10초간 침묵에 휩싸였다.“임지환, 이런 유치한 농담은 좀 그만둬 줄래?”양서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했다.“임 선생님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거미줄 조직 킬러들도 절대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임 선생님 혼자서 거미줄 조직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맞아요... 임 선생님이 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임 선생님 혼자뿐이잖아요. 그렇게 많은 킬러를 동시에 상대하려다 보면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어요.”다른 수사대원들도 임지환의 말을 듣고 줄줄이 의심을 표했다.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허풍이었다. 이 임지환이라는 사람은 거미줄 조직의 무시무시함을 모르는 게 분명해 보였다.현장에 있던 사람 중, 오직 허청열만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임지환의 말에 공감했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임 선생님은 이미 계획이 다 있는 것 같군요.”“뭐, 그렇게 말할 수 있지.”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임지환, 정말 거미줄 조직과 정면으로 충돌할 생각이야?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네가 탐랑과 싸운 경험이 있는 것도 알고 탐랑 파트너를 죽인 것도 알지만 탐랑은 거미줄 조직에서 겨우 20위 안에 드는 정도야. 우리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오는 킬러 중엔 거미줄 조직 최고 암살자인 ‘광대'와 ‘킹콩'이 포함되어 있어. 네 개인 안전을 위해서 며칠 동안은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게 나을 거야.”양서은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충고했다.“그럴 필요 없어.”하지만 임지환은 생각할 것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와 같이 있으면 내가 오히려 너희를 보호해야 해서 나만 더 피곤해질 거야.”“임지환, 선 넘지 마. 우릴 왜 그렇게 무시해?”양서은은 임지환이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말하자 깜짝 놀라 예쁜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띄웠다.“임 선생님이 아무리 눈에 뵈는 게 없이 자신만
체포 여부는 오로지 임지환에게 달려 있었다....강한시 한의원, 특실 병동.배지수는 배준영을 병실로 데려왔다.“지수야, 임 대사님을 만났니?”심창진은 배지수가 돌아오자마자 급히 물었다.“아니요. 제가 내려갔을 때 임 대사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운 좋게도 준영이를 찾아서 데려왔어요.”배지수는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배준영을 병실에 있던 간호사에게 맡겼다.“보아하니 너희는 임 대사님과 인연이 없나 보구나. 임 대사님이 있었다면 네 동생도 완벽하게 치료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더 좋은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할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구나.”심창진은 아쉬운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쩔 수 없죠. 인연이 아닌가 봐요.”배지수도 덩달아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게다가 임 대사님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는 분이잖아요. 제가 봤다고 해도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겠네요.”“내가 방금 너와 같이 가야 했는데, 그걸 깜빡했네.”심창진은 더더욱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배지수는 심창진이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것에 깊이 감사하며 말했다. “어쨌든 원장님께서 이렇게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제 금릉에 가서 준영의 병이 나았으면 좋겠네요.”“지수야, 그 일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내가 이미 찍어 둔 적합한 인물이 있어. 금릉에 도착하면 내가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야. 그 사람이 동의만 해준다면 준영의 병은 큰 문제 없을 거야.”배국권의 눈에는 깊은 생각이 담겨 있었다.“적합한 인물이라뇨? 할아버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배지수는 순간 멍해졌고 샘물처럼 맑은 눈에는 호기심과 의아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요 몇 년간, 할아버지는 항상 은둔 생활을 해왔고 종래로 사적으로 신의를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심창진도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권아, 네가 그런 놀라운 비밀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내가 널 이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어.”“
“제가 나설 차례라고요?”배지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할아버지, 농담 마세요. 전 작은할아버지 얼굴도 뵌 적이 없는데 그분이 왜 제 말을 듣겠어요?”“얘야, 넌 진짜 대단한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전혀 모르는구나. 비록 네가 내 동생과 친분이 없다고 해도 너와 연경 진씨 가문과의 관계는 각별하잖아. 듣자 하니, 진씨 가문 둘째 아들인 진운이 너에게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더구나. 진씨 가문이 나서서 중재한다면 이 일은 십중팔구 해결될 거야.”배국권은 모든 계획을 다 세운 것처럼 자신만만한 말투로 조리 있게 말했다.“할아버지, 오해하지 마세요. 저와 진 도련님은 좀 친하긴 하지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에요. 제가 부탁을 한다고 해도 그분이 무조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배지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자기와 진운 사이의 왜곡된 소문이 할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진 도련님이 널 위해 몇 번이나 선뜻 나섰고 우리 배씨 집안을 특별히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걸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다. 금릉에 가면 적당한 기회에 진씨 가문 어르신과도 얘기를 잘 나눠봐야겠구나.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적당한 남자를 찾아 시집가야 할 게 아니냐?”배국권은 호탕하게 웃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만약 진씨 가문과 진짜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배씨 집안의 규모나 사회적 지위는 현재 상황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할아버지, 심 원장님과 얘기 나누세요. 전 먼저 나가서 준영이에게 따뜻한 물을 좀 떠 올게요.”배지수는 배국권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발치에 놓인 주전자를 들고 부끄러워 어쩔 바를 모르는 표정으로 병실을 빠져나갔다.“계집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얼굴이 여전히 소녀처럼 빨개지네.”배국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눈에는 배지수를 향한 애틋한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국권아, 방금 네가 한 말을 들으니까 생각이 나서 묻는 건데 말야.”심창진이 허허 웃으
“다만 걱정되는 건, 든든한 배후를 잃은 네 전 사위가 막다른 골목에 들어서 지수에게 다시 질척댈까 봐 그게 걱정이야.”심창진은 나이가 들며 인간관계를 잘 터득해 온 사람이라 멀리 내다보는 경향이 있었다. “임지환 그 녀석이 우리 배씨 집안 문 앞에 나타나기만 해봐. 내가 그놈 두 다리를 부러뜨릴 거니까.”오랜 친구의 말에 배국권은 갑자기 코웃음을 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잠깐만... 방금 뭐라고 했어?”심창진은 갑자기 감전된 사람처럼 소스라치게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배국권은 그의 반응에 깜짝 놀라 눈살을 찌푸리며 물었다. “창진아, 왜 그래? 설마 너도 그 쓸모없는 쫄보 자식 임지환을 알아?”“국권아, 목소리 좀 낮춰!”심창진의 얼굴은 급격히 굳어졌고 손가락을 입에 갖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는 주위를 휙 둘러보고는 아무도 없음을 확인한 후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내가 아는 바로는, 임 대사의 본명이 임지환라이고 하던데... 어쩌면...”“창진아, 너도 정신 상태가 온정적이진 않구나. 임 대사의 이름이 임지환이라 해도 그건 단순히 동명이인일 뿐이야. 이 둘은 전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들이야. 게다가 그 임 대사는 시장까지도 귀빈으로 대접할 정도의 인물이라던데 그런 대단한 사람이 우리 배씨 집안에서 그렇게 오래 머무르면서 데릴사위 노릇을 할 리가 없지 않나?”배국권은 1초의 망설임도 없이 심창진의 말을 단번에 일축해 버렸다.“그 말도 일리 있네. 임 대사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적인 사람이지. 그런 인물이 진짜 너희 배씨 집안의 전 사위라면, 배씨 집안은 벌써 임지환 공격을 당해 강한시에서 퇴출당했을 거야.”심창진도 그 말을 듣고 무의식적으로 씁쓸하게 웃었다.“됐어. 그 여자 등쳐먹는 빈대 같은 놈은 다시 얘기하지도 마. 아무튼 병원을 옮기는 일을 우선 잘 처리해 줘. 저쪽 병원에 도착하면 내 동생을 설득해 치료에 나서도록 하겠어.”배국권은 사뭇 진지한 말투로 말했다.“그 정도야 시름 놓고 내게 맡겨.”심창
이런 상황에서 대부분 남자는 도저히 본능을 참지 못했을 것이다.하지만 임지환은 눈이 먼 사람처럼 아무런 동요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잠옷 유혹? 그런 수법은 나한텐 안 통해.”“정말 분위기를 와장창 깨는데 재간 있는 남자네.”이른바 미인계가 임지환에게 바로 들통나자 이청월은 화가 나서 발을 구르며 투덜거렸다. 하지만 이청월은 포기하지 않고 곧 임지환 앞에 다가가 매혹적인 눈빛으로 그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잠옷이 싫다면 넌 뭘 좋아해? 검은 스타킹? 하얀 스타킹? 아니면 제복 유혹?”이청월의 숨결이 임지환의 귀에 스며들어 간지러움을 참을 수 없게 했다.“이 집에서 밖에 쫓겨나기 싫다면 이러지 말고 제대로 말해.” 임지환은 인상을 찌푸리며 질색했다. 눈앞의 여자는 어느새 점점 더 대담해지고 있었다.이청월을 계속 이렇게 가만히 놔두면 임지환도 슬슬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어쨌든 임지환도 정상적인 남자였고 절에서 수행하는 수도승이 아닌 이상 계속해서 자기 욕망을 억누르면 병이 생길지도 모르는 판이었다.“네가 이렇게 반응할수록 네가 더 신경 쓰고 있다는 걸 드러내는 거야.”이청월은 여우처럼 매혹적인 미소를 지으며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임지환의 가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젊을 때는 즐겨야지. 하룻밤의 즐거움이 천금을 준다잖아. 여자인 나도 쑥스러워하지 않는데 넌 남자면서 뭐가 그렇게 부끄러워?”지금 이청월은 마치 연극 속의 뱀 요괴처럼 자기 날씬하고 섹시한 몸으로 임지환을 유혹하고 있었다.“평소 같으면 내가 진짜 마음이 움직였을지도 몰라. 하지만 오늘은 그럴 수 없어.”애매한 분위기가 절정에 달한 순간, 임지환은 돌연 이청월을 붙잡았다.“임지환, 너 진짜 남자 맞아?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도대체 어떻게 더 해야 네가 반응할 거야?”이청월은 살짝 화가 나서 입술을 삐죽였다. 이 녀석이 아무리 강철같이 단단한 남자라고 해도 이 정도 유혹에는 좀 흔들려야 하는 게 정상이 아닌가?“혹시 넌 다른 사람한테 라이브로 보여주고 싶은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