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임 대사라고? 이런 유치한 농담 그만하지 않을래? 임 대사를 아는 사람들 귀에라도 들어가면 네가 어떻게 죽을지도 모를 거야. 실력도 없으면서 억지로 잘난 척하려는 모습이 정말 역겹기만 해. 임지환, 예전에는 그저 너에게 실망했을 뿐이야. 하지만 이제는... 정말로 구역질이 나.”배지수의 연이은 비난에도 임지환은 침묵을 유지했다.“왜? 내가 아픈 곳을 찔러서 말문이 막힌 거야? 넌 그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이야.”배지수는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임지환이 반박이라도 했다면 오히려 그에게 일말의 희망이라도 걸었을 것이다.하지만 임지환은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다...허세만 부릴 줄 알았지 사실 알맹이는 겁쟁이인 남자였다.“어차피 내가 지금 뭐라고 변명해도 네겐 한마디도 귀에 들어가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굳이 입 아프게 설명할 필요도 없지.” 임지환이 무겁게 입을 열었다.“네가 나에게 뭐라고 하든 상관없어. 하지만 지금 가장 중요한 건 네 동생을 치료하는 거야. 시간이 더 지나면 나조차도 손을 댈 수 없게 될 거야.”임지환은 배준영의 상태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이대로 방치하면 결국 임지환도 배준영을 완치할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괜찮아. 이미 준영이를 치료할 사람을 찾았으니. 네 호의는 고맙지만 더 이상 신경 쓸 필요 없어. 네가 아직도 남자로서의 자각심을 갖고 있으면 더 이상 나에게 집착하지 마. 지금 세상에서는 자기가 키워낸 사업이 없으면 심지어 가족이나 친구조차도 널 무시할 거야.”배지수는 일부러 말을 멈추고 임지환을 바라보며 물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해?”“네 눈에는 권력과 지위가 그렇게 중요해 보여?”임지환의 눈에 선명한 실망이 서렸다.“임지환, 넌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유치하구나. 권력과 지위는 당연히 중요하지. 그것들이 있어야 강한시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고 우리 배씨 집안도 번창할 수 있을 게 아니야? 몇십 년 후, 우리 배씨 집안도 이씨 가문처럼
임지환은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날 찾아온 이유가 있겠지?”“최근에 거미줄 조직 킬러들이 대거 입국한 것을 확인했습니다. 그들이 임 선생님을 노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 상황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명령을 구하러 왔습니다.”유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난 이 파리 같은 것들과 상대할 시간이 없어. 너희들이 알아서 처리해 버려. 맞다, 영사들의 상태는 어떻지? 영사들이 움직이기 힘들다면 내가 직접 나서도 괜찮아.”임지환의 영사들이 천종한과의 싸움에서 모두 크게 다쳤다. 그래서 임지환은 영사들의 상태를 확인하고 싶었다.“용주님께서 걱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자매들의 상처는 거의 다 나았습니다. 제가 보증하건대, 거미줄 조직 놈들은 절대 내일 아침 해를 볼 수 없을 겁니다.”유란이 사뭇 진지한 태도로 말했다.“가서 해치워!”임지환은 손을 내저으며 지시했다.주작이 키운 영사들은 태생부터 살육을 위해 존재하는 자들이었다. 거미줄 조직 같은 폭력적인 킬러들을 상대할 때는 더 폭력적인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사람을 죽이는 자에게 공포에 떨게 할 정도로 무서운 죽음을 선사하는 것이 영사들의 생존 신조이며 임지환이 적을 다루는 방식이었다....“미안해, 오래 기다렸지?”임지환이 병원 문을 나서서 이내 양서은의 차에 올랐다.“환자를 데려다주는데 왜 그렇게 오래 걸렸어? 설마 병원 간호사한테 눈이라도 돌린 거야?” 양서은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임지환은 머리를 들고 양서은을 힐끗 쳐다보고는 담담하게 말했다. “병원 간호사들이 다들 너처럼 예쁘다면 네 말대로 시선이 돌아갈 수도 있겠어.”“쳇, 바람둥이 같으니. 날 넘볼 생각은 하지도 마!”양서은은 그 말에 얼굴이 확 달아올랐고 임지환을 빤히 노려보고는 바로 가속 페달을 밟았다.양서은의 마음이 심하게 흔들린 게 분명했다.30분 후, 두 사람은 용은 저택에 도착했다.“양 팀장님, 드디어 오셨군요.”“팀장님 지시에 따라 저희는 부두에서 장천을 막았습니다.”
용은 저택은 무려 10초간 침묵에 휩싸였다.“임지환, 이런 유치한 농담은 좀 그만둬 줄래?”양서은은 잠시 멈칫하더니 자연스럽게 미간을 찌푸리며 못마땅해했다.“임 선생님 무술 실력이 뛰어난 건 인정하지만 거미줄 조직 킬러들도 절대 만만한 상대는 아닙니다.”“임 선생님 혼자서 거미줄 조직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겁니까?”“맞아요... 임 선생님이 아무리 날고뛰는 재간이 있다고 해도 결국은 임 선생님 혼자뿐이잖아요. 그렇게 많은 킬러를 동시에 상대하려다 보면 목숨까지 위태로울 수 있어요.”다른 수사대원들도 임지환의 말을 듣고 줄줄이 의심을 표했다.누가 봐도 터무니없는 허풍이었다. 이 임지환이라는 사람은 거미줄 조직의 무시무시함을 모르는 게 분명해 보였다.현장에 있던 사람 중, 오직 허청열만이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며 임지환의 말에 공감했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보아하니 임 선생님은 이미 계획이 다 있는 것 같군요.”“뭐, 그렇게 말할 수 있지.”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여전히 담담한 어조로 말했다.“임지환, 정말 거미줄 조직과 정면으로 충돌할 생각이야? 그건 현명한 선택이 아니야. 네가 탐랑과 싸운 경험이 있는 것도 알고 탐랑 파트너를 죽인 것도 알지만 탐랑은 거미줄 조직에서 겨우 20위 안에 드는 정도야. 우리 정보에 따르면 이번에 오는 킬러 중엔 거미줄 조직 최고 암살자인 ‘광대'와 ‘킹콩'이 포함되어 있어. 네 개인 안전을 위해서 며칠 동안은 우리와 함께 지내는 게 나을 거야.”양서은은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에 참지 못하고 조심스레 충고했다.“그럴 필요 없어.”하지만 임지환은 생각할 것도 없이 단호하게 거절하며 고개를 저었다. “너희와 같이 있으면 내가 오히려 너희를 보호해야 해서 나만 더 피곤해질 거야.”“임지환, 선 넘지 마. 우릴 왜 그렇게 무시해?”양서은은 임지환이 이렇게 대놓고 노골적으로 말하자 깜짝 놀라 예쁜 얼굴에 불쾌한 기색을 띄웠다.“임 선생님이 아무리 눈에 뵈는 게 없이 자신만
체포 여부는 오로지 임지환에게 달려 있었다....강한시 한의원, 특실 병동.배지수는 배준영을 병실로 데려왔다.“지수야, 임 대사님을 만났니?”심창진은 배지수가 돌아오자마자 급히 물었다.“아니요. 제가 내려갔을 때 임 대사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요. 대신 운 좋게도 준영이를 찾아서 데려왔어요.”배지수는 아까 있었던 일을 얘기하며 배준영을 병실에 있던 간호사에게 맡겼다.“보아하니 너희는 임 대사님과 인연이 없나 보구나. 임 대사님이 있었다면 네 동생도 완벽하게 치료될 수 있었을 텐데. 이제는... 더 좋은 병원으로 옮겨 치료를 받아야 할 방법밖에 없는 것 같구나.”심창진은 아쉬운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어쩔 수 없죠. 인연이 아닌가 봐요.”배지수도 덩달아 깊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게다가 임 대사님은 언제나 종잡을 수 없는 분이잖아요. 제가 봤다고 해도 그분을 알아볼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겠네요.”“내가 방금 너와 같이 가야 했는데, 그걸 깜빡했네.”심창진은 더더욱 아쉬운 기색을 보였다.배지수는 심창진이 이렇게 신경 써주는 것에 깊이 감사하며 말했다. “어쨌든 원장님께서 이렇게 마음 써주셔서 감사드려요. 이제 금릉에 가서 준영의 병이 나았으면 좋겠네요.”“지수야, 그 일에 대해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어. 내가 이미 찍어 둔 적합한 인물이 있어. 금릉에 도착하면 내가 직접 찾아가 볼 생각이야. 그 사람이 동의만 해준다면 준영의 병은 큰 문제 없을 거야.”배국권의 눈에는 깊은 생각이 담겨 있었다.“적합한 인물이라뇨? 할아버지, 누구를 말씀하시는 거예요?”배지수는 순간 멍해졌고 샘물처럼 맑은 눈에는 호기심과 의아함이 가득 담겨 있었다.요 몇 년간, 할아버지는 항상 은둔 생활을 해왔고 종래로 사적으로 신의를 알고 있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심창진도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국권아, 네가 그런 놀라운 비밀을 숨기고 있을 줄은 몰랐어. 내가 널 이렇게 오래 알고 지냈는데도 한 번도 그런 얘기를 들은 적이 없었어.”“
“제가 나설 차례라고요?”배지수는 눈이 휘둥그레지며 물었다. “할아버지, 농담 마세요. 전 작은할아버지 얼굴도 뵌 적이 없는데 그분이 왜 제 말을 듣겠어요?”“얘야, 넌 진짜 대단한 보물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를 전혀 모르는구나. 비록 네가 내 동생과 친분이 없다고 해도 너와 연경 진씨 가문과의 관계는 각별하잖아. 듣자 하니, 진씨 가문 둘째 아들인 진운이 너에게 무척 신경을 쓰고 있다고 하더구나. 진씨 가문이 나서서 중재한다면 이 일은 십중팔구 해결될 거야.”배국권은 모든 계획을 다 세운 것처럼 자신만만한 말투로 조리 있게 말했다.“할아버지, 오해하지 마세요. 저와 진 도련님은 좀 친하긴 하지만 친밀한 사이는 아니에요. 제가 부탁을 한다고 해도 그분이 무조건 발 벗고 나서서 도와줄 거라는 보장은 없어요.”배지수는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고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낮아졌다.자기와 진운 사이의 왜곡된 소문이 할아버지 귀에까지 들어갔을 줄은 몰랐다.“진 도련님이 널 위해 몇 번이나 선뜻 나섰고 우리 배씨 집안을 특별히 신경 써 주고 있다는 걸 할아버지는 다 알고 있다. 금릉에 가면 적당한 기회에 진씨 가문 어르신과도 얘기를 잘 나눠봐야겠구나. 너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적당한 남자를 찾아 시집가야 할 게 아니냐?”배국권은 호탕하게 웃으며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만약 진씨 가문과 진짜 인연을 맺을 수 있다면 배씨 집안의 규모나 사회적 지위는 현재 상황과 완전히 달라질 것이다.“할아버지, 심 원장님과 얘기 나누세요. 전 먼저 나가서 준영이에게 따뜻한 물을 좀 떠 올게요.”배지수는 배국권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발치에 놓인 주전자를 들고 부끄러워 어쩔 바를 모르는 표정으로 병실을 빠져나갔다.“계집이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는데 얼굴이 여전히 소녀처럼 빨개지네.”배국권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눈에는 배지수를 향한 애틋한 애정이 깃들어 있었다.“국권아, 방금 네가 한 말을 들으니까 생각이 나서 묻는 건데 말야.”심창진이 허허 웃으
강한 시의 구르미 빌리지"임지환, 이혼 서류에 사인해. 너도 알잖아, 지금 네 신분으로는 배 대표님한테 안 어울린다는 거. 배 대표가 너 불쌍하게 생각해서 보상도 많이 해줬어, 집 한 채에 차 한 대, 그리고 회사 주식이랑 현금 10억 준다고 했다니까. 이거 가지고 무슨 여자를 못 찾겠어?"오피스룩을 입은 한 여자가 앞치마를 두르고 있는 남자 옆에 서서 쉬지 않고 말했다.여자의 짧은 치마 밑으로 검정색 스타킹을 신은 두 다리가 길게 뻗어있었다. 얼굴도 예쁘장한 여자는 무척 성숙된 모습을 하고 있었다.하지만 남자는 앞치마를 두른 채 설거지에 집중했다.그는 날카로운 눈과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덕에 남자다워 보였다.잘생겼다고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다른 이가 싫어할 상은 아니었다."임지환, 너 내 말 듣고 있는 거야? 네가 원하든 말든 너 이혼 꼭 해야 돼."말이 통하지 않는 임지환을 보며 여자가 화를 냈다.임지환은 묵묵히 마지막 접시 하나를 선반 위에 올려놓더니 앞치마를 벗어 담배에 불을 붙이곤 여자를 바라봤다.여자는 바로 남자의 와이프 배지수의 비서 겸 사촌 언니 한수경이었다."이유라도 알려줘요.""뭐?"임지환의 말을 들은 한수경이 멈칫했다."처형, 지수가 이혼하고 싶은 거라면 이유가 있어야 할 거 아니에요."임지환이 담배 연기를 내뱉으며 말했다.“처형이라고 부르지 마, 나는 너 같은 매제 둔 적 없으니까."한수경이 임지환을 흘겨보며 다시 말했다."배 대표가 너랑 이혼하겠다는데 무슨 이유가 필요해?""왜 이유가 필요 없죠?"임지환이 담담한 얼굴로 반문했다."그래, 네가 알고 싶다면 내가 다 말해줄게. 지금 배 대표 사업이 잘되어서 진씨 집안이랑 사이도 좋고 승승장구하고 있거든. 그런데 너는 그냥 쓰레기일 뿐이잖아, 그런 네가 어떻게 배 대표한테 어울리겠어? 방해나 하지 않으면 다행이지!"그 말을 들은 임지환이 씁쓸하게 웃었다."제가 지수한테 안 어울린다고 생각해서 그런 거였군요."임지환은 배지수와 결혼을 한 뒤, 성실
말이 끝나자마자 한 여자가 걸어들어왔다.여자는 170의 키에 완벽한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갸름한 얼굴에 커다란 눈, 그리고 새빨간 입술에 가지런한 이를 가지고 있었다.보라색의 롱 드레스를 입은 덕에 우아한 그녀의 분위기가 더욱 돋보였다. 밖으로 드러난 새하얀 팔은 더욱 눈부셨다.그녀는 마치 금방 그림속에서 나온 여자 같았다.여자의 등장으로 한수경은 순식간에 빛을 잃고 말았다.임지환은 지금도 여자를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떨렸다.예전의 두 사람은 그래도 행복했었다. 하지만 지금은…"배 대표, 입 아프게 하지 말고 그냥 법대로 가."한수경이 귀띔했다."걱정하지 마, 내가 해결할게." 배지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한수경은 결국 입을 다물고 옆에 서서 전생의 원수를 바라보듯 임지환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분위기는 조금 무거워졌다.배지수는 눈앞의 남자를 보고 있으니 예전의 모든 것들이 떠올랐다.그녀는 임지환에게 미안한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나를 찾았다고?"배지수가 심호흡을 한번 하더니 임지환에게 물었다."이혼하겠다는 거 네 생각이야?"임지환이 배지수의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응, 내 뜻이야."배지수는 임지환에게 미안했지만 단호하게 말했다."이유, 말해 줄 수 있어?"임지환이 다시 물었다.일이 이미 이렇게 되었지만 그는 그래도 돌이켜보려 했다."나 이제 너 봐도 아무 느낌도 없어, 이런 결혼 계속 이어 나가봤자 서로한테 지옥만 될 거야."배지수가 두 손을 맞잡은 채 자연스럽게 보이려 애썼다."너 많이 희생한 거 알아, 그래서 이혼할 때 배상도 충분히 해 줄 거야.""3년 동안 결혼하고 함께 지냈는데 결국 서류상의 몇 글자밖에 안 되는 배상으로 끝내자고?"임지환이 기가 차다는 듯 웃었다."너는 사람의 감정을 모두 돈으로 계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지?"그런 임지환을 보니 배지수의 심장이 아팠다.지난 3년 동안 임지환은 배지수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줬다고 할 수 있었다.신분과 지위를 따지지 않는다면 그는 완
"상자?"임지환의 말을 들은 배지수가 생각해 보더니 드디어 임지환이 결혼할 때, 가지고 왔던 라탄 상자 하나를 떠올렸다.배지수의 남동생 배준영은 평범한 그 라탄 상자를 보곤 촌스럽다며 임지환이 고대에서 온 사람이라고 비웃기까지 했었다."그거 네 거잖아,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해.""그래, 나 다른 요구는 없어."임지환이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며 말했다.그 말을 끝으로 그들은 다시 침묵에 빠졌다."임지환, 네가 억울하다는 거 나 다 알아. 하지만 나도 사정이 있어서 이러고 있다는 거 네가 알아줬으면 좋겠어."배지수가 생각해 보더니 말했다."알아."말을 마친 임지환이 무표정한 얼굴로 이혼 서류에 사인했다.배지수는 그 모습을 보고서야 한시름 놓았다.하지만 곧이어 짙은 상실감이 덮쳐왔다.두 사람의 결혼은 이렇게 끝이 났다.임지환에게는 불공평하지만 배씨 집안에게 있어서 이는 가장 적합한 선택이었다."후회되면 언제든지 찾아와, 내가 약속했던 조건들 계속 유효하니까."배지수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이혼 서류를 들고 하이힐을 신은 채 집을 나섰다.임지환은 그런 배지수를 보며 씁쓸하게 웃었다.아마 앞으로 두 사람은 다시 만날 수 없을 것이다.임지환은 기계적으로 몸을 일으켜 2층으로 올라가려고 했다."뭐 하려고?"한수경이 경계심 가득한 표정으로 임지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2층에 가서 제 물건 챙겨야죠."임지환은 더 이상 그녀를 상대하고 싶지 않다는 듯 2층으로 올라갔다.그런 임지환을 바라보던 한수경이 휴대폰을 꺼내 거실 한쪽으로 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네, 이모. 임지환이 이혼 서류에 사인했어요."한편, 잠원 별장."뭐? 그게 정말이야? 그 쓰레기가 정말 사인했다고?"예쁘장한 중년 여자가 얼굴에 하고 있던 팩을 던지며 벌떡 일어났다.그녀는 바로 배지수의 어머니인 유옥진이었다. 유옥진의 옆에 있던 배준영도 그 소리를 곤 귀를 쫑긋 세웠다."네, 정말이에요. 제가 설득해서 사인하게 했어요. 그것도 지수 앞에서."한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