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신, 염구준이 드디어 귀환했다. 그러나 그의 눈앞에 펼쳐진 건 사냥개들과 함께 철창에 갇힌 딸아이와, 다른 남자의 품에 안겨 있는 아내였는데...
더 보기황금 구렁이는 상체를 올려서 휠체어에 타고 있는 아타를 내려다보았다.“에휴.”죽음 앞에서 아타는 한숨을 내쉬며 두 눈을 감았다.그는 죽음이 두려운 게 아니라 소원을 이루지 못한 것이 한스러웠다.스스슥!황금 구렁이가 큰 아가리를 벌리고 맹렬하게 공격했다.“응?”그런데 아무런 고통이 느껴지지 않았다.아타가 마음을 추스르고 눈꺼풀을 슬며시 뜨고 봤떠니, 눈앞에 누군가 황금 구렁이의 꼬리를 안고 있는 것이 아닌가.그 사람이 바로 염구준이었다.황금 구렁이는 안간힘을 쓰면서 발버둥을 치더니 전략을 바꿔 염구준을 물려고 달려들었다.날카로운 이빨은 쳐다만 봐도 간담이 서늘했다.“하, 전신지상에 도달한 구렁이구나.”염구준은 짐승의 실력을 판단하고는 위로 번쩍 뛰어올라 주먹으로 머리를 내리쳤다.구렁이는 단번에 큰 타격을 입었다.“염 선생님은 신 같은 존재입니다.”아타는 저도 모르게 엄지손가락을 치켜들었다.아직도 몸이 떨리지만 죽음을 면해서 참 다행이었다.자신에게 아첨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염구준은 주의력을 구렁이에게 집중했다.“황계웅이 참 특이한 취향을 갖고 있네요. 구렁이를 키우다니.”황금 구렁이는 장독대만큼 굵고 온몸에 황금빛이 감돌고 있으며 정수리가 살짝 뾰족한 것이 아주 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마치 구렁이 무리에서 왕이라도 되는 것 같았다.아쉽게도 구렁이의 가장 약한 부위에 침이 달린 목줄을 걸어놓은 탓에 침이 침투하면서 애완동물처럼 제압하고 있었다.아타는 흥분한 염구준을 보며 앞으로 다가가 설명했다.“황계웅은 구렁이를 기르기 좋아했어요. 염 선생님이 마음에 든다면 아랫것들 시켜 구렁이를 보내줄게요.”그는 시기를 봐가면서 계속 아첨했지만 염구준은 손사래를 치며 거절했다.“구렁이는 원래 이곳에 속하지 않는데 뭐 하러 강제로 묶어두는 거죠?”왠지 구렁이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눈앞에 있는 황금 구렁이는 황계웅의 사리사욕 때문에 이곳에 갇혔을 뿐이었다.그 말에 아타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체 무슨 뜻인지 갈피를 잡지
일정이 변경되어서 아내에게 알려야 했다.“구준 씨, 무슨 일이 생겼어?”전화를 받자마자 손가을이 본능적으로 물었다.오랫동안 부부로 살았으니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어떤 말을 하려는지 무슨 마음인지 바로 알 수 있었다.손가을의 질문에 염구준은 대답하기 곤란했다.“여보, 여기… 돌발 상황이 생겨서 이틀을 더 머물러야 할 거 같아.”아침까지만 해도 오늘 돌아간다고 말했는데 갑자기 옥패에 관한 단서가 나타나는 바람에 도저히 돌아갈 수가 없었다.“알았어. 집은 걱정 말고 안전에 주의해.”손가을은 사려 깊게 염구준을 이해하고 지지했다.어떤 일들은 그녀가 도와줄 수 없으니 묵묵히 격려하는 수밖에 없었다.“알았어. 최대한 빨리 돌아갈게.”염구준은 마음 한구석이 따뜻해졌다.이렇게 훌륭한 아내가 있으니 더 바랄 것이 없었다.그리고 손씨 그룹에서 신에너지 프로젝트가 정식으로 시작되어서 안정되었고 가족들은 모두 무사하다는 등 얘기도 나누었다.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더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결국 손가을이 회의에 참석해야 해서 아쉬운 마음으로 통화를 마쳤다.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저마다 수근거렸다.“염구준이 악마라고 하지 않았어? 악마가 웃을 줄도 아네.”“그냥 소문이겠지. 나는 염구준이 좋은 사람인 거 같아.”“떠들지 말고 물건이나 찾아. 수 틀리기 전에 입 다물어.”하지만 염구준은 예리한 통찰력으로 그들의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뭐가 나왔어? 옥패와 관련 있는 거라도 상을 줄게.”그 말에 다들 얼굴이 굳어졌다.한 시간이나 넘게 찾았는데도 옥기조차 보이지 않았다.그보다 심각한 것은 옥패가 어떻게 생겼는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10억 현상금을 얻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염 선생님, 여기 뭐가 있는 거 같습니다.”“망했어. 무슨 짐승이 저렇게 강해. 얼른 철수해!”스스슥!갑자기 무전기에서 다급한 아타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멀리서 빨간 신호탄이 하늘로 치솟았다.무슨 변고가 생긴 것이었다.부하들은 저마다
끼익!차가 산장 입구에 멈추고 염구준과 아타는 다시 대전으로 들어가 옥패의 단서를 찾았다.황계웅의 재력으로 밀실이 하나도 없다는 것은 말이 안 되었다.산장 입구는 생각보다 시끌벅적했다.공터에 대형 트럭 몇 대가 세워져 있고 내부에서 사람들이 무거워 보이는 상자들을 나르면서 흥얼거리고 있었다.바라해에서 황계웅의 재산이 어마어마하다는 사실을 다 알고 있어서 지금 그들의 표정은 큰 수확을 거둔 것으로 마냥 기뻤다.비휴산장에 있는 귀중한 꽃과 화분마저도 가격이 엄청났다.“염 선생님!”그때 누군가 염구준을 발견하더니 뭐가 찔리는지 그 자리에 얼어버렸다.순식간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그에게 쏠리더니 하나같이 겁을 먹은 표정을 지었다.그들이 나르는 물건은 엄격하게 말해서 염구준의 전리품이었다.“들어가서 보시죠.”염구준은 얌체처럼 공짜 이득을 챙기려는 일행을 무시하고 곧장 산장 내부로 들어갔다.솔직히 그 물건들은 눈에 차지도 않았다.하지만 상자를 나르던 일행은 염구준이 사라져도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기다렸다.그들은 10대 가문의 소속으로 그날 현장에 없었지만 수소문으로 다 들었었다.방금 봤던 사람이 황계웅을 죽였다는 것을 생각하면 저도 모르게 오금이 저렸다.별장 안에는 치고박는 소리와 욕하는 소리가 섞여서 현장이 난장판이 따로없었다.“이거 내가 먼저 발견했어. 그 손 놔.”“잘 들어. 먼저 손찌검하는 사람은 바로 죽여버려! 의리고 나발이고 생각할 것도 없어.”“뭐라고? 얼마든지 덤벼. 누가 무서워할 줄 알아?”원래 의리가 굳건하던 10대 가문은 지금 이익을 위해 서로 싸우는 지경까지 이르렀다.현장은 어제 염구준이 싸웠던 것만큼 참담했다.“여기 시끌벅적한데.”염구준은 이미 예상했는지 서로 물건을 빼앗는 그들을 보며 코웃음을 쳤다.엊저녁에 10대 가문에서 황계웅을 설득하러 왔었다.그런데 24시간도 안 되어서 남의 재산을 차지하려 들다니, 정말 아이러니했다.“염구준! 황금 산을 너한테 줬는데, 그걸로 부족해?”한 가문의 수
“시끄러워.”루카는 악마 같은 염구준을 건드리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잔뜩 낮추었다.하루아침에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이렇게 비참한 결과를 초래했으니 자업자득이나 마찬가지였다.염구준은 그의 태도가 마음에 드는지 첫 번째 질문을 던졌다.“너희들은 왜 아타가 옥패를 가졌다고 우기는 거지?”루카가 그를 힐끗 쳐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입을 열었다.“황계웅의 손에 옥패 하나가 있었어. 마지막에 아타 장로가 장례를 치러줬으니 당연히 갖고 있다고 생각한 거야.”그 말에 아타는 당황하기 그지없었다.지금까지 큰 소동을 일으킨 것이 오직 의심 때문이라니, 옥패가 이토록 중요한 물건인 줄은 생각도 못했다.“황계웅이 정말 이런 옥패를 갖고 있단 말이야?”염구준은 호주머니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보여줬다.상대방이 아무런 근거도 없이 괜히 일을 크게 벌인 것이 아닌가 싶었다.‘옥패야!’모든 사람들의 눈이 염구준의 손에 쏠렸다.그들도 옥패를 직접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스텔라성에서도 염구준의 손에 옥패가 있다는 사실을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감히 빼앗지 못했다.전신전의 실력이 그들보다 훨씬 강했기 때문이었다.염구준이 옥패를 거두며 말했다.“잘 봤으면 내 질문에 대답해.”옥패를 보여줘도 감히 빼앗을 사람은 없을 거라 자신했다.황계웅이 그의 옥패를 탐한 대가로 지금 한 줌의 유골이 된 것을 모두가 알기 때문이었다.루카는 망설이지 않고 전부 말했다.“우리는 옥패를 본 적이 없어. 황계웅이 자기한테 옥패 하나가 있다고만 말했지. 며칠 전에 스텔라성에 와서 사람을 빌려주면 나중에 자기 옥패를 주겠다고 했거든. 근데 지금 죽고 없어서 우린 옥패를 찾으러 왔을 뿐이야. 그러니까 염 선생과 적이 될 생각이 없어.”그의 말투는 점점 누그러 들면서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염구준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지금까지 상대방의 입에서 믿을 만한 정보를 하나도 얻지 못했다.그냥 황계웅의 손에 옥패가 있다는 말만 했을 뿐, 아무도 직접 확인하지 않았다.“이 사람 가두고 비휴산장으로
“그래 나야. 이만 꺼져도 돼.”염구준은 패배자에게 신경 쓰지 않고 무심하게 대했다.지금 그는 옥패에 대한 정보만 알고 싶을 뿐, 아타와 스텔라성 사이에 끼여서 괜한 참여하기 싫었다.… 루카는 난처했다.염구준은 이기지 못하겠고 임무도 포기할 수 없었다.그레이가 도망갈 줄 알았다면 미리 아타를 데리고 가라 했을 것이다.스스슥!루카는 먼저 선공격을 하려고 비밀 무기를 연거푸 던진 후 아타를 안고 담장으로 뛰었다.윙!“그런 뜻이라면 곱게 못 보내겠네.”염구준은 뒤쫓으며 한 줄기 검기로 루카의 앞길을 막고는 아타를 놓아주도록 그의 등에 검을 휘둘렀다.도망칠 길이 없고 근거리 싸움에서 사람을 안고 있는 것은 부담이 되었다.“염 선생, 멈춰. 바로 갈게.”루카는 계획이 수포로 돌아가자 말을 바꾸었다.“늦었어.”그렇다고 사정을 봐줄 염구준이 아니었다.방금보다 더 매섭게 검을 휘둘러 상대방의 방어를 뚫었다.상대방이 겁도 없이 자신의 실력을 떠보았으니 그만한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루카는 최강 반보천인 무술인이지만 결과를 짐작할 수 있었다.수십 번의 초식으로 부상을 입고 백 번의 초식 내에 생포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는 것을.탁!그때 염구준은 손가락으로 루카의 단전을 막아 잠시 폐인으로 만들었다.“내게 무슨 짓을 했어?”이런 수법을 처음 보는 루카는 기운을 감지할 수 없게 되자 당황했다.탁!염구준은 시끄러워서 인상을 쓰며 손으로 그의 뒷목을 쳐서 기절시켰다.구조된 아타의 일가는 기쁜 나머지 서로 부둥켜 안으며 보듬어주었다.그들은 마치 구사일생을 겪은 것 같았다.“염 선생님, 고맙습니다.”아타는 가족들을 데리고 염구준의 앞에 오더니 깍듯하게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그럼 옥패에 대해 말씀해 보세요.”염구준은 바로 용건을 말했다.그는 좋은 마음으로 아타를 구해준 것은 절대 아니었다.그레이를 슬쩍 보던 아타는 그가 폭로한 것을 알아챘다.이제 숨길 수도 없으니 옆 사람들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토로하려 했다.“고대 옥
그가 제일 싫어하는 게 바로 자신을 속이는 행위였다.한편, 바라해, 아타의 고성.평소 가족들이 휴식하며 웃음이 넘치던 고성의 정원이 오늘은 지옥이었다.아타의 가족 전원이 결박당한 채 정원 한가운데 내던져졌다.“영감, 황계웅의 물건 내놔. 우리도 영감한테 이러고 싶지 않으니까.”루카는 벽에 기대앉아, 칼끝으로 손톱을 다듬으며 태연하게 요구했다.그러나 아타는 고개를 저으며, 난처한 얼굴로 되물었다.“무슨 물건 말입니까? 전 모르는데요.”그는 상대가 무엇을 원하는지 짐작했으나 괜한 오해를 살까봐 언급하지 않았다.물건이 그의 손에 없다는 걸 설명할 길이 없었다.“옥패지. 더 설명이 필요해?”루카는 침착하면서도 느긋하게 말했다.이에 아타는 알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연기하며 말했다.“옥패라면, 여기 제 목에 걸려 있지요.”루카는 피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이번 임무가 생각외로 너무 순조롭게 풀렸기 때문이다.“하하, 그래, 이럼 좋잖아. 시간도 아끼고, 응?”하지만 옥패를 확인하는 순간, 그의 웃음은 얼어붙었고, 곧 분노가 대신했다.아타는 따라 웃으며 공손하게 말했다.“대대로 내려온 얼음빛 자수정 옥입니다. 루카 님께서 마음에 드신다면, 그냥 가져가셔도 됩니다.”옥의 품질은 뛰어났다. 이 정도 크기라면 값도 꽤 나갈 게 분명했다.하지만 그들이 찾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하하...”루카는 상대방을 보며 웃었지만, 그 웃음은 너무 싸늘하고, 음산했으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해지게 만들었다. 푸욱!그는 웃음을 그치고 손에 든 단검을 아무렇게나 던져 옆에 있던 사람의 심장을 꿰뚫었다. “빗나가지 않아서 다행이네. 아니면 지금 죽은 게 하인이 아니라 영감 가족이었을 테니까 말이야.”이 갑작스러운 살인에 사람들은 그가 이때까지 헛소리를 한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정원의 분위기는 금세 얼어붙었다.목숨이 위협을 받자 사람들은 루카 대신 말하기 시작했다. “아버지, 그냥 가지고 계신 거 주세요! 저희는
“기회를 줬는데도 굳이 죽으려고 드는 이유가 뭐야?”염구준은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본래는 싸우고 싶지 않았지만 멍청한 놈들이 덤비고 드니 안 싸우고 끝낼 수가 없었다.휙.그는 빠르게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돌진해오는 반보천인을 무시하고 그레이를 공격하려는 전신위 사람들에게 달려갔다.이렇게 허접한 계략으로 그를 상대하겠다는 건 말도 되지 않았다. ‘이렇게 빠르다니!’염구준의 모습을 본 우두머리는 경악했다. 조금 전까지 막고 있겠다고 했지만, 상대방의 속도조차 따라잡지 못하는 데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계획 취소한다! 빨리 피해!”그가 지금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건 경고하는 것 뿐이었다.“합심 방어해!”전신위 경지의 사람들은 피할 수 없다는 걸 깨닫고 정면으로 맞붙기 위해 힘을 합쳤으나 속으로는 이미 절망에 빠졌다.“칠상권종극오의, 칠권합일!”쾅!염구준은 처음부터 최강의 권법으로 그들의 합동 방어를 뚫고, 전부 죽였다.이곳에서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아서였다.“당신, 제 뒤에 어떤 세력이 있는지 알고는 있습니까?”우두머리는 더 이상 무력으로 붙을 담력이 없어 말싸움을 하기를 선택했다.“흥, 내가 알 필요가 있나? 누구 뒤에는 세력이 없는 것처럼 구네.”염구준은 이런 협박성 발언에 이미 면역이 된 상태였다. 약한 놈일수록 늘 뒤에 누가 있다는 말을 꺼냈으니까 말이다.하지만 우두머리는 포기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저는 스텔라성에서 왔습니다. 이 작은 바라해는 물론, 근방의 열 개가 넘는 해역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죠.”그러나 아무리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말해도, 염구준은 계속 짜증을 내며 그의 말을 끊었다.“꺼질 거야 말 거야?”“당신, 이건...”우웅.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염구준이 오른손으로 검결을 만들어 짙은 살기가 담긴 검기를 날렸다.‘떠드는 시간이면 이미 싸움 한판을 끝냈겠다.’염구준이 속으로 생각했다.쿵!우두머리는 전력을 다해 방어하며 반동력을 이용해 밖으로 나간 뒤, 허겁지겁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사람들의 돈벌이 수단일 뿐입니다. 저도 이름만 장로지, 그들이 기르는 개에 불과하고요.”아타의 고백을 듣다 못한 그레이가 눈을 질끈 감고 외쳤다.“아버지!”염구준은 음식을 먹으며 그들의 이야기가 자신과 상관이 없다고 생각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됐고, 요점만 말하세요.”이에 아타는 굳건한 눈빛으로 간절히 부탁했다.“염 선생님, 저희가 자유를 되찾을 수 있도록 제발 스텔라성을 없애 주세요.”“만일 그들이 사람답지 않게 굴고 당신들을 억압했다면 소탕 당해도 쌉니다.”염구준은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모호하게 말했지만 아타의 부탁이 무리하다고는 느끼지 않았다.염구준의 대답에 아타와 그레이는 기뻐하며 고개를 숙였다.“정의를 위해 힘써 주셔서 감사합니다, 염 선생님.”그러나 염구준은 손을 저으며 덤덤하게 말했다.“하지만 그건 당신들의 일입니다. 저와는 상관없죠.”이곳은 국외이기 때문에 이 땅의 정의가 어떻든, 그가 나설 이유는 없었다.“당신...”그레이는 조롱당한 것만 같아 화가 치밀어서 반박하려 했으나 아타는 그를 제지하며 허탈하게 말했다.“그만 가자. 도와주든 안 도와주든 그건 부탁을 받은 이의 자유니까.”“폐를 끼쳤습니다.”“어젯밤 당신과 싸우던 중 도망친 루카와 슈카 형제도 스텔라성에서 온 사람들입니다.”아타는 마지막 정보를 남긴 뒤, 조용히 인사하고 휠체어를 밀며 나갔다.염구준의 힘을 빌리고 싶긴 했지만, 죽어라 매달리는 건 그의 방식이 아니었다.염구준은 식탁 위의 은행카드를 흘끗 보고는 빚지는 게 싫어 약속을 건넸다.“만약 박해를 받게 되면, 청해시로 오세요. 지켜드릴 테니까요.”작은 도움으로 이런 약속을 얻었으니 이건 나쁘지 않은 장사였다.“감사합니다.”그러나 아타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그는 어차피 죽어가는 몸이라 지키고 싶은 게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황계웅이 죽었으니 이제 모든 일이 끝난 셈이었다.염구준이 짐을 챙기고 지사 업무를 마무리하자 어느덧 오후가 되어버렸
“염 선생님, 오해 마십시오. 저희는 악의가 없습니다!”“텍서는 독단적으로 행동하다 죽은 것이니, 선생님 탓이 아닙니다.”아타는 다급히 휠체어를 밀며 앞으로 나와 더 깊은 오해를 만들지 않기 위해 서둘러 설명했다.이렇게 강한 반보천인을 건드리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었다.“그 말 진짜인 게 좋을 겁니다. 괜히 또 오늘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지 마시고요.”염구준은 검을 거두고 검집을 등에 매고는 아무 미련도 없이 비휴산장 밖을 향해 걸어 나갔다.산처럼 쌓인 황금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말이다.그 앞에 서 있던 10대 세력 대표자들은 염구준이 나오는 걸 보고 재빨리 양옆으로 길을 비켰다. 그들의 눈에는 모두 공포감이 어려있었다. 염구준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자, 그제야 그들의 탐욕스러운 본성이 드러났다.“아타 장로, 저 금산은 어떻게 나눌 겁니까?”‘나눈다고?’이 말을 듣자마자 아타의 흐려있던 눈이 순식간에 날카롭게 바뀌었다. 그는 위엄 있게 말했다. “저 금산은 염 선생님의 전리품이야. 죽기 싫으면 아무도 손 대지 마.”“나는 저 금산을 현금으로 환전한 뒤, 전부 염 선생님께 전달할 거야.”바로 눈앞에 놓여있는 금산을 가지지 못한다니 적지 않은 사람들이 마음에 들지 않아 얼굴이 굳어졌다.바로 이때, 유일하게 남은 반보천인이 아타를 지지하며 나섰다.“저도 아타 장로님의 의견에 찬성합니다. 사람이 너무 탐욕스러우면 화를 부르는 법이죠.”...그의 지지에 분위기는 단번에 가라앉았다. 텍서가 죽은 지금, 그를 감당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염구준은 손씨 그룹의 지사로 돌아가 모든 직원들에게 잠시 나오지 말라고 한 뒤, 손가을에게 후속 인력을 보내도록 했다.제임스의 배신 때문에 이곳의 직원들을 더 이상 믿을 수가 없어서 전면적으로 조사할 생각이었다. 마음에 걸리는 게 있는 이상 가만히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통화를 하며 그는 아내와 긴 대화를 나누었고, 다음 날이면 집에 돌아갈 예정이라고 알렸다.남편이 무사하다는 말에 손가을
“아빠야? 나 너무 배고파. 우리한테 밥도 안 주고... 무서운 개랑 같은 데 가둬두고... 개한테 여러 군데 물리기까지 했어. 나 너무 아프고 무서워. 흑...”극북빙양, 거대한 전장에서 수많은 함선들이 전투를 벌이고 있다.그중 붉은색 드래곤이 코팅된 함선의 지휘실 수화기에서 이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아이의 목소리가 흘러나온 것이다.하지만 아이의 애절한 목소리에도 염구준의 표정은 여전히 차갑기만 하다.“잘못 거셨습니다.”“아니야! 우리 엄마가 날 속였을 리가 없어. 내 이름은 염희주야. 염구준의 딸 염희주라고! 엄마가 그렇게 말해 줬단 말이야.”쿠궁!행여라도 전화를 끊을가 싶어 다급하게 내뱉는 여자아이의 목소리에 염구준의 눈동자가 드디어 흔들리기 시작한다.염희주?“정... 정말 내 딸이라고?”하지만 그의 질문에 대답 대신 들려오는 건 찢어질 듯한 따귀 소리와 여자아이의 처참한 비명소리였다.“이 계집애가, 발칙하게 몰래 전화를 걸어?”“아, 잘못했어요.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니까 때리지만 말아주세요!”여자아이의 애원을 마지막으로 전화는 끊겨버리고 다시 걸어봐도 묵묵부답.딸이 위기에 처했음을 인지한 염구준은 다급한 마음에 붉은 피를 왈칵 쏟아냈다.“주군!”깔끔한 군복차림의 여자가 다급하게 그를 부축했다.하지만 거칠게 그 손을 뿌리친 염구준이 포효했다.“어서 전세기 준비해. 지금 당장 청해로 돌아간다!”“알겠습니다!”잠시 후, 거대한 전세기가 하늘을 뚫고 사라지고... 수많은 병사들이 수십 척의 함선갑판을 가득 메운 채 무릎을 꿇었다.“안녕히 가십시오, 주군!”다음 날, 청해 교외, 손씨 가문 저택.저택 밖에 선 염구준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5년 전, 가문에서 쫓겨나고 킬러들에게 쫓기다 교통사고까지 당했던 순간, 우연히 길을 지나던 소녀 한 명이 활활 타오르는 불길을 헤치고 중상을 입은 그를 구해냈었다.그녀의 정체는 바로 손씨 가문의 딸, 목숨을 구해 준 은혜를 갚기 위해 염구준은 기꺼이 데릴사위가 되는 조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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