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가을 얼굴이 어두워졌다.아무 말도 없었지만 부모님의 태도는 너무 명확했다. 손씨 집안에 장가를 온다고 해도 염구준은 데릴사위에 불과하다. 제대했어도 돈은 받지 못했을 거다. 돈이 없으면 생활이 좋아질 리가 없다. 노동력은 많아졌지만 동시에 밥 먹는 입도 늘어난 셈이다.부모님은 이 사위가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가을아.” 손태석은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그릇에 담긴 밥을 다 먹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낮은 소리로 말했다. “너 몇 년간 일해서 모은 돈이 얼마나 되니? 희주 유치원 학비랑 돈 들어갈 거 다 빼면 50만원은 되니?”손가을은 얼굴이 하얘졌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나한테 줘봐.” 손태석이 젓가락을 내려놓고 어두운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집에서 쫓겨나고 아버지가 다시 집안으로 돌아가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너도 알 테다. 내일이 어르신 칠순 잔친데, 그 돈으로 제대로 된 선물 하나 준비하고 싶구나. 어르신이 마음에 들어 하셨으면...”손가을은 눈시울이 붉어졌고 마음이 너무 아팠다!돈은 있다!손혜린이 그녀더러 사우나에서 일하라고 시키면서 갖은 모욕을 줬지만, 손님 등을 밀어주고 가끔 피아노 쳐주면 운 좋은 날은 팁도 받을 수 있어 돈은 적지 않게 벌었다. 몇 년 동안 일해서 손가을은 몇백만 원은 모았다. 하지만 손씨 어르신 마음은 얼음보다 차갑고 돌덩이보다 단단했다. 고작 몇백만 원의 선물을 드렸다고 절대 그들을 다시 받아주지는 않을 것이다!“돈...” 장인어른의 눈치를 보던 염구준은 무의식적으로 주머니를 만졌다. 헉.난처했다.그는 전신전의 전주다. 혼자 돈을 주고 무얼 사본 적이 없었다다.하찮게 여겼던 돈이지만 지금은 그를 난처하게 만들었다.주머니를 만지는 염구준을 보자 손태석은 눈이 반짝해졌다. 하지만 빈손인 걸 보자다시 낯빛이 어두워지더니 고개를 푹 수그리고 머리를 저었다. 그러고는 아무 말 없이 침실로 들어갔다.“...” 염구준은 하려던 말을 삼키고 웃지도 울지도 못하고 멍하니
“알아봐, 똑바로 알아보라고! 염구준 뭐하는 짓이야?”노여움의 소리가 울려 퍼졌다. 북미화기국, 유럽의 나라들, 극한의 북극 땅,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장병들이 지키고 있는 장비 빌딩, 아무도 모르는 군사기지, 극비의 군사 체널, 고위층 군사 장령, 모두 소리쳤다.놀랍다, 너무 놀라웠다!전신전이 천조국을 기습해서 천조궁을 쳤다. 거의 다친 사람 하나 없이 28분 사이 천조국은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다! 전신전...혹은 전신전 전주 염구준이 가진 능력은 세상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끔찍할 정도로 놀라웠다.세계 강국들은, 심지어 용제국에서도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알아보고 있었다!천조국 국주가 염구준 심기를 불편하게 했던건가?전신전이 왜 갑자기 전쟁을 일으킨거지?염구준...대체 뭘 하고 싶은거야?“별거 아닙니다.”모두 전신전이 왜 그랬는지 알아보려고 바삐 돌아칠 때 염구준은 이미 적룡전투기를 타고 용제국으로 돌아가고 있었다.그의 왼손에는 설련 모양의 분홍색 꽃이 쥐어졌고 오른손으로는 전투기 통신기를 들고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 국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꽃을 따러 간 것뿐입니다. 아도랑이 눈치도 없이 저랑 팔씨름을 해보겠다고 해서요.”“팔목도 저보다 가늘더군요. 그래서 천조궁을 불 질러버렸죠. 기억에 남으라고.”“그것 뿐입니다.”전화 반대편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는 용제국 국주는 염구준이 아무렇지 않은 말투로 말하는 걸 듣자마자 그가 따려는 꽃이 바로 천조국의 국화,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무엇보다 귀한 천어화라는 걸 알아챘다.“구준아...” 용제국 국주는 웃지고 울지도 못했다. “네가 너무 강해서, 나라들 사이의 평화가 깨지니까, 그래서 내가 널 전쟁에 내보내지 않았다는 거, 그래서 전신전도 꾸리고...그런데 넌...2년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거의 천조국을 박살 내버리면 다들 더 긴장하게 되잖아!”“그 노인네 몇이 미친 듯이 나한테 전화를 걸어와서는 너한테 무슨 비밀 임무라도 줬는지, 그들 해치지는 않을 건지
이튿날 오전, 청해 비치 호텔.꼭대기 층의 호화로운 연회장에 사람들이 북적북적 축하 인사를 나누며 분위기를 띄우고 있었다.“청해 송씨 가문에서 백옥 불상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연회장의 정문에서 손씨 가문의 관리자가 웃는 얼굴로 손님들을 맞이하며 기쁘게 말했다. “어르신 감축 드리옵니다! 만수무강 하십시오!”“심씨 가문의 노부인께서 어르신의 송학장수를 기원하며, 당대 화가의 대작인 를 선물하셨습니다!”“장씨 가문의 가주께서 어르신의 하시는 일이 다 잘되길 바라는 뜻으로 금옥 불상을 선물하셨습니다……”손씨 어르신이 말했다. “손중천”, 온 얼굴에 웃음을 머금은 채로 연회의 메인 테이블에 앉아있는 손씨 어르신의 주름이 가득한 얼굴은 나팔꽃처럼 활짝 폈다.“콜록, 콜록!”손님들이 모두 올 때까지, 손중천은 여러 번 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두 손을 힘주어 내리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여러분 바쁘신 와중에도 이 노인네의 칠순 잔치에 참석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저희 손씨 가문이 청해의 이류 가문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의 축하를 받으니 정말 영광입니다!”“정말 감사합니다!”와아아!연회장 안은 손님들의 박수 갈채와 환호성이 뒤섞여 쏟아졌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사람도 있었다. “청해 손씨 가문이 이류 가문이라지만 저희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손씨 어르신께서 덕을 베푸시니, 모두가 손씨 가문을 찬양합니다. 정말 용제국의 초호화 가문답습니다!”“맞습니다! 손씨 어르신 아래로는 혜린 아가씨와 같은 특출난 손녀 따님이 계시니, 손씨 가문이 일류 가문이 되는 것은 시간 문제입니다!”“듣자하니 혜린 아가씨와 염구준 그 쓰레기는 이미 이혼하셨다고요? 서씨 어르신은 혜린 아가씨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시니, 좋은 일이겠죠?”“서씨 가문과 손씨 가문이라면 강력한 연합이네요. 저는 좋은 소식만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축하 드립니다……”너나할 것없이 한 마디 씩 오가고, 손중천의 마음에 들만한 말을 저마다 한 마디 씩 하고 나니, 어르신의 얼
주작전존은 화려한 전투 갑옷을 입고 앞서 나아가자, 사대원 철위들 네 명은 관을 어깨에 메고, 연회장 대문을 직접 부숴, 주작전존을 따라 연회장 중앙으로 이동했다. 그들은 관을 무겁게 땅에 내리치며 일제히 외쳤다."생신 선물을 바칩니다. 손씨 어르신, 기쁘게 받아주시길 바랍니다."“과… 관짝 아니야?”남목관을 본 사람들은 아연실색했다.칠순 잔치에 관짝을 들고 오다니. 이건 뭘 의미할까?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뜻으로 볼 수 없었다.일부러 손중천의 기를 채우려는 의도 외엔 보이지 않았다. 손중천의 얼굴이 퍼렇게 질렸다.“염구준, 이게 무슨 짓이야!”손중천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참을 수 없는 화가 속에서 활활 타올랐다.칠순 잔치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염구준 때문에 분위기가 엉망이 되어 버렸다.더 이상 못 참아!“제 선물이 꽤 마음에 드셨나 보네요.”염구준은 당당하게 손중천을 바라보며 말했다.“제 아내와 딸은 5년 동안 모욕과 괄시를 받으며 살았습니다.”“북부를 지키려고 5년이나 전장에서 수많은 전쟁을 치렀지요. 정말 힘들게 고향에 돌아왔는데 처자식이 이런 대우를 받고 살았으니 제 마음이 어떨까요?”“어르신, 말씀해 보시죠!”손중천은 온몸에 피가 거꾸로 솟고 손발이 부들부들 떨렸다.“무엄하다!”그는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염구준을 쏘아보며 고함을 질렀다.“염구준, 내가 널 못 죽일 것 같아?”손가의 친척들과 친한 지인들도 분분히 염구준을 비난했다.“염구준, 이건 너무 몰상식하잖아!”“어디 어린 것이 어른 존경할 줄 모르고 설쳐? 죽고 싶어?”“서 대표님도 한말씀 하시죠. 저놈을 어떻게 처리할까요? 살려서 돌려보내면 안 됩니다!”서재원이 일그러진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염구준, 너….”“아직 네 차례 아니니까 입 닥치고 있어!”고개를 돌린 염구준은 그를 향해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너와 손혜린도 죽어 마땅할 짓을 저질렀잖아!”“일주일 뒤에 희주 생일이야. 우리 딸 생일날에 너 손혜린이랑 손잡고 대문 앞에 찾아
그런데 이때!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기다란 검은색 롤스로이스 밴이 병원으로 서서히 들어오더니 진중기 일행 앞에서 멈춰섰다.전신전 전주 전용 밴이었다!“가을아, 희주야, 이제 내려.”먼저 차에서 내린 염구준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진중기는 의료진과 함께 다가가서 그들을 공손히 맞았다.“염 선생님, 이분이 손가을 씨겠군요? 저는 진중기라고 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구 국내 최고의 이비인후과 전문가들이에요. 최선을 다해 치료해 보겠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부탁 드릴게요.”그런데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던 중년 남자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으며 시비를 걸어왔다.“누군가 했더니 너희들이구나! 염구준, 손가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내가 누군지 잘 봐!”염구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그의 장인 손태석의 형, 손태진이자 손씨 가문의 장남!“멍청한 녀석들!”손태진은 앞길을 가로막은 두 전사를 밀치고 경호원들과 함께 염구준에게 다가와서 삿대질했다.“군에 인맥이 좀 있나 봐? 뭐가 그렇게 잘나서 잘난 척이야?”“내 아들 입천장에 물집이 잡혀서 치료 받아야 한다고! 수족구병 알아, 몰라? 나 급해!”“어쩐지 한 선생이 오늘 결근이라더니 네 녀석이 잡아두고 있었구나! 시간 지체해서 내 아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부터 죽을 줄 알아!”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노려보았다.조금 전 손중천의 생신 잔치에서 보이지 않더니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방문했던 것 같았다. 누가 손중천 아들 아니랄까 봐 입만 열면 욕설이라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부자였다.손가을은 희주를 안은 채, 염구준과 손태진을 번갈아 보았다.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기대를 안고 용기 내서 병원에 왔더니 큰아버지를 만날 줄이야! 과거에도 큰아버지와 그녀의 아버지는 승계권을 위해 피 터지게 싸웠다.그 모습에 분노한 손중천은 승계권을 다음 대에 물려주겠다고 선포했고 그래서 데
"눈은 뒀다 뭐해!" 곽승환은 분노의 주먹과 발차기로 손태진을 때려눕혔다. 생사 불명할 정도로.또 한 발의 날려 차기로 옆에 멍하니 있던 세 명의 경호원을 때려눕히고, 그들의 발목을 잡고, 손태진과 함께 모두 차에 끌어올렸다. 그리고 염구준에게 예의 바른 경례를 하고 시동을 걸어 떠났다.다시 한번 놀랐다!곽승환이 왔다 간 시간은 총 30초도 채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마디만 하고 깔끔하게 상황정리 하고 축 늘어진 네 구의 몸통을 끌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이것이 바로 청해 군사 작전부 수장의 작풍이란 말인가?뜻밖이었다."꿀꺽!"손가을은 멍하니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다가 침을 삼켰다. 천천히 두 손을 들었다. 손을 들고 수화로 뭔가를 말하려 했으나 어떻게 마음속의 의문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정교하고 예쁜 눈썹을 가볍게 찡그려졌다. 말할 수 없이 귀엽고 이뻤다.염구준은 손가을의 귀여운 표정을 보고, 마음속이 부드러워졌다.만약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을 했을까?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가장 듣기 좋은 웃음소리였을 것이다!"진 원장님." 고개를 돌려 진중기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 아내의 수술을 선생님이 직접 집도해 주세요!”“수술 과정에 가시화 최소침습술로 인후의 화상 흉터 표면을 제거하고 혈락신경을 모두 정리해 주세요.”"마지막으로…”말을 하다가 손가을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가을아, 선생님한테 드려.”손가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작고 귀여운 분홍색 천어화를 조심스럽게 진중기에게 건넸다."이건…." 진중기는 꽃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더니 동공이 점점 커졌다.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뛰며 이마에 땀이 나고 손발이 심하게 떨렸다.이, 이, 이……전국에 한 송이밖에 없는 천조국 국주의 궁궐에서 정성껏 키워낸 진기한 품종, 천조국의 국화, 천어화였다.“이… 이 꽃은….”진중기는 두 손으로 천어화를 받들고 조심스럽게 염구준을 바라보았다.그는 긴장
“손혜린?”손혜린 세 글자를 보자 손태석은 좋았던 기분이 다 사라지고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5년 전, 그들이 손중천에 의해 가문에서 내쫓기는 상황을 만든 범인이 바로 손혜린이었다.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악랄하기까지 한 조카.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칼춤을 추더니 끝끝내는 손영그룹 부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평소에 그와 진숙영에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고 툭하면 월급을 삭감하거나 주기로 한 보너스를 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손 사장.”하지만 전화를 안 받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을 알기에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로….”탁!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혜린은 인사자료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손태석 씨, 진숙영 씨, 오늘 부로 해고예요.”“난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가문에서 쫓겨난 당신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여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죠.”“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당신들 그 잘난 사위 염구준이 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요? 그 인간이 할아버지한테 선물이랍시고 관짝을 보냈어요!”쾅! 두드러지게 낡고 초라한 거실에서, 손태석이 벼락에 맞은 듯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염, 염구준... '어르신님 칠순 잔치에 관을 선물로 보내다니?! 장수용 황금 불상을 준비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불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게 어떻게 관으로 바뀌었지?!'"황금, 황금 불상 여기에 있어요."옆에서 진숙영의 목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떨렸고, 손을 뻗어 거실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그녀는 마치 냉기 가득한 지하에 떨어진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망했다!그들이 힘들게 모은 돈과 딸이 목욕탕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이 작은 황금 불상을 사는 데 사용했다. 그건 다 어르신의 칠순 잔치 자리에서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염구준이 생일잔치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이런 어리석은 짓까지 해버리게 된 것
'발신- 주작'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야 염구준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엔 아직도 살기가 느껴졌다.'용운 그룹이 뭐길래?전 신전 전주의 수단이 무엇이지?’3일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오늘은 손영 그룹과 용운 그룹이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었다."용운 그룹이라니!"용운 그룹의 거대한 사옥 앞에서 손혜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120여 층이나 되는 건물은 높이만 해도 400미터가 넘었는데 청해의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용씨 집안으로, 명성이 자자한 재벌가였다. 용운 그룹은 전국에 이미 수많은 지사를 두고 있었다. 손씨 집안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두 가문 사이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안녕하세요."손에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손혜린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차분하게 로비를 걸었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요염한 허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안내 데스크 여직원을 향해 미소 지은 손혜린이 용건을 말했다."용 대표님께 전해줄래요?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에요. 협력 프로젝트 건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열두 명의 안내 데스크 여직원들은 모두 눈처럼 희고 아름다웠다. 손혜린을 쓱 훑어본 한 여직원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초대장이라니, 손혜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합의를 마친 프로젝트였다. 오늘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날 일이란 말이다.용운 그룹 대표를 만나려면 초대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 없었다. 손태석, 이 노망난 늙은이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방금 말했잖아요, 나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라고요."손혜린이 정색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예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건데, 초대장이라니요? 이게 어떤 계약인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1조가 넘는 큰 프로젝트라고요. 계약에 차질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당장 대표님께 연락해요.
마거봉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억지로 태연하게 말했다. “존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다 했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구는 걸 보면 약점이 잡힌 게 틀림없었다. “걱정 마. 네가 내 말만 잘 듣는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니까.” 그러나 거록 존주는 인질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하지만...”이에 마거봉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거록 존주가 바로 말을 끊었다. “그쯤해. 넌 네 일만 잘 하면 돼.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체 마씨 가문을 없애버릴 거니까, 명심하고.”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시켜먹을 때, 협박과 회유를 섞어 쓰지만, 거록 존주는 오직 협박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예.”마거봉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바로 물러났지만 속으로는 염구준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돌이켜보았다.한편 염구준은 이미 전에 전세 낸 호텔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호텔 주변에는 그가 배치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를 밟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감시하지 못했다.조용한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붉은 장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이 추측한 걸 전부 털어놓았다. “마거봉이 이상해요. 그 주변 경호원들도 뭔가 수상하고요. 당신도 눈치챘죠?”그러나 염구준은 느긋하게 차를 우려내고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거록 존주의 부하들입니다. 다만 거록 존주가 직접 왔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바위성에 오자마자 실세부터 잡은 걸 보면, 뭔가 큰일을 벌이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아...”붉은 장미는 그의 말을 듣고나서 어느정도 깨달았으나 궁금한 점이 더 많아졌다.“그렇다면, 아까 우리가 그 경호원 넷을 처치하고 마거봉을 도와줬으면 됐잖아요?”언뜻 보기엔 그녀의 말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확한 결정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염
“맞습니다. 거록 존주는 위험한 인물이죠. 하지만 제가 있는 한 그 사람은 당신의 털끝 하나도 다치지 못 할 겁니다.” 이에 염구준이 약속했다.이번 계획은 빈틈이 없이 완벽했기 때문에 마씨 가문을 지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염 선생님을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가주로서 가문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습니다.”마거봉은 진심 어린 태도로 말했지만, 그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가주라는 위치에 있으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기에 무슨 일을 할 때도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 나쁜새끼야, 예전에 내가 아니었다면 너네집 식구들 전부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거 알아?”염구준은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음?’그리고 그는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네 명의 경호원들도 각각 자신의 기운을 뿜어내는 걸 느꼈는데, 그 중 세 명은 무성이었고, 한 명은 전신의 경지였다.평범한 사업가 가문에 불과한 마씨 가문에 이 정도의 전력이 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염구준이 일부러 화를 낸 것도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그가 갑자기 분노하자 마거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도를 꺼냈다.“염 선생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전 아무 도움도 드리지 못해 너무 부끄럽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그러나 단도의 끝이 옷감에 닿자마자 보이지 않는 힘에 제지당해 더 이상 찌를 수가 없었다.“염 선생님...”염구준이 자신을 막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마거봉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툭.염구준은 살짝 힘을 주어 단도를 떨어뜨린 다음 한숨을 쉬며 말했다.“에휴, 됐습니다. 마 가주님께도 사정이 있으실 테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겠습니다.”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이 때문에 피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고 말이다. 계획은 이 지역의 실세의 협조 없이도 진행할 수 있도록 바꾸면 될 일이었다.“염 선
마거봉이 바위성에서 어떤 사람인가? 그가 행인 따위와 친분이 있을 리가 없다고 여긴 사람들은 전부 염구준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 들어가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네. 부끄럽지도 않나?”이때, 방금 전에 담배를 권하던 관광객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염구준은 그런 자질구레한 비난 따위에 반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저... 손님, 그건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장이 필요합니다.”보안요원이 난감해하며 말했다.“제가 염 씨라고 전달 좀 해주실래요?”염구준은 성씨만 알려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염 씨라고?’성씨를 들은 뒤, 보안요원들은 깜짝 놀라다가 곧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 바로 전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마거봉이 하루 건너 한 번씩은 말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성씨를 외울 정도였다.물론 오늘 아침에도 역시 염 씨 성을 가진 이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라는 말을 들었었다.방금 전까지 비웃던 관광객은 이 모습을 보고 난처해서 얼굴이 굳었지만, 곧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핑계를 찾았다. “아마 성이 같을 뿐이지, 마거봉이 찾는 사람이 아닐 거야.”그도 반응이 꽤 빠른 축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을 바로 하는 걸 보면 말이다.“그럼 두고 보자고.”염구준은 경멸 어린 미소를 띤 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급히 걸어나왔는데, 맨 앞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있는 마거봉이 서 있었다.“왜 말도 안 하고 이리 먼길을 오셨어요?”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마거봉의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바위성의 실세가 직접 맞이하는 것을 보면 염구준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대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른 겁니다.”염구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남의 지역에서까지 윗사람 행세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하하하, 염 선생님, 어서
“맞아요. 적당히 하시죠? 훗날에 또 만나면 어쩌려고, 그냥 좋게 넘어가요.”만약 방금 전에 진 게 염구준이었다면,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그더러 내기대로 하라며 압박했을 것이 뻔했다.그들은 늘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그쪽들이랑은 상관없잖아요.”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살기를 뿜어내면서 차갑게 말했다.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타깃이 된 것만 같아 추워져서 몸을 떨었다.로브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꼼짝하지 않자, 염구준은 그에게 압박을 가했다.“당신이 직접 할래요, 아니면 제가 도와줄까요?”이 상황은 로브에게 정말 난처했다. 약속을 지키면 체면을 잃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인품이 의심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아... 아버지...”오랜 침묵 끝에 로브는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염구준은 손을 저으며 경고했다.“저한테는 당신같이 큰 아들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좀 자중하세요. 특히 용하국에서는 까불지 마세요.”말을 한 뒤, 로브는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로브가 떠나자, 일부 관중들은 염구준을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냈다.“다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겁니까?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니고. 얼른 쫓아가 보기나 하시죠.”염구준은 손을 들어 멀리 사라져가는 로브를 가리켰다.“로브 씨!”그러자 일부는 소리치며 그를 따라갔고, 또 다른 일부는 로브에게 실망하며 안티팬이 되어버렸다. 반면, 염구준은 현재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모두가 그의 마술 실력이 최고봉에 도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들 흩어지세요. 길 막지 마시고요.”염구준은 손을 젓고는 사람들 속에서 사라졌다.잠시후, 그가 조용한 골목에 도착했을 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공손하게 말했다. “염 선생님, 아까 나타나셨을 때, 수상한 인물이 여덟 명 확인되었고, 사람들을 보내 뒤를 밟게 했습니다.”“하지만 방금 전에 연락해보니, 네 명이 연락이 되지 않아요.”보고를 들은 염구준은 머리가 ‘땡’ 하고 울리
이때, 새로운 상자가 올라왔는데, 사람이 들어가면 철편으로 몸과 머리를 가를 수 있는 신체분리 마술에 쓰이는 도구였다.그러나 염구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단 하나의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걸 할 필요도 없이 관건적인 순간에 또 진기를 쓰면 이 라운드도 이길 수 있었다.‘응?’그러나 이때, 진기의 파동과 더불어 근처 지붕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염구준은 고개를 돌아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역시 내 느낌이 맞았네. 바위성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누군가 날 감시하고 있어.’하지만 그는 섣불리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을 잡지 않았다. 괜히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가 단서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이제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내가 따로 배치 해둔 게 있으니 만약 거록 존주가 바위성에 있다면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기는 힘들 거야.’“로브 씨, 정말 멋져요!”갑작스러운 팬들의 환호성이 염구준의 생각을 끊었다.고개를 돌려보니, 로브는 이미 그가 생각할 동안 마술을 끝낸 상태였다.‘방심했네.’“그럼 이제 해보시죠.”로브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염구준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이 마술을 정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보여줄 수가 없어 망설임없이 바로 패스했다.“다음으로 넘어가죠. 3번째 라운드로 승부를 정합시다.”만약 누군가가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번 라운드는 누구도 완성해내지 못한 것으로 무승부를 봤을 것이었다.물론 이것 또한 그의 전략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마술로 붙자고 하든지 모두 진기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눌러서 앞 두 판을 무승부로 만들고 세 번째 판에서 이기는 것 말이다.비록 변수가 생기긴 했으나 아직까진 컨트롤이 가능했다.“세 번째 대결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이때, 로브가 물었다. 이런 방식의 대결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였다.“간단합니다. 행인분들더러 저희를 때려보라고 한 다음,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겁니다. 이런 게임,
체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로브는 양보하지 않고 급히 말했다. “그래요. 첫 번째 라운드는 천으로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걸로 하죠. 단, 반드시 거리가 백 미터 밖이어야 해요. 두 번째는 신체 분리 마술로 합시다. 이건 사지와 머리, 그리고 몸통을 분리해야 하는 거예요.”두 가지 모두 대형 마술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유명했기 때문에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그러나 염구준은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세 번째는... 누가 주먹을 더 오래 버티는지 보는 걸로 하죠.”‘주먹을 버틴다고?’그의 말에 주변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한번도 그런 마술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꽤 신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대했다.하지만 대부분은 로브의 실력으로는 세번째 라운드까지 갈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룰을 정하며 두 명 모두 이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내기에 걸린 건 ‘공손한’ 호칭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건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누가 먼저 시작할 겁니까?”이때, 기다리다 지친 구경꾼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제가 먼저 하죠.”염구준은 방금 전에 길가에서 국수를 파는 아줌마에게서 빌린 테이블천을 손에 쥐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로브의 팬들은 바로 비웃었다.“저런 도구를 쓰는 걸 보니 프로는 아니네. 질게 확실해!”“진짜로 마술에 성공하면 내가 아버지라고 부른다, 진짜.”휙.염구준은 주변의 비난을 개의치 않고 테이블천을 한 바퀴 휘둘러 허공에 던졌다. 정식으로 마술을 시작한 것이다.그리고 놀랍게도 테이블천이 떨어진 자리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라?’다년간의 경험으로도 상대방이 선보인 마술의 원리를 간파하지 못한 로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염구준이 선보인 건 마술이 아니라 반보천인의 속도였기 때문이다. 반보천인의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체로 보아낼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건 또 무슨 마술이야?”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갑작스레 추가된 공연이라 생각하기도 했다.한 대씩 맞고 난 뒤 얌전해진 경호원들은 더 이상 감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씩은 말보다 주먹이 더 효과적이었다. 한 대 맞아야 얌전해지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하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결국 로브가 나서서 예의있게 물었다.“왜 제 길을 막으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하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지.’염구준은 미소를 머금고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전 원래부터 여기 서 있었어요. 절 부딪힌 건 당신들이죠.”상대가 막무가내로 나오니, 그도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의 말에 로브의 팬들이 발끈하며 염구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로브 씨의 길을 막아 놓고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말이 돼?”“그러니까. 로브 씨가 어쩌다 용하국에 오셨는데, 저 눈치 없는 놈은 굳이 길을 막겠다고 저러고 있네.”“난 저런 사람들 많이 봤어. 딱 봐도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잖아.”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염구준을 향해 온갖 욕들을 퍼부었다.‘맹목적으로 외국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광팬들만 모인 건가?’혼자서 많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기에는 불리했지만 그는 여태껏 누군가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기에 여전히 매우 담담했다.“다 입 닥쳐!”그는 곧 내공을 담아 소리를 질렀고, 이에 사람들은 고막이 아파 말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심지어 배가 불렀던 일부는 아침 먹은 것까지 토해내기도 했다.그렇게 현장은 다시금 매우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억지 부리는 외국인을 위해 절 몰아붙이는 겁니까? 뇌를 어디다 빼먹었어요?”“이 나라를 지키는 게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당신들을 지키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요? 다 용하인이 아닌가요?”용하국의 안전은 솔직히 대부분
염희주는 말을 마치고 바로 통화를 끊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집에서는 손가을의 말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녀는 염구준을 존중하기 때문에 한번도 그의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염구준은 기분 좋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오늘 마침 여유 있으니까 희주한테 줄 선물 사야겠네.’“비켜!”바로 이때,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염구준의 등을 밀치려고 했다.쿵!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그는 염구준의 몸을 감싼 진기에 의해 몇 미터 밖으로 튕겨나갔다.힘이 약한 수준이라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을 게 뻔했다.“뭐 하는 짓이죠?”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물었다.방금 상대방의 행동이 몹시 불쾌했지만, 혹시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굳이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일반 행인과 다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고개를 돌린 후 염구준은 상대방의 행렬 규모가 마치 국주가 행차하는 것처럼 큰 걸 발견했다.그 무리의 중심에는 검은색 연미복에 마술사 모자를 쓰고, 손에 지팡이를 쥔 고풍스러운 마술사 차림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를 둘러싼 백여 명의 경호원들은 전부 검은 상의와 바지를 입고 근육질의 체격을 뽐냈다.바깥쪽에는 수많은 팬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고함을 질렀다.“로브! 사랑해요!”“로브 씨, 용하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어요? 제가 진짜 선생님 마술을 좋아하거든요.”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마술사로, 세계각지에 팬들이 많이 있었다.팬들의 열정적인 환호에도 로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팬들은 여전히 환호하고, 기뻐했다. 지금 문제가 있다면 염구준이 길 중간에 서 있어 행렬이 계속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거기, 길 좀 비켜주세요. 저희 선생님 길 막지 마시고요.”이에 앞길을 터주던 경호원이 소리쳤다.주변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아까 진기에 튕겨 나간 경호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작이 활짝 웃으면서 소녀를 부축했다.“앞으로 넌 내 부하야. 내가 말하는 것이 명령이니까 반드시 따라야 해. 참, 이름이 뭐야?”전신전은 노닥거리는 병사들을 키우는 곳이 아니니, 일단 조직에 가입하면 무조건적으로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조영미라고 해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에요.”소녀는 이름을 말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별호를 지어줄게. 앞으로 넌 ‘환생한 유령’이야.”주작이 별호를 말한 것은 정식으로 제자로 받았다는 것을 뜻했다.사건을 마무리한 뒤, 염구준은 차를 타고 청해로 돌아갔다.다시는 제 발로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소녀는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저분은 누구세요? 우리랑 돌아가지 않나요?”“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네가 실력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주작은 엄숙한 목소리로 부하를 대하는 태도로 말했다.일단 전신전에 가입하면 앞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니 더는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이로서 거록 조직의 여섯 뱀은 모두 염구준의 손에 전멸했다.이제 거록 존주는 유력한 심복이 없으니 앞으로 행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어쩌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지도 모른다.해외 어느 외딴 마을에서 이 소식을 들은 거록 존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쿵!“멍청한 놈, 그러게 멋대로 일을 벌여서 용하의 내 정예병들을 절반이나 죽였어. 아나콘다, 넌 죽어 마땅해!”화난 모습을 보니 시체라도 끌어내서 토막을 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주변의 벽은 공격으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바람이 새어서 언제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거록 존주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집안에 있던 부하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다.“말해. 다들 벙어리가 되었어?”거록 존주는 손을 들어 무자비하게 살해했다.“존주님, 제발 진정하세요!”부하들은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쓸데없이 말했다가 오히려 단체로 죽을 수도 있었다.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