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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작가: 잔영
'발신- 주작'

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야 염구준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엔 아직도 살기가 느껴졌다.

'용운 그룹이 뭐길래?

전 신전 전주의 수단이 무엇이지?’

3일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

오늘은 손영 그룹과 용운 그룹이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었다.

"용운 그룹이라니!"

용운 그룹의 거대한 사옥 앞에서 손혜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120여 층이나 되는 건물은 높이만 해도 400미터가 넘었는데 청해의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용씨 집안으로, 명성이 자자한 재벌가였다. 용운 그룹은 전국에 이미 수많은 지사를 두고 있었다.

손씨 집안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두 가문 사이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

"안녕하세요."

손에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손혜린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차분하게 로비를 걸었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요염한 허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안내 데스크 여직원을 향해 미소 지은 손혜린이 용건을 말했다.

"용 대표님께 전해줄래요?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에요. 협력 프로젝트 건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열두 명의 안내 데스크 여직원들은 모두 눈처럼 희고 아름다웠다. 손혜린을 쓱 훑어본 한 여직원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초대장이라니, 손혜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합의를 마친 프로젝트였다. 오늘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날 일이란 말이다.

용운 그룹 대표를 만나려면 초대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 없었다. 손태석, 이 노망난 늙은이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

"방금 말했잖아요, 나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라고요."

손혜린이 정색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예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건데, 초대장이라니요? 이게 어떤 계약인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1조가 넘는 큰 프로젝트라고요. 계약에 차질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당장 대표님께 연락해요."

여전히 얼굴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여직원이 친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죄송합니다만 회사 규정상, 초대장 없이는 대표님을 뵐 수 없습니다. 손 부사장님께서는...."

불현듯 그녀가 말을 멈췄다.

안내 데스크 뒤쪽에서 검은 양복을 입은 남성이 우람한 경호원 8명을 거느리고 다가왔다.

손혜린을 위아래로 훑어보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이 여자는 누구죠?"

"이분은...."

여직원이 손혜린을 간단하게 소개한 뒤 고개를 살살 내저었다.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고집을 부리시네요. 대표님께 말씀 전해달라면서요."

대표님을 찾는다고? 양복을 입은 남성이 차갑게 비웃었다.

"초대장도 없는 주제에 용 대표님을 뵙겠다고? 이게 무슨 수작이야. 반반한 얼굴로 대표님을 유혹하려나 본데, 정부 노릇이라도 하고 싶은 건가? 너 같은 여자들이야 뻔하지."

손혜린이 얼굴을 잔뜩 일그러뜨리며 남자를 향해 이를 드러냈다.

"당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정부라고? 다시 한번 지껄여 봐!"

그러자 양복 차림의 남성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실컷 비웃은 그가 차갑게 얼굴을 굳히며 그녀를 오만하게 내려다보았다.

"손혜린, 난 네가 어떤 인간인지 잘 알고 있어. 손태석 씨와 진숙영 씨가 따낸 1조짜리 계약을 네가 가로챘잖아? 두 분을 쫓아내고 말이야. 계약하고 싶어? 꿈 깨!"

남자는 방금 인쇄한 것 같은 종이 계약서를 품에서 꺼낸 뒤 손혜린의 얼굴을 향해 힘껏 던졌다.

"두 눈 뜨고 똑바로 봐!"

주변 시설까지 포함한 빌딩 3채를 건설하는 대규모 프로젝트였는데 투자 금액은 무려 2조였다. 손태석과 합의한 기존 금액보다 2배나 많은 액수였다.

"그동안 난 너 같은 인간들을 많이 봐왔어."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손혜린을 쳐다본 남자가 흥, 코웃음 쳤다.

"2조짜리 프로젝트라는 소식을 들으면 손중천 그 양반이 얼마나 좋아하겠어. 하지만 우리 대표님께서 조건을 거셨어. 계약은 손태석 씨와 진숙영 씨랑만 진행하겠다고."

말을 마친 그가 경호원들에게 손짓했다.

"당장 저 여자를 쫓아내 버려!"

8명의 우람한 경호원들이 우르르 손혜린에게 달려들었다. 그들은 연민할 가치도 없다는 듯 짐짝처럼 손혜린을 질질 끌고 갔다. 그 험악한 손길에 고급스러운 투피스가 무참하게 구겨졌으며 하이힐 굽도 부러지고 말았다. 산발이 된 머리까지 더해지니 꼭 마치 미친 사람 같았다.

"이 빌어먹을 개자식들이!"

초라한 몰골로 쫓겨난 손혜린이 절뚝거리며 용운 그룹 사옥을 향해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참을 수 없는 수치심과 분노가 밀려왔다.

용씨 집안과 비교했을 때 손씨 집안은 너무나도 하찮았다. 손혜린이 아니라 손중천이 와도 굽신거려야 할 판이었다.

"손태석, 진숙영...."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한참 건물 앞에서 발악하던 손혜린은 결국 이를 사리물며 손영 그룹으로 되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이 일이 손중천의 귀에 들어가는 건 막아야 했다.

아니라면, 자신이 감히 감당할 수 없는 처벌이 내려질 터였다.

......

"갔습니다."

용운 그룹 건물의 맨 꼭대기 층에 자리한 회장실.

그곳 창가에 꼿꼿하게 서 있는 여인을 향해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와 그의 아들이자 용운 그룹 대표인 용준영이 공손하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

불꽃처럼 매혹적인 여인은 바로 주작이었다.

"잘하셨습니다."

우아하게 돌아선 주작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저희는 주군의 은혜에 감읍할 따름이지요."

용준영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용씨 부자는 원래부터 재계에서 손꼽히는 거물급 인물들이었다. 그러나 라이벌 기업에 의해 정경유착이라는 누명을 뒤집어쓰고 감옥에 들어가게 되었다.

감옥에서 그는 하마터면 경쟁사에서 보낸 킬러에게 살해당할 뻔했는데 그때 염구준이 그들을 구해주며 억울함도 풀어주었다.

그들을 감옥에서 빼내 준 염구준은 그들이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었을 뿐만 아니라 억울한 누명을 씌웠던 경쟁사 집안을 무너뜨렸다.

염구준은 용씨 집안 사람들에게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였다.

염구준의 말 한마디에 용씨 집안은 보란 듯이 재기하며 다시 한번 재계의 거물로 거듭날 수 있었다. 반대로 염구준은 아주 손쉽게 용씨 집안을 무너뜨릴 수도 있었다.

"주군의 명령이라면, 목숨을 내놓으라고 해도 그리할 겁니다."

용성우가 결연하게 말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주작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

"손혜린은 이 일을 덮으려고 할 겁니다. 가주님도 아시겠지만, 주군은 그걸 바라지 않으십니다. 이왕 시작했으니 마무리도 깔끔하게 하는 게 좋겠지요. 손태석 선생과 진숙영 여사가 당했던 수모를 전부 갚아주어야 할 겁니다. 제 말 무슨 뜻인지 아시겠지요?"

용성우가 진중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손혜린, 이 악독하고도 멍청한 여자야, 건드릴 사람이 없어서 주군의 장인 장모를 건드리나? 목숨 아까운 줄 모르는군.'

제 아들에게 시선을 돌린 용성우가 낮게 깔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준영아, 지금 당장 기사를 내보내거라. 용운 그룹과 손영 그룹의 합작 프로젝트의 예산을 5조로 늘리기로 했다고 말이다. 그 집안이 가져갈 수익은 아마 2조는 될 게다. 흥, 손혜린이 과연 손중천의 눈을 속일 수 있을지 어디 한번 두고 보자꾸나."

손씨 집안 별장.

"어르신!"

손중천을 40년 넘게 모신 집사, 양진의 잔뜩 흥분한 목소리가 먼 거실 밖에서 들려왔다. 재빨리 거실에 들어선 그가 활짝 웃으며 손중천에게 휴대전화를 건넸다. 그의 목소리는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어르신, 이것 좀 보십시오! 용운 그룹에서 우리 쪽 투자금을 5조로 늘린답니다. 저희가 얻을 수 있는 수익은 2조구요. 손씨 집안이 드디어 일류 가문으로 거듭나겠군요."

'뭐라고?'

몸을 움찔거린 손중천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며 양진의 휴대전화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화면을 가득 채운 뉴스 기사를 확인한 그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거칠게 호흡했다.

그야말로 경사가 아닐 수 없었다.

3일 전, 칠순 잔치 때 염구준이 보내온 관 때문에 그는 하마터면 화병으로 죽을 뻔했었다.

용운 그룹에서 전해온 소식은 그를 진정시킬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처방전이었다. 자극받은 심장이 세차게 날뛰었다.

자그마치 40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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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시장 로비 중심에 보름이나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해당 포르쉐 HBLY—GT를 구매할 능력이 되는 고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수습 기간도 채 지나지 않은 초짜가 아니고야 농담이라도, 군복을 입은 남성과 평범한 원피스 차림의 여성에게 26억이나 되는 포르쉐를 소개할 위인은 없었다."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하나 열정적인 태도는 보기 좋군."데스크 쪽을 담담하게 바라본 염구준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금테로 장식된 블랙 카드 한 장을 내민 염구준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전액 일시불로. 따로 비밀번호는 입력할 필요 없어. 이곳의 전속 서비스를 받고 싶네만, 필요한 모든 비용은 이 카드로 계산하도록. 십 분 사이에 전부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군."26억을 비밀번호 입력도 없이 일시불로 계산한다고? 블랙 카드에는 흔한 은행명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면에 "G.J"이라는 심플한 이니셜이 적혀있을 뿐. 이게 대체 무슨 카드지?"선생님, 저..."여직원은 십초 동안 아무말도 못 하고 멍하니 염구준을 쳐다보기만 했다. 더없이 진지한 그의 표정으로 보아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제야 조심스레 카드를 받은 여직원이 결제를 진행할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구준 씨, 농담이 지나치잖아."뒤늦게 정신을 차린 손가을이 펄쩍 뛰었다. 26억이라는 가격표가 안 보이는 건가? 대체 그놈의 정착금이 얼마길래. 행여 결제 실패 화면이 뜬다면 얼마나 창피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진정해."핏기 없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아마 곧 소식이 올 거야."30초도 안 되는 사이, 블랙 카드를 소중하게 받아 든 직원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사무실에서 달려 나와 그들을 불렀다."고객님, 결...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여기 구매 영수증 받아주시고요, 어... 그리고 고객님들을 위한 자그마한 사은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유 카드, 무료 세차 카드랑... 어... 아

  • 군신의 귀환   제23화

    26억짜리 포르쉐라니,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보다 10배는 더 나갔다. 그리고 현재 그 차주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정말... 저 사람이 돈을 냈단 말이야?"데스크 쪽에 몰려있던 소위 '경험 많은'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제야 때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돈이 그렇게 많을 줄 알았더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보는 눈이 형편없었다. 그러니 신입이라고 무시하던 사람이 얼떨결에 주워갔지."게다가 따로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었다며?"짙게 화장한 중년 여직원이 동료를 둘러보며 찝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체 저 안에 얼마가 들어있길래? 예전에 용하은행에서 발행한 VIP 카드를 본 적 있는데, 비밀번호 없이 결제할 수 있는 한도는 개인 자산의 0.0001% 더라고. 방금 저분... 26억을 무비번으로 결제했잖아. 그럼 대체 총자산이 얼마인 거야?""......"동료 직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좋은 기회던가. 이런 사람들과 안면을 터놓으면 팔 수 있는 차가 배로 늘어났다. 놓친 상여금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눈앞의 기회를 보기 좋게 날린 그녀들이었다.포르쉐 옆에 서 있던 손가을이 염구준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구준 씨... 혹시 엄청난 비밀 같은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많은 정착금을 받은 거고?""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야."아이를 안아 든 염구준이 조수석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이젠 당신 차야. 그러니 운전해 봐야지 않겠어?"잠시 머뭇거리던 손가을이 운전석에 앉았다. 행여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질감 좋은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고급스러운 금속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정교한 오토매틱 기어를 쓰다듬었다.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어여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차올랐다."고객님."젊은 여직원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최신 챕터

  • 군신의 귀환   제2018화

    곧이어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노인이 나무 틀에 묶인 채 천천히 끌려 나왔다.얼마 지나지도 않았는데도 그는 이미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고문 당한 상태였다.“자네는... 어서 가게. 이 소는 내 아들에게 맡기고, 앞으로 농사 잘 지으라 전해주게...”노인은 힘겹게 유언을 남겼다.이렇게 많은 산적이 있는 상황에서 혼자 도망치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노인은 염구준이 자신을 구해줄 거란 기대조차 하지 않았다.“하하, 너희 전부 오늘 여기서 끝장이다!”산적 두목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그들은 여전히 귀울진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모르고 있었다.염구준은 한숨을 내쉬며 중얼거렸다.“하, 어쩔 수 없군. 여기가 비록 용하국의 영토는 아니지만, 이미 만났으니 지방의 악세력을 제거한다고 생각해도 좋겠지.”염구준은 고개를 저으며 이 산적들을 모조리 없애기로 마음 먹었다.그들을 처리하지 않으면 노인을 구해낼 수 없기 때문이었다.“흥, 영웅인 척 나서는 놈들은 많았지. 하지만 결국 다 내 칼 밑에서 죽었어.”산적 두목은 염구준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하며 손을 휘저어 부하들에게 공격 명령을 내렸다.“죽은 형제의 복수를 위해서 죽어라!”“저 소는 내 거다. 누구도 손대지 마!”“저놈 입고 있는 옷도 괜찮은데, 찢지 말고 벗겨서 가져가자.”대화에서부터 알 수 있듯, 이들은 싸우기도 전에 전리품 나눌 생각부터 하는 오합지졸들이었다.쾅쾅!이를 본 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내질렀고, 강력한 기운이 곧바로 그의 주먹 끝에서 뿜어져 나와 산적들 쪽으로 빠르게 뻗어나갔다.그는 이런 쓰레기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공격을 받은 산적들은 순식간에 뒤로 나가떨어지며 쓰러졌다.염구준은 공격을 멈추고는 발을 굴리더니 곧장 자취를 감췄다.‘반보천인이었어!’산적 두목은 전신 위 경지였기 때문에 이 모든 걸 똑똑히 볼 수 있었다.자신이 상대가 되지 못한다는 걸 깨달은 그는 서둘러 노인에게 달려가 그를 인질로 삼으려 했으나 그의 속도는 염구준보다 한

  • 군신의 귀환   제2017화

    만약 거짓말을 하다 들킨다면, 그땐 정말로 끝장날 게 뻔했기 때문이었다.“참 멍청하단 말이야. 굳이 맞아야 정신을 차려?” 염구준은 비웃으며 말했다.그는 곧바로 휴대폰 화면을 켜서 달력을 확인했다. 삼일 후면 바로 음력 보름날이었다.‘무슨 의미가 있는지는 가보면 알겠지.’이면인의 태도로 보아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혹시 몰라 그는 상대방을 한 번 더 시험해 보았고, 염구준이 기운을 운용하는 걸 본 이면인은 놀라서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급히 무릎을 꿇으며 애원했다.“제가 잘못했습니다! 한순간에 탐욕에 눈이 멀어서 그만...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염구준은 그의 옷깃을 움켜쥐고 매섭게 말했다.“내가 진씨 가문의 옛 저택에 가서 가보를 찾지 못한다면, 넌 차라리 죽는 게 나을 정도의 고통을 겪게 될 거다.”“알겠습니다... 방금 전 얘기는 전부 사실입니다!”이면인은 겁에 질려 거의 본능적으로 대답했다.염구준은 그를 한쪽켠에 던져놓고는 곧장 귀울진의 밖으로 걸어 나갔다.마을 입구 호텔에선 소달구지를 몰던 노인이 여전히 그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몸 조심히 가세요!”이면인은 한 말은 모두 진심에서 우러러 나온 것이었다. 그는 전부터 염구준이 얼른 마을에서 떠나기를 바랐다.이번에 반은 실패했지만, 개방의 영역을 얻었으니 그리 큰 손해를 본 건 아니었다.염구준이 그를 살려둔 것은 자비로워서가 아니라 어차피 언젠간 죽게 되어있어서였다. 귀울진의 진씨 가문 또한 그의 꼼수 때문에 망할 게 뻔했다.염구준과 이면인이 다툰 일은 자연스레 다른 두 세력에게도 전해졌다.두 세력은 몇 달 동안 계속 간을 보다가 염구준이 진씨 가문 돕지 않는 걸 발견한 뒤, 하룻밤만에 진씨 가문을 삼켜버렸다.그들에게는 전신 위 경지의 존재가 둘이나 있었기에 진씨 가문을 처리하는 건 매우 식은 죽 먹기였다.어떻게 보면 이면인의 ‘현명한’ 판단이 진씨 가문을 멸망의 길로 몰아넣은 거라고 할수도 있었다.좋은 패를 가지고 다 망쳤으니까 말이다.

  • 군신의 귀환   제2016화

    “당연히 아닙니다. 다만, 진씨 가문의 가보는 너무나 귀중하니 귀울진 전체와 교환해야 공평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이면인은 진심인 척 말했다.그러나 이는 명백히 가격을 부풀리는 협상 전술이었다. 만일 이 요구를 들어준다면 염구준이 귀울진 전체를 준다고 해도 후에 또 용하국에 가겠다면서 다른 요구를 이어갈 게 뻔했다.덥썩.염구준은 그의 말을 듣지 않고 단숨에 그의 목을 움켜쥐었다.“내 약점을 잡았다고 멋대로 날 조종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한 거야?”이런 사람을 봐줘서는 안 됐다.과거에 어떤 사람이었든, 귀울진 같은 혼란스러운 곳에서 오래 살다 보면 누구나 그 환경에 물들기 마련이었다.“제, 제가...”이면인은 염구준이 진심인 것을 보아내고 겁에 질려 변명이라도 해 보려 했으나 목이 조여와 말을 잇지 못했다.“쓸데없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아. 단 한 번의 기회만 줄 테니, 잘 생각하고 말하는 게 좋을 거야.”염구준은 그의 목을 약간 느슨하게 풀어주며 차갑게 말했다.이면인이 답하기도 전에, 진씨 가문의 사람들은 또다시 일제히 염구준을 향해 달려들었다.비록 무슨 일이 난 건지는 몰랐지만 가주가 공격을 당했으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어서였다.“꺼져!”염구준은 짧게 소리치며 기운을 내뿜어 몰려오던 사람들을 휩쓸었고, 사람들은 기운의 여파조차 버티지 못하고 쓰러졌다.“다음번에도 이딴 짓을 한다면,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어.”염구준은 땅에 쓰러진 이들을 싸늘하게 노려보며 경고했다.“말하겠습니다! 당신이 찾는 물건은 쇄룡산맥에 있는 진씨 가문의 옛 저택에 있습니다.”이면인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전신의 힘을 다해 한꺼번에 말했다. 이번에 약간의 속임수를 쓰려고 한 거였으나 지금 이 상황을 보고난 뒤, 그는 자신이 지나쳤다는 걸 깨달았다.“넌 이미 날 여러 번 속였어. 내가 너를 어떻게 믿지?”염구준은 손을 풀지 않은 채 물었다.“정말입니다! 쇄룡산맥은 진씨 가문의 옛 거주지였는데, 그 가보가 특별한 물건이라 철수할 당시 가져올 수 없었

  • 군신의 귀환   제2015화

    염구준은 이미 그들에게 기회를 줬었다. 기회를 잡지 않은 건 상대방의 잘못이지 그의 잘못이 아니라는 거다.백가와 목숨파의 당주는 염구준이 자신들의 권유를 무시하는 것을 보고 서로 눈빛을 교환한 뒤 공격을 감행했다.대방주는 죽어선 안 되었다. 아니, 죽더라도 반드시 그들의 손에 죽어야 했다. 그래야 그들이 개방의 재산을 차지할 수 있으니까 말이다.귀울진에 외부인이 들어와 한몫 차지하는 걸 그들은 지켜볼 수가 없었다.쿠쿵.염구준은 폭발적인 기운을 내뿜으며 각각 두 당주를 향해 강력한 주먹을 날려 후퇴시킨 뒤, 싸늘하게 물었다. “왜? 너희도 죽고 싶어?”꿀꺽.염구준의 경지를 짐작한 두 당주는 겁에 질려 침을 삼켰다.‘반보천인이라니.’이건 이미 그들이 상대할 수 있는 차원을 넘어선 강자였다. 그들은 지금 그저 상대방이 자신들과 따지지 않고 보내주기를 바랄 뿐이었다.“아, 아닙니다. 저희 뜻은 이자를 처리하는 일은 저희가 알아서 할 테니 굳이 당신의 손을 더럽히실 필요는 없다는 뜻이었습니다.”백가의 당주는 잽싸게 말을 돌리며 뻔뻔하게 변명했다.“난 결과만 본다. 쓸데없는 말 하지마.”염구준은 차갑게 말했다.이익에 따라 태도를 바꾸는 소인배들의 말을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는 잘 알고 있었다. “네, 네!”두 당주는 염구준의 말에 대답을 한 뒤 대방주가 쓰러져 있는 쪽으로 향했다.남이 죽는 것이 자신이 죽는 것보다 낫기 때문이었다. “너희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우리끼리 무슨 일이 있어도 함께 협력하기로 약속했었잖아!”대방주는 두 사람의 살기를 감지하고는 두려움에 떨며 외쳤다.“그건 다음생에 다시 보자.”푹.백가와 목숨파의 당주들은 말을 별로 하지 않는 행동파들이었다. 둘은 바로 망설임 없이 대방주의 목숨을 끊어버렸다.이제 귀울진에서 개방은 완전히 사라졌다.“더 지시하실 것이 있으십니까?”두 당주는 다 처리한 후 염구준을 향해 공손히 물었다.“지금부터 개방의 모든 재산은 진씨 가문의 소유다. 이의 없지?”염구준은

  • 군신의 귀환   제2014화

    “제일 앞에서 걸어오는 사람이 개방의 대방주입니다. 전신 위 경지의 강자이고, 도가 매우 빠릅니다.”이면인은 대방주가 등장하자 황급히 염구준에게 알고 있는 전부의 정보를 제공해주었다.지금 그들은 같은 배에 탄 상황이었기에, 조금이라도 잘못된다면 양쪽 모두에게 좋지 않았다.“네.”염구준은 대방주를 힐끗 쳐다보고는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전신 위의 실력 따위로는 그의 눈에 들지 못했다. 손 한 번 들면 얼마든지 죽일 수 있으니까 말이다.“내 동생을 다치게 한 게 바로 너냐?”대방주가 오만하게 물었다.염구준의 힘이 깊이 숨겨져 있던 터라 한참 동안 관찰했어도 그는 상대방이 강한지, 약한지 보아내지 못했다. 그러나 위협적인 기운도 감지되지 않았기에 그는 상대방이 단지 전신 정도에 불과하다고 단정 지었다.“그렇다면 어쩔래? 네 동생이 먼저 덤벼든 거야.”염구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하, 그렇게 나오겠다 이거지? 네 스스로 두 팔을 자르면 목숨만은 살려주마.”대방주는 날 선 눈빛으로 말하며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지금 현재 수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권위를 입증하고, 본보기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다.“네가 개방의 모든 산업을 넘기고 이 귀울진에서 사라진다면, 나도 너를 살려줄 수 있어.”염구준은 같은 말투로 대답했지만 농담하는 기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이미 진씨 가문을 개방 대신 3대 세력 중 하나로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었다.만약 개방이 순순히 물러난다면 굳이 손에 피를 묻힐 필요도 없었다.염구준의 말에 이면인은 안절부절 못했다.그가 행동에 나서지 않으면 진씨 가문의 복수는 물거품이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지금 이 상황에서 차마 말을 꺼낼 수도 없었다.“하하하!”“죽어라!”대방주는 고개를 젖히고 크게 웃다가 표정을 굳히더니 도를 들고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전신 위의 기운을 전부 내뿜으면서 말이다.이 싸움은 반드시 이겨야 할 뿐만 아니라 개방의 위상을 위해서라도 화려하게

  • 군신의 귀환   제2013화

    너무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기에 이면인은 전혀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그는 이렇게 큰 일을 하는데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네, 아니면 내일까지 기다리자는 건가요? 전 그렇게 시간이 많지 않습니다.”염구준은 이미 확실하게 말했다. 별 일도 아니고, 빨리 해결해야 진씨 가문의 가보에 대한 정보를 얻어 빨리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그는 질질 끌고 싶지 않았다. 이면인은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신이 동급 무수자들을 압도할 수 있을 정도로 강하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개방의 대방주는 전신 위 경지의 실력자입니다.”“갈 겁니까, 말 겁니까?”이미 문 앞까지 도착한 염구준은 짧게 물었다. “가겠습니다. 바로 사람들을 모으겠습니다.”이에 이면인은 망설임 없이 움직였다.이런 기회가 흔치 않을 뿐더러, 진씨 가문은 이미 개방에게 심하게 몰려 있는 상태라 더는 물러설 곳이 없었기 때문에 이 기회에 한 번 붙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면인은 진씨 가문의 사람들을 이끌고 개방의 본거지인 ‘개소굴’ 로 향했다.이들의 움직임은 귀울진의 여러 세력들의 주목을 받았고, 길거리에 있던 이들도 수군거리며 그들을 쳐다보았다.“저거 이면인 아니야? 평소에는 그렇게도 비굴하던 놈이 지금 뭐하는 거야?”“뭔지는 몰라도 지금 저 기세를 보아선 무슨 큰일을 꾸미려는 게 틀림없어.”진씨 가문은 자신들의 실력을 철저히 숨겨왔기에, 3대 세력을 제외한 나머지 사람들은 그들의 진정한 힘을 전혀 알지 못했다.행진하는 진씨 가문의 사람들의 뒤에는 구경을 하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하지만 지금 이 상황은 개방한테까지 전달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분노에 휩싸여 있었다.“형님, 제 팔을 끊어버린 놈을 반드시 처단해 주세요.”부상 치료를 받던 이방주가 힘겹게 말했다.과다출혈로 인해 그의 얼굴은 매우 창백했는데,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있었고, 말하는 목소리는 매우 허약했다.강력한 전신의 경지라 하더라도

  • 군신의 귀환   제2012화

    이면인은 공손히 고개를 숙인 후, 사람들에게 주변을 정리하게 하고 염구준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그는 두 잔의 차를 내오며 거록 존주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거록 존주의 본명은 진통신이라고 합니다. 저보다 몇 살 어리죠.”“진통신은 그 배에서 꽤나 뛰어난 몇 사람 중 하나로 손꼽혔습니다. 특히 망기술에 대한 이해와 수련은 그를 능가할 자가 없었죠.”“하지만, 그는 진씨 가문의 가보에 탐욕을 품고 비열한 수단을 사용했습니다. 결국엔 발각되어 가문에서 추방되었지만요.”“몇 년 후, 그는 다른 은세집안들과 힘을 합쳐 진씨 가문을 공격했고, 그로 인해 저희 가문은 큰 손실을 입고 사분오열되고 말았습니다.”...이면인은 거록 존주의 생애를 거의 다 이야기할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했지만 염구준이 얻은 유용한 정보는 단 하나 뿐이었다. 거록 존주가 진씨 가문의 배신자이고, 가문의 가보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그 외의 이야기는 대부분 쓸모없는 것이었다.“진씨 가문의 가보라는 것이 대체 무엇입니까? 거록 존주가 그것을 손에 넣었나요?”염구준이 담담하게 물었다.당연히 그 가보가 탐나서 이렇게 물어본 것이 아니었다. 단지 그것을 미끼로 사용해 거록 존주를 유인하려는 목적일 뿐이었다.“가지지 못했습니다.”이면인은 고개를 저으며 더 이상의 정보는 말하지 않았다.염구준은 말을 하다가 만 그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뭘 원하시는 겁니까? 돈을 더 주면 되나요?”염구준은 한 가문의 수령이 정보를 팔아 생계를 유지해야 할 정도로 몰락한 그들의 모습을 보며 그 가보라는 것이 현재 그들의 상황을 바꿀 수 없거나 애초에 그들의 손에 없을 거라고 짐작했다. “거래를 하나 합시다. 당신이 저희를 위해 한 가지 일을 해 주신다면, 가문의 가보가 있는 장소를 알려드리겠습니다.”이때, 이면인이 제안을 했다.늘 괴롭힘을 당하는 그들에게 돈은 크게 의미가 없었다. 가져도 어차피 빼앗길 것이 뻔했기에 그는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말해보세요. 하지만 너

  • 군신의 귀환   제2011화

    곧이어 그가 팔을 살짝 떨며 힘을 모으자 거대한 기운이 주먹 끝에서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으윽!”이에 이방주는 버티지 못하고 신음소리를 내며 몇 걸음 물러났다. 저릿한 팔을 보면서 그는 상대방이 전신의 경지에 불과하지만 자신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느꼈다. 다만 그가 한가지 모르는 것이 있다면, 그건 염구준이 같은 경지의 적수를 만났을 때 한 번도 진적이 없다는 것이다.염구준이 반보천인의 힘을 사용하지 않은 건 눈앞의 적을 상대하는데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어서였다.“내가 대충 날린 한 방도 못 막는 걸 보면 넌 겨우 그정도밖에 안 되는 것 같네.”염구준은 조소 섞인 말투로 말했다.그가 만약 칠권합일까지 사용했다면, 이방주는 이미 중상을 입고 쓰러졌을 것이다.“오만하게 굴지마라.”염구준의 비웃음에 화가 치밀어 오른 이방주는 허리춤에서 연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사실 그는 방금 전의 전투에서 전력을 다하지 않고 비장의 카드를 남겨두고 있었다.“검을 쓰려고?”이 모습을 지켜보던 염구준은 흥미롭다는 듯이 감탄하며 더욱 비웃는 표정을 지었다.그의 앞에서 검을 휘든다는 건 마치 관우 앞에서 대도를 휘두르는 격이었다.쉭!그의 연검은 매우 유연했다. 이방주는 검을 몇 번 흔들고는 염구준을 향해 돌진했다.그러나 염구준의 눈에 비친 상대방의 검술은 초보자가 선보이는 것처럼 서투르기 짝이 없는, 아니 심지어는 검술에 대한 모욕이다 싶을 정도로 가관이었다.염구준은 곧바로 오른손으로 검결을 만들며 검의를 불러일으켜 검기를 먼들었다. 검 없이 기운만으로 만들어진 검기라 크게 힘을 내진 못했지만, 이방주를 상대하기에는 이 정도로도 충분했다.푹!검기는 곧 이방주의 검과 팔을 관통했고, 구멍이 뚫린 팔에서는 피가 뚝뚝 떨어졌다.더 볼 것도 없이 이건 이방주의 패배였다.이를 목격한 사람들은 싸움을 멈추고 각자의 진영으로 물러났다.승패가 이미 결정된 이상 더 이상 싸움을 지속할 필요가 없어서였다.“말도 안 돼! 어떻게 전신의 경지가 이렇게까지 강

  • 군신의 귀환   제2010화

    상황을 정리한 염구준은 계속 지켜봤다.개방의 이방주가 이면인을 보더니 사악하게 웃었다.“가주가 왔으니 우리 시비를 따져보자고. 오늘 아침에 그쪽 사람이 우리 애들을 때렸어. 그래서 치료비라도 챙기려고 왔는데 이게 과분한 처사 아니지?”수백 명이 되는 개방 무리가 돈을 갈취하기 위해 온 것이다.“누가 누굴 때렸어?”이면인이 나지막하게 물었다.“몰라. 때렸으니 치료비를 줘.”이방주가 어깨를 으쓱하며 억지스러운 표정을 지었다.돈을 뜯어내겠다는 뜻이다.이런 일은 너무 익숙하니 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퍽!이면인은 말을 하지 않고 손에 들었던 가방을 던져주면서 물러났다.“이 돈이면 충분해?”“부족해. 여기 땅을 줘.”이방주는 쳐다보지 않고 낡은 별장 구역을 가리켰다.가방에 고작 몇 백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지만 땅은 가치가 어마어마했다.“그건 안 된다. 여기는 우리 집이란 말이다.”이면인은 궁지에 몰리자 더는 양보하지 않았다.뒤에 있던 가족들이 분노로 가득차서 씩씩거렸다.용하에서 쫓겨나 이곳까지 왔는데 땅을 내준다면 또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했다.“그렇다면 상의할 필요도 없겠네.”이방주가 손을 흔들자 부하들이 우르르 쓸어서 진씨 가문을 공격했다.이 부지를 무조건 손에 넣어야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죽기 살기로 싸우자!”이면인도 악을 쓰면서 기운을 발사했다.전신 경지였다.“진씨 가문이 정말 몰락했네.”멀리서 지켜보던 염구준이 혀를 찼다.은세가문에서 아무리 약해도 반보천인 가주가 있어야 가문을 유지할 수 있었다.가문이란 그랬다.일어서면 몰락하는 흥망성쇠를 반복해서 겪었다.천 년을 이어온 가문들은 대부분 기반이 든든하기 때문이다.싸움이 시작되자마자 벌써 한쪽 실력이 기울어졌다.진씨 가문은 개방의 상대가 아니었다.가장 실력이 있는 이면인이 같은 경지인 개방의 이방주에게 눌려서 얻어맞고 있었다.망기술은 독특한 술법이지만 싸움에 큰 도움이 되지 않았다.이렇게 내버려두다가 이면인이 곧 죽을 것 같았다.하지만 염구준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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