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장 로비 중심에 보름이나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해당 포르쉐 HBLY—GT를 구매할 능력이 되는 고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수습 기간도 채 지나지 않은 초짜가 아니고야 농담이라도, 군복을 입은 남성과 평범한 원피스 차림의 여성에게 26억이나 되는 포르쉐를 소개할 위인은 없었다."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하나 열정적인 태도는 보기 좋군."데스크 쪽을 담담하게 바라본 염구준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금테로 장식된 블랙 카드 한 장을 내민 염구준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전액 일시불로. 따로 비밀번호는 입력할 필요 없어. 이곳의 전속 서비스를 받고 싶네만, 필요한 모든 비용은 이 카드로 계산하도록. 십 분 사이에 전부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군."26억을 비밀번호 입력도 없이 일시불로 계산한다고? 블랙 카드에는 흔한 은행명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면에 "G.J"이라는 심플한 이니셜이 적혀있을 뿐. 이게 대체 무슨 카드지?"선생님, 저..."여직원은 십초 동안 아무말도 못 하고 멍하니 염구준을 쳐다보기만 했다. 더없이 진지한 그의 표정으로 보아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제야 조심스레 카드를 받은 여직원이 결제를 진행할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구준 씨, 농담이 지나치잖아."뒤늦게 정신을 차린 손가을이 펄쩍 뛰었다. 26억이라는 가격표가 안 보이는 건가? 대체 그놈의 정착금이 얼마길래. 행여 결제 실패 화면이 뜬다면 얼마나 창피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진정해."핏기 없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아마 곧 소식이 올 거야."30초도 안 되는 사이, 블랙 카드를 소중하게 받아 든 직원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사무실에서 달려 나와 그들을 불렀다."고객님, 결...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여기 구매 영수증 받아주시고요, 어... 그리고 고객님들을 위한 자그마한 사은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유 카드, 무료 세차 카드랑... 어... 아
26억짜리 포르쉐라니,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보다 10배는 더 나갔다. 그리고 현재 그 차주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정말... 저 사람이 돈을 냈단 말이야?"데스크 쪽에 몰려있던 소위 '경험 많은'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제야 때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돈이 그렇게 많을 줄 알았더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보는 눈이 형편없었다. 그러니 신입이라고 무시하던 사람이 얼떨결에 주워갔지."게다가 따로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었다며?"짙게 화장한 중년 여직원이 동료를 둘러보며 찝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체 저 안에 얼마가 들어있길래? 예전에 용하은행에서 발행한 VIP 카드를 본 적 있는데, 비밀번호 없이 결제할 수 있는 한도는 개인 자산의 0.0001% 더라고. 방금 저분... 26억을 무비번으로 결제했잖아. 그럼 대체 총자산이 얼마인 거야?""......"동료 직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좋은 기회던가. 이런 사람들과 안면을 터놓으면 팔 수 있는 차가 배로 늘어났다. 놓친 상여금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눈앞의 기회를 보기 좋게 날린 그녀들이었다.포르쉐 옆에 서 있던 손가을이 염구준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구준 씨... 혹시 엄청난 비밀 같은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많은 정착금을 받은 거고?""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야."아이를 안아 든 염구준이 조수석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이젠 당신 차야. 그러니 운전해 봐야지 않겠어?"잠시 머뭇거리던 손가을이 운전석에 앉았다. 행여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질감 좋은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고급스러운 금속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정교한 오토매틱 기어를 쓰다듬었다.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어여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차올랐다."고객님."젊은 여직원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진숙영이 두 사람 곁에 자리했고 손중천과 고위급 임원들이 애써 웃음 지으며 뒤따랐다. 용성우와 손태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안색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계약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젠 10조라는 거액의 투자금을 받을 일만 남았다. 그러나 손영 그룹에 차려질 최종 이익은 손태석 부부의 결정에 달렸다."에휴..."손중천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애매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어르신!"이때, 비명 같은 진혜린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들려왔다. 성씨도 빼앗기고 집안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진혜린은 여태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 아래에 엎드려 펑펑 울음을 쏟으며 처절하게 발악했다."어르신,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좀 한 번만 살려주세요. 계약도 성사되었잖아요. 저 반성 많이 했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제가 왜 진혜린인데요, 전 손혜린이에요. 전 영원히 손씨 집안 사람이라고요! 흑흑...."손중천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묵직한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제대로 된 번호판조차 걸지 않은 빨간 포르쉐가 건물 앞쪽 광장에 서서히 멈춰 섰다. 희주를 품에 안은 염구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보기 좋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장모님, 장인어른. 계약은 무사히 마치셨습니까? 모시러 왔어요. 같이 저녁 식사해요."저녁 식사라고? 손태석과 진숙영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어찌 이리도 눈치가 없단 말인가. 용씨 집안과 막 계약을 마쳤으니 함께 저녁 만찬이라도 즐겨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용씨 집안 사람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예의 없는 행동이 퍽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이내 염구준이 용씨 집안 가주를 알아볼 리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염구준의 등장에도 손태석과 진숙영은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나 용성우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저 사람이다. 눈앞에 아이를 안아 든 남성이 바로 소문으로만 들었던 고귀한 분이었다. 나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 전
손씨 집안에서 쫓겨난 뒤 그녀의 커리어와 꿈은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오늘로써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손가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계단 위에 서 있는 용성우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정말 감사....""아이고, 이 늙은이를 부축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아우님. 이젠 나이가 들어 계단도 혼자 못 내려갈 정도라니까."용성우는 손태석의 팔뚝을 꽉 쥐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손가을이 인사하는 걸 당장 막아야 했다. 이들은 염구준의 정체를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주군의 부인께서 제게 허리를 숙인다? 첫인사는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목숨이 아홉 개 달린 것도 아닌데!아버지가 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훈훈한 장면임이 틀림없으나 손중천에게는 아니었다.용성우와 손태석 뒤를 따라가고 있던 손중천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빌어먹을 불효막심한 자식 같으니라고.진혜린이 꼬드겨서 손태석 일가를 쫓아내고 손가을을 해고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손중천이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손씨 집안 가주로서 내린 명령은 감히 반박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임금의 교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셋째 아들인 손태석이 명을 거역하고 사사로이 손가을을 회사에 불러들였다. 용성우와 손영 그룹 임원들 앞에서 개망신당한 꼴이었다. 그의 위엄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게다가 그들의 데릴사위는 어떠한가, 쓰레기 같은 염구준.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저놈 탓이었다. 칠순 잔치에 보란듯이 관을 들이밀며 하마터면 자신을 고혈압으로 쓰러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흐흑, 손가을이 회사로 복귀한다고?"한편, 계단 아래에 쓰러져있던 진혜린이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전혀 제정신이 아닌 몰골이었다.회사로 복귀한 것도
"염구준!"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진혜린이 사납게 자리를 박차며 달려갔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한때는 손가을 소유였던 빨간 포르쉐에 올라탄 그녀가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시동을 걸었다."재원 오빠가 절대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어디 두고봐! 3일 뒤면 저 계집애 생일이라지. 그날 어디 한번 결판을 내보자고. 넌 뒈졌어."실컷 소리 지른 그녀가 가속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댔다. 광택이 사라진 붉은 포르쉐가 경악이 섞인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의 손을 맞잡은 염구준이 장인 장모를 맞이했다."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저희도 식사하러 가야죠. 타십시오."손태석과 진숙영은 퍽 불만에 차 있었다. 미처 용성우를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를 나누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뻔히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모른 척이다. 정말이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오른 손태석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호통치려 했다."태석 아우!"손태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겁에 잔뜩 질린 용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칭찬을 늘어놓았다."오, 이분이 바로 자네의 사위인가! 듣던 대로 아주 젊고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군! 가족끼리 보내는 단란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지, 그러니 내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자리는 다음에 만들면 되지! 살펴 가시게,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네. 다음에 보세!"말을 마친 그가 얼른 부하들을 데리고 자신의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문을 걸어 잠근 용성우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식은땀을 닦아냈다.하늘이시여!주군의 정체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기백은 이 도시 최고 갑부인 그조차도 덜덜 떨게 만들었다.염구준은 진정한 상위 포식자였다.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는 범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용씨
호텔 앞에 파티 초대 문구가 쓰인 금색 간판이 우뚝 솟았다. '생일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를 장착하고 어린 주인공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시는 모든 분께 본 호텔 VIP 전용 패키지 무료 제공''1인당 1회 한정, 순금 생일 배지 증정''생일 파티 주인공-- 염희주'이 소식은 마치 들판에 번진 불길처럼 전체 도시에 가득 퍼졌다.거리의 옷 가게, 백화점 명품 숍, 웨딩드레스 숍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색감의 연회복은 전부 매진되었다.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그랜트 센트럴 호텔에 한가득 몰려들었다. 전체 도시가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에 홀린 것만 같았다......."재원 오빠-"교외의 화려한 별장에서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진혜린이 서재원의 가슴에 살며시 기댔다. "오늘이 바로 그 계집애의 생일이잖아. 우리도 출발해야 하지 않겠어?"진혜린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던 서재원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도도한 진혜린은 오랫동안 그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3일 전 적극적으로 그의 품 안에 뛰어들며 제 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손중천 그 양반도 참 어리석어. 너를 손씨 집안에서 쫓아내다니 말이야."옷을 대충 걸쳐 입은 서재원이 싸늘하게 말했다."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넌 내 여자니까. 게다가 뭐, 우리더러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염구준 그 자식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창가로 다가간 그가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별장 앞마당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120여 명의 경호원들이 앞마당에 빼곡히 버티고 서 있었다. 검정 양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춤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전부 무기를 소지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서른 대의 아우디 차량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살벌한 기색으로 보아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싶었다."우리 오빠는 너무 대단한 것 같아!"마찬가지로 옷을 갖춰 입은 진혜린이
"염 서방..."호텔 1층 파티홀, 태연자약한 염구준을 바라보며 손태석과 진숙영이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의 사위는 딸아이에게 매우 비싼 차를 사주었다. 그가 딸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손녀에게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어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나 오늘 같은 장면일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들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온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든 것만 같았다. 환호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호텔 밖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희주 아가씨, 생일 축하해요!""희주 양의 4살 생일을 축하합니다!""우리 똑똑하고 귀여운 희주 아가씨, 이대로 건강하게만 자라주세요!"사실 그들은 염희주를 본 적도 없었다."엄마, 아빠..."제 부모님 곁에서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손가을이었다. 그녀는 염구준의 잘생긴 옆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심연을 담은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자기 남편은 정말이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염구준은 대체 무슨 수로 이 도시의 유일한 6성급 호텔 전체를 대여했단 말인가. 여기에 지불한 비용은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호텔의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는 또 어떻고? 심지어 그녀는 호텔 셰프가 언제부터 요리를 준비했는조차 알지 못했다.다만 아이의 생일 파티를 위해 염구준이 온갖 정성을 쏟았다고 예측할 뿐이었다. 분명 전우들에게 수없이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이토록 화려한 파티를 위해 그들에게 수많은 신세를 졌을 테지."이렇게 굉장한 건 처음 보네만... 지나치게 사치스럽지 않아?"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리며 가까스로 입을 연 손태석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알게 뭔가.오늘 새하얀 공주님 드레스를 입은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 염희주는 파티홀에 특별히 준비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유치원 친구들, 오늘 초대받은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살벌한 무기를 꺼내든 경호원들이 파티홀을 질주했다. 의자를 들거나 칼을 휘두르며 몸싸움을 벌일 준비를 마쳤다."꺄악!"홀 안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희주와 어울리던 유치원 친구들, 학부모와 선생님들도 혼비백산하며 온몸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들이 염구준을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염구준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머릿속에 무료 VIP 패키지와 순금 배지가 둥둥 떠다녔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아이들을 꽉 안은 그들은 소름 끼치는 연장을 휘두르며 파티홀을 누비는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손가을 일가족의 낯빛도 창백해졌다. 그들도 조건반사처럼 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렸다."두려워할 것 없습니다."덤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염구준이 서재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친 듯이 발악하는 버러지를 바라보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겨우 120여 명을 대동하다니. 서씨 집안도 별 볼 일 없군.'"개 같은 눈빛 집어치워. 어디서 허세야?"무심한 눈빛이 서재원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듯했다. 울컥 화가 치민 서재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그깟 군바리 질 몇 년 했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꼴에 열 명은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지? 과연 백 명은 어떨까?" "일전에 감히 이 몸을 걷어찼겠다? 손중천 그 양반 칠순 잔치 때 내게 지껄인 막말은 어떻고! 오늘 어디 한번 제대로 결판을 내보자고. 네놈이 언제까지 날뛸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염구준이 비웃음을 담아 그를 쳐다보았다.원래 벌레들은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 모르는 법이었다.서재원은 제가 맞닥뜨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전신전 전주라는 칭호가 담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는 그의 상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아직도 웃음이 나와?"여전히 태연한 염구준을 바라보는 서재원에게 은은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든든한 아군으로 둘러싸인 주위를 쓱 훑어본 그는 그제야
볼라르 백작이 죽었는데 일행은 한가하게 카드놀이를 하고 있었다.그렇다면 한 편이 아니라는 것을 설명했다.“바트 대장, 그냥 배달시켜. 나가면 사람들 눈에 띄잖아.”누군가 일깨워주었다.“뭐가 무서워? 가장 위험한 곳이 가장 안전하다는 말 못 들었어? 볼라르는 죗값을 치렀지만 죽을 때까지 자신을 조종하는 배후가 집에 있다는 것을 몰랐을 거야.”바트는 본인의 작전이 너무 완벽해서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거라 확신했다.그건 볼라르 저택에 오랫동안 머물렀는데도 아무 일도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바로 그때, 어둠속에서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애타게 찾아도 없다 했더니 쥐 새끼처럼 여기 숨어 있었구나. 너희들 모든 사실을 말하면 야식은 내가 사 줄게.”목소리의 주인은 바로 염구준이었다.그는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무술인들의 앞에 나타나더니 재미있는 제안을 했다.이 사람들과 일면식도 없는데 왜 에드로를 죽이고 자기에게 뒤집어씌웠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불청객 등장에 일행은 어리둥절했다.한참 지나서야 대장인 바트가 정신을 차리고 소리를 질렀다.“저놈을 죽여! 우리 정체를 들키면 안 돼!”쿵!그런데 공격하기 전에 염구준의 주먹을 맞고 전부 쓰러졌다.“죽고 싶지 않으면 움직이지 마.”살기가 깃든 염구준의 말에 바닥에 쓰러져 있던 일행은 일어날 엄두를 내지 못했다.방금 주먹이 너무 매서워서 감히 저항하지도 못했다.“선배님, 물어만 보십시오. 저희가 알고 있는 것은 전부 사실대로 말씀드리겠습니다.”바트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너희들 볼라르와 무슨 관계야? 에드로 친왕을 암살한 것도 너희들과 관련 있어? 잘 생각해 보고 대답해. 난 급하지 않으니까.”질문을 다한 염구준은 계단에 앉아 검으로 벽을 긁으며 이명소리를 냈다.일행은 그제야 자신을 노리고 왔다는 것을 알아챘다.“네가 염구준이야?”“푸악!”누군가가 이름을 말하는 즉시 날카로운 검에 잘려 죽어버렸다.나머지 다섯 사람들은 다음 차례로 자신이 죽을까 봐 무서워서 뒷걸음
벨은 염구준의 앞에서 감히 수작을 부리지 못했다.아무리 많은 병사를 거느려도 상대방의 일격이면 자신을 충분히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볼라르 백작은 누구 사람이야?”염구준이 계속 추궁했다.“보수파 안드리 친왕의 사람이야. 근데 왕숙의 짓은 아닐 거야.”벨은 매우 확신하며 안드리를 용의자에서 배제했다.그렇게 되면 모든 단서는 또 무용지물이 된다.“왜 아니라고 생각해?”염구준은 아주 작은 의심이 가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휴, 염 선생은 몰라서 그래. 두 사람 관계가 조금 오묘해서 그럴 리가 없어.”벨은 한숨만 쉬고 그 관계에 숨은 비밀은 말하지 않았다.“그럼 이렇게 하자. 네 부하들을 철수시키면 날 속인 걸 따지지 않을게.”염구준은 더는 묻지 않고 명령식으로 말했다.그런데 벨은 염구준과 양청화의 관계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염 선생, 우리 오스크국에서 국왕이 죽으면 왕후는 재혼할 수 있어.”“꺼져!”염구준이 갑자기 꽥 소리지르는 바람에 벨은 머리가 울려서 그만 비틀거리고 말았다. 두 사람 관계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괜히 똑똑한 척하고 있었다.“알았어. 당장 갈게. 앞으로 왕후가 나를 건드리지 않으면 나도 맞서지 않을 거야.”벨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알고 바로 부하들과 함께 철수했다.염구준은 벨의 군사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걸 확인하고서야 어둠 속에서 조용히 사라졌다.이제부터 혼자 힘으로 조사할 생각이었다.방금 일을 통해 염구준과 벨은 더는 서로를 믿지 않게 되었다.반대로 양청화는 염구준의 말을 믿었지만 더는 엮이지 않으려고 했다.“왕후, 벨이 철수했습니다. 따라가서 죽일까요?”검정색 제복을 입은 시위장이 청을 올렸다.“관둬. 구… 염 선생이 나서서 해결했으니 오늘 저녁에 건드리지 않을 거야. 참, 염 선생은 어디 가셨어?”양청화는 힘없이 손을 흔들었다.마음이 복잡해서 더는 이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밖에 없는 걸 보니 떠난 것 같습니다.”시위장이 대답
그렇게 따져 보면 벨과 에드로 사이에 원한은 없는 것 같았다.“구준 오빠, 무슨 고민거리라도 있어?”간신히 진정한 양청화가 작은 소리로 물었다.워낙 여러 사건에 얽혀 있어서 의심할 만도 한데, 한마디로 자신을 믿어준 것이 너무 고마웠다.“지금 오스크국에 어떤 세력들이 있는지 말해봐.”염구준은 세력 간에 문제가 발생한 것을 알아채고 처음부터 다시 알아보려 했다.“나, 벨 왕자, 안드리 친왕이 있는데 여기서 내 세력이 제일 강해. 그리고 벨, 안드리는 들러리나 마찬가지야.”양청화는 혹시나 염구준에게 도움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숨기지 않고 모든 정보를 말했다.그녀는 평소 저택에 움츠러들고 있었지만 벨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고마워. 날도 어두워졌는데 일찍 쉬워. 밖에 군사들은 내가 처리할게.”염구준은 누구도 해치지 않고 돌아서 나왔다.‘나를 도와주는 거야?’양청화는 또 이런 생각으로 머릿속이 혼란스러웠다.그보다 확실한 건 염구준은 자신을 여동생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다.그녀가 가장 바라지 않은 것이었다.한 켠에서 네카일은 질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염구준의 뒷모습을 노려봤다. 싸워도 이길 수 없으니 애써 분노만 삭였다.끼익!왕후 저택의 문이 다시 열렸다.밖에서 기다리던 군사들은 잔뜩 긴장하며 이쪽을 쳐다봤다.“철수해!”염구준이 철수하라는 말에 벨은 미간을 찌푸렸다.이미 군사를 동원했고 왕후가 코앞에 있는데 이렇게 계획을 망치기 싫었다.“안 돼. 오늘 반드시 저 여자를 죽여서 아버지 복수를 할 거야.”탁!그러자 염구준이 갑자기 앞에 나타나 그의 멱살을 잡고 들어올렸다.“제법인데? 메이슨과 둘이 짜고 내 앞에서 연기하니까 재미있어? 나를 이용해서 왕후를 죽이고 넌 국왕의 자리에 앉으려고 했어?”지금 얻은 정보로 벨이 정말 에드로를 죽였는지 확신할 수 없지만, 자신을 끌어들인 것은 확실했다.양청화가 말한 세 세력들은 각자의 수단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제거하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염구준이 갑작스럽게 공격하자 황실 호위대
그런데 모든 일이 수상하게 흘러서, 어쩔 수 없이 벨의 뒤를 따라가는 수밖에 없었다.밖에 나왔더니 벨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그새를 참지 못하고 왕후 저택으로 간 모양이었다.벨의 권력으로 짧은 시간에 군사를 모으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하지만 그가 아무리 절대적인 우세를 차지해도 국왕이 죽은 후에 양청화가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다는 것은 그녀도 만만치 않다는 것을 설명했다.쌍방이 싸우게 된다면 누가 이길지 아직 장담하지 못한다.염구준이 왕후 저택에 도착했을 때, 벌써 벨의 부하들이 개미떼처럼 입구에 모여들었다.그들 앞에 시체들이 누워 있는 것을 보니 이미 격전을 벌인 것 같았다.염구준은 벨의 부하들 사이를 지나 왕후 저택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직접 만나서 대체 무슨 일인이 물어볼 생각이었다.“염 선생, 그 영상은 나도 봤어. 둘이 아는 사이라는 걸 잘 알겠지만 이 일에 끼어들지 마.”벨 왕자는 그에게 충고했다.“나를 모함하려는 놈들과 관련 있는 일이라 무조건 끼어들어야겠어. 당신은 나서지 않는 게 좋아.”염구준은 오히려 벨에게 경고하며 계속 앞으로 걸어갔다.“양청화를 죽이고 아버지 복수를 하자!”하지만 벨의 입장에서 생각이 달랐다.혹시나 염구준이 양청화와 함께 도망치지 않을까 걱정되어 손을 번쩍 들어 명을 내렸다.오늘 대부대를 끌고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왕후를 살해하고 대권을 빼앗을 작정이었다.쿵!그때 염구준이 검을 휘두르면서 바닥에 경계선을 그어버렸다.깜짝 놀란 군사들은 무서워서 감히 나서지 못했다.“만약 왕후가 범인이라면 당신한테 처리할 기회를 줄게. 심사숙고하고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염구준은 그의 속셈을 알고 있지만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벨은 대규모적으로 귀족을 공격하여 당파 싸움으로 자신의 기반을 다지려고 했다.“알았어. 염 선생의 말을 따를게.”벨은 마른침을 삼키며 부하들에게 멈추라는 신호를 보냈다.방금 염구준의 검에 맞았다면 저항도 못하고 현장은 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타닥타닥!염구준은 왕
“아직도 매를 벌어? 이간질을 하는 거야, 아니면 잠이 덜 깬 거야?”벨은 단번에 메이슨의 의도를 파악했다.그가 친왕의 전부 세력을 계승할 수 있었던 것은 머리가 비상한 덕분이었다.이런 수법은 그에게 있어 아주 저급하고 뻔하고 보잘것없었다.“콜록콜록!”명치를 맞은 메이슨은 기침을 심하게 하더니 결국 피를 토하면서 경련을 일으켰다.벨이 단번에 간파할 줄은 생각도 못했던 것이다.반나절이나 고문을 참으면서 겨우 버텼는데 모두 헛수고가 되었다.“누가 사주했어? 네 입으로 말하면 목숨은 살려줄게.”염구준이 그에게 유혹적인 제안을 했다.지금 사건을 계속 파헤치려면 돌파구가 필요했다.“정말이야?”그 말에 메이슨은 정신이 번쩍 드는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물었다.“그래. 난 말을 번복하지 않아. 그러니까 걱정 말고 말해.”염구준이 의자를 끌어당겨 앉으면서 약속했다.장기말을 죽이든 살리든 사건 파악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으니 차라리 배후를 캐내는 것이 중요하다 여겼다.벨은 더는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메이슨을 심문하는 일을 염구준에게 맡겼다.“알았어. 말할게. 실은 에드로 친왕을 죽인 사람은 나야. 아무도 지시하지 않았어. 그러니까 나를 풀어줘! 하하하.”메이슨은 이미 제정신이 아닌지 염구준을 엿먹이는 말만 했다.‘또 헛걸음을 했나?’유용한 단서를 찾지 못했지만 메이슨은 에드로 암살 사건과 관련이 있다고 확신했다.촤아악!참다 못한 벨이 미간을 찌푸리며 일련의 공격을 퍼부었다.“메이슨, 좋게 말할 때 자백해. 대학에 다니는 당신 손녀가 지금 기숙사에 있지? 내가 얼마든지 찾으러 갈 수 있어.”예전에 벨은 이 늙은 집사를 할아버지라고 불렀다. 그런데 상대방이 주제를 모르고 날뛰니 악랄한 수법을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안 돼. 엘시아는 어릴 때부터 너와 함께 자랐어. 절대 해치면 안 돼!”평소 손녀를 가장 아끼던 메이슨은 그제야 조바심이 났다.“하, 아버지가 그동안 얼마나 잘해줬는데 그런 아버지를 어떻게 해칠 수 있어? 당신은
“저 자식 데리고 가.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아.”염구준은 꼴도 보기 싫어서 손을 내저었다.이쪽 일은 최대한 빨리 해결하고 네카일이 수작을 부리기 전에 청해에 돌아가고 싶었다.양청화와 네카일이 떠난 뒤, 염구준은 볼라르에게 다가가 휴대폰을 들고 듣고 있을 누군가에게 말했다.“당신이 누군지 몰라도 여기서 끝내는 게 좋을 거야. 아니면 내 손에 죽을 줄 알아.”퍽!그는 상대방에게 경고하고 손에 힘을 주어 휴대폰을 단번에 아작냈다.일개 백작이 왕후를 공격하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 배후에 누군가가 있는 게 틀림없다.휴대폰 너머로 영상으로 그 장면을 본 누구는 화가 치밀어 올라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염병! 저 자식이 진짜 나섰어. 이런 빌어먹을 연놈들!”염구준의 실력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강해서 정면으로 맞설 뾰족한 수가 떠오르지 않았다.“시체를 분리해서 각자 집으로 보내. 저들이 나를 습격해서 내가 살해했다고 설명하면 돼.”염구준은 성 내의 군사들에게 지시했다.어차피 잡것들이 달려들어도 자신을 죽이지 못하니, 혼자 감당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그러면 밖에서 그가 아직도 오스크국의 고위층 2 명의 목숨을 짊어지고 있다고 여길 것이다.“분부대로 하겠습니다. 염 선생님.”남은 군사들은 대부분 벨의 측근이라 이유를 묻지 않고 지시에 따라 처리했다.염구준은 모든 일을 마치고 돌아가서 쉬려고 했다.그런데 다급한 목소리에 발걸음을 멈추고 말았다.“염 선생님, 범인을 심문하다가 문제가 생겼습니다. 벨 왕자께서 그쪽으로 오시랍니다.”정말 쉴 틈을 주지 않고 사람을 굴려 먹는 그들 때문에 하마터면 욕이 나올 뻔했다.“무슨 상황인지 가서 보죠.”그래도 속으로 유용한 단서가 나오길 바랬다.오스크 황실 감옥.이 감옥은 평소 귀족이나 황실의 죄인을 가두는 곳이라 항상 조용했었다.하지만 오늘따라 군사들이 북적거렸다.벨 왕자가 사건을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친왕의 시종과 작위가 낮은 귀족들을 체포해, 감옥 내에 온갖 비명 소리와 고함 소리가 울렸다
“나의 친애하는 왕후여, 평소에 청렴하고 고상하던 분이 뒤에서 이런 남사스러운 짓을 하고 있었네요.”앞장선 남자의 이름은 볼라르, 작위가 낮은 백작이었다.오스크국에서 귀족들은 공작, 후작, 백작, 자작, 남작 등 작위로 나뉘어 있었다.볼라르처럼 낮은 신분을 가진 귀족은 평소 왕후와 말을 건넬 자격도 없었다.“무례합니다. 본인의 신분을 알고 예를 갖추세요. 아니면 바로 벌을 내릴 것입니다.”양청화는 순식간에 기품이 흐르는 왕후의 모습으로 돌아갔다.염구준은 볼라르 뒤에 따라온 일행을 힐끗 쳐다보았다.그들도 장기말일 뿐, 정작 배후는 나타나지 않았다.“왕후, 창녀처럼 천박하게 굴었으면서 나를 벌한다고요? 웃기지 마세요.”볼라르 백작은 오만하게 말하면서 한 켠으로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찍고 있었다.왕후를 완전히 보내려는 수작이었다.그와 함께 온 일행은 양청화에게 손가락질을 하며 수근거리기 시작했다.“아는 사이었군요. 두 사람이 결탁하여 에드로 친왕을 죽인 게 확실합니다.”“애당초에 저도 그런 말을 했어요. 왕후는 우리 종족이 아니니 배척해야 한다고 했는데 국왕이 아예 듣지 않았어요.”“이건 재앙입니다. 외적은 피하기 쉬워도 집안 도둑은 막기 어려운 법이죠.”볼라르가 데리고 온 사람들은 왕후 앞에서 대놓고 거침없이 말했다.오스크국에서는 양청화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종족’이라 불렀다.심지어 그녀가 왕후 자리에 오른 후에도 일부 보수파들은 계속 불만을 품고 항상 끌어내릴 기회를 노렸다.“여군단!”스스슥!양청화의 명령이 떨어지자, 검은 그림자 무리가 그녀의 주변에 나타났다.만약 그녀에게 아무런 수단과 세력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버티지 못했을 것이다.“볼라르 백작, 휴대폰을 남기고 가면 오늘 일은 없던 걸로 하겠습니다.”양청화가 마지막 통보를 보냈다.“왜요, 바람피운 것이 들통나니 죽여서 소문을 막으려고요?”볼라르 백작은 그녀가 자신을 죽일 수 없다 단정하고 휴대폰을 흔들거리며 조롱했다.“이미 영상을 보냈습니다. 휴대폰을
염구준은 여러 갈래의 검기를 발사하여 네카일을 쓰러트렸지만 목숨을 거두지 않았다.“하하하, 쓸모없는 녀석. 이것도 막지 못해?”“내가 졌어. 그냥 죽여!”네카일은 바닥에 드러누운 채로 노을에 붉게 물든 하늘을 쳐다보며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어엿한 반보천인 고수가 이 정도로 슬퍼하다니 충격이 꽤 큰 모양이었다.하지만 왜 우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이제 말할 수 있어?”한참 뒤, 염구준은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흥, 그녀가 그리워하는 사람은 너였어. 그런데 넌 오히려 쌀쌀맞게 대하면서 상처를 주었지. 내가 대신 복수할 거야!”네카일은 그를 원망스럽게 쳐다보았다.그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염구준은 쓴웃음을 지었다.“나와 양청화의 일은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간단하지 않아. 그렇다고 네가 상관할 일도 아니지. 이만 돌아가.”상대방이 이런 일로 찾아왔다면 더는 난감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네카일의 말을 들어 보면 양청화 때문에 오스크국에 남은 것 같았다.그에게 치정적인 면이 있었다니 참 의외였다.“염구준, 너 당장 이혼하고 그녀 곁으로 가. 아니면 내가 용하에 가서 네 아내를 죽여버릴 거야!”네카일은 바닥에 누워 미친듯이 소리를 질렀다.그 말은 염구준의 마지노선을 건드렸다. 자신을 협박하는 것은 괜찮지만 고작 그런 이유로 가족을 언급하는 것은 참을 수 없었다.“그렇게 죽고 싶다면 내가 황천길로 보내 줄게.”염구준은 살기를 뿜으며 검으로 네카일을 베려고 했다.그 순간, 한 그림자가 갑자기 나타나더니 두 팔을 벌여 네카일을 보호했다.“구준 오빠, 안 돼.”그 사람은 양청화였다.“청… 왕후, 이건 내 일이니 참견하지 마세요!”당황한 네카일은 창백한 얼굴로 다급하게 말렸다.그는 양청화를 지키기 위해 기꺼이 오스크국에 남았지만 지금도 그녀의 마음을 얻지 못했다.양청화가 그를 받아주지 않는 이유는 부귀영화를 포기하는 것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 사람’때문이라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었다.그리고 오늘에서야 그녀
염구준은 검을 뽑아들고 빠르게 나갔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네카일이 이 난동을 부리는 것인지 제대로 묻기 위해서였다. 한편, 고성 밖에서는 벨이 배치한 경비병들이 황급히 네카일을 막아서서 그를 말리고 있었다.“총사령관님, 제발 돌아가 주십시오! 염 선생님께서는 지금 벨 왕자님의 귀빈이십니다. 건드리면 큰 일 나요!”“두 분 사이 좋으셨잖아요? 무슨 일인지는 몰라도 천천히 얘기 나누세요.”“총사령관님, 벨 왕자님께서 얼른 돌아가시랍니다.”그들 역시 자신이 상대방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벨의 충복으로서 명령대로 행동하는 수밖에 없었다.“꺼져!”그러나 네카일은 그 누구의 체면도 세워주지 않고 포효하며 진기만으로 그들을 밀어냈다.그의 손에 들린 것은, 오래전 염구준이 섬멸한 조직에서 남긴 신병으로, 겉으로 보면 오래된 평범한 도에 불과했는데, 정말 긴급한 상황이 아닌 이상 쓰지 않는 것이었다.슈욱.이때, 염구준이 나와 네카일을 향해 검기를 날렸다.그저 상대방을 진정시키기 위해 날린 것이라 이 검기에는 많은 힘이 담겨있지 않았다.쾅!네카일은 쌍도를 교차시켜 제자리에 우뚝 서서 그 검기를 막아냈다. 다만 그의 눈에는 분노가 어려있었다.“왜, 전의 조직의 복수라도 하려는 거야? 갑자기 미쳤어?”염구준은 상대방이 이러는 의도를 몰라 떠물었다.“그 녀석들은 악행을 많이 저질렀으니 죽어도 싸. 내가 오늘 이곳에 온 건 오스타국을 위해서가 아닌 개인적으로 너와 한 번 붙기 위해서다.”“어디 한 번 붙어볼래?”네카일은 현재 매우 분노한 상태라 그가 내뿜는 기운도 이상하리만치 광포했다. 도의 손잡이를 잡은 그의 두 팔의 핏줄은 이미 불거졌다.지금 그의 눈에 염구준은 부모님을 죽인 원수와도 같았다.“난 이유 모르는 싸움은 안 해. 그러니까 이유 좀 알려주지 그래?”염구준은 이 모든 게 너무 당황스러워 상대방이 이러는 이유를 알고자 질문했다.“싸움의 이유를 알고 싶다면, 나를 이겨라!”네카일은 말을 마치고는 한 도로 방어를 하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