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텔 앞에 파티 초대 문구가 쓰인 금색 간판이 우뚝 솟았다. '생일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를 장착하고 어린 주인공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시는 모든 분께 본 호텔 VIP 전용 패키지 무료 제공''1인당 1회 한정, 순금 생일 배지 증정''생일 파티 주인공-- 염희주'이 소식은 마치 들판에 번진 불길처럼 전체 도시에 가득 퍼졌다.거리의 옷 가게, 백화점 명품 숍, 웨딩드레스 숍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색감의 연회복은 전부 매진되었다.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그랜트 센트럴 호텔에 한가득 몰려들었다. 전체 도시가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에 홀린 것만 같았다......."재원 오빠-"교외의 화려한 별장에서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진혜린이 서재원의 가슴에 살며시 기댔다. "오늘이 바로 그 계집애의 생일이잖아. 우리도 출발해야 하지 않겠어?"진혜린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던 서재원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도도한 진혜린은 오랫동안 그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3일 전 적극적으로 그의 품 안에 뛰어들며 제 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손중천 그 양반도 참 어리석어. 너를 손씨 집안에서 쫓아내다니 말이야."옷을 대충 걸쳐 입은 서재원이 싸늘하게 말했다."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넌 내 여자니까. 게다가 뭐, 우리더러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염구준 그 자식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창가로 다가간 그가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별장 앞마당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120여 명의 경호원들이 앞마당에 빼곡히 버티고 서 있었다. 검정 양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춤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전부 무기를 소지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서른 대의 아우디 차량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살벌한 기색으로 보아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싶었다."우리 오빠는 너무 대단한 것 같아!"마찬가지로 옷을 갖춰 입은 진혜린이
"염 서방..."호텔 1층 파티홀, 태연자약한 염구준을 바라보며 손태석과 진숙영이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의 사위는 딸아이에게 매우 비싼 차를 사주었다. 그가 딸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손녀에게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어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나 오늘 같은 장면일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들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온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든 것만 같았다. 환호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호텔 밖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희주 아가씨, 생일 축하해요!""희주 양의 4살 생일을 축하합니다!""우리 똑똑하고 귀여운 희주 아가씨, 이대로 건강하게만 자라주세요!"사실 그들은 염희주를 본 적도 없었다."엄마, 아빠..."제 부모님 곁에서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손가을이었다. 그녀는 염구준의 잘생긴 옆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심연을 담은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자기 남편은 정말이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염구준은 대체 무슨 수로 이 도시의 유일한 6성급 호텔 전체를 대여했단 말인가. 여기에 지불한 비용은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호텔의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는 또 어떻고? 심지어 그녀는 호텔 셰프가 언제부터 요리를 준비했는조차 알지 못했다.다만 아이의 생일 파티를 위해 염구준이 온갖 정성을 쏟았다고 예측할 뿐이었다. 분명 전우들에게 수없이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이토록 화려한 파티를 위해 그들에게 수많은 신세를 졌을 테지."이렇게 굉장한 건 처음 보네만... 지나치게 사치스럽지 않아?"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리며 가까스로 입을 연 손태석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알게 뭔가.오늘 새하얀 공주님 드레스를 입은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 염희주는 파티홀에 특별히 준비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유치원 친구들, 오늘 초대받은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살벌한 무기를 꺼내든 경호원들이 파티홀을 질주했다. 의자를 들거나 칼을 휘두르며 몸싸움을 벌일 준비를 마쳤다."꺄악!"홀 안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희주와 어울리던 유치원 친구들, 학부모와 선생님들도 혼비백산하며 온몸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들이 염구준을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염구준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머릿속에 무료 VIP 패키지와 순금 배지가 둥둥 떠다녔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아이들을 꽉 안은 그들은 소름 끼치는 연장을 휘두르며 파티홀을 누비는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손가을 일가족의 낯빛도 창백해졌다. 그들도 조건반사처럼 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렸다."두려워할 것 없습니다."덤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염구준이 서재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친 듯이 발악하는 버러지를 바라보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겨우 120여 명을 대동하다니. 서씨 집안도 별 볼 일 없군.'"개 같은 눈빛 집어치워. 어디서 허세야?"무심한 눈빛이 서재원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듯했다. 울컥 화가 치민 서재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그깟 군바리 질 몇 년 했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꼴에 열 명은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지? 과연 백 명은 어떨까?" "일전에 감히 이 몸을 걷어찼겠다? 손중천 그 양반 칠순 잔치 때 내게 지껄인 막말은 어떻고! 오늘 어디 한번 제대로 결판을 내보자고. 네놈이 언제까지 날뛸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염구준이 비웃음을 담아 그를 쳐다보았다.원래 벌레들은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 모르는 법이었다.서재원은 제가 맞닥뜨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전신전 전주라는 칭호가 담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는 그의 상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아직도 웃음이 나와?"여전히 태연한 염구준을 바라보는 서재원에게 은은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든든한 아군으로 둘러싸인 주위를 쓱 훑어본 그는 그제야
퍽- 둔탁한 소음이 파티홀에 울려 퍼졌다.염구준의 뒤쪽에 서 있던 손가을 일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이들, 심지어 그에게 이를 갈고 있던 서재원과 진혜린조차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염구준의 행동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그에게 달려들던 서씨 집안 경호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귓가에 우레와 같은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때 반응할 시간도 부족했다.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그들의 고막이 전부 나가버렸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어질어질하더니 귀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그들은 저마다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언제 무기를 들고 있었냐는 듯 전부 귀를 틀어막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은 가히 아비규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들은 겨우 절반 남짓 돌진했을 뿐이었다. 염구준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아직 꽤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손쉽게 제압당해 반항할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경호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우두머리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염구준의 실력은 모든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말, 말도 안 돼!"서재원과 진혜린은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그들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이럴 리가 없다!대체 저 남자의 정체가 뭐지? 방금 선보인 저 끔찍한 실력은 뭐란 말인가? 5년 사이 어떤 무엇을 겪었기에 이토록 두려운 기술을 연마했지?모두 특별 훈련을 받은 120여 명의 전문 경호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일격에 손쉽게 나가떨어지다니. 눈앞에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실력이 하나같이 형편없군."손목을 툭툭 턴 염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 딸 앞에 무릎 꿇고 빌라던 내 말은 기억하나?"이를 사리문 서재원이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삼키며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손톱이 아프게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었다.자신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어림도 없지!"이게 끝이라고 생각해?"그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여기가 어
번쩍거리는 외제차 3대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그랜드 센트럴 호텔로 향했다.알렉스와 통화를 끝낸 서재원은 한껏 거들먹거리며 염구준을 약 올렸다."등신이 발악해 봤자 등신이지. 싸움 좀 한다고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여기 오너가 너를 쫓아내 버리면 네까짓 게 어쩔 건데? 감히 나와 맞서겠다고? 넌 아직 멀었어!"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진혜린은 그제야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염구준의 주먹 한 방에 서씨 집안의 경호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호텔 오너가 파티홀 대여를 거절하면 염구준도 별다른 수가 없을 테지. 알렉스의 호텔이었으니 그에게도 거절할 권리는 있었다. 기껏해야 위약금이나 대충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염구준의 기를 꺾어놓기엔 충분했다."구준 씨..."하얗게 질린 손가을이 불안한 목소리로 염구준을 불렀다.이를 어쩌면 좋지? 어렵게 대여했을 텐데... 더구나 생일 파티도 곧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이런 때에 호텔 오너가 직접 그들을 쫓아내면 어찌한단 말인가?손가을이 입술을 깨물며 간절하게 말했다."우리도 양보하는 게 어때? 사과하라는 말... 취소하자.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떠나라고 하면 저 사람들도 따를 거야. 우리 희주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잖아. 저 사람들 때문에 아이의 소중한 추억이 더럽혀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옅은 미소를 지으며 염구준이 입을 열려는 찰나, 진혜린이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염구준, 우리가 파티를 망칠까 봐 이제야 좀 두려운가 보지? 근데 늦었어. 저 망할 계집애의 생일 파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건 물론이고 네 놈 주제 파악도 제대로 시켜주고야 말겠어."염구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사실 그는 방금 주먹을 내질렀던 때까지만 해도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 버러지가 발악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분노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진혜린의 '망할 계집애'라는 발언이 그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렸다. 진혜린은 잘못 놀린 혀에 대한 대가를
잠시 망설이던 알렉스가 낯빛을 굳히며 염구준에게 다가갔다.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이 염구준이야? 오늘 파티도 당신이 준비했다지?"염구준이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그렇다면? 쫓아낼 텐가?"알렉스가 두 손을 허리에 얹으며 그를 노려봤다."물론이지. 내 호텔에서 사람이 다쳤다는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 내 말 한마디면 보안 요원들이 전부 움직일 거야. 그뿐인가, 직원들, 매니저, 룸메이드까지...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당신이 다 감당할 수나 있겠어? 당신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야 안 봐도 뻔하지."눈썹을 치켜올린 염구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세가 아주 볼만했다."웃어?"여유로운 그 모습에 진혜린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짓씹듯이 내뱉었다."알렉스, 당장 쫓아내지 않고 뭐해! 가만, 쫓아낼 게 아니라 잔뜩 두들겨 패서 기어나가게 만들어. 특히 염구준 저 새끼는 그냥 때려죽여 버리라고!"서재원도 거들었다."염구준, 너 싸움 잘하잖아. 어디 다시 한번 보여줘 봐! 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벌써 기대되는걸."그러나 염구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반문했다."알렉스, 정말 이 호텔 사람들이 당신 명령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나?"흠칫한 알렉스가 잔뜩 허세를 부렸다."내 호텔이니 당연히 내 말에 따라야지! 한 번만 더 말대꾸하면, 당장 맞아 죽고 싶은 걸로 간주하겠어."염구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손을 들어 올린 그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작은 박수 소리는 이내 넓은 홀에 집어삼켜졌다. 그러나 이때, 탁탁탁, 느리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발소리가 염구준의 박수 소리에 맞춰 점점 가까워졌다. 건장한 경호원을 대동한 이가 웃음 띤 얼굴로 홀의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그자를 발견한 알렉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진혜린과 서재원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도시의 갑부이자 용씨
분주하게 눈치를 살피던 서재원은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얼른 용성우의 비위를 맞추려 들었다."가주님,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저는 서재원이라고 합니다. 저희 고모님 성함이 서 정자 숙자 이십니다. 제가...."그의 소개를 들은 용성우가 코웃음 쳤다. 확실히 서정숙은 용씨 집안에서도 감히 함부로 대하지 못하는 여인이었다.그러나 이번에 서재원이 건드린 사람은 전신전 전주였다. 나라님도 예를 갖춰 대우하는 이 나라 최고 전쟁의 신이었다. "자네가 누구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네."서재원을 흘깃 쳐다본 용성우가 알렉스에게 눈길을 돌리며 코웃음 쳤다."중요한 건 알렉스 김, 자네가 주제 파악을 제대로 해야 한다는 거야. 감히 내 호텔에서 소란을 피워? 당장 꺼지지 못해?"온몸이 땀범벅이 된 알렉스는 혼비백산하며 얼른 제 수하들을 데리고 꽁무니가 빠지게 도망쳤다."가주님도 수고 많으셨습니다."비로소 염구준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오늘 일은 감사했습니다."그 말을 들은 용성우는 마음이 잔뜩 들떴으나 손가을을 흘깃 쳐다보고는 얼른 표정을 갈무리했다. 허리를 숙이며 용성우가 인사를 올렸다."과찬이십니다, 주... 아니, 염 선생님. 저희 호텔 전체를 대여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감사할 따름이지요. 하면 편히 즐기다 가십시오.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용성우도 자신의 경호원을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그가 사라지기만을 기다린 서재원이 분한 듯 씩씩거리며 염구준을 노려봤다."젠장, 저 양반이 호텔을 매입했을 줄이야! 내가 잘못 계산했어. 너 운 좋은 줄 알아. 다음에 만나면 가만두지 않겠어."아직 화가 덜 풀린 서재원은 연신 욕설을 중얼거리며 진혜린의 손목을 잡아끌었다. 두 사람이 떠나려는 찰나, 염구준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순순히 보내준다고 했던가?" 서재원이 우뚝 멈춰 서며 눈을 희번덕거렸다."뭐? 네가 감히 내 앞을 막겠다고?"염구준은 몹시 어이가 없었다. 멍청한 것도 정도가 있지. 서재원은 아직도 상황 파악
신호음이 3번 울리는가 싶더니 어딘가 언짢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재원 군? 이 시간에 웬일인가?"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던 서재원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삼촌, 별일은 아닙니다만, 그랜드 센트럴 호텔에 일이 좀 있었습니다. 제 수하들이 많이 다쳤고요. 네, 듣기로는 군인이었는데 지금은 퇴역하고 배에서 일한다고 하더라고요. 집안도 별 볼 일 없어요. 주먹질은 좀 하는데 그것만 믿고 설쳐대는 꼴이 어찌나 우습던지. 이곳 청해는 삼촌 관할이잖아요. 그래서 삼촌이 나서 주시면 좋을 것 같아서 연락드렸습니다."청해 군사작전부 수장 곽승환은 현재 신경이 날카롭게 곤두서있는 상태였다.일주일 전, 전신전 전주 염구준이 아내의 병을 고치려 했을 때 빌어먹을 손태진이 글쎄 자신더러 훼방을 놓으라고 하지 않겠는가? 간이 배 밖으로 나와도 유분수지! 손태진은 여태 작전부 감옥에 갇혀 있었다. 일주일 동안 단 두 끼의 식사만 주어졌으며 그것도 쉰내 나는 주먹밥이 전부였다.하마터면 이 일로 주군의 미움을 살 뻔한 그는 일주일 동안 마음고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마침 잘 됐군, 나도 화풀이할 데가 필요했거든."핸드폰을 꽉 움켜쥔 곽승환이 이를 사리물며 말했다."재원 군, 조금만 기다리게. 곧 출발하지. 아마 십 분 정도 걸릴 거야."통화를 마친 서재원이 악랄하게 웃어 보였다. 곽승환이 왜 짜증이 났는지는 몰랐으나 그건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화가 잔뜩 난 곽승환을 상대해야 할 염구준이 벌써 가여워졌다. 이번에는 결코 피해 갈 수 없을 것이다. 곽승환의 실력과 세력, 그 무엇도 염구준이 감당하지 못할 테니. 곽승환을 등에 업은 서재원의 콧대는 하늘을 찔러댔다."염구준! 넌 끝났어, 이 새끼야."그는 염구준을 손가락질하며 잔뜩 비웃음을 흘렸다."홀로 내 부하들을 상대한 실력은 인정해 주지. 하지만 거기까지야. 우리 서씨 집안의 위대함은 너 같은 등신이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네놈이 뒈지는 데 십 분도 안 걸릴 거니까 두고 봐."발악하는 서재원을
“저기요. 뭐 좀…”“아는 척하지 마세요. 차림새를 봐.”말이 끝나지 않았는데 젊은 승무원에게 무시를 당했다.‘작전을 위해서 참자.’현무는 억지로 웃으면서 물었다.“9527호실은 어디로 가면 됩니까?”그들 일행은 일련번호가 찍힌 티켓을 들고 있어 방 한 칸만 찾으면 되었다.“몰라요.”승무원은 눈을 흘기며 으리으리하게 차려 입은 남자에게 달려갔다.“고객님, 천랑성호에 탑승한 것을 환영합니다. 원하는 서비스가 있을까요?”고급진 장소일수록 인간의 본성이 드러났다.그 모습을 지켜본 현무는 열 자리 이상 숫자인 통장 잔고를 승무원에게 보여주고 싶었다.무시당하는 기분이 정말 불쾌했다.“한 사람 한 층씩 찾아.”염구준은 이어폰으로 객실을 찾으라고 명령을 내렸다.이번 작전에서 첫 명령이었다.“네. 알겠습니다.”일행은 작전 명령이라 여기고 빠른 걸음으로 객실을 찾으러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이어폰에서 말소리가 들렸다.“찾았어요. 3층 중간 방입니다.”객실에 도착한 후, 염구준은 일행이 도착하자마자 짧은 회의를 열었다.“이번 작전은 아주 위험해. 내가 반천인 경지 개조 로봇을 봤어. 그러니까 방심하지 말고 불필요한 상황에서 절대 나서지 마. 만약 밖에 나가서 놀고 싶다면 주작을 찾아서 분장한 다음에 나가. 알겠지?”엄숙한 표정으로 짧게 설명하던 염구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이번 여행을 즐기자. 유람선에서 비용은 내가 다 쏜다.”그 말에 다들 눈을 반짝였다.“형님 만세! 벌써 신나요.”세계 유람이라도 다들 비용을 낼 형편은 되었다.하지만 다른 사람이 비용을 낸다면 기분이 달랐다.똑똑!다들 기뻐할 때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음식을 주문하지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는 유람선에서 누가 찾아왔는지 어리둥절했다.염구준이 일어서 문을 열자 낯선 모녀가 밖에 서 있었다.“무슨 일입니까?”아주머니가 퉁명스럽게 말했다.“휴, 당신들 우리 열쇠를 훔치고 우리가 예약한 방에 들어왔는데 무슨 일이라니요?”아주머니의 눈길을 보니 당장이라도
“하하, 이겼다.”얼마나 많은 수를 무르고서야 할아버지는 이겼다고 아이처럼 기뻐하셨다.이렇게 특이한 방식으로 진 적은 없지만 번마다 이길 때면 엄청 좋아하셨다.단지내에서 염구준만 이 할아버지와 장기를 두었다.“대단하세요.”염구준은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올렸다.자신의 분수를 지킬 줄 아는 노인들은 모두 좋은 대우를 받길 바랐다.지잉-전신전에서 연락이 오자 그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어르신,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갈게요.”“얼른 가. 일이 중요하지.”할아버지는 장기판을 보며 기쁨을 만끽했다.염구준은 자료를 보면서 집으로 달려갔다.“국주님, 놈들 행적을 추적했습니다. 지금 남극 빙원에 있어요. 구체적인 위치는 아직 모르겠고 놈들의 수법이 은밀해서 빼앗은 로봇을 모두 여러 갈래로 운반하고 있어요.”남극 빙원은 좋은 장소는 아니었다.기후가 악랄하고 환경이 복잡한 데다 수많은 세력들이 잠복해 있었다.아직까지 통제할 지도자가 나타나지 않은 탓이다.몇 년 전만 해도 그곳의 기후가 매우 낮아 누구도 살지 않았었다.그런데 최근, 과학기술이 발전하고 방한 기술이 지속적으로 발전하여 수많은 조직과 세력들이 그곳에서 발전하기 위해 노력해왔다.하지만 아직까지 치안이 혼란스럽고 주먹이 센 사람이 통치는 바람에 곳곳에 위험이 도사렸다.염구준은 자료를 살펴보고 바로 답장을 보냈다.[정영팀은 신속하게 청해로 온다. 위장을 잘하고 절대 행적이 드러나면 안 된다.]이번 작전에 대해 대략적인 계획을 세운 후, 집에 돌아와 손가을에게 말하고 그날 저녁에 청해 부두로 향했다.장모님인 진숙영에게 은밀히 고수들을 붙여주는 것도 잊지 않았다.신비한 클럽은 인간 세상에서 증발할 것처럼 사라져서 골치가 아팠다.하지만 국정이 급선무인 지금 청목을 먼저 해결해야 했다.염구준이 부두에 도착했을 때 백호, 주작, 현무 그리고 세 명의 전왕이 기다리고 있었다.그들 모두 평상복으로 갈아 입고 큰 가방을 들고 있었다.“주… 염 선생님!”여섯 사람은 염구준에게 다가와 깍듯하
“주작. 천목 시스템을 가동해. 내가 구체적인 좌표를 보내줄 테니까 그 해역의 화물선을 주시해.”“백호. 7인 정예팀을 선발해서 잠시 내 명을 대기하고 있어.”“현무, 한 달 사용할 최첨단 무기를 준비해.”“청룡, 넌 전신전을 지키고 업무를 담당하고 있어.”염구준이 지시를 내릴 때 누구도 농담하지 않고 불평하는 사람도 없었다.“네.”임무를 내린 후, 염구준은 한마디를 남기고 청해로 돌아갔다.“송 가주와 국주가 상의하는 동안 누가 방해를 한다면 바로 죽이러 올 것이다.”염구준의 말에 외부인들은 바로 속셈을 거두었다.이어서 송씨 가문은 절반 주식을 국주에게 담보로 내놓고 보호를 받았다.국주가 내세운 조건은 송씨 가문이 스스로 보호할 능력이 생길 때 다시 주식을 돌려주는 것이었다.중요한 임무를 맡은 송현우는 지금 상황에서 반천인 경지와 싸울 수 있는 유력한 후계자였다.송명호 일가는 더는 송 가주를 방해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족보에서 쫓겨났다.그를 지지했던 세력들은 자발적으로 돈으로 배상하고 평화를 유지했다.송씨 가문의 세력이 대폭 하락하니 이러는 수밖에 없었다.청해로 돌아온 염구준은 손가을이 잘 관리한 덕에 편히 지낼 수 있었다.“구준이 왔어?”그를 제일 먼저 맞이한 사람은 방금 기도를 마친 진숙영이었다.최근 신비한 클럽이 감쪽같이 사라진 바람에 그녀는 갈 곳이 없어 집에만 있었다.“장모님.”염구준이 뭐라고 하기 전에 진숙영은 또 속으로 중얼거리며 기도했다.“아빠.”인기척을 듣고 나온 염희주가 활짝 웃으면서 두 팔을 벌리고 다가갔다.“그래.”‘귀여운 녀석, 어쩜 이리 애교가 많을까. 며칠을 못 봤더니 또 키가 컸네.’염구준은 대답하면서 딸을 뻔쩍 들어올렸다.딸을 보는 그의 눈에서 꿀이 떨어질 것 같았다.“저러다 신선이 되겠어요.”염희주는 진숙영을 힐끔 보면서 염구준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그런 말하면 못 써.”염구준이 바로 말렸다.어른들의 일에 아이가 끼어드는 것과 함부로 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아빠
송씨 가문의 절반 재산은 천문학적인 숫자인데 그것을 단호하게 거절하다니 생신을 축하하러 온 손님들이 당황했다.“제가 어리석었습니다. 부디 염 선생이 말씀해 주시죠.”송 가주는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국주한테 가서 얘기하면 아마 기꺼이 도와줄 겁니다.”염구준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송 가주는 그제야 깨달은 듯 허벅지를 탁 쳤다.솔직히 말해서 염구준도 절반 재산을 갖고 싶었다.하지만 손씨 그룹에 비해 용하에서 더 필요할 것 같아서 거절한 것이다.이 정도 대의는 갖추고 있었다.“가주님, 큰일 났습니다.”두 사람 대화할 때 한 남자가 허겁지겁 달려왔다.“얼른 말해. 이것보다 더 나쁜 상황이 있냐?”송 가주는 현장에 있는 사람들 앞에서 과감하게 말했다.“저희가 해외에 수출한 로봇 화물선이 습격당했어요. 거기에 나무 표식이 있었습니다.”그 사람은 재빨리 다가가 태블릿을 보여줬다.확인하던 송 가주가 두 눈을 부릅떴다.“염 선생. 이거 진짜 큰일 났습니다.”송 가주는 태블릿을 빼앗아 염구준에게 걸어갔다.이번에야말로 진짜 큰일이 벌어졌다.염구준은 힐끗 쳐다보려 했으나 태블릿에 시선을 고정하고 말았다.“젠장. 이건 노골적으로 도발하는 겁니다.”옆 사람들은 방금 싸울 때도 이렇게 화내지 않았는데 반천인 고수가 화난 모습을 보니 등골이 오싹했다.태블릿에 뜬 메시지에 몇 글자과 사진 2장만 보였다.내용은 이랬다.[먼저 송씨 가문을 도륙하고 용하국을 주살한다.]사진 한 장에 검정색 나뭇잎이 찍혀 있고 다른 한 장에는 청색 나뭇잎이 찍혀 있었다.그것은 분명히 떠돌이 7인조에서 흑풍과 청목을 가리키고, 두 사람이 송씨 가문과 용하를 상대하겠다는 뜻이었다.용하국에서 송씨 가문을 건드리지 않는다면 염구준은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용하를 건드린다면 상의할 여지없이 싸워야 했다.“염 선생,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까요?”송 가주는 마땅한 대책이 떠오르지 않았다.지금 폐인이 되어서 아무리 훌륭한 계략을 짜도 실력이 받쳐주지 않았다.
“이제 좀 재미있네.”그는 두 손으로 검을 잡고 공격할 태세를 잡았다.송현우의 검의가 얼마나 강한지 엄청 기대되었다.승부는 금방 갈리고 구경군들은 두 사람을 뚫어지게 쳐다봤다.필경 마지막 공격으로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되기 때문이다.“매화검법. 쇄산!”먼저 기운을 축적한 염구준이 검을 들고 공격했다.송현우의 검의는 역시 평범하지 않았다.게다가 고씨 선조들이 남긴 시구를 본 이후로 염구준이 초식을 조금 바꾸었는데도 무궁무진한 힘을 발산했다.“죽어라!”그때 맞은편에서 송명호도 패왕창을 들고 공격했다.염구준의 기운을 감지하고 본인이 졌다는 것을 알아차렸지만 기적이 일어나길 기도하면서 공격한 것이다.예를 들면 갑자기 염구준이 심장병이 발작한다든가.쿵!칼끝과 창끝이 부딪치면서 어마어마한 에너지가 폭발했다.강력한 위력에 송명호는 저항하지 못하고 패왕창을 든 채로 뒤로 튕겼다.한마디로 말해서 한 초식도 감당해지 못하는 패배자였다.싸움이 드디어 끝났다.이 결과는 모두 예상하지 못했다.조금은 어느 정도 싸우다 체력이 소모되었을 때 주변에서 습격하려고 했는데 이젠 망상이 되어버렸다.염구준은 검과 주변의 검기를 거두었다.“4할 전력이 남았어요. 도전할 분 계신가요?”그는 주변을 둘러보며 패기 있게 말했다.“…”송명호 일가는 도전해도 볼품없이 패배할 텐데, 도전은 개뿔이라고 속으로 욕했다.“투항하겠습니다.”그때 누가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었다.한 사람이 시작하자 나머지 사람들도 잇달아 투항했다.우두머리인 송명호가 죽은 이상 계속 대항할 이유가 없었다.투항하면 적어도 목숨은 건질 수 있지 않은가.상황이 전환되어 송 가주 일가가 승리했다.“할아버지, 아버지.”송청연이 외치며 앞으로 달려갔다.“난 괜찮다.”송 가주는 부축임을 받으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역전승을 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염구준의 앞에 다가간 그는 무릎을 꿇었다.“염 선생, 살려줘서 고맙습니다.”“염 선생, 감사합니다.”송 가주 일가 모두 무릎을 꿇고
염구준은 손에 든 검을 몇 바퀴 돌리고 과감하게 맞섰다.공격하자마자 상황은 한쪽으로 치우쳐서 쉽게 상대방을 제압할 수 있었다.다들 이것이 6할 전력이라는 것이 믿어지지 않았다.‘버티자. 저놈의 체력을 소모시켜야 해.’송명호는 공격을 피하며 가까스로 버텼다.독연기로 염구준의 기운을 전부 소모시킨 후에 본격적으로 공격할 생각이었다.하지만 한참이나 싸웠는데도 공격할 기회가 오지 않았다.염구준은 지치지도 않는지 싸울수록 힘이 뻗쳤다.“거기서 뭐해? 송청연을 잡아와!”방금까지 비열한 수법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그런데 상황이 불리해지니 어쩔 수 없이 송청연을 잡아서 염구준을 협박해야 했다.“빨리 잡아!”송대용이 몇몇 사람들을 이끌고 송청연에게 돌진했다.그중에 전신 경지 고수도 있어서 십중팔구 잡을 수 있다고 자신했다.수상한 낌새를 느낀 염구준이 살기 가득한 눈으로 뒤돌아보았다.그가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틈을 타 송명호가 패왕창으로 머리를 내리쳤다.“나랑 싸우면서 한눈을 팔다니 죽고 싶어?”염구준이 왼손으로 창대를 꽉 잡더니 오른 손에 든 검으로 검기 광풍을 일으켜 송대용에게 발사했다.“위험해. 도망쳐!”광풍에서 치명적인 기운을 느낀 송명호가 포효했지만 이미 늦었다.검기가 송대용 일행에게 몰아쳐 가더니 무자비하게 살갗을 찢어버렸다.“아아아악!”고통스럽게 울부짖는 소리가 등골이 오싹해질 지경이었다.검기 광풍은 에너지가 소모된 후 바로 사라졌다.송대용 일행은 죽고 전신 경지 고수만 바닥에 쓰러져 경련을 일으켰다.저러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죽을 것 같았다.“송청연 남매를 납치하면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죽여버릴 것이다.”염구준의 말이 송씨 저택에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송명호 측근에 서 있던 사람들은 식겁해서 뒤로 물러섰다.방금 검기 광풍이 너무 강렬했기 때문이다.“염구준! 내 유일한 핏줄인 손자를 죽이다니 네 목숨으로 갚아라.”이성을 잃은 송명호는 대노하며 소리질렀다.“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당신 손자를 죽이지
“6할 전력이야. 기운을 많이 쓸수록 빨리 소진된다!”송명호는 또 이길 확률이 높아졌다고 기뻐했다.이 독은 잠시 전력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치명상까지 줄 수 있다.“뭘 그렇게 좋아하세요? 당신을 상대하는 데 6할 전력이면 충분하거든요.”염구준은 본원 검의를 시험하려고 나섰는데 상대방 실력이 약해서 흥이 나지 않았다.그가 얕잡아 보자 송명호는 기분이 나빴지만 그래도 반천인 경지에 도달했다고 자부했다.“마지막으로 말할게. 청연을 남길 거야 아님 네 목숨을 남길 거냐?”승산이 있다고 생각하자 송명호는 왠지 자신감이 생겼다.염구준은 대꾸하지도 않고 하품을 했다.“하음, 싸우고 싶으면 빨리 시작해요. 꾸물거리지 말고.”솔직이 두 사람은 서로 할 이야기는 없었다. 송명호가 일방적으로 염구준이 물러설 거라고 착각했을 뿐이다.“그럼 죽어!”송명호는 창을 들고 염구준에게 무섭게 돌진했다.모두 반천인 경지에 도달했고 상대방이 6할 전력만 남아 있다면 패배할 이유가 없다고 자신했다.“검래!”염구준이 손을 뻗자 강력한 흡인력으로 송현우의 등에 있는 검을 뽑았다.검이 손에 잡힌 순간 온화한 기운이 온몸을 채우며 가벼운 소리를 냈다.‘좋은 검이군.’그래도 구자검에 비하면 조금 부족했다.웡웡.그때 검신이 흔들거리며 그에게 잡히지 않겠다고 몸부림을 쳤다.“흥.”염구준은 콧방귀를 끼며 순식간에 검의로 제압해버렸다.검에 대한 깨달음이 풍부해서 아무리 오만한 검이라도 모두 제압할 자신이 있었다.그 모습을 본 송명호가 기회를 잡은 듯 비아냥거렸다.“하하하. 돌을 들어서 자기 발등을 찧는 격이군.”말하는 동시에 창을 들고 염구준의 목을 찌르려고 했다.일격에 싸움을 끝내고 싶었다.촤아악!곧 창이 닿을 무렵, 염구준이 검을 휘두르며 막았다.검신을 감싼 검기가 창을 두 동강으로 잘라버리고 신속하게 송명호를 공격했다.‘검의다.’엄청난 기운을 감지한 송명호는 창을 버리고 뒤로 재빨리 물러났다.자고로 검이라면 모두 검의를 깨달을 수 있지만 이
송청연은 두 눈을 꼭 감고 애써 진정했다.외부 요소에 영향받지 않고 이해관계를 따졌다.한참을 생각하고 깨달은 그녀는 눈을 번쩍 떴다.단호한 눈빛에서 상사가 갖추어야 할 모습이 어느 정도 보였다.“어르신들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있는 한 송씨 가문은 망하지 않을 겁니다.”그녀는 말을 마치고 큰절을 세 번했다.그 모습을 본 송 가주는 크게 기뻐하며 쉰 목소리로 말했다.“하하하. 내게 후계자가 생겼으니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송청연의 결단에 적지 않은 노인들이 할 말을 잃었다.그녀의 욕심은 그들보다 약하지 않기 때문이다.몇 년만 더 성장하면 상업계의 여걸이 될 것이다.“이젠 갑시다.”송청연은 정신을 잃은 송현우를 업고 돌아섰다.염구준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하지 않았다.오히려 무능한 자신이 상황을 바꿀 수 없다는 것에 화났다.“그럽시다.”염구준은 대답하며 입구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그곳에서 막고 있던 사람들은 무서운 기운을 감지하고 뿔뿔이 흩어졌다.“멈춰, 청연은 남거라!”뒤에서 송명호의 싸늘한 목소리가 들리자 염구준은 홱 돌아서서 경멸하듯 노려봤다.“싫다면 어쩌실 건데요?”이제 반천인 경지에 도달한 풋내기에 원소의 힘도 사용할 줄 모르는 실력이라 신경 쓸 가치도 없었다.송명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송 가주를 발로 차버렸다.“너도 독연기를 많이 마셔서 기운이 많이 소모됐을 거야. 7할 전력밖에 남지 않았을 텐데 나랑 싸워서 이길 자신이 있어? 눈치 있다면 사람을 남기고 넌 떠나라.”이해 관계를 따지는 것 같지만 실은 협박하고 있었다.“안목은 있네요. 독연기 덕에 확실히 7할 투력밖에 사용할 수 없어요.”염구준이 솔직하게 인정했다.그 말에 주변에서 깜짝 놀라 속으로 어리석다고 나무랐다.지금 상황에서 자신의 실력을 감추고 겁을 먹은 척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 텐데 말이다.“우매한 놈. 목숨을 내놓거라!”양씨 가문의 노복들은 그가 7할 투력밖에 남지 않았다는 말에 더는 가만있지 않았다.반천인 경지와 조금 차이가
싸움에 외부인이 개입하여 송 가주만 가까스로 버틸 뿐, 다른 사람은 이미 죽거나 체포되었다.가족 내전이 막바지에 이르렀다.“이제 다 끝난 거 같은데 그만 패배를 인정하시지?”송명호는 이미 승자가 된 것처럼 의기양양한 태도로 말했다.“같이 죽자!”송 가주가 고함을 지르며 미친듯이 그에게 달려들었다.그와 함께 자폭할 생각이었다.“미친 영감탱이!”당황한 송명호는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반천인 고수의 자폭은 위력이 어마어마해서 감히 맞서지 못했다.‘아니야.’바로 그때, 구경꾼들은 송 가주의 기운이 빠르게 소진되는 것을 감지했다.몇 호흡만에 단진 무성 경지까지 하락한 것이다.수련 후 주화입마에 빠진 후유증이 이제야 나타났다.“하하하하. 하늘이 날 도왔군. 영감 몸이 정말 고장이 났나 봐.”송명호는 다시 미치광이처럼 웃으며 한 주먹으로 송 가주의 단전을 부숴버렸다.실력 차이가 너무 커서 막을 여력도 없었다.단전이 망가지면 기운이 밖으로 빠져서 자폭할 수도 없다.송 가주는 그렇게 폐인이 되었다.가주 쟁탈전에서 송명호가 드디어 승리를 거두었다.“가주님, 축하드립니다.”송대용이 제일 먼저 무릎을 꿇고 인사를 올렸다.예전부터 자신의 친할아버지가 가주가 된 모습을 상상했었다.전에 송대강에게 억눌리고 또 송청연에게 억눌려서 마음에 깊은 원한이 생긴 것이다.“가주님 축하합니다.”“송 가주님, 축하드립니다.”송명호 측 일가, 그를 따르던 세력들이 나서서 인사를 올렸다.본인도 가주라는 칭호가 마음에 드는지 흐뭇하게 웃었다.“하하하. 이제 승복해.”그는 발로 송 가주의 가슴을 밟고 질문했다.“퉷!”송 가주는 침을 뱉고는 염구준에게 비참한 미소를 보냈다.“염 선생. 내 손자들을 잘 부탁하네.”염구준이 아무런 감정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부탁을 받았으니 세 사람 안전을 끝까지 지키겠습니다.”“할아버지!”“명호 할아버지, 우리 할아버지를 제발 살려주세요.”맞설 능력이 없는 송청연과 송대강은 눈물을 흘리면서 애원했다.실력 차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