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씨 집안에서 쫓겨난 뒤 그녀의 커리어와 꿈은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오늘로써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손가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계단 위에 서 있는 용성우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정말 감사....""아이고, 이 늙은이를 부축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아우님. 이젠 나이가 들어 계단도 혼자 못 내려갈 정도라니까."용성우는 손태석의 팔뚝을 꽉 쥐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손가을이 인사하는 걸 당장 막아야 했다. 이들은 염구준의 정체를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주군의 부인께서 제게 허리를 숙인다? 첫인사는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목숨이 아홉 개 달린 것도 아닌데!아버지가 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훈훈한 장면임이 틀림없으나 손중천에게는 아니었다.용성우와 손태석 뒤를 따라가고 있던 손중천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빌어먹을 불효막심한 자식 같으니라고.진혜린이 꼬드겨서 손태석 일가를 쫓아내고 손가을을 해고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손중천이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손씨 집안 가주로서 내린 명령은 감히 반박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임금의 교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셋째 아들인 손태석이 명을 거역하고 사사로이 손가을을 회사에 불러들였다. 용성우와 손영 그룹 임원들 앞에서 개망신당한 꼴이었다. 그의 위엄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게다가 그들의 데릴사위는 어떠한가, 쓰레기 같은 염구준.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저놈 탓이었다. 칠순 잔치에 보란듯이 관을 들이밀며 하마터면 자신을 고혈압으로 쓰러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흐흑, 손가을이 회사로 복귀한다고?"한편, 계단 아래에 쓰러져있던 진혜린이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전혀 제정신이 아닌 몰골이었다.회사로 복귀한 것도
"염구준!"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진혜린이 사납게 자리를 박차며 달려갔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한때는 손가을 소유였던 빨간 포르쉐에 올라탄 그녀가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시동을 걸었다."재원 오빠가 절대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어디 두고봐! 3일 뒤면 저 계집애 생일이라지. 그날 어디 한번 결판을 내보자고. 넌 뒈졌어."실컷 소리 지른 그녀가 가속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댔다. 광택이 사라진 붉은 포르쉐가 경악이 섞인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의 손을 맞잡은 염구준이 장인 장모를 맞이했다."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저희도 식사하러 가야죠. 타십시오."손태석과 진숙영은 퍽 불만에 차 있었다. 미처 용성우를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를 나누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뻔히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모른 척이다. 정말이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오른 손태석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호통치려 했다."태석 아우!"손태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겁에 잔뜩 질린 용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칭찬을 늘어놓았다."오, 이분이 바로 자네의 사위인가! 듣던 대로 아주 젊고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군! 가족끼리 보내는 단란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지, 그러니 내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자리는 다음에 만들면 되지! 살펴 가시게,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네. 다음에 보세!"말을 마친 그가 얼른 부하들을 데리고 자신의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문을 걸어 잠근 용성우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식은땀을 닦아냈다.하늘이시여!주군의 정체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기백은 이 도시 최고 갑부인 그조차도 덜덜 떨게 만들었다.염구준은 진정한 상위 포식자였다.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는 범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용씨
호텔 앞에 파티 초대 문구가 쓰인 금색 간판이 우뚝 솟았다. '생일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를 장착하고 어린 주인공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시는 모든 분께 본 호텔 VIP 전용 패키지 무료 제공''1인당 1회 한정, 순금 생일 배지 증정''생일 파티 주인공-- 염희주'이 소식은 마치 들판에 번진 불길처럼 전체 도시에 가득 퍼졌다.거리의 옷 가게, 백화점 명품 숍, 웨딩드레스 숍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색감의 연회복은 전부 매진되었다.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그랜트 센트럴 호텔에 한가득 몰려들었다. 전체 도시가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에 홀린 것만 같았다......."재원 오빠-"교외의 화려한 별장에서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진혜린이 서재원의 가슴에 살며시 기댔다. "오늘이 바로 그 계집애의 생일이잖아. 우리도 출발해야 하지 않겠어?"진혜린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던 서재원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도도한 진혜린은 오랫동안 그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3일 전 적극적으로 그의 품 안에 뛰어들며 제 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손중천 그 양반도 참 어리석어. 너를 손씨 집안에서 쫓아내다니 말이야."옷을 대충 걸쳐 입은 서재원이 싸늘하게 말했다."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넌 내 여자니까. 게다가 뭐, 우리더러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염구준 그 자식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창가로 다가간 그가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별장 앞마당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120여 명의 경호원들이 앞마당에 빼곡히 버티고 서 있었다. 검정 양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춤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전부 무기를 소지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서른 대의 아우디 차량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살벌한 기색으로 보아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싶었다."우리 오빠는 너무 대단한 것 같아!"마찬가지로 옷을 갖춰 입은 진혜린이
"염 서방..."호텔 1층 파티홀, 태연자약한 염구준을 바라보며 손태석과 진숙영이 복잡한 심경을 토로하듯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의 사위는 딸아이에게 매우 비싼 차를 사주었다. 그가 딸아이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분명했다. 게다가 손녀에게 성대한 생일 파티를 열어줄 거라는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그러나 오늘 같은 장면일 거라곤 전혀 예상치 못했다. 그들은 눈앞이 아득해졌다. 온 도시의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든 것만 같았다. 환호성이 하늘을 뒤흔들었다.호텔 밖은 그야말로 흥분의 도가니였다."희주 아가씨, 생일 축하해요!""희주 양의 4살 생일을 축하합니다!""우리 똑똑하고 귀여운 희주 아가씨, 이대로 건강하게만 자라주세요!"사실 그들은 염희주를 본 적도 없었다."엄마, 아빠..."제 부모님 곁에서 마찬가지로 혼란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손가을이었다. 그녀는 염구준의 잘생긴 옆모습을 흘깃 쳐다보았다. 심연을 담은 눈동자는 보석처럼 빛나고 있었다. 최근 들어 늘 느끼는 감정이지만, 자기 남편은 정말이지 수수께끼 같은 사람이었다. 염구준은 대체 무슨 수로 이 도시의 유일한 6성급 호텔 전체를 대여했단 말인가. 여기에 지불한 비용은 차마 상상이 가지 않았다. 호텔의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는 또 어떻고? 심지어 그녀는 호텔 셰프가 언제부터 요리를 준비했는조차 알지 못했다.다만 아이의 생일 파티를 위해 염구준이 온갖 정성을 쏟았다고 예측할 뿐이었다. 분명 전우들에게 수없이 도움을 청했을 것이다. 이토록 화려한 파티를 위해 그들에게 수많은 신세를 졌을 테지."이렇게 굉장한 건 처음 보네만... 지나치게 사치스럽지 않아?"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리며 가까스로 입을 연 손태석은 이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알게 뭔가.오늘 새하얀 공주님 드레스를 입은 하나밖에 없는 외손녀 염희주는 파티홀에 특별히 준비된 놀이터에서 신나게 뛰어놀고 있었다. 유치원 친구들, 오늘 초대받은 학부모와 선생님들이 아이를 둘러싸고 있었다.아이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토록
살벌한 무기를 꺼내든 경호원들이 파티홀을 질주했다. 의자를 들거나 칼을 휘두르며 몸싸움을 벌일 준비를 마쳤다."꺄악!"홀 안에 끔찍한 비명이 울려 퍼졌다. 멀지 않은 곳에서 희주와 어울리던 유치원 친구들, 학부모와 선생님들도 혼비백산하며 온몸으로 아이들을 보호하기 시작했다. 창백한 얼굴들이 염구준을 간절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염구준의 초대를 받고 이 자리에 모인 이들의 머릿속에 무료 VIP 패키지와 순금 배지가 둥둥 떠다녔다. 가벼운 마음으로 참여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이야!아이들을 꽉 안은 그들은 소름 끼치는 연장을 휘두르며 파티홀을 누비는 경호원들을 바라보며 공포에 떨어야 했다. 손가을 일가족의 낯빛도 창백해졌다. 그들도 조건반사처럼 염구준에게 눈길을 돌렸다."두려워할 것 없습니다."덤덤한 눈빛으로 사람들을 안심시킨 염구준이 서재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미친 듯이 발악하는 버러지를 바라보듯 무심한 표정이었다. '겨우 120여 명을 대동하다니. 서씨 집안도 별 볼 일 없군.'"개 같은 눈빛 집어치워. 어디서 허세야?"무심한 눈빛이 서재원의 심기를 단단히 거스른 듯했다. 울컥 화가 치민 서재원이 헛웃음을 터뜨렸다."그깟 군바리 질 몇 년 했다고 네가 뭐라도 된 줄 알아? 꼴에 열 명은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거 같지? 과연 백 명은 어떨까?" "일전에 감히 이 몸을 걷어찼겠다? 손중천 그 양반 칠순 잔치 때 내게 지껄인 막말은 어떻고! 오늘 어디 한번 제대로 결판을 내보자고. 네놈이 언제까지 날뛸 수 있는지 두고 보겠어."염구준이 비웃음을 담아 그를 쳐다보았다.원래 벌레들은 자기가 얼마나 멍청한지 모르는 법이었다.서재원은 제가 맞닥뜨린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몰랐다. 전신전 전주라는 칭호가 담고 있는 의미가 얼마나 대단한지, 이는 그의 상상을 훨씬 웃도는 것이었다."아직도 웃음이 나와?"여전히 태연한 염구준을 바라보는 서재원에게 은은한 불길함이 엄습했다. 든든한 아군으로 둘러싸인 주위를 쓱 훑어본 그는 그제야
퍽- 둔탁한 소음이 파티홀에 울려 퍼졌다.염구준의 뒤쪽에 서 있던 손가을 일가족과 멀리 떨어져 있던 아이들, 심지어 그에게 이를 갈고 있던 서재원과 진혜린조차도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이 염구준의 행동을 멀뚱멀뚱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그에게 달려들던 서씨 집안 경호원들은 아니었다. 그들의 귓가에 우레와 같은 폭음이 울려 퍼졌다. 한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제때 반응할 시간도 부족했다.단 한 번의 공격만으로 그들의 고막이 전부 나가버렸다. 눈앞이 번쩍거리며 어질어질하더니 귀에서 핏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했다.그들은 저마다 끔찍한 비명을 질러댔다. 언제 무기를 들고 있었냐는 듯 전부 귀를 틀어막고 바닥을 구르는 모습은 가히 아비규환이라고 할 수 있었다.그들은 겨우 절반 남짓 돌진했을 뿐이었다. 염구준과 그들 사이의 거리는 아직 꽤 남아 있었다. 그런데도 손쉽게 제압당해 반항할 여력조차 남지 않게 된 것이다. 경호원 중 가장 실력이 뛰어난 우두머리조차 속수무책으로 당하고만 있었다. 염구준의 실력은 모든 이들의 상상을 뛰어넘었다."말, 말도 안 돼!"서재원과 진혜린은 손끝이 덜덜 떨려왔다. 그들의 낯빛이 창백하게 질리기 시작했다.이럴 리가 없다!대체 저 남자의 정체가 뭐지? 방금 선보인 저 끔찍한 실력은 뭐란 말인가? 5년 사이 어떤 무엇을 겪었기에 이토록 두려운 기술을 연마했지?모두 특별 훈련을 받은 120여 명의 전문 경호원들이었다. 그런데도 그의 일격에 손쉽게 나가떨어지다니. 눈앞에서 직접 보고도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실력이 하나같이 형편없군."손목을 툭툭 턴 염구준이 담담하게 말했다."내 딸 앞에 무릎 꿇고 빌라던 내 말은 기억하나?"이를 사리문 서재원이 필사적으로 두려움을 삼키며 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틀어쥐었다. 손톱이 아프게 손바닥의 살을 파고들었다.자신더러 무릎을 꿇으라고? 어림도 없지!"이게 끝이라고 생각해?"그의 목소리는 덜덜 떨렸지만 자신감이 넘쳤다. 그는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여기가 어
번쩍거리는 외제차 3대가 요란한 엔진 소리를 내며 그랜드 센트럴 호텔로 향했다.알렉스와 통화를 끝낸 서재원은 한껏 거들먹거리며 염구준을 약 올렸다."등신이 발악해 봤자 등신이지. 싸움 좀 한다고 네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인 줄 알아? 여기 오너가 너를 쫓아내 버리면 네까짓 게 어쩔 건데? 감히 나와 맞서겠다고? 넌 아직 멀었어!"옆에서 안절부절못하던 진혜린은 그제야 한시름 놓은 눈치였다.염구준의 주먹 한 방에 서씨 집안의 경호원들이 줄줄이 나가떨어지는 장면은 그녀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호텔 오너가 파티홀 대여를 거절하면 염구준도 별다른 수가 없을 테지. 알렉스의 호텔이었으니 그에게도 거절할 권리는 있었다. 기껏해야 위약금이나 대충 던져주면 그만이었다. 그럼에도 염구준의 기를 꺾어놓기엔 충분했다."구준 씨..."하얗게 질린 손가을이 불안한 목소리로 염구준을 불렀다.이를 어쩌면 좋지? 어렵게 대여했을 텐데... 더구나 생일 파티도 곧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했다. 이런 때에 호텔 오너가 직접 그들을 쫓아내면 어찌한단 말인가?손가을이 입술을 깨물며 간절하게 말했다."우리도 양보하는 게 어때? 사과하라는 말... 취소하자. 더 이상 소란 피우지 말고 조용히 떠나라고 하면 저 사람들도 따를 거야. 우리 희주의 행복이 제일 중요하잖아. 저 사람들 때문에 아이의 소중한 추억이 더럽혀지는 건 용납할 수 없어!"옅은 미소를 지으며 염구준이 입을 열려는 찰나, 진혜린이 잔뜩 비꼬는 목소리로 말했다."염구준, 우리가 파티를 망칠까 봐 이제야 좀 두려운가 보지? 근데 늦었어. 저 망할 계집애의 생일 파티를 철저하게 망가뜨리는 건 물론이고 네 놈 주제 파악도 제대로 시켜주고야 말겠어."염구준이 눈을 가늘게 떴다.사실 그는 방금 주먹을 내질렀던 때까지만 해도 크게 화가 나지 않았다. 버러지가 발악하는 걸 보고 진심으로 분노할 사람은 없으니까. 그러나 진혜린의 '망할 계집애'라는 발언이 그의 심기를 단단히 건드렸다. 진혜린은 잘못 놀린 혀에 대한 대가를
잠시 망설이던 알렉스가 낯빛을 굳히며 염구준에게 다가갔다. 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당신이 염구준이야? 오늘 파티도 당신이 준비했다지?"염구준이 흥미로운 눈길을 보냈다."그렇다면? 쫓아낼 텐가?"알렉스가 두 손을 허리에 얹으며 그를 노려봤다."물론이지. 내 호텔에서 사람이 다쳤다는데, 내가 나서지 않으면 누가 나서? 내 말 한마디면 보안 요원들이 전부 움직일 거야. 그뿐인가, 직원들, 매니저, 룸메이드까지... 8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당신이 다 감당할 수나 있겠어? 당신 같은 별 볼 일 없는 인간들이야 안 봐도 뻔하지."눈썹을 치켜올린 염구준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허세가 아주 볼만했다."웃어?"여유로운 그 모습에 진혜린은 속에서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그녀가 짓씹듯이 내뱉었다."알렉스, 당장 쫓아내지 않고 뭐해! 가만, 쫓아낼 게 아니라 잔뜩 두들겨 패서 기어나가게 만들어. 특히 염구준 저 새끼는 그냥 때려죽여 버리라고!"서재원도 거들었다."염구준, 너 싸움 잘하잖아. 어디 다시 한번 보여줘 봐! 8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어떻게 상대할지 벌써 기대되는걸."그러나 염구준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웃을 듯 말 듯 한 표정으로 알렉스를 바라보며 장난스러운 어조로 반문했다."알렉스, 정말 이 호텔 사람들이 당신 명령대로 움직일 거라고 생각하나?"흠칫한 알렉스가 잔뜩 허세를 부렸다."내 호텔이니 당연히 내 말에 따라야지! 한 번만 더 말대꾸하면, 당장 맞아 죽고 싶은 걸로 간주하겠어."염구준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갔다. 손을 들어 올린 그가 천천히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작은 박수 소리는 이내 넓은 홀에 집어삼켜졌다. 그러나 이때, 탁탁탁, 느리지도 서두르지도 않는 발소리가 염구준의 박수 소리에 맞춰 점점 가까워졌다. 건장한 경호원을 대동한 이가 웃음 띤 얼굴로 홀의 2층 계단에서 내려왔다.그자를 발견한 알렉스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다. 옆에서 지켜보던 진혜린과 서재원도 당황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이 도시의 갑부이자 용씨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
“고객님, 안목이 있으시네. 우리 가게에서 성능이 최고로 좋은 놈이라 1억만 주세요.”사장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었다.‘돈에 환장했나.’염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장이 계속 설명했다.“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운비만 해도 꽤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 물건은 이 바닥에서 제일 싼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염구준은 개떡 같은 이유를 듣지 않고 스노우모빌에 올라타 연료 탱크를 점검했다.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이체할게요.”휘발유는 그래도 얼지 않는 것으로 사용했다.“네.”거래가 성사되자 사장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은행 계좌를 알려줬다.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은 장사를 접어도 되었다.염구준은 추가로 휘발유 두 통을 샀다.“고객님, 어디 멀리 가십니까?”사장은 염구준이 산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휘발유 두 통에 연료 탱크에 있는 휘발유까지 하면 수백 킬로는 족히 달릴 수 있다.“여행하러 왔으니 멀리는 못 가고 주변만 돌아보려고요.”염구준은 그럴싸하게 대답했다.사장의 손등에 있는 나뭇잎 문신을 보고 이미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남극 빙원에서 청목 조직의 세력은 각 업계로 뻗은 것 같았다.“그렇군요.”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때 이어폰에서 주작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두 3시 방향 설산 뒤에서 미행자들이 공격할 것 같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잡것들이 고새를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부릉부릉!염구준은 스노우모빌 시동을 걸고 주작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부두를 나서며 그가 주작에게 지시를 내렸다.“한 명 정도는 살려둬, 물어볼 게 있어.”남은 일행도 스노우모빌을 사고 각자 출발했다.부두 근처에는 워낙 스노우모밀을 대여하는 유람객들이 많아서 이상한 티가 나지 않았다.설산 반대편에서 주작과 설웅은 각자 스노우모빌을 타고 천천히 달렸다.그때 뒤에서 모터가 몇 대 따라오
“알았어. 함께 청목을 처단하자.”“작전에 참여한 걸 환영해. 그럼 너와 청목 사이의 원한과 그놈의 행방을 말해 봐.”염구준이 이어폰을 하나 건넸다.이번 작전에서 조력자 한 명이 늘었다.설웅은 유골을 품에 안고 가족들의 사연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우리 설씨 가문은 적을 피하려고 남극 빙원에 도피했어. 그곳에서 일찍 정착한 편이었어. 빙원에서 생활은 무료했지만 가족들은 서로 아끼고 보살펴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청목이 나타난 거야.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르지 않자 바로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반항하다가 죽고 나머지 가족과 노비들은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했어.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설웅은 서러움에 북받쳐 마지막에 고함을 질렀다.“청목의 전력과 부하들의 실력, 그리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설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 아버지는 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지만 한 주먹도 받아내지 못했어.”반천인 경지는 전신 경지 고수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신 경지는 그럴 수 없다.“됐어. 쉬고 있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염구준은 본인들 객실로 돌아가 짧게 회의를 열었다.지금 흑풍이 청목과 손을 잡아 반천인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되어서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그동안 염구준이 옥패의 무술비법을 베껴서 전신전의 부하들에게 보여준 덕에 전체적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백호, 주작, 현무는 전신지상 경지에 도달하고 나머지 전왕들은 전신 경지에 도달해 반천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이어서 며칠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유람선을 내릴 때 설웅은 주작과 한 팀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일행은 신분을 감추려고 캐리어를 든 유람객으로 분장했다.주작은 여자라 염구준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일부러 안배한 것이다.“존경하는 유람객들 주의하십시오. 남극 빙원에 도착했으니 여기서 이틀 정착하겠습니다. 이곳의 치안이 복잡하여 가이드가 없거나 강력한 실력이
“깨어났네.”그때 청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방금 그를 구할 때 반항할까 봐 염구준이 손으로 기절시켰다.“윽!”청년은 몸을 비틀며 일어서더니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떴다.“당신들 뭐야?”정신이 들자마자 일행을 본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계했다.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널 구한 사람이다.”염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왜 나를 구했어?”“난 청목의 적이니까. 아까 보니까 너도 청목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그런 당신은 무슨 원한이 있지?”그 말에 염구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질문이 끊기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알았어. 묻지 않을게.”청년은 흠칫 놀랐다.그가 묻지 않으니 이번에 염구준이 질문했다.“이름이 뭐야?”“설웅이야. 남극 빙원 설씨 가문의 소주다.”설웅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하지만 염구준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난 청목을 죽이려고 남극에 가는 중이야.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만약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얘기를 해도 의미가 없었다.“그건…”설웅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하게 말해서 꿈에서도 청목을 죽이고 싶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염구준의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풍이라 여겼다.“참, 아저씨는 어디 있어?”설웅이 흥분하며 물었다.사람은 죽었지만 여태 그를 돌보았으니 제사라도 치러주고 싶었다.“책상 위 함에 있어. 내가 이미 화장하고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어.”염구준이 대답했다.사람도 구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마워. 이 은혜는 죽지 않는 한 꼭 갚을게.”설웅은 유골함을 끌어안고 슬픈 표정으로 객실에서 나갔다.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더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이 문을 나서면 더는 널 도와주지 않겠다. 너도 곧 죽음을 당하겠지.”염구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매니저는 찍 소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죽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청년이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저주할 거야. 청목 존주도 저주할 것이다.”청목 존주의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염구준은 가슴이 벌렁거리고 뇌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친구의 친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적의 적은 또 말이 달랐다.염구준 일행은 남극 빙원에 있는 청목의 행적을 모르고 있으니 안내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그가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시간 됐다. 죽어!”우두머리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바로 그때 모든 전등이 꺼졌다.갑자기 어두워지자 홀에 비명이 쏟아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도망쳐! 살인이야!”누가 고함을 지르자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아아악!”여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피바다에 쓰러졌다.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몰랐다.옆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염구준 일행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홀에서 나왔다.계획은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백호는 어깨에 청년을 메고 도망쳤다.“CCTV를 피해서 객실로 돌아가자.”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구한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야 했다.아니면 저들이 쫓아오는 날에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이다.“네.”백호는 혹시나 들통날까 봐 커다란 캐리어를 찾아 젊은이를 집어넣었다.객실에 돌아온 후, 염구준은 잠든 청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 녀석이 있으면 남극 빙원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