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9화

작가: 잔영
그러나 용성우는 두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손태석의 손을 맞잡더니 이번에는 진숙영과도 악수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손 선생님, 사모님, 두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께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번 협상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두 분을 모셔야 하는 것을... 혹 우리 직원들이 두 분을 홀대한 건 아니겠지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부디 두 분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가져오게나!"

재빨리 다가간 경호원이 정교한 순금 카드를 용성우 앞에 공손하게 내밀었다.

"이건 저희가 특별 출시한 VVIP 카드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지요."

용성우는 손태석과 진숙영 앞에 조심스럽게 순금 카드를 내밀었다.

"이 카드를 소지한다면 우리 용씨 가문 휘하의 모든 장소를 전액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주시지요!"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가 손태석과 진숙영 부부에게 이다지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심지어 이건 공손함을 넘어서 마치 비위를 맞추는 것 같지 않은가? 대체 왜?

두 사람은 손씨 가문에서 쫓겨난 몸이었다. 기업 내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고 있기도 했다. 복지나 상여금은 차치하고 툭하면 기본급도 깎이는 처지였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를 제공받는 셈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대단하신 용성우가 두 사람을 예우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VVIP 순금 카드를 내민 것이다. 게다가 손씨 어르신과 손 부사장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혹시 카드의 주인이 뒤바뀐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손태석은 차마 용성우가 내민 귀한 선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주님, 어찌 저희에게 이런 귀한 걸 내어주시는 겁니까. 이것 참...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회사 규정상 고객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라면, 먼저 계약서부터 작성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바로 이해한 용성우는 카드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얼른 VVIP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그가 다정하게 손태석의 팔을 잡았다. 손태석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지만 마치 친우를 만난 듯이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지요! 계약 확정을 알리려고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투자금은 5조면 되겠습니까? 부족하다면 더 늘리겠습니다. 우리 아우님 부탁이라면 제가 힘닿는 대로 도울 것입니다!"

용성우의 '아우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

손중천, 손혜린을 비롯한 이들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뭐 이런 이상한 전개가 다 있지?

VVIP 카드도 모자라 형님 아우 사이로 발전하고 이젠 투자까지 아낌없이 하시겠단다. 단지 손태석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그러나 손태석이 뭐라고?

손씨 어르신에게 쫓겨나 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슬하에 아들조차 없는 데다 유일한 딸자식은 벙어리다. 사위는 또 쓸모없는 퇴역 군인이 아니던가. 당장 일자리도 잃게 생겼는데 대체 무슨 수로 용성우의 호감을 얻었단 말인가?

너무나도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고... 이게 대체..."

열정적인 용성우를 앞에 두고 손태석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에게 팔까지 잡히고 나니 온몸이 불편해지며 말조차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계약 건도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간신히 웃음을 쥐어짜 낸 손태석이 입을 열었다.

"저, 가주님..."

"어허, 가주님이라니. 우리 아우께선 너무 수줍음이 많으시구려."

용성우는 사람들의 경악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손태석의 팔을 덥석 잡으며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아우만 괜찮다면 나를 형님이라 불러도 좋네만... 아우 생각엔 초기 투자금으로 5조면 되겠소? 나중에 언제든 늘릴 수도 있으니. 자, 얼른 계약하러 가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도 편하게 놓았다.

용성우는 한편으론 손태석의 팔을 잡아끌며 또 한편으로는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진숙영을 향해 정중한 제스처를 취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손영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손중천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순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보조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조심스레 다가온 손혜린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어르신. 이게 대체..."

"시끄럽다!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뭐해?"

손중천이 버럭 화를 냈다.

"계약은 해야 할 거 아냐!"

......

손영 그룹 귀빈실에 모인 그들은 배정된 좌석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아우랑 제수씨는 왜 그런 곳에 앉아있나?"

용성우는 말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내 손중천과 손혜린에게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오늘 나와 계약을 체결하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난 아우와 제수씨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겠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손중천은 겨우 미소를 쥐어짜 내며 손혜린에게 낮게 속삭였다.

"얼른 일어나!"

본인도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손태석과 자리를 교환했다.

"......"

손혜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간신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안고 진숙영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다.

마침내 자리 배정이 끝났다. 손태석과 진숙영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사람들 속에서 어색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용성우의 건너편에 자리 잡았다.

오늘 주인공은 두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번 계약 건의 핵심 인물로서 손에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감히 그들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손태석, 진숙영!'

손혜린의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며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댔다.

감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 공까지 가로채려 하다니. 찢어 죽일 놈들.

계약이 체결되면 당장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터였다.

"아우님."

용성우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서는 미리 우리 직원한테 작성하라고 했네. 한번 읽어보게나. 내가 제멋대로 몇 줄 더 보탰네만... 아우께서 좀 수고해 주시게나. 너무 언짢아하진 말고."

그의 손짓에 노련한 용운 그룹 업무 담당자가 일찍이 작성해 놓은 계약서를 두 사람 앞에 내놓았다.

본래 5조짜리 계약서에는 투자 방향, 자금 사용 방안, 기반 시설 배치 계획, 갑을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 및 져야 하는 책임 등 수많은 조항이 포함되어야 했으니 적어도 7,80페이지는 거뜬히 넘어가는 양이어야 했다. 그러나 해당 계약서는 1장뿐이었다.

"이건..."

건네받은 계약서를 훑어본 손태석은 깜짝 놀라며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용성우를 바라보았다.

'프로젝트 자금 사용 및 배치는 을 측 기업 대표인 손태석과 진숙영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갑 측은 이에 따라야 한다.

프로젝트 실행의 모든 과정은 손태석, 진숙영의 감독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물러날 시, 갑 측은 투자금을 전액 회수할 권리가 있으며 을 측에 계약 위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이건... 그냥 우리에게 자금을 맡기겠다는 거잖아요!"

함께 계약서를 읽어보던 진숙영이 그만 진심을 내뱉고 말았다. 당황한 그녀가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말은 실로 정확했다. 자금 사용을 총괄하고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실행을 감독하는 건 굉장한 권력이었다. 몇조나 되는 방대한 자금이 두 사람의 사유 재산으로 둔갑한 셈이니까.

이로써 계약이 체결되면 두 사람을 쫓아내려던 손혜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관련 챕터

  • 군신의 귀환   제20화

    '왜냐하면 아우와 제수씨는 그분의 장인 장모거든.'용성우는 어안이 벙벙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오늘 그는 실로 돈 보따리를 건네러 온 것이다. 손태석과 진숙영의 비위를 잘 맞출 수만 있다면 그분을 위해 큰 공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주군 앞에서 돈이 대수란 말인가?줄만 잘 탄다면, 그분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10조, 20조도 벌 수 있었다."다들 이의 있나?"용성우의 지시에 따라 계약서가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공개되었다. 손중천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없으면 이대로 계약하지."사람들이 스크린 속 조항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손태석과 진숙영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감독한다는 글자를 읽은 이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건 치명적인 유혹인 동시에 날카로운 못이 되어 모든 이들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댔다.손영 그룹의 오너와 고위급 임원들은 모두 이 계약서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모두들 손태석과 진숙영의 눈치를 보며 몸을 숙여야 했다.계약이 성사되는 대로 두 사람을 쫓아내려던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5조라는 거액과 차후의 추가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연히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혹 불만이 있는 건가?"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용성우가 코웃음 쳤다."그렇다면 계약은 없던 일로 하면 되겠군. 하면 아우와 제수씨는 우리 용운 그룹으로 모셔가도록 하겠네. 물론 5조짜리 프로젝트는 여전히 두 사람이 책임지고 말이야. 돈 좀 만져보겠다고 혈안이 된 다른 회사는 많으니까. 널린 게 협력 파트너 아니겠나?"예리한 말들이 비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푹푹 내리꽂혔다. 용성우의 태도는 손중천과 손혜린의 모든 환상을 단숨에 깨뜨리는 것이었다. 이젠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거절하면 몇조의 이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만 한다. 이류에서 일류로 거듭나려던 손씨 집안의 희망도 함께 사라질 테지. 그러나 계약서에 사인한

  • 군신의 귀환   제21화

    손중천이 그들을 쫓아내기 전, 빨간 포르쉐의 주인은 그녀였다. 그때의 교통사고로 인해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었고 손씨 집안 아가씨라는 지위도 잃었으며 그 포르쉐마저 손혜린에게 빼앗겼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그녀의 손을 떠나갔다. 그러나 지금은..."퇴역 정착금이라니 그게 얼마나 된다고."애틋한 눈빛으로 포르쉐 전시장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서서히 시선을 거두며 손가을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곳에 낭비할 필요 없어. 난, 필요 없어. 게다가 포르쉐는 너무 비싸잖아."비싸다고? 염구준이 웃음을 터뜨렸다.전신전 전주에게 그만한 자금조차 없을까.전쟁터에서의 5년 동안 모든 지출은 그의 몫이었다. 최신형 전투기, 탱크, 전신전 전속 위성... 모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다. 막말로 수중의 재산으로 나라 하나를 살 수도 있었다."이제부터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은 버려."염구준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손가을을 쳐다보았다. 귀엽고 똑똑한 딸아이를 품에 안은 그가 아내의 가느다란 손목을 이끌고 포르쉐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손가을은 여전히 만류하고 싶었지만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로비 중심에 떡하니 전시된 최신형 붉은색 포르쉐, HBLY—GT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막 출시된 한정 차량이었다. 매끄러운 차체도 매력적이었지만 무려 4인승이었다. 스포츠카의 멋스러움과 동시에 편안한 세단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었다. 모델의 정식 명칭은 Honourable-Lady-GT이다. 즉, 가장 고귀하고 우아한 여성을 위한 차량이라는 뜻이었다. 전체 도시에 단 2대만 한정 출시된 것이다.옆에 놓인 스크린에 판매 정보와 매입가격이 적혀있었다. 무려 26억이었다."세, 세상에!"가격표를 확인한 손가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가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는 기껏해야 2억 정도였다. 눈앞의 모델은 그것의 10배를 넘어섰다. 26억짜리 스포츠카를 무슨 수로 산단 말인가? 감히 시승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객님 안녕하세요, 혹시 찾으시는 모델 있을까요?"생기발랄

  • 군신의 귀환   제22화

    전시장 로비 중심에 보름이나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해당 포르쉐 HBLY—GT를 구매할 능력이 되는 고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수습 기간도 채 지나지 않은 초짜가 아니고야 농담이라도, 군복을 입은 남성과 평범한 원피스 차림의 여성에게 26억이나 되는 포르쉐를 소개할 위인은 없었다."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하나 열정적인 태도는 보기 좋군."데스크 쪽을 담담하게 바라본 염구준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금테로 장식된 블랙 카드 한 장을 내민 염구준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전액 일시불로. 따로 비밀번호는 입력할 필요 없어. 이곳의 전속 서비스를 받고 싶네만, 필요한 모든 비용은 이 카드로 계산하도록. 십 분 사이에 전부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군."26억을 비밀번호 입력도 없이 일시불로 계산한다고? 블랙 카드에는 흔한 은행명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면에 "G.J"이라는 심플한 이니셜이 적혀있을 뿐. 이게 대체 무슨 카드지?"선생님, 저..."여직원은 십초 동안 아무말도 못 하고 멍하니 염구준을 쳐다보기만 했다. 더없이 진지한 그의 표정으로 보아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제야 조심스레 카드를 받은 여직원이 결제를 진행할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구준 씨, 농담이 지나치잖아."뒤늦게 정신을 차린 손가을이 펄쩍 뛰었다. 26억이라는 가격표가 안 보이는 건가? 대체 그놈의 정착금이 얼마길래. 행여 결제 실패 화면이 뜬다면 얼마나 창피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진정해."핏기 없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아마 곧 소식이 올 거야."30초도 안 되는 사이, 블랙 카드를 소중하게 받아 든 직원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사무실에서 달려 나와 그들을 불렀다."고객님, 결...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여기 구매 영수증 받아주시고요, 어... 그리고 고객님들을 위한 자그마한 사은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유 카드, 무료 세차 카드랑... 어... 아

  • 군신의 귀환   제23화

    26억짜리 포르쉐라니,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보다 10배는 더 나갔다. 그리고 현재 그 차주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정말... 저 사람이 돈을 냈단 말이야?"데스크 쪽에 몰려있던 소위 '경험 많은'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제야 때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돈이 그렇게 많을 줄 알았더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보는 눈이 형편없었다. 그러니 신입이라고 무시하던 사람이 얼떨결에 주워갔지."게다가 따로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었다며?"짙게 화장한 중년 여직원이 동료를 둘러보며 찝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체 저 안에 얼마가 들어있길래? 예전에 용하은행에서 발행한 VIP 카드를 본 적 있는데, 비밀번호 없이 결제할 수 있는 한도는 개인 자산의 0.0001% 더라고. 방금 저분... 26억을 무비번으로 결제했잖아. 그럼 대체 총자산이 얼마인 거야?""......"동료 직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좋은 기회던가. 이런 사람들과 안면을 터놓으면 팔 수 있는 차가 배로 늘어났다. 놓친 상여금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눈앞의 기회를 보기 좋게 날린 그녀들이었다.포르쉐 옆에 서 있던 손가을이 염구준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구준 씨... 혹시 엄청난 비밀 같은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많은 정착금을 받은 거고?""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야."아이를 안아 든 염구준이 조수석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이젠 당신 차야. 그러니 운전해 봐야지 않겠어?"잠시 머뭇거리던 손가을이 운전석에 앉았다. 행여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질감 좋은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고급스러운 금속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정교한 오토매틱 기어를 쓰다듬었다.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어여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차올랐다."고객님."젊은 여직원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 군신의 귀환   제24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진숙영이 두 사람 곁에 자리했고 손중천과 고위급 임원들이 애써 웃음 지으며 뒤따랐다. 용성우와 손태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안색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계약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젠 10조라는 거액의 투자금을 받을 일만 남았다. 그러나 손영 그룹에 차려질 최종 이익은 손태석 부부의 결정에 달렸다."에휴..."손중천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애매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어르신!"이때, 비명 같은 진혜린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들려왔다. 성씨도 빼앗기고 집안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진혜린은 여태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 아래에 엎드려 펑펑 울음을 쏟으며 처절하게 발악했다."어르신,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좀 한 번만 살려주세요. 계약도 성사되었잖아요. 저 반성 많이 했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제가 왜 진혜린인데요, 전 손혜린이에요. 전 영원히 손씨 집안 사람이라고요! 흑흑...."손중천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묵직한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제대로 된 번호판조차 걸지 않은 빨간 포르쉐가 건물 앞쪽 광장에 서서히 멈춰 섰다. 희주를 품에 안은 염구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보기 좋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장모님, 장인어른. 계약은 무사히 마치셨습니까? 모시러 왔어요. 같이 저녁 식사해요."저녁 식사라고? 손태석과 진숙영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어찌 이리도 눈치가 없단 말인가. 용씨 집안과 막 계약을 마쳤으니 함께 저녁 만찬이라도 즐겨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용씨 집안 사람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예의 없는 행동이 퍽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이내 염구준이 용씨 집안 가주를 알아볼 리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염구준의 등장에도 손태석과 진숙영은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나 용성우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저 사람이다. 눈앞에 아이를 안아 든 남성이 바로 소문으로만 들었던 고귀한 분이었다. 나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 전

  • 군신의 귀환   제25화

    손씨 집안에서 쫓겨난 뒤 그녀의 커리어와 꿈은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오늘로써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손가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계단 위에 서 있는 용성우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정말 감사....""아이고, 이 늙은이를 부축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아우님. 이젠 나이가 들어 계단도 혼자 못 내려갈 정도라니까."용성우는 손태석의 팔뚝을 꽉 쥐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손가을이 인사하는 걸 당장 막아야 했다. 이들은 염구준의 정체를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주군의 부인께서 제게 허리를 숙인다? 첫인사는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목숨이 아홉 개 달린 것도 아닌데!아버지가 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훈훈한 장면임이 틀림없으나 손중천에게는 아니었다.용성우와 손태석 뒤를 따라가고 있던 손중천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빌어먹을 불효막심한 자식 같으니라고.진혜린이 꼬드겨서 손태석 일가를 쫓아내고 손가을을 해고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손중천이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손씨 집안 가주로서 내린 명령은 감히 반박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임금의 교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셋째 아들인 손태석이 명을 거역하고 사사로이 손가을을 회사에 불러들였다. 용성우와 손영 그룹 임원들 앞에서 개망신당한 꼴이었다. 그의 위엄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게다가 그들의 데릴사위는 어떠한가, 쓰레기 같은 염구준.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저놈 탓이었다. 칠순 잔치에 보란듯이 관을 들이밀며 하마터면 자신을 고혈압으로 쓰러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흐흑, 손가을이 회사로 복귀한다고?"한편, 계단 아래에 쓰러져있던 진혜린이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전혀 제정신이 아닌 몰골이었다.회사로 복귀한 것도

  • 군신의 귀환   제26화

    "염구준!"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진혜린이 사납게 자리를 박차며 달려갔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한때는 손가을 소유였던 빨간 포르쉐에 올라탄 그녀가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시동을 걸었다."재원 오빠가 절대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어디 두고봐! 3일 뒤면 저 계집애 생일이라지. 그날 어디 한번 결판을 내보자고. 넌 뒈졌어."실컷 소리 지른 그녀가 가속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댔다. 광택이 사라진 붉은 포르쉐가 경악이 섞인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의 손을 맞잡은 염구준이 장인 장모를 맞이했다."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저희도 식사하러 가야죠. 타십시오."손태석과 진숙영은 퍽 불만에 차 있었다. 미처 용성우를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를 나누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뻔히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모른 척이다. 정말이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오른 손태석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호통치려 했다."태석 아우!"손태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겁에 잔뜩 질린 용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칭찬을 늘어놓았다."오, 이분이 바로 자네의 사위인가! 듣던 대로 아주 젊고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군! 가족끼리 보내는 단란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지, 그러니 내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자리는 다음에 만들면 되지! 살펴 가시게,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네. 다음에 보세!"말을 마친 그가 얼른 부하들을 데리고 자신의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문을 걸어 잠근 용성우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식은땀을 닦아냈다.하늘이시여!주군의 정체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기백은 이 도시 최고 갑부인 그조차도 덜덜 떨게 만들었다.염구준은 진정한 상위 포식자였다.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는 범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용씨

  • 군신의 귀환   제27화

    호텔 앞에 파티 초대 문구가 쓰인 금색 간판이 우뚝 솟았다. '생일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를 장착하고 어린 주인공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시는 모든 분께 본 호텔 VIP 전용 패키지 무료 제공''1인당 1회 한정, 순금 생일 배지 증정''생일 파티 주인공-- 염희주'이 소식은 마치 들판에 번진 불길처럼 전체 도시에 가득 퍼졌다.거리의 옷 가게, 백화점 명품 숍, 웨딩드레스 숍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색감의 연회복은 전부 매진되었다.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그랜트 센트럴 호텔에 한가득 몰려들었다. 전체 도시가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에 홀린 것만 같았다......."재원 오빠-"교외의 화려한 별장에서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진혜린이 서재원의 가슴에 살며시 기댔다. "오늘이 바로 그 계집애의 생일이잖아. 우리도 출발해야 하지 않겠어?"진혜린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던 서재원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도도한 진혜린은 오랫동안 그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3일 전 적극적으로 그의 품 안에 뛰어들며 제 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손중천 그 양반도 참 어리석어. 너를 손씨 집안에서 쫓아내다니 말이야."옷을 대충 걸쳐 입은 서재원이 싸늘하게 말했다."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넌 내 여자니까. 게다가 뭐, 우리더러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염구준 그 자식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창가로 다가간 그가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별장 앞마당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120여 명의 경호원들이 앞마당에 빼곡히 버티고 서 있었다. 검정 양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춤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전부 무기를 소지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서른 대의 아우디 차량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살벌한 기색으로 보아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싶었다."우리 오빠는 너무 대단한 것 같아!"마찬가지로 옷을 갖춰 입은 진혜린이

최신 챕터

  • 군신의 귀환   제2243화

    “휴, 일단 들어볼게. 내 앞길을 막았다고 해서 터무니없는 조건은 내세우지 마.”염구준이 한발 물러서자 니체르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두 사람 내일 오후까지 여기 있는다면 내가 손중석의 머리에 있는 폭탄을 제거할게. 어때?”이 조건은 아무런 대가를 치르지 않아도 되니 크게 손해볼 것도 없었다.염구준은 이튿날에 있는 신에너지 토론회 때문이라는 것을 눈치챘다.보아하니 신에너지 토론회에서 또 다른 활약을 펼칠 수작이었다.니체르는 독촉하지 않고 조용히 대답을 기다렸다.“구준아, 날 상관하지 말고 저놈을 죽여. 과학 업계에서 암적인 존재는 남기면 안 돼!”조용한 분위기를 깨고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손중석이었다.그는 염구준 대신 선택했다.그런데 니체르는 듣는 척도 하지 않고 손에 땀을 쥐며 염구준의 대답을 기다렸다.지금도 그는 도박하고 있었다.한참 뒤, 염구준이 고개를 쳐들자 주변 사람들은 바짝 긴장했다.“알았어. 저기서 하룻밤만 지내고 내일 갈게.”염구준은 로비에 있는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다.어렵게 손중석을 구했는데 죽게 내버려둘 수 없었다.“휴, 구준아, 정말 어리석어! 나 같은 것 때문에 위험을 감수할 필요 없어!”손중석은 안타까운 마음에 언성을 높였지만 상황을 되돌리지 못했다.염구준이 웃으면서 대답했다.“괜찮아요. 제이든이 매일 울면서 아빠 보고 싶어하는 꼴은 못 봐요.”그 말에 감동을 받은 손중석은 더는 말하지 않고 사색에 잠겼다.니체르는 이런 결과에 꽤 만족하며 부하들에게 지시를 내렸다.“최고 식재료로 귀한 손님을 대접하고 손 선생을 치료해 드려.”모든 지시를 마친 그는 이튿날 토론회를 위해 준비하러 갔다.그에 비해 염구준은 여유롭게 지냈다.음식이 올라오면 눈치도 보지 않고 먹기 바빴다.저녁 내내 뛰어다녔더니 진작에 배가 고팠다.하지만 손중석은 마음이 심란하여 물만 마시고 요리에 손도 대지 않았다.어느새 염구준은 손가을에게 전화하여 무사한지 확인했다.이튿날.세계가 주목하는 신에너지 토론회가 열리는 날이 다

  • 군신의 귀환   제2242화

    제이든은 그가 가장 아끼는 아들이기에 어쩔 수 없었다.“구해줘서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평생 잊지 않을게요.”손중석은 연신 감사를 표했다.“별말씀을요. 촌수를 따지자면 제가 삼촌이라고 불러야 합니다. 말을 편하게 하세요.”염구준은 손사래를 쳤다.그는 손태석이 받은 은혜를 갚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게다가 지금까지 누굴 도와주면서 한번도 보답을 바란 적이 없었다.“그런 허례허식은 따지지 맙시다. 난 나이만 더 먹을 뿐이에요. 괜찮다면 편하게 형이라고 불러줘요.”손중석도 성격이 털털해서 윗사람처럼 콧대를 세우지 않았다.“준석 형, 일단 나가서 얘기하죠.”염구준은 검갑을 가슴에 메고 손중석을 업었다.이번 구출 작전은 순조롭게 진행되었지만 한편으로 손가을이 걱정되었다.만약 니체르가 미쳐 날뛰며 인질로 잡았을까 봐 걱정이었다.“침입자를 막아!”그때 누군가가 CCTV를 통해 염구준을 발견하고 경보음을 울렸다.이어서 경호원들이 봇물이 터진 듯 쓸어 나와 두 사람의 앞길을 가로막았다.“구준아, 어떡해. 일행이 더 있어?”손중석은 당황해서 목소리까지 떨었다.“없어요. 혼자도 충분해요.”염구준은 몰래 기운을 오른쪽 다리에 모으고는 힘차게 바닥을 밟아 커다란 구멍을 냈다.여기 경호원들과 시간 낭비할 것도 없이 구멍으로 빠지면 그만이었다.“…”그 장면을 본 경호원들은 괴물을 본 것처럼 눈을 휘둥그레 떴다.“쫓아! 저놈이 도망치면 우리 다 죽어!”뒤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다들 정신을 차리고 구멍으로 뛰어내리기 시작했다.하지만 염구준은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한편, 손중석도 깜짝 놀라서 감탄을 금지 못했다.“이제 보니 실력이 강한 무술인이었구나. 태석 형도 참 복이 많아.”“복이요? 저 때문에 장인어른 꽤 고생했어요.”염구준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예전의 일을 떠올렸다.모두 무사히 고비를 넘겨서 다행이었다.일 분도 안 되는 사이에 두 사람은 벌써 1층에 도착했다.하지만 더는 도망칠 수가 없었다.입구에서 니체르가 부하들을 이끌고 막

  • 군신의 귀환   제2241화

    “그만 짜증내고 재료를 갖고 가자. 니체르 공작께서 이번 연구를 엄청 중시한단 말이야.”두 사람의 대화를 들어보면 이곳은 연구 기지 같았다.다행히 제대로 찾아왔다.끼익!그때 문이 열리면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자 염구준은 감쪽같이 숨어버렸다.전등이 켜졌을 때 주변 물건들이 눈에 들어왔다.적지 않은 폭발물들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아 이곳은 창고 같았다.두 남자는 누가 침입했는지 심지어 천장에 구멍이 난 것도 모르고 진열대에서 물건을 챙기고 떠났다.그들이 나간 후, 염구준은 어느새 문으로 다가가 밖으로 빠져나갔다.이곳을 한바퀴 돌아본 결과 대부분 연구원과 경호원들이었다.연구원들은 억지로 여기 잡혀 왔는지 다들 툴툴거리면서 일했다.이런 환경에서 아무리 복지가 좋아도 살아나갈 수 있다면 다행이었다.그가 구석의 방을 지날 때 안에서 엄숙한 남자의 소리가 들려왔다.“빨리 나머지를 작성해. 아니면 네 아들을 죽여버릴 거야.”그러자 다른 남자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개새끼야, 먼저 제이든을 보여줘. 아니면 한 글자도 안 써!”촤아악!“빨리 써. 영상을 봤는데도 부족해? 설마 시체를 보고 싶어?”남자가 다그치더니 뺨을 때리며 소리를 질렀다.염구준은 밖에서 두 남자의 대화를 똑똑히 들었다.협박을 당하는 남자는 입안에 피가 가득 고이고 온몸은 상처투성이었다.그는 몸을 파르르 떨며 고민에 빠졌다.전에 직접 아들을 용하에 보내서 상대방이 겁을 준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영상 속 배경은 농장이 확실했다.퍽!그때 누가 심문실 문을 박차고 들어왔다.“드디어 당신을 찾았네요.”염구준은 환하게 웃으면서 심문을 받는 남자를 쳐다봤다.이 사람이 바로 손중석이다.제이든이 휴대폰 배경화면으로 가족 사진을 설정해서 알고 있었다.“넌 누구야? 왜 본 기억이 없지?”심문하던 남자가 인상을 찡그리며 물었다.그들은 이곳에서 외부와 왕래를 끊고 지낸 지 한 달이 되었다.그러니 공항에서 어떤 일들이 발생했는지 전혀 몰랐다.“살고 싶으면 빨리 꺼져!”염구준

  • 군신의 귀환   제2240화

    “저까지 나서겠다면요?”그 남자는 바로 호찬이었다.‘반보천인이 더 있었어?’니체르는 상대방의 기운을 느끼고 확신했다.“호찬 씨, 청해에 있지 않았어요? 어떻게 왔어요?”손가을은 익숙한 얼굴을 보고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대표님이 위험할까 봐 용필 형과 상의하고 따라왔습니다. 멋대로 따라왔으니 달갑게 벌을 받겠습니다.”호찬은 앞으로 다가가 한쪽 무릎을 꿇고 공손히 말했다.예전에 그는 다른 사람이 키운 종이었다.그런데 염구준을 따른 후 그의 종이 되기로 자처했다.“호찬 씨, 일어나세요. 뭐 하는 거예요?”손가을은 바로 손을 뻗어 그를 부축했다.현장에 있던 무술인들은 그 장면을 보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떳떳한 반보천인 고수가 손가을에게 무릎을 꿇다니, 그제야 그녀의 신분이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심지어 손가을은 실력을 숨긴 고수라고 생각했다.다시 위험을 느낀 니체르는 어쩔 수 없이 전화로 도움을 요청해야 했다.“흑… 목, 어디에 있어요? 로얄 층에 와서 도와줘야겠어요.”그가 찾는 사람은 바로 흑풍 존주였다.상대방의 반보천인 2명과 붙어서 손가을을 붙잡으려는 수작이었다.염구준이 정말 손중석을 찾으러 갔다면 바로 손가을을 인질로 삼을 것이다.“난 지금 폐관 수련하는 중이에요. 이만 끊을게요.”흑풍은 적당한 핑계를 대고 휴대폰을 꺼버렸다.염구준이 있는 곳이라면 목숨이 10개라도 가고 싶지 않았다.“젠장!”열받은 니체르는 매너고 나발이고 할 것 없이 휴대폰을 바닥에 내팽개쳤다.자신을 돕겠다고 맹세를 하던 흑풍 존주는 중요한 순간에 도와주지도 않았다.“저 이만 가도 되죠?”손가을의 편에 반보천인 두 명이 있으니 이미 절대적인 주도권을 장악했다.“편한대로 하십시오.”니체르는 그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2대1 싸움에서 호찬의 기운은 그보다 조금 약하지만 승산이 없었다.“갑시다.”손가을은 인파를 가로질러 밖으로 나갔다.한 사람이 퇴장하니 적지 않은 사람들도 작별 인사를 하고 전쟁터를 떠났다.얼마 지나지 않아 현

  • 군신의 귀환   제2239화

    “맞습니다. 증거를 보여주세요.”누군가 나서서 맞장구를 쳤다.이런 기술은 누구나 원했지만 또한 다른 사람이 소유하는 것은 원하지 않았다.미리 대비한 니체르는 웃으면서 부하들에게 손을 휘둘렀다.“빔프로젝터를 켜서 대표님들에게 보여줘.”그러자 전등이 꺼지고 화면이 나타났다.종이 세 장에 적힌 내용으로 보아 방금 쓴 것 같았다.각 나라의 기술자들은 그것을 보고 탄성을 질렀다.어떤 귀재가 이런 연구를 했는지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하지만 용하의 기술자들은 미간을 찌푸리며 염구준을 쳐다보았다.화면의 내용은 노트에 적은 것과 똑같았다.그렇다고 현장에서 바로 질문할 수 없었다.니체르는 감탄하는 사람들의 표정을 보며 의기양양한 말투로 강세를 보였다.“저를 믿으세요. 저…”탁!마침 니체르가 흥분하며 연설하려고 할 때 공교롭게 전기가 끊겨서 현장은 어둠에 삼켜졌다.“다들 걱정하지 마세요. 아마도 전원이 나간 것 같습니다.”니체르는 스멀스멀 올라오는 분노를 억누르고 모두를 안심시켰다.하지만 그의 시선은 계속 한쪽만 노리고 있었다.왠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띵!바로 그때 전등이 다시 켜졌다.현장은 변함이 없는데 한 사람만 보이지 않았다.염구준이 사라진 것이었다.니체르는 속이 철렁 내려앉았다.‘설마 손중석을 찾으러 갔나?’갑작스러운 상황에서 그는 파티를 뒤로 하고 먼저 염구준을 찾아야 했다.“손 대표님, 남편은 어디로 갔습니까?”“화장실에 갔어요.”손가을이 바로 대답했다.“그래요? 그럼 바로 돌아오겠죠?”하지만 니체르는 의심스러워서 더 캐고 물었다.“그건 잘 모르겠어요. 가끔 남편이 화장실을 가면 며칠은 돌아오지 않거든요.”손가을은 어깨를 으쓱 올리며 헛웃음을 지었다.니체르는 손가을이 남편을 엄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염 선생이 길을 잃지 않았는지 가서 찾아봐!”“알겠습니다!”부하 수십 명이 이구동성으로 대답하면서 중요한 장소로 뛰어갔다.파티 참가자들은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감지하고 웅성거렸

  • 군신의 귀환   제2238화

    “감사합니다.”손가을은 가볍게 인사하고 일행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방금 니체르가 불쑥 치고 들어와 실력을 탐색하는 것이 매우 불쾌했었다.“가을, 괜찮아?”염구준이 걱정스럽게 물었다.“당신이 있는데 무슨 일이 있겠어.”손가을은 든든한 남편을 바라보았다.이번 파티에서 니체르가 초대한 사람들은 모두 이튿날 신에너지 토론회에 참석할 각국 대표와 오스크국 귀족들이었다.현장에서 다들 매너를 지키고 있어 굳이 질서를 통제할 필요가 없었다.여기서 니체르 외에 누구도 감히 소란을 피우지 못했다.염구준 부부가 들어오자 적지 않은 인사들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왜냐면 염구준의 옷차림과 신분 때문이었다.“저기 봐요. 저런 옷차림으로 어떻게 들어왔대요?”“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저분은 에드로 친왕도 깍듯이 대하는 염 선생이에요.”“저분의 아내는 더 대단한 분이래요. 이번 행차에 항모 전투팀이 경호를 맡았다던데 용하도 비즈니스 제국이 다 되었네요.”뭇사람들 눈에서 부러움과 질투가 흘러나왔다.사교 능력이 뛰어난 인사들은 벌써 다가와 말을 걸면서 좋은 인상을 남기려고 애썼다.니체르가 손목 부상을 치료하는 사이 염구준 부부는 현장에서 가장 눈이 부시는 인물이 되었다.마침 안세환이 병원에 가서 다행이었다.만약 이 장면을 봤다면 혈압으로 또 쓰러졌을 것이다.염구준은 아내 옆에 서서 거물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듣기만 했다.그러다 가끔 옆에서 말을 걸 때 예의상으로 대답해 주었다.파티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부상을 처치하고 현장으로 돌아온 니체르는 염구준을 전보다 더 경계했다.두 사람의 모순은 손중석을 내놓지 않는 이상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니체르 또한 순순히 내놓을 사람이 아니었다.이익 앞에서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 와도 체면을 주지 않았다.“여러분, 바쁘신 와중에 파티에 참석해 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그때 니체르가 발언하자 다들 대화를 중단하고 그를 쳐다보았다.으리으리한 파티를 열어 거물들을 초대한 것은 단순히 각 나라의 친교를 위함은

  • 군신의 귀환   제2237화

    니체르가 당황하더니 이내 인상을 굳히며 손에 힘을 주었다.일면식도 없는 불청객이 나서서 그의 계획을 망친 것이 너무 불쾌했다.“안녕하세요. 안세환 님.”“악.”안세환이 소리를 지르며 손을 거두려고 했다.그런데 니체르가 놓아주지 않아 결국 돼지 멱따는 소리를 지르더니 기절해버렸다.누구도 시키지 않는 짓을 해서 명을 재촉하는지 정말 답이 없는 사람이었다.“의사 있어요? 여기 사람이 쓰러졌습니다. 빨리 병원에 옮겨야 합니다.”니체르는 조급해하며 외쳤다.그러자 개인 의사 두 명이 나서서 안세환에게 응급처치를 하고는 들것에 눕혀 엘리베이터로 들어갔다.파티에 오자마자 쓰러지다니 차라리 오지 않는 것이 현명한 선택이었을지도 모른다.그런데 니체르는 아직도 손을 내밀고 누가 잡아 주길 기다렸다.“휴.”손가을이 깊은 숨을 들이마셨다.그녀는 어느새 은장갑을 꼈는지 한 손으로 염구준을 잡고 다른 손을 내밀었다.남편이 옆에 있으니 전혀 두렵지 않았다.염구준은 그녀의 뜻을 알고 잠시 나서지 않기로 했다.그러면서도 체내에 기운을 끌어올려 언제든 공격할 준비를 했다.만약 변고가 생긴다면 아무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니체르를 살해할 작정이었다.뒷일은 나중에 생각해도 그만이니까.쿵!손가을이 악수하자 쌍방은 기운을 사용하여 서로의 실력을 탐색했다.니체르는 반보천인 고수였다.염구준은 기운이 흐르는 것을 보고 상대방의 실력을 추측했다.아내가 감당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다행히 손가을에게 은장갑과 호신 옥팔찌가 있어서 가까스로 견딜 수 있었다.“니체르 공작, 내 아내의 손을 그렇게 잡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니죠.”염구준이 니체르의 손목을 잡더니 갑자기 근육이 부풀 정도로 기운을 폭발시켰다.원래 가족을 끔찍이 여기는데 대놓고 아내를 괴롭히는 걸 참지 못했다.강적을 만난 니체르는 손에 힘을 풀고 염구준과 맞섰다.그 사이에 손가을이 빠르게 손을 거두었다.아내가 손을 다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보물이 지켜서 부상을 입지 않았다.하지만 니체르와

  • 군신의 귀환   제2236화

    초대장은 손가을에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기다려야 했다.안세환은 속에서 열불이 나도 참아야 했다.“염 선생님, 손 팀장님 오셨네요.”그때 입구를 지키던 경호원이 염구준 부부를 보더니 바로 웃는 얼굴로 공손하게 인사했다.이것이 바로 신분 차이었다.안세환 같은 사람들은 자신이 대단하다고 우쭐거리기만 할 뿐, 솔직히 타인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었다.“여기 초대장이요.”손가을이 초대장을 건넸다.“두 분이 직접 오셨는데 초대장은 없어도 됩니다. 들어가십시오.”마침 매니저가 나오면서 공손하게 문을 열어줬다.매니저가 이러는 것도 나름 이유가 있었다.위에서 염구준을 보면 절대 무례하게 굴지 말고 항상 감시하라고 지시했기 때문이다.“가자.”염구준은 손가을의 손을 잡고 입구로 걸어갔다.그러다 안세환을 스칠 때 한마디 던졌다.“옷보다 신분이 더 중요합니다. 내가 수영복을 입고 온다해도 저들은 지금처럼 깍듯이 모실 겁니다.”그 말에 안세환의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하더니 뻔뻔하게 일행의 뒤를 따랐다.이렇게 규모가 큰 파티에 수많은 거물들이 참석하기에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엘리베이터에 올라탄 염구준은 층수를 표시하는 모니터만 주시했다.‘움직였어.’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각 층 사이를 이동하는 시간을 계산했다.처음 몇 층은 빨간 숫자가 나타나는 이동 시간은 똑같았다.그런데 12층과 13층 사이를 지날 때 시간이 2배로 늘어난 것이었다.그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마지막 층까지 각 층마다 이동 시간을 계산했다.이젠 12층과 13층 사이에 한 층이 더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하지만 그곳은 엘리베이터와 계단으로 갈 수 없을 것이다.다행히 설계 도안이 있고 목표 층을 찾았으니 천천히 찾기만 하면 되었다.그렇다고 지금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적당한 기회를 노려야 했다.띵!그때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천천히 열렸다.오늘 파티는 바로 로얄 층에서 진행되었다.“하하하, 염 선생, 드디어 오셨군요.”염구준이 나타나자 오늘의 파티 주최자

  • 군신의 귀환   제2235화

    염구준이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제이든도 고집을 피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끼익!“아직도 안 끝났어? 저녁 먹을 시간이야.”손가을이 들어오더니 깜짝 놀라며 잔소리를 했다.그러고 보니 두 사람은 오후 내내 도안을 붙들고 있었다.레스토랑에 내려온 온 후, 손가을은 밥을 먹다가 문득 뭔가 떠올랐다.“구준 씨, 오늘 저녁에 파티 있는데 같이 갈래?”“파티?”염구준이 작은 소리로 되물었다.방금 단서를 찾아서 오늘 저녁에 무조건 오스크국의 제국 빌딩에 가야 했다.그런데 아내의 눈빛을 보고 있으니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바쁘면 관둬. 이번 파티는 니체르가 주최했어. 장소는 제국빌딩이고 규모가 꽤 크다고 들었어.”손가을이 야릇하게 웃더니 그의 표정을 살피며 떠보듯 말했다.남편이 요새 조사하는 사건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에 일부러 자극한 것이었다.“여보, 그런 건 어디서 배웠어?”염구준이 피식 웃었다.“당신한테서 배웠지. 언제까지 거짓말만 할 거야?”손가을은 승리의 미소를 지었다.전에 염구준이 했던 어처구니없는 말들이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따지지 않았다.두 사람은 식탁에서 티키타카 장난을 치며 잡담을 나누었다.부부로 산 지 오래되어서 거짓말을 했다고 화내거나 따지지 않았다.어둠이 내리자, 용하의 대표팀은 손가을의 안내로 제국빌딩의 파티에 참석했다.내일 신에너지에 대한 토론회가 있는데 아직도 토론 내용을 결정하지 않은 것이 참 이상했다.그리고 제이든은 파티에 참석하지 않고 염구준이 어딘가 잘 감추어 놓았다.목적지에 도착하면 할 일이 워낙 많아서 그를 보살필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지금 제국빌딩 입구에 일행이 모였다.그중에서 염구준만 턱시도를 입지 않고 특이하게 검갑까지 메고 있었다.“창피해 죽겠어요. 그냥 호텔에 있지 왜 나와서 꼴사납게 굴어요?”안세환은 또 염구준에게 시비를 걸기 시작했다.“창피하면 우리랑 있지 말고 가세요.”염구준은 전혀 체면을 주지 않았다.솔직히 그도 특이하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파티에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