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19화

작가: 잔영
last update 최신 업데이트: 2023-09-15 16:38:02
그러나 용성우는 두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손태석의 손을 맞잡더니 이번에는 진숙영과도 악수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

"손 선생님, 사모님, 두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께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번 협상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두 분을 모셔야 하는 것을... 혹 우리 직원들이 두 분을 홀대한 건 아니겠지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부디 두 분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가져오게나!"

재빨리 다가간 경호원이 정교한 순금 카드를 용성우 앞에 공손하게 내밀었다.

"이건 저희가 특별 출시한 VVIP 카드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지요."

용성우는 손태석과 진숙영 앞에 조심스럽게 순금 카드를 내밀었다.

"이 카드를 소지한다면 우리 용씨 가문 휘하의 모든 장소를 전액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주시지요!"

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

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가 손태석과 진숙영 부부에게 이다지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심지어 이건 공손함을 넘어서 마치 비위를 맞추는 것 같지 않은가? 대체 왜?

두 사람은 손씨 가문에서 쫓겨난 몸이었다. 기업 내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고 있기도 했다. 복지나 상여금은 차치하고 툭하면 기본급도 깎이는 처지였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를 제공받는 셈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대단하신 용성우가 두 사람을 예우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VVIP 순금 카드를 내민 것이다. 게다가 손씨 어르신과 손 부사장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혹시 카드의 주인이 뒤바뀐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손태석은 차마 용성우가 내민 귀한 선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주님, 어찌 저희에게 이런 귀한 걸 내어주시는 겁니까. 이것 참... 그저 황송할 따름입니다."

"그러나 회사 규정상 고객으로부터 선물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아니라면, 먼저 계약서부터 작성하심이 어떻겠습니까?"

바로 이해한 용성우는 카드에 대한 이야기는 더 이상 꺼내지 않았다. 얼른 VVIP 카드를 주머니에 넣은 그가 다정하게 손태석의 팔을 잡았다. 손태석보다 스무 살이나 많았지만 마치 친우를 만난 듯이 정다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아주 간단한 일이지요! 계약 확정을 알리려고 제가 이렇게 찾아온 것 아니겠습니까? 투자금은 5조면 되겠습니까? 부족하다면 더 늘리겠습니다. 우리 아우님 부탁이라면 제가 힘닿는 대로 도울 것입니다!"

용성우의 '아우님' 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제 눈과 귀를 의심했다.

손중천, 손혜린을 비롯한 이들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뭐 이런 이상한 전개가 다 있지?

VVIP 카드도 모자라 형님 아우 사이로 발전하고 이젠 투자까지 아낌없이 하시겠단다. 단지 손태석의 마음에 들기 위해서.

그러나 손태석이 뭐라고?

손씨 어르신에게 쫓겨나 개보다 못한 삶을 살고 있지 않은가. 슬하에 아들조차 없는 데다 유일한 딸자식은 벙어리다. 사위는 또 쓸모없는 퇴역 군인이 아니던가. 당장 일자리도 잃게 생겼는데 대체 무슨 수로 용성우의 호감을 얻었단 말인가?

너무나도 비합리적이고 불공평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이고... 이게 대체..."

열정적인 용성우를 앞에 두고 손태석은 그야말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그에게 팔까지 잡히고 나니 온몸이 불편해지며 말조차 제대로 나가지 않았다. 심지어 계약 건도 너무 막막하게 느껴졌다. 간신히 웃음을 쥐어짜 낸 손태석이 입을 열었다.

"저, 가주님..."

"어허, 가주님이라니. 우리 아우께선 너무 수줍음이 많으시구려."

용성우는 사람들의 경악한 표정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여전히 손태석의 팔을 덥석 잡으며 뿌듯하게 웃어 보였다.

"아우만 괜찮다면 나를 형님이라 불러도 좋네만... 아우 생각엔 초기 투자금으로 5조면 되겠소? 나중에 언제든 늘릴 수도 있으니. 자, 얼른 계약하러 가자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말도 편하게 놓았다.

용성우는 한편으론 손태석의 팔을 잡아끌며 또 한편으로는 옆에서 어쩔 줄 모르는 진숙영을 향해 정중한 제스처를 취했다. 세 사람은 나란히 손영 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뒤에서 지켜보던 손중천은 할 말이 많은 듯 입을 벙긋거렸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한순간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자신이 보조출연자가 된 듯한 기분을 느꼈다.

조심스레 다가온 손혜린이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

"어르신. 이게 대체..."

"시끄럽다! 얼른 쫓아가지 않고 뭐해?"

손중천이 버럭 화를 냈다.

"계약은 해야 할 거 아냐!"

......

손영 그룹 귀빈실에 모인 그들은 배정된 좌석에 따라 자리를 잡았다.

"아우랑 제수씨는 왜 그런 곳에 앉아있나?"

용성우는 말석에 앉아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하고는 이내 손중천과 손혜린에게 매서운 눈빛을 보냈다.

"오늘 나와 계약을 체결하는 이가 누구라고 생각하는 건가? 아직도 내 말을 못 알아들었나? 난 아우와 제수씨를 제외한 그 누구와도 협상하지 않겠네!"

딱딱하게 굳어 있던 손중천은 겨우 미소를 쥐어짜 내며 손혜린에게 낮게 속삭였다.

"얼른 일어나!"

본인도 자리에서 일어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는 애써 표정 관리를 하며 손태석과 자리를 교환했다.

"......"

손혜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면서도 간신히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부글부글 끓는 속을 안고 진숙영에게 자신의 자리를 양보했다.

마침내 자리 배정이 끝났다. 손태석과 진숙영은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는 사람들 속에서 어색하고 불안한 표정으로 용성우의 건너편에 자리 잡았다.

오늘 주인공은 두 사람이 틀림없었다. 그들은 이번 계약 건의 핵심 인물로서 손에 결정권을 쥐고 있었다. 감히 그들의 주인공 자리를 빼앗을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다.

'손태석, 진숙영!'

손혜린의 눈은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멀리서 두 사람을 매섭게 노려보며 온갖 저주를 퍼부어 댔다.

감히 자신의 자리를 빼앗고 공까지 가로채려 하다니. 찢어 죽일 놈들.

계약이 체결되면 당장 그들을 쫓아낼 것이다. 그들은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을 터였다.

"아우님."

용성우는 여전히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열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계약서는 미리 우리 직원한테 작성하라고 했네. 한번 읽어보게나. 내가 제멋대로 몇 줄 더 보탰네만... 아우께서 좀 수고해 주시게나. 너무 언짢아하진 말고."

그의 손짓에 노련한 용운 그룹 업무 담당자가 일찍이 작성해 놓은 계약서를 두 사람 앞에 내놓았다.

본래 5조짜리 계약서에는 투자 방향, 자금 사용 방안, 기반 시설 배치 계획, 갑을이 수행해야 하는 의무 및 져야 하는 책임 등 수많은 조항이 포함되어야 했으니 적어도 7,80페이지는 거뜬히 넘어가는 양이어야 했다. 그러나 해당 계약서는 1장뿐이었다.

"이건..."

건네받은 계약서를 훑어본 손태석은 깜짝 놀라며 두 눈을 커다랗게 뜨고 용성우를 바라보았다.

'프로젝트 자금 사용 및 배치는 을 측 기업 대표인 손태석과 진숙영이 전적으로 책임진다.

갑 측은 이에 따라야 한다.

프로젝트 실행의 모든 과정은 손태석, 진숙영의 감독하에 진행되어야 한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물러날 시, 갑 측은 투자금을 전액 회수할 권리가 있으며 을 측에 계약 위반 책임을 추궁할 수 있다.'

"이건... 그냥 우리에게 자금을 맡기겠다는 거잖아요!"

함께 계약서를 읽어보던 진숙영이 그만 진심을 내뱉고 말았다. 당황한 그녀가 바로 입을 틀어막았다.

그녀의 말은 실로 정확했다. 자금 사용을 총괄하고 프로젝트의 전반적인 실행을 감독하는 건 굉장한 권력이었다. 몇조나 되는 방대한 자금이 두 사람의 사유 재산으로 둔갑한 셈이니까.

이로써 계약이 체결되면 두 사람을 쫓아내려던 손혜린의 계획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관련 챕터

  • 군신의 귀환   제20화

    '왜냐하면 아우와 제수씨는 그분의 장인 장모거든.'용성우는 어안이 벙벙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오늘 그는 실로 돈 보따리를 건네러 온 것이다. 손태석과 진숙영의 비위를 잘 맞출 수만 있다면 그분을 위해 큰 공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주군 앞에서 돈이 대수란 말인가?줄만 잘 탄다면, 그분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10조, 20조도 벌 수 있었다."다들 이의 있나?"용성우의 지시에 따라 계약서가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공개되었다. 손중천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없으면 이대로 계약하지."사람들이 스크린 속 조항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손태석과 진숙영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감독한다는 글자를 읽은 이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건 치명적인 유혹인 동시에 날카로운 못이 되어 모든 이들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댔다.손영 그룹의 오너와 고위급 임원들은 모두 이 계약서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모두들 손태석과 진숙영의 눈치를 보며 몸을 숙여야 했다.계약이 성사되는 대로 두 사람을 쫓아내려던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5조라는 거액과 차후의 추가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연히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혹 불만이 있는 건가?"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용성우가 코웃음 쳤다."그렇다면 계약은 없던 일로 하면 되겠군. 하면 아우와 제수씨는 우리 용운 그룹으로 모셔가도록 하겠네. 물론 5조짜리 프로젝트는 여전히 두 사람이 책임지고 말이야. 돈 좀 만져보겠다고 혈안이 된 다른 회사는 많으니까. 널린 게 협력 파트너 아니겠나?"예리한 말들이 비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푹푹 내리꽂혔다. 용성우의 태도는 손중천과 손혜린의 모든 환상을 단숨에 깨뜨리는 것이었다. 이젠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거절하면 몇조의 이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만 한다. 이류에서 일류로 거듭나려던 손씨 집안의 희망도 함께 사라질 테지. 그러나 계약서에 사인한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1화

    손중천이 그들을 쫓아내기 전, 빨간 포르쉐의 주인은 그녀였다. 그때의 교통사고로 인해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었고 손씨 집안 아가씨라는 지위도 잃었으며 그 포르쉐마저 손혜린에게 빼앗겼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그녀의 손을 떠나갔다. 그러나 지금은..."퇴역 정착금이라니 그게 얼마나 된다고."애틋한 눈빛으로 포르쉐 전시장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서서히 시선을 거두며 손가을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곳에 낭비할 필요 없어. 난, 필요 없어. 게다가 포르쉐는 너무 비싸잖아."비싸다고? 염구준이 웃음을 터뜨렸다.전신전 전주에게 그만한 자금조차 없을까.전쟁터에서의 5년 동안 모든 지출은 그의 몫이었다. 최신형 전투기, 탱크, 전신전 전속 위성... 모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다. 막말로 수중의 재산으로 나라 하나를 살 수도 있었다."이제부터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은 버려."염구준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손가을을 쳐다보았다. 귀엽고 똑똑한 딸아이를 품에 안은 그가 아내의 가느다란 손목을 이끌고 포르쉐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손가을은 여전히 만류하고 싶었지만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로비 중심에 떡하니 전시된 최신형 붉은색 포르쉐, HBLY—GT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막 출시된 한정 차량이었다. 매끄러운 차체도 매력적이었지만 무려 4인승이었다. 스포츠카의 멋스러움과 동시에 편안한 세단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었다. 모델의 정식 명칭은 Honourable-Lady-GT이다. 즉, 가장 고귀하고 우아한 여성을 위한 차량이라는 뜻이었다. 전체 도시에 단 2대만 한정 출시된 것이다.옆에 놓인 스크린에 판매 정보와 매입가격이 적혀있었다. 무려 26억이었다."세, 세상에!"가격표를 확인한 손가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가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는 기껏해야 2억 정도였다. 눈앞의 모델은 그것의 10배를 넘어섰다. 26억짜리 스포츠카를 무슨 수로 산단 말인가? 감히 시승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객님 안녕하세요, 혹시 찾으시는 모델 있을까요?"생기발랄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2화

    전시장 로비 중심에 보름이나 떡하니 전시되어 있는 해당 포르쉐 HBLY—GT를 구매할 능력이 되는 고객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수습 기간도 채 지나지 않은 초짜가 아니고야 농담이라도, 군복을 입은 남성과 평범한 원피스 차림의 여성에게 26억이나 되는 포르쉐를 소개할 위인은 없었다."업무 능력은 다소 부족하나 열정적인 태도는 보기 좋군."데스크 쪽을 담담하게 바라본 염구준이 소리 없이 미소 지었다."아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금테로 장식된 블랙 카드 한 장을 내민 염구준이 웃음을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전액 일시불로. 따로 비밀번호는 입력할 필요 없어. 이곳의 전속 서비스를 받고 싶네만, 필요한 모든 비용은 이 카드로 계산하도록. 십 분 사이에 전부 해결해 주었으면 좋겠군."26억을 비밀번호 입력도 없이 일시불로 계산한다고? 블랙 카드에는 흔한 은행명도 적혀 있지 않았다. 정면에 "G.J"이라는 심플한 이니셜이 적혀있을 뿐. 이게 대체 무슨 카드지?"선생님, 저..."여직원은 십초 동안 아무말도 못 하고 멍하니 염구준을 쳐다보기만 했다. 더없이 진지한 그의 표정으로 보아 농담하는 것 같지 않았다.그제야 조심스레 카드를 받은 여직원이 결제를 진행할 사무실로 걸음을 옮겼다."구준 씨, 농담이 지나치잖아."뒤늦게 정신을 차린 손가을이 펄쩍 뛰었다. 26억이라는 가격표가 안 보이는 건가? 대체 그놈의 정착금이 얼마길래. 행여 결제 실패 화면이 뜬다면 얼마나 창피할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진정해."핏기 없는 아내의 얼굴을 보면서도 그는 여전히 담담했다. "아마 곧 소식이 올 거야."30초도 안 되는 사이, 블랙 카드를 소중하게 받아 든 직원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비틀거리며 사무실에서 달려 나와 그들을 불렀다."고객님, 결... 결제가 완료되었습니다. 여기 구매 영수증 받아주시고요, 어... 그리고 고객님들을 위한 자그마한 사은품도 준비되어 있습니다. 주유 카드, 무료 세차 카드랑... 어... 아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3화

    26억짜리 포르쉐라니,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보다 10배는 더 나갔다. 그리고 현재 그 차주는 다름 아닌 그녀였다. "정말... 저 사람이 돈을 냈단 말이야?"데스크 쪽에 몰려있던 소위 '경험 많은' 직원들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제야 때늦은 후회가 몰려왔다. 군복을 입은 남자에게 돈이 그렇게 많을 줄 알았더라면 당장 달려갔을 텐데. 보는 눈이 형편없었다. 그러니 신입이라고 무시하던 사람이 얼떨결에 주워갔지."게다가 따로 비밀번호를 입력할 필요도 없었다며?"짙게 화장한 중년 여직원이 동료를 둘러보며 찝찝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대체 저 안에 얼마가 들어있길래? 예전에 용하은행에서 발행한 VIP 카드를 본 적 있는데, 비밀번호 없이 결제할 수 있는 한도는 개인 자산의 0.0001% 더라고. 방금 저분... 26억을 무비번으로 결제했잖아. 그럼 대체 총자산이 얼마인 거야?""......"동료 직원들은 입을 꾹 다물었다.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러웠다. 얼마나 좋은 기회던가. 이런 사람들과 안면을 터놓으면 팔 수 있는 차가 배로 늘어났다. 놓친 상여금이 대체 얼마란 말인가! 눈앞의 기회를 보기 좋게 날린 그녀들이었다.포르쉐 옆에 서 있던 손가을이 염구준을 바라보며 입술을 깨물었다."구준 씨... 혹시 엄청난 비밀 같은 걸 숨기고 있는 거 아니야? 어마어마한 공을 세웠다거나, 그런 거 말이야. 그래서 이렇게 많은 정착금을 받은 거고?""그렇게 많은 액수는 아니야."아이를 안아 든 염구준이 조수석에 앉으며 피식 웃었다."이젠 당신 차야. 그러니 운전해 봐야지 않겠어?"잠시 머뭇거리던 손가을이 운전석에 앉았다. 행여 먼지가 묻을까 조심스러운 눈치였다. 부드러운 가죽 시트에 앉아 떨리는 손으로 질감 좋은 핸들을 만지작거렸다. 고급스러운 금속 버튼을 하나하나 눌러보며 정교한 오토매틱 기어를 쓰다듬었다.맑고 투명한 눈동자가 기쁨으로 반짝거렸다. 어여쁜 얼굴에 행복한 미소가 차올랐다."고객님."젊은 여직원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4화

    부드러운 미소를 머금은 진숙영이 두 사람 곁에 자리했고 손중천과 고위급 임원들이 애써 웃음 지으며 뒤따랐다. 용성우와 손태석의 뒷모습을 쳐다보는 안색들이 하나같이 좋지 않았다. 계약을 무사히 마쳤으니 이젠 10조라는 거액의 투자금을 받을 일만 남았다. 그러나 손영 그룹에 차려질 최종 이익은 손태석 부부의 결정에 달렸다."에휴..."손중천은 웃지도 울지도 못할 애매한 표정으로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어르신!"이때, 비명 같은 진혜린의 목소리가 계단 아래에서 들려왔다. 성씨도 빼앗기고 집안에서 쫓겨나기까지 한 진혜린은 여태 이곳을 떠나지 않았다. 그녀는 계단 아래에 엎드려 펑펑 울음을 쏟으며 처절하게 발악했다."어르신,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저 좀 한 번만 살려주세요. 계약도 성사되었잖아요. 저 반성 많이 했습니다.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 제발요! 제가 왜 진혜린인데요, 전 손혜린이에요. 전 영원히 손씨 집안 사람이라고요! 흑흑...."손중천이 막 입을 열려던 찰나, 묵직한 엔진음이 울려 퍼졌다.제대로 된 번호판조차 걸지 않은 빨간 포르쉐가 건물 앞쪽 광장에 서서히 멈춰 섰다. 희주를 품에 안은 염구준이 차에서 내렸다. 그의 얼굴에는 보기 좋게 미소가 걸려 있었다."장모님, 장인어른. 계약은 무사히 마치셨습니까? 모시러 왔어요. 같이 저녁 식사해요."저녁 식사라고? 손태석과 진숙영의 안색이 조금 어두워졌다. 어찌 이리도 눈치가 없단 말인가. 용씨 집안과 막 계약을 마쳤으니 함께 저녁 만찬이라도 즐겨야 할 것 아닌가. 게다가 용씨 집안 사람들과 인사조차 나누지 않는 예의 없는 행동이 퍽 불만스러웠다. 그러다 이내 염구준이 용씨 집안 가주를 알아볼 리 없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염구준의 등장에도 손태석과 진숙영은 매우 자연스럽게 행동했으나 용성우는 저도 모르게 흠칫, 몸을 떨었다. 등에서 식은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저 사람이다. 눈앞에 아이를 안아 든 남성이 바로 소문으로만 들었던 고귀한 분이었다. 나라님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사람, 전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5화

    손씨 집안에서 쫓겨난 뒤 그녀의 커리어와 꿈은 모두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나 오늘로써 다시 일어설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이젠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며 꿈을 펼칠 수 있게 되었다. 손가을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계단 위에 서 있는 용성우를 향해 다시 한번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정말 감사....""아이고, 이 늙은이를 부축해 주어서 참으로 고맙네, 아우님. 이젠 나이가 들어 계단도 혼자 못 내려갈 정도라니까."용성우는 손태석의 팔뚝을 꽉 쥐며 연신 고마움을 전했다. 다리에 힘이 풀려 당장이라도 주저앉고 싶었다. 손가을이 인사하는 걸 당장 막아야 했다. 이들은 염구준의 정체를 모르겠지만 자신은 아니었다. 주군의 부인께서 제게 허리를 숙인다? 첫인사는 넘어갈 수 있지만 두 번째는 아니었다. 목숨이 아홉 개 달린 것도 아닌데!아버지가 딸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훈훈한 장면임이 틀림없으나 손중천에게는 아니었다.용성우와 손태석 뒤를 따라가고 있던 손중천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씩씩거렸다. 그의 눈동자에 불꽃이 일렁거렸다. 빌어먹을 불효막심한 자식 같으니라고.진혜린이 꼬드겨서 손태석 일가를 쫓아내고 손가을을 해고한 건 사실이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손중천이 내린 최종 결정이었다. 손씨 집안 가주로서 내린 명령은 감히 반박하거나 거역할 수 없는 임금의 교지와도 같았다. 그러나 그의 셋째 아들인 손태석이 명을 거역하고 사사로이 손가을을 회사에 불러들였다. 용성우와 손영 그룹 임원들 앞에서 개망신당한 꼴이었다. 그의 위엄과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었다.게다가 그들의 데릴사위는 어떠한가, 쓰레기 같은 염구준. 사실 따지고 보면 전부 저놈 탓이었다. 칠순 잔치에 보란듯이 관을 들이밀며 하마터면 자신을 고혈압으로 쓰러지게 만들지 않았던가. "흐흑, 손가을이 회사로 복귀한다고?"한편, 계단 아래에 쓰러져있던 진혜린이 우는지 웃는지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며 허우적대고 있었다. 전혀 제정신이 아닌 몰골이었다.회사로 복귀한 것도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6화

    "염구준!"분노로 잔뜩 일그러진 얼굴을 한 진혜린이 사납게 자리를 박차며 달려갔다. 멀지 않은 곳에 주차되어 있던 한때는 손가을 소유였던 빨간 포르쉐에 올라탄 그녀가 염구준을 죽일 듯이 노려보며 시동을 걸었다."재원 오빠가 절대 널 가만 두지 않을 거야! 어디 두고봐! 3일 뒤면 저 계집애 생일이라지. 그날 어디 한번 결판을 내보자고. 넌 뒈졌어."실컷 소리 지른 그녀가 가속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댔다. 광택이 사라진 붉은 포르쉐가 경악이 섞인 주변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요란한 소리를 내며 사라졌다.아이를 품에 안고 아내의 손을 맞잡은 염구준이 장인 장모를 맞이했다."일이 잘 해결되었으니 저희도 식사하러 가야죠. 타십시오."손태석과 진숙영은 퍽 불만에 차 있었다. 미처 용성우를 알아보지 못해서 인사를 나누지 않은 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뻔히 그의 정체를 알고 있음에도 끝까지 모른 척이다. 정말이지 창피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지.단전에서부터 화가 치밀어오른 손태석은 염구준을 뚫어지게 노려보며 호통치려 했다."태석 아우!"손태석이 입을 열기도 전에 겁에 잔뜩 질린 용성우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칭찬을 늘어놓았다."오, 이분이 바로 자네의 사위인가! 듣던 대로 아주 젊고 전도가 유망해 보이는군! 가족끼리 보내는 단란한 시간이 무엇보다 중요한 법이지, 그러니 내가 눈치껏 자리를 비켜주어야 하지 않겠나. 우리 자리는 다음에 만들면 되지! 살펴 가시게, 나도 이만 돌아가야겠네. 다음에 보세!"말을 마친 그가 얼른 부하들을 데리고 자신의 롤스로이스 뒷좌석에 자리 잡았다. 문을 걸어 잠근 용성우는 그제야 한시름 놓았다는 듯 식은땀을 닦아냈다.하늘이시여!주군의 정체를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마치 거대한 산을 마주하고 있는 느낌이었다. 자연스레 뿜어져 나오는 숨 막히는 기백은 이 도시 최고 갑부인 그조차도 덜덜 떨게 만들었다.염구준은 진정한 상위 포식자였다. 범접할 수 없는 분위기는 범인들에게 공포감을 조성했다. 용씨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 군신의 귀환   제27화

    호텔 앞에 파티 초대 문구가 쓰인 금색 간판이 우뚝 솟았다. '생일 파티에 어울리는 드레스 코드를 장착하고 어린 주인공에게 생일 축하 인사를 보내시는 모든 분께 본 호텔 VIP 전용 패키지 무료 제공''1인당 1회 한정, 순금 생일 배지 증정''생일 파티 주인공-- 염희주'이 소식은 마치 들판에 번진 불길처럼 전체 도시에 가득 퍼졌다.거리의 옷 가게, 백화점 명품 숍, 웨딩드레스 숍에서 판매하는 화려한 색감의 연회복은 전부 매진되었다. 화려한 연회복을 입은 수많은 인파가 그랜트 센트럴 호텔에 한가득 몰려들었다. 전체 도시가 VIP 전용 패키지와 순금 생일 배지에 홀린 것만 같았다......."재원 오빠-"교외의 화려한 별장에서 간드러진 여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진혜린이 서재원의 가슴에 살며시 기댔다. "오늘이 바로 그 계집애의 생일이잖아. 우리도 출발해야 하지 않겠어?"진혜린의 부드러운 등을 쓰다듬던 서재원이 차갑게 코웃음 쳤다.도도한 진혜린은 오랫동안 그에게 몸을 내어주지 않았다. 그러나 3일 전 적극적으로 그의 품 안에 뛰어들며 제 몸을 활짝 열어준 것이다. 그는 그 이유를 똑똑히 알고 있었다."손중천 그 양반도 참 어리석어. 너를 손씨 집안에서 쫓아내다니 말이야."옷을 대충 걸쳐 입은 서재원이 싸늘하게 말했다."당연히 내가 나서야지, 넌 내 여자니까. 게다가 뭐, 우리더러 무릎 꿇고 사죄하라고? 염구준 그 자식이 아주 죽고 싶어 환장했지."끊임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창가로 다가간 그가 커튼을 확 열어젖혔다.별장 앞마당에는 살기가 흐르고 있었다.120여 명의 경호원들이 앞마당에 빼곡히 버티고 서 있었다. 검정 양복을 입은 그들의 허리춤은 불룩하게 튀어나와 있었다. 전부 무기를 소지한 이들이었다. 그들의 옆에는 서른 대의 아우디 차량이 가지런히 늘어서 있었다. 살벌한 기색으로 보아 언제든 출발할 준비가 되어 있는 듯싶었다."우리 오빠는 너무 대단한 것 같아!"마찬가지로 옷을 갖춰 입은 진혜린이

    최신 업데이트 : 2023-09-15

최신 챕터

  • 군신의 귀환   제1966화

    “주상님, 저 돌아왔어요. 고릴라들이 왔어요?”얼마되지 않아 백호가 돌아왔다.주변이 너무 조용해서 그가 물었다.“이미 끝났어. 일찍 왔더라면 너도 봤을 거야.”염구준이 대답했다.고릴라와 장난하듯 싸우지 않았다면 더 빨리 끝났을 것이다.바로 그때, 현무가 벌떡 일어나며 환호성을 질렀다.“주상님, 결계 열었어요. 그런데 곧 닫칠 거 같아요.”“가자!”염구준 일행은 빠르게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만약 삼선도 사람들이 결계 전무가를 잡고도 이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열받을까.일행이 들어가자마자 결계는 자동으로 닫혀버렸다.자아 치유 능력이 생각보다 강했다.이 결계는 상고시대에 배치한 거라 일반 결계와 달랐다.‘피비린 냄새다.’염구준은 코를 움직여 냄새를 맡더니 이내 손을 들어 모두를 저지시켰다.“여기 싸운 흔적이 있어. 식물들이 손상된 점으로 보아 전신지상 실력이야.”그는 계속 냄새를 탐색하며 덤불에 다가가더니 몸을 숙여 잎에 묻은 피를 부드럽게 만졌다.피가 아직 응고되지 않았다는 건 여기서 싸운 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을 설명한다.“주상님, 삼선도가 서로 죽이다가 남긴 게 아닐까요?”백호가 합리적인 설명을 내세웠다.“아니야. 조금은 이상해.”염구준은 고개를 가로저었다.만약 삼선도가 자기들끼리 싸웠다면 전신지상뿐만 아니라 반보천인 고수도 참여했을 것이다.결계 내부에 강력한 물건이 있거나 다른 곳에서 누가 침입했다는 것을 설명한다.불안전한 요소로 상황이 더 복장해졌다.“수색해서 다른 단서를 찾아. 다들 조심해.”염구준이 명령을 내렸다.사전에 미리 상황을 판단하면 돌발 상황에서 손실을 막을 수 있다.“알겠습니다.”일행은 무기를 들고 흩어져서 수색하기 시작했다.방금 전에 싸웠으니 반드시 흔적이 남아 있을 것이다.“주상님, 발견했습니다.”“주상님, 여기도 발견했습니다.”10분도 안 되어서 여기 저기서 단서가 나왔다.역시 효율이 높았다.염구준이 다가가 살펴보자 시체가 있었다.금발에 콧대가 높은 것을

  • 군신의 귀환   제1965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로 자취를 감추었다.백호는 뒤를 돌아보다가 숲속 안으로 쫓아갔다.고릴라들은 그를 공격하지 않고 나무 위에서 몸을 흔들며 멀리 유인했다.정말 이놈들은 끈질기게 들러붙었다.“왔다.”염구준은 주변 나무에서 기척을 느꼈다.그것도 상당히 많은 수가 있었다.“두 사람은 현무가 안심하고 결계를 깰 수 있게 이중 전신 영역으로 보호해.”서로 맞지 않는 주작과 붉은 장미는 협조하라는 말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쩔 수 없이 전신 영역을 펼쳤다.이런 상황에서 싸우면 자기만 우스운 꼴이 되기 때문이다.“우후후후!”고릴라 한 마리가 외치며 숲에서 뛰쳐나오더니 바로 염구준을 향해 공격했다.“뭔가 수상해.”수상함을 느낀 염구준은 왼손에 검을 쥐고 오른손으로 상대했다.전력으로 싸우지 않은 것이다.첫 공격을 하자마자 뭐가 문제인지 알아챘다.이 고릴라는 왕이 아니라 탐색하러 보낸 부하였다.붉은 장미의 말에 따르면 고릴라 왕은 전신지상의 실력이고 이 고릴라는 이제 겨우 전신경에 이르렀다.짐승이 사람 못지 않게 교활한 수작을 부리니 저절로 감탄이 나왔다.“그래 어디 한번 놀아보자.”염구준은 차분하게 고릴라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정도로 상대했다.고릴라 왕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고릴라 따위가 본인과 머리를 굴려서 모략을 꾸미다니 제대로 혼내려고 마음먹었다.“크아아앙!”그때 귀를 찢을 뜻한 소리와 함께 거대한 고릴라가 나타났다.덩치가 어찌나 큰지 작은 별장만큼 컸다.그러더니 숲에서 엄청 많은 고릴라가 나타나 계속 울부짖었다.고릴라 왕은 무조건 적을 이길 수 있다 착각하고 싸우러 나온 것이다.그러면 부하들 앞에서 자신의 지위를 확고히 할 수 있으니까.전에 삼선도 일행들이 죽이러 쫓아와서 몹시 기분이 언짢았다.“짐승은 그래도 짐승이야. 머리가 없어.”염구준은 뒤로 물러서며 입꼬리를 올렸다.고릴라 왕이 인내심 있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빨리 나타날 줄은 몰랐다.“쿠아아앙!”고릴라 왕은 포효하며 부하들을 진정시키고는 염구준

  • 군신의 귀환   제1964화

    스윽!염구준은 손을 들어 강력한 검기를 도명현에게 발사했다.“합!”그러자 도명현은 대검을 들고 전력을 다해 막아냈다.지난번에 염구준에게 꼴 좋게 패배했으니 트라우마가 생겨 다시는 우습게 볼 수 없었다.펑!하지만 연달아 공격하는 검기에도 결계는 뚫리지 않고 잔물결만 일렁거렸다.수천년 동안 유지한 결계라 그런지 만만치 않았다.이미 한번 겁을 먹은 도명현은 저항하다가 결국 대검을 들고 허우적대고 말았다.그 모습을 본 부하들은 창피했다.“도명현 도주님, 파리 잡고 있어?”염구준이 마지막 공격을 가하며 말했다.방금은 일부러 공격한 것이다.하나는 도명현에게 겁을 주고 둘째는 결계 강도를 시험하기 위해서였다.“흥, 이만 가자!”체면이 깎인 도명현은 더는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아 부하들을 데리고 떠났다.부하들은 대놓고 웃고 싶었지만 둘째 도주의 체면을 위해 애써 참았다.일행이 염구준의 시야에서 사라졌다.그들의 갈등은 이제 격화되어서 어디를 가든 서로 모른 척했다.“주상님, 왜 쫓아가지 않습니까?”주작은 삼선도 사람들이 가는 것을 보며 작은 소리로 물었다.만약 쫓아갔더라면 결계에 들어갔을 텐데 염구준은 그냥 보내주었다.“유적지 곳곳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어. 저들이 먼저 탐색하다가 서로 싸울지도 몰라. 그러면 우리는 수고를 덜 수 있어.”염구준이 이유를 말하자 그제야 이해했다.붉은 장미는 그의 계략에 감탄하여 저도 모르게 몸이 움츠렸다.이 사람의 머리는 무술을 잘하는 것만큼 똑똑했다.전에 그를 해하려고 했던 짓을 생각하면 헛웃음이 저절로 나왔다.염구준은 그들의 반응에 신경 쓰지 않고 치료하고 있는 현무에게 다가가 말했다.“한 시간 30분 뒤에 결계를 깰 거야.”현무가 치료를 마치면 결계를 연구할 것이다.“현무, 결계를 깰 자신이 있어?”염구준이 물었다.솔직히 그에게도 80% 확률로 결계를 깰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바로 일력파만법으로 말이다.“문제없습니다. 방금 대략 살펴보았는데 10분이면 충분합니다.”현무가 많이 회

  • 군신의 귀환   제1963화

    세 사람은 강력한 기운을 내뿜어도 정작 공격할 때면 여전히 그대로였다.속으로 서로를 경계한 지 오래되어서 쉽게 경계심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늙은 여우.’다들 속으로 한마디씩 욕했다.황지열은 두 사람도 천인 경지를 돌파하는 것이 목적이라는 것을 알았다.이곳까지 온 이상 언제든지 본색을 드러낼 거라 생각했다.평소에 두 사람이 멍청하다고 여겼는데 과소평가한 것 같았다.염구준은 세 사람의 싸움에 관심이 없었다.상대방이 약하면 그는 기세를 몰아 더 강해지고 공격도 날카로워졌다.도주 세 명도 이렇게 싸우면 본인들에게 불리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누구도 먼저 나서서 죽고 싶지 않았다.그러니 어쩔 수 없이 방어하는 수밖에 없었다.한편, 다른 무리의 싸움도 삼선도에 불리했다.전신지상 고수 세 명이 협공해도 백호를 막아내지 못했다.그 외에 전신지상 두 명도 주작과 붉은 장미의 공격에 번마다 당하여 곧 죽을 것 같았다.다른 부하들도 싸움에 끼어들었지만 어쩌지도 못하고 하마터면 죽음을 당할 뻔했다.현무가 치료하는 것을 방해하고 싶었는데 방금 염구준이 보초군을 죽이는 장면을 보고 간담이 서늘했다.삼선도는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우르릉 쾅!그때 갑자기 지면이 흔들리며 결계가 불안정해지더니 손바닥만 한 균열이 나타났다.입구가 드디어 생긴 것이다.“하하하, 내가 방금 나경판을 놓았는데 이제야 작용한 모양이구나.”우대구가 호탕하게 웃었다.실은 허세일 뿐 방금 나경판을 놓을 때 전혀 자신이 없었다.운이 좋았던 것이다.그런데 지금 큰 문제가 생겼다.염구준에게 제압당해 어떻게 철수해야 할지 몰랐다.“대도주 실력이 막강하니 저놈을 먼저 제압하고 있어.”도명현이 그의 반응을 떠보았다.성격이 충동적이지만 삼선도의 둘째 도주로서 그 정도 머리는 있었다.“좋다. 내가 셋까지 세면 너희들은 물러서.”대도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엄숙하게 대답했다.“알았어.”두 도주는 황지열이 이렇게 나올 줄은 생각도 못했다.정말 처음이었다.“셋!”황지열이 마지막 숫자를

  • 군신의 귀환   제1962화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여러 갈래 검기가 현무를 공격하려는 세 사람을 물리쳤다.“공격한다!”어쩔 수 없는 황지열은 속으로 도명현을 욕하면서 명령을 내렸다.번마다 멋대로 나대는 바람에 난처한 상황에 처했다.먼저 도착한 염구준은 현무의 어깨를 잡고 뒤로 밀어버리고 검을 휘둘러 세 사람을 가차 없이 죽여버렸다.그 동작은 깔끔하게 단번에 이루어졌다.본래 이렇게 빨리 죽이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상대방이 허튼 수작을 부린다면 죽어도 누굴 탓할 수 없는 노릇 아닌가.“염구준, 인질을 교환하겠다면서 약속을 어기고 내 부하를 죽였어?”도명현이 버럭 화를 냈다.“하, 뻔뻔한 것도 정도가 있어야지. 너랑 말 섞는 것조차 역겨워.”염구준은 억지를 부리는 인간과 도리를 따지기도 귀찮았다.막무가내인 사람에게 시간 낭비하면서 입씨름하고 싶지 않았다.“염구준, 여기 결계가 있다. 내가 먼저 열면 안 되겠느냐?”세 명의 보초군이 죽자 황지열은 손을 들어 싸움을 제지했다.오랫동안 계획한 끝에 금비녀를 손에 넣고 이 공간을 연 것은 오로지 천인을 돌파할 수 있다는 전설 때문이었다.지금 무엇보다 이곳에 들어가는 것이 제일 중요했다.“당신을 죽이고 나 혼자서도 들어갈 수 있어.”염구준은 검을 들고 타협하지 않았다.결계에 대해 아는 것이 없지만 뒤에 있는 현무는 이 방면에 전문가였다.한마디에 대화가 끝났으니 더는 말을 할 필요도 없었다.“말할 것도 없어. 그냥 저놈을 죽여!”불 같은 성격인 도명현은 참지 못하고 대검을 들고 공격했다.삼선도 세력은 머릿수가 많아서 우위를 차지했지만 반보천인 경지에 도달한 고수는 세 명밖에 없었다.그중에서 한 사람은 눈에 띄게 강했다.도명현이 움직이자 나머지 부하들도 뒤를 따랐다.“백호, 내가 저놈을 맡을 테니까 넌 나머지를 처리해.”염구준은 지시를 내린 후, 검을 들고 앞으로 돌진했다.반보천인 고수 세 명의 실력은 만만치 않으니 경계는 늦추면 안 되었다.특히 대도주 황지열의 기운은 염구준과 막상막하로 실력이 약하

  • 군신의 귀환   제1961화

    황지열이 웃으면서 말했다.“아니, 아니야. 당신들은 우리 섬의 손님인데 죽일 리가 있겠나.”어렵게 한 사람을 잡았는데 인질로 남겨야 했다.‘썩을 영감탱이!’현무는 속으로 욕하고 조용히 눈을 감고 체력을 회복했다.여기서 도망치지 못해도 힘이 있어야 자살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대도주님 보고합니다. 네 명이 접근하고 있습니다. 속도가 너무 빨라 그림자만 보입니다.”한 보초군이 황급히 달려와 보고했다.“드디어 왔구나.”황지열은 속으로 중얼거리며 엄숙한 표정으로 숲을 쳐다봤다.어떤 상황에서 무엇을 두려워하면 바로 나타났다.“전원 경계하고 집합하라!”명령을 내리자 부하들은 큰 적을 만난 것처럼 손에 무기를 들고 한 곳에 모였다.적이 누군지 잘 모르지만 대도주의 긴장한 모습은 이번이 처음이었다.“여기 맞네.”염구준은 한 사람의 멱살을 잡고 숲을 빠져나왔다.삼선도 곳곳에 배치한 보초군은 이미 처리한 뒤였다.“염구준! 악마 같은 놈아! 한 발짝 다가오면 이 자식을 죽여버릴 것이다.”도명현은 이를 악물고 현무의 멱살을 잡아당기며 협박했다.황지열은 욕을 퍼붓고 싶었다.인질을 저렇게 사용할 생각은 아니었다.순간 수 없이 가르쳐도 왜 알지 못하는지 두통이 아팠다.“네 명으로 한 명을 바꾸자. 현무는 풀어줘.”염구준은 이미 정신을 잃은 보초군 네 명을 가리켰다.현무가 상대방의 손에 있으니 무리하게 공격하지 않았다.“웃기지 마. 지금 물러나지 않으면 바로 죽일 거다.”손에 강력한 기운을 불어넣은 도명현은 당장이라고 죽일 기세로 으르렁거렸다.현무는 무슨 말을 하려다가 염구준의 눈빛을 보고 삼켜버렸다.함부로 나서면 일을 더 망치게 되니까.‘망했어. 완전히 엉망진창이야.’황지열은 속이 답답했지만 어떤 말은 대놓고 할 수 없었다.“그래? 네 명으로도 바꾸지 않겠다니 보초군들 목숨이 값이 없군. 아니면 저 사람들은 네 눈에 사람으로 안 보이나?”염구준은 전방을 훑어보면서 일부러 삼선도 부하들이 들으라고 이렇게 말했다.사람을 공격하는 것

  • 군신의 귀환   제1960화

    이 말에 이 일의 중요성을 아는 백호와 주작은 즉시 귀를 기울였다.아는 정보가 많을 수록 위험한 장소에서 생존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었다. 붉은 장미는 염구준의 압도적인 전투력에 겁을 먹은 상태라 차마 속임수를 쓰지 못하고 솔직하게 입을 열었다.“그곳에 결계가 쳐져 있어서, 저도 들어가 본 적은 없지만 주변에 아주 포악한 고릴라 무리가 살고 있다는 건 알아요. 수가 많고 힘도 강해서 상대하기가 만만치 않다더군요.”붉은 장미는 그 유적지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기 때문에 더 알아볼 용기가 없어 알고있는 게 별로 없었다. 염구준은 들은 정보를 토대로 즉시 결정을 내렸다.“모두 준비해. 유적지로 전속력으로 간다!”그들이 있는 곳부터 유적지까지 거리가 그렇게 멀지 않았기에 그들의 실력으로는 한 한시간 남짓이면 도착할 수 있었다.잠시후, 밀림 속에서 네 개의 그림자가 마치 유령처럼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한편, 유적지 앞에는 열 명이 넘는 사람들이 모여 있었는데, 무언가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며칠째 작업 중인데, 아직도 안 끝난 거야?”질문을 하는 황지열의 얼굴에는 이미 위선적인 웃음조차 걸려있지 않았다.황지열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특별한 방법으로 부하들을 소집해 재빨리 유적지로 향했었다. 그러나 그가 받은 정보는 잘못된 것이었다. 유적지가 결계에 둘러싸여 있어 전혀 들어가지도 못하고 있으니까 말이다.“거의 다 끝났어. 이제 조금만 더 하면 돼.”우대구는 땀을 줄줄 흘리며 대답했다.그들 무리 중 결계술을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우대구뿐이었지만, 그의 실력으로는 이 결계를 해결할 수 없었다. “셋째야, 힘 좀 내 봐. 이틀전에도 이 말 했잖니.”황지열은 속이 타들어 가서 다시 재촉했다. 평소 같았으면 그도 여유를 부렸을 테지만, 이번에는 염구준도 같이 들어온 상황이라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었다“최선을 다해 볼게.”우대구는 대답하면서 계속해서 유적지의 주변을 빙빙 돌았지만 속으로는 전혀 자신이 없었다.그는 이미 열 손가락으로 셀 수도

  • 군신의 귀환   제1959화

    “도망쳐!”이 말에 정신을 차린 사람들은 앞에 놓인 음식을 집어 들고 황급히 도망치기 시작했다.계속 이곳을 누르고 있던 광마가 없어진 지금, 이곳의 특수한 생존 방식으로는 외부의 사람들이 언제라도 쳐들어와서 약탈을 벌일 게 뻔했기 때문이다.대규모적인 싸움이 무조건 벌어지는 건 이제 시간 문제였다.사람들이 모두 떠나자 염구준은 양반다리를 하고 앉아 기운을 조절하며 회복을 시작했다.반면에 붉은 장미와 주작은 특별히 한 일이 없었기에 얼마 쉬지 않아 최상의 컨디션을 회복할 수 있었다.“왠지 낯이 익은데, 우리 어디선가 만난 적 있지 않아?”주작은 붉은 장미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흥, 예전에 네가 날 추룡대삼각 지대까지 쫓아온 덕에 내가 여기에 말려오게 된 거잖아.”붉은 장미는 상대방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어렸을 때와는 다소 달라졌지만 말이다.“너, 붉은 장미구나!”상대방의 말을 듣고 과거를 떠올린 주작은 경계심을 품고 그녀를 바라보았다.과거 해전에서의 일을 그녀는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때가 그녀 인생에서 처음으로 적의 수령을 쫓아간 것이었다.“알아챘으면 이제 그때의 빚을 갚아볼까?”붉은 장미는 일부러 싸우려는 듯한 태세를 취하며 말했다.“좋아, 우리 쪽에 반보천인만 둘인데 괜찮겠어? 주상께서 널 가만두실 것 같아?”주작은 눈치가 빨라서 상대방이 감히 손을 댈 용기가 없다는 걸, 지금은 그냥 자신을 겁주는 것 뿐이라는 걸 바로 알아차렸다. ‘주상과 함께 왔다면 정체가 탄로난 건 분명할 테고, 참교육도 당했겠지.’“꼬맹이가 누구한테 배웠길래 이렇게 꾀가 는 거야?”상대방에게 의도를 들킨 붉은 장미는 더 이상 연기하지 않았다.“메롱, 비밀이다!”주작은 이긴 것에 기뻐서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그 후 두 사람은 손을 대지 않긴 했지만 대신 말싸움을 벌였다. 둘의 말싸움은 매우 격렬했는데, 반보천인들의 싸움보다 더 흥미진진했다. 왜, 속담에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도 뒤집어진다.’ 라는 말이 있지 않나? 두 명이어서 망

  • 군신의 귀환   제1958화

    “후... 네게 방법은 하나뿐이니 알아서 해 봐.”염구준은 길게 숨을 내쉬며 백호의 요청을 허락했다.이런 일은 억지로 막을 수 없었다. 지금은 백호를 믿을 수밖에 없다는 거다.“감사합니다!”백호는 머리를 숙여 인사한 뒤 일어서며 주작을 향해 미소를 지었다.“주작아, 앞으로는 명령 제대로 따르고 감정적으로 행동하지 말아야 해, 알겠지?”4대 전존 중 백호가 가장 마음에 걸리는 존재는 주작이었다. 즉흥적인 성격으로 일을 처리하다가는 언젠가 사고가 날 게 뻔했기 때문이다. 주작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흥, 잔소리하고 싶으면 살아남고 나서 해!”그녀의 말을 들은 백호는 합금으로 된 전투도를 뽑아 들고 광마에게 다가갔다.현재 그에게서는 전신 위 경지의 극치에 다다른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이 싸움은 이 두 사람의 전장이 될 운명이었다. “웃기지 마! 겨우 전신 위의 경지로 나를 죽이겠다고?”광마는 화를 내며 땅을 한 번 세게 내리쳤고, 그 반동을 이용해 몸을 일으켰다.어차피 죽을 운명이라면, 영광스럽게 전사하는 편이 낫다고 그는 생각했다.“죽어라!”두 사람은 동시에 외치며 전력을 다해 서로에게 달려들었다.이렇게 목숨을 건 싸움은 승패가 금방 갈리기 마련이었다.쾅!무기끼리 부딪히는 순간, 백호는 피를 토하며 신속하게 뒤로 밀려났다.압도적인 힘 차이 때문이었다.옆에서 지켜보던 주작은 애가 탔지만, 이는 백호가 먼저 요구한 공정한 대결이었기 때문에 그녀도, 그리고 염구준도 끼어들 수 없었다.만약 누군가 개입한다면 백호의 고집스러운 성격으로는 정말 자결을 택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끝났네.”백호의 기운이 변한 것을 느낀 염구준은 미소를 띠며 중얼거렸다.쿵!그와 동시에 밀려온 진기에 반등한 백호가 몸을 떨더니 갑자기 전대미문의 강력한 기운을 내뿜으면서 광마를 뒤로 밀었다.그러면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빠르게 다가가 도를 휘둘렀고, 광마의 머리는 그렇게 바닥에 떨어졌다.한계를 돌파해 반보천인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다.“주상! 해냈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