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이때!브레이크 밟는 소리와 함께 기다란 검은색 롤스로이스 밴이 병원으로 서서히 들어오더니 진중기 일행 앞에서 멈춰섰다.전신전 전주 전용 밴이었다!“가을아, 희주야, 이제 내려.”먼저 차에서 내린 염구준이 뒷좌석 문을 열어주었다.진중기는 의료진과 함께 다가가서 그들을 공손히 맞았다.“염 선생님, 이분이 손가을 씨겠군요? 저는 진중기라고 합니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전구 국내 최고의 이비인후과 전문가들이에요. 최선을 다해 치료해 보겠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부탁 드릴게요.”그런데 그의 날카로운 시선이 어딘가로 향했다.멀리서 이쪽을 바라보던 중년 남자가 경멸에 찬 미소를 지으며 시비를 걸어왔다.“누군가 했더니 너희들이구나! 염구준, 손가을, 두 눈 똑바로 뜨고 내가 누군지 잘 봐!”염구준은 차가운 눈빛으로 상대를 노려보았다.그의 장인 손태석의 형, 손태진이자 손씨 가문의 장남!“멍청한 녀석들!”손태진은 앞길을 가로막은 두 전사를 밀치고 경호원들과 함께 염구준에게 다가와서 삿대질했다.“군에 인맥이 좀 있나 봐? 뭐가 그렇게 잘나서 잘난 척이야?”“내 아들 입천장에 물집이 잡혀서 치료 받아야 한다고! 수족구병 알아, 몰라? 나 급해!”“어쩐지 한 선생이 오늘 결근이라더니 네 녀석이 잡아두고 있었구나! 시간 지체해서 내 아들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너부터 죽을 줄 알아!”염구준은 눈을 가늘게 뜨고 상대를 노려보았다.조금 전 손중천의 생신 잔치에서 보이지 않더니 아들이 아파서 병원에 방문했던 것 같았다. 누가 손중천 아들 아니랄까 봐 입만 열면 욕설이라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설치는 부자였다.손가을은 희주를 안은 채, 염구준과 손태진을 번갈아 보았다.일이 왜 이렇게 꼬이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기대를 안고 용기 내서 병원에 왔더니 큰아버지를 만날 줄이야! 과거에도 큰아버지와 그녀의 아버지는 승계권을 위해 피 터지게 싸웠다.그 모습에 분노한 손중천은 승계권을 다음 대에 물려주겠다고 선포했고 그래서 데
"눈은 뒀다 뭐해!" 곽승환은 분노의 주먹과 발차기로 손태진을 때려눕혔다. 생사 불명할 정도로.또 한 발의 날려 차기로 옆에 멍하니 있던 세 명의 경호원을 때려눕히고, 그들의 발목을 잡고, 손태진과 함께 모두 차에 끌어올렸다. 그리고 염구준에게 예의 바른 경례를 하고 시동을 걸어 떠났다.다시 한번 놀랐다!곽승환이 왔다 간 시간은 총 30초도 채 되지 않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딱 한마디만 하고 깔끔하게 상황정리 하고 축 늘어진 네 구의 몸통을 끌고 사람들의 시선에서 사라졌다.이것이 바로 청해 군사 작전부 수장의 작풍이란 말인가?뜻밖이었다."꿀꺽!"손가을은 멍하니 차가 떠나는 모습을 보다가 침을 삼켰다. 천천히 두 손을 들었다. 손을 들고 수화로 뭔가를 말하려 했으나 어떻게 마음속의 의문을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정교하고 예쁜 눈썹을 가볍게 찡그려졌다. 말할 수 없이 귀엽고 이뻤다.염구준은 손가을의 귀여운 표정을 보고, 마음속이 부드러워졌다.만약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그녀는 지금 이 순간 무슨 말을 했을까?틀림없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 가장 듣기 좋은 웃음소리였을 것이다!"진 원장님." 고개를 돌려 진중기를 바라보며 정중하게 입을 열었다. "제 아내의 수술을 선생님이 직접 집도해 주세요!”“수술 과정에 가시화 최소침습술로 인후의 화상 흉터 표면을 제거하고 혈락신경을 모두 정리해 주세요.”"마지막으로…”말을 하다가 손가을을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가을아, 선생님한테 드려.”손가을은 고개를 끄덕이고 주머니에서 작고 귀여운 분홍색 천어화를 조심스럽게 진중기에게 건넸다."이건…." 진중기는 꽃을 받아 자세히 살펴보더니 동공이 점점 커졌다.숨이 가빠지고 가슴이 뛰며 이마에 땀이 나고 손발이 심하게 떨렸다.이, 이, 이……전국에 한 송이밖에 없는 천조국 국주의 궁궐에서 정성껏 키워낸 진기한 품종, 천조국의 국화, 천어화였다.“이… 이 꽃은….”진중기는 두 손으로 천어화를 받들고 조심스럽게 염구준을 바라보았다.그는 긴장
“손혜린?”손혜린 세 글자를 보자 손태석은 좋았던 기분이 다 사라지고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5년 전, 그들이 손중천에 의해 가문에서 내쫓기는 상황을 만든 범인이 바로 손혜린이었다.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악랄하기까지 한 조카.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칼춤을 추더니 끝끝내는 손영그룹 부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평소에 그와 진숙영에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고 툭하면 월급을 삭감하거나 주기로 한 보너스를 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손 사장.”하지만 전화를 안 받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을 알기에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로….”탁!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혜린은 인사자료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손태석 씨, 진숙영 씨, 오늘 부로 해고예요.”“난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가문에서 쫓겨난 당신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여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죠.”“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당신들 그 잘난 사위 염구준이 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요? 그 인간이 할아버지한테 선물이랍시고 관짝을 보냈어요!”쾅! 두드러지게 낡고 초라한 거실에서, 손태석이 벼락에 맞은 듯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염, 염구준... '어르신님 칠순 잔치에 관을 선물로 보내다니?! 장수용 황금 불상을 준비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불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게 어떻게 관으로 바뀌었지?!'"황금, 황금 불상 여기에 있어요."옆에서 진숙영의 목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떨렸고, 손을 뻗어 거실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그녀는 마치 냉기 가득한 지하에 떨어진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망했다!그들이 힘들게 모은 돈과 딸이 목욕탕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이 작은 황금 불상을 사는 데 사용했다. 그건 다 어르신의 칠순 잔치 자리에서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염구준이 생일잔치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이런 어리석은 짓까지 해버리게 된 것
'발신- 주작'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야 염구준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엔 아직도 살기가 느껴졌다.'용운 그룹이 뭐길래?전 신전 전주의 수단이 무엇이지?’3일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오늘은 손영 그룹과 용운 그룹이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었다."용운 그룹이라니!"용운 그룹의 거대한 사옥 앞에서 손혜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120여 층이나 되는 건물은 높이만 해도 400미터가 넘었는데 청해의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용씨 집안으로, 명성이 자자한 재벌가였다. 용운 그룹은 전국에 이미 수많은 지사를 두고 있었다. 손씨 집안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두 가문 사이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안녕하세요."손에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손혜린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차분하게 로비를 걸었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요염한 허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안내 데스크 여직원을 향해 미소 지은 손혜린이 용건을 말했다."용 대표님께 전해줄래요?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에요. 협력 프로젝트 건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열두 명의 안내 데스크 여직원들은 모두 눈처럼 희고 아름다웠다. 손혜린을 쓱 훑어본 한 여직원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초대장이라니, 손혜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합의를 마친 프로젝트였다. 오늘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날 일이란 말이다.용운 그룹 대표를 만나려면 초대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 없었다. 손태석, 이 노망난 늙은이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방금 말했잖아요, 나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라고요."손혜린이 정색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예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건데, 초대장이라니요? 이게 어떤 계약인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1조가 넘는 큰 프로젝트라고요. 계약에 차질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당장 대표님께 연락해요.
가문에서 쫓겨나 이곳 청해에 정착하여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다. 가까스로 이류 가문으로 거듭난 그의 총자산은 1조를 조금 넘어섰다. 이번 계약이 무사히 체결된다면 손씨 집안의 지위가 상승하는 건 물론 당당히 청해의 일류 가문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계약... 얼른 계약을... 잠깐!"떨리는 입술로 연신 계약을 중얼거리던 손중천이 불쑥 고개를 돌리며 양진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중요한 소식을 내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책임자가 누구야? 혜린이 아니었나? 어찌 내게 일언반구도 없어!"양진이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혜린 아가씨께서 직접 어르신을 뵙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제가 연락해 볼까요?""됐어."손중천이 고개를 저었다. 손씨 집안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고작 통화로 끝낼 수는 없었다."혜린이 호출해."다시 소파에 앉은 손중천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반 시간 내로 당장 달려오라고 해."양진이 서둘러 손혜린에게 연락했다. 어르신은 어쩐지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반 시간 뒤, 시퍼렇게 질린 손혜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별장에 들어섰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죄송합니다. 제가... 망친 것 같아요."진작 알아챘던 손중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눈빛만으로도 손혜린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쓸모없는 것!손혜린의 본명은 진혜린이었는데 사실 손씨 집안의 먼 친척이었다. 손씨 집안은 자손이 부족했다. 수없이 많은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자식을 볼 수 없었던 맏아들 손태진은 하는 수 없이 방계의 사내아이를 양자로 입양했다. 둘째 아들 손태산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겨우 결혼했다. 그리고 그의 셋째 아들 손태석은 다리를 절었으며 슬하에 딸 하나밖에 없었다.5년 전, 그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진혜린을 손씨 집안의 아가씨로 들였다. 그녀의 부추김으로 손태석 일가는 가문에서 쫓겨났으며, 어처구니없는 가짜 결혼 사건도 그해 벌어진 일이었다. 손중천은 자기 친
염구준의 넓은 어깨를 뒤에서 바라보던 손태석과 진숙영은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위 녀석이 지금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건가?"구준 씨."입술을 깨문 손가을이 염구준 곁으로 다가가며 그의 옷소매를 슬며시 끌어당겼다. 눈빛이 어쩐지 퍽 간절해 보였다.부모님에겐 이 일자리가 꼭 필요했다. 용운 그룹과의 중요한 거래인만큼 손씨 어르신도 안달 내고 있을 게 뻔했다."괜찮아."염구준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으며 손가을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윽고 출입문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손혜린,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말고 썩 꺼져. 아니라면 거기서 경호원 노릇이라도 할 셈이야? 어쩌지, 너 같은 건 필요 없는데."손혜린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살면서 이딴 취급은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그녀였다. 그러나 손태석 부부를 데려가지 못한다면 손중천이 그녀를 죽이려 들 것이다."염구준!"화를 억누른 그녀가 짓씹듯 말했다."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우린 부부의 인연도 맺었던 사이잖아. 아무리 형식적인 부부였다지만 난 당신 전처라고! 당장 두 사람 내보내. 그럼 우리 사이의 빚도 없던 셈 칠게."전처라고? 어찌 이런 뻔뻔한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이혼 서류가 청해의 길거리 어딘가에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이 결혼은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완전히 깨진 거나 다름없었다.그의 아내는 오직 손가을 한 사람뿐이었다."간단해."아이를 품에 안은 염구준이 출입문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부탁할 땐 성의를 보여줘야지. 다시 싹싹 빌어.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는 걸 명심해. 설마 내가 비는 방법까지 가르쳐 줘야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손혜린이 악에 받친 눈빛으로 이를 꽉 악물었다. 피처럼 붉은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당장이라도 손바닥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감히 염구준 따위가, 자신에게 부탁을 운운하는 건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자식.'"염 서방..
그러나 지금은 퇴역한 사위가 돌아와 그들의 복수를 대신해 주고 있지 않은가! 비록 전우의 인맥일지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지라도 괜찮았다.여전히 아이를 안은 채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염구준이 무심하게 내뱉었다."손혜린, 잊지 마. 3일 뒤면 희주 생일이야. 생일 연회에 너랑 서재원, 두 사람 모두 희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거야. 같잖은 자존심 지키려다 망하고 싶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봐."손혜린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간신히 부들거리며 화를 억눌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계약이었다. 용운 그룹과 계약을 체결한 뒤 복수해도 늦지 않았다. 그녀는 반드시 염구준과 손가을 집안을 모조리 박살 내겠다고 다짐했다."정말 죄송해요. 두 분께 사과드립니다."손혜린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아내며 간신히 미소를 쥐어짰다."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용운 그룹에 연락해서 계약 준비를 하라고 할게요. 바로 집 앞에 제 차를 세워두었으니 두 분을 회사까지 모실겠습니다."떠나는 순간 그들의 뒤에 있는 염구준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5시간이나 허리를 숙이고 있었더니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장인어른, 장모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염구준과 손가을이 나란히 서서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손혜린을 흘깃 쳐다본 염구준이 보란 듯이 말을 보탰다."용운 그룹과의 계약 건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두 분께 차려진 몫은 꼭 받게 되실 겁니다."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들에게 차려진 몫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동안 무수한 거래를 성사했음에도 배당금이나 상여금은 전부 손혜린 차지였다. 이번 계약을 마지막으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상여금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다."다녀오지."씁쓸한 표정으로 인사하던 손태석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진숙영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장인, 장모를 눈으로 배웅하던 염구준의 입가에 희미한
그러나 용성우는 두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손태석의 손을 맞잡더니 이번에는 진숙영과도 악수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손 선생님, 사모님, 두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께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번 협상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두 분을 모셔야 하는 것을... 혹 우리 직원들이 두 분을 홀대한 건 아니겠지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부디 두 분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가져오게나!"재빨리 다가간 경호원이 정교한 순금 카드를 용성우 앞에 공손하게 내밀었다."이건 저희가 특별 출시한 VVIP 카드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지요."용성우는 손태석과 진숙영 앞에 조심스럽게 순금 카드를 내밀었다."이 카드를 소지한다면 우리 용씨 가문 휘하의 모든 장소를 전액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주시지요!"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가 손태석과 진숙영 부부에게 이다지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심지어 이건 공손함을 넘어서 마치 비위를 맞추는 것 같지 않은가? 대체 왜?두 사람은 손씨 가문에서 쫓겨난 몸이었다. 기업 내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고 있기도 했다. 복지나 상여금은 차치하고 툭하면 기본급도 깎이는 처지였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를 제공받는 셈이었다.그런데 오늘, 그 대단하신 용성우가 두 사람을 예우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VVIP 순금 카드를 내민 것이다. 게다가 손씨 어르신과 손 부사장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사람들은 혹시 카드의 주인이 뒤바뀐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손태석은 차마 용성우가 내민 귀한 선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주님, 어찌 저희에게 이런 귀한 걸 내어주시는 겁니까. 이것 참... 그저 황송
지금 두 사람의 모습은 너무 초라해서 고귀함이란 찾아볼 수 없었다.“엊저녁에 경고했었죠. 그런데 당신은 계속 한설 이모를 욕보였어요. 이것이 업보에요.”손가을은 성모 마리아가 아닌 이상 그들을 가엽게 여기지 않았다.두 사람은 자업자득으로 원래 없던 일을 크게 만들어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그들 회사를 무너뜨리는 것도 손가을의 한마디면 끝이었다.“손 대표님, 제가 알아보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잘못했어요.”촤아악!정미숙은 스스로 뺨을 때리며 연신 사과했다.창백한 얼굴이 순식간에 빨갛게 부어올랐지만 손가을이 화를 푼다면 자신의 뺨을 얼마든지 때려도 괜찮았다.지금처럼 여러 회사에서 압박을 한다면 얼마 가지 않아 집안이 망하고 아무것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수작 부리지 마세요. 경고했을 때 멈췄어야죠.”손가을은 전혀 사정을 봐주지 않았다.회사를 경영하면서 이런 사람들을 수도 없이 봤었다.지금 황건 부부는 울고불고 죽을 것처럼 행동하지만 저들이 재기하는 순간 미친듯이 반격하고 복수할 것이다.“으어어엉.”“흑흑…”노부부는 서로 부둥켜안고 한설에게 모질게 군 것을 후회하며 통곡했다.옆에서 그 장면을 보던 염걸은 어안이 벙벙했다.무슨 일이 발생했는지 전혀 모르는 그는 양쪽을 번갈아 보기만 했다.북쪽 변경에서 황건과 정미숙이 상업계에 미치는 영향은 부대표인 그보다 훨씬 컸다.“아니, 황 대표님, 왜 이러십니까?”염걸이 의아해서 물었다.그제야 염구준 부부가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염걸, 네가 나서서 나와 염 선생의 모순을 해결해주면 내가 절반 재산을 줄게.”황건은 지푸라기라도 잡은 것처럼 거절할 수 없는 거액의 사례금을 제기했다.절반 재산은 천문학적인 금액이라 평범한 사람은 평생 노력해도 얻을 수 없었다.“황 대표님, 정말입니까?”염걸은 두 눈을 번쩍 뜨며 돈의 유혹을 이기지 못했다.이 돈만 있다면 부대표고 나발이고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면서 일하지 않고도 평생 늙어 죽을 때까지 여유롭게 살 수 있었다.“그럼. 진
오늘도 조용히 지내기는 글렀다.두 사람은 구경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먼저 서류를 건네고 이 일을 처리하려고 생각했다.집 앞에서 일이 벌어졌으니, 못 본 것처럼 지나치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저기요. 여기는 염씨네 사무실이에요. 사원증을 보여주시겠어요?”그때 젊은 경비원이 염구준 부부의 앞을 막더니 웃으면서 말했다.이것은 상대방의 직책이니 염구준도 난처하게 굴지 않고 사원증을 보여주었다.“이건…”사원증을 보던 경비원은 두 눈을 크게 뜨고 두 사람을 의아하게 쳐다보았다.이것은 염진의 사원증, 북염빌딩 주인의 것이었다.“들어가도 됩니까?”염구준은 경비원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 먼저 물었다.순간 경비원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두 사람을 만난 적이 없어서 사원증의 주인이라고 보기 힘들었다.사원증 같은 것은 얼마든지 주울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염 부대표님, 이쪽에 문제가 생겼는데 잠시 오셔서 확인해 보시겠어요?”경비원은 뭔가 떠올랐는지 옆을 보며 도움을 청했다.스스로 결정하지 못해서 상사에게 넘길 수밖에 없었다.“뭐 하는 거야? 경비도 제대로 못 서?”염걸이 못마땅해하며 짜증을 부렸다.그는 황건 부부를 설득하지 않고 입구로 다가왔다.두 사람에게서 받은 스트레스를 경비원에게 화풀이하는 격이었다.자신의 신분을 잘 알고 있는 경비원은 상사가 욕을 해도 고개만 푹 숙였다.“염걸 삼촌.”염구준이 그를 보자마자 다정하게 불렀다.“구준이구나. 무슨 일로 여기 왔어?”염걸의 표정은 무뚝뚝하고 목소리는 싸늘했다.그 표정으로 보아 염구준을 싫어하고 적대시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평소 염구준이 청해에 있고 염씨 가문의 일에 관여하지 않기 때문에 염진이 물러나게 되면 몇몇 부대표 중에서 대표를 선발할 가능성이 높았다.그런데 지금 염구준이 돌아온 것이었다.게다가 염진의 사원증까지 들고 나타나서 은근 짜증이 났다.염구준은 상대방의 태도를 보고 대략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아챘다.“누군가 염씨 가문의 산업에 눈독을 들여서
“가주님, 기현 도련님이 안령산에서 반나절이나 무릎을 꿇고 있습니다. 사람을 보내서 데려올까요?”지금 안령산에 주작이 백 명이 넘는 정예병을 이끌고 안령산을 지키고 있었다.반보천인이 진을 치고 있는 곳에 일반인이 가도 헛수고였다.“됐어. 사소한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놈은 둬도 쓸모없어.”안성휘는 방금 흑풍에게 한방 먹어서 화가 단단히 나 있었다.게다가 그처럼 이기적인 사람은 오로지 자기 생각만 하고 북쪽 변경을 독점하려는 생각만 하고 있을 뿐, 누가 죽든 말든 알 바가 아니었다.아무리 친자식이라도 예외는 아니었다.안기현은 그저 장기말일 뿐, 예전부터 자신의 계획이 들통나면 책임을 떠넘기기 위해 곁에 두었다.이른 아침, 염씨 저택.“이모, 아버지 아직도 일어나지 않았어요?”염구준은 아버지가 보이지 않아 한설을 보자마자 물었다.“어젯밤에 감기 걸려서 방금 약 먹고 잠들었어. 너한테 이걸 주면서 회사에 가져가라고 하더라.”한설은 서류 봉투를 내밀며 염진의 말을 전달했다.역시 염구준은 가족 산업을 처리할 운명을 피할 수 없었다.“알았어요. 아버지는 잘 돌봐주세요.”염구준은 별 생각 없이 서류 봉투를 받았다.그리고 손가을과 아침을 먹고 북염빌딩으로 향했다.기억하기론 아주 어렸을 때 몇 번을 가보고, 그 이후로는 어떤 이유 때문에 가지 않았다.“가을아, 무슨 걱정이 있어?”차에서 아내가 오늘따라 수상하다는 것을 느낀 염구준이 다정하게 물었다.“회사 일 때문에 그래. 아래에서 재촉하고 있는데 아직도 대체 원재료를 해결하지 못했어.”손가을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전에 남편이 해결해 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지금도 좋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그래도 원망하지 않았다.그녀는 어려운 문제를 두고 함께 직면하고 싶지 책임을 떠넘기고 싶지 않았다.“걱정 마. 곧 상황이 바뀔 거야.”사실 염구준도 그 일을 잊지 않았다.“알았어.”손가을도 그의 능력을 의심한 적이 없었다.어느덧 두 사람은 북염빌딩에 도착했다.여기가 바로 염씨
“존주님 오셨으면 나오시지요.”안성휘는 옷맵시를 정리하더니 위선적인 미소를 지으며 문 쪽으로 달려갔다.스스슥!그때 검은 그림자가 스치면서 앞에 나타났다.바로 흑풍이었다.“엊저녁에 왜 염구준을 공격했어요?”첫마디가 책망이었다.방금 안씨 가문이 염구준을 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본인의 행적이 폭로될까 봐 달려온 것이었다.그 탓에 모든 계획이 엉망이 되었다.안성휘는 흑풍의 태도를 보고 안색이 굳어졌다.“흥, 흑풍. 내가 봐준다고 해서 기어오르지 마. 여기는 안씨 가문이야. 내가 무엇을 하든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지금까지 이 가문에서 이런 태도로 그에게 말한 사람은 없고 하물며 외부인도 없었다.만약 다른 사람이 이런 태도로 말했다면 바로 죽였을 것이다.하지만 흑풍의 실력도 만만하지 않으니 안성휘의 앞에서 기죽지 않았다.“천맹그룹을 위해 일을 도모하면서 적지 않은 돈을 가져갔어요. 당신의 신분을 잘 기억했으면 좋겠어요. 다시 멋대로 나서면 나도 가만 있지 않겠어요.”두 사람은 더는 설득하지 못하고 갈등만 심해졌다.이대로 가다가 언제든 싸울 것 같았다.이렇게 강자들은 모두 오만함을 갖고 있었다.“널 두려워할 줄 알아? 황계웅도 아무 말이 없는데, 네가 뭐라고 지껄여?”쿵!급기야 안성휘는 일어서서 강력한 기운을 발사하며 먼저 제압하려 했다.그도 반보천인 고수였다.흑풍은 강한 기운을 느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듯 경멸에 찬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이제 반보천인에 도달했으면서 내 앞에서 나댈 자격이 없어요.”그도 똑같이 기운을 발사하면서 순식간에 안성휘를 제압했다.진정한 최강 반보천인 고수인 흑풍은 지금 부상을 입었지만 평범한 반보천인의 실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그러니 이제 막 반보천인에 도달한 사람은 안중에도 없었다.“응?”안성휘은 예상이 빗나간 것을 알고 안색이 굳어졌다.흑풍의 실력이 이렇게 강할 줄은 생각도 못했다.지금까지 그가 얻은 소식은 흑풍이 염구준에게 계속 쫓기고 있다는 것이 전부였다.‘그렇다면 염구준은 얼마
옆에서 흥미진진하게 구경하던 사람들의 의견이 분분했다.“정말 그렇게 약하나?”“저 사람 황천그룹의 대표 황건이잖아. 북쪽 변경의 의류 사업은 대부분 점령하고 있어서 돈이 얼마나 많은데.”“상대방은 염 회장이야. 여기서 명망이 높은 분인데 요새 염씨 가문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대.”“저 두 사람은 염 회장의 아들과 며느리인가 보지? 무슨 일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왠지 눈에 익네.”북쪽 변경에서 두 세력이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구경꾼들은 점점 모여들었다.“이모, 화 풀렸어요?”주변을 살피던 손가을이 그녀에게 물었다.“그래. 돌아가자. 상대하기도 귀찮아. 오늘 기분 좋았는데 다 망쳤어.”한설은 손가을의 말뜻을 알아채고 이쯤에서 그만두기로 했다.지금 회사에 벌어진 일만해도 충분히 버거웠다.“가자.”염진은 사업비밀이 유출된 일을 생각하면 기분이 우울했다.뒤돌아섰을 때 뒤에서 정미숙이 미친 것처럼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염씨 가문은 곧 멸망할 거야. 언제까지 버틸지 두고 보자! 그때면 내가 춤을 추면서 파티를 열 거야!”탁!“내 이름 기억하세요. 손가을입니다. 회사가 망하면 나한테 찾아와서 사정하지 마세요.”손가을은 카리스마 넘치게 한마디 남기고 바로 떠났다.어떤 일들은 입으로 하는 것보다 실제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 더 확실했다.“청해 사업계 여왕 손가을?”그때 그녀의 신분을 알아챈 누군가 깜짝 소리를 질렀다.‘손가을’이라는 이름은 자주 들어봤지만 평소 자신과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 크네 신경 쓰지 않았을 뿐이었다.그러고 보니 두 사람의 얼굴이 많이 닮았다.주변에서 수근대는 말을 듣던 정미숙과 황건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부랴부랴 일어서서 자기 회사를 지키러 가기 바빴다.황천그룹이 아무리 대단해도 손씨 그룹에 비교할 것이 되지 못했다.한편, 집으로 돌아온 염진은 서재로 돌아가 구체적인 해결책을 생각하고 염구준 부부는 휴식하러 방으로 들어갔다.어쨌든 염구준의 입장에서 하늘이 무너지지 않는 한 모두 작은 일이었다.지금
“늙은 것이 나대니까 젊은 것도 같이 나대네. 잡아서 내 물건 빼앗아.”정미숙은 계속 듣기 거북한 말을 하면서 지시를 내렸다.평소 염씨 가문의 세력을 고려해야 하기에 이 정도로 날뛰지 못했는데 지금은 염씨의 가세가 기울어졌으니 무서울 게 없었다.스스슥!“함부로 움직이지 마.”그때 어디서 나타났는지 열 명 넘는 무술인이 경호원들을 가볍게 제압했다.그들은 염구준이 미리 안배한 경호원들이었다.방금 은밀히 지켜보고 있다가 중요한 순간에 나타난 것이었다.“손 대표님, 전부 제압했습니다. 다른 지시는 없습니까?”경호원 대장인 호찬이 공손하게 물었다.이번 행차에 그도 따라왔지만 그동안 몰래 숨어서 미행했었다.“저 여자가 이모한테 무례하게 굴었어요. 뺨을 쳐주세요.”손가을은 약간의 벌을 주려고 지시를 내렸다.한설과 만난 이후로 그녀를 가족처럼 대해주어서 너무 고마웠었다.“가을아, 고마워.”감동받은 한설은 자신의 안목이 틀리지 않은 것이 너무 기뻤다.착하고 사리 밝은 며느리가 점점 마음에 들었다.마구잡이로 날뛰던 정미숙은 아직도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는지 계속 소리를 질렀다.“건방진 것들! 염씨 가문이 무너지면 너희들 가만두지 않을 거야!”촤아악!호찬은 여자라고 봐주지 않고 그녀에게 뺨을 날려 바닥에 쓰러트렸다.반보천인에게 얻어맞는 일은 평생 가도 다시는 없을 것이니 영광스럽게 여겨야 할 것이다.물론 무술인의 기운을 썼다면 이미 죽었을지도 모른다.“미숙아, 어떤 놈이 때렸어?”바로 그때 한 남자가 인파를 뚫고 나오면서 정미숙을 일으켜 세웠다.그는 한설의 남편 황건이었다.북쪽 변경에서 꽤 큰 패션 회사의 사장으로서 재산이 많았다.“여보, 간식을 사러 간다면서 길을 잃었어?”마침 염구준이 장난소리를 하면서 다가오더니 주변 상황을 대충 훑어보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아챘다.“염 회장, 당신 집 사람이 내 아내를 때렸어. 어떡할 거야?”황건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명령조로 말했다.예전 같으면 찍소리도 못했는데 지금 염씨 가문이
“영감탱이가 의심이 많아서 그 손에 죽은 경호원이 열 명이 넘어.”염구준은 더는 말하지 않았다.나중에 고행관을 휘하에 두더라도 한동안 지켜볼 생각이었다.사람의 마음은 헤아리기 어려워서 항상 조심해서 나쁠 것이 없었다.염구준 부자는 다시 습지 공원으로 돌아가면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멀지 않은 포장마차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한설, 염씨 가문이 망했는데 산책하러 나왔어? 정말 훌륭한 아내다.”“정미숙, 내가 뭘 하든 무슨 상관이야? 헛소리하지 마!”나이 먹을 대로 먹은 두 여자는 서로 미워하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고 말싸움을 했다.두 여자 모두 명문가 출신이라 어려서부터 고상한 기품을 기른 덕분이었다.사실은 두 사람 어려서부터 알고 지낸 사이인데,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 마음이 안 맞고 언제부터 서로 비꼬기 시작했다.지금은 염씨 가문의 사업비밀이 유출된 사건이 동네방네 소문이 났으니 정미숙의 성격에 이 기회를 가만둘 리가 없었다.“사장님, 저희 생선구이 다 됐어요?”한설의 팔짱을 낀 손가을이 멍하니 싸움구경을 하는 사장에게 말했다.그녀는 괜히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 않아 빨리 물건을 갖고 떠날 생각이었다.일부러 생트집을 잡는 막돼먹은 여자와 시끄럽게 싸울 필요가 없었다.“아, 네. 2만 원입니다.”그제야 정신을 차린 사장은 손을 뻗어 음식을 건넸다.사장도 지나가는 사람들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고 있었다.“저 여자한테 팔지 마세요. 여기 물건 내가 다 살게요.”정미숙은 입꼬리를 올리며 득의양양하게 말했다.그녀는 한설과 같은 가정주부와 달리 손에 실권과 큰돈을 쥐고 있었다.“미친년, 어디서 돈지랄이야!”오늘은 며느리가 있어서 그런지 한설은 유난히 신경질적으로 굴었다.여기 특산물을 사주기로 했는데 하나도 사지 못하게 되어서 몹시 짜증났다.“나 돈이 있어. 어쩔 건데?”정미숙은 욕을 먹어도 속이 시원했다.왜냐면 한설을 모든 사람들 앞에서 망신을 주는 기회는 많지 않았기 때문이었다.“주세요.
고행관의 안색이 점점 어두워졌다.자신이 곧 죽게 되었는데도 여전히 안씨 가문에 미칠 영향에 대해 걱정하고 있었다.“못 믿겠다면 나도 어쩔 수 없어. 난 그냥 대단한 고수가 변경에 왔다길래 대결하고 싶어서 온 거야.”지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상대방에게 혼란을 주어 안씨 가문에 피해가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염구준이 안씨 가문을 멸망시킬까 걱정되었다.“하, 대결하고 싶으면 당당하게 요구하면 되지, 뭐 하러 몰래 미행했어?”염구준은 그런 말을 절대 믿을 사람이 아니었다.말 속에 빈틈이 가득해서 애써서 은폐하려고 해도 헛수고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나를 죽이든 땅에 묻든 마음대로 해.”고행관은 설명을 할수록 더 많은 정보를 흘리는 것 같아 아예 입을 다물었다.정말 성실하고 거짓말을 잘하지 못하는 충직한 부하였다.“알았어. 그렇게 해줄게.”상대방의 신분을 알아챈 염구준은 바로 손을 들어 그의 숨통을 끊어버렸다.적대 관계인 이상 아무리 충직한 부하라도 살려줄 이유는 없었다.“구준아, 잠시만!”고행관의 목숨이 위태로울 때 염진이 나서서 말렸다.염구준이 손동작을 멈추고 물었다.“아버지, 더 물어볼 게 있어요?”그는 고행관을 살려둘 생각이 없었다.“풀어줘. 안씨 가문의 지시를 받고 움직였을 뿐이야.”염진은 적을 위해 사정했다.전에 말했듯이 전통적인 영향을 받아 충성스러운 사람들을 가장 존경했었다.“알았어요. 아버지 말대로 풀어 줄게요. 어차피 죽든 살든 중요하지 않으니까요.”염구준은 팔을 홱 휘둘러 고행관을 아무 곳에나 던져버렸다.전신경 고수는 그에게 어떤 위협도 되지 않으니 괜히 이런 인간 때문에 기분을 더럽힐 일도 없었다.“콜록콜록!”고행관은 바닥에 엎드려 격렬하게 기침을 했다.순간 마음이 복잡했다.동료들은 그를 버리고 떠났는데 오히려 적이 그를 살려달라고 사정했다.쿵!고행관은 가까스로 일어나더니 쿵하고 바닥에 무릎을 꿇고 염진에게 큰절을 올렸다.“염 회장님,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주인을 섬길 수
그들은 북쪽 변경 출신이라 남쪽 청해 지대의 강호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붙어볼 것도 없어. 넌 내 상대가 될 자격도 없거든.”염구준은 아주 명쾌하게 거절했다.상대방 실력이 너무 약해서 싸울 흥미도 불러일으키지 못했다.그래도 이 사람들의 정체는 궁금했다.“너희들 만능 전당포의 사냥꾼이야, 아니면 천맹그룹의 장기말들이야? 아니면 흑풍의 사람인가?”염구준은 이 사람들의 배후가 세 개 중에 있다고 생각했다.“떠보지 마. 우린 말하지 않을 거야. 내 공격을 받아라!”자존심이 상한 우두머리는 바로 칼을 꺼내 염구준에게 돌진했다.처음부터 전력으로 싸울 기세였다.“빨리 염진을 잡아!”나머지 일행도 가만 있지 않고 빠른 속도로 염진에게 돌진했다.그들의 실력으로는 애송이들이나 잡을 수 있을 것이다.쿵!바로 그때 강력한 기운이 그들 앞을 공격하자 바닥에 깊은 구덩이가 나타났다.일행이 정신을 차리고 보았을 때 대장은 이미 염구준의 손에 멱살을 잡히고 있었다.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전신 경지에 도달한 대장은 꼴 좋게 패배했다.단번에 패배한 것만 봐도 상대방의 실력이 막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살고 싶으면 배후를 말해.”염구준은 대장의 멱살을 잡고 앞으로 걸어갔다.놈들이 앞뒤를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면 그도 봐줄 것도 없었다.“이놈은 강적이야. 하지만 사장은 우리한테 은혜를 베풀었다. 너희들 절대 말하면 안 돼.”대장은 혼신의 힘을 다해 부하들에게 경고했다.방금 공격했을 때 염구준이 어떻게 반격했는지도 보지 못하고 패배하고 말았다.상대방의 실력은 그보다 한참이나 위라는 것을 설명했다.“충성심이 강하네. 안타깝게도 우린 적이라서 말이야.”염구준은 난폭하는 기운을 그의 몸속에 주입하여 장기를 파괴했다.적대 관계라면 잔인하게 나와도 탓할 자격이 없었다.만약 오늘 실력이 약한 사람이 염구준이라면 이 사람들도 똑같이 사정을 봐주지 않았을 것이다.“아아악!”대장은 장기가 비틀어지는 고통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마지막까지 입을 열지 않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