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혜린?”손혜린 세 글자를 보자 손태석은 좋았던 기분이 다 사라지고 순식간에 표정이 굳었다.5년 전, 그들이 손중천에 의해 가문에서 내쫓기는 상황을 만든 범인이 바로 손혜린이었다.거만하고 이기적이며 악랄하기까지 한 조카.목적을 위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칼춤을 추더니 끝끝내는 손영그룹 부사장 자리까지 꿰찼다. 평소에 그와 진숙영에게 모욕적인 말을 서슴지 않았고 툭하면 월급을 삭감하거나 주기로 한 보너스를 주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손 사장.”하지만 전화를 안 받으면 또 한바탕 난리가 날 것을 알기에 그는 억지 미소를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로….”탁!수화기 너머로 무언가 던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손혜린은 인사자료를 바닥에 내팽개치더니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손태석 씨, 진숙영 씨, 오늘 부로 해고예요.”“난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가문에서 쫓겨난 당신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 주었어요. 그래서 당신들이 여태 잘 먹고 잘 살 수 있었죠.”“그런데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당신들 그 잘난 사위 염구준이 할아버지 생신 잔치에서 무슨 짓을 벌였는지 알아요? 그 인간이 할아버지한테 선물이랍시고 관짝을 보냈어요!”쾅! 두드러지게 낡고 초라한 거실에서, 손태석이 벼락에 맞은 듯 순간적으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염, 염구준... '어르신님 칠순 잔치에 관을 선물로 보내다니?! 장수용 황금 불상을 준비했는데, 어떻게 된 거지?!불상은 어디로 갔을까? 그게 어떻게 관으로 바뀌었지?!'"황금, 황금 불상 여기에 있어요."옆에서 진숙영의 목소리가 무의식적으로 떨렸고, 손을 뻗어 거실 구석진 곳을 가리켰다. 그녀는 마치 냉기 가득한 지하에 떨어진 것처럼 온몸이 떨렸다.망했다!그들이 힘들게 모은 돈과 딸이 목욕탕에서 일하면서 모은 돈을 모두 이 작은 황금 불상을 사는 데 사용했다. 그건 다 어르신의 칠순 잔치 자리에서 그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염구준이 생일잔치 자리에서 소란을 피우고 이런 어리석은 짓까지 해버리게 된 것
'발신- 주작'메시지를 전송하고 나서야 염구준이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그의 눈엔 아직도 살기가 느껴졌다.'용운 그룹이 뭐길래?전 신전 전주의 수단이 무엇이지?’3일은 눈 깜짝할 새에 지나갔다.오늘은 손영 그룹과 용운 그룹이 계약을 체결하는 날이었다."용운 그룹이라니!"용운 그룹의 거대한 사옥 앞에서 손혜린은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었다. 120여 층이나 되는 건물은 높이만 해도 400미터가 넘었는데 청해의 랜드마크나 다름없었다. 이 건물의 주인은 최근 몇 년 사이 급부상한 용씨 집안으로, 명성이 자자한 재벌가였다. 용운 그룹은 전국에 이미 수많은 지사를 두고 있었다. 손씨 집안은 그에 비하면 그야말로 새 발의 피였다. 두 가문 사이의 격차는 실로 어마어마했다."안녕하세요."손에 가죽 서류 가방을 든 손혜린이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차분하게 로비를 걸었다. 그녀의 가느다랗고 요염한 허리가 유독 눈길을 끌었다. 안내 데스크 여직원을 향해 미소 지은 손혜린이 용건을 말했다."용 대표님께 전해줄래요?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에요. 협력 프로젝트 건으로 이렇게 찾아뵙게 되었습니다."열두 명의 안내 데스크 여직원들은 모두 눈처럼 희고 아름다웠다. 손혜린을 쓱 훑어본 한 여직원이 그림 같은 미소를 지으며 사무적인 목소리로 말했다."초대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초대장이라니, 손혜린의 낯빛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미 합의를 마친 프로젝트였다. 오늘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끝날 일이란 말이다.용운 그룹 대표를 만나려면 초대장이 필요하다는 말을 전혀 들어본 적 없었다. 손태석, 이 노망난 늙은이가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이다."방금 말했잖아요, 나 손영 그룹 부사장 손혜린이라고요."손혜린이 정색하며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거의 성사된 거나 다름없는 프로젝트예요. 계약서에 사인만 하면 되는 건데, 초대장이라니요? 이게 어떤 계약인지 몰라서 그러나 본데, 1조가 넘는 큰 프로젝트라고요. 계약에 차질이 생기면 당신이 책임질 거예요? 당장 대표님께 연락해요.
가문에서 쫓겨나 이곳 청해에 정착하여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올라왔다. 가까스로 이류 가문으로 거듭난 그의 총자산은 1조를 조금 넘어섰다. 이번 계약이 무사히 체결된다면 손씨 집안의 지위가 상승하는 건 물론 당당히 청해의 일류 가문으로 올라설 수 있었다. "계약... 얼른 계약을... 잠깐!"떨리는 입술로 연신 계약을 중얼거리던 손중천이 불쑥 고개를 돌리며 양진을 향해 눈살을 찌푸렸다."이렇게 중요한 소식을 내가 몰랐다는 게 말이 되나! 책임자가 누구야? 혜린이 아니었나? 어찌 내게 일언반구도 없어!"양진이 그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혜린 아가씨께서 직접 어르신을 뵙고 말씀드리고 싶었던 게 아닐까요? 제가 연락해 볼까요?""됐어."손중천이 고개를 저었다. 손씨 집안의 미래가 걸린 일인데 고작 통화로 끝낼 수는 없었다."혜린이 호출해."다시 소파에 앉은 손중천이 엄숙한 표정을 지었다."반 시간 내로 당장 달려오라고 해."양진이 서둘러 손혜린에게 연락했다. 어르신은 어쩐지 잔뜩 화가 난 것 같았다.......반 시간 뒤, 시퍼렇게 질린 손혜린이 고개를 푹 숙인 채 별장에 들어섰다. 당장이라도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죄송합니다. 제가... 망친 것 같아요."진작 알아챘던 손중천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눈빛만으로도 손혜린을 찢어 죽일 기세였다.쓸모없는 것!손혜린의 본명은 진혜린이었는데 사실 손씨 집안의 먼 친척이었다. 손씨 집안은 자손이 부족했다. 수없이 많은 치료를 받았지만 끝내 자식을 볼 수 없었던 맏아들 손태진은 하는 수 없이 방계의 사내아이를 양자로 입양했다. 둘째 아들 손태산은 주색에 빠져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작년에 겨우 결혼했다. 그리고 그의 셋째 아들 손태석은 다리를 절었으며 슬하에 딸 하나밖에 없었다.5년 전, 그는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진혜린을 손씨 집안의 아가씨로 들였다. 그녀의 부추김으로 손태석 일가는 가문에서 쫓겨났으며, 어처구니없는 가짜 결혼 사건도 그해 벌어진 일이었다. 손중천은 자기 친
염구준의 넓은 어깨를 뒤에서 바라보던 손태석과 진숙영은 말문이 턱 막혔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사위 녀석이 지금 그들의 편을 들어주고 있는 건가?"구준 씨."입술을 깨문 손가을이 염구준 곁으로 다가가며 그의 옷소매를 슬며시 끌어당겼다. 눈빛이 어쩐지 퍽 간절해 보였다.부모님에겐 이 일자리가 꼭 필요했다. 용운 그룹과의 중요한 거래인만큼 손씨 어르신도 안달 내고 있을 게 뻔했다."괜찮아."염구준은 여전히 아랑곳하지 않으며 손가을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이윽고 출입문을 향해 싸늘한 시선을 던졌다."손혜린, 같은 말 두 번 하게 하지 말고 썩 꺼져. 아니라면 거기서 경호원 노릇이라도 할 셈이야? 어쩌지, 너 같은 건 필요 없는데."손혜린이 이를 빠드득 갈았다. 살면서 이딴 취급은 한 번도 받아 본 적 없는 그녀였다. 그러나 손태석 부부를 데려가지 못한다면 손중천이 그녀를 죽이려 들 것이다."염구준!"화를 억누른 그녀가 짓씹듯 말했다."대체 이러는 이유가 뭐야? 우린 부부의 인연도 맺었던 사이잖아. 아무리 형식적인 부부였다지만 난 당신 전처라고! 당장 두 사람 내보내. 그럼 우리 사이의 빚도 없던 셈 칠게."전처라고? 어찌 이런 뻔뻔한 말을 내뱉을 수 있단 말인가?이혼 서류가 청해의 길거리 어딘가에 날아다니고 있을 것이다. 애초에 잘못된 이 결혼은 이혼 도장을 찍은 날 완전히 깨진 거나 다름없었다.그의 아내는 오직 손가을 한 사람뿐이었다."간단해."아이를 품에 안은 염구준이 출입문을 향해 무심한 시선을 던졌다."부탁할 땐 성의를 보여줘야지. 다시 싹싹 빌어. 이건 명령이 아니라 부탁이라는 걸 명심해. 설마 내가 비는 방법까지 가르쳐 줘야 하나? 제대로 하지 않는다면 네가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거야."손혜린이 악에 받친 눈빛으로 이를 꽉 악물었다. 피처럼 붉은 매니큐어를 바른 손톱이 당장이라도 손바닥을 파고 들어갈 것 같았다.감히 염구준 따위가, 자신에게 부탁을 운운하는 건가? '찢어 죽여도 시원찮은 자식.'"염 서방..
그러나 지금은 퇴역한 사위가 돌아와 그들의 복수를 대신해 주고 있지 않은가! 비록 전우의 인맥일지라도, 앞으로 두 번 다시 이런 기회가 없을지라도 괜찮았다.여전히 아이를 안은 채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염구준이 무심하게 내뱉었다."손혜린, 잊지 마. 3일 뒤면 희주 생일이야. 생일 연회에 너랑 서재원, 두 사람 모두 희주에게 무릎 꿇고 사과해야 할 거야. 같잖은 자존심 지키려다 망하고 싶으면 어디 마음대로 해봐."손혜린은 당장이라도 욕설을 퍼붓고 싶었지만 간신히 부들거리며 화를 억눌렀다. 지금 가장 중요한 건 계약이었다. 용운 그룹과 계약을 체결한 뒤 복수해도 늦지 않았다. 그녀는 반드시 염구준과 손가을 집안을 모조리 박살 내겠다고 다짐했다."정말 죄송해요. 두 분께 사과드립니다."손혜린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를 꾹꾹 참아내며 간신히 미소를 쥐어짰다."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네요. 용운 그룹에 연락해서 계약 준비를 하라고 할게요. 바로 집 앞에 제 차를 세워두었으니 두 분을 회사까지 모실겠습니다."떠나는 순간 그들의 뒤에 있는 염구준을 표독스럽게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악문 채 절뚝거리며 걸음을 옮겼다. 5시간이나 허리를 숙이고 있었더니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온몸이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러댔다."장인어른, 장모님, 조심해서 다녀오십시오."염구준과 손가을이 나란히 서서 미소 지으며 두 사람을 배웅했다. 손혜린을 흘깃 쳐다본 염구준이 보란 듯이 말을 보탰다."용운 그룹과의 계약 건은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두 분께 차려진 몫은 꼭 받게 되실 겁니다."두 사람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들에게 차려진 몫이라니. 가당치도 않았다. 그동안 무수한 거래를 성사했음에도 배당금이나 상여금은 전부 손혜린 차지였다. 이번 계약을 마지막으로 쫓겨나지나 않으면 다행이었다. 상여금 따위는 꿈도 꾸지 않았다."다녀오지."씁쓸한 표정으로 인사하던 손태석은 이내 기운을 차리고 진숙영을 이끌고 밖으로 나섰다.장인, 장모를 눈으로 배웅하던 염구준의 입가에 희미한
그러나 용성우는 두 사람을 거들떠 보지도 않은 채 쌩하니 스쳐 지나갔다. 손태석의 손을 맞잡더니 이번에는 진숙영과도 악수하며 반갑게 말을 걸었다."손 선생님, 사모님, 두 분을 이렇게 뵙게 되어 정말 영광입니다. 두 분께서 고생을 마다하지 않고 이번 협상을 위해 열과 성의를 다하셨다는 말씀 전해 들었습니다. 제가 직접 두 분을 모셔야 하는 것을... 혹 우리 직원들이 두 분을 홀대한 건 아니겠지요?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부디 두 분께서 너그럽게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참, 제가 자그마한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어서 가져오게나!"재빨리 다가간 경호원이 정교한 순금 카드를 용성우 앞에 공손하게 내밀었다."이건 저희가 특별 출시한 VVIP 카드입니다.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물건이지요."용성우는 손태석과 진숙영 앞에 조심스럽게 순금 카드를 내밀었다."이 카드를 소지한다면 우리 용씨 가문 휘하의 모든 장소를 전액 무료로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제 체면을 봐서라도 받아주시지요!"현장에 있는 모든 이들은 할 말을 잃은 채 눈만 도륵도륵 굴렸다.이게 지금 무슨 상황이지? 용씨 집안 가주 용성우가 손태석과 진숙영 부부에게 이다지도 공손한 태도를 보이다니? 심지어 이건 공손함을 넘어서 마치 비위를 맞추는 것 같지 않은가? 대체 왜?두 사람은 손씨 가문에서 쫓겨난 몸이었다. 기업 내에서도 가장 보잘것없는 직책을 맡고 있기도 했다. 복지나 상여금은 차치하고 툭하면 기본급도 깎이는 처지였다. 딱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생활비를 제공받는 셈이었다.그런데 오늘, 그 대단하신 용성우가 두 사람을 예우하며 세상에 단 하나뿐이라는 VVIP 순금 카드를 내민 것이다. 게다가 손씨 어르신과 손 부사장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으셨다.사람들은 혹시 카드의 주인이 뒤바뀐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손태석은 차마 용성우가 내민 귀한 선물을 감당할 수 없었다. 그러나 감히 거절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가주님, 어찌 저희에게 이런 귀한 걸 내어주시는 겁니까. 이것 참... 그저 황송
'왜냐하면 아우와 제수씨는 그분의 장인 장모거든.'용성우는 어안이 벙벙한 두 사람을 쳐다보며 드디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오늘 그는 실로 돈 보따리를 건네러 온 것이다. 손태석과 진숙영의 비위를 잘 맞출 수만 있다면 그분을 위해 큰 공을 세우는 것과 마찬가지였다.주군 앞에서 돈이 대수란 말인가?줄만 잘 탄다면, 그분 말 한마디에 하루아침에 10조, 20조도 벌 수 있었다."다들 이의 있나?"용성우의 지시에 따라 계약서가 회의실 대형 스크린에 공개되었다. 손중천을 비롯한 주위 사람들을 둘러본 그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없으면 이대로 계약하지."사람들이 스크린 속 조항들을 읽어내리기 시작했다. 손태석과 진숙영이 전적으로 책임지고 감독한다는 글자를 읽은 이들의 낯빛이 창백해졌다. 이건 치명적인 유혹인 동시에 날카로운 못이 되어 모든 이들의 심장을 아프게 찔러댔다.손영 그룹의 오너와 고위급 임원들은 모두 이 계약서가 의미하는 바를 명확히 알고 있었다. 계약서에 사인하는 즉시 모두들 손태석과 진숙영의 눈치를 보며 몸을 숙여야 했다.계약이 성사되는 대로 두 사람을 쫓아내려던 계획은 실행하기도 전에 물거품이 되었다. 그렇다고 거절하자니 5조라는 거액과 차후의 추가금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당연히 거절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혹 불만이 있는 건가?"사람들의 표정을 확인한 용성우가 코웃음 쳤다."그렇다면 계약은 없던 일로 하면 되겠군. 하면 아우와 제수씨는 우리 용운 그룹으로 모셔가도록 하겠네. 물론 5조짜리 프로젝트는 여전히 두 사람이 책임지고 말이야. 돈 좀 만져보겠다고 혈안이 된 다른 회사는 많으니까. 널린 게 협력 파트너 아니겠나?"예리한 말들이 비수가 되어 사람들에게 푹푹 내리꽂혔다. 용성우의 태도는 손중천과 손혜린의 모든 환상을 단숨에 깨뜨리는 것이었다. 이젠 결정을 내릴 시간이었다. 거절하면 몇조의 이윤이 눈앞에서 사라지는 걸 지켜봐야만 한다. 이류에서 일류로 거듭나려던 손씨 집안의 희망도 함께 사라질 테지. 그러나 계약서에 사인한
손중천이 그들을 쫓아내기 전, 빨간 포르쉐의 주인은 그녀였다. 그때의 교통사고로 인해 그녀는 아름다운 목소리를 잃었고 손씨 집안 아가씨라는 지위도 잃었으며 그 포르쉐마저 손혜린에게 빼앗겼다. 하루아침에 모든 게 그녀의 손을 떠나갔다. 그러나 지금은..."퇴역 정착금이라니 그게 얼마나 된다고."애틋한 눈빛으로 포르쉐 전시장을 바라보는가 싶더니 서서히 시선을 거두며 손가을이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곳에 낭비할 필요 없어. 난, 필요 없어. 게다가 포르쉐는 너무 비싸잖아."비싸다고? 염구준이 웃음을 터뜨렸다.전신전 전주에게 그만한 자금조차 없을까.전쟁터에서의 5년 동안 모든 지출은 그의 몫이었다. 최신형 전투기, 탱크, 전신전 전속 위성... 모두 어마어마한 비용이 들었다. 막말로 수중의 재산으로 나라 하나를 살 수도 있었다."이제부터 돈을 아끼겠다는 생각은 버려."염구준은 사랑스럽다는 눈빛으로 손가을을 쳐다보았다. 귀엽고 똑똑한 딸아이를 품에 안은 그가 아내의 가느다란 손목을 이끌고 포르쉐 전시장으로 걸음을 옮겼다.손가을은 여전히 만류하고 싶었지만 전시장에 들어선 순간, 로비 중심에 떡하니 전시된 최신형 붉은색 포르쉐, HBLY—GT가 그녀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막 출시된 한정 차량이었다. 매끄러운 차체도 매력적이었지만 무려 4인승이었다. 스포츠카의 멋스러움과 동시에 편안한 세단 역할도 톡톡히 해낼 수 있었다. 모델의 정식 명칭은 Honourable-Lady-GT이다. 즉, 가장 고귀하고 우아한 여성을 위한 차량이라는 뜻이었다. 전체 도시에 단 2대만 한정 출시된 것이다.옆에 놓인 스크린에 판매 정보와 매입가격이 적혀있었다. 무려 26억이었다."세, 세상에!"가격표를 확인한 손가을의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그녀가 예전에 몰았던 포르쉐는 기껏해야 2억 정도였다. 눈앞의 모델은 그것의 10배를 넘어섰다. 26억짜리 스포츠카를 무슨 수로 산단 말인가? 감히 시승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고객님 안녕하세요, 혹시 찾으시는 모델 있을까요?"생기발랄
마거봉은 등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억지로 태연하게 말했다. “존주님께서 시키신 대로 다 했으니, 이제 그만 놓아주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그 애는 아무것도 모릅니다.”죽는 것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가 이렇게까지 비굴하게 구는 걸 보면 약점이 잡힌 게 틀림없었다. “걱정 마. 네가 내 말만 잘 듣는다면 털끝 하나 다치지 않을 거니까.” 그러나 거록 존주는 인질을 놓아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하지만...”이에 마거봉이 다시 말하려고 하자, 거록 존주가 바로 말을 끊었다. “그쯤해. 넌 네 일만 잘 하면 돼. 만약 내 말을 따르지 않는다면 전체 마씨 가문을 없애버릴 거니까, 명심하고.”보통 사람들은 누군가를 시켜먹을 때, 협박과 회유를 섞어 쓰지만, 거록 존주는 오직 협박하는 것만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려고 했다.“예.”마거봉은 차마 말을 잇지 못하고 바로 물러났지만 속으로는 염구준이 떠나기 전에 했던 말을 돌이켜보았다.한편 염구준은 이미 전에 전세 낸 호텔에 막 도착한 참이었다.호텔 주변에는 그가 배치한 사람들이 곳곳에 숨어 있었기 때문에 그의 뒤를 밟던 사람들도 더 이상 그를 감시하지 못했다.조용한 호텔방에 들어가자마자, 붉은 장미는 참지 못하고 자신이 추측한 걸 전부 털어놓았다. “마거봉이 이상해요. 그 주변 경호원들도 뭔가 수상하고요. 당신도 눈치챘죠?”그러나 염구준은 느긋하게 차를 우려내고 자리에 앉은 뒤, 입을 열었다. “그 사람들은 거록 존주의 부하들입니다. 다만 거록 존주가 직접 왔는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아요.”“바위성에 오자마자 실세부터 잡은 걸 보면, 뭔가 큰일을 벌이려고 하는 게 분명합니다.”정보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에 그도 대략적으로 추측할 수밖에 없었다. “아...”붉은 장미는 그의 말을 듣고나서 어느정도 깨달았으나 궁금한 점이 더 많아졌다.“그렇다면, 아까 우리가 그 경호원 넷을 처치하고 마거봉을 도와줬으면 됐잖아요?”언뜻 보기엔 그녀의 말이 아무런 문제가 없는 정확한 결정처럼 보일 수 있었으나 염
“맞습니다. 거록 존주는 위험한 인물이죠. 하지만 제가 있는 한 그 사람은 당신의 털끝 하나도 다치지 못 할 겁니다.” 이에 염구준이 약속했다.이번 계획은 빈틈이 없이 완벽했기 때문에 마씨 가문을 지키는 건 큰 문제가 아니었다.“염 선생님을 믿지 않는 게 아닙니다. 하지만 가주로서 가문의 사람들을 위험에 빠뜨릴 순 없습니다.”마거봉은 진심 어린 태도로 말했지만, 그의 결심은 변함이 없었다.가주라는 위치에 있으면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하기에 무슨 일을 할 때도 더 신중하고 조심스럽게 할 수밖에 없었다.“이 나쁜새끼야, 예전에 내가 아니었다면 너네집 식구들 전부 무사하지 못했을 거라는 거 알아?”염구준은 갑자기 크게 소리치며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음?’그리고 그는 그와 동시에 방 안에 있던 네 명의 경호원들도 각각 자신의 기운을 뿜어내는 걸 느꼈는데, 그 중 세 명은 무성이었고, 한 명은 전신의 경지였다.평범한 사업가 가문에 불과한 마씨 가문에 이 정도의 전력이 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염구준이 일부러 화를 낸 것도 그들을 시험하기 위해서였다.그가 갑자기 분노하자 마거봉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도를 꺼냈다.“염 선생님께서는 제 목숨을 구해주셨는데, 전 아무 도움도 드리지 못해 너무 부끄럽습니다.”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심장을 찌르려고 했다.그러나 단도의 끝이 옷감에 닿자마자 보이지 않는 힘에 제지당해 더 이상 찌를 수가 없었다.“염 선생님...”염구준이 자신을 막았다는 걸 알았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르는 마거봉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툭.염구준은 살짝 힘을 주어 단도를 떨어뜨린 다음 한숨을 쉬며 말했다.“에휴, 됐습니다. 마 가주님께도 사정이 있으실 테니 더 이상 강요하지 않겠습니다.”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강요할 필요는 없었다. 이 때문에 피를 볼 필요는 더더욱 없고 말이다. 계획은 이 지역의 실세의 협조 없이도 진행할 수 있도록 바꾸면 될 일이었다.“염 선
마거봉이 바위성에서 어떤 사람인가? 그가 행인 따위와 친분이 있을 리가 없다고 여긴 사람들은 전부 염구준이 헛소리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하, 들어가려고 온갖 수단을 다 쓰네. 부끄럽지도 않나?”이때, 방금 전에 담배를 권하던 관광객이 비웃으며 말했다. 그러나 염구준은 그런 자질구레한 비난 따위에 반응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했다.“저... 손님, 그건 저희가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초대장이 필요합니다.”보안요원이 난감해하며 말했다.“제가 염 씨라고 전달 좀 해주실래요?”염구준은 성씨만 알려주면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다른 말을 보태지 않았다.‘염 씨라고?’성씨를 들은 뒤, 보안요원들은 깜짝 놀라다가 곧 공손한 태도로 허리를 숙이며 말했다. “지금 바로 전달할 테니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마거봉이 하루 건너 한 번씩은 말하기 때문에 그들은 이 성씨를 외울 정도였다.물론 오늘 아침에도 역시 염 씨 성을 가진 이가 있으면 바로 보고하라는 말을 들었었다.방금 전까지 비웃던 관광객은 이 모습을 보고 난처해서 얼굴이 굳었지만, 곧 체면을 세우기 위해 핑계를 찾았다. “아마 성이 같을 뿐이지, 마거봉이 찾는 사람이 아닐 거야.”그도 반응이 꽤 빠른 축이었다. 이 상황에서도 임기응변을 바로 하는 걸 보면 말이다.“그럼 두고 보자고.”염구준은 경멸 어린 미소를 띤 채 그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얼마 지나지 않아 안에서 한 무리의 사람들이 황급히 걸어나왔는데, 맨 앞에는 환한 미소를 짓고있는 마거봉이 서 있었다.“왜 말도 안 하고 이리 먼길을 오셨어요?”멀리서부터 들려오는 마거봉의 목소리에 주변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바위성의 실세가 직접 맞이하는 것을 보면 염구준 또한 보통 인물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었다. “이렇게까지 정중하게 대하실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은 그냥 지나가는 길에 들른 겁니다.”염구준은 부드럽게 대답했다.남의 지역에서까지 윗사람 행세를 할 이유가 없어서였다.“하하하, 염 선생님, 어서
“맞아요. 적당히 하시죠? 훗날에 또 만나면 어쩌려고, 그냥 좋게 넘어가요.”만약 방금 전에 진 게 염구준이었다면, 사람들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그더러 내기대로 하라며 압박했을 것이 뻔했다.그들은 늘 이렇게 이중적인 태도를 보였다.“그쪽들이랑은 상관없잖아요.”염구준은 주변을 둘러보며 살기를 뿜어내면서 차갑게 말했다.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타깃이 된 것만 같아 추워져서 몸을 떨었다.로브가 여전히 아무 말 없이 꼼짝하지 않자, 염구준은 그에게 압박을 가했다.“당신이 직접 할래요, 아니면 제가 도와줄까요?”이 상황은 로브에게 정말 난처했다. 약속을 지키면 체면을 잃게 되고, 지키지 않으면 인품이 의심받게 될 테니까 말이다.“아... 아버지...”오랜 침묵 끝에 로브는 억지로 말을 내뱉었다.염구준은 손을 저으며 경고했다.“저한테는 당신같이 큰 아들이 없습니다. 앞으로는 좀 자중하세요. 특히 용하국에서는 까불지 마세요.”말을 한 뒤, 로브는 너무 부끄러워서 고개를 숙이고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다.로브가 떠나자, 일부 관중들은 염구준을 향해 적대적인 시선을 보냈다.“다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겁니까? 제 얼굴에 뭐가 묻은 것도 아니고. 얼른 쫓아가 보기나 하시죠.”염구준은 손을 들어 멀리 사라져가는 로브를 가리켰다.“로브 씨!”그러자 일부는 소리치며 그를 따라갔고, 또 다른 일부는 로브에게 실망하며 안티팬이 되어버렸다. 반면, 염구준은 현재 사람들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모두가 그의 마술 실력이 최고봉에 도달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들 흩어지세요. 길 막지 마시고요.”염구준은 손을 젓고는 사람들 속에서 사라졌다.잠시후, 그가 조용한 골목에 도착했을 때, 그의 뒤에서 누군가가 나타나 공손하게 말했다. “염 선생님, 아까 나타나셨을 때, 수상한 인물이 여덟 명 확인되었고, 사람들을 보내 뒤를 밟게 했습니다.”“하지만 방금 전에 연락해보니, 네 명이 연락이 되지 않아요.”보고를 들은 염구준은 머리가 ‘땡’ 하고 울리
이때, 새로운 상자가 올라왔는데, 사람이 들어가면 철편으로 몸과 머리를 가를 수 있는 신체분리 마술에 쓰이는 도구였다.그러나 염구준은 여유롭게 미소 지었다. 단 하나의 기술만으로도 충분히 이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별다른 걸 할 필요도 없이 관건적인 순간에 또 진기를 쓰면 이 라운드도 이길 수 있었다.‘응?’그러나 이때, 진기의 파동과 더불어 근처 지붕에서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져 염구준은 고개를 돌아보았으나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역시 내 느낌이 맞았네. 바위성에 발을 들인 순간부터 누군가 날 감시하고 있어.’하지만 그는 섣불리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을 잡지 않았다. 괜히 상대방을 놀라게 했다가 단서를 놓치면 안 되기 때문이었다. ‘어차피 다 들킨 마당에 이제 그쪽에서 어떻게 나오는지 봐야지.’‘내가 따로 배치 해둔 게 있으니 만약 거록 존주가 바위성에 있다면 흔적도 없이 빠져나가기는 힘들 거야.’“로브 씨, 정말 멋져요!”갑작스러운 팬들의 환호성이 염구준의 생각을 끊었다.고개를 돌려보니, 로브는 이미 그가 생각할 동안 마술을 끝낸 상태였다.‘방심했네.’“그럼 이제 해보시죠.”로브는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염구준을 보며 말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이 마술을 정말 할 줄 몰랐기 때문에 보여줄 수가 없어 망설임없이 바로 패스했다.“다음으로 넘어가죠. 3번째 라운드로 승부를 정합시다.”만약 누군가가 방해하지만 않았더라면 이번 라운드는 누구도 완성해내지 못한 것으로 무승부를 봤을 것이었다.물론 이것 또한 그의 전략이었다. 상대방이 어떤 마술로 붙자고 하든지 모두 진기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눌러서 앞 두 판을 무승부로 만들고 세 번째 판에서 이기는 것 말이다.비록 변수가 생기긴 했으나 아직까진 컨트롤이 가능했다.“세 번째 대결은 어떻게 진행하실 건가요?”이때, 로브가 물었다. 이런 방식의 대결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될지 몰라서였다.“간단합니다. 행인분들더러 저희를 때려보라고 한 다음, 먼저 쓰러지는 쪽이 지는 겁니다. 이런 게임,
체면이 걸린 문제였기 때문에 로브는 양보하지 않고 급히 말했다. “그래요. 첫 번째 라운드는 천으로 가렸다가 다시 나타나는 걸로 하죠. 단, 반드시 거리가 백 미터 밖이어야 해요. 두 번째는 신체 분리 마술로 합시다. 이건 사지와 머리, 그리고 몸통을 분리해야 하는 거예요.”두 가지 모두 대형 마술일 뿐만 아니라 매우 유명했기 때문에 구경하려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그러나 염구준은 여유로운 태도로 말했다.“세 번째는... 누가 주먹을 더 오래 버티는지 보는 걸로 하죠.”‘주먹을 버틴다고?’그의 말에 주변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했다. 한번도 그런 마술을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꽤 신선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뭐라고 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기대했다.하지만 대부분은 로브의 실력으로는 세번째 라운드까지 갈 필요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룰을 정하며 두 명 모두 이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진행하기로 했다.내기에 걸린 건 ‘공손한’ 호칭으로 상대방을 부르는 것이었는데, 이건 체면이 걸린 일이었다.“누가 먼저 시작할 겁니까?”이때, 기다리다 지친 구경꾼들 중 누군가가 소리쳤다. “제가 먼저 하죠.”염구준은 방금 전에 길가에서 국수를 파는 아줌마에게서 빌린 테이블천을 손에 쥐고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모습을 본 로브의 팬들은 바로 비웃었다.“저런 도구를 쓰는 걸 보니 프로는 아니네. 질게 확실해!”“진짜로 마술에 성공하면 내가 아버지라고 부른다, 진짜.”휙.염구준은 주변의 비난을 개의치 않고 테이블천을 한 바퀴 휘둘러 허공에 던졌다. 정식으로 마술을 시작한 것이다.그리고 놀랍게도 테이블천이 떨어진 자리에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라?’다년간의 경험으로도 상대방이 선보인 마술의 원리를 간파하지 못한 로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하지만 사실, 이건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염구준이 선보인 건 마술이 아니라 반보천인의 속도였기 때문이다. 반보천인의 속도는 매우 빠르기 때문에 일반인들은 대체로 보아낼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건 또 무슨 마술이야?” 주변 사람들은 깜짝 놀라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일부는 갑작스레 추가된 공연이라 생각하기도 했다.한 대씩 맞고 난 뒤 얌전해진 경호원들은 더 이상 감히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가끔씩은 말보다 주먹이 더 효과적이었다. 한 대 맞아야 얌전해지는 사람들도 있는 법이니까 말이다.예상치 못한 상황에 부하들이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자, 결국 로브가 나서서 예의있게 물었다.“왜 제 길을 막으시는 건지 물어봐도 될까요?”‘하긴,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지.’염구준은 미소를 머금고 비꼬는 말투로 대답했다.“전 원래부터 여기 서 있었어요. 절 부딪힌 건 당신들이죠.”상대가 막무가내로 나오니, 그도 굳이 예의를 차릴 필요가 없었다.다만, 그의 말에 로브의 팬들이 발끈하며 염구준을 비난하기 시작했다.“사람이 어떻게 저럴 수가 있어? 로브 씨의 길을 막아 놓고도 저렇게 막무가내로 나오다니, 말이 돼?”“그러니까. 로브 씨가 어쩌다 용하국에 오셨는데, 저 눈치 없는 놈은 굳이 길을 막겠다고 저러고 있네.”“난 저런 사람들 많이 봤어. 딱 봐도 관심 받고 싶어서 저러는 거잖아.”순식간에 현장은 아수라장이 되었고, 사람들은 염구준을 향해 온갖 욕들을 퍼부었다.‘맹목적으로 외국을 숭배하는 사람들에 광팬들만 모인 건가?’혼자서 많은 사람들과 말싸움을 하기에는 불리했지만 그는 여태껏 누군가를 두려워한 적이 없었기에 여전히 매우 담담했다.“다 입 닥쳐!”그는 곧 내공을 담아 소리를 질렀고, 이에 사람들은 고막이 아파 말을 이어가지 못했으며 심지어 배가 불렀던 일부는 아침 먹은 것까지 토해내기도 했다.그렇게 현장은 다시금 매우 조용해졌다. 사람들이 말을 하지 않자 염구준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억지 부리는 외국인을 위해 절 몰아붙이는 겁니까? 뇌를 어디다 빼먹었어요?”“이 나라를 지키는 게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당신들을 지키는 게 누구라고 생각해요? 다 용하인이 아닌가요?”용하국의 안전은 솔직히 대부분
염희주는 말을 마치고 바로 통화를 끊었다. 세상 일이 다 그렇듯, 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기 마련이었다. 마치 집에서는 손가을의 말을 반드시 따라야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다만 그녀는 염구준을 존중하기 때문에 한번도 그의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지 않았다.염구준은 기분 좋게 핸드폰을 다시 주머니에 넣었다.‘오늘 마침 여유 있으니까 희주한테 줄 선물 사야겠네.’“비켜!”바로 이때, 한 남자가 소리를 지르며 염구준의 등을 밀치려고 했다.쿵!하지만 손이 닿기도 전에 그는 염구준의 몸을 감싼 진기에 의해 몇 미터 밖으로 튕겨나갔다.힘이 약한 수준이라 다행이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이미 죽었을 게 뻔했다.“뭐 하는 짓이죠?”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차갑게 물었다.방금 상대방의 행동이 몹시 불쾌했지만, 혹시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라면 굳이 추궁할 생각은 없었다.일반 행인과 다툴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다.고개를 돌린 후 염구준은 상대방의 행렬 규모가 마치 국주가 행차하는 것처럼 큰 걸 발견했다.그 무리의 중심에는 검은색 연미복에 마술사 모자를 쓰고, 손에 지팡이를 쥔 고풍스러운 마술사 차림의 남자가 있었는데, 그를 둘러싼 백여 명의 경호원들은 전부 검은 상의와 바지를 입고 근육질의 체격을 뽐냈다.바깥쪽에는 수많은 팬들이 핸드폰을 들고 사진을 찍으며 고함을 질렀다.“로브! 사랑해요!”“로브 씨, 용하국에 오신 걸 환영해요.”“사인 한 장만 해주실 수 있어요? 제가 진짜 선생님 마술을 좋아하거든요.”그는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최고의 마술사로, 세계각지에 팬들이 많이 있었다.팬들의 열정적인 환호에도 로브는 관심조차 보이지 않았으나 팬들은 여전히 환호하고, 기뻐했다. 지금 문제가 있다면 염구준이 길 중간에 서 있어 행렬이 계속 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거기, 길 좀 비켜주세요. 저희 선생님 길 막지 마시고요.”이에 앞길을 터주던 경호원이 소리쳤다.주변이 매우 혼란스러웠기 때문에 아까 진기에 튕겨 나간 경호원은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주작이 활짝 웃으면서 소녀를 부축했다.“앞으로 넌 내 부하야. 내가 말하는 것이 명령이니까 반드시 따라야 해. 참, 이름이 뭐야?”전신전은 노닥거리는 병사들을 키우는 곳이 아니니, 일단 조직에 가입하면 무조건적으로 명령에 복종해야 했다.“조영미라고 해요.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에요.”소녀는 이름을 말하면서 슬픈 표정을 지었다.“내가 별호를 지어줄게. 앞으로 넌 ‘환생한 유령’이야.”주작이 별호를 말한 것은 정식으로 제자로 받았다는 것을 뜻했다.사건을 마무리한 뒤, 염구준은 차를 타고 청해로 돌아갔다.다시는 제 발로 달려가고 싶지 않았다.소녀는 사라지는 차의 뒷모습을 보며 나지막하게 물었다.“저분은 누구세요? 우리랑 돌아가지 않나요?”“쓸데없는 질문은 하지 마. 네가 실력이 강해지면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주작은 엄숙한 목소리로 부하를 대하는 태도로 말했다.일단 전신전에 가입하면 앞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이게 되니 더는 제멋대로 해서는 안 되었다.이로서 거록 조직의 여섯 뱀은 모두 염구준의 손에 전멸했다.이제 거록 존주는 유력한 심복이 없으니 앞으로 행동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다.어쩌면 직접 나서서 해결해야 할 지도 모른다.해외 어느 외딴 마을에서 이 소식을 들은 거록 존주는 화가 나서 펄쩍 뛰었다.쿵!“멍청한 놈, 그러게 멋대로 일을 벌여서 용하의 내 정예병들을 절반이나 죽였어. 아나콘다, 넌 죽어 마땅해!”화난 모습을 보니 시체라도 끌어내서 토막을 내야 직성이 풀릴 것 같았다.주변의 벽은 공격으로 인해 구멍이 뚫리고 바람이 새어서 언제든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았다.거록 존주는 완전히 미치광이가 되어버렸다.집안에 있던 부하들은 모두 땅에 엎드려 고개를 들지 못했다.한 사람이라도 실수를 하는 날에 바로 목이 날아갈 것이다.“말해. 다들 벙어리가 되었어?”거록 존주는 손을 들어 무자비하게 살해했다.“존주님, 제발 진정하세요!”부하들은 다른 말은 하지 못했다.쓸데없이 말했다가 오히려 단체로 죽을 수도 있었다.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