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 실력으로 이 포위망을 뚫고 나가겠다고? 네가 아직 꿈에서 깨지 못했구나.”정천곤은 연신 비웃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윙윙...갑자기 현장에 있던 무사들의 검들이 모두 진동하며 요란한 소리를 냈다.“이건... 검도 최고 경지인 검전 공명이야!”“정 어르신은 역시 검문 정통 제자다워. 검술 수련은 실로 밑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깊어.”“우리의 도움이 필요 없겠어. 정 어르신이 손가락 하나만 살짝 움직여도 저 둘이 찍소리도 내지 못하고 개죽음을 당할 수 있을 테니.”현장에 있던 검도 고수들은 다들 정천곤의 실력에 감탄하며 혀를 끌끌 찼다.모두의 칭찬을 들은 정천곤은 얼굴에 더 진한 미소를 띠고 손가락으로 검결을 맺으며 큰 소리로 외쳤다. “만검살!”그러자 검들이 사나운 기세로 떨어지는 소나기처럼 임지환과 진운을 향해 내리꽂았다.정천곤의 유검술은 오양산의 유검술보다 훨씬 정교하고 탁월했고 감히 비길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임 선생님!”메뚜기 떼처럼 사납게 몰려오는 검우를 보며 진운은 눈을 휘둥그레 뜨고 경악한 표정으로 임지환을 바라보았다.“거 참 시시한 기술이군!”임지환은 공중을 꽉 채운 검우를 마주하고도 눈 하나 깜빡이지 않았고 천천히 한 발짝 내디딘 후, 두 손을 들어 올려 체내의 영기를 응집시켜 보이지 않는 방패로 변환시켰다.“저 녀석이 미쳐 돌아버린 건가? 맨몸으로 저 검우를 맞서려고 한다고?”“대사라고 해도, 아니, 밀종의 금강보살이라 해도 검우 앞에서는 온몸이 산산조각 날 거야.”그 무사들은 임지환의 기이한 행동을 보고 조롱과 비난을 멈추지 않았다.오직 정천곤만이 거만한 눈빛을 조금 거두고 얼굴에서 미묘한 긴장감이 돌기 시작했다.펑펑...다음 순간, 촘촘히 밀집된 검우가 한꺼번에 두 사람한테 쏟아졌다.강가의 바위는 검기의 영향을 받아 끊임없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폭발했다.검기와 바위가 터지는 소리가 어우러져 십 리 내외에 연기가 자욱하게 퍼졌다.“이 정도 위력의 검우가 쏟아지는데 피와 살로 이루어진
“이번 판은 우리가 졌지만 아직 섣불리 기뻐하지는 마라. 내가 너를 죽이기만 하면 모든 게 다 끝나.”정천곤의 눈빛은 얼음처럼 차가워졌고 살벌한 살기가 넘쳐 흘렀다.이 순간, 정천곤은 이미 승산이 없다는 걸 눈치챘다. 뭔가 특별한 수단을 쓰지 않으면 자신도 죽음을 피할 수 없게 될 것이다.“오호라? 보아하니 아직 비장의 무기가 남아 있나? 숨기지 말고 얼른 꺼내 보지 그래.”임지환은 담담하게 웃으며 약을 올렸다.“혈제!”단 두 글자였지만 천근만근의 무게가 실린 듯 무거운 기운이 담겨 있었다.술법의 이름이 공개된 후 정천곤의 일곱 구멍에서 끔찍한 피가 멈추지 않고 계속 흘러나왔다.정천곤의 눈동자는 핏빛으로 변했고 원래 마른 체형은 풍선처럼 점점 부풀어 올랐다.찌지직!옷이 찢어지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산산조각 난 옷자락은 나비처럼 하늘하늘 공중을 날아다녔다.이 말라비틀어진 정 노인은 무사들의 시선 속에서 무려 2미터 가까운 근육질의 거한으로 변했다.“오늘 여기서 네 목숨을 걸고 덤벼들 생각이야?”이 기이한 광경을 보고 임지환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진운도 참지 못하고 깊은숨을 들이쉬며 충격을 받은 목소리로 임지환에게 물었다.“저 영감이 도대체 무슨 요술을 부렸길래 한순간에 철탑 같은 거인으로 부풀 수 있는 겁니까?”“내 예상이 틀리지 않았다면 저 영감은 혈맥을 자극하는 어떤 비법을 사용했을 거예요. 검문의 제자에 어울리는 대단한 실력을 갖췄군요.”임지환은 모든 것을 이해한 듯 정신을 집중해 정천곤을 빤히 쳐다봤다.“네놈을 죽이기 위해 난 단번에 10년의 수명을 소진했어.”정천곤은 험악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내 혈제 비법 공격을 받고 죽을 수 있다면 너도 만족해야 할 거야!”“으르렁!”말을 마치고 정천곤은 야수 같은 외침을 내뱉었다.그의 몸은 마치 중형 탱크처럼 우람졌고 놀라운 기세로 임지환에게 돌진했다.쿵쿵...정천곤이 점점 가까워지자 요란한 소리가 터지면서 진운은 고막이 터질 듯 심한 통증을 느껴 본능적으로
“감히 용주님을 건드리는 자는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생사를 넘나드는 이 위기의 순간, 수많은 그림자가 숲속에서 튀어나왔다.영사 열다섯 명이 거의 동시에 숲에 도착했다.영사들은 무기를 들고 임지환의 곁에 서서 정천곤의 발걸음을 막았다.불과 10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이 여인들은 뿔뿔이 도망간 무사들을 전부 깔끔하게 처리한 것이다.여인들의 무기에 묻은 시뻘건 피를 보며 정천곤은 미간을 찌푸리며 중얼댔다. “저 녀석들이 이 정도로 쓸모가 없을 줄은 몰랐군. 너희 같은 이마에 피도 마르지 않은 풋내기 계집년 손에 죽는 걸 보니.”“영사를 과소평가하는 자는 이 자리에서 죽여버릴 거야!”차가운 목소리가 울려 퍼지자 열다섯 명의 영사는 포위망을 형성하며 주저하지 않고 정천곤을 향해 빠르게 공격을 개시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계집들아. 그럼 내가 기꺼이 죽여주지.”눈이 시뻘겋게 물든 정천곤도 차가운 목소리로 말하며 맞서 공격을 개시했다.정천곤은 주먹과 발을 휘두르며 영사들의 단검을 무시하고 맨몸으로 영사들과 맞서 싸웠다. 주먹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영사 한 명이 바로 중상을 입고 바닥에 쓰러졌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은 영사들은 조금도 겁에 질려 물러서지 않았다.영사들의 임지환에 대한 충성은 오래전부터 이미 생사를 초월한 것이었다.하지만 현실은 참혹했다. 불과 3분도 안 되는 사이에 열다섯 명의 영사가 전부 정천곤을 이겨내지 못하고 바닥에 쓰러졌다.지금 정천곤은 맨몸의 힘만으로도 대종사에 버금가는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하찮은 개미들을 전부 처리했으니 이제 오늘의 주인공을 모셔봐야겠구나.”정천곤은 거대한 바위 속에 미동도 하지 않고 박혀 있는 임지환을 바라보며 서슬 퍼런 살기를 내뿜었다.“멈춰라!”쓰러진 영사들이 영혼을 끌어모아 울부짖으며 다시 싸우려고 바닥에서 몸부림쳤지만 정천곤의 주먹에 당한 후유증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비록 영사들이 화진급의 고수일지라도 당장은 다시 몸을 움직여 전투에 개입할 수 없었다.“거 참
“내 팔...”정천곤은 하늘을 향해 괴성으로 울부짖었다. 목소리가 산 전체에 울려 퍼졌다.텅 빈 두 손을 바라보며 정천곤의 눈은 피가 떨어질 듯 붉게 물들었다.혈제 비법의 영향으로 절단된 팔이 아프지는 않았지만 두 팔을 잃은 충격은 정천곤을 죽이는 것보다 더 괴로웠다.“이봐 영감, 이제 두 팔 다 잃었으니 어디 한 번 더 까불어 봐!”정신을 차린 진운은 통쾌하게 웃으며 약을 올렸다. 조금 전까지 진운은 임지환과 함께 도망치느라 허덕이며 꼴불견이었기 때문이다. 이제야 비로소 속이 시원했다.“애송이야, 내가 팔이 없다고 사람을 못 죽일 것 같아 보여?”정천곤은 진운을 바라보며 점점 더 짙어지는 살기를 드러냈다.진운은 한마디 더 핀잔을 주려다 그 모습에 겁에 질려 두 걸음 뒤로 물러섰다.이빨 없는 호랑이는 여전히 호랑이지 고양이일 수는 없었다.두 팔을 잃은 정천곤은 여전히 위압적이었고 압도적인 기세를 보였다.“내가 너무 약하게 공격했나 보구나. 이참에 네 다리도 부러뜨려 버릴까?”임지환은 손에 든 절단된 팔을 바닥에 던지고 차가운 표정으로 정천곤에게 다가갔다.“푸른 산을 두고 땔나무를 걱정하랴? 난 절대 여기서 죽을 수 없어!”정천곤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숲속으로 향했다.생사의 갈림길에서 체면과 신분보다 더 허무한 물건은 없었다.펑펑...정천곤의 발은 마치 스프링이 달린 것처럼 한 번 뛰어오를 때마다 수십 미터를 튕겨 나갔다.숲속의 하늘을 가리는 거대한 고목들을 이용해 정천곤은 숲속에서 계속해서 앞으로 미친 듯이 질주했다.숨 몇 번 쉴 새에 정천곤은 이미 임지환과의 거리를 천 미터 이상 벌렸다.“이 임지환이라는 자는 설마 선천 경지에 들어선 건가? 내가 비법을 써서 전력을 다해 맞붙는다 해도 전혀 살아남을 가능성이 보이지 않는구나. 게다가 내 원군들은 저 빌어먹을 계집들에게 모두 사살당했으니 승산이 전혀 있을 수 없어.”정천곤은 도망가면서 마음속으로 눈앞의 사실에 끊임없이 경악했다.방금 정천곤이 빠른 속도로 지나친
푸슉!이 가늘고 기다란 은침은 해일과 같은 거대한 소리와 함께 공기를 찢을 듯한 엄청난 위력을 실어 유성처럼 날아갔다.눈 깜짝할 사이에 밀림 속으로 사라져 모두의 시야에서 사라졌다.한편, 수천 미터 거리에 떨어진 정천곤은 갑자기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느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래서 걸음을 멈추고 주위를 자세히 둘러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고 주변에 눈에 띄는 함정도 없었다.“내가 정말 늙었나 보군. 임지환에게 한번 호되게 당한 이후로 완전히 화살에 놀란 새가 되었네.”정천곤은 스스로 비웃으며 고개를 저었고 다시 발길을 돌려 도주하려 했다.슉!갑자기 한 줄기 차가운 빛이 번뜩였다.정천곤이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그 차가운 빛은 정천곤 가슴의 기해혈을 뚫고 들어갔다.곧바로 정천곤은 온몸이 마비되어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바닥에 쓰러졌다.지금 정천곤은 손가락 하나 움직이는 것도 힘든 신세가 되었다고 가슴에 박힌 그 보잘것없어 보이는 은침을 바라보더니 문득 모든 것을 깨달은 듯 중얼댔다.“이 은침은... 임지환이 쏜 게 틀림없군. 내가... 결국 그 녀석을 너무 얕봤네!”정천곤은 후회막급하며 모든 것을 돌이키고 싶었다. 임지환과 무턱대고 교전한 게 뼈저리게 후회했다.그러나 세상에 후회 약은 없는 법, 이미 엎지른 물인지라 모든 게 너무 늦었다....“갑시다!”임지환은 손을 툭툭 털며 담담하게 말했다.“정천곤을 정말 이대로 그냥 도망치게 놔둘 겁니까?”진운은 여전히 임지환의 소행을 이해할 수 없었다.“그 노인은 이미 내 은침에 맞았고 지금쯤 쓰러져 죽어가고 있을 겁니다.”임지환은 자신감 넘치는 미소를 지으며 여유로운 말투로 말했다.“그 말은... 아무래도 믿기 어려운 것 같습니다.”진운은 자기 의구심을 그대로 표했다가 갑자기 너무 경솔한 행동임을 깨닫고 민망해하며 헤벌쭉 웃었다. “저 노인이 혹여나 이상한 꾀를 부릴지 몰라서 그렇습니다.”“다들 믿지 못하겠으면 날 따라와서 확인해 봐요.”임지환은 말을 마치고는 숲
청산 별장.“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는데 임지환은 아마 정 어르신 손에 죽었을 거야. 좋은 말도 할 때 날 풀어주는 게 좋을 거야. 안 그러면 정 어르신이 돌아오면 너도 임지환을 따라 저세상에 가야 할 거야.”창백한 얼굴로 휠체어에 앉아 있는 한재석이 끊임없이 정천곤의 이름을 대며 유란을 협박했다.“용주님께서는 아무 일도 없을 거야. 게다가 내 자매들이 지금쯤 용주님을 지원하러 갔을 거야.”유란은 전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문가에서 멀리 떨어진 숲을 바라보고 있었다.“지원? 무려 백 명의 무사들인데 뭔 놈의 지원이야? 농담도 정도껏 해야지. 게다가 정 어르신이 있는데 너희가 한 연대의 병력을 보내도 정 어르신 털끝 하나 다치지 못할 거야.”한재석은 참지 못하고 유란을 비웃으며 조롱했다.한재석은 정천곤의 실력을 절대적으로 신뢰했고 임지환이 이번에는 절대 정천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지 못할 거라고 확신했다.“한재석, 대낮에 무슨 잠꼬대를 하고 있냐?”바로 그때, 문밖에서 야유와 조롱이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긴 머리에 잘생긴 얼굴을 갖춘 진운이 여유로운 발걸음으로 저택에 들어왔다.“네가 왜 아직도 살아있지? 혹시 정 어르신이 일부러 네 신분을 보고 놔준 거야?”한재석의 얼굴에서 웃음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대신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내 생사는 그 영감탱이가 결정할 수 없어.”진운은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또박또박 말했다. “지금 네가 가장 걱정해야 할 건 바로 네 목숨이야.”“무슨 개소리야?” 한재석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넌 진짜 미련한 거야 아니면 미련한 척 연기하고 있는 거냐? 정천곤인가 뭔가 하는 그 영감은 이미 임 선생님이 호되게 조져놨어. 그리고 너희 한씨 가문이 데려온 그 무사들은... 전부 뒈졌어.”진운은 일부러 홀가분한 어조로 말했다.호가호위하는 느낌이 이렇게 통쾌하고 짜릿할 줄은 몰랐다.“뭐라고? 그럴 리가 없어! 정 어르신은... 반보 선천의 최강 무사란 말이야!”한재석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지며 휠체
남은 시간이 200초도 되지 않은 상황을 보며 유란은 급하게 입을 열었다.“용주님, 기껏해야 남은 시간이 200초도 안 돼요. 폭탄이 곧 터질 거예요. 우리 서둘러 여기서 떠나는 게 좋을 거 같아요.”“가, 다들 시름 놓고 얼른 가. 어차피 배씨 가족이 나랑 같이 여기서 죽을 거니까 나도 그렇게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한재석은 휠체어에 앉아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임지환을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임지환도 배씨 가족을 구할 수는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임지환은 냉정한 눈빛으로 앞으로 다가가 배지수의 밧줄을 풀어주고 유란에게 말했다. “지수를 데리고 얼른 나가. 여기 일은 나한테 맡겨.”“용주님, 군자는 이렇게 위태로운 곳에 서지 않아요. 배씨 가족 사람들은 용주님을 전혀 마음에 두지 않는데 왜 그들을 위해 이렇게까지 위험을 감수해야 하나요?”유란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여기 오기 전에 유란은 이미 임지환의 배경을 샅샅이 조사했었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임지환과 배씨 가문 사이의 원한을 알고 있었다. 결론은 단 하나, 구제 불능인 이 가족은 구할 가치가 하나도 없었다.“물 한 방울의 은혜는 샘물로 보답해야 해. 배씨 가족 사람들은 비록 박정한 면이 없지 않아 있지만 결국은 지수의 가족이야. 난 이 사람들을 죽게 놔둘 수 없어.”임지환은 한숨을 쉬면서도 결연한 말투로 말했다.“하지만...”“그만해, 시간이 많지 않아. 얼른 지수를 데리고 나가. 폭탄은 날 어쩌지 못할 거니까.”임지환은 손을 내저으며 말을 마치고 죽어가는 정천곤 앞으로 다가갔다.“배씨 가족은 어디에 갇혀 있어?” 임지환이 강압적인 태도로 정천곤에게 캐물었다.“그들은 이 거실 아래 지하실에 있어. 제발... 날 죽이지 말아줘. 부탁이니까 날 데리고 나가줘!”정천곤은 양팔을 잃고 임지환이 은침으로 기해혈을 봉인했기 때문에 이미 이전의 늠름하고 자신만만하던 자태를 찾아볼 수 없이 그저 초라한 노인으로 타락했다.“이 노인네를 데리
고막이 터질 듯한 거대한 소리에 배전무를 비롯한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임... 임지환, 진짜 왔구나?”배전무는 임지환을 보고 충격에 빠졌다.“지금 상황을 자세히 설명할 시간이 없어요. 어서 나와 함께 이곳을 떠납시다.”임지환은 깊은 구덩이로 뛰어들어 세 사람을 구출하려고 했다.하지만 배준영은 임지환을 경계하며 배전무를 귀띔했다. “아버지, 저 자식을 믿지 마세요. 어쩌면 이 모든 게 다 임지환과 한씨 가문이 공모한 계략일지도 몰라요.”“맞아요. 경찰이 올 때까지 여기에 머무는 게 낫다고 생각해요. 우리 경찰이나 기다립시다.”유옥진도 화살에 놀란 새처럼 임지환을 두려워하며 구출을 필사적으로 저항했다. 임지환이 굳이 좋은 의도로 그들을 구출하는 게 아니라고 확신했다.“어서 갑시다. 더 이상 길게 설명할 시간이 없다고요!”임지환은 앞으로 다가서며 손을 휘둘렀다.“뭘 하려고 하는 거야? 경고하는데 함부로 행동하지 마!”배준영은 여전히 경계심을 놓지 않고 큰 소리로 소리쳤다.퍽!퍽!돼지를 잡는 것 같은 모자의 비명 속에서 임지환은 깔끔하게 두 사람의 목덜미를 쳐서 기절시켰다.“이건...”배전무는 당황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뒤로 몇 걸음 물러났다.“갑시다!”임지환은 빠른 속도로 배전무의 밧줄을 풀어주고 등을 가볍게 들어 구덩이 밖으로 올려 던졌다.그러자 배전무는 곧 구름을 타는 듯이 하늘을 날아 저택 대문 앞에 안정적으로 착지했다.임지환은 기절한 모자 두 사람을 보며 그들을 데리고 나가려고 했다.삐삐삐...임지환이 구덩이에서 나올 때 갑자기 시한폭탄에서 긴급한 소리가 들려왔다.마치 죽음을 알리는 듯한 공포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임지환은 전력을 다해 어깨에 메고 있던 두 사람을 던졌다.그러고는 대문 앞에 서 있는 배전무를 향해 있는 힘껏 외쳤다. “두 사람을 데리고 빨리 도망쳐요!”이때, 배전무는 임지환에게 아무리 불만이 많더라도 그의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배전무는 안간힘을 다해 두 사람을 끌고 문밖으로 미친 듯이
자리에 앉은 후, 양쪽은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마쳤다.“민수 씨, 보아하니 이 지역 사람은 아닌 것 같네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척 슬쩍 물었다.육민수는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목을 적시고 말했다.“저는 백운산에서 내려왔습니다. 이번에 내려온 건 여행을 통해 자신을 단련하기 위해서입니다.”“여행이라고요?”임지환은 순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 육민수를 보며 살짝 놀란 듯 물었다.“맞습니다, 이번이 산에서 처음 내려오는 겁니다.”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스승님께서 배울 건 거의 다 배웠으니 나머지는 여행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그래요? 그렇다면 민수 씨는 은둔한 검수란 말이군요. 근데 민수 씨 등에 멘 그 상자 속에는 대체 어떤 절세 명검이 숨겨져 있는 겁니까?”임지환은 차를 든 채로 무심하게 말했다.윙!임지환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맞은편에 앉아 있던 육민수의 표정이 돌연 엄숙해졌다.육민수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임지환을 노려보며 물었다.“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왜 그러죠?”임지환이 담담하게 되물었다.“어떻게 내 상자 속에 검이 들어 있는 걸 알았습니까? 설마 날 계속 미행해 온 겁니까?”육민수는 칼집에서 칼날이 뽑혀 나온 듯한 기세를 뿜어내며 사람을 압도하는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했다.“진정해요, 난 당신에게 악의는 없어요.”임지환은 아무렇지 않은 듯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느긋하게 말했다.“왜 내가 상자 속에 있는 게 명검이란 걸 아는지 궁금한가요? 내가 그냥 추측한 거라면 믿을 수 있나요?”“믿습니다.”몇 초 동안 고민하던 육민수는 고개를 끄덕였다.임지환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민수 씨, 당신은 생각보다 훨씬 똑똑하군요.”육민수는 임지환을 지긋이 바라보면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도 생각보다 훨씬 더 속이 깊은 사람이군요.”“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자세히 들어보고 싶군요.”임지환은 육민수에게 차를 따라주며 말했다.“세속의 일반인들은 그렇게 쉽게 검수의 존재를 알아채지
“넌 누구야? 이 녀석을 감싸려는 거야? 내 신발은 200만 원짜리 신발이야. 네 몸에 걸친 그 싼 구제 옷이랑은 비교도 안 된다고.”장해수는 임지환을 힐끔 보며 코웃음을 쳤다.비록 임지환은 육민수보다 훨씬 더 정상적인 사람 같아 보였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친 걸 다 합쳐도 10만 원이 넘지 않을 것 같았다.장해수는 이런 사람은 신경 쓸 필요도 없다고 여긴 것이다.“겨우 200만 원 갖고 이렇게 화내? 큰돈도 아니잖아.”이때 이청월이 뒤따라와 말했다.그러고는 손에 들고 있던 샤넬 가방에서 돈뭉치를 꺼내어 바로 옆 빈 테이블에 올려놓았다.이청월의 행동은 아주 자연스럽고 매끄러웠다.“헉... 이렇게 예쁜 여자가 있었나?”장해수는 임지환이 가리고 있던 시야에서 벗어난 이청월을 보자마자 시선을 이청월 몸에서 뗄 수 없었다.식당 안에 있던 다른 남자 손님들도 이청월의 뛰어난 외모를 보며 잠시 넋을 잃었다.이렇게 아무런 성형 수술 흔적도 없이도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성은 요즘 시대에 참 보기 드물었다.사람들의 시선은 곧 임지환의 저렴한 옷차림으로 옮겨졌고 속으로는 질투가 활활 타올라 임지환을 모욕하기 시작했다.“또 여자 등쳐먹는 기생오라비야? 저렇게 예쁜 여자가 왜 저런 녀석이랑...”“아가씨 체면을 봐서 이 돈은 받아둘게. 근데 이건 만 원이 안 되잖아.”장해수는 순식간에 돈을 세어보곤 다시 빈정거렸다.그 돈뭉치는 60만이었고 장해수가 요구한 금액과는 상당히 차이가 있었다.“네가 신은 신발이 진품이라 해도 최대 40만 원 정도일 거야. 더군다나 너 그거 짝퉁이잖아.”이청월은 냉정하게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60만 원이면 충분하고도 남아.”“밥은 아무렇게나 먹어도 말은 함부로 하면 안 돼. 무슨 증거라도 있어? 내가 신은 신발이 짝퉁이라는 걸 입증할 증거 말이야.”장해수는 이청월의 정곡을 찌르는 말을 듣고 내심 당황했다.사실 이 신발은 장해수가 8만 원 주고 산 고퀄리티 짝퉁이었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 절대 그걸 인정할 수 없었다.
“손대지 마!”남자가 황급히 소리쳤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하얀 머리 청년은 손으로 검은 천을 살짝 벗겨냈다.윙!임지환은 갑자기 오싹한 냉기가 식당을 감도는 기묘한 기운을 느꼈다.다시 집중해서 감지하자 그건 다름 아닌 예리한 검기였다.남자는 하얀 머리 청년의 손목을 꽉 잡았고 아까와 달리 부드럽던 눈빛이 확 차갑고 날카로워졌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 안 그러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남자는 한 글자 한 글자 또박또박 차가운 목소리로 경고했고 하얀 머리 청년의 손을 밀어내고는 다시 조심스럽게 검은 천을 덮으며 소중한 물건을 다루듯 정성스럽게 접었다.그 과정을 마친 후, 남자의 차가웠던 눈빛은 다시 온화하고 순박한 모습으로 돌아왔고 조그마한 살기도 없는 사람처럼 무난해 보였다.“겨우 너덜너덜한 상자 하나 가지고 뭘 그렇게 유난이야?”하얀 머리 청년은 비웃으며 말을 이었다.“날 이렇게 툭 쳐놓았으면 적어도 사과는 해야 하는 거 아니야?”“어떻게 사과하면 되겠어?”남자는 미간을 살짝 찌푸렸다.“내 이 신발은 한정판이야. 200만 원이 넘는다고. 근데 네가 이렇게 더럽게 만들었으니 내가 어떻게 신고 다니겠냐고?”하얀 머리 청년은 뻔뻔하게 말했다.“그럼... 내가 어떻게 하길 원해?”남자는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자기가 잘못한 게 맞다고 인정하는 듯했다.하얀 머리 청년 장해수는 흡족한 표정으로 웃으며 남자를 내려다봤다. 이 남자가 마을에서 처음으로 시내로 올라온 촌스럽고 순진한 사람이라 살짝 겁주기만 하면 쩔쩔맨다는 걸 알아차렸다.“간단하지. 신발값 물어내.”장해수는 의자를 하나 끌어다 앉아 다리를 꼬았다.“난... 돈 없어.”남자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제야 남자는 돈이 없으면 영웅도 꼼짝 못 한다는 말이 실감 나는 것 같았다.“돈 없다고? 돈도 없으면서 음식점에 들어와? 난 네가 진짜 돈이 있든, 없든 하나도 상관없어. 오늘 신발값 물어내지 않으면 경찰 불러서 널 잡아넣을 거야.”장해수는 계속 몰아붙였다.“이 사람
“안 돼, 꼭 한 입 먹어봐. 안 그러면 내가 직접 먹여줄 거야.”이청월은 고귀한 신분을 자랑하는 여왕처럼 임지환에게 명령하듯 말했다.“그럼... 알았어.”이청월의 기대에 찬 눈빛을 보며 임지환은 마지못해 한 입 떼어먹었다.“어때? 너무 맛있지?”이청월은 기대에 가득 차서 물었다.“괜찮네...”임지환은 대충 웃어넘기고는 이내 물었다.“얼마나 더 걸을 거야?”“왜? 벌써 지친 거야?”이청월은 앞을 내다보고는 웃으며 말했다.“저 앞에 괜찮아 보이는 식당이 있는데 저기서 저녁 먹고 호텔로 가는 게 어때?”“그러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세 번 절하고 아홉 번 꿇는 것까지 견뎠는데 이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두 사람은 함께 운우 골목에 위치한 “천향 식당”에 들어갔다.식당 내부는 고풍스럽게 꾸며져 있었고 값비싼 홍목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 있었다. 심지어 최고급 백단향이 타오르고 있었다.아마도 이 과시적인 분위기에 관광객들이 약간 눌린 것인지 레스토랑 내부는 손님이 많지 않아 비교적 조용했다.임지환과 이청월은 2층에 올라가 자리를 잡고 음식을 주문했다.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심심한 이청월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놀고 있었다.임지환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다가 곧 시선을 한 사람에게 고정했다.임지환의 시선을 잡은 사람은 식당 입구에 서 있던 한 남자였다.임지환이 특별한 취향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 남자가 너무 독특했기 때문이었다.남자는 우람진 체형에 날카로운 눈매와 눈동자를 가졌고 온몸에서 강렬한 고수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하지만 그 남자는 딱 봐도 특이한 헝겊으로 된 긴 상의와 긴 바지를 입고 있었고 발에는 헝겊신을 신고 있었다.남자의 등에는 길쭉한 상자를 검은 천으로 싸서 메고 있었는데, 그 안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었다.그 기묘한 차림 덕분에 임지환은 물론, 주위 사람들의 시선도 당연히 한 몸에 받았다.하지만 남자는 부끄러운 듯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고 식당 안쪽을 향해 바라
“나더러 제자를 받으라고?”임지환의 표정이 묘해졌다.전에 소태진이 제자 타령하더니 이번엔 이민재가 이러네...임지환은 이 노인들이 그렇게도 할 일이 없는 건지 궁금해졌다.“안 받아!”임지환은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이민재는 임지환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할 줄은 미처 생각하지 못해 잠시 멍해졌다.이래 봬도 명의라 불릴 만큼 명성이 자자한 자기가 어디를 가든 분명 환영받고 존중받을 정도인데 임지환에게 이토록 매정하게 거절당할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거절하는 이유를 물어봐도 되겠습니까?”이민재는 조심스럽게 이유를 물었다.“넌 너무 늙었고 못생겼잖아. 내가 원하는 건 미인이란 말이야. 그런데 내가 어떻게 너한테 관심이 생기겠어?”임지환이 어깨를 으쓱하며 대답했다.“네?”이민재는 입이 떡 벌어져 말을 잇지 못했다.설마 자기가 단호하게 거절당한 이유가 늙고 못생긴 데다 미인이 아니기 때문일 줄이라니, 놀라울 따름이었다.이청월이 옆에서 웃으며 입을 열었다.“영감, 내가 좋은 방법 하나 알려줄까?”“무슨 방법인데요?”이민재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물었다.“외국에 가서 성전환 수술하고 얼굴 리프팅까지 하고 오면 돼. 그러면 내가 임지환에게 널 제자 삼으라고 말해볼게.”이청월은 말을 마치자마자 배를 잡고 웃음을 터트렸다.옆에서 잠자코 듣고 있던 허청열과 화도윤도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고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체면을 생각해서 억지로 웃음을 참았다.“당신들... 이건 너무하잖아요! 제자를 안 받는다고 해도 이렇게까지 사람을 모욕할 필요는 없지 않습니까?”이민재는 눈을 부라리며 씩씩댔고 분노가 가득 찬 얼굴은 붉게 달아올랐다.평생 힘들게 쌓아온 명성이 오늘 하루 만에 모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아직도 모르겠어? 내가 널 제자로 안 받는 이유는 네가 미인이 아니거나 늙어서도 아니야.”임지환은 조금 모자란 바보를 보는 듯한 눈빛을 보이며 고개를 저었다.“그럼 도대체 왜 안 받는 겁니까?”이민재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알겠습니다, 임 대사, 정말 고맙습니다. 도윤아, 날 대신해서 임 대사를 정성껏 대접해라!”화연평은 그제야 임지환의 말을 따라 침대에 편안하게 누우며 화도윤에게 조용히 당부했다.임지환과 이청월도 더 이상 화연평의 휴식을 방해하지 않고 방을 나섰다.“임 선생님, 제가 자인 호텔에 방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지금 당장 사람을 보내 안내해 드리겠습니다.”화도윤이 싱글벙글 웃으며 얼른 쫓아 나와 임지환에게 말했다.“필요 없어. 우리가 직접 거기로 갈 테니 넌 여기서 화 장군님을 잘 돌봐.”임지환은 손을 흔들며 거절했다.“임지환, 우리가 간만에 금릉에 왔잖아. 제대로 한 번 쇼핑도 하고 맛있는 것도 사 먹자.”이청월은 지금 상황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그래, 네 말대로 하자.”임지환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잠깐! 두 분, 멈춰주세요!”두 사람이 막 떠나려 할 때 이민재가 허겁지겁 뒤쫓아왔다.“이 침왕, 아직도 볼 일이 남았나요?”화도윤의 이마에 주름이 잡히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아까 이민재가 저지른 실수 때문에 아버지가 자칫 죽을 뻔했으니 화도윤의 마음속엔 여전히 이민재에 대한 불만이 남아 있었다.이민재가 의술로 유명하지 않았다면 이미 저택에서 쫓아냈을 것이다.“임 선생님께 여쭤보고 싶은 게 있습니다.”이민재는 아까와는 다르게 공손한 태도로 존댓말까지 써가며 말했다.“부디 가르침을 부탁드리겠습니다.”“뭘 묻고 싶은 거야?”임지환은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화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을 도대체 어떻게 제거하셨는지 궁금합니다.”이민재는 진심으로 지식에 굶주린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제가 침을 놓을 때 장군님 체내의 생기를 운용해 분명 어느 정도 효과를 보였는데 왜 결국엔...”“내가 왜 너에게 말해줘야 하지?”임지환이 이민재의 말을 끊었다.“그건...”이민재는 그 질문에 말문이 막혔다.임지환의 말도 일리가 있었다. 굳이 자기에게 말해줄 필요가 없다는 걸 이민재는 알고 있었다.“저는 의사로서 같은 실수를 반복하
“아악!”비명이 또 방에서 들려왔고 이번엔 더 고통스럽고 무시무시했다.“날 들여보내 주세요!”화도윤은 방 안에서 들려오는 처절한 비명에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다.“화 회장님, 죄송합니다만, 그럴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화도윤을 막아섰다.“허 교관! 넌 정말 이대로 우리 아버지를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건가?”화도윤의 눈은 핏발이 서서 당장이라도 누군가를 물어뜯을 것 같은 야수 같았다.“저도 물론 장군님이 돌아가시는 걸 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임 선생님 외에는 누구도 믿을 수가 없습니다. 임 선생님이 허락하기 전까지는 누구도 들어가게 놔둘 순 없습니다.”허청열은 이를 악물고 단호하게 말했다.옆에 있던 이청월의 얼굴도 창백해졌다. 방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이 너무나도 끔찍했기 때문이었다.“이대로 가다간 나조차도 장군님의 생명을 지탱하기 어려울 겁니다.”이민재는 침착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내 생각엔 먼저...”“끄악!”다시 한번 처절한 비명이 터져 나왔고 방 안은 곧 쥐 죽은 듯이 조용해졌고 더 이상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화도윤과 허청열은 그대로 굳어버렸고 할 말을 잃었다.“어휴... 이젠 무슨 말을 해도 늦었습니다.. 당신들, 사람을 잘못 믿은 겁니다.” 이민재는 한숨을 쉬며 고개를 저었다.“끼익...”바로 그때, 임지환이 문을 열고 나와 태연한 표정으로 물었다.“방금 뭐가 늦었다고 했어?”“넌 실력도 부족하면서 괜히 잘난 척하다가 화 장군님을 네 손으로 죽인 거야. 이제 어떻게 수습할지 지켜보겠어.”이민재는 냉랭하게 비웃으며 재밌는 구경이라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임 선생님...”허청열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와 조급한 얼굴로 물었다.“걱정 마, 장군님 체내의 사악한 기운은 내가 이미 완전히 제거했어. 이제 장군님 생명에는 더 이상 지장이 없을 거야.”임지환은 표정 변화도 없이 차분하게 대답했다.“정말입니까?”“임 선생님, 그 말씀, 정말입니까?”화도윤과 허청열은
“만약은 절대 없습니다!”화도윤의 눈빛이 갑자기 날카로워지며 은은하게 살기가 서렸다.“이 영감탱이가 아직도 제정신이 아니네. 말을 왜 이 따위로 해? 네가 실력이 바닥을 친다고 해서 임지환 실력도 바닥을 친다는 도리는 없잖아!”이청월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임지환을 깎아내리는 말이라 곧바로 받아쳤다.“이 버릇없는 계집, 닥치지 못해? 난 아직 네 죗값도 묻지 않았어!”이민재는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다시 한번 손을 들었다.“이 침왕, 자중하십시오.”둘을 지켜보던 허청열이 한 발 앞으로 나서며 이청월 앞을 막아섰다.허청열의 몸에서 칼날이 칼집에서 막 빠져나오기 직전인 듯 날카로운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좋아요, 저 녀석이 진짜 화 장군님을 살려낸다면 이 부러진 손은 그냥 넘어가 주겠습니다. 하지만 살려내지 못한다면 화 선생은 더 이상 이 일에 관여하지 않길 바랍니다.”이민재는 속으로는 불만이 가득했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이민재도 바보는 아니었기에 허청열과 싸워봤자 손쉽게 당할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콜록콜록...”방 안에서 갑자기 거친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그 기침 속에는 피를 토하는 소리까지 섞여 있는 듯했다.화도윤의 얼굴이 굳어지며 안으로 뛰어들 듯이 몸을 움찔했다.그러나 허청열이 화도윤을 막아섰고 고개를 저으며 냉정하게 말했다.“화 회장님, 임 선생님의 허락 없이는 우리가 밖에서 기다리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알겠네.”화도윤은 어쩔 수 없이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화도윤은 임지환에게 모든 희망을 걸 수밖에 없었다.한편, 방 안에서 오랜 시간 거친 숨을 몰아쉬던 화연평이 마침내 힘겹게 피곤이 가득한 눈을 떴다.화연평은 희미하게 보이는 임지환의 모습을 확인하고는 애써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임... 임 대사, 고... 고맙습니다.”“화 장군님, 아직 고마워하실 필요 없습니다. 치료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제부터는 조금 고통스러울 수도 있으니 꾹 참고 견뎌주시길
“너...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난 의사로서 수십 년간 수많은 생명을 구했고 의학계에서 꾸준히 명성을 쌓아왔어. 오늘 너 같은 풋내기에게 내 명예를 더럽히게 둘 수는 없어!”이민재는 수염을 부들부들 떨며 분노로 눈이 뒤집혀 거의 쌍욕이라도 할 듯한 기세였다.“이 영감탱이가 어쩜 이렇게 말이 안 통하지? 환자가 너 때문에 병이 더 악화했는데도 뭐라 하지 말라는 거야?”이청월은 눈을 부릅뜨고 이민재에게 쏘아붙였다.이민재가 일반 사람들에게는 오랜 명성을 자랑하는 침술의 대가일지 몰라도 이청월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중요한 건 단 하나, 임지환을 건드리는 건 절대 안 된다는 것뿐이었다.“무슨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이민재는 이청월을 가리키며 화가 치밀어 올라 말을 잇지 못했다.“지금 화 장군님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인데 넌 환자를 살릴 방법을 찾기보다 네 명성 걱정부터 앞서는구나. 내 생각엔 넌 그냥 명예에만 집착하는 돌팔이야!”이청월의 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었고 말 한마디 한마디가 이민재의 급소를 정확히 찔렀다.“어디서 나타난 계집이 감히 어르신에게 말대꾸를 해? 오늘 내가 네 부모를 대신해 제대로 교육해 주마!”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오른 이민재는 더 이상 체면 따위는 개의치 않고 손을 뻗어 이청월을 때리려 했다.하지만 이민재의 손이 이청월에게 닿기도 전에 임지환이 그의 팔을 단단히 붙잡았고 가볍게 힘을 주었다.딱!뭔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민재의 팔이 임지환의 힘을 이겨내지 못하고 그대로 부러지는 소리였다.“아악!”이민재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팔을 부여잡았고 그의 얼굴은 분노와 고통으로 붉게 달아올랐다.허청열과 화도윤은 이 광경에 놀라서 숨을 들이쉬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임지환의 행동은 너무나 대담했다. 침술의 왕이라 불리는 이민재의 팔을 부러뜨리다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이 일이 의학계에 널리 퍼지기라도 하면 임지환은 의학계 전체의 적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허 교관, 지금부터 난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