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도하라! 애도하라!」 「구주 군신이 어제 10개 나라에서 온 강자의 연합공세로 죽음의 바다에서 전사했습니다.」 「이 전쟁으로 파란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고 망망대해에 시체가 떠올랐습니다.」 「이 전쟁은 한 사람이 한 개 군을 이끌고 10개 나라의 백만 군사에 맞서 온 힘을 다해 격전을 벌인 전쟁이었습니다.」 세간의 모든 사람이 군신은 10개국 강자들에 의해 살해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실 그를 죽게 만든 건 그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였다. 몇 년 뒤, 윤구주는 산꼭대기에 서서 아래에 쌓여있는 수많은 백골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나에게 빚진 건 피와 살로 갚아야 할 거야!”
View More설윤의 반응은 윤구주 예상대로였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오는 길 동안 긴장했던 이유였다. “무릎 꿇고 있는 자들은 일어나거라. 아무 자리에나 앉아서 우리 화진의 최고급 차나 마시도록 해. 너는 설윤 공주가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으니 계속 무릎 꿇고 있어.” 윤구주의 말이 떨어지자 홀에 있던 모든 신명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앉은 뒤 하나같이 비웃는 눈빛으로 그 노인을 쳐다보았다.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는 것은 너무 재미있었다. 노인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몇 번 조아리자 이마에 상처가 났고 바닥에는 온통 피였다. “윤구주 씨, 이 사람은...” “알고 있어요. 케일 공작이죠. 헨드리 왕실의 적수로 헨드리 제국 안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했으며 헨드리 제국에서는 지금 당신의 삼촌 디크스와 같은 악당이고요.” 윤구주가 설명했다. 설윤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 공작은 헨드리의 배신자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헨드리 제국 안에 자신의 영지를 만들고 케일 상단으로 제국의 상업을 독점했다. 심지어 그 영지 안에 군대까지 세웠다. 특히 몇 년 전, 케일 공작은 왕실 후계자인 설윤을 암살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다행히 왕실 정보부가 미리 알아채어 계획을 저지할 수 있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왜 이 자가 헨드리 제국에서 그렇게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처벌받지 않았는지 알아요?” 윤구주는 웃으며 물었다. “왕실의 뒤에 더 큰 세력이 있다고 했어요. 이제야 알겠어요. 그 뒤에도 신명이 있었네요.” 설윤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그 뒤에는 확실히 신명이 있어요. 좋게 말하면 헨드리에서의 빙신전 이익 대변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빙신전의 하수인이죠. 헨드리 제국이 어쩔 수 없었던 건 당연해요.” 윤구주가 말했다. 케일 공작은 더욱 공포에 떨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이미 구주왕에게 항복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윤구주는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그를 죽이는 건 개미 죽이듯이 쉬운 일이었다. “
고성의 로비에는 훨씬 더 냉엄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이 서 있었다.그들의 갑옷은 외부 경비병들보다 더 화려했다. 갑옷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문양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고 열댓 개가 넘는 고대의 장신구들이 달려 있었다.설윤은 수련자들의 경지를 구분하는 방법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직접 마주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저 이들은 신전의 간부들이며, 갑옷 위 장신구는 서양의 훈장 같은 것이라 짐작했을 뿐이었다.넓은 로비 안에 수많은 사람 중에 설윤이 아는 얼굴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만 구석에서 차를 끓이고 있던 회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어딘가 낯익게 느껴졌다.“구주왕께서 도착하셨다!”현모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지자, 서 있던 신령들이 동시에 몸을 떨었다. 대부분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어떤 이는 아예 현모를 향해 대놓고 눈을 흘겼다.그 모습을 본 윤구주는 비꼬듯 말했다.“현모, 저들이 눈이 먼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내가 온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슬슬 짜증이 날 만 하겠네.”꿀꺽.모든 신령이 침을 삼켰다.마치 누군가를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말이었다.그들이 현무에게는 불만을 드러내고 대거리할 수 있었던 것도 최소한 싸움 한판쯤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윤구주는 달랐다. 그의 앞에서 감히 무례를 범하는 것은 곧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었다.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바깥의 경비병들과는 달리 이들은 단정한 단일 무릎 꿇기 자세를 취했다. 이것은 그들이 경비병들보다는 지위가 높다는 것을 나타냈다.이는 신령들의 체면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해서 그들이 화진 대표와 협의하여 결정한 예식이었다.윤구주는 아무 말 없이 설윤을 이끌고 정좌에 앉았다.그는 온몸을 가죽 소파에 널브러뜨리듯 기댄 채 편하게 앉았다. 설윤은 한 귀퉁이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설윤,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에요. 저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어요.”“앞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공주님을 위해
헬리콥터가 헨드리를 향해 날아갔다.헬기 안에서 설윤은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두 손은 내내 옷 안에 감춰진 채 드러내지 않았다.그 모습은 물론 현모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는 설윤이 옷 속에 숨겨둔 단검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붙잡히지 않으려는 나름의 대비책인 것도 알고 있었다.설윤의 이런 조치는 현모가 보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걸로 안심이 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다.세 시간 후 헬리콥터는 마침내 케일 공작의 영지에 도착했다. 기체는 곧장 공작령의 고성 위에 착륙했다.이 고성은 지어진 지 오백 년이 넘은 유서 깊은 건물이다. 현대에 들어선 뒤로는 케일 공작의 와인 저장고로 쓰이며 대외로는 개방되지 않았다.고성 안팎은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나의 중대 규모에 달하는 특수부대가 성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 사이엔 현대식 복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푸른 갑옷을 입은 전사들까지 섞여 있었다.이 낯선 분위기에 설윤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몸을 떨며 헬리콥터에서 내려선 그녀는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걸었다. 상황이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언제든 단검을 꺼내 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러다 고성의 정원에 앉아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윤구주를 발견한 순간, 설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모든 경계심을 내려놓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응? 오기 전에 미리 말해뒀잖아. 현모, 올 때 일부러 겁줬지?”윤구주는 현무를 노려보며 말했다.“억울합니다, 왕이시여. 아시다시피 사대 전신 중에서 제가 제일 온화하고 상냥합니다.”현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윤구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온화하고 상냥하다니...“걱정하지 마세요, 공주님. 그동안 내가 미리 앞길을 정리하면서 많은 위협을 제거해 놓았어요. 케일 성 내에 숨어 있던 아사 신족도 전부 소탕했으니 이제 이곳은 안전합니다.”윤구주는 미소 지으며 설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고개를 드니 마치 신을 뵈는 듯했다.윤구주를 마주한 윌리엄은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다시 한번 신께서 헨드리를 보우하시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신을 멸하는 것.설윤의 삼촌인 디크스는 사신의 앞잡이였기에 당연히 처단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설윤이 화진과 어떤 협정을 맺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윌리엄은 겨우 설윤과 단둘이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곧바로 협정의 내용을 물었다.“별거 없어요. 조건은 단 하나였어요. 사신이 처단되기 전까지 모든 행동은 구주왕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설윤이 조용히 말했다.“그게 전부라고요? 공주님, 말도 안 됩니다. 화진이 지금까지 겪은 굴욕을 이렇게 간단히 넘긴다고요? 만약 우리가 화진의 입장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안 했을 겁니다.”윌리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헨드리가 과거 화진에 저지른 짓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헨드리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의 절반은 화진에서 빼앗아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화진이 이 복수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화진 문명은 뿌리가 깊고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왔어요. 그들의 사고방식과 관점은 당신들과 완전히 달라요. 우리 식으로 화진을 이해하려 들면 안 돼요. 하지만 분명한 건 사신의 힘이 아무리 신통하든 우리가 살길은 화진과 연합하고 구주왕에게 기대는 것뿐이에요.”“협정 내용은 언제든 논의할 수 있지만 사신은 절대로 우리와 협상하지 않을 거예요. 헨드리가 화진과 협상하면서 손해를 본다 해도 사신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단 나아요.”설윤은 차분하게 분석했다.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화진이 아무리 헨드리를 ‘갈취’한다 해도 헨드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아사 사신보다는 훨씬 나았다.그 후 며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설윤은 화진 전함에서 일주일을 머문 뒤 마침내 화진의 통보를 받았다.“공주님, 준비해 주십
“하, 공주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까지 구주왕께서 누구를 이렇게까지 배려하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게다가, 우리 화진은 근대에 당신들 같은 강한 제국들에 침략을 당하면서 국토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강제로 배상금과 영토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도와주었더라면, 우리가 이런 처지에까지 몰리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말한 것도 윤구주 왕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외교 관례라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습니다. 당신들과 협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을 위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화진이 우리 헨드리를 도와 폭군을 몰아내고 그 배후의 사악한 신을 처리해 준다면, 어떤 조건이든 논의할 수 있습니다!”고심 끝에 설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공주님, 식사 하시지요. 모두 공주님의 입맛에 맞춰 준비된 음식입니다.”설윤이 동의하자, 정무부 대표는 즉시 주방에 식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윌리엄은 회의실에서 꼬박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진의 군부와 정무부 대표들이 설윤을 둘러싸고 방으로 들어왔다.“망할!”이 광경을 본 윌리엄은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이건 불공평해! 당신들 화진은 우리 헨드리의 공주를 협박해 불평등 조약을 맺게 강요했다! 화진 이 도둑놈 같은 것들! 틈을 타서 약탈하는 강도들이나 다름없다!”웅!윌리엄의 말이 떨어지자, 회의장에 있던 군부와 정무부 대표들의 분노가 일순간에 폭발했다.“강도? 도둑놈? 그건 당신들이나 할 소리 아닌가?”“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범죄한 증거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윤구주는 앞으로 나서며 위엄을 내뿜었다. 윌리엄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한껏 드러냈다.“이... 구주왕! 화진은 우리 헨드리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설윤은 우리 왕실의 공주입니다! 그리고 우리 헨드리는 아직 그렇게까지 약
잠시 고민한 후, 윤구주는 명필무에게 헨드리 공주를 소개했다.“명 사부님, 이분이 바로 이자벨라 설윤 공주입니다.”윤구주를 놀라게 한 것은 설윤과 명필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다는 점이었다. “명 장군님, 오랜만입니다.” “공주님,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만 해도 아직 성인이 아니셨죠. 그땐 어린아이였는데,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자라셨군요.”명필무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오랜 친척을 대하듯 설윤을 위로했다.윤구주는 곧 설명을 듣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화진 해군이 헨드리 제국의 초청을 받아 새로 건설된 항구를 시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설윤은 왕실 구성원 신분으로 헨드리를 대표해 화진 장군들을 맞이했었다.그 만남은 사실 설윤이 훗날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자리였다. 당시 설윤은 걱정 하나 없는 어린 소녀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며 많은 일을 겪고 성숙해진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밝고 천진난만하지 않았다.서로 소개를 마친 후, 명필무는 즉시 얼굴을 굳히고 윤구주의 이름을 정식으로 부르며 말했다.“저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서두를 필요 없어요. 먼저 부상당한 전사들을 치료실로 데려가세요. 윌리엄, 너도 먼저 가서 치료부터 받아. 나는 공주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고 올 테니 회의실에서 보자.”윌리엄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윤구주와 명필무는 이미 설윤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헨드리는 이미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명필무는 윤구주의 군령을 받고 함대를 이끌고 이곳에 집결했다. 하지만 동시에 육도진이 이끄는 정무부의 명령도 받았다. 그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설윤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육도진은 보호는 동시에 통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필무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즉, 색다른 방식으로 헨드리와 협상해서 화진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구주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개입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화진에 이익이 된다면 육도진이 무엇을 하
헨드리의 초라한 함선 3척과 비교하면 화진의 함대는 무려 100척 가까이 되는 전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전함만도 30척이 넘었고 항공모함 1척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이 장면은 헨드리 함대 지휘관으로 하여금 깊은 감회에 잠기게 했다. 몇백 년 전만 해도 헨드리 해군은 세계 해양의 패권을 쥔 최강의 함대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쇠퇴하고 말았다. 반면 한때 세계 각국에 괴롭힘당하던 화진은 이제 해상 강국으로 떠오른 것이다.이 한 함대의 전투력만으로도 헨드리 해군 전체를 능가했다.주작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이건 긴급히 소집된 남해함대일 뿐입니다. 화진에는 이렇게 큰 함대가 다섯 개나 더 있습니다.”헨드리 지휘관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양국 함대가 합류하자 윤구주는 설윤을 데리고 남해함대의 기함에 올랐다. 이 전함은 현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완벽한 작품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한 척의 전투력만으로도 헨드리 해군 전체와 맞먹을 정도였다.함대 사령관을 비롯한 장군들이 갑판에 정렬해 그들을 환영했다. 백발이 성성한 함대 사령관이 윤구주에게 다가가 경례를 했다.“해군 대장, 남해함대 사령관 명필무, 구주왕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항했습니다.”“경례 끝. 모두 수고했습니다.”정식 경례가 끝나자 명필무는 바로 윤구주를 꽉 껴안았다. “몇 년 전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놈 목숨은 질기겠다 싶었지. 문씨 가문이 널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어!”명필무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윤구주를 이리저리 만져댔다. 윤구주는 상당히 어색한 표정으로 명필무를 바라보았다.다른 이들 눈에도 이 장면이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이 노인이 혹시 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하지만 윤구주를 따라온 주작 일행은 이게 화진 특유의 어른이 후배를 보살피는 방식임을 알고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어루만지듯이 말이다.명필무는 윤구주의 오랜 지인이었다. 윤구주가 남부 전쟁터에 있을 당시 남부 내륙의 적을 소탕한 후 해군으로 전
백호의 잔혹한 행동에 함대 선원들은 공포에 질려 반쯤 기절할 지경이었다. 아사 신전의 반신들도 파랗게 질려 함선을 버리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어디로 도망치려고.”백호는 함선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는 반신들을 하나씩 잡아 학살했다.바람이 멎고 비도 이제 그쳤다. 함대는 다시 정상적으로 파도 위를 떠다니기 시작했다.“저하, 함대 쪽 처리를 마쳤습니다. 저하의 지시대로 아사 신족은 모두 제거했고 선원들은 무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뒤따라 가지 않았다면 백호 그 미친놈은 선원들까지 몰살했을 거예요.”주작이 윤구주에게 전음으로 보고했다.“잘했어. 이제 이동할 때가 되었군.”윤구주는 설윤 공주와 생존자들을 데리고 함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윌리엄과 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함대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윤구주는 설윤을 데리고 해면을 따라 날아서 함대에 도착했다.이건 구주왕이 아니고 구주신이지. 구주왕 휘하의 군신들도 모두 신과 같은 존재들이었다.일행이 함선에 오르자 주작은 이미 모든 선원을 갑판에 집결시켜 놓았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며 공포에 떨고 있다가 어떤 남자가 공주를 데리고 물 위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설윤 공주가 함선에 발을 디디자 모든 선원은 후회의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부끄러움에 공주의 눈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공주님,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공주님의 결정에 달렸어요.”윤구주가 말했다.공주가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게 한 것이었다. 동시에 이는 공주의 인품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예상 밖으로 설윤은 선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그들은 흑해골 특수부대를 태워 공주를 암살하려 했던 자들이니 목숨은 살려주지만 죗값을 치러야 했다.“이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에요.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의 도움을 바랍니다. 헨드리를 디크스 삼촌 같은 폭군에게 넘길 수는 없어요. 아사 신족은 사악한 신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함교 위에 있던 주작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다. 아래쪽은 검은 안개에 뒤덮여 있었고 그녀의 신념술도 통하지 않았다.“이 멍청한 백호. 아까 빨리 처리하지 않아서 지금 이 꼴이 됐잖아. 금단의 술법까지 쓰게 만들다니. 내가 안 왔으면 얼마나 더 끌었을까.”주작이 투덜거리며 백호를 도우려는 순간 백호의 전음이 들려왔다.“손대지 마. 너 지금 날 무시하냐? 네 도움 필요 없거든. 그리고 너 말조심해. 내가 네 오빠라고. 4대 군신 중 2위인 내가 너한테 그런 말을 들어야 하냐?”주작은 할 말을 잃었다.“이 멍청한 놈!”주작은 눈을 흘기며 혼자 책임지라고 말한 뒤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함교 지휘실로 들어가 영진 장원과 연락을 취했다.주작이 통신하는 동안 백호 쪽에서도 치열한 전투가 시작되었다.하지만 공격하는 쪽은 백호가 아니라 어둠과 하나가 된 야신이었다. 칼날과 핏빛이 번뜩이며 백호의 몸에 순식간에 열여덟 군데의 상처가 생겼다. 하나하나가 뼛속까지 파고드는 깊은 상처였다.쉭!야신은 빠르게 움직이며 백호에게서 당한 수모를 열 배로 갚았다.“백호라고? 화진의 전신이라고? 이 하찮은 인간이 감히 신을 모욕하다니. 망할 놈. 내가 영혼까지 태워 술법을 써야 했어. 이 금단의 술법 때문에 나는 평생 다시는 수련할 수 없게 됐다고. 어디 한번 말해봐. 널 어떻게 고문해 줄까? 널 처리한 다음에 저 주작과 천천히 놀아줄 거야.”야신이 주작에 대한 상상에 잠긴 순간 백호가 움직였다.백호는 번개처럼 손을 뻗어 야신의 목을 움켜쥐었다. 그의 살기가 야신의 몸속에 흘러 들어가자 야신의 경맥이 막히면서 금단의 술법도 저절로 풀렸다.어둠이 사라지자 야신은 큰 충격에 빠졌다. 그는 피투성이가 된 백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이게 어떻게 가능한 거야? 이런 상처를 입고도 속도가 더 빨라졌다고? 도대체 내 위치를 어떻게 알았지?”“놀랐나? 나 백호는 4대 군신 중 코가 가장 밝다. 주작 같은 건 암살자라고도 할 수 없지. 내가 표적을 정하면 천
「애도하라! 애도하라!」화진의 모든 서버는 묵념하며 구주왕의 죽음을 애도하고 있다.강성시의 한 해변가.비키니를 입고 완벽한 몸매를 드러낸 소채은이 미간을 찌푸리고 핸드폰으로 묵념하는 장면을 쳐다보고 있었다.“갑자기 뭐야?”“벌건 대낮부터 무슨 애도람?”“서버 전체가 묵념하고 애도한다고?”“아, 미치겠네. 어떤 사람이 죽었길래 다들 이렇게 난리인 거지?”핸드폰 화면을 5분동안 뚫어져라 지켜보고나서야 소채은은 헤드 메세지를 클릭했다.빨간색으로 적힌 몇글자가 소채은의 눈에 들어왔다. 대형 사이트의 홈페이지마다 헤드라인으로 걸려 있었다.「구주 군신이 어제 10개 나라에서 온 강자의 연합공세로 죽음의 바다에서 전사했습니다.」「이 전쟁으로 파란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었고 망망대해에 시체가 떠올랐습니다.」「이 전쟁은 한 사람이 한 군을 이끌고 10개 나라의 백만 군사를 온힘을 다해 격파한 전쟁이었습니다.」각 대형 사이트의 헤드라인을 보며 소채은의 앵두같은 입술이 동그랗게 오무려졌다.‘구주 군신? 할아버지가 자주 말씀하시던 무패의 전설 아니었나? 그런데 전사했다니.’“그래서 서버 전체가 묵념하고 있구나. 이 무패의 전설이 죽은 거였어?”이 “구주 군신”의 사망 소식을 조금 더 검색해보다가 소채은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구주왕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고 화진의 레전드 히어로가 맞았다.하지만 소채은과 같은 사람에게는 너무 거리가 먼 사람이었다. 게다가 지금 자신에게 벌어진 시끄러운 일도 아직 다 해결하지 못했다.소채은은 바닷가에 누워 집안 일을 고민했다. 그러자 절세의 미모에 걱정이 차오르기 시작했다.“따르릉!”그때 그녀의 전화가 울렸다. 소채은은 화면에 뜬 이름을 확인했다. 친구였다.“여보세요?”전화를 받았다.수화기 너머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친애하는 소채은 아가씨, 도대체 요즘 어디를 싸돌아 다니길래 연락이 안되는 거야?”“란이야, 왜? 나 지금 옛 본가에서 휴가 중인데.”소채은이 음료수를 마시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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