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호의 잔혹한 행동에 함대 선원들은 공포에 질려 반쯤 기절할 지경이었다. 아사 신전의 반신들도 파랗게 질려 함선을 버리고 사방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이 쓰레기 같은 놈들이 어디로 도망치려고.”백호는 함선에서 뛰어내려 도망치는 반신들을 하나씩 잡아 학살했다.바람이 멎고 비도 이제 그쳤다. 함대는 다시 정상적으로 파도 위를 떠다니기 시작했다.“저하, 함대 쪽 처리를 마쳤습니다. 저하의 지시대로 아사 신족은 모두 제거했고 선원들은 무사합니다. 하지만 제가 뒤따라 가지 않았다면 백호 그 미친놈은 선원들까지 몰살했을 거예요.”주작이 윤구주에게 전음으로 보고했다.“잘했어. 이제 이동할 때가 되었군.”윤구주는 설윤 공주와 생존자들을 데리고 함대로 이동하기 시작했다.윌리엄과 대원들이 고무보트를 타고 함대를 향해 이동하는 동안 윤구주는 설윤을 데리고 해면을 따라 날아서 함대에 도착했다.이건 구주왕이 아니고 구주신이지. 구주왕 휘하의 군신들도 모두 신과 같은 존재들이었다.일행이 함선에 오르자 주작은 이미 모든 선원을 갑판에 집결시켜 놓았다. 그들은 최악의 상황을 예상하며 공포에 떨고 있다가 어떤 남자가 공주를 데리고 물 위를 걸어오는 모습을 보고 놀랐다.설윤 공주가 함선에 발을 디디자 모든 선원은 후회의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을 흘렸다. 그들은 부끄러움에 공주의 눈을 바라볼 수조차 없었다.“공주님, 이 사람들을 어떻게 처리할지는 공주님의 결정에 달렸어요.”윤구주가 말했다.공주가 그들의 생사를 결정하게 한 것이었다. 동시에 이는 공주의 인품을 시험하기 위한 것이기도 했다.예상 밖으로 설윤은 선원들을 처벌하지 않기로 했다.어찌 됐든 그들은 흑해골 특수부대를 태워 공주를 암살하려 했던 자들이니 목숨은 살려주지만 죗값을 치러야 했다.“이건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그저 명령을 따랐을 뿐이에요. 저는 진심으로 여러분의 도움을 바랍니다. 헨드리를 디크스 삼촌 같은 폭군에게 넘길 수는 없어요. 아사 신족은 사악한 신들입니다. 그들은 우리의 재산을
헨드리의 초라한 함선 3척과 비교하면 화진의 함대는 무려 100척 가까이 되는 전함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중 전함만도 30척이 넘었고 항공모함 1척까지 포함되어 있었다.이 장면은 헨드리 함대 지휘관으로 하여금 깊은 감회에 잠기게 했다. 몇백 년 전만 해도 헨드리 해군은 세계 해양의 패권을 쥔 최강의 함대였지만 세월이 흐르며 쇠퇴하고 말았다. 반면 한때 세계 각국에 괴롭힘당하던 화진은 이제 해상 강국으로 떠오른 것이다.이 한 함대의 전투력만으로도 헨드리 해군 전체를 능가했다.주작은 이게 전부가 아니라고 설명했다.“이건 긴급히 소집된 남해함대일 뿐입니다. 화진에는 이렇게 큰 함대가 다섯 개나 더 있습니다.”헨드리 지휘관은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양국 함대가 합류하자 윤구주는 설윤을 데리고 남해함대의 기함에 올랐다. 이 전함은 현대 최첨단 기술로 만들어진 완벽한 작품이었다. 솔직히 말해 이 한 척의 전투력만으로도 헨드리 해군 전체와 맞먹을 정도였다.함대 사령관을 비롯한 장군들이 갑판에 정렬해 그들을 환영했다. 백발이 성성한 함대 사령관이 윤구주에게 다가가 경례를 했다.“해군 대장, 남해함대 사령관 명필무, 구주왕과 합류하라는 명령을 받고 출항했습니다.”“경례 끝. 모두 수고했습니다.”정식 경례가 끝나자 명필무는 바로 윤구주를 꽉 껴안았다. “몇 년 전 너를 처음 봤을 때부터 네 놈 목숨은 질기겠다 싶었지. 문씨 가문이 널 죽일 수 있을 리가 없었어!”명필무는 흥분한 목소리로 말하며 윤구주를 이리저리 만져댔다. 윤구주는 상당히 어색한 표정으로 명필무를 바라보았다.다른 이들 눈에도 이 장면이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이 노인이 혹시 게이가 아닐까 싶을 정도였다.하지만 윤구주를 따라온 주작 일행은 이게 화진 특유의 어른이 후배를 보살피는 방식임을 알고 있었다. 마치 할아버지가 오랜만에 만난 손자를 어루만지듯이 말이다.명필무는 윤구주의 오랜 지인이었다. 윤구주가 남부 전쟁터에 있을 당시 남부 내륙의 적을 소탕한 후 해군으로 전
잠시 고민한 후, 윤구주는 명필무에게 헨드리 공주를 소개했다.“명 사부님, 이분이 바로 이자벨라 설윤 공주입니다.”윤구주를 놀라게 한 것은 설윤과 명필무가 이미 알고 있는 사이였다는 점이었다. “명 장군님, 오랜만입니다.” “공주님, 마지막으로 뵈었을 때만 해도 아직 성인이 아니셨죠. 그땐 어린아이였는데, 몇 년 사이에 이렇게 자라셨군요.”명필무는 따뜻한 미소를 지으며, 마치 오랜 친척을 대하듯 설윤을 위로했다.윤구주는 곧 설명을 듣고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몇 년 전 화진 해군이 헨드리 제국의 초청을 받아 새로 건설된 항구를 시찰한 적이 있었다. 그때 설윤은 왕실 구성원 신분으로 헨드리를 대표해 화진 장군들을 맞이했었다.그 만남은 사실 설윤이 훗날 왕위에 오를 수 있도록 기반을 다지는 자리였다. 당시 설윤은 걱정 하나 없는 어린 소녀였다. 그러나 몇 년이 지나며 많은 일을 겪고 성숙해진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밝고 천진난만하지 않았다.서로 소개를 마친 후, 명필무는 즉시 얼굴을 굳히고 윤구주의 이름을 정식으로 부르며 말했다.“저하,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야 합니다.”“서두를 필요 없어요. 먼저 부상당한 전사들을 치료실로 데려가세요. 윌리엄, 너도 먼저 가서 치료부터 받아. 나는 공주님을 모시고 식사를 하고 올 테니 회의실에서 보자.”윌리엄은 뭔가 말하려 했지만, 윤구주와 명필무는 이미 설윤과 함께 먼저 자리를 떠났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해도 소용없었다. 헨드리는 이미 주도권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명필무는 윤구주의 군령을 받고 함대를 이끌고 이곳에 집결했다. 하지만 동시에 육도진이 이끄는 정무부의 명령도 받았다. 그것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설윤을 보호하라’는 것이었다. 육도진은 보호는 동시에 통제이기도 하다는 것을 명필무에게 명확히 전달했다. 즉, 색다른 방식으로 헨드리와 협상해서 화진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윤구주는 정치에는 관심이 없었고 개입할 생각도 없었다. 다만 화진에 이익이 된다면 육도진이 무엇을 하
“하, 공주님.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저는 지금까지 구주왕께서 누구를 이렇게까지 배려하시는 걸 본 적이 없습니다.”“게다가, 우리 화진은 근대에 당신들 같은 강한 제국들에 침략을 당하면서 국토에서 제멋대로 날뛰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고 강제로 배상금과 영토를 내주어야 했습니다. 그때 누군가 도와주었더라면, 우리가 이런 처지에까지 몰리진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사실 이 정도까지 말한 것도 윤구주 왕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평소 외교 관례라면 불필요한 말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알겠습니다. 당신들과 협상하겠습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을 위해 최대한의 이익을 얻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다만, 화진이 우리 헨드리를 도와 폭군을 몰아내고 그 배후의 사악한 신을 처리해 준다면, 어떤 조건이든 논의할 수 있습니다!”고심 끝에 설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이제야 말이 통하는군요. 공주님, 식사 하시지요. 모두 공주님의 입맛에 맞춰 준비된 음식입니다.”설윤이 동의하자, 정무부 대표는 즉시 주방에 식사를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윌리엄은 회의실에서 꼬박 세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화진의 군부와 정무부 대표들이 설윤을 둘러싸고 방으로 들어왔다.“망할!”이 광경을 본 윌리엄은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벌떡 일어났다.“이건 불공평해! 당신들 화진은 우리 헨드리의 공주를 협박해 불평등 조약을 맺게 강요했다! 화진 이 도둑놈 같은 것들! 틈을 타서 약탈하는 강도들이나 다름없다!”웅!윌리엄의 말이 떨어지자, 회의장에 있던 군부와 정무부 대표들의 분노가 일순간에 폭발했다.“강도? 도둑놈? 그건 당신들이나 할 소리 아닌가?”“역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범죄한 증거들은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다!”윤구주는 앞으로 나서며 위엄을 내뿜었다. 윌리엄을 깔보는 듯한 태도를 한껏 드러냈다.“이... 구주왕! 화진은 우리 헨드리를 이렇게 대하면 안 됩니다! 설윤은 우리 왕실의 공주입니다! 그리고 우리 헨드리는 아직 그렇게까지 약
고개를 드니 마치 신을 뵈는 듯했다.윤구주를 마주한 윌리엄은 진심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저 다시 한번 신께서 헨드리를 보우하시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회의에서 논의할 내용은 단 하나뿐이었다. 사신을 멸하는 것.설윤의 삼촌인 디크스는 사신의 앞잡이였기에 당연히 처단 대상에 올랐다. 하지만 설윤이 화진과 어떤 협정을 맺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했다.회의가 끝나고 나서야 윌리엄은 겨우 설윤과 단둘이 대화할 기회를 얻었다. 그는 곧바로 협정의 내용을 물었다.“별거 없어요. 조건은 단 하나였어요. 사신이 처단되기 전까지 모든 행동은 구주왕의 지시에 따른다는 것.”설윤이 조용히 말했다.“그게 전부라고요? 공주님, 말도 안 됩니다. 화진이 지금까지 겪은 굴욕을 이렇게 간단히 넘긴다고요? 만약 우리가 화진의 입장이었다면 절대 그렇게 안 했을 겁니다.”윌리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는 헨드리가 과거 화진에 저지른 짓을 잘 알고 있었다. 지금도 헨드리의 박물관에 전시된 유물의 절반은 화진에서 빼앗아 온 것이었다. 그렇기에 화진이 이 복수의 기회를 놓칠 리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화진 문명은 뿌리가 깊고 오랜 세월 동안 이어져 왔어요. 그들의 사고방식과 관점은 당신들과 완전히 달라요. 우리 식으로 화진을 이해하려 들면 안 돼요. 하지만 분명한 건 사신의 힘이 아무리 신통하든 우리가 살길은 화진과 연합하고 구주왕에게 기대는 것뿐이에요.”“협정 내용은 언제든 논의할 수 있지만 사신은 절대로 우리와 협상하지 않을 거예요. 헨드리가 화진과 협상하면서 손해를 본다 해도 사신에게 지배당하는 것보단 나아요.”설윤은 차분하게 분석했다.윌리엄은 고개를 끄덕였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화진이 아무리 헨드리를 ‘갈취’한다 해도 헨드리를 노예로 삼으려는 아사 사신보다는 훨씬 나았다.그 후 며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다. 설윤은 화진 전함에서 일주일을 머문 뒤 마침내 화진의 통보를 받았다.“공주님, 준비해 주십
헬리콥터가 헨드리를 향해 날아갔다.헬기 안에서 설윤은 구석에 몸을 웅크린 채 앉아 있었다.두 손은 내내 옷 안에 감춰진 채 드러내지 않았다.그 모습은 물론 현모의 눈에도 들어왔다. 그는 설윤이 옷 속에 숨겨둔 단검을 이미 눈치채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붙잡히지 않으려는 나름의 대비책인 것도 알고 있었다.설윤의 이런 조치는 현모가 보기에 아무런 소용이 없었지만 아는 체는 하지 않았다. 그녀가 그걸로 안심이 된다면 굳이 말릴 생각은 없었다.세 시간 후 헬리콥터는 마침내 케일 공작의 영지에 도착했다. 기체는 곧장 공작령의 고성 위에 착륙했다.이 고성은 지어진 지 오백 년이 넘은 유서 깊은 건물이다. 현대에 들어선 뒤로는 케일 공작의 와인 저장고로 쓰이며 대외로는 개방되지 않았다.고성 안팎은 삼엄한 경비로 둘러싸여 있었다. 하나의 중대 규모에 달하는 특수부대가 성 주위를 에워싸고 있었다. 그들 사이엔 현대식 복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푸른 갑옷을 입은 전사들까지 섞여 있었다.이 낯선 분위기에 설윤의 긴장은 극에 달했다.몸을 떨며 헬리콥터에서 내려선 그녀는 주위를 경계하며 천천히 걸었다. 상황이 조금이라도 이상해지면 언제든 단검을 꺼내 들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러다 고성의 정원에 앉아서 여유롭게 차를 마시고 있는 윤구주를 발견한 순간, 설윤은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모든 경계심을 내려놓고, 그에게 달려갔다.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응? 오기 전에 미리 말해뒀잖아. 현모, 올 때 일부러 겁줬지?”윤구주는 현무를 노려보며 말했다.“억울합니다, 왕이시여. 아시다시피 사대 전신 중에서 제가 제일 온화하고 상냥합니다.”현무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윤구주는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온화하고 상냥하다니...“걱정하지 마세요, 공주님. 그동안 내가 미리 앞길을 정리하면서 많은 위협을 제거해 놓았어요. 케일 성 내에 숨어 있던 아사 신족도 전부 소탕했으니 이제 이곳은 안전합니다.”윤구주는 미소 지으며 설윤을 안심시켰다. 그렇게 말하면서 직접
고성의 로비에는 훨씬 더 냉엄한 기운을 내뿜는 존재들이 서 있었다.그들의 갑옷은 외부 경비병들보다 더 화려했다. 갑옷에는 기괴하게 뒤틀린 문양이 빼곡히 그려져 있었고 열댓 개가 넘는 고대의 장신구들이 달려 있었다.설윤은 수련자들의 경지를 구분하는 방법 같은 건 전혀 알지 못했고 이런 초자연적인 존재들을 직접 마주한 것도 처음이었다. 그저 이들은 신전의 간부들이며, 갑옷 위 장신구는 서양의 훈장 같은 것이라 짐작했을 뿐이었다.넓은 로비 안에 수많은 사람 중에 설윤이 아는 얼굴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다만 구석에서 차를 끓이고 있던 회색 로브를 입은 노인이 어딘가 낯익게 느껴졌다.“구주왕께서 도착하셨다!”현모의 우렁찬 외침이 울려 퍼지자, 서 있던 신령들이 동시에 몸을 떨었다. 대부분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어떤 이는 아예 현모를 향해 대놓고 눈을 흘겼다.그 모습을 본 윤구주는 비꼬듯 말했다.“현모, 저들이 눈이 먼 것도 아닌데 말이야. 내가 온 거야 당연히 알고 있었겠지. 이렇게 오래 기다리게 했으니 슬슬 짜증이 날 만 하겠네.”꿀꺽.모든 신령이 침을 삼켰다.마치 누군가를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말이었다.그들이 현무에게는 불만을 드러내고 대거리할 수 있었던 것도 최소한 싸움 한판쯤은 가능하다는 전제가 있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윤구주는 달랐다. 그의 앞에서 감히 무례를 범하는 것은 곧 스스로 무덤을 파는 셈이었다.모두가 일제히 무릎을 꿇고 예를 표했다. 바깥의 경비병들과는 달리 이들은 단정한 단일 무릎 꿇기 자세를 취했다. 이것은 그들이 경비병들보다는 지위가 높다는 것을 나타냈다.이는 신령들의 체면을 어느 정도 보장하기 위해서 그들이 화진 대표와 협의하여 결정한 예식이었다.윤구주는 아무 말 없이 설윤을 이끌고 정좌에 앉았다.그는 온몸을 가죽 소파에 널브러뜨리듯 기댄 채 편하게 앉았다. 설윤은 한 귀퉁이에 조심스레 걸터앉았다.“설윤, 오늘의 주인공은 당신이에요. 저 사람들 눈치 볼 필요 없어요.”“앞으로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공주님을 위해
설윤의 반응은 윤구주 예상대로였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오는 길 동안 긴장했던 이유였다. “무릎 꿇고 있는 자들은 일어나거라. 아무 자리에나 앉아서 우리 화진의 최고급 차나 마시도록 해. 너는 설윤 공주가 일어나라고 하지 않았으니 계속 무릎 꿇고 있어.” 윤구주의 말이 떨어지자 홀에 있던 모든 신명이 일제히 일어났다. 그들은 자리를 잡고 앉은 뒤 하나같이 비웃는 눈빛으로 그 노인을 쳐다보았다. 타인의 불행을 구경하는 것은 너무 재미있었다. 노인은 공포에 질려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몇 번 조아리자 이마에 상처가 났고 바닥에는 온통 피였다. “윤구주 씨, 이 사람은...” “알고 있어요. 케일 공작이죠. 헨드리 왕실의 적수로 헨드리 제국 안에 자신의 왕국을 세우려 했으며 헨드리 제국에서는 지금 당신의 삼촌 디크스와 같은 악당이고요.” 윤구주가 설명했다. 설윤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케일 공작은 헨드리의 배신자였다. 그는 공개적으로 헨드리 제국 안에 자신의 영지를 만들고 케일 상단으로 제국의 상업을 독점했다. 심지어 그 영지 안에 군대까지 세웠다. 특히 몇 년 전, 케일 공작은 왕실 후계자인 설윤을 암살하려는 계획까지 세웠다. 다행히 왕실 정보부가 미리 알아채어 계획을 저지할 수 있었다. “당신 말이 맞아요. 하지만 왜 이 자가 헨드리 제국에서 그렇게 악행을 저지르면서도 처벌받지 않았는지 알아요?” 윤구주는 웃으며 물었다. “왕실의 뒤에 더 큰 세력이 있다고 했어요. 이제야 알겠어요. 그 뒤에도 신명이 있었네요.” 설윤은 침착하게 대답했다. “맞아요. 그 뒤에는 확실히 신명이 있어요. 좋게 말하면 헨드리에서의 빙신전 이익 대변인이고 나쁘게 말하면 빙신전의 하수인이죠. 헨드리 제국이 어쩔 수 없었던 건 당연해요.” 윤구주가 말했다. 케일 공작은 더욱 공포에 떨었다. 그는 자신의 주인이 이미 구주왕에게 항복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 간단히 말해 윤구주는 그의 목숨줄을 쥐고 있었다. 그를 죽이는 건 개미 죽이듯이 쉬운 일이었다. “
“주작, 현모, 화진의 군신이라. 하하. 네놈들이 말해봐라. 내가 지금 구주왕을 배신한다 해도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겠나? 이전엔 너희 셋이 힘을 합쳐도 백여 합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 지금은 내가 황자급 경지에 올랐고 백호는 얼어붙어 잠든 상태라 너희 둘밖에 없는데 뭘 할수 있겠니? 난 세 방이면 충분히 너희들의 목을 벨 수 있어.”빙신전 전주가 비웃듯 말했다.그 말을 들은 주작은 두 눈을 부릅뜨고 빙신전 전주를 바라보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두려울 것 없다. 당장 빙신전과 결전을 벌이려는 순간 현모가 침착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주작, 진정해. 저놈이 배신할 마음이 있다 해도 최소한 저하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을 거야. 문아름처럼 똑똑한 여자도 실패하지 않았나? 저놈에겐 그럴 배짱이 없을 거다.”막 황자급 경지에 올라 기분이 좋았던 빙신전 전주는 현모의 말에 불쾌해졌다.윤구주를 배신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그는 이미 윤구주에게 정신적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상태라 생각이 바뀐 지 오래 되였다. 윤구주가 이번 원정에서 실패한다 해도 최소한 생존은 보장될 것이고 윤구주를 따라 황자급 경지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윤구주의 그늘 아래에서 편안히 권력을 누리는 게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그의 현재 실력으로는 결코 4대 군신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됐어.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지. 4대 군신은 정상이 하나도 없구만. 구주왕님이 떠나기 전 내게 전음을 남기셨다. 아사신족의 잔당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 전법을 파괴하라고 말이야. 너희 저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그분은 곤륜에서도 학살을 벌인 자야. 신계의 결계쯤이야 가뿐히 넘어설 거다.”이 말을 들은 주작은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빙신전 전주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현모, 구주왕님이 너에게 지휘를 맡기셨다. 내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테니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해라. 단 헨드리 문제는 우리 빙신전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재권 따위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윤구주가 황인으로 만든 전법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전법이 사라지면 세 인황과 백 명의 왕, 수만 영령들이 사라질 것이다.마지막 순간, 헨드리에 사는 화진 사람들이 현재 화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편집해 헨드리의 제일 큰 광장 스크린에 올렸다.화려하게 발전한 화진의 모습을 본 영령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세 인황과 왕들은 모두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통일된 왕조를 세운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기에 왕조를 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왕조가 번성에서 쇠퇴로 기울면 그 순간 화진에 재앙이 밀려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집된 영상 속 화진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했다.“선배님들, 화진은 이미 수많은 고비를 딛고 넘어섰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지났으니 안심하십시오. 화진에 저 윤구주가 있으니 마음 놓고 돌아가세요. 저 윤구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화진에 재앙을 가져오는 놈들의 뿌리를 뽑아 영원한 태평성대를 만들겠습니다.”전법이 사라지며 영령들은 천지로 흩어졌다. 고인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그들의 영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천지 영기는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영령들이 흡수했던 영기는 신들이 소멸할 때 천지에 되돌려졌다. 후손들이 능력만 있다면 화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분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화진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근본이었다.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이 지난 후 윤구주도 세 인황처럼 선대 인황이 되어 후손들에게 소환될지 모를 일이었다.이 생각에 윤구주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주군 장수들과 암부 대원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격앙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문아름, 너의 비뚤어진 마음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야. 넌 나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화진의 선조들을 대적하는 것이다. 죽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진 채 선조들조차 너를 가만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진에 부끄럽지 않아. 설령 언젠가 죽어 흔적도 없이
“도망칠 생각 말라. 사악한 신이여 목숨을 내놓아라.”세 인황이 돌진하자 백 명의 강자들이 그들을 뒤따르며 도망치려는 타이탄 거신의 영혼을 공중에서 가로막아 산산조각냈다.“우와 대박! 과연 화진의 옛 황제님이시여.”고층 건물 꼭대기에 있던 백호가 세 인황을 향해 외쳤다.진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두 인황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타이탄 신의 잔여 영혼 정수를 모아 강제로 백호에게 주입했다.에너지가 체내로 들어오자 백호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해져 폭주 상태에 빠졌다.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윤구주가 천주 금술을 발동해 백호의 의식을 봉인했다.휙!세 인황의 의도를 알아챈 빙신전 전주도 술법을 써서 백호를 얼음 속에 가뒀다.“구주왕님의 이 부하는 보통사람이 아닌 듯하군요. 영혼을 삼켜 경지를 올릴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한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마인이 되었을 텐데 이 자는 원래부터 미친놈이라 오히려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군요.”빙신전 전주가 중얼거렸다.“그건 개소리야. 저놈이 음혼을 삼킬 수 있어서 그런 거다. 양도의 혼이라면 순식간에 타버릴걸.”윤구주가 투덜대자 그 말을 들은 빙신전 전주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하의 음기로 수련을 했기 때문에 음혼이 될 수밖에 없었다.정확히 윤구주만이 이 폭주하는 백호를 길들일 수 있었다. 다른 이라면 이미 백호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헨드리 왕도의 위기가 드디어 해결되었다.화려한 도시의 십 분의 일이 폐허가 되었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유라비아 전체를 구한 대가치고는 합당했다.세 인황과 수백 명의 왕, 그리고 수만 영령이 전법 주변에 모였다. 전법아래에는 화진에서 온 장군들과 암부 대원들이 선조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미래의 화진을 못 보았으니 참 아쉽구나.”당국의 인황이 한숨을 내쉬었다.세 인황 중 제일 인자했던 그는 백성을 가장 아끼던 존재였다.“그만하세.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네. 이젠 우리
“세 번째 방법은 바로 천지의 영기와 음양오행을 빌려 황자가 되는 거야. 이 방법으로 황자급 경지에 오른 자는 모든 천지 속성을 흡수해 약점이 없으니 무적이라 불리지.”윤구주의 말에 빙신전 전주가 흥분하며 물었다.“구주왕님, 그럼 제가 가장 강한 황자인가요?”윤구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내 말은 네놈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다. 너는 천령을 내버려 두고 지하 음기를 빨아들였잖아. 전에 내가 박살 낸 빙황보다는 강하지만 그자의 경지가 너보다 높았으니 너희 둘이 싸우면 넌 여전히 졌을 거야.”“네?”빙신전 전주의 얼굴이 축 처졌다. 황자가 되면 윤구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빙신전 전주의 경지 돌파에 이어 다른 빙신전 수련자들도 많이 강해졌고 현모, 주작, 백호 세 사람의 경지도 급상승했다. 주작은 구오 대원만 경지, 현모는 구오 후기, 백호는 극 신급 절정 중급에 도달했다.반면 기사들의 성장은 미미했다. 이들은 수련한 적이 없었고 영기를 정화하는 방법만 익혔기 때문에 근육이 더 발달하고 힘만 세졌을 뿐이었다.“참 훌륭하군. 내가 알기로 화진 역사에서 자네와 같은 경지에 오른 자는 먼 고대의 황제뿐이었어.”무제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다른 두 인황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화진이 윤구주의 손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세 인황은 용기의 가호를 받으며 타이탄 최강의 거신을 협공했고 다른 왕들은 일반 타이탄 신들을 상대했다.그들의 공격에 타이탄 신들이 차례로 쓰러지자 주작과 청해가 법기로 그들의 시신을 수거했다. 이 경지에 오른 수련자의 몸은 귀중한 보물이니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놓아둘 수 없다.타이탄 거신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마침내 최후의 타이탄 시조신만 남았다.세 인황이 힘을 합쳐도 시조신을 잠시 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술법을 쓰지 않는 상대임에도 쓰러뜨리기 어려웠다.“이봐, 네 전법이 거의 끝나가니 계속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나서라.”진왕이 윤구주를 향해 소리쳤
황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윤구주의 모습에 빙신전 전주는 강자에 대한 인식을 또 한 번 갈아엎어야 했다.‘인황은 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구나. 고대 화진의 인황이 구주 오방을 통일한 게 당연했어.’화진의 옛 황제들과 왕들이 힘을 발휘하자 공중에 화진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 기세가 하늘을 뚫고 천지를 뒤흔들었다.힘이 약한 사악한 괴물들은 이미 소멸되었고 강력한 파라오는 무제의 창에 찔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갔다. 당국의 왕은 다른 고대 문명의 신을 단칼에 베어 죽였다.사악한 기운마저 이 황제들과 왕들에 의해 정화되고 있었다.이제 헨드리에 남은 적은 타이탄 신뿐이었다.사악한 기운에 빙의된 고대 신들과 달리 타이탄 신은 실체를 가진 수련자들이었다.술법을 쓰지 못하지만 몸을 절정의 경지에 이르게 단련한 그들은 무적에 가까웠다. 황제들과 왕들이 이끄는 영령 군대는 타이탄 신족과의 결전에서 별다른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이 영령들은 문물과 흩어진 영기에 의존해 잠시 소환된 존재들이었기에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 전성기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수련자들을 상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불길을 더 크게 지펴야겠군.”“구양진용결!”“구음만상결!”“백호, 주작, 현모의 성수여 제자리로 돌아가거라.”아홉 마리 진용이 구름을 뚫고 내려와 왕도 상공에 떠 있었다.황제들과 왕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생전 진용 천자라 불렸던 그들은 용의 기운을 제어할 수 있었기에 그 기운을 마음껏 흡수했다.나머지 영령 전사들은 만상의 힘을 흡수해 한 단계 진화했다.백호, 주작, 현모의 정혈이 윤구주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 성수가 삼각형을 이루며 세 가지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청룡이 부족하구나. 청룡의 정혈이 없으니 환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지.”윤구주가 청룡 성수의 환영을 소환해 나머지 한쪽을 지키게 했다. 네 성수가 모이자 천지의 영기가 배로 증가하였다.무궁무진한 영기들이 영령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동시에 구주군 장군들과
윤구주가 쓴 술법은 서요산의 금술에 구양진용결을 더한 것이고 인황인은 윤구주가 곤륜에서 스승들로부터 미리 전수받은 것이다.인황인을 윤구주에게 전수한 목적은 단순했다. 미래에 윤구주가 인황이 될 수 있다면 천지의 영기를 호령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만약 되지 못하면 인황에게 전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인황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술법으로 천술을 넘어 전설 속 성술에 해당하는 경지였다.마치 격렬한 태양과 같은 금빛 인장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것이 전설 속 인황인이었다.인황인이 응축되며 천지의 영기가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이 영기들은 헨드리가 과거 화진에서 약탈해 간 고대 유물들 속으로 스며들었다.개방되지 않은 보물관 한쪽에서 청동 검 하나가 영기를 흡수하더니 진동하기 시작했다.이상을 감지한 박물관 관장이 달려왔다.“이 검은 화진 진왕의 칼인데. 대체 무슨 일어난 거지?”진왕의 검에서 엄청난 위압을 가진 한 사람의 형상이 튀어나왔다.“과인을 깨운 자가 누구냐? 과인의 영혼은 이미 소멸했을 터. 새로운 인황이 천지 영기를 모아 과인의 영혼 잠시 소환한 모양이로군.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좋다. 인황이 부른다면 과인도 황인을 받들어 다시 한번 전장에 나서겠노라. 진국의 병사들이여, 어디 있느냐?”우웅!전시관에 보관된 진국의 문물들에서 눈 부신 빛이 솟아올랐다. 영혼의 형체들이 정신을 되찾으며 하나둘씩 모습을 보였다.순식간에 천 명의 영령 군대가 결집되었다.“폐하를 뵙습니다.”“그래. 짐이 바로 천자다. 여러 장수들은 명을 들어라. 짐을 따라 관문을 나서 사악한 마귀들을 섬멸하라.”진왕이 진국 병사들을 이끌고 전시관을 뛰쳐나오자마자 바로 다른 문명에서 온 고대 사신들과 맞닥뜨려 싸움을 벌였다.지하 보물실에서는 당국의 인황이 병사를 이끌고 지면으로 뛰쳐나와 타이탄 신을 향해 돌진했다. 술법으로 깨어난 무제가 친위대를 거느리고 고대 이집트 미라 군단을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이들은 화진의 옛 인황들이었다. 왕의
함대 지휘실에서 작전을 지시하던 명필무가 드론으로 전송된 헨드리 왕도의 영상을 확인했다.그 영상을 본 구주군 장군들은 왕도 안의 마물들이 방금 함대가 섬멸한 괴물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아챘다.“왕도의 인구가 너무 밀집해 있어서 우리에게 무기가 있어도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네.”명필무가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했다.왕도가 함락되고 헨드리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괴물들에게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명필무는 사격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 포격이 시작되면 그 성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방금과 같은 조건에서만 명필무는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사령관님, 저하께서 금방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해역을 잘 지키고 헨드리 왕도의 위기가 해결되면 구조를 위해 왕도 항구 안으로 진입하라는 명령입니다.”구주군의 한 장군이 윤구주로부터 온 전음을 명필무에게 전했다.“오? 그 말은 구주왕께서 이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거로군.”명필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윤구주가 어떤 방법을 쓸지 알 수 없었지만 화진의 인황인 그에게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한편, 헨드리 왕도의 빙신전 수련자들은 한창 고전 중이었다.현모는 혼자 성수인을 발동해 수백만 헨드리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성수인으로 형상화된 성수의 금빛은 점점 희미지고 있었는데 이는 현모의 정기가 고갈되어 버티기 힘들어졌음을 의미했다.가장 처참한 이는 빙신전의 전주였다. 그는 정혈을 끌어내어 목숨을 걸고 회의실을 지키고 있었다.“구주왕님, 저는 이미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차피 이 천술대진이 깨지면 저도 죽을 목숨이니 마음대로 하십시오.”빙신전 전주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그가 저항을 포기하려던 순간 회의실 건물 옥상에 있던 윤구주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윤구주가 손에 들고 있던 동화책을 높은 하늘로 던지며 뭐라 외치자 동화책은 화려한 자색 빛을 뿜어냈다.동화책은 한 장씩 풀려나갔고 페이지마다 고대의 신비로운 부호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팔기지, 천주금술.”“팔기지, 부자
헨드리는 술법으로 깨어난 괴물들에게 점령당한 듯했다.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괴물들이 인간 세상을 배회하고 있어 마치 진정한 세계의 종말이 온 듯해 보였다.부활한 고대의 사악한 영혼들이 곳곳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타이탄 신들마저 인간 세상에 강림하자 헨드리는 완전히 절망에 휩싸였다.괴물들이 너무 많아 황혼 기사단과 빙신전의 인원들이 전부 동원되었음에도 그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괴물들과 타이탄 신들이 함께 회의실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빙신전의 전주가 홀로 현빙전법을 구축하고 여러 가지 법기를 동원해 연이어 금술을 펼쳤다.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구주왕님, 어서 나서 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저도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빙신전의 전주가 서둘러 윤구주에게 전음을 보냈다.사실 현재 난동을 부리고 있는 괴물들은 빙신전 전주 같은 강자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지만 윤구주와의 협약이 있었기에 도망갔다가는 참혹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일단 버텨라. 아직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니다.”윤구주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의 전법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르렀기에 다른 일에 정신을 팔 수 없었다.웅!헨드리 상공에 세 가지 수력이 연이어 나타났다. 백호, 주작, 현모 세 사람이 성수인을 발동시키자 세 성수의 화신이 세상에 강림했다.현모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헨드리의 민간인들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주작은 깃털의 수호신과 하나가 되어 붉은 그림자로 변해 괴물들 사이를 누비며 암살 기술로 수백 마리의 괴물들을 처리했다.그들 중 성격이 제일 괴팍한 백호는 가장 강한 괴물들만 골라 싸웠다.다른 이들에게 이곳은 지옥이었겠지만 싸움을 즐기는 백호에게 괴물들이 가득한 헨드리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슈욱!백호와 한 타이탄 거신이 맞붙었고 두 사람은 고층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약한 괴물들이 두
그 사령들의 목표는 각 제단 주변의 고대 문물들이었다.하늘에 소용돌이가 나타나자 사방에서 검은 기운이 벽을 이루며 헨드리를 봉쇄했고 순식간에 헨드리와 외부의 연결이 끊겼다.사령이 빙의되며 고대 문명의 신들이 부활했다.지하 동굴에서는 무수한 죽은 자들이 석관을 부수고 나왔다. 괴이한 빛을 내는 해골들이 성전 기사들과 윌리엄이 이끄는 특수 부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더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성전 기사단장이 앞장서자 다른 기사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해골들과 맞붙었다.윌리엄이 이끄는 특수 부대도 열심히 싸웠지만 열병기로는 해골에게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불꽃만 일으킬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폭발이 가능한 화약만이 미약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격전이 시작되었다. 앞장선 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 고대 신들을 막아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해골들은 무적일 뿐만 아니라 고대 신술까지 사용할 줄 알았다.신술때문에 수많은 성전 기사들이 폭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윌리엄의 특수 부대 역시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박물관에서는 파라오와 그의 미라 하인들이 부활했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의 대제사장이 파라오 본인보다도 더 강력하다는 점이다.“망할! 저 극 신급 절정 후기 대제사장은 황자에 근접한 실력을 갖췄어.”양쪽의 실력 차이가 엄청 낫기에 청해는 미간을 찌푸리고 이겨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했다.차가운 기운이 응집되며 박물관 전체가 얼어붙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모래가 얼음을 깨고 사방으로 흘러나왔다.뜨거운 모래는 주변의 차들을 얼음처럼 녹여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면까지 녹여버렸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수많은 기사도 뜨거운 모래에 삼켜져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구주군의 한 장군도 심한 화상을 입었다. 윤구주가 전수한 공법이 없었다면 그도 기사들과 함께 모래 속에 묻혔을 것이다.같은 상황이 헨드리 왕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헨드리가 세계 각지에서 약탈해온 고대 문물들이 모두 부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