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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하...”

소채은은 한숨을 내쉬고는 윤구주를 힐끔 올려다봤다.

“됐어요. 너무 잘생겨서 제가 끝까지 선심 쓸게요.”

“어찌 됐든 간에 시내로 돌아가면 병원에는 데려가 줄게요. 치료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그래서 회복되면 내 가족에게 잘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소채은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시내로 돌아갈 짐을 쌀 거예요. 먼저 여기서 티비 좀 보고 있어요. 아무 데도 가면 안 돼요. 알겠죠? 내 물건에도 손대지 말고요.”

소채은은 낯선 남자에게 이렇게 당부하고는 윤구주에게 티비를 켜주었다.

윤구주는 멍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티브이로 돌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죽음의 바다에서 일어난 10개국 간의 전쟁을 방송하고 있었다. 화면속을 가득 채운 전함에서는 까만 연기가 솟아올랐고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고 화진의 군사들이 10개국의 침략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윤구주의 눈에 들어왔다.

이 화면이 윤구주의 머릿속에 박히면서 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러면서 수많은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구주왕, 그는 윤구주였다. 화진에서 종횡무진하는 9주 군신 윤구주.

10개국 간의 전쟁은 서른 살도 안 되는 그가 최강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다른 나라들이 벌인 침략 전쟁이었다.

10개국에서 무서워하는 저승사자, 그들에게 난 벗어날 수 없는 악몽 같은 존재다.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10개국에서 100여 명의 최강 고수를 파견했고 10개국을 지키는 열세 명의 신급 강자들이 오로지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는 혼자서 한 개 군을 이끌고 10개국의 백만 대군을 맞섰고 결국 일곱 명의 신급 강자를 무찔렀다.

허나 결국 여자 하나 때문에 패전하고 말았다. 그 여자는 바로 선우아름,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였다.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는 대전이 끝날 무렵 윤구주에게 세상에서 제일 독하다는 기린 화독을 내렸고 그 화독이 심장을 공략한 바람에 윤구주는 10개국의 강자에 둘러싸여 죽음의 바다에서 패전하고 말았다. 윤구주도 중상을 입고 바다에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화진의 전설이 몰락했다.

추억들이 밀물처럼 전부 윤구주의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원망과 분노가 화산처럼 곧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그는 드디어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선우아름, 왜 나를 배신한 거야. 왜 나에게 독을 탄 거냐고.”

이 여자만 생각하면 윤구주의 마음은 칼로 난도질당한 것처럼 아파졌다.

분노의 불길이 야수처럼 그를 덮치려 했지만 결국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선우 일가는 화진에서도 제일 큰 가문이고 화진 4대 가문 중 으뜸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선우 일가는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을뿐더러 선우 일가에 강자가 속출하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다.

윤구주가 이 모든 걸 떠올리고 있는데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운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전해졌고 순간 온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젠장, 기린 화독이 또 도지고 있어.”

체내의 독성이 발작하는 걸 느낀 윤구주는 황급히 내력을 움직여 독성을 잠시 잠재웠다.

일 분쯤 지나서야 윤구주는 간신히 기린 화독을 억제할 수 있었다.

“기린 화독을 단기간에 치료하긴 글렀군.”

“그렇다면 참을 수밖에.”

“화독을 치료하기 전에 절대 내 신분을 들켜서는 안 돼.”

여기까지 생각하자 윤구주는 갑자기 아까 바다에서 자기를 구한 소채은이 떠올랐다.

“기억 상실?”

“좋았어.”

“저 여자는 지금 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일단은 저 여자 옆에 남아있는 게 좋겠어.”

“게다가 나를 구했는데 가족에게 그런 오해나 받고.”

윤구주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위풍당당한 화진의 구주왕은 그렇게 기억 상실 환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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