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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작가: 김원호
“하...”

소채은은 한숨을 내쉬고는 윤구주를 힐끔 올려다봤다.

“됐어요. 너무 잘생겨서 제가 끝까지 선심 쓸게요.”

“어찌 됐든 간에 시내로 돌아가면 병원에는 데려가 줄게요. 치료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

“그래서 회복되면 내 가족에게 잘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

소채은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

“지금부터 시내로 돌아갈 짐을 쌀 거예요. 먼저 여기서 티비 좀 보고 있어요. 아무 데도 가면 안 돼요. 알겠죠? 내 물건에도 손대지 말고요.”

소채은은 낯선 남자에게 이렇게 당부하고는 윤구주에게 티비를 켜주었다.

윤구주는 멍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티브이로 돌렸다.

마침 티브이에서 죽음의 바다에서 일어난 10개국 간의 전쟁을 방송하고 있었다. 화면속을 가득 채운 전함에서는 까만 연기가 솟아올랐고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고 화진의 군사들이 10개국의 침략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윤구주의 눈에 들어왔다.

이 화면이 윤구주의 머릿속에 박히면서 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러면서 수많은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구주왕, 그는 윤구주였다. 화진에서 종횡무진하는 9주 군신 윤구주.

10개국 간의 전쟁은 서른 살도 안 되는 그가 최강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다른 나라들이 벌인 침략 전쟁이었다.

10개국에서 무서워하는 저승사자, 그들에게 난 벗어날 수 없는 악몽 같은 존재다.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10개국에서 100여 명의 최강 고수를 파견했고 10개국을 지키는 열세 명의 신급 강자들이 오로지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는 혼자서 한 개 군을 이끌고 10개국의 백만 대군을 맞섰고 결국 일곱 명의 신급 강자를 무찔렀다.

허나 결국 여자 하나 때문에 패전하고 말았다. 그 여자는 바로 선우아름,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였다.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는 대전이 끝날 무렵 윤구주에게 세상에서 제일 독하다는 기린 화독을 내렸고 그 화독이 심장을 공략한 바람에 윤구주는 10개국의 강자에 둘러싸여 죽음의 바다에서 패전하고 말았다. 윤구주도 중상을 입고 바다에 떨어졌다.

그 순간부터 화진의 전설이 몰락했다.

추억들이 밀물처럼 전부 윤구주의 머리로 흘러들어왔다.

원망과 분노가 화산처럼 곧 터질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그는 드디어 자신이 누군지 알게 되었다.

“선우아름, 왜 나를 배신한 거야. 왜 나에게 독을 탄 거냐고.”

이 여자만 생각하면 윤구주의 마음은 칼로 난도질당한 것처럼 아파졌다.

분노의 불길이 야수처럼 그를 덮치려 했지만 결국 그는 이성을 되찾았다.

선우 일가는 화진에서도 제일 큰 가문이고 화진 4대 가문 중 으뜸이라는 걸 그는 알고 있었다.

선우 일가는 재산이 어마어마하게 많을뿐더러 선우 일가에 강자가 속출하는 것도 다들 알고 있었다.

윤구주가 이 모든 걸 떠올리고 있는데 불로 지지는 것처럼 뜨거운 느낌이 심장에서부터 전해졌고 순간 온몸이 불타는 것처럼 뜨거워졌다.

“젠장, 기린 화독이 또 도지고 있어.”

체내의 독성이 발작하는 걸 느낀 윤구주는 황급히 내력을 움직여 독성을 잠시 잠재웠다.

일 분쯤 지나서야 윤구주는 간신히 기린 화독을 억제할 수 있었다.

“기린 화독을 단기간에 치료하긴 글렀군.”

“그렇다면 참을 수밖에.”

“화독을 치료하기 전에 절대 내 신분을 들켜서는 안 돼.”

여기까지 생각하자 윤구주는 갑자기 아까 바다에서 자기를 구한 소채은이 떠올랐다.

“기억 상실?”

“좋았어.”

“저 여자는 지금 내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생각하고 있어. 일단은 저 여자 옆에 남아있는 게 좋겠어.”

“게다가 나를 구했는데 가족에게 그런 오해나 받고.”

윤구주는 이렇게 마음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위풍당당한 화진의 구주왕은 그렇게 기억 상실 환자가 될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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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옥이 위치한 곳은 세계 10대 생명 금지구역으로도 분류되었다.극단적인 기후 외에도 이곳에서는 모든 내비게이션 장치가 전부 무효화되었다.근 수백 년 동안 수많은 탐험대가 이곳을 정복하려고 금지구역까지 깊이 들어갔는데 결국 실종되거나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이제 막 진입한 대오는 이미 완전히 방향감을 잃고 말았다.윤구주가 앞에서 인도하지 않았다면 암부 3대 지휘사라도 길을 잃었을 것이다.“저하, 여긴 정말 기이한 곳이네요! 모든 내비게이션 장치도 소용없고 나침판조차 엉망이네요.”“이런 제기랄! 하늘에 왜 태양이 열 개나 있는 거야? 오로라도 있고! 여긴 도대체 어떤 곳이야!”정태웅 3인은 구시렁거리기만 했다.“그래서 내가 진북왕을 앞장세웠잖아. 구오 지존이 길을 안내하지 않으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함정에 빠질지 몰라. 너희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허구일 뿐 직접적인 생명 위협은 가하지 않을 거야. 제일 무서운 것은 이곳 영기가 무질서하다는 거야. 쉽게 말해 자기장이 비정상적으로 혼란스러워 정신에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어. 여기에 오래 머무를수록 더 깊이 빠지게 될 거야. 게다가 자기장이 불안정해서 어떤 규칙도 적용되지 않아. 내비게이션 장비는 물론 현수오행, 풍수 변위 기술도 여기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어.”윤구주가 설명했다.정태웅 3인은 고개를 끄덕이긴 했지만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저하, 왜 진북왕은 괜찮은 거예요?”정태웅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너희는 구오 지존에 도달하지 않으면 이 경계의 신비를 알수 없어. 이 경계가 지존 왕자라고 불리는 이유는 이곳이 천지의 영기를 흡수해 자기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야. 내가 방금 말했듯이 천옥 영기가 혼란스러운 것은 영기가 너무 많아서야. 구오 지존 절정에 이르면 천지의 영기를 명확히 감지할 수 있어. 이곳에서 발생하는 기이한 변동은 모두 영기 때문에 발생하는 거야. 영기의 변화를 주의 깊게 지켜보면 대부분 숨겨진 위험을 예측하고 피할 수 있어. 그리고 영기가 아무리 혼란스러워도 중심점이 존

  • 구주, 왕의 귀환   제1777화

    “조상님! 채은 씨는 이미 안전해. 스승님이 단련시키려나 본데?”검도 도주가 직접 단련시킨다는 말에 민규현 3인은 부럽기 그지없었다.“알았어.”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한숨을 내쉬었다.소채은에게 별일 없다니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었다.“조상님, 한 가지 더 이야기할 거 있어! 우리 검도도 참여하게 해주지? 진작에 종문 동맹이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무슨 낯짝으로 감히 화진 무도라고 말하는 건지 모르겠어. 조상님 한마디면 우리 검도 전원이 곤륜 구역을 벗어나 종문 동맹을 모조리 없애버릴 거야.”전화기 너머에서는 거만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윤구주가 아무 말도 없이 민규현에게 눈빛을 보내자 통화는 이대로 끝났다.“저하, 저 자식 도대체 누구예요? 검도까지 나서면 정말 종문 동맹을 해결하는 건 크게 문제도 아니잖아요.”천현수가 앞으로 나서면서 말했다.권모술수의 달인은 모든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했다.“너의 시야는 너무 좁아. 권모술수도 일정한 실력 기반 위에 세워져야 하는 거야. 넌 아직 경험이 부족해서 하늘이 얼마나 높은지 몰라.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거야. 권모술수를 남용하면 화를 자초할 뿐이라고.”윤구주가 진지하게 말하자 천현수는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종문 동맹이 내가 봤던 거와는 다른가? 그 뒤에 다른 고수도 있는 건가?’“채은이가 별일 없다는데 굳이 급해 할 필요도 없어. 지금은 예전과 달라서 잘못 움직였다간 잘못될 수도 있어. 내 계획대로 진행해.”천현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다고 했다. 윤구주가 권모술수를 쓰려는 모양이다.그는 권모술수의 길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때는 국주가 직접 나서서 따로 간섭할 필요가 없었다.이제 왕이 직접 나선다는 것은 상황이 이미 통제 불능이라 국주가 컨트롤할 수 없는 경지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저하, 그 자식 도대체 누구예요?”정태웅이 질문했다.“검황도종의 선배이자 검도의 검수. 간단히 말해서 야망은 크지만 속셈이 없는 허수아비일 뿐 큰일을 이루기 어려운 사람이라

  • 구주, 왕의 귀환   제1776화

    두둥!전화기 너머의 사람은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다.뭘 폭파했는지 폭발음이 귀청을 찌르는 듯했다.“이런 제기랄! 난 윤구주 아버지라고! 전하든 말든 마음대로 해!”세 사람은 더 이상 지체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전화기를 들고 걸어가며 조용히 경고했다.“말조심해 주세요. 저희도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윤구주 앞에 도착한 민규현은 전화기를 막으면서 말했다.“저하, 곤륜 구역에서 전화가 왔는데 어떤 건방진 놈이 검도의 사람이라면서 저하에게 예의를 갖추지 않더라고요. 저희가 도저히 어떻게 할수가 없었어요.”윤구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민규현이 핸드폰을 건네려고 하는데 스피커폰으로 해놓으라고 했다.윤구주는 몸에 쌓인 눈을 훌훌 털어내고 천현수에게 천옥으로 출발할 준비 하자고 했다.‘대화도 해보지 않고 떠날 준비를 한다고? 설마 이미 뭔가를 알고 있는 걸까?’핸드폰은 이미 스피커폰 모드로 되어있는데 검도 강자라는 사람은 핸드폰이 이미 윤구주에게 건네진 걸 모르고 욕설을 퍼부었다.“이런 병신같은 자식들! 윤구주 부하들은 왜 하나같이 멍청한 거야. 정말 짜증 나네? 윤구주, 이 망할 놈! 빨리 네 아버지 전화를 안 받아?”윤구주에게 이렇게 대드는 사람은 처음이라 민규현, 정태웅, 천현수의 표정은 어두워지고 말았다.동시에 상대방의 정체가 더욱 궁금해졌다.‘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길래?’“말할 줄 모르면 말하지 마. 저번에 떠나면서 너희 스승님더러 너한테 본때를 보여주라고 했는데 내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나 보네.”윤구주의 담담한 목소리에 상대방은 멍해졌다.민규현 3인은 상대방이 긴장한 것을 느낄수 있었다.“어...”“뭐라고? 벌거벗고 15,000km를 달리게 한 게 모자랐나 봐?”민규현 3인의 표정은 순간 밝아졌다.‘글쎄 어딘가 이상하다 했어. 아까 대화를 나누면서 저하를 언급했을 때 원망이 가득했단 말이야. 이제 보니 저하에게 학대당한 거였네!’“윤구주...”“뭐라고?”“저하!”“저하가 네가 마음대로 불러도 되는 이름인

  • 구주, 왕의 귀환   제1775화

    화진 북부지역에 있는 비밀 공항.윤구주 일행은 아침에 이미 천옥과 50km도 안 되는 곳에 도착했다.눈이 펑펑 내려 추운 눈 속에 고립된 윤구주는 계속 서울에서 전해지는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다.서울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다음 행동을 시작할 방법이 없었다.극도로 억제하고 있었지만 여전히 소채은의 영향을 받아 감정이 불안정한 상태였다.멀지 않은 곳에 있는 암부 3대 지휘사는 그들의 왕이 무엇을 걱정하고 있는지 알고 있었다.그들도 소채은이 무사하기를 기도하고 있었다.소채은은 너무나도 중요했다. 만약 그녀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 아무도 몰랐다.“걱정하지 마세요. 문씨 가문이 바보도 아니고 형수님을 죽였다간 별로 좋은 일도 없을 거예요.”“제가 봤을 땐 아무 일도 없거나 이미 문씨 가문에 잡혀갔을 수도 있어요.”가장 권모술수에 능한 천현수가 분석했다.“씁! 그럼 우린 왜 서울을 떠나야 하는데? 천옥에 가는 게 급하지도 않은데.”이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정태웅이 구시렁거렸다.“너 바보야? 저하가 안 가는데 현문 시조가 서울에 갈수 있겠어?”“우리는 움직이지 않고 끌려다닐 수밖에 없는거야?”민규현이 정태웅의 머리를 한 대 때리며 말했다.“그래. 서울에 남아있으면 더욱 수동적일 수밖에 없어. 저하가 이러는 것도 주도권을 쟁취하기 위한 거라고!”천현수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바로 이때, 민규현의 주머니에 있던 핸드폰이 울렸다.민규현이 핸드폰을 꺼낼 때, 세 사람은 동공이 확장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이 핸드폰은 암부와 곤륜 구역을 연결하는 전용 핸드폰으로 곤륜 구역에서만 암부에 연락할 수 있었다. 이 선로가 설치된 이후로 곤륜 구역에서 암부와 연락한 것은 처음이었다.“곤륜 구역이에요?”정태웅이 긴장하며 물었다.암부는 곤륜 구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곤륜 구역은 전 세계와 맞먹는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그 역사는 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었으면 이 지구에서 가장 신비로운 지역이었다.민규

  • 구주, 왕의 귀환   제1774화

    바로 이때, TV에서 점심 뉴스가 방송되었다.뉴스는 왕실 대표가 직접 진행했으며 뒤쪽 화면에는 구주왕의 좌상이 비치고 있었다.화면 속에서는 윤구주가 군복을 입고 가장자리에 앉아있었다.화면이 펼쳐짐에 따라 여러 장군이 좌우에 나란히 서 있었다.그 기세는 어마어마할 정도로 대단했다.화면을 통해서도 여러 장군에게 압도당하는 기분이었으니 말이다.가장 강력한 것은 구주왕이었고, 그는 온몸에서 왕자의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그는 그저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대세가 이미 정해진 듯한 안전감을 줬다.왕실 진행자는 구주왕의 화려한 역사를 이야기하며 과장된 표현으로 구주왕에 대한 개인적인 숭배의 감정을 드러냈다.가장 빛나는 전적으로는 혼자서 열 개국을 상대했는데 그 열 개국의 적들이 스스로 화해를 요청한 것이다.소채은은 그만 온몸에 소름이 끼치고 말았다.이순간 그녀는 꿈처럼 느껴졌다.화진에서 오천 년을 거슬러 올라가도 나올까 말까 한 존재가 그녀의 남자였으니 말이다.“어? 구주네? 저 사진은 쟤가 가장 기세등등할 때 찍은 사진이거든요. 저 자신감 넘치는 눈빛을 봐봐요. 너무 잘난 척하지 않아요?”김도현은 밥을 다 먹고 이를 쑤시며 말했다.“선배님, 윤구주를 알아요?”소채은이 놀라면서 물었다.“그럼요. 제가 쟤 아버지거든요.”김도현이 입을 삐쭉 내밀며 말했다.소채은은 멍을 때리고 말았다.“김씨 아니셨어요?”“아, 양아버지라고요.”소채은은 그제야 왜 그가 자신을 양딸이라고 불렀는지 알 것만 같았다.그녀는 그럴 자격이 충분하지 않다고 느껴져 얼굴이 발그레해지긴 했지만 그래도 양딸로 인정받아서 내심 기뻤다.“하하.”김도현은 피식 웃으면서 속으로 생각했다.‘정말 이 헛소리를 믿는 거야?’이런 관계 덕분에 소채은은 자연스럽게 김도현과 가까워지게 되었다.“선배님, 뉴스에서는 왜 제 스승님을 언급하지 않는 거예요?”소채은은 이상하기만 했다.‘설마 사부님이...’“이것저것 의심하고 걱정하는 대신 제발 자신감 좀 가져줄래요? 제가 괜찮다면 괜찮은

  • 구주, 왕의 귀환   제1773화

    서울에 있는 한 편의점.“담배 주세요. 비싼 거로요. 다른 건 기침해서요. 언제 이런 브랜드가 나온 거예요? 맛은 괜찮아요? 저를 속일 생각하지 말고요.”가게에 앉아 밀크티를 마시고 있던 소채은은 카운터에서 가격을 흥정하는 김도현의 모습에 충격을 받았다.‘정말 담배를 너무 자주 피우네.’김도현은 한순간도 담배를 끊지 못했고 입에서 연기가 안 나면 몸이 근질근질한 모양이었다.게다가 알코올중독까지 있었으니 말이다. 계속 마시는 걸 보면 이미 바닥이 났을 텐데 아직도 마시고 있었다.그런데 국주마저 선배라고 부르는 사람이 여기서 가격을 흥정하고 있다니 꽤 재미있는 상황이었다.그는 돈을 아끼기 위해 사장님을 계속 칭찬했다.말 한마디에 천 냥 빛도 갚는다고 30% 할인 가격으로 담배를 한 갑 살 수 있었다.그런데 뻘쭘하게도 돈을 내려니 여기저기 들춰봐도 모자랐다.“채은 씨! 보고만 있지 말고 얼른 와서 계산해요!”편의점 손님들이 모두 이상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소채은은 급히 달려가 계산하고서 김도현을 끌고 나가려고 했다.“왜 그렇게 급해요? 사장님, 라이터도 좀 몇 개 주시죠? 바람을 막는 거로요.”떠나기 전에 김도현은 라이터까지 달라고 했다.김도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소채은의 무언의 눈빛을 주더니 라이터 한 박스를 들고 잽싸게 뛰쳐나갔다.할 말을 잃은 소채은은 라이터값까지 계산할 수밖에 없었다.편의점을 떠나자 김도현은 또 배가 고프다며 먼저 밥 먹고 출발하자고 했다.돈 있는 티를 내면 안 된다고 소채은이 아까 계산할 때 김도현은 이미 현금다발을 눈여겨본 것이다.고급 레스토랑 룸.김도현은 맛있는 음식을 한 상 주문한 것도 모자라 모태 고량주도 한 박스 가져왔다.“선배님, 이렇게 많이 다 드실 수 있어요?”소채은은 미간을 찌푸리고 말았다.“왜요. 제가 채은 씨 돈을 써서 그래요? 인색하긴.”“선배님, 오해예요. 제가 선배님에게 빚진 것이 있으니 얼마든지 사드릴 수 있죠. 그런데 낭비는 안 하는것이 좋지 않을까요?”소채은의 설명에 김도

  • 구주, 왕의 귀환   제1772화

    “됐어요. 이제 그만 가요.”“천수진, 철수!”그의 손가락이 검으로 변해 땅을 향해 휘두르는 순간 어둠을 밝히던 검은 빛을 빠르게 거둬들이면서 성스러운 빛을 지닌 백옥으로 된 보검이 칼집으로 돌아갔다.검이 칼집으로 들어가서야 그 사람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대략 40세로 보이는 그는 한창 젊은 나이였다. 생김새는 평범했고, 얼굴이 지나치게 빨간 것이 술주정뱅이 코를 가지고 있었고, 눈빛은 흐릿한 것이 온몸에서 진한 술 냄새가 풍겼다.그는 말하면서 다시 술병을 집어 들어 한 모급 마셨다. 이어 입에 담배를 물었는데 안타깝게도 라이터가 바닥나서 불이 켜지지도 않았다.그는 담배를 피울 수 없어 답답하기만 했다.“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가자고요. 어떻게 왕궁에 편의점도 없어. 일단 불 좀 빌려올게요.”소채은은 어이없었다.‘내가 언제 시간을 지체했다고 저러시지?’“선배님! 저한테 라이터 있어요!”소채은은 라이터를 꺼내 그의 담배에 불을 붙여주었다.한 모금 깊게 들이마시고는 내뱉은 연기를 다시 흡입하는 그 황홀한 표정은 그야말로 짜릿해 보였다.담배 냄새를 참기 힘들어하는 소채은은 자기도 모르게 코를 찡그렸다.‘담배를 너무 자주 피우는 거 아니야?’“뭘 보고 있어요? 그리고 라이터는 어디서 났어요? 어린 나이에 좋은 것만 배울 것이지 담배는 왜 피우는 거예요?”소채은 깜짝 놀라서 고개를 흔들었다.“아니에요. 선배님, 저는 담배를 안 피워요.”“그런데 왜 라이터를 가지고 있는 거예요?”“그게... 사실은 도화선을 이용해 폭탄을 터뜨릴 계획이었어요. 점화가 늦어질까 봐 다른 방법으로 바꿨지만요.”소채은은 설명하면서 그제야 몸에 폭탄이 묶여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폭탄을 해체할 틈도 없이 그녀를 데리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다.임정설은 멍하니 그 사람이 소채은을 데리고 하늘로 날아가는 것을 지켜보았다.“나의 수련은 아직 멀고도 멀었네. 구오 지존은 시작일 뿐이야. 설령 언젠가 황도에 이를 수 있다고 해도 선배와는 거리가 멀 거야.

  • 구주, 왕의 귀환   제1771화

    그는 바로 손을 들어 뺨을 때렸다.십여 미터 떨어져 있던 해청현은 뺨 맞아 기세가 꺾이고 말았다.한 덩어리의 음기가 해청현의 등에서 폭발해 나왔고, 이것은 해청현에게 남은 절반의 내공이었다.이런 초월적인 수단은 이미 해청현의 인지를 초월해 버렸다.“이런 젠장! 구오 지존이 아니었어! 정말 화가 나네. 너무하는 거 아니야?”해청현은 억울해서 울음을 터뜨렸다.‘이런 무도에 어긋나는 짓을 하다니!’“해청현! 너는 절대 용서받을 수 없어!”그 사람이 해청현을 죽이려고 할 때, 현문 시조는 오히려 겁을 먹었다.“그만해! 난 종문 동맹의 장로야! 절대 나를 죽일 수 없어! 우리 종문 동맹 맹주님은 왕도 강자이기도 하다고!”왕도 강자라면 진정으로 구오 지존을 넘은 극전 신급이라고 볼 수 있었다.“종문 동맹 맹주로 나를 협박하려고? 웃기는 소리! 너희 맹주가 직접 와도 나한테 선배라고 불러야 하는데 네까짓 게 뭐라고. 쓰레기보다도 못한 자식! 죽어!”샤삭!검으로 변한 그의 손가락은 차가운 빛을 뽐내면서 해청현의 정수리를 찔렀다.머리가 거의 잘려 나간 해청현은 뒤로 물러서며 그대로 쓰러져 숨을 거두고 말았다.현문 시조가 쓰러지면서 현문이 멸망하고 말았다.해청현이 죽자 소채은을 속박하던 기술은 즉시 무효가 되었다.움직임을 회복한 소채은 즉시 임정설 곁으로 달려가 그녀를 돌보았다.“제가 이미 양기를 드렸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임씨 가문의 기운은 이미 끊어져 더 이상 천자의 명분을 지닐 수 없을 거예요. 그런데 이번 죽을 고비로 구오 지존의 도를 깨달았으니 곧 정점에 달할 텐데 열심히 노력하면 극전의 경지에 이르는 것도 불가능하지는 않을 거예요.”그 사람은 말할 때 입에서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켁켁...”바로 이때 정신 차린 임정설은 소채은이 괜찮은 것을 확인해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사부님!”“괜찮으면 됐어.”눈물범벅이 된 소채은을 본 화진 국주인 임정설은 감동하여 그녀를 달래기 시작했다.소채은을 바라보는 눈빛에도 보기 드물게

  • 구주, 왕의 귀환   제1770화

    독소가 그의 가슴을 타고 퍼져나가며 순식간에 그의 몸의 대부분이 검게 변했다. 심지어 하늘을 가르는 검광마저 그 독에 의해 영향을 받아 흐려지고 침체됐다. 분명히 이 독은 매우 강력하고 사용된 기술마저 방해할 수 있을 정도였다. “음? 이건 이미 전해지지 않은 현명 신공중의 현명 귀수...” “강력하긴 하지만 저에게는 아무 소용없어요.” 그 사람은 담담하게 말을 뱉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깊은 숨을 들이쉬자 순간적으로 천지마저 왜곡된 듯한 느낌을 주며 만물의 기운이 모두 그에게 흡수됐다. “후우.” 깊은 숨을 들이킨 후 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몸에 퍼졌던 독소가 모두 밖으로 뿜어져 나가며 해청현이 그 절반의 수련으로 만든 독소가 그의 앞에 떠다니는 장난감처럼 보였다. 이 장면을 본 임정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저건 천수성검입니다. 그 사람이 쓴 건 신천비술 황도 공법이에요.” “소채은은 괜찮아졌습니다.” “아쉽게도 내 목숨은 여기까지 인것 같다.” “구주야, 난 너무 쓸모없구나. 너는 처음부터 나를 믿지 않고 외부의 도움을 구했지. 결국 네가 예상한 대로 됐다.” “하지만 난 기쁘다. 그 덕분에 너는 나를 훨씬 초과해버렸고 화진에는 너 같은 인물이 있으니 이제 안심이다.” 임정설이 간신히 버텼던 숨을 내쉬자 그의 반 생명도 함께 사라졌다. 그의 눈 속 신광은 사라지고 생명력은 급속히 떠나갔다. “스승님!” 소채은은 무너지듯 울부짖으며 소리쳤다. “음? 화진 국주가 죽어가는 건가?” “이건 안 되지. 내 눈앞에서 죽는 걸 두고 볼 수는 없지.” “안 그러면 이 인과는 반드시 나한테 돌아와. 내 수련에 큰 해가 될 거야.” 그 사람은 손끝으로 계산을 하며 결국 임정설이 살아있는 게 더 유용하다 판단했다.그는 손을 하늘로 뻗어 영기를 끌어들이며 한 손으로는 천지의 기운을 움켜잡고 다른 손은 술법을 써서 독소를 분해하고 순수한 기운으로 변환시켰다. 반 생애의 수련이 그렇게 해체되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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