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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몇 분 뒤, 소채은이 짐 정리를 마치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

기억 상실인 척하는 윤구주는 자연스럽게 목석처럼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

“저기, 기억 잃으신 분, 이제 갑시다.”

소채은은 이렇게 말하더니 윤구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짐가방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

“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집안의 오해를 사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제 집에 가서 뭐라고 설명해요?”

소채은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짐가방을 끌고 밖에 세워둔 하얀색 미니 쿠퍼로 향했다.

짐가방을 트렁크에 실은 후 소채은이 말했다.

“타요.”

기억을 잃은 척 연기 중인 윤구주는 “네”라는 간단한 대답과 함께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

차 안은 핑크로 장식했고 향기로웠다.

앉자마자 소채은이 말했다.

“아주 복받은 사람이네. 이 차에 한 번도 남자를 태워본 적이 없는데.”

윤구주는 속으로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내로 갑시다.”

소채은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소채은은 운전하면서 노래를 들었다.

옆에 앉은 윤구주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몸 안의 기운을 움직여 온몸에 난 상처를 천천히 치유하고 있었다.

소채은은 드문드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를 돌아봤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진한 눈썹과 맑은 눈동자, 어쩜 콧대도 높았다.

‘기억을 잃지만 않았어도 진짜 남신이 따로 없는데. 이런 남자가 내 남친이면 진짜 괜찮겠다.’

남자 친구는 무슨, 가족의 도구로서 곧 중해 그룹의 바람둥이와 결혼을 앞둔 마당에 자기의 행복을 선택할 자유는 없었다.

소채은은 씁쓸하게 웃더니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

차는 계속 앞으로 내달렸다.

여기서 강성시까지 가려면 적어도 5시간은 걸렸다. 고속도로에 다 와 가는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앞쪽 엔진에서 큰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차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뭐야? 어떻게 된 거지?”

소채은은 깜짝 놀라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내려서 검사했다.

보닛을 열자 까만 연기가 엔진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소채은은 연기를 맡고는 몇 번 기침하더니 얼른 뒤로 물러섰다.

“아, 큰일 났네. 차가 퍼졌어요.”

엔진에서 나오는 연기와 치치직거리는 이상 소음에 소채은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이 촌구석에 차량 정비소가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차 수리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이를 어쩌면 좋단 말인가.

“아, 재수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나?”

소채은은 짜증이 난 나머지 자기도 모르게 고물 같은 차를 몇 번 세게 걷어찼다.

이때 윤구주가 차에서 내렸다.

“무슨 일이에요?”

기분이 엉망진창인 소채은은 윤구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했다.

“건드리지 마요.”

윤구주는 소채은이 짜증을 내자 아무 말 없이 옆에 가만히 서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소채은은 자기가 너무한 게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기 차에 생긴 문제를 놓고 다른 사람을 탓할 수는 없었다.

소채은이 잠깐 고민하더니 말을 이었다.

“차가 퍼져서 기분이 엉망이네요. 마음에 담아두지 마요.”

윤구주는 그저 “네”하고 대답하고는 망가진 차 쪽으로 걸어갔다.

소채은은 그가 그쪽으로 걸어가도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핸드폰을 꺼내 정비소에 전화를 걸어 견인차를 부를 생각이었다.

한편 윤구주는 차 앞쪽으로 걸어가 까만 눈동자로 엔진 상태를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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