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채은은 옷을 갈아입고 멍해서 쓰러진 남자 곁을 지켰다.이 남자는 진짜 잘생겨도 너무 잘생겼다. 게다가 온몸으로 군주의 아우라를 뿜어내고 있었다. 쓰러져 있지만 않으면 남신이 분명했다.“이 사람 도대체 누구지?”“왜 바다에 떠 있었던 거지?”“그리고 왜 간단한 손놀림만으로 소씨 가문 보디가드를 쓰러뜨릴 수 있는 거지?”무수히 많은 의문이 소채은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호기심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인지 소채은은 이 남자를 더 알아가고 싶었다.얼마나 지났을까, 소채은은 침대맡에 누워 잠이 들었다.그때 소채은은 작은 움직임을 느꼈다.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떴다가 이내 “악!”하고 비명을 질렀다.어느새 기절했던 남자가 깨어 있었다.그리고 아주 올곧은 자세로 그녀 앞에 서 있었다.이 광경을 보고 소채은 놀라서 뒷걸음질 쳤고 경계 태세로 물었다.“당... 당신... 뭐하자는 거예요?”남자는 막연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는 주변을 빙 둘러보더니 멍한 눈빛으로 다시 소채은을 쳐다봤다.“당신은... 누구고... 여긴 어디죠?”매력 있는 목소리였지만 의문으로 가득 찬 말투였다.소채은이 얼른 대답했다.“저는 소채은이라고 해요. 제가 바다에서 당신을 구한 거예요.”“바다요?”남자가 다시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맞아요. 바다에 떠 있었던 거 기억 안 나요?”소채은이 귀띔했다.남자는 바다라는 말을 듣더니 멈칫했다.갑자기 머릿속에 수많은 죽음을 외치는 목소리가 들렸고 셀 수도 없는 시체들이 핏빛 바다에 둥둥 떠 있는 장면이 보였다.매캐한 연기와 군함이 불바다 속에서 망가지고 있었고 많은 사람이 불구덩이에서 목 놓아 부르고 있었다.마지막으로 그는 사방에서 까맣게 몰려오는 강자들이 그를 향해 달려오던 걸 떠올렸다.최후의 최후에 그는 사람들이 그를 향해 “구주왕... 구주왕...”이라고 외쳐대는 걸 들었다.“쿵”하는 소리와 함께 남자는 머리가 깨질 듯한 고통을 느꼈다. 마치 칼로 가르고 침으로 찌르는 듯한 아픔이었다.
“하...”소채은은 한숨을 내쉬고는 윤구주를 힐끔 올려다봤다.“됐어요. 너무 잘생겨서 제가 끝까지 선심 쓸게요.”“어찌 됐든 간에 시내로 돌아가면 병원에는 데려가 줄게요. 치료받을 수 있게 노력해 볼게요.”“그래서 회복되면 내 가족에게 잘 설명해 줬으면 좋겠어요.”소채은이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했다.“지금부터 시내로 돌아갈 짐을 쌀 거예요. 먼저 여기서 티비 좀 보고 있어요. 아무 데도 가면 안 돼요. 알겠죠? 내 물건에도 손대지 말고요.”소채은은 낯선 남자에게 이렇게 당부하고는 윤구주에게 티비를 켜주었다.윤구주는 멍해서 고개를 끄덕이더니 시선을 티브이로 돌렸다.마침 티브이에서 죽음의 바다에서 일어난 10개국 간의 전쟁을 방송하고 있었다. 화면속을 가득 채운 전함에서는 까만 연기가 솟아올랐고 하늘에는 무수히 많은 전투기가 날고 있었다.뭉게뭉게 피어오르는 연기를 뚫고 화진의 군사들이 10개국의 침략자들과 싸우는 장면이 윤구주의 눈에 들어왔다.이 화면이 윤구주의 머릿속에 박히면서 또 “쿵”하는 소리와 함께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그러면서 수많은 기억이 그의 머릿속으로 비집고 들어갔다.구주왕, 그는 윤구주였다. 화진에서 종횡무진하는 9주 군신 윤구주.10개국 간의 전쟁은 서른 살도 안 되는 그가 최강의 경지에 접어들면서 다른 나라들이 벌인 침략 전쟁이었다.10개국에서 무서워하는 저승사자, 그들에게 난 벗어날 수 없는 악몽 같은 존재다.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10개국에서 100여 명의 최강 고수를 파견했고 10개국을 지키는 열세 명의 신급 강자들이 오로지 윤구주를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그는 혼자서 한 개 군을 이끌고 10개국의 백만 대군을 맞섰고 결국 일곱 명의 신급 강자를 무찔렀다.허나 결국 여자 하나 때문에 패전하고 말았다. 그 여자는 바로 선우아름, 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였다.윤구주가 제일 사랑했던 여자는 대전이 끝날 무렵 윤구주에게 세상에서 제일 독하다는 기린 화독을 내렸고 그 화독이 심장을 공략한 바람에 윤구주는 10개
몇 분 뒤, 소채은이 짐 정리를 마치고 방에서 걸어 나왔다.기억 상실인 척하는 윤구주는 자연스럽게 목석처럼 방 한가운데 서 있었다.“저기, 기억 잃으신 분, 이제 갑시다.”소채은은 이렇게 말하더니 윤구주를 쳐다보지도 않고 짐가방을 들고는 밖으로 나가며 중얼거렸다.“다 당신 때문이에요. 당신만 아니었으면 집안의 오해를 사는 일도 없었을 텐데. 이제 집에 가서 뭐라고 설명해요?”소채은이 한숨을 푹 내쉬고는 짐가방을 끌고 밖에 세워둔 하얀색 미니 쿠퍼로 향했다.짐가방을 트렁크에 실은 후 소채은이 말했다.“타요.”기억을 잃은 척 연기 중인 윤구주는 “네”라는 간단한 대답과 함께 차에 올라 문을 닫았다.차 안은 핑크로 장식했고 향기로웠다.앉자마자 소채은이 말했다.“아주 복받은 사람이네. 이 차에 한 번도 남자를 태워본 적이 없는데.”윤구주는 속으로 웃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시내로 갑시다.”소채은은 차에 시동을 걸었고 집으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채은은 운전하면서 노래를 들었다.옆에 앉은 윤구주는 눈을 지그시 감은 채 몸 안의 기운을 움직여 온몸에 난 상처를 천천히 치유하고 있었다.소채은은 드문드문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를 돌아봤다. 잘생긴 이목구비에 진한 눈썹과 맑은 눈동자, 어쩜 콧대도 높았다.‘기억을 잃지만 않았어도 진짜 남신이 따로 없는데. 이런 남자가 내 남친이면 진짜 괜찮겠다.’남자 친구는 무슨, 가족의 도구로서 곧 중해 그룹의 바람둥이와 결혼을 앞둔 마당에 자기의 행복을 선택할 자유는 없었다.소채은은 씁쓸하게 웃더니 더는 생각하지 않았다.차는 계속 앞으로 내달렸다.여기서 강성시까지 가려면 적어도 5시간은 걸렸다. 고속도로에 다 와 가는데 “쿵”하는 소리와 함께 차 앞쪽 엔진에서 큰 소음이 들려왔다. 그러더니 차에서 검은 연기가 뭉게뭉게 피어올랐다.“뭐야? 어떻게 된 거지?”소채은은 깜짝 놀라 차를 길가에 세워두고 내려서 검사했다.보닛을 열자 까만 연기가 엔진에서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었다.소채은은
그는 까만 연기를 뿜어내는 엔진과 회로판 내에서 전해지는 탄 냄새를 맡고는 바로 뭐가 문젠지 알아냈다.화진의 유일한 구주왕으로서 차가 퍼진 문제는 그에게 너무나도 작은 문제였다.그는 빠른 걸음으로 트렁크 쪽으로 걸어가 차에 상비된 스패너를 꺼내 나사를 뽑고 엔진 커버를 열었다.전화를 치던 소채은은 기억을 잃은 사람이 자신의 차 앞에서 이것저것 만지고 있으니 잠시 넋을 잃었다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왔다.“뭐 하는 거예요?”소채은이 걸어와 경악스러운 눈빛으로 엔진 커버를 따는 윤구주를 쳐다봤다.“잉?”“지금 차 정비하는 거예요?”소채은이 궁금해서 다시 물었다.윤구주는 여전히 아무 대답도 없이 차만 만졌다.2분 뒤 윤구주는 안에서 끊어진 두 개의 전선을 연결하고 말했다.“됐어요.”소채은은 더 멍한 표정으로 윤구주를 쳐다보며 물었다.“이렇게 빨리... 고쳤다고요? 진짜?”윤구주가 그저 “네”하고 대답만 할 뿐이었다.기억을 잃은 남자가 차를 고칠 줄 안다니, 소채은은 의문이 들었다.의문을 가진 채 소채은은 빠르게 차로 돌아가 시동을 걸었고 아니나 다를까 차는 시동이 걸렸다. 아까 엔진에서 나던 이상한 소리도 사라지고 더 이상 연기도 나지 않았다.확실히 고쳐진 차를 보며 소채은은 기뻐했다.“하하, 몰랐는데 차도 고칠 줄 아네요?”“혹시 전에 차량 정비하던 사람인가?”“?”윤구주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전에 차량 정비공이었나보네.”소채은은 윤구주의 예전 신분을 거의 확정하듯 말했다. 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그렇게 차는 윤구주에 의해 완전히 고쳐졌다.소채은은 다시 기분 좋게 운전해 윤구주를 데리고 시내로 향했다.가는 길에 소채은은 윤구주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진짜 기술이 괜찮은데요?”윤구주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앉아있을 수밖에 없었다.천하의 9주 군신이 차를 정비하는 엔지니어로 불리게 될 줄이야, 꿈에도 생각지 못한 그림이었다.고속도로를 타자 소채은의 차는 속도가 붙었다.이때 뒤에서 패기 넘치는 군용차가
윤구주가 남부 부대의 차량을 보며 감개무량해하는데 소채은이 윤구주의 표정을 발견하고는 물었다.“기억을 잃은 윤구주 씨, 뭘 그렇게 열심히 봐요?”윤구주는 재빨리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아무것도 아니에요.”“근데 그렇게 넋을 놓고 보고 있다고?”소채은이 다시 캐물었다.“그냥 익숙해서 뚫어져라 보는 거겠죠.”“익숙하다고요?”“기억을 잃은 사람이 남부 창용부대 차량을 보고 익숙할 게 뭐가 있어요. 혹시 전에 군인이었어요?”소채은이 캐물었다.그 물음에 윤구주는 어이가 없었다. 그는 군인만 한 게 아니었다.윤구주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소채은이 웃으며 말했다.“괜찮아요. 내가 봤을 때 당신은 그냥 차량 정비 엔지니어였을 거예요.”“시내로 돌아가면 꼭 큰 병원으로 데려가서 기억상실증 고쳐줄게요.”“기억 돌아오면 꼭 차 자주 고쳐주면서 보답해야 해요.”소채은의 말을 들으며 윤구주는 쓴웃음을 지었다.3시간 뒤, 드디어 소채은은 윤구주를 데리고 강성시로 돌아왔다.주변에 즐비하게 서 있는 고층 빌딩을 보며 윤구주는 침묵을 유지했다.소채은은 시내로 돌아오자 서란의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채은아, 지금 어디야?”전화를 받자마자 서란이 냉큼 물었다.“베프”의 전화에 소채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나 이미 강성시로 돌아왔어. 서란아, 하나 물어볼게. 우리 집안과 아빠가 어떻게 내가 옛 본가로 간 일을 알고 있지? 혹시 네가 일러바친 거야?”소채은은 바보가 아니었다.“베프”와 통화를 하고 두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아 아빠가 사람을 데리고 옛 본가에 나타났다. 이걸 과연 우연이라고 할 수 있을까?수화기 너머의 서란이 이걸 듣더니 다급히 해명했다.“채은아, 미안해. 아버님이 계속 보채서 말할 수밖에 없었어... 채은아, 내 탓 하는 거 아니지?”서란은 전화에 대고 불쌍한 척해댔다.소채은은 원래 화가 잔뜩 나 있었지만 “베프”가 먼저 승인하자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말했다.“됐어. 이번 일은 이렇게 넘기자. 네 탓한 적 없어.”“고마워, 채
소채은은 “베프” 서란과 통화를 마치고는 윤구주를 데리고 스카이가든으로 향했다.이 곳은 소채은이 세를 들어 지내고 있는 곳이었다.어릴 때부터 가족의 미움을 받고 지내던 그녀는 진작에 이사를 나와 자취하고 있었다.“드디어 돌아왔네.”소채은은 단지 안까지 운전해 한 별장 앞에 세우고는 차에서 내렸다.윤구주도 따라서 내렸다. 눈앞에 우뚝 솟은 단독 별장을 보고는 괜찮은 집이라고 생각했다.“저기, 기억 잃은 윤구주 씨, 잘 들어요. 집에 아직 남자를 들인 적이 없어요.”“그러니 이따 들어가면 아무데나 돌아다니면 안돼요. 알았죠?”윤구주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소채은은 그렇게 짐가방을 들고 윤구주와 별장으로 들어갔다.별장의 도어락을 열자마자 거대한 검은 그림자가 소채은을 향해 덮쳤다.윤구주는 순간 표정이 변했고 손을 쓰려는데 소채은이 그 까만 물건을 안으며 즐겁게 불렀다.“까망아, 나 왔다.”소채은이 안고 있는 건 단단하고 날카로운 이를 가진 체형이 거대한 검은 강아지였다.아니, 까만색 마스티프였다.마스티프는 소채은의 품에 안겨 머리를 부비적대더니 멍멍 짖기까지 했다.이 사나운 마스티프가 소채은에게만은 매우 친절하다는 걸 보아낼 수 있었다.“까망아, 두날이나 못 봤는데 나 안 보고 싶었어?”소채은은 마스티프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승냥이보다도 사납다는 마스티프는 지금 소채은의 품에 안긴 채 온순한 장난감 같았다.하지만 소채은의 뒤에 서 있는 낯선 남자를 발견하고는 갑자기 성질을 내며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더니 매서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봤다.까망이가 윤구주를 향해 으르렁대자 소채은이 재빨리 그를 당겼다.“까망아, 안돼. 저 사람은 우리 친구야. 알았지?”이 마스티프는 사람 말을 꽤 알아듣는 것 같았다. 주인이 이렇게 말하자 다시 차가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노려보더니 낮은 소리로 으르렁대며 머리를 숙였다.소채은은 조금 더 까망이와 놀아주다가 그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됐어. 이제 알아서 놀아.”이렇게 말하자 마스
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문 앞에 서서 세상에서 공격성이 제일 강한 견종인 마스티프를 쳐다봤다.마스티프는 낮은 소리로 으르렁댔다. 음침한 두 눈은 언제든 윤구주를 덮칠 것만 같았다.하지만 윤구주는 꼼짝하지 않고 그저 실눈을 뜨고 마스티프를 지켜봤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기운이 윤구주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그 기운이 나타나자 방 전체가 갑자기 흔들렸다. 그러자 세상에서 공격성이 제일 강한 마스티프가 온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거대한 몸체를 자기도 모르게 뒤로 빼기 시작했다.마치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까망아, 무서워하지 마.”“나는 널 해치지 않아.”윤구주는 마스티프가 무서워하자 미소를 지으며 걸어갔다.그러자 마스티프는 너무 놀라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온몸을 바들바들 떨면서 머리도 쳐들지 못했다.윤구주는 마스티프의 목덜미를 살살 주무르며 말했다.“가자, 산책 좀 하자.”이렇게 윤구주는 마스티프를 끌고 밖으로 나갔다.…소채은이 샤워하고 핑크색 츄리닝을 입고 나왔다.윤구주가 얌전히 집에 있을 줄 알았는데 나오자 윤구주가 보이지 않았다.“기억도 잃은 사람이 어디 갔대?”“설마, 길 잃은 건 아니겠지?”윤구주가 아직 기억을 잃은 상태기도 했고 낯선 곳에 금방 왔으니 소채은은 냉큼 밖으로 뛰쳐나가 윤구주를 찾았다.밖으로 나가자마자 어이없는 장면이 소채은의 눈앞에 펼쳐졌다.햇빛 아래 그녀가 반년을 넘게 길들인 까망이가 온순한 양처럼 윤구주의 발밑에 엎드려 있었다.윤구주는 단지에 설치한 정자 안에 앉아 즐겁게 볕 쪼임을 하고 있었다.‘미친 거 아니야?’이 광경을 목격한 소채은은 자기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그렇게 사납고 공격성이 강하던 까망이가 기억을 잃은 사람 발밑에 엎드려 있다니, 말도 안 되었다.“윤구주 씨!”소채은이 재빨리 달려와 윤구주를 향해 크게 소리를 질렀다.소리를 들은 윤구주가 잘생긴 얼굴을 돌려 소채은을 향해 웃어 보였다.“기억도 잃은 사람이 이렇게 막 나오면 어떡해요?”“말해봐요. 만약에 당신 잃어버리면 어떡
고급 승용차 네 대가 소채은의 별장에 멈춰서더니 슈트를 입은 건장한 보디가드가 줄지어 내렸다.그중 제일 먼저 차에서 내린 건 중해 그룹 도련님 조성훈이었다.차에서 내린 그는 차가운 눈빛으로 소채은이 사는 별장을 훑어보더니 부하에게 지시했다.“일단 다들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이렇게 말하고는 빠른 걸음으로 별장을 향해 걸어왔다.“딩동!”전자 초인종이 울렸다. 방 안에 있던 소채은이 소리를 듣고는 자기의 “베프”가 온 줄 알고 얼른 문을 열어주었다.“서...”문을 연 소채은은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베프” 서란인줄 알았지만 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자신의 약혼남이었다.“조... 조... 성훈 씨?”소채은이 넋을 놓고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조성훈이 그런 소채은을 힐끔 보더니 차갑게 웃었다.“소채은 씨, 나를 보고 많이 놀랐나요?”소채은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소채은 씨, 두 날만 지나면 결혼하는데, 약혼 상대를 보고도 들어와 앉으라고 하지 않는 건가요?”소채은은 더욱 난감한 상황에 빠졌다.눈앞에 서 있는 조성훈은 이미 명의상 약혼남이 맞았다.하지만 방안에는 윤구주도 있었다.소채은은 조금 고민하다가 황급히 대답했다.“아... 아니...”“지금은 좀 불편해요.”조성훈이 음침하게 웃으며 물었다.“불편하다니, 집에 외간 남자라도 숨긴 건 아니죠?”조성훈은 이렇게 말하며 바로 문을 밀고 들어왔다. 소채은은 막아보고 싶었지만 아예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조성훈은 안까지 쳐들어왔다.별장 안.윤구주는 거실에 떡하니 서 있었다.억지로 쳐들어온 조성훈은 당연히 한눈에 잘생긴 윤구주를 발견했다.중해 그룹 도련님인 조성훈도 잘생기고 돈이 많은 편이었다.하지만 지금 아우라도, 체격도, 얼굴도 자기보다 훨씬 낳은 윤구주를 보고 조성훈의 얼굴은 세게 어두워졌다.“소채은 씨, 이 남자는 누군지 말해줄래요?”조성훈은 손가락으로 윤구주를 가리키며 물었다.소채은이 황급히 달려와 설명했다.“성훈 씨, 오해하지 말아요. 그냥
“얘야, 이 어미도 네 아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서울이 우리 화진의 수도란 사실을 너도 잘 알잖아. 그런 대도시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에 즐비했어. 다른 여자들이 구주를 채가지 않게 신경 좀 써야 할 거야.”천희수도 입을 열었다.이들의 재촉에도 소채은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아빠, 엄마, 너무 멀리 갔어요. 저와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너무 연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구주와 저 사이의 문제를 두 분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부모로서 어떻게 자식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를 바다에서 구해준 사람은 너야. 어찌 이리도 배은망덕할 수 있단 말이냐.”소청하가 말했다.“네 아빠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버리면 안 되지.”부모의 말에 소채은은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회사 갈 거니까 저와 구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소채은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채은아!”“채은아!”소청하와 천희수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채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방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머리는 여전히 윙윙거렸다.사실 그녀도 윤구주를 원했지만, 명성이 자자한 윤구주가 강성과 같은 소도시에 자리를 잡을 리 만무하다고 소채은은 생각했다.“내가 그의 배필로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소채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이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채은 씨, 오늘에 일찍 퇴근하셨네요.”그녀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아한 각선미와 옥 같은 얼굴을 한 연규비가 보였다.길고 몸에 착 감긴 듯한 치마는 그녀의 S라인 몸매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연규비의 목소리에 소채은은 재빨리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렸다.“일이 바쁘지 않아 일찍 돌아왔어요.”“아. 정말요?”연규비는 소채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발견했다.소채은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채은 씨, 또 구주를 생각한 거예요?”연규비는 소채은에게 다가가
따르릉!이때, 소채은의 가방 안쪽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수신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에서는 천희수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은아, 너 어디야?”“밖에 있는데 무슨 일이세요?”소채은이 물었다.“네 아빠가 조금 전 쓰러져서 빨리 집으로 와야겠다.”“뭐라고요? 아빠가 쓰러지셨다고?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소채은은 까망이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까망아, 어서 집에 가자.”…용인 빌리지, 회사에서 돌아온 소채은이 잰걸음으로 정원에 있던 천희수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가 쓰러졌다면서요? 지금 어디 있나요?”소청하가 쓰러졌다고 말했던 것은 소채은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부부가 꾸민 자작극이었다.딸의 물음에 천희수가 답했다.“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쎄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심각한가요? 아빠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소채은은 다급히 물었다.“지금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얼른 가보자꾸나.”그녀들이 소청하를 보러 안방에 갔더니 소청하는 꾀병을 부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아빠! 괜찮으세요?”누워 있는 소청하를 본 소채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채은이 왔구나. 난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소청하가 말했다.“쓰러졌는데 괜찮다니요. 제가 부축할 테니 지금 당장 병원 가요.”소채은은 소청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로 괜찮아.”아프지 않으니 당연히 병원 갈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쓰러지셨다면서요?”소채은이 말했다.“얘도 참, 내가 쓰러진 이유는 구주와 네 일 때문이야.”소청하는 한숨을 내쉬었다.“저랑 구주요?”소채은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 이 바보야. 생각 좀 해 봐. 구주가 서울에 간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네 아비인 내가 어찌 걱정 안 할 수가 있냐?”소청하의 말에 소채은은 그제야 그가 꾀병 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채은아, 네 생각을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소청하가 소채은
“뭐가 아니라는 거야? 잘 생각해 봐. 구주는 화진의 왕이지만 우리는 무명 가문이야. 뭐가 부족하다고 우리랑 엮이려 들겠어. 게다가 구주 주변의 사람들도 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 연씨 성을 가진 여자도 TV에 나오는 톱스타보다 예쁘잖아. 구주가 구주왕이라는 신분을 등에 업고 있으니, 여자들이 줄을 선거지.”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천희수는 걱정이 앞섰다.‘천하무적 화진의 구주왕과 강성의 무명 가문이라… 천지 차이네.’이런 생각 하며 천희수가 입을 열었다.“그러면 이제 어떡하면 될까요?”소청하가 잠시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이 일은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해. 우리 딸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야.”“채은이가요?”천희수는 어리둥절했다.“그래. 구주를 구한 건 우리 딸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되지. 그나저나 지금 당장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 해!”“하지만 채은이 회사 일 때문에 바쁘잖아요?”“당신 바보야? 회사 일보다 구주의 일이 더 중요해. 그가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자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구주가 우리 소씨 가문의 사위가 된다면 우리 가문을 빛내는 일인데 뭔 얼어 죽을 회사야!”천희수는 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알았어요. 그러면 지금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할게요.”천희수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전화해서 당장 오라 해. 만약 오지 못하겠다면 서울로 가서 구주를 찾으라고 하고. 하늘이 두 쪽 나도 구주가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돼.”소청하가 말했다.…강성의 해변, 한 여자가 해변에 홀로 앉아 있었다.바닷바람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스치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그 여자는 바로 이른 아침에 회의를 마치고 홀로 해변에 온 소채은이었다.이 해변은 그녀와 윤구주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그 당시 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해변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발견했던 것이었다.그때의 생각에 눈시울이 약간 붉어
주세호가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자, 소청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주 회장님이 오셨네요. 어서 안으로 드세요.”주세호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마침 이 앞을 지나다가 들른 거야.”주세호가 말하면서 손을 휘젓자, 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선물 박스와 고급 영양제들을 꺼냈다.“뭘 또 이런 걸. 지난번에 보내주신 것들도 아직 남았는데.”말은 그렇게 해도 소청하는 주세호가 준 비싼 물품들을 챙기기에 급급했다.“제 사위가 서울로 떠난 이후로 우리 가족을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 회장님.”소청하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그는 윤구주를 외부인 취급하지 않고 사위라 불렀다.“별말을 다 하고 그래.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주세호가 말했다.“어쨌든 감사합니다. 아! 맞다. 주 회장님, 최근에 제 사위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소청하가 물었다.윤구주가 서울로 간 후부터 소청하는 윤구주의 소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윤구주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었다.‘윤구주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이렇게 좋은 신분을 가진 그를 소씨 가문의 사위로 삼는다면 우리 가문에 날개를 단 셈이지. 게다가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을 거야.’소청하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윤구주의 소식을 묻는 그의 질문에 주세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미안해. 나도 통 연락이 안 되네.”“그럴 리가요. 주 회장님, 구주가 서울에 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여태 안 돌아오는 걸까요? 주 회장님은 친구도 많고 인맥도 넓으니까 제 사위가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 줄 수 있나요?”“조급해하지 마. 난 저하를 믿어. 그가 일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너희들을 보러 올 거야.”소청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주세호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회사 쪽에 일이 있으니 먼저 갈게.”주세호가 핑계를 대고 떠난 후,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 된 것을 강성의 사람들도 잘 알고 있어서 강성의 거리에는 등불 축제가 한창이었다.윤구주가 전에 설치했던 운산대진 때문에 안개와 구름이 용인 빌리지를 에워싸고 있었다.이 대진으로 인해 대가 경지에 도달 못 한 사람들은 빌리지의 내부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빌리지 입구에서 염소수염을 한 노인이 느슨한 자세로 앉아 있었다.눈에 생기가 없어서 무기력 보이는 그가 바로 백경재였다.윤구주가 강성을 떠난 후부터 이 노인은 매일 빌리지의 입구에서 윤구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윤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이때, 언덕 아래에서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경호원 몇 명과 함께 빌리지를 향해 올라오고 있었다.“백 대사님!”남자가 백경재를 향해 소리치자, 백경재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주 회장님이 오셨군요.”방문객은 다름 아닌 강성 최고의 갑부이자 DH그룹 회장인 주세호였다.“조금 전 이사회를 마치고 우연히 이 앞을 지나다가 들렀어요.”주세호가 백경재에게 다가오면서 말했다.“주 회장님, 저하의 소식은 들은 바 있나요?”백경재가 묻자, 주세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백경재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어휴! 저하가 서울에 간지 그렇게 오래되었는데 왜 우리를 찾지 않는 걸까요? 설마 저하가 우리 신하들을 버린 건 아니겠죠?”주세호가 웃으며 말했다.“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저하가 의리를 매우 중요시해서 그럴 리 없어요. 게다가 채은 씨도 이곳 강성에 있잖아요.”주세호가 소채은을 언급하자, 백경재는 그제야 마음이 좀 놓였다.‘그래.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소채은이 이곳에 있으니, 우리를 버렸다고 섣불리 단정 지으면 안 되지.’“백 대사님, 걱정하지 말고 저만 믿으세요. 저하는 반드시 돌아올 겁니다. 그나저나 채은 씨와 다른 사람들은 어디에 있나요?”주세호가 백경재의 어깨를 토닥이며 물었다.윤구주가 강성을 떠난 후 소채은의 가족은 집값이 수백억 원에 달하는 이곳 용인 빌리지로 이사 왔던 것이었다.소채은은 이
손형재가 정말로 동의하려고 하자, 도자가 속은 것을 이미 알고 있었던 구진철은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하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현문에서 손형재의 입김이 워낙 센 터라 사람들은 그가 결정한 것에 감히 토를 달지 못했다.“구 장로님, 이제 어떡하죠?”이상 징후를 포착한 현문의 한 제자가 참지 못하고 구진철에게 묻자, 구진철이 답했다.“뭘 어떡해? 지금 유일한 희망은 다른 종문이 와서 도자를 막아주기를 바랄 뿐이야.”다른 제자들이 이 말을 듣더니 침묵했다.…국경에 있는 흑여산맥, 설국이 화진의 속국이 된 이후로 윤구주는 이곳에서 마음 편한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박천후의 40만 북방군과 염수천의 10만 금위군도 철수 준비를 하고 있었다.눈보라가 휘몰아치는 가운데 흑여산맥의 지휘실 안에서 박천후의 우렁찬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저하! 이제 어쩔 계획인지요? 서울로 돌아갈 건가요? 아니면 여기 흑여산맥에 계속 남아있을 생각인가요?”박천후가 질문을 던지자, 옆에 있던 염수천도 고개를 들어 윤구주를 올려다보았다.윤구주가 휘몰아치는 눈보라를 바라보며 말했다.“당분간 서울에는 아무 일도 없을 것이니 강성을 좀 돌아볼 생각이야.”“강성이요?”윤구주가 남부 도시인 강성을 언급하자, 박천후와 염수천은 깜짝 놀랐다.“잘 생각하셨어요.”윤구주는 사색에 잠겼다.서울로 간 이후로 강성에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으니 갈 때도 된 것 같았다.강성에는 여전히 연규비, 박창용, 백경재, 주세호, 그리고 천하회의 원성일 등 친숙한 사람들이 있었다.물론 윤구주가 가장 사랑하는 소채은도 있었다.그녀를 생각하자, 한동안 강성으로 발걸음하지 않아서 윤구주는 죄책감이 몰려왔다.“저하, 어차피 우리 둘도 할 일이 없으니 함께 가면 안 될까요? 창용 씨를 본지도 오래됐고 해서.”윤구주 휘하의 10대 장수인 박천후, 박창용, 염수천은 친형제보다 가까운 사이었다.윤구주가 강성으로 간다는 소식을 들은 두 사람은 박창용이 그리워졌다.“그러자꾸나.”
“그 말은 좀 과한 것 같습니다. 벌레만도 못한 놈이 어떻게 저희 종문을 적으로 돌린단 말입니까?”손형재는 그렇게 말하면서 엄청난 한기를 내뿜었다.그 한기는 절정의 기운이었다.그리고 그 기운이 나타남과 함께 ‘역’의 공간이 생기며 지하 궁전 내에 아주 강한 ‘역’의 결계가 생겼다.현문 도자가 갑자기 강력한 실력을 보여주자 다들 손형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심지어 만불종의 살심스님조차 손형재를 힐끗 보았다.“쯧쯧, 현문에 언제 이렇게 대단한 제자가 나온 겁니까? 정말 엄청나군요, 구진철 씨.”살심스님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흥, 이쪽은 우리 현문의 도자입니다!”구진철이 사납게 대꾸했다.“도자요?”살심스님은 손형재를 진지한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말했다.“현문의 도자였군요. 어쩐지!”손형재는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며 엄청난 기운을 내뿜었다.“선배님들, 저 손형재는 비록 후배라서 말을 많이 하는 건 좋지 않지만, 우리 화진은 무력으로 세운 나라이며 무도 3대 서열은 오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무식한 사람 한 명 때문에 우리나라의 무도 질서가 흐트러지는 것을 선배님들은 그냥 두고 보실 겁니까? 저 손형재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습니다!”현문 도자가 그렇게 얘기하자 살심스님이 곧바로 입을 뗐다.그는 손뼉을 치면서 웃으며 말했다.“옳은 말입니다. 저는 찬성합니다.”살심스님이 호응하자 구진철이 매섭게 다그쳤다.“살심스님, 우리 현문의 도자를 부추길 생각은 하지 마세요!”“제가 언제 도자를 부추겼단 말입니까? 전 사실만을 말했을 뿐입니다.”살심스님은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당신...”구진철은 단단히 화가 났다.구진철이 화를 내려고 하는 순간, 손형재가 손을 저으며 말했다.“구진철 장로님, 살심스님께서도 제 의견에 동의하셨는데 왜 그렇게 날을 세우시는 겁니까?”“하지만 도자, 저 스님은...”구진철이 뭐라고 하려는데 손형재가 그의 말허리를 끊었다.“전 살심스님의 말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화진의 3대 무도
“진 건 진 것이고 이긴 건 이긴 것이지, 왜 인정을 못 하십니까?”살심스님은 활짝 웃으며 말했다.“헛소리하지 말라니까요! 살심스님, 그렇다면 어디 한 번 더 싸워보겠습니까? 누가 이기고 누가 질지 두고 보자고요!”구진철은 화가 나서 훌쩍 뛰어올랐다. 그가 뿜어대는 절정의 기운은 마치 불꽃처럼 활활 타올랐다.현문의 장로인 구진철은 현문 전체를 대표했다.그리고 현문은 똑같이 6대종문 중 하나인 만불종과 예전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래요. 어디 한번 싸워보죠. 제가 당신을 무서워할 것 같나요?”살심스님은 웃었고 그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금빛은 점점 더 강해졌다.살심스님과 현문의 구진철이 정말로 싸울 것 같자 문창정이 서둘러 나섰다.“두 분, 제 체면을 봐서라도 멈춰주시겠습니까?”문창정이 나오자 살심스님은 그제야 웃으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저는 구진철 씨와 농담을 한 것뿐입니다. 그렇죠?”구진철은 비록 화가 났지만 문창정이 나서자 그저 코웃음을 치면서 만불종의 살심스님을 무시했다.싸움이 멈추자 살심스님은 그제야 만불종의 제자들을 데리고 지하 궁전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화진의 6대 종문은 서요산 검종, 현문, 만불종, 칠수방, 자운각, 천도궁으로 이루어졌다.이미 그중 세 종문이 모습을 드러냈다.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자운각, 천도궁과 가장 비밀스럽고 두려운 서요산 검종뿐이었다.“문창정 씨, 저희 만불종을 갑자기 초대하시다니 어떤 일이 있으셨던 겁니까?”종문이 모습을 드러낸 건 문창정의 요청 때문이었다.살심스님의 질문에 문창정은 미소 띤 얼굴로 대답했다.“살심스님, 솔직히 얘기하자면 3대 무도 서열의 질서는 이미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문벌과 세가 출신의 사람들을 일부러 도륙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렇게 종문의 여러분을 모신 겁니다.”“그래요?”살심스님은 그 말을 듣더니 눈을 가늘게 뜨면서 웃었다.“문창정 씨, 혹시 6년 전의 그 구주왕이 한 짓입니까?”살심스님이 곧바로 윤구주를 언급하자 문창정이 말했다
“세계 최강이라고요? 속세에서 살아가는 자가 어찌 감히 그런 칭호를 얻는단 말입니까?”구진철이 뭐라고 하려는데 갑자기 듣기 좋은 목소리가 밖에서 들려왔다.“옳은 말씀입니다. 그가 어떻게 감히 세계 최강이 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가 세계 최강이라면 천 년의 역사를 이어온 종문이 뭐가 됩니까?”그 목소리와 함께 화려한 장포 차림의 문아름이 지하 궁전에 모습을 드러냈다. 너무도 아름다워 쉽게 눈을 뗄 수가 없었다.문아름이 오다니!절세 미녀 문아름이 모습을 드러내자 현문의 도자 손형재의 눈빛이 살짝 빛났다.“누구시죠?”손형재가 물었다.“전 문아름이라고 합니다.”문아름은 싱긋 웃었다. 경국지색의 미모였다.눈앞의 여자가 문아름이라는 걸 안 순간 손형재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문아름 씨였군요.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별말씀을요.”문아름은 말을 마친 뒤 문창정에게로 시선을 돌렸다.“할아버지, 귀한 손님이 오셨는데 왜 저한테 알리지 않은 거예요?”문창정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네가 바쁠까 봐 얘기하지 못한 거다.”“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현문의 도자라니, 이렇게 대단하신 분이 오셨는데 아무리 바빠도 제가 나서서 맞이해야죠!”문아름은 매력적인 미소를 지으며 다시금 손형재를 바라보았다.현문 도자인 손형재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설렜다.문아름이 모습을 드러낸 지 얼마 되지 않아 큰 웃음소리가 갑자기 지하 궁전에 울려 퍼졌다.우레와도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자 지하 궁전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문창정 씨, 구진철 씨, 이렇게 일찍 오셨을 줄은 몰랐습니다.”우렁찬 목소리가 들리더니 곧 지하 궁전에서 갑자기 금빛이 반짝이기 시작했다.곧이어 금빛 속에서 쿵 소리와 함께 금빛을 내뿜는 금색 선장이 지하 궁전에 갑자기 떨어졌다.그 선장은 무게가 몇백 킬로그램에 달했다.선장이 떨어지는 순간 차가운 지면에 금이 갔다.그리고 곧 가사를 입은 대머리 스님 십여 명이 지하 궁전에 모습을 드러냈다.선두에 선 사람은 체구가 아주 건장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