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원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유준아, 그렇게 긴장할 필요 없잖아. 나도 한가해서 이러는 게 아니라 결혼해서 자식을 낳아 키우고 싶을 뿐이야.”“내가 그걸 가만히 보고 있을 것 같아?”유준의 분노에 찬 말에 주원은 침착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동의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어. 강하영 씨만 동의하면 결혼할 생각이거든.”“절대 동의하지 않을 거야!”유준의 얘기에 주원이 대답했다.“차라리 직접 가서 물어보는 건 어때?”유준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위협하듯 얘기했다.“만약 또 무슨 수작을 부리는 거면 절대 가만두지 않아!”“형님한테 그게 무슨 버릇이야?”정창만이 화를 내며 고함을 질렀다.“네 눈엔 예의라는 것도 없어?”“예의?”유준은 피식 웃으며 정창만을 보며 입을 열었다.“당신들은 나한테 예의를 갖추라 할 자격 없어!”유준이 떠나자 주원이 웃으며 얘기했다.“아버지, 이제 어떻게 하죠?”정창만의 얼굴에서 분노가 사라지고 느긋하게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그동안 여기서 지내면서 다시 찾아올 때까지 너는 신경 쓰지 마라.”주원은 정창만의 뜻을 알아 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시원은 집에서 나온 유준이 차에 타자마자 싸늘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고, 고개를 돌려 굳은 표정의 유준에게 물었다.“대표님, 어디로 모실까요?”“TYC로 가!”‘강하영 씨, 찾으러?’시원은 깜짝 놀랐다.‘대체 무슨 일인데 대표님께서 이렇게까지 화가 나셨을까?’10시.하영은 회의를 마치고 사무실에서 쉬고 있었다. 어젯밤 주원이 한 말 때문에 밤새 잠을 설쳤는데, 오늘 밀린 업무까지 처리하느라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였다.하영은 소파로 다가가 얇은 담요를 챙겨 누워서 휴식을 취하려는데 사무실 책상에 있던 전화기가 울리기 시작했다.하영은 할 수 없이 다시 일어나 전화를 받았고, 그때 직원의 다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대표님, 정 대표님이 찾아오셨는데 미처 말릴 새도 없이 바로 엘리베이터로 들어가셨어요.”하영은 처음에 바로 반응하지 못했다.“정 대표?
“지금 양다인 때문에 그놈이랑 약혼한다는 거야?”유준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렇게 나한테 복수하고 싶었어? 게다가 아직 내 설명도 듣지 않았잖아.”“설명?”하영은 피식 웃었다.“설명을 들어주려 했을 때 유준 씨는 어디 있었는데요? 내가 왜 계속 당신이 하자는대로 해야 하죠?”“나랑 양다인은…….”“참.”하영은 유준의 말을 끊었다.“양다인은 몹쓸년이에요. 정주원도 유준 씨 눈에는 몹쓸놈 아닌가요? 당신도 짐승같은 인간이랑 만나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건데요?”“내 얘기 끝까지 들어!”유준은 분노하며 소리질렀다.“나랑 양다인은 희민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그대로 몸이 굳어져 버린 하영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희민이? 희민이가 왜요?”유준은 이를 악물었다.“희민이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양다인이 골수를 찾아서 구해줬거든. 그래서 희민이가 완쾌될 때까지 곁에서 보살펴 줘도 좋다고 허락한 거야.”“배, 백혈병이요?”하영은 순간 다리가 풀려버렸고, 유준은 안타까운 눈으로 얼른 부축해줬다.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하영이 정말 정주원과 약혼할 지도 모르니까.정신을 차린 하영이 유준의 팔을 붙잡고 다그쳤다.“희민이 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요?”“지금 무균실에 있어. 설 전에 나올 수 있을 거야.”유준의 얘기에 하영은 점차 눈시울을 붉혔다.“왜 나한테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어요?”유준은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그렇지 않아도 힘든 너한테 더 부담주기 싫었거든.”“왜 제멋대로 나한테 부담이라고 생각한 건데요?”하영은 유준을 쏘아보며 말투도 점점 날카로워졌다.“내 아들이잖아요!”“미안.”유준이 죄책감이 들었다.“희민이가 완쾌된 후에 너한테 얘기할 생각이었어.”“생각, 그놈의 생각!”하영의 얼굴은 분노로 꽉 차 있었다.“왜 항상 당신만 생각하는 건데? 나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내 의견을 존중해 준 적은 있어요? 희민이는 내 아들이에
정유준은 절대 주원과 하영이 함께 있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절대 안 돼!’점심에 의사한테서 희민의 상황을 전해들은 하영이 사무실을 나섰을 때, 양다인과 마주치고 말았다.양다인도 깜짝 놀라며 사무실을 힐끔 보고 입을 열었다.“여긴 어쩐 일이야?”하영은 그런 양다인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너랑 상관없어.”그 말에 양다인의 안색이 변했다.“혹시 희민이에 대해 알았어?”“너랑 상관없잖아!”하영은 걷잡을 수 없어 양다인을 향해 소리질렀다.“내 아들 일에 신경 꺼!”양다인은 웃으며 얘기했다.“강하영, 넌 정말 양심도 없네. 내가 아니었으면 네 아들은 진작에 죽었을 거야. 지금쯤 영안실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르지.”짝-하영은 그대로 양다인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말투로 얘기했다.“그 입 닥치지 못해?”양다인은 자기 얼굴을 감싼 채 하영을 노려봤다.“또 떄렸어? 내가 너 못 때릴 줄 알아?”양다인은 하영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내 하영에게 잡히고 말았다.“재간 있으면 때려 봐!”양다인은 손을 빼내려 애썼지만, 하영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이 손 놔!”양다인이 소리지르자 하영은 가까이 다가가 위협하기 시작했다.“한 번만 더 병원에 나타나면 내 눈에 보일 때마다 뺨을 후려칠 줄 알아! 나는 약속은 꼭 지키는 성격인 거 알지?”“유준 씨도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지 못하는데 네가 뭔데 그래?”양다인은 고래고래 소리질렀다.“앞으로도 희민이 곁을 지킬 수 있는지, 정유준한테 가서 직접 확인해 봐.”하영은 양다인을 바닥에 밀쳐버린 뒤 몸을 돌려 떠났다.양다인이 희민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균실 앞에는 정유준의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으니까.정유준이 양다인을 경계하는 마음이 하영보다 더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오후.유준은 본가에 들러 정창만에게 따졌다.“대체 어떻게 해야 강하영과 정주원의 혼사를 취소할 겁니까?”정창만은 유준을 힐끔 쳐다보더니 코웃음 쳤다.“아직도 그
원수와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하영이 차창을 내리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맞아도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강하영 씨,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는데 찬바람은 몸에 안 좋습니다.”경호원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하영은 마음을 가다듬고, 협박당한 사실을 어떻게 유준에게 알릴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그리고 정유준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없앨 수 있지?’결국 하영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애들한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하영은 학교를 마친 애들을 차에 태우고 잠시 고민하다가, 희민의 상황을 얘기해줬다.세준과 세희는 깜짝 놀랐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세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예전에 자주 코피를 흘리던데, 아파서 그랬군요…….”세희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코피를 많이 흘리던데…….”그러자 하영이 다급하게 물었다.“언제 발견했어?”세준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금방 유치원에 들어가 얼마 안 가서요. 세희랑 몇 번 본 적 있어요.”“왜 엄마한테 얘기 안 했어?”애들한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엄마!”그때 세희가 입을 열었다.“희민 오빠가 살이 많이 빠진 것도 아파서 그런 거 아니에요?”하영은 그때 희민이가 썰렁한 난원에 다시 돌아간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파서 그랬던 것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이 정말 우스웠다.‘희민이 상황을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다고 네기 정유준을 탓할 자격이 있을까? 결국 나도 전혀 눈치 못 챘잖아.’그런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자 하영은 죄책감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아크로빌로 돌아온 뒤 하영은 저녁도 먹지 않고 방안에 자신을 가뒀다. 세희와 세준은 걱정됐지만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세희는 세준을 내버려두고 혼자 방으로 돌아가 유준이 사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엄마가 저녁도 안 드셨는데, 아마 희민이 오빠 때문인 것 같아요.]병원 가는 길에
하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들어와.”세희는 고분고분 앞으로 다가가 침대로 올라가 하영의 상태를 살피자, 하영은 그저 손을 들어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뭘 그렇게 열심히 봐?”세희는 묵묵히 침대맡으로 다가가 스탠드를 켜고, 다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엄마 얼굴이 빨개요!”세희는 손으로 하영의 얼굴을 만졌다.“엄마! 지금 열이 나요!”세희가 깜짝 놀라 소리치자, 하영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지만 열이 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하영은 서랍을 열어 체온계로 체온을 쟀고, 세희가 얼른 다가와 체온을 확인했다.“엄마! 체온이 38도네요! 해열제 드세요!”하영은 세희의 종아리를 툭툭 치며 얘기했다.“세희야, 감기 옮으면 안 되니까 일단 나가 있어.”“네!”세희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더니 빠르게 방에서 나갔고, 그 모습에 하영은 약간 놀랐다.‘오늘따라 왜 저렇게 빠르지?’방으로 돌아온 세희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유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엄마가 열이 나요!]세희의 문자를 기다리고 있던 유준은 문자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시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차 돌려서 아크로빌로 가.”“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시원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준의 말에 따랐다.20분 뒤에 유준이 아크로빌에 도착했을 때, 마침 집으로 돌아온 캐리와 마주치고 말았는데, 캐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유준을 보며 비아냥거렸다.“정 대표님 아닙니까? 양다인을 내버려 두고 우리 하영은 왜 찾아온 겁니까?”유준은 캐리를 힐끗 쳐다본 뒤,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별장으로 향했다.“이봐요!”캐리가 뒤를 쫓아가며 따졌다.“사람이 얘기하는데 왜 아무 대답이 없어요?”“그입 좀 닥치세요!”유준은 귀찮은 표정으로 한 마디 내뱉았다.“하영이 열이 났단 말입니다!”“하영이 열이 나는데 당신이 여기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말을 마친 캐리는 멍해지고 말았다.“네? 하영이 열이 나요?”유준은 어느새 별장에 들어가고 있었고, 거실
하영은 캐리가 건네주는 약을 받아먹었다.“나는 세준이 데리고 나가 있을 테니까 얘기 나누고 있어.”캐리가 물컵을 들고 세준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나가기 전에 눈빛으로 유준에게 경고를 날렸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눈치 못 챈 것 같았다.문이 닫기자 하영은 이마를 문지르며 얘기했다.“나 괜찮으니까 그만 돌아가요.”“멀쩡하다가 왜 갑자기 열이 나는 건데?”유준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상처에 염증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해 볼게.”하영은 유준의 손길을 피했다.“아침에 주희 씨가 약을 바꿔 줬을 때 염증은 없었어요. 아마 오늘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봐요.”유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지금 날씨에 찬바람을 맞았다고?”하영은 천천히 침대에 기대었다.“MK에서 발표한 기사 봤어요.”그 말에 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랑 상관없으니까 푹 쉬고 있어.”잠시 생각에 빠졌던 하영은 그래도 은근슬쩍 얘기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유준 씨, 나 할 얘기 있어요.”유준은 하영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입을 열었다.“정주원에 관한 얘기라면, 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고 있어.”하영은 깜짝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내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궁금해?”유준은 피식 웃었다.“나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묻지 않아요?”“얘기하고 싶을 때 하겠지. 굳이 물어볼 필요 있어?”유준의 나지막한 소리에 하영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이젠 내가 하는 얘기를 의심하지 않아요?”“쉽게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정주원이 회사에 들어가면 유준 씨한테 불리하지 않아요?”하영의 물으메 유준은 피식 웃었다.“그놈 실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너는 몸조리나 잘해. 이번 일은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 거야.”“미안해요. 지금은 그 이유를 얘기할 수 없어요.”유준이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괜찮아. 기다릴게.”“그리고 희민이 일도.”하여이 쉰 목소리로 말
‘설마 양다인한테서 전염된 건 아니겠지?’주원은 세면대 옆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양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씨 집안.금방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간 양다인은 주원의 전화를 받고 부드러운 어조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주원 씨.”주원은 약간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다인 씨, 요즘 혹시 알레르기 반응이 있거나 하지 않았어요?”양다인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요. 주원 씨 혹시 알레르기가 생겼어요?”말을 마친 양다인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주원 씨 대체 무슨 상황이야? 설마 나한테도 옮는 건 아니겠지?’그제야 주원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아니면 됐어요. 나 요즘 본가에서 지내니까 전화로 연락해요.”“네, 알았어요.”양다인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옷을 벗고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봤지만, 특별히 이상은 없었다.‘만약 주원 씨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면 일생을 망치게 되는 거잖아. 그건 절대 안 돼! 주원 씨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잖아.’정주원이든 정유준이든 반드시 한 사람 정도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샤워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양다인의 휴대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가 유준인 것을 보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양다인은 얼른 전화를 받고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유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계약 파기해.”양다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끝까지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강하영이 그 사실을 알았다고 이제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지!’양다인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유준 씨, 내가 부족해서 그래요?”“그런 거 아니야.”유준이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계약을 끝내고 싶어서 그래. 위약금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물어줄게.”유준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고, 양다인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양다인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바로 받았다.“지난번에 백혈병 수술 뒤에 회복에 좋은 약초가 있
하영은 고개를 저으며 차 문을 열었다.“여기서 내리자.”인나도 차에서 내려 하영의 뒤를 따라갔고, 곧 기자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하영은 문 앞에 서서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자 인나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너 지금 녹음하는 습관도 생겼어?”하영은 인나를 한 번 보더니 대답했다.“예전에 그런 일을 당했는데, 그걸 교훈삼아 조심해야지.”인나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좋은 자세야! 그럼 문 두드릴게.”“그래.”인나가 문을 두드리자 곧 안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인나는 바로 연기력을 발휘했다.“안녕하세요, 저희는 새로 온 관리인입니다. 아파트 단지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조사하러 나왔어요.”“네, 바로 문 열어드릴게요.”문이 열리자마자 인나가 빠르게 집안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밖에서 얘기하면 안 됩니까?”인나가 웃으며 몸을 돌려 밖을 향해 소리쳤다.“하영아, 들어와.”하영이 걸음을 옮겨 남자 앞에 나타나자, 그녀를 본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바쁘니까 관리실에서 알아서 하세요!”남자는 말을 하며 인나를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뭘 겁내는 거죠?”인나가 남자의 손을 피하며 물었다.“우리는 그쪽을 해치러 온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더 수상하잖아요!”남자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하영과 인나를 바라보았다.“어차피 기사는 이미 발표됐는데 이제와서 저를 찾아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하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보았다.“양다인이 사주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얘기해 주세요.”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일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지금 이 꼴로 살고 있잖아요!”남자의 참회에 하영은 기자가 사는 집안을 둘러보니, 지저분하고 열악하기 그지없었다.하영이 앞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사실대로 얘기해 주면, 예전처럼 김제에서 아무 일없이 지내게 해줄게요.”깜짝 놀라던 남자의 눈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