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양다인 때문에 그놈이랑 약혼한다는 거야?”유준이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그렇게 나한테 복수하고 싶었어? 게다가 아직 내 설명도 듣지 않았잖아.”“설명?”하영은 피식 웃었다.“설명을 들어주려 했을 때 유준 씨는 어디 있었는데요? 내가 왜 계속 당신이 하자는대로 해야 하죠?”“나랑 양다인은…….”“참.”하영은 유준의 말을 끊었다.“양다인은 몹쓸년이에요. 정주원도 유준 씨 눈에는 몹쓸놈 아닌가요? 당신도 짐승같은 인간이랑 만나는데, 나는 왜 안 되는 건데요?”“내 얘기 끝까지 들어!”유준은 분노하며 소리질렀다.“나랑 양다인은 희민이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그대로 몸이 굳어져 버린 하영이 긴장한 표정으로 물었다.“희민이? 희민이가 왜요?”유준은 이를 악물었다.“희민이가 백혈병에 걸렸는데 양다인이 골수를 찾아서 구해줬거든. 그래서 희민이가 완쾌될 때까지 곁에서 보살펴 줘도 좋다고 허락한 거야.”“배, 백혈병이요?”하영은 순간 다리가 풀려버렸고, 유준은 안타까운 눈으로 얼른 부축해줬다.그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아니면 하영이 정말 정주원과 약혼할 지도 모르니까.정신을 차린 하영이 유준의 팔을 붙잡고 다그쳤다.“희민이 지금은 어때요? 괜찮아요?”“지금 무균실에 있어. 설 전에 나올 수 있을 거야.”유준의 얘기에 하영은 점차 눈시울을 붉혔다.“왜 나한테 그 사실을 얘기하지 않았어요?”유준은 입술을 깨물더니 입을 열었다.“그렇지 않아도 힘든 너한테 더 부담주기 싫었거든.”“왜 제멋대로 나한테 부담이라고 생각한 건데요?”하영은 유준을 쏘아보며 말투도 점점 날카로워졌다.“내 아들이잖아요!”“미안.”유준이 죄책감이 들었다.“희민이가 완쾌된 후에 너한테 얘기할 생각이었어.”“생각, 그놈의 생각!”하영의 얼굴은 분노로 꽉 차 있었다.“왜 항상 당신만 생각하는 건데? 나한테 물어본 적 있어요? 내 의견을 존중해 준 적은 있어요? 희민이는 내 아들이에
정유준은 절대 주원과 하영이 함께 있는 것을 허락할 수 없었다.‘절대 안 돼!’점심에 의사한테서 희민의 상황을 전해들은 하영이 사무실을 나섰을 때, 양다인과 마주치고 말았다.양다인도 깜짝 놀라며 사무실을 힐끔 보고 입을 열었다.“여긴 어쩐 일이야?”하영은 그런 양다인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대답했다.“너랑 상관없어.”그 말에 양다인의 안색이 변했다.“혹시 희민이에 대해 알았어?”“너랑 상관없잖아!”하영은 걷잡을 수 없어 양다인을 향해 소리질렀다.“내 아들 일에 신경 꺼!”양다인은 웃으며 얘기했다.“강하영, 넌 정말 양심도 없네. 내가 아니었으면 네 아들은 진작에 죽었을 거야. 지금쯤 영안실에 누워있었을지도 모르지.”짝-하영은 그대로 양다인의 뺨을 후려치고 매서운 말투로 얘기했다.“그 입 닥치지 못해?”양다인은 자기 얼굴을 감싼 채 하영을 노려봤다.“또 떄렸어? 내가 너 못 때릴 줄 알아?”양다인은 하영의 머리채를 잡으려 손을 뻗었지만 이내 하영에게 잡히고 말았다.“재간 있으면 때려 봐!”양다인은 손을 빼내려 애썼지만, 하영의 힘을 이겨낼 수 없었다.“이 손 놔!”양다인이 소리지르자 하영은 가까이 다가가 위협하기 시작했다.“한 번만 더 병원에 나타나면 내 눈에 보일 때마다 뺨을 후려칠 줄 알아! 나는 약속은 꼭 지키는 성격인 거 알지?”“유준 씨도 나한테 이런 식으로 대하지 못하는데 네가 뭔데 그래?”양다인은 고래고래 소리질렀다.“앞으로도 희민이 곁을 지킬 수 있는지, 정유준한테 가서 직접 확인해 봐.”하영은 양다인을 바닥에 밀쳐버린 뒤 몸을 돌려 떠났다.양다인이 희민에게 해코지라도 할까 봐 걱정되지는 않았다. 어차피 무균실 앞에는 정유준의 경호원들이 지키고 있으니까.정유준이 양다인을 경계하는 마음이 하영보다 더 컸으면 컸지 적지는 않을 것이다.오후.유준은 본가에 들러 정창만에게 따졌다.“대체 어떻게 해야 강하영과 정주원의 혼사를 취소할 겁니까?”정창만은 유준을 힐끔 쳐다보더니 코웃음 쳤다.“아직도 그
원수와 매일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면 얼마나 고통스러울까?하영이 차창을 내리고 살을 에는 듯한 찬바람을 맞아도 짜증이 가시지 않았다.“강하영 씨, 아직 상처도 다 낫지 않았는데 찬바람은 몸에 안 좋습니다.”경호원의 말에 하영은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하영은 마음을 가다듬고, 협박당한 사실을 어떻게 유준에게 알릴지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그리고 정유준에 대한 죄책감을 어떻게 없앨 수 있지?’결국 하영 때문에 벌어진 일이지만, 애들한테까지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하영은 학교를 마친 애들을 차에 태우고 잠시 고민하다가, 희민의 상황을 얘기해줬다.세준과 세희는 깜짝 놀랐다가, 한참 뒤에야 정신을 차린 세준이 먼저 입을 열었다.“예전에 자주 코피를 흘리던데, 아파서 그랬군요…….”세희도 따라서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코피를 많이 흘리던데…….”그러자 하영이 다급하게 물었다.“언제 발견했어?”세준이 잠시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금방 유치원에 들어가 얼마 안 가서요. 세희랑 몇 번 본 적 있어요.”“왜 엄마한테 얘기 안 했어?”애들한테 너무 소홀했다는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엄마!”그때 세희가 입을 열었다.“희민 오빠가 살이 많이 빠진 것도 아파서 그런 거 아니에요?”하영은 그때 희민이가 썰렁한 난원에 다시 돌아간 게 익숙하지 않은 탓이라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아파서 그랬던 것이었다.지금 생각해보면 자기 자신이 정말 우스웠다.‘희민이 상황을 나한테 얘기하지 않았다고 네기 정유준을 탓할 자격이 있을까? 결국 나도 전혀 눈치 못 챘잖아.’그런 생각이 가슴을 짓누르자 하영은 죄책감에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아크로빌로 돌아온 뒤 하영은 저녁도 먹지 않고 방안에 자신을 가뒀다. 세희와 세준은 걱정됐지만 휴식을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저녁 식사를 마친 뒤 세희는 세준을 내버려두고 혼자 방으로 돌아가 유준이 사준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냈다.[엄마가 저녁도 안 드셨는데, 아마 희민이 오빠 때문인 것 같아요.]병원 가는 길에
하영은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들어와.”세희는 고분고분 앞으로 다가가 침대로 올라가 하영의 상태를 살피자, 하영은 그저 손을 들어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뭘 그렇게 열심히 봐?”세희는 묵묵히 침대맡으로 다가가 스탠드를 켜고, 다시 자세히 살피기 시작했다.“엄마 얼굴이 빨개요!”세희는 손으로 하영의 얼굴을 만졌다.“엄마! 지금 열이 나요!”세희가 깜짝 놀라 소리치자, 하영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확실히 머리가 조금 어지러웠지만 열이 나는 줄은 모르고 있었다.하영은 서랍을 열어 체온계로 체온을 쟀고, 세희가 얼른 다가와 체온을 확인했다.“엄마! 체온이 38도네요! 해열제 드세요!”하영은 세희의 종아리를 툭툭 치며 얘기했다.“세희야, 감기 옮으면 안 되니까 일단 나가 있어.”“네!”세희는 고개를 세차게 끄덕이더니 빠르게 방에서 나갔고, 그 모습에 하영은 약간 놀랐다.‘오늘따라 왜 저렇게 빠르지?’방으로 돌아온 세희는 얼른 휴대폰을 꺼내 유준에게 문자를 보냈다.[엄마가 열이 나요!]세희의 문자를 기다리고 있던 유준은 문자를 확인하고 미간을 찌푸리더니 시원을 향해 입을 열었다.“차 돌려서 아크로빌로 가.”“네? 네, 알겠습니다, 대표님.”시원은 어리둥절하면서도 유준의 말에 따랐다.20분 뒤에 유준이 아크로빌에 도착했을 때, 마침 집으로 돌아온 캐리와 마주치고 말았는데, 캐리가 의아한 표정으로 유준을 보며 비아냥거렸다.“정 대표님 아닙니까? 양다인을 내버려 두고 우리 하영은 왜 찾아온 겁니까?”유준은 캐리를 힐끗 쳐다본 뒤, 거들떠보지 않고 그대로 별장으로 향했다.“이봐요!”캐리가 뒤를 쫓아가며 따졌다.“사람이 얘기하는데 왜 아무 대답이 없어요?”“그입 좀 닥치세요!”유준은 귀찮은 표정으로 한 마디 내뱉았다.“하영이 열이 났단 말입니다!”“하영이 열이 나는데 당신이 여기 있는 거랑 무슨 상관이죠?”말을 마친 캐리는 멍해지고 말았다.“네? 하영이 열이 나요?”유준은 어느새 별장에 들어가고 있었고, 거실
하영은 캐리가 건네주는 약을 받아먹었다.“나는 세준이 데리고 나가 있을 테니까 얘기 나누고 있어.”캐리가 물컵을 들고 세준을 데리고 방을 나섰다. 나가기 전에 눈빛으로 유준에게 경고를 날렸지만, 안타깝게도 상대방은 눈치 못 챈 것 같았다.문이 닫기자 하영은 이마를 문지르며 얘기했다.“나 괜찮으니까 그만 돌아가요.”“멀쩡하다가 왜 갑자기 열이 나는 건데?”유준이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상처에 염증이 생기진 않았는지 확인해 볼게.”하영은 유준의 손길을 피했다.“아침에 주희 씨가 약을 바꿔 줬을 때 염증은 없었어요. 아마 오늘 찬바람을 맞아서 그런가 봐요.”유준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지금 날씨에 찬바람을 맞았다고?”하영은 천천히 침대에 기대었다.“MK에서 발표한 기사 봤어요.”그 말에 유준의 눈빛이 어두워졌다.“너랑 상관없으니까 푹 쉬고 있어.”잠시 생각에 빠졌던 하영은 그래도 은근슬쩍 얘기해 주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유준 씨, 나 할 얘기 있어요.”유준은 하영에게 이불을 덮어주며 입을 열었다.“정주원에 관한 얘기라면, 너도 어쩔 수 없었다는 거 알고 있어.”하영은 깜짝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았다.“내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궁금해?”유준은 피식 웃었다.“나 그 정도로 멍청하지 않아.”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입을 열었다.“무슨 이유로 그랬는지 묻지 않아요?”“얘기하고 싶을 때 하겠지. 굳이 물어볼 필요 있어?”유준의 나지막한 소리에 하영은 이불을 꽉 움켜쥐었다.“이젠 내가 하는 얘기를 의심하지 않아요?”“쉽게 의심하지 않을 거라고 했잖아.”“정주원이 회사에 들어가면 유준 씨한테 불리하지 않아요?”하영의 물으메 유준은 피식 웃었다.“그놈 실력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테니까, 너는 몸조리나 잘해. 이번 일은 내가 어떻게든 처리할 거야.”“미안해요. 지금은 그 이유를 얘기할 수 없어요.”유준이 담담한 어조로 얘기했다.“괜찮아. 기다릴게.”“그리고 희민이 일도.”하여이 쉰 목소리로 말
‘설마 양다인한테서 전염된 건 아니겠지?’주원은 세면대 옆에 있던 휴대폰을 들어 양다인에게 전화를 걸었다.소씨 집안.금방 식사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간 양다인은 주원의 전화를 받고 부드러운 어조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주원 씨.”주원은 약간 싸늘한 어조로 물었다.“다인 씨, 요즘 혹시 알레르기 반응이 있거나 하지 않았어요?”양다인은 멍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아니요. 주원 씨 혹시 알레르기가 생겼어요?”말을 마친 양다인은 머리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주원 씨 대체 무슨 상황이야? 설마 나한테도 옮는 건 아니겠지?’그제야 주원의 말투가 한결 부드러워졌다.“아니면 됐어요. 나 요즘 본가에서 지내니까 전화로 연락해요.”“네, 알았어요.”양다인은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옷을 벗고 몸에 이상이 없는지 확인해 봤지만, 특별히 이상은 없었다.‘만약 주원 씨한테 무슨 문제가 있다면 일생을 망치게 되는 거잖아. 그건 절대 안 돼! 주원 씨만 바라보고 살 수는 없잖아.’정주원이든 정유준이든 반드시 한 사람 정도는 확신이 있어야 했다.샤워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양다인의 휴대폰이 또 울리기 시작했고, 발신자가 유준인 것을 보고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호랑이도 제말하면 온다더니.’양다인은 얼른 전화를 받고 미처 입을 떼기도 전에 유준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계약 파기해.”양다인의 얼굴에 걸린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끝까지 이런 식으로 나오겠다 이거지? 강하영이 그 사실을 알았다고 이제 나 몰라라 하는 거야? 절대 그렇게 할 수는 없지!’양다인은 울먹거리기 시작했다.“유준 씨, 내가 부족해서 그래요?”“그런 거 아니야.”유준이 무거운 어조로 말을 이었다.“계약을 끝내고 싶어서 그래. 위약금은 계약서에 적힌 대로 물어줄게.”유준은 할 말만 하고 전화를 끊어버렸고, 양다인의 표정이 일그러지면서 뭔가 조치를 취해야겠다고 생각했다.양다인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은 바로 받았다.“지난번에 백혈병 수술 뒤에 회복에 좋은 약초가 있
하영은 고개를 저으며 차 문을 열었다.“여기서 내리자.”인나도 차에서 내려 하영의 뒤를 따라갔고, 곧 기자가 사는 층에 도착했다.하영은 문 앞에 서서 휴대폰을 꺼내 녹음 버튼을 누르자 인나가 낮은 소리로 물었다.“너 지금 녹음하는 습관도 생겼어?”하영은 인나를 한 번 보더니 대답했다.“예전에 그런 일을 당했는데, 그걸 교훈삼아 조심해야지.”인나는 엄지를 척 내밀었다“좋은 자세야! 그럼 문 두드릴게.”“그래.”인나가 문을 두드리자 곧 안에서 한 남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시죠?”인나는 바로 연기력을 발휘했다.“안녕하세요, 저희는 새로 온 관리인입니다. 아파트 단지에 대한 주민들의 의견을 조사하러 나왔어요.”“네, 바로 문 열어드릴게요.”문이 열리자마자 인나가 빠르게 집안으로 들어갔고, 남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밖에서 얘기하면 안 됩니까?”인나가 웃으며 몸을 돌려 밖을 향해 소리쳤다.“하영아, 들어와.”하영이 걸음을 옮겨 남자 앞에 나타나자, 그녀를 본 남자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얘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저 바쁘니까 관리실에서 알아서 하세요!”남자는 말을 하며 인나를 밖으로 쫓아내려 했다.“뭘 겁내는 거죠?”인나가 남자의 손을 피하며 물었다.“우리는 그쪽을 해치러 온 것도 아닌데 그러니까 더 수상하잖아요!”남자가 경계심 가득한 얼굴로 하영과 인나를 바라보았다.“어차피 기사는 이미 발표됐는데 이제와서 저를 찾아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하영은 싸늘한 눈빛으로 기자를 바라보았다.“양다인이 사주한 일이라는 걸 인정하기만 하면 돼요. 그리고 알고 있는 사실을 전부 얘기해 주세요.”남자는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 일을 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지금 이 꼴로 살고 있잖아요!”남자의 참회에 하영은 기자가 사는 집안을 둘러보니, 지저분하고 열악하기 그지없었다.하영이 앞으로 다가가며 입을 열었다.“사실대로 얘기해 주면, 예전처럼 김제에서 아무 일없이 지내게 해줄게요.”깜짝 놀라던 남자의 눈
인나가 서둘러 전화를 끊자, 하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인나야, 너 아직 병원 가서 검사받지 않았지?”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하영이 너도 왜 엄마랑 똑같이 잔소리야? 나 정말 아무 문제 없어! 임산부라면 임신 반응이 있기 마련인데 나 그런 거 전혀 없어!”“모든 여자가 임신 반응이 있는건 아니잖아. 내 얘기 그냥 흘려듣지 마.”하영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얘기했다.“나 참, 정말 괜찮다니까! 나 예전부터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았단 말이야!”“어머님이 얘기하신 한의원은 정말 다녀왔어?”하영의 물음에 인나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동안 바빠서 시간이 없었어.”“시간 날 때 얼른 다녀와.”“설 지나고 갈게.”인나의 말투는 많이 피곤해 보였다.“오늘도 겨우 시간 낸 거야. 년 말이라 회사에 일이 많거든.”MK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하영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설이 지나면 어떻게든 인나를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청담 국제학교.쉬는 시간에 세준은 교장이 얘기한 컴퓨터 수업에 참여했고, 세희는 같은 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았다.그때 세희의 등 뒤로 누군가 앳된 목소리로 비웃는 얘기가 들려왔다.“어머, 이게 누구야? 아빠도 없는 세희잖아?”세희가 고개를 홱 돌려, 등 뒤에 서 있던 통통한 남자 아이와, 그의 껌딱지 두 명을 바라보았다.그때 세희의 친구가 다가와 얘기했다.“세희야, 저런 애들은 신경쓰지 마. 남자애들은 일부러 못 된 말만 골라하잖아!”“맞아! 그렇게 대단하면 세희만 괴롭히지 말고 다른 애들이랑 싸우지 그래?”“왜? 나는 얘기도 못 해?”통통한 남자애는 질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사생아 맞잖아!”“지금 누구한테 사생아라는 거야?”세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남자애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얘기해 봐!”세희가 반박하자 통통한 남자애도 따라서 난폭하게 굴었다.“얘기하면 어쩔 건데? 사생아 주제에! 너랑 네 오빠도 전부 사생아잖아!”퍽-세희는 주먹을 꽉 쥐고 남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