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나가 서둘러 전화를 끊자, 하영은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인나야, 너 아직 병원 가서 검사받지 않았지?”인나는 한숨을 내쉬었다.“하영이 너도 왜 엄마랑 똑같이 잔소리야? 나 정말 아무 문제 없어! 임산부라면 임신 반응이 있기 마련인데 나 그런 거 전혀 없어!”“모든 여자가 임신 반응이 있는건 아니잖아. 내 얘기 그냥 흘려듣지 마.”하영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얘기했다.“나 참, 정말 괜찮다니까! 나 예전부터 생리 주기가 일정하지 않았단 말이야!”“어머님이 얘기하신 한의원은 정말 다녀왔어?”하영의 물음에 인나는 머리를 긁적였다.“그동안 바빠서 시간이 없었어.”“시간 날 때 얼른 다녀와.”“설 지나고 갈게.”인나의 말투는 많이 피곤해 보였다.“오늘도 겨우 시간 낸 거야. 년 말이라 회사에 일이 많거든.”MK가 얼마나 바쁜지 잘 알고 있었기에 하영도 더는 뭐라 할 수 없었다. 설이 지나면 어떻게든 인나를 병원에 데려가야겠다고 생각했다.청담 국제학교.쉬는 시간에 세준은 교장이 얘기한 컴퓨터 수업에 참여했고, 세희는 같은 반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았다.그때 세희의 등 뒤로 누군가 앳된 목소리로 비웃는 얘기가 들려왔다.“어머, 이게 누구야? 아빠도 없는 세희잖아?”세희가 고개를 홱 돌려, 등 뒤에 서 있던 통통한 남자 아이와, 그의 껌딱지 두 명을 바라보았다.그때 세희의 친구가 다가와 얘기했다.“세희야, 저런 애들은 신경쓰지 마. 남자애들은 일부러 못 된 말만 골라하잖아!”“맞아! 그렇게 대단하면 세희만 괴롭히지 말고 다른 애들이랑 싸우지 그래?”“왜? 나는 얘기도 못 해?”통통한 남자애는 질 수 없다는 듯 말을 이었다.“사생아 맞잖아!”“지금 누구한테 사생아라는 거야?”세희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그 남자애를 노려보았다.“다시 한번 얘기해 봐!”세희가 반박하자 통통한 남자애도 따라서 난폭하게 굴었다.“얘기하면 어쩔 건데? 사생아 주제에! 너랑 네 오빠도 전부 사생아잖아!”퍽-세희는 주먹을 꽉 쥐고 남자
201분 뒤, 청담 국제학교 교무실.유준이 사무실 문 앞에 다가갔을 때, 세희의 훌쩍이는 소리가 들려왔다.“왜 저만 탓해요? 분명 저 남자애가 먼저 저를 아빠 없는 사생아라고 놀렸단 말이에요! 저도 아빠 있어요!”“어린 나이에 벌써부터 싸움질이야? 역시 아빠 없는 자식들이라 그런지 교양이 없어! 또 내 아들을 때렸으니 너는 이제 퇴학이야!”그 말에 유준의 미간이 찌푸려지며 표정이 어두워졌다.그리고 교무실로 성큼성큼 들어서며 차가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누가 감히 내 딸을 퇴학시키는지 두고 볼 겁니다!”그 말에 교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고, 유준을 발견하고 충격받은 표정을 지었다.세희의 눈빛이 변하더니 얼른 유준을 향해 뛰어갔다.“아빠! 저 아빠 없는 사생아 아니에요! 아니란 말이에요!”“어디서 계속 거짓말이야?”코에 휴지를 꽂은 남자애가 앞으로 나서며 입을 열었다.“아무나 끌고 오면 다 네 아빠야?”유준의 서늘한 기운에 겁을 먹은 남자애 엄마가 얼른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고, 자리에서 일어나 벌벌 떨며 유준을 향해 입을 열었다.“정, 정 대표님, 대표님 자제분인 줄 몰랐습니다.”유준은 코웃음을 쳤다.“이런 저속한 가정 교육을 받으면서 무슨 자격으로 이 학교에 다니는 겁니까?”여자의 얼굴에 공포가 떠올랐다.“정 대표님, 저희가 눈이 삔 것이니, 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유준은 그 여인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고개를 숙여 눈이 퉁퉁 부은 세희를 살피더니, 얼른 몸을 숙여 세희를 안아 들었다.“아빠가 왔으니까 겁먹을 필요 없어.”세희는 유준이 목을 꼭 껴안고 흐느꼈다.“저도 아빠 있어요. 아빠 없는 아이가 아니란 말이에요.”유준은 커다란 손으로 세희의 등을 다독여줬다.“그래, 아빠도 알아.”어쩌면 지금 이 순간만 세희가 유준을 아빠로 인정하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쓰렸다.유준은 눈을 들어 오만방자하게 굴던 모자를 쳐다봤다.“주씨라고 했습니까?”여자는 마름침을 꿀꺽 삼켰다.“정 대표님, 이번 일은
“그럼 그렇게 처리해 주세요.”말을 마친 유준은 세희를 안고 걸음을 내디뎠다가 갑자기 다시 멈춰 섰다.“허시원!”문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시원은 얼른 다가와 고개를 숙였다.“네, 대표님.”“지금 막 상장 준비 중인 회사가 주노 그룹이었나?”유준의 물음에 시원은 여자를 힐끗 쳐다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 여기 계신 사모님이 바로 주 회장님 따님이십니다.”“사흘 안에 주노 그룹을 김제에서 사라지게 해.”시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 대표님!”여자의 얼굴이 백지장처럼 창백해지더니 그대로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아크로빌.인나의 손에 이끌려 쇼핑을 마친 하영이 집으로 돌아와 주희가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것을 보고 시간을 확인했다.“주희 씨?”하영이 물었다.“아직 세준이와 세희 데리러 안 갔어요?”주희가 고개를 돌려 하영을 보며 대답했다.“하영 언니, 정 대표님이 아이들을 데려다 준다고 데리러 올 필요 없다고 학교에서 전화 왔었어요. 참, 그리고 담임 선생님이 언니한테 여러번 전화했는데 연락이 안 됐다고 하던데요?”하영이 얼른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확인하니, 담임한테서 부재중 전화가 10통이나 있는 것을 보고 후회하기 시작했다.‘내가 왜 소리를 켜놓는 것을 잊었지?’하영은 얼른 다시 전화를 걸었고, 모든 상황을 전해 들은 하영은 멍하니 전화를 끊었다.세희가 학교에서 사생아라는 소리를 들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애가 얼마나 큰 상처를 받았을까?’10분도 채 안 되어 유준의 차가 별장 정원에 나타났고, 창문을 통해 지켜보던 하영은 얼른 나가 애들을 맞이했다.차 문이 열리자 유준이 세희를 안고 차에서 내렸고, 세준은 반대편에서 내렸다.하영은 얼른 앞으로 다가가 눈이 퉁퉁 부은 채 유준의 품에서 잠든 세희를 보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로움이 밀려왔다.“세희야…….”하영이 입을 떼려던 순간 유준이 입을 열었다.“잠들었으니까 들어가서 얘기해.”세준이 하영의 곁으로 다가와 무거운 표정으로 말을
30분 뒤 유준이 연세 병원에 도착하니, 양다인의 병실 앞에 서 있는 형사들이 유준을 발견하고 다가와 입을 열었다.“정 대표님, 환자가 쓰러지기 전에 대표님한테 이걸 꼭 전해달라고 하셨습니다.”그 말을 하면서 형사가 흙이 묻은 약초 한 봉지를 건네자, 유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주머니를 열었고, 안에는 쪽지 하나가 들어있었다.쪽지를 펼치자 안에는 약초와 한의원 이름이 적혀있었는데, 그 밑에는 글자 한 줄이 적혀 있었다.[백혈병 환자의 회복에 도움이 됩니다.]유준은 쪽지를 다시 주머니에 넣고 형사를 향해 물었다.“상처가 심각합니까?”“몸에 긁힌 상처가 많이 있었어요. 이 물건을 꼭 전해달라는 얘기만 계속 반복하더군요.”유준의 마음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이 복잡해졌다. 양다인이 가증스러운 건 맞지만, 이번에 희민이가 아팠을 때 많이 애를 써준 건 사실이니까.이렇게 노력하는데 아이를 못 보게 하는 것도 말이 안 됐다.유준은 병실을 바라보며 형사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눈 뒤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유준은 병실로 들어가는 모습을 누군가 몰래 사진을 찍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심지어 바로 인터넷에 올려 실검에 오르기까지 했다.저녁 식사 시간에 아크로빌로 돌아온 캐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와 하영의 눈치를 살폈다.하영은 캐리의 행동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캐리가 황급히 시선을 피했다.하영은 캐리의 수상한 행동을 보이는 캐리를 잡았다.“나를 보는 눈빛부터 이상하던데, 나한테 뭐 숨기는 거 있어?”캐리는 머리를 긁적이며 어색하게 웃었다.“그럴 리가. 내가 너한테 숨기는 게 뭐가 있겠어? 아하하하.”“지금 얼마나 어색하게 웃는지 모르지?”“정말 아무것도 아니야! 주희 씨 밥 차렸지? 얼른 가서 먹자!”대답을 꺼리는 캐리의 모습에 하영도 더 따지지 않고 식탁으로 향하는데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인나가 전화한 것을 보고 스피커 폰으로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그때 인나의 비명에 가까운 소리가 흘러나왔다.“
“하영을 찾으러 왔으니까 비켜요!”유준이 크게 화를 내며 밀어내려고 했지만, 캐리는 꿋꿋이 문 앞을 지키며 똑같이 화를 냈다.“대체 무슨 낯으로 하영을 만나러 온 겁니까?”“우리 두 사람 사이 일이니 그쪽 하고는 상관없는 일입니다!”유준은 서늘한 눈빛으로 얘기했다.“친구라면 당연히 상관있죠! 양다인을 지키기로 했으면서 왜 또 여길 찾아온 거죠? 몇 번이나 기회를 줬는데 항상 실망만 안겨줬잖아요!”유준의 인내심이 바닥을 보였다.“비켜요!”“그 태도를 보니 저를 쓰러뜨리기 전엔 절대 하영을 만나게 할 수 없습니다!”유준은 두 눈을 가늘게 뜨더니 주먹을 꽉 쥐기 시작했고, 그 주먹을 본 캐리는 약간 당황하긴 했지만 그래도 물러서지 않았다.“먼저 들어가 있어.”갑자기 등 뒤로 하영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캐리는 고개를 홱 돌렸다.“여긴 왜 나갔어? 설마 아직도 단념하지 않은 거야?”하여은 침착한 얼굴로 캐리를 보며 얘기했다.“내가 잘 얘기할 테니까 먼저 들어가 있어.”캐리는 불쾌한 눈빛으로 유준을 힐끗 쳐다보고 하영을 향해 입을 열었다.“이번엔 절대 마음 약해지면 안 돼.”“그래.”하영은 캐리의 말에 응하고 어두운 표정을 짓고 있는 유준을 봤다.문앞까지 걸어 나온 하영은 대문을 닫고 유준의 앞에 마주섰다.“할 말이 있으면 한 번에 다 해요.”“전화는 왜 끊었어?”“양다인 걱정으로 그렇게 급히 뛰쳐나갈 정도인데 방해하고 싶지 않았어요.”“희민의 약초를 구하기 위해 산에서 굴렀다고 형사한테서 전화가 왔었어.”“그 다음은요?”유준은 마른침을 삼켰다.“그 다음은 없어.”“그럼 이번엔 내가 얘기할게요.”유준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유준 씨도 정주원을 싫어하면서, 마찬가지로 내가 양다인을 얼마나 싫어하는지 몰라요? 유준 씨를 다시 받아줄 마음이 없었던 건 아니에요. 하지만 유준 씨가 내가 제일 싫어하는 사람 사이에서 흔들리는 건 받아들일 수 없어요…….”“흔들린 적 없어!”유준이 무거운 어조로 대답했다.“유준 씨는 흔들린
“세희야, 엄마가 아프던 날 네가 알려줬지?”세희는 순간 멈칫했다.“그건…….”“거짓말하면 안 돼.”세준의 진지한 말투에 세희는 고개를 푹 숙였다.“내가 말한 거 맞아. 엄마한텐 비밀로 해줘.”세준은 한숨을 내쉬었다.“네 마음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너도 봤지?”“봤어.”세희는 대충 대답은 했지만, 그래도 속으로는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다음에 얘기하기 전에 먼저 나랑 상의하는 게 어때?”세희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세준이 다정하게 물었다. 만약 강하게 나간다면 분명 밤새 잠 못 자게 울어댈 게 뻔했으니까.“알았어.”세희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다음날 MK.유준은 굳은 표정으로 사무실에 들어섰고, 그걸 본 비서들은 겁을 먹고 숨소리도 크게 내지 못한 채 서류를 전해준 다음, 거의 도망치듯 사무실을 빠져나왔다.혹시라도 유준의 화를 사게 될까 걱정됐던 것이다.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낯선 실루엣이 비서 앞에 나타났고, 한참 얼굴을 뜯어보던 어떤 비서가 낮게 소리쳤다.“저 남자 대표님 형님 아니에요?”“맞는 것 같아! 전에 우리 대표님한테 맞아대던 영상이 실검에 오른 적 있잖아요.”“대표님 어머님 사건이 바로 저 사람이랑 관련 있는 거죠?”“헐, 저런 역겨운 인간이 우리 부사장님이라니!”“난 절대 저 사람 비서는 되고 싶지 않아요.”“나도!”비서들이 수군대는 소리를 듣지 못한 주원은 바로 유준의 사무실로 향했고, 문 앞에서 문을 두드리자 유준의 낮게 깔린 대답이 들려왔다.“들어오세요.”주원이 문을 열고 들어가 두 사람의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유준의 얼굴은 구겨질대로 구겨졌다.주원은 옅은 미소를 띈 채 천천히 문을 닫고 자연스레 소파에 안자 유준의 사무실을 둘러봤다.“역시 너의 스타일답게 사무실도 칙칙하네.”주원의 피식 웃으며 하는 말에 주원은 싸늘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네놈 사무실은 아래층에 있는데 여긴 왜 올라왔어?”“출근 첫날이라 당연히 너한테 보고하러
잠시 뒤 유준은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어 싸늘한 어조로 분부했다.“정주원 잘 지켜봐!”“네, 대표님.”TYC.오늘은 다음 시즌 신제품 발표날이라 회의실에서 회의 중인 하영은 각 부서 직원들의 의견을 들으면서, 시선은 샘필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있었다.그대 영업팀 부팀장이 입을 열었다.“대표님, 샘플에 문제 없으시면 오늘 바로 출시 발표 준비를 하겠습니다.”하영은 고개를 끄덕였다.“생산 중에 그 어떤 부분에서도 실수는 용납할 수 없어요. 패션 팀은 매일 공장과 검수 작업을 철저히 진행해 주세요.”“네, 대표님!”하영은 눈을 들어 대형 스크린을 보며 입을 열었다.“12시 정각에 발표하세요.”“알겠습니다, 대표님.”손목시계를 확인하니 12시까지 아직 3분이 남았다. 그 3분 동안 모든 사람은 숨을 죽이고 기다리고 있었다.12시가 되자마자 영업팀 부팀장은 바로 예약 버튼을 눌렀고, 몇 분 만에 예약 수가 급증하는 수치를 보고 하영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현재 추세를 보면 그들의 성과가 MK보다 뒤처지진 않을 것 같았다.하영은 직원들의 긴장을 풀어주려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곧 송년회 준비를 해야 하는데, 다들 좋은 생각 있어요?”“추첨이요!”“가면파티는 어때요?”“케케묵은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송년회를 열어요!”“…….”점심시간.하영이 점심 먹으러 구내식당으로 향하고 있을 때,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마자 휴대폰이 울렸다. 예준에게서 걸려 온 전화인 것을 보고 얼른 받았다.“오빠.”전화기 너머로 예준의 웃음 소리가 들려왔다.“오늘 신제품 발표회 봤어. 추세가 대단하던데?”그 말에 하영의 얼굴에도 편안한 미소가 떠올랐다.“왜? 나 밥이라도 사 주려고?”“어떻게 알았어? 마침 너 회사 아래서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예준의 말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미리 얘기하지, 나한테 다른 일이 있었으면 어쩌려고?”“오빠가 동생을 기다리는 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이따가 봐.”“그래.”3분 뒤, 하영은 예준의 차에 탔고, 예
“사업에 실패하고 다들 고향에 내려갔는데, 다들 괜찮게 지내고 있대.”“그 사람들 주소와 연락처 줄 수 있어?”“안 돼!”예준이 진지한 표정으로 대답했다.“위험하니까 너는 이 일에 끼어들지 마!”예준의 확고한 태도에 하영도 더 얘기하지 않았다. 아이들도 있으니 애들의 안전도 고려해야 하니까.“대신 유용한 정보를 얻으면 제일 먼저 나한테 알려줘.”예준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 그나저나 정유준은…….”예준이 말을 하다 멈추자, 하영의 눈빛이 어두워지며 낮은 소리로 물었다.“그 사람이 왜?”예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무것도 아니야. 정유준 얘긴 안 할게.”사실 정유준도 이번 일을 도와서 조사하고 있다고 얘기해 주고 싶었는데, 하영이 그의 얘기를 꺼낼 때마다 기분이 안 좋아 보여 그만두기로 했다.1시 30분에 회사에 도착한 하영은 점심에 확인한 자료 때문에 아직도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만약 아버지가 진짜 정씨 집안 때문에 돌아가셨다면, 앞으로 무슨 얼굴로 무덤을 찾아 가지? 원수 집안 아들을 위해 자식 셋이나 낳고, 복수는 어떻게 해?’김제에서 정씨 집안은 막강한 세력을 갖고 있으니, 그런 집안과 대항한다는 건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과 다름없었다.지친 몸을 의자에 기댄 하영의 머릿속은 너무 혼란스러웠다.얼마 동안 앉아 있었는지 어느새 잠든 하영은 휴대폰 벨소리에 잠에서 깼고, 우인나한테서 걸려 온 전화인 것을 확인하고 얼른 전화를 받았다.그러자 인나의 흥분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하영아! 지금 실검에 난리 났어!”아직 찌라시를 확인할 기분이 아닌 하영은 그저 무심하게 물었다.“뭐라고 하는데?”“뭐라고 하긴, 네가 G의 신분으로 존슨 언니랑 겨룬다고, 네티즌들이 스승과 제자가 서로 대립하하고 있다고 난리야!”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댓글이 왜 다 그 모양이야?”그러자 인나가 웃음을 터뜨렸다.“두 사람이 그러니까 당연히 오해하지! 그나저나 지금 다들 여전히 G가 누군지 추측하고 있어!”“추측하라고 그래.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