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영은 머리가 윙윙 울리는 것을 느끼며 씁쓸한 표정으로 물었다.“캐리가 데려온 팀이 회사에 악영향을 끼친 것도 아닌데, 굳이 그럴 필요까지 있어?”하영은 캐리가 회사를 위해 이토록 신경 써주는 것에 대해 어떤 말로 감사를 전해야 할지 몰랐다.키래가 비록 바람둥이 기질은 있지만, 여자와 만나 잠자리를 가지는 것에 엄격한 기준이 있었다.캐리가 찾은 여자들은 대부분 첫사랑과 비슷했고, 아무리 이쁜 여자라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리사는 첫사랑과 전혀 닮지도 않았고 심지어 나이도 훨씬 많았으니, 캐리가 김제를 떠나기 전에 아주 큰 결심을 하게 된 게 틀림없었다.‘어쩐지, 그래서 어머니가 결혼한다는 핑계로 나를 속인 거였어.’캐리는 콧방귀를 뀌며 입을 열었다.“내가 원해서 한 거야!”그러자 하영이 한숨을 내쉬며 답했다.“알았어. 이번에 나도 같이 갈게.”저녁.하영이 애들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희가 풀이죽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엄마, 저 집에 가기 싫어요.”세희의 불안한 표정에 하영은 가슴이 옥죄듯이 아파왔다.만약 진작에 강씨네 식구들을 쫓아냈으면 세희가 상처 입는 일도 없었을 것이라 생각하며 세희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세희야, 겁낼 것 없어. 이제 집에 돌아가면 알게 될 거야.”세희는 의아한 표정으로 눈을 깜빡였다.“엄마, 왜요?”세준도 세희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입을 열었다.“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실 땐, 우리한테 분명 즐거운 일이 있을 거라는 뜻이야.”세준은 이미 인터넷에서 실검을 확인했지만, 엄마가 말씀하지 않는 것을 보니 세희에게 서프라이즈를 주고 싶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니 세준도 세희에게 일단 아무 말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데 세희는 아직 이해가 안 가는 모양이다.‘혹시 엄마가 그 나쁜 사람들을 죽여버린 건가? 그럼 형사 아저씨들이 잡아가는 거 아냐?’세희는 궁금했지만 감히 묻지 못했고, 불안한 마음으로 아크로빌에 도착했고, 집안에 들어서는 순간 그제야 두 눈을 크게 떴다.거실에 있던 소파도 새것
정 노인은 피식 웃었다.“그저 반반한 얼굴로 남자나 홀리는 여우 같은 년이다!”“아버지!”주원이 한숨을 내쉬고 다시 말을 이었다.“아버지 말씀처럼 그런 여자는 아닌 것 같았어요. 두 번 정도 마주친 적이 있는데 온화하고 예쁜 여자였어요.”그 말에 정 노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주원아, 설마 너도 그 여자가 마음에 든 거야?”“아버지, 제가 어떻게 유준의 여자를 빼앗겠어요?”유준이 담담한 표정으로 웃으며 대답했지만 얼굴엔 실망한 기색이 역력했다.그 모습에 정 노인은 불쾌한 표정으로 컵을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신분도 뭣도 아닌 여자니까 절대 우리 정씨 집안에 들일 생각 없다! 네 마음에 든다면 대충 갖고 놀다가 버려도 상관없지만, 결혼이라면 반대다!”“아버지, 그 여자 정유준이랑 무슨 관계입니까?”“아무 관계도 아니다! 그저 유준이 갖고 놀다 버린 정부일 뿐이야!”말을 마친 정 노인은 실눈을 뜨고 주원을 바라보았다.“주원아, 그런 여자한테는 딴맘 품지 말 거라!”“죄송합니다, 아버지. 아마 실망시켜 드릴 것 같네요.”주원의 낮은 대답에 깜짝 놀란 정 노인은 약간 화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이면 그 여우 같은 년이 마음에 든다는 거야?”“아버지, 저도 첫눈에 반한다는 말을 믿지 못했는데 제가 그 여자를 좋아하게 됐어요.”“그 여자는 아이도 있어!”“상관없어요.”정 노인은 크게 놀라고 말았다.‘강하영, 그 여자가 대체 얼마나 매력적이기에 두 아들 전부 한 여자를 좋아하게 된 거야?’큰아들의 집요함과 진지한 표정에 정 노인의 마음도 누그러지고 말았다.정주원한텐 마음의 빚도 있고, 정말 좋아한다면 한발 물러서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했다.“그래, 네 마음대로 하거라. 성격이 불같은 여자니까 노력해야 할 거다.”주원은 정 노인을 향해 살짝 허리를 굽혔다.“감사합니다, 아버지.”정 노인이 주원의 표정을 주의하지 않은 순간, 그의 눈가엔 싸늘한 웃음기가 스쳤다.다음날.하영이 애들을 데려다주는
인나의 말에 하영은 깜짝 놀랐다.‘내일? 내일이면 인나 생일인 것 같은데!’하영은 미안한 말투로 입을 열었다.“미안, 네 생일을 깜빡 잊을 뻔했네. 이번엔 어떻게 보낼 거야?”“너 너무 바쁜 사람이잖아! 바빠서 나도 잊었지? 어떻게 보상해 줄 거야?”“별마당 캠핑장으로 가는 건 어때? 내가 이따가 그쪽에 연락해서 텐트랑 그릴 준비해 놓으라고 할게.”“좋아! 자세한 건 저녁에 다시 상의해 보자!”“그래.”전화를 끊자 두 녀석이 하영한테 바싹 붙더니, 세희가 헤헤 웃으며 물었다.“엄마, 저도 데려가면 안 돼요?”“물론이지! 엄마가 내일 선생님께 허가를 받을 테니까, 같이 가서 재밌게 놀다 오자.”그동안 너무 바쁜 탓에 애들이랑 자주 놀아 주지 못했으니, 모처럼 이번 기회에 애들을 데리고 놀러 가야겠다고 생각했다.“아싸!”세희는 격동된 표정으로 하영의 볼에 힘껏 뽀뽀해 줬다.“정말 놀기 좋아한다니까.”세준도 입은 웃고 있으면서 일부러 핀잔을 주자, 세희는 코웃음을 쳤다.“오빠는 조용히 있어!”애들을 유치원 입구에 데려다 줬을때 마침 차에서 내려오는 희민을 발견하고, 잠시 생각하다가 앞으로 다가갔다.“희민아.”희민은 자기를 부르는 목소리에 얼른 몸을 돌려 하영을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엄마.”하영은 몸을 숙이고 희민이에게 물었다.“희민아, 내일 엄마랑 놀러 갈까?”그러자 희민은 입술을 꾹 깨물며 어두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아빠가 동의하실지 모르겠어요…….”“그런 건 엄마한테 맡겨. 엄마랑 별마당 캠핑장에 가서 놀자.”희민의 검은 눈동자가 반짝이기 시작했다.“정말요?”“그럼! 이따 저녁에 문자 보낼게”“네.”애들이 유치원으로 들어가는 것을 확인하고, 차에 올라 탄 하영은 유준에게 문자를 보내기 시작했다.한참 고민하던 하영은 일단 웃는 이모티콘을 보내 유준의 기분을 알아보려 했다.어쨌든 며칠 전에 듣기 싫은 말을 한 적이 있으니 말이다.같은 시각, MK.회사에 도착하자마자 하영의 문자를 받은 유준은 조금
하영이 보낸 웃는 이모티콘은 그저 인사였을 뿐이라는 것을 유준은 그제야 알아차렸다.유준은 고개를 들어 싸늘한 표정으로 허시원을 바라보았는데, 싸늘한 표정에는 말 못 할 난처함도 깃들어 있었다.오후.하영은 애들을 예준에게 맡긴 뒤, 드레스로 갈아입고 옅은 화장을 하고 캐리와 함께 리사를 픽업하러 갔다.전시회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6시가 됐고, 리사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홀로 다른 사람을 찾아가 이야기를 나누며 전시회를 둘러보았다.하영은 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캐리를 보며 입을 열었다.“리사는 아직 나랑 얘기하고 싶지 않은가 봐.”캐리도 어이가 없는지 리사의 뒷모습을 보며 입가에 경련을 일으켰다.“저 늙은 여자가 진짜 꾸물대네! 며칠 뒤에 어떻게든 회사로 데려올게!”“하영아!”그때 하영의 등 뒤에서 들려오는 인나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자, 인나가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웃으며 다가왔다.“역시 레드가 잘 어울린다니까, 예뻐!”캐리도 엄치를 척 내보이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인나야, 너 오늘 완전 붉은 장미같아!”인나는 우쭐한 표정으로 턱을 쳐들었다.“당연 한 거 아니겠어?”“어머, 내가 지금 헛것을 보는 건 아니겠지? 이게 누구야? 사라진 지 5년이나 된 정부잖아.”인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어딘가에서 조롱 섞인 말들이 들려왔다.세 사람이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두 여자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하영을 아래위로 훑어보고 있었는데, 눈빛에서 불쾌한 기색을 바로 보아낼 수 있었다.“어머, 그렇게 얘기하지 마. 그냥 얼굴이 닮은 다른 사람일 지도 모르잖아.”“풋, 이 정도로 닮은 사람이 세상에 또 있다고? 이름을 바꾸면 더러운 과거도 바꿀 수 있을 줄 알았나 봐?”“지금은 더럽지 않지. 요즘 실검에 자주 뜨는 핫한 인물이잖아.”“또 어느 돈 많은 스폰서를 만났는지 누가 알아? 5년간 종적을 감추더니 회사까지 차렸다고? 웃기고 있네!”“여우처럼 꼬리치며 보통이 아니잖아. 어떻게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들과 비길 수 있
정유준은 피식 웃으며 화제를 돌렸다.“오늘 이렇게 중요한 자리에 왜 같이 참석하지 않았어?”“전시회가 우리 애들보다 중요한 건 아니니까.”하영은 일부러 우리라는 단어에 힘을 줬다.현욱은 유준의 눈이 이글거리는 것을 보고 얼른 입을 열었다.“유준아! 이제 곧 런웨이가 시작될 것 같은데 저기 가서 먼저 앉아 있을까? 이따가 사람이 많을 것 같은데.”유준이 끌려가는 것을 보고 인나도 얼른 하영의 곁으로 다가와 위로를 건넸다.“하영아. 너무 그러지 마.”하영도 싸늘한 시선을 거두었다.“나 잠깐 화장실 들릴 거니까, 두 사람 먼저 가.”“나도 같이 가!”인나는 하영을 혼자 보내는 게 안심이 되지 않았는지 캐리를 향해 눈짓을 하고 하영과 함께 화장실로 향했다.“하영아, 내일 현욱 씨 불러도 괜찮아?”하영은 걸음을 멈추고 진지한 표정으로 인나를 바라보았다.“두 사람 사귀는 사이지?”“맞아.”인나는 뭔가 찔리는 게 있는지 코를 매만졌다.“하지만 너무 걱정하지 마. 우리가 같이 나간다는 사실을 절대 대표님한테 얘기하지 말라고 당부할게!”하영은 그제야 시름을 놓았다.‘정유준과는 정말 하나도 맞는 게 없어. 아니면 왜 이 지경에 이르러서 만나기만 하면 싸우겠어?’마지막 부스를 지나칠 때 하영은 어딘가에서 짜증 섞인 말투로 꾸짖는 소리를 들었다.소리를 따라가 보니, 한 여직원이 옷차림이 수수하고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신사를 밀치고 있었다.“그 더러운 손으로 천들을 만지지 말라고 몇 번을 얘기했어요? 전시회의 원단들이 얼마나 비싼데 물어낼 수 있겠어요?”노신사는 여직원에게 밀쳐져 비틀거리더니 겨우 똑바로 섰다.“다른 사람들은 만져도 되는데 왜 나는 안 된다는 거요?”“그걸 진짜 몰라서 물어요?”여직원이 비웃듯이 말을 이었다.“어떻게 그분들과 비길 수 있어요? 신분 차이라는 게 있는데.”말을 마친 여직원은 또 손을 내밀어 노신사를 밀치기 시작했다.“어서 가세요! 안 그러면 경비원 부를 겁니다!”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인나도 화가 났
“아버지!”여직원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멀지 않은 곳에서 누군가 노신사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하영과 노신사가 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양복 차림의 중년 남자가 긴장한 표정으로 이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었다.그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는 순간 하영은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청담 국제학교의 교장 선생님?’하영은 그 교장 선생님을 알고 있었다. 예전에 애들 유치원을 알아보고 다녔을 때 주의 깊게 여겨본 인물이었기 때문이다.그가 소유한 학교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통합되어 있으며 세계적으로도 유명했다.교장 선생님은 다급하게 노신사 곁으로 다가왔다.“아버지, 왜 혼자서 여기로 오신 겁니까?”노신사는 자애로운 미소를 지었다.“그냥 산책 겸 나왔다가 새로 들어온 옷감을 둘러보고 있었어. 학생들한테 더 편안한 교복을 만들어 주고 싶어서.”교장 선생님은 웃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아버지, 이런 일은 저한테 맡기면 되잖아요.”“그럴 필요 없어.”노신사가 교장 선생님의 말을 끊었다.“이미 적합한 의류 회사를 찾았거든!”말을 마친 노신사는 웃는 얼굴로 하영을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젊은 아가씨, 아가씨네 회사에서 우리 주문을 받아줄 수 있나요?”하영은 놀라운 표정을 숨기고 가볍게 웃으며 답했다.“어르신, 그런 말씀 마세요. 계약에 관한 건 우선 저희 회사에 대해 잘 알아보시고 다시 결정하셔야죠.”안에 있던 여직원은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저 늙은이가 학교를 소유하고 있다고?’여직원은 바로 태도를 바꾸고 앞으로 나왔다.“죄송합니다, 어르신. 방금 제가 몰라뵙고 무례를 범했어요. 제가 옷감을 소개해 드릴까요?”노신사는 그 여직원을 힐끔 쳐다보더니 거들떠보지도 않고 원장을 보며 입을 열었다.“아들, 이 아가씨랑 얘기해 봐. 아주 좋은 사람이야.”“네, 아버지.”원장은 고개를 끄덕이고 하영을 바라보았다.“아가씨, 잠시 얘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하영도 더 이상 거절할 수 없어 인나와 함
그때 배현욱이 갑자기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다른 자리에 앉자 바로 유준의 곁에 한 자리가 남았고, 현욱은 인나를 향해 자기 옆에 있는 빈자리를 툭툭 쳤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캐리가 현욱을 노려보았다.“일부러 그런 거죠?”그러자 현욱이 웃으며 답했다.“저쪽에 에어컨이 없어서 너무 더워서 바꿨어요.”캐리는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불평을 멈추지 않았다.“하영이를 그쪽에 앉게 하려고 일부러 그런 거 맞잖아요!”“그럼 캐리가 자리를 바꾸면 되잖아요.”현욱의 도발적인 말에 캐리는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젠장! 리사만 아니었으면 하영이 억울한 일을 당하게 하지 않았을 텐데!”그 말을 들은 유준이 차가운 눈빛으로 캐리를 응시하였는데, 그 싸늘한 한기에 몸이 얼어붙을 것만 같았다.으스스한 기운을 느낀 캐리는 몸을 흠칫 떨더니, 그래도 체면을 구길 수는 없었는지, “쳇!”하더니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하영은 머리가 아픈지 인나를 살짝 밀었다.“저쪽으로 가, 그냥 여기 앉을게.”인나는 현욱을 노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알았어. 대표님이랑 싸우지 마.”이때 장내에 음악 소리가 울려 퍼졌고, 시끄러운 음악 소리는 점차 하영과 유준 사이의 억압된 분위기를 깨뜨렸다.한참 뒤에 유준의 잠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번 싸움에서 멋지게 승리한 거 축하해. 역시 내 곁에 3년이나 있었던 보람이 있네.”하영도 유준의 말에 수긍하는 것 같았다.“마지막 말은 왠지 과시하는 것 같이 들리는데요?”“그럼 아니야? 내가 무능한 자들을 키우는 거 봤어?”유준이 슬쩍 입꼬리를 올리며 얘기하자 하영은 피식 웃었다.“그런 적은 없지만 멍청한 사람은 아무리 배양해 봤자 소용없죠. 당신이 나를 배양했다기 보다, 3년간 당신을 내 상사로 선택한 내 눈이 정확한 거 아닐까요? 정유준 씨, 당신은 참 까다로운 상사였다는 걸 아셔야죠.”하영의 말에 유준의 표정이 약간 어두워졌다.“만약 다른 사람이었어도 나한테 했던 것처럼 모셨을 것 같아?”“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고
이어서 또 두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하영은 깜짝 놀라 저도 모르게 비명을 질렀고, 유준은 날카로운 표정으로 하영의 팔을 잡아 바닥에 엎드리게 했다.주위에 있던 손님들은 허둥대며 도망가기 바빴고, 의자들도 이리저리 부딪쳐 쓰러졌다.유준은 하영을 품에 꼭 껴안고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겁낼 것 없어. 나만 따라와!”그때 현욱의 놀란 외침이 들려왔다.“유준아! 뒤를 조심해!”유준이 재빨리 고개를 돌리자 약한 체구의 남성이 뾰족한 칼을 들고 그들을 향해 찌르려고 달려오고 있었다.유준은 얼른 하영을 잡아당겨 빠른 속도로 뒤에 숨겼고, 흉기를 든 남성의 칼이 유준의 팔을 그었다.“유준 씨!”하영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유준의다 이름을 외쳤고, 칼을 휘두르던 남자는 미친 듯이 소리를 질렀다.“네놈들은 다 죽어야 돼! 망할 놈들의 자본가들은 다 죽여버릴 거야!”유준은 싸늘한 표정으로 팔을 움켜쥐고, 남자가 다시 칼을 휘두르려 할 때 상대방의 가슴을 힘껏 차버렸다.범인은 유준의 발길에 멀리 나가떨어졌고, 이어 경호원들이 유준의 곁으로 달려와 재빨리 범인을 제압했다.김호진은 자책 가득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대표님, 저희가 늦었습니다!”“당장 경찰서로 보내!”유준의 싸늘한 말투에 김호진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저희가 데려가서 처리하지 않고요?”“나를 노리고 온 건 아닌 것 같으니, 경찰들이 알아서 하게 해.”“알겠습니다!”하영은 급히 다가가 피가 멈추지 않는 유준의 상처를 살폈다. 애써 침착하려고 노력했지만 두 손을 덜덜 떨고 있는 모습에 유준은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겁내지 마.”순식간에 눈시울이 붉어진 하영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 지르고 말았다.“바보에요? 분명 피할 기회가 있었으면서 무모하게 왜 그랬어요?”말을 마친 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이를 악문 채, 유준의 소매를 걷어 올렸다. 그리고 빠른 속도로 치마를 찢어 상처 부위에 간단히 지혈을 해줬다.하영의 걱정스러운 표정에 유준은 슬며시 입꼬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