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준의 싸늘한 말투에 현욱은 눈살을 찌푸리며 답했다.“저기요, 그때 네가 하영 씨 보는 눈빛은 이렇게 쌀쌀맞지 않았잖아.”유준은 불쾌한 눈으로 현욱을 흘겨봤다.“징그럽게 굴지 마.”“농담이야. 네가 다쳤으니까 내가 하영 씨에 관한 걸 살짝만 알려줄게.”유준의 눈이 약간 어둡게 가라앉았다.“괜히 뜸 들이지 마!”“내일 하영 씨가 인나 씨 생일을 챙겨준다고 했는데, 장소는 별마당 캠핑장이야. 내가 정말 헤어질 각오까지 하고 너한테 얘기해 주는 거야.”“또 할 말 있어?”유준의 반응에 현욱은 의아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안 갈 거야?”유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현욱을 내버려둔 채 차에서 내렸고, 남겨진 현욱은 할 말을 잃었다.난원.유준은 집에 들어와 거실에서 졸고 있는 희민에게 물었다.“왜 아직도 안 자고 있어?”희민은 유준의 목소리에 퍼뜩 눈을 떴다.“아빠를 기다리고 있었어요.”“늦었으니까 올라가서 자. 내일 나랑 엄마 만나러 가야지.”유준의 말에 희민은 깜짝 놀랐고, 미처 뭐라 반응해야 할지 모르고 있을 때 유준이 다시 입을 열었다.“거절하지도 말고, 고자질도 안 돼!”희민은 입술을 깨물며 할 수 없다는 듯 눈을 아래로 드리웠다가, 이내 유준의 다친 팔을 발견했다.“아빠, 다쳤어요?”희민이 또 고개를 쳐들고 걱정스러운 어조로 묻자 유준이 고개를 끄덕였다.“너의 엄마를 지키다가 조금 다쳤어.”“무슨 일 있었어요? 엄마는 괜찮아요?”그 말에 희민이 다급하게 묻자, 유준의 표정이 조금 어두워졌다.“네 눈엔 엄마밖에 없어?”“아니요…….”희민이 고개를 저으며 솔직히 대답하자 유준은 만족스러운지 시선을 거두고 위층으로 올라가려다가 다시 걸음을 멈추더니 이상한 표정으로 희민을 바라보았다.“희민아, 너 살 빠졌어?”유준이 눈을 가늘게 뜨고 묻자 희민은 반템포 늦게 반응하며 대답했다.“모르겠어요.”“아주머니가 해준 음식이 입에 안 맞아?”그러자 희민은 얼른 부인했다.“아니요, 앞으로 많이 먹을게요.”“어디 아
“좋아! 방금 네가 한 말 잊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또 너만 상처받을 거야.”하영은 고개를 끄덕이고 애들 방으로 올라갔다.그때 소예준은 작은 소리로 애들한테 동화책을 읽어주고 있었는데, 하영이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얼른 손가락을 입가에 가져다 대며 조용히 하라는 제스처를 취했다. 그리고 책을 내려놓은 뒤 조심스럽게 방을 나온 뒤 문을 닫은 뒤에야 하영에게 말을 건넸다.“하영아, 안색이 너무 안 좋은데 무슨 일 있었어?”예준의 관심 어린 말투에 하영은 자기 얼굴을 매만지며 솔직하게 답했다.“괜찮아. 오늘 전시회에서 칼부림이 있었거든.”“칼부림?”예준은 바로 언성을 높이며 서둘러 하영을 살피기 시작했다.“다친 덴 없어?”하영은 그런 예준의 팔을 잡으며 입을 열었다.“오빠, 나는 괜찮으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 그냥 많이 놀랐을 뿐이야.”예준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괜찮다니 다행이야.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오빠, 이제 곧 다음 주야.”하영이 미소를 거두고 입을 열자 예준의 표정도 어두워졌다.“나도 알아. 할아버지 생신은 내가 직접 준비하기로 했으니까, 이번에 양다인의 추악한 모습을 모두가 알게 될 거야.”하영은 이 일이 아직도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오빠, 아무래도 우리가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닐까?”예준은 그런 하영의 코끝을 손으로 살짝 쓸어내리며 입을 열었다.“하영아, 네가 그동안 많은 일을 겪어서 그래. 이번 일은 우리가 오랫동안 계획했으니 차질이 생기지 않을 테니까, 너무 걱정하지 마.”“그래도 아직 부족한 것 같아.”하영이 미간을 찌푸리고 말을 이었다.“우리가 지금 신고할 수 있는 건 신분 사칭일 뿐이잖아. 양다인이 나한테 했던 악행들을 고발하기엔 아직 증거가 충분하지 않아.”하영의 말에 예준이 소리 내 웃었다.“모든 일엔 순서가 있는 법이야. 양다인이 신분 사칭하고 몰래 아이마저 빼돌렸으니 충분히 모든 걸 잃게 할 수 있어. 지금까지 방패로 삼았던 할아버지가 없으면 양다인이 더 날
한 시간 뒤 하영은 두 녀석과 먼저 캠핑장에 도착했다.별마당 캠핑장은 여러 오락시설로 이루어진 초대형 캠핑장이었는데, 승마장을 지나갈 때 세희가 흥분된 목소리로 망아지를 가리키며 물었다.“엄마, 저 망아지 타도 돼요?”하영은 세희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어가며 대답했다.“당연하지. 일단 인나 이모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저기 오네요.”세준이 앞을 보며 입을 열었다.하영이 고개를 돌리자, 인나가 현욱을 끌고 기쁜 표정으로 그들을 부르며 달려오고 있었는데, 그들 앞에 도착해서는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우리가 늦게 온 건 아니지?”“늦은 건 아니지만, 지각은 확실한 것 같네요.”세준이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비꼬기 시작하자, 인나는 눈을 부릅뜨고 세준을 노려보았다.“너는 정말 네 아빠랑 똑 닮았다니까!”말이 떨어지기 바쁘게 현욱은 의아한 표정으로 웃음기가 사라진 세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저 녀석의 말투와 행동을 보면 유준과 똑 닮았잖아? 말하기 전엔 몰랐는데 이렇게 보면 소예준을 전혀 닮지 않았어.’현욱이 세준을 뚫어지게 주시하는 것을 본 하영은 혹시라도 뭔가 눈치챌까 봐 가슴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우인나도 그제야 자기가 말실수를 했다는 것을 깨닫고 얼른 말을 돌렸다.“현욱 씨! 혹시 승마할 줄 알아요?”현욱은 생각을 접고 미간을 찌푸렸다.“요즘 자주 타긴 했죠.”“요즘 언제…….”반쯤 말을 하던 인나의 얼굴이 확 달아오르기 시작하더니, 부끄러운 나머지 현욱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다.“미쳤어요? 지금 누구한테 말이라는 거예요!”“…….”두 사람의 티격태격하는 모습에 하영은 할 말을 잃었다.‘지금 내 앞에서 사랑 싸움을 하는 거야?’하영은 애들 손을 잡고 인나와 함께 예약한 캠핑장으로 향했다.현욱도 온다는 말을 듣고 하영은 따로 텐트를 예약했고, 그곳에 도착하니 텐트 앞에 서서 분주히 움직이는 직원들을 지켜보고 있는 유준을 발견했다.인나도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현욱을 노려봤다.“현욱 씨! 지금 나 배신한 거
인나는 벌컥 화를 내며 현욱의 발을 콱 밟았다.“내가 현욱 씨 속셈을 모를 줄 알아요?”현욱은 일그러진 얼굴로 자기 발을 문질렀다.“좀 숙녀답게 행동할 수 없어요?”“그래서 싫어요?”인나는 목청을 높였다.“이게 바로 내 진짜 모습인데, 왜 숙녀답게 굴어야 되죠? 숙녀 같은 여자가 이상형이라면 왜 자꾸 나를 귀찮게 해요? 배현욱 씨, 오늘 같은 날 나 화나게 하지 마세요!”인나가 또 비뚤게 생각하는 것을 본 현욱은 얼른 웃는 얼굴로 사과했다.“그런 게 아니잖아요. 내가 잘못했어요. 안아 줄 테니까 이리 와요.”인나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쳇하면서도 얼른 현욱의 품에 안겼다.“…….”두 사람을 지켜보던 하영과 유준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할 말을 잃었고, 유준은 눈가에 불쾌한 기색을 잔뜩 띠고 몸을 돌려 하영의 손에 있는 집게를 가져왔다.“내가 할게.”하영은 곁에 서 있는 것도 어색할 것 같아 저쪽에 가서 과일이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텐트 안에서 세 녀석은 서로 마주 앉아 있었는데, 세희가 팔짱을 끼고 진지한 표정으로 희민을 바라보고 있었다.“희민 오빠, 어떻게 우리를 배신할 수 있어?”그러자 희민은 낮은 소리로 해명하기 시작했다.“아니야,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아빠가 데려다주신다고 하면서 절대 거절하지 말라고 하셨거든.”세희의 화를 가라앉히기 위해 희민은 모처럼 길게 말했고, 세준도 세희를 보며 귀찮은 듯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세희야, 이미 여기까지 왔는데 화내도 소용없잖아. 차라리 즐겁게 노는 게 어때?”“싫어!”세희는 볼을 부풀리며 화를 냈다.“지난번에 오빠가 위험했을 때 구해주지도 않았잖아! 난 싫어!”비록 아빠가 있었으면 좋겠지만, 너무 모질게 굴던 모습에 차라리 없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세준은 옆으로 누우며 물었다.“그래서 어쩔 건데?”세희는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몸을 곧게 펴며 입을 열었다.“나한테 방법이 있어!”“무슨 방법?”세준이 의아한 표정으로 묻자, 세희가 몸
세희가 어떻게 사과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을 때, 유준의 곁으로 다가간 여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저기요, 제가 불을 지피는 걸 도와드릴게요.”통통한 여자는 유준을 보며 쑥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유준은 의아한 표정으로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보며 뭐라 말을 하기도 전에 여자가 갑자기 유준의 손을 덥석 잡았다.얼른 손을 빼낸 유준은 불쾌한 눈빛으로 여자를 보며 싸늘한 말투로 경고를 날렸다.“함부로 몸에 손대지 마시죠!”여자는 더욱 쑥스러운 표정으로 유준을 바라보며, 손으로 유준의 팔을 툭툭 쳤다.“에이, 너무 그러지 마세요. 저 다 알고 있어요.”그러자 유준의 미간이 더욱 좁혀졌다.“뭘 안다는 겁니까?”여자는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자기 몸으로 유준을 툭툭 건드렸다.“그러니까, 그쪽 마음을 다 알고 있으니까 너무 부끄러워할 필요 없다고요.”“???”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하영과 나머지 일행들도 멍한 표정이 되었다.‘이게 다 무슨 상황이야?’인나도 깜짝 놀라며 감탄했다.“대박, 대표님이 너무 매력적이라 지금 여자가 먼저 다가와 도와주려는 거죠?”현욱도 웃음을 꾹 참았다.“지금 유준의 표정 너무 웃기지 않아요?”그 말에 숯처럼 어둡게 가라앉은 유준의 표정을 유심히 살펴보던 인나는 그만 “풉.”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저 망할 매력이 문제라니까요!”하영은 웃긴다기보다 오히려 갑자기 나타난 여자를 이상하게 생각했다.한참 생각에 잠겨 여자가 걸어온 방향을 보니, 멀지 않은 곳에서 세준이 세희를 끌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세희의 시무룩한 표정을 보고 하영은 어떻게 된 상황인지 바로 눈치챘고, 차가운 표정으로 세희 앞으로 다가갔다.깜짝 놀란 세희는 억울한 눈빛으로 하영을 바라보았다.“엄마…….”하영은 미간을 찌푸리고, 낮은 어조로 물었다.“세희야, 저 아줌마가 갑자기 나타난 게 혹시 네가 한 짓이야?”“엄마, 제가 잘못했어요…….”세희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답하자, 하영은 마음속에서 치밀어 오르
세희는 눈물을 훔치고 세희 품에서 내려와 훌쩍이며 여자 곁으로 다가갔다.그러자 통통한 여자는 의아한 표정으로 세희를 보며 물었다.“꼬마야, 왜 울어?”세희는 여전히 훌쩍이며 대답했다.“이모, 죄송해요. 제가 이모를 속였어요. 저 사람이 이모를 불러오라고 시킨 게 아니라 제가 일부러 그랬어요. 정말 죄송해요.”“큰일도 아닌데 괜찮아. 이제 불도 지폈으니까 이만 가볼게. 꼬마야, 울지 마.”하영도 여자 곁으로 다가와 허리를 굽히며 사과를 건넸다.“죄송해요. 저희 애가 철이 없어서 폐를 끼쳤네요.”“정말 괜찮으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여자는 손을 휘휘 저으며 답하고는 그 자리를 떠났고, 하영은 세희를 보며 입을 열었다.“사과해야 할 사람이 또 있잖아.”세희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유준을 보며 입을 열었다.“나쁜……,죄송합니다!”유준은 대충 어떻게 된 일인지 눈치채고, 손을 들어 올렸다가 잠시 멈칫하더니 다시 세희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어 줬다.그리고 평소에 보기 드문 부드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알았으니까 울지 마.”작은 몸을 움찔하던 세희는 흐느낌도 점점 잦아들기 시작했고, 아빠의 손길이 따뜻하고 다정하다고 생각했다.그리고 고개를 들어 처음으로 유준을 똑바로 쳐다보았는데, 고개를 들자마자 유준의 칠흑같이 검은 눈동자와 눈이 마주치고 말았다.‘나쁜 아빠가 예전과 많이 달라진 것 같아…….’유준이 약간 미간을 좁히기 시작하자, 세희는 그제야 얼른 고개를 숙이고 몸을 돌려 텐트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세희를 혼낸 뒤 마음이 좋지 않았던 하영은 제대로 얘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세희를 따라 텐트로 들어갔다.그들은 바비큐를 먹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에 다 같이 승마장으로 향했다.하영은 예전에 유준과 함께 고객 접대를 위해 여러 가지 활동에 참석하면서 승마를 배운 적이 있었다.말을 고를 때 하영은 조련사와 이야기를 나누며 애들을 위해 온순한 망아지 세 마리를 골라줬고, 애들과 함께 한 바퀴 산책한 뒤에 말을 고르러 갔다.마구간에 도착한
유준은 싸늘한 눈빛으로 현욱을 흘겼다.“심심한가 봐?”그러자 현욱은 머쓱한지 코를 매만졌다.“에이, 그냥 농담한 거잖아.”“어라?”그때 인나가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 조련사 지금 하영이 쫓아가는 거 아니에요?”유준과 현욱이 동시에 조련사 쪽을 바라봤고, 조련사의 다급한 표정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곧이어 또 두 명의 조련사가 마구간에서 나와 말을 타고 달리는 모습에 유주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어두운 표정으로 직원이 서 있는 쪽으로 걸어갔다.현욱과 인나도 다급히 쫓아갔고, 세 사람이 직원 앞에 도착했을 때 유준이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대체 어떻게 된 일이죠?”그러자 직원은 벌벌 떨며 입을 열었다.“저 여성분이 고른 말이 마구간에서 제일 다루기 힘든 말이거든요…….”직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둔탁한 소리와 함께 하영의 비명이 들려왔다.유준과 일행이 바로 고개를 돌리자, 그 말은 하영을 데리고 이미 승마장을 벗어나고 있었다.유준은 입술을 꽉 깨물고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두 사람은 가서 애들을 돌봐줘!”말을 마친 유준은 마구간에 들어가 말을 끌고 나오더니, 날렵하게 말 등에 오른 뒤 하영이 사라진 방향으로 쫓아가기 시작했다.“젠장! 유준아, 너 상처도 아직 다 낫지 않았잖아!”현욱이 뒤늦게 반응하며 외쳤을 때 유준의 모습은 이미 보이지 않았고, 우인나도 곁에서 발을 동동 굴렀다.“현욱 씨! 현욱 씨는 가서 차 좀 갖고 와요. 우리도 찾으러 가야 해요! 하영이 떠난 방향에서 멀지 않은 곳에 숲이 있는데 쉽게 길을 잃을 수 있어요!”“숲이요?”현욱도 깜짝 놀라고 말았다.“그래, 알았어요!”그 시각.말 등에 올라탄 하영은 말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하자 거의 심장이 멎을 듯한 두려움에 휩싸였다. 하영은 오장육부가 흩어질 것만 같은 세찬 흔들림에 고삐를 꽉 조이려고 노력했지만 그녀의 힘으로는 말을 컨트롤할 수 없었고, 좌우로 당기려고 해도 그대로 튕겨져 나뒹굴 것만 같았다.
“유준 씨?”하영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에 황급히 일어나 앉아 유준의 이름을 불렀다.그때 유준의 미간이 살짝 움직이기 시작했고, 하영은 유준의 의식이 돌아오는 것 보고, 다시 말을 걸기 시작했다.“유준 씨, 제 말 들려요? 대답 좀 해 봐요!”유준의 손가락이 약간씩 움직이기 시작하면서 애써 눈을 떴고, 하영이 무사한 것을 보더니 눈가에 어린 걱정이 점차 사라지기 시작했다.“아직 안 죽었으니까 그만 불러…….”유준의 대답에 하영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멘 소리로 물었다.“쫓아오지 말라고 했잖아요! 왜 말을 안 들어요?”유준은 쓴웃음을 지으며 잠긴 목소리로 대답했다.“또다시 내 앞에서 사라지게 된다면 견딜 수 없을 것 같거든…….”하영은 유준의 말에 심장이 멎을 것만 같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리고 눈물을 훔친 뒤 유준을 부축해 줬다.“일단 앉아요. 또 다친 곳은 없어요?”유준은 입술을 깨물고 가까스로 일어나 앉았고, 하영은 그를 부축해 나무에 기대게 한 다음 몸을 살피기 시작했다.여기저기 살펴보니 가장 심각한 곳은 전에 다친 팔의 상처가 다시 벌어진 것이었다. 다리에도 찰과상이 있었지, 다행히 골절은 아니라 움직이는 데 문제는 없었다.그제야 안심이 된 하영은 시선을 거두고 구조를 요청하려고 할 때, 휴대폰이 없는 것을 발견했다.“유준 씨, 혹시 휴대폰 갖고 있어요?”“그걸 챙길 정신이 있었을 거라 생각해?”유준은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되묻자, 하영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 입을 열었다.“걸을 수 있겠어요?”여기서 오래 머무를 순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팔의 상처가 감염될 수도 있으니까.유준은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섰지만, 다리에서 전해지는 고통에 하마터면 그대로 넘어질 뻔했다.하영은 얼른 유준의 팔을 잡아 주며, 그의 팔을 자기 어깨에 둘렀다.“조금만 참고 천천히 걸어 봐요.”유준은 조용하게 하영을 곁눈질하더니, 그녀에게 기댄 채 몇 걸음 걷다가 문득 멈춰 섰다.그러자 하영도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얼굴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