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왔다. 드디어 왔어.유준은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하영을 보곤, 분노로 매섭도록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그는 살기 어린 눈으로 정명헌을 바라보았다.“둘째 조카, 제법인데. 감히 내 사람까지 납치하고…….”정명헌은 갑자기 일어서서 뒤에 있는 비서들 사이에서 벌벌 떨었다.“셋……, 셋째 삼촌!”정유준은 몇 걸음 걸어서 그의 앞에 가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삼촌? 넌 내가 네 삼촌이라는 건 알고 있어? 아는 새끼가 그래?”정명헌은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갑자기 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시선이 하영한테서 멈췄다.“셋째 삼촌! 제가 사람을 보내서 이 여자를 잡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삼촌을 위해서 한 일이에요! 삼촌도 모르셨을 걸요? 제가 방금 저 여자 속을 다 떠봤는데…… 글쎄 이 여자가 삼촌에게 앙심이 있더라구요……!“저 여자는, 삼촌을 독살하고 싶을 정도로 삼촌을 엄청 미워해요…… 삼촌, 절 믿으셔야 해요!”정유준은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하영을 힐끗 쳐다보았다.“둘째 조카가 이렇게 내생각을 하는데…… 삼촌인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지. 나도 너에게 선물을 좀 줘야겠구나.”말이 떨어지자 정유준은 눈을 돌려 경호원을 바라보았다.“조져.”처참한 고함소리가 울리는 순간, 정유준은 하영을 데리고 창고를 떠났다.차에 오르자 정유준은 비꼬아 말했다.“제법 끼를 부리는 법도 배웠네.”하영 마음속에 우러나왔던 감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녀는 속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빈정대는 말투로 되물었다.“그럼 사장님께 이런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되겠네요…….”자신을 지사에 데리고 가서 피를 묻히는 인사 이동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정명헌에게 비굴한 아부를 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을 거다.운전석에 앉아 있는 허시원의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정유준에게 이렇게 바득바득 대드는 사람은 아마도 강하영 밖에 없을 것이다.
[부진석: 오늘 아버님이 병원에 오셔서 어머님하고 한바탕 하셨어요. 병원비라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시더라고요.]강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저희 어머니는 어떠신가요?!][부진석: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20만원 드렸더니, 아버님이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으셨어요.]강하영은 경악했다. 아버지는 무슨 염치로 부진석의 돈을 받았단 말인가?!강하영은 부진석이 자신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아버지에게 돈을 준 것이 거슬렸지만, 어머니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돈 맛을 봤으니, 아버지는 또 돈을 받으러 올 것이었다.강하영은 부진석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부진석에게 20만 원을 보낸 뒤 강하영이 말했다. [선생님, 어머니를 위해 애써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다음 번엔 아버지에게 돈을 주지 말아 주세요. 다음에 아버지가 또 찾아오면, 그땐 제게 말해주세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부진석은 강하영이 돌려주는 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강하영이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돈을 거절해 봐야, 그녀는 그가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돈을 받으라고 고집을 부릴 것이다. 차라리 한 번에 시원하게 받아버리는 것이 낫다. 돈을 받은 후 부진석이 말했다. [부진석:알겠습니다……언제 돌아오시나요?] [강하영: 며칠 더 있어야…….]그녀가 아직 메시지를 다 치지 못했는데, 욕실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검은색 가운을 입은 정유준이 수건으로 짧은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왔다.강하영은 얼른 뒤에 있는 쿠션에 휴대전화를 쑤셔 넣고 텔레비전을 보는 척했다.그러나, 이 행동은 오히려 정유준의 의심을 샀다.그는 강하영 곁으로 다가오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뭘 숨겨?”강하영은 긴장된 마음을 누르며 말했다.“쿠션이 불편해서……위치를 좀 조절했어요.”정유준은 실눈을 뜨더니, 재빨리 손에 든 수건을 던지고, 강하영을 소파에서 일으
다만, 많은 사람들 앞이라 그녀는 여전히 온화하고 얌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몇 시간 후, 그들은 김제로 돌아왔다.이번에는 정유준이 강하영을 난원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그녀와 함께 회사로 왔다.오랜만에 사무실로 돌아온 강하영은 경악한 표정으로 없어진 유리벽 쪽을 바라보았다.원래 강하영의 사무실과 사장실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로 터버렸다.회사로 돌아와 기뻐하던 강하영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그는 지금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것인가??화가 난 강하영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유준을 향해 걸어갔다.“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정유준은 그윽한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기분 나빠?”기분 나쁘냐고?!그는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이렇게 감시당하면, 당신은 기분 좋겠어??강하영은 이를 악물었다.“저는 일할 수 없어요! 돌아가겠습니다!”정유준의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나 없는 데서 부 선생님과 언제 만날지 의논하려고?”강하영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당신은 억지를 좀 부리지 않을 수 없나요?”정유준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요즘 이 여자는 그의 앞에서 자주 감정을 드러낸다.차가운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는 지금 고양이처럼 파르르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정유준은 책상 위의 서류를 강하영 앞으로 던졌다.“여기서 쓸데없는 말 할 시간에 하나라도 일을 더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강하영의 분노는 그렇게 묵살되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서류를 주시하다가, 결국 화난 표정으로 서류를 집어 들고 옆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오후 5시.양다인은 퇴근시간에 칼같이 정유준의 사무실로 달려왔다.강하영과 정유준의 사무실이 합쳐진 것을 본 그녀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정유준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강하영에게로 걸어갔다.“강하영! 수완이 정말 좋아!" 양다인이 비웃으며 말했다.강하영은 눈을 들어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칭찬 고마워요.”양다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강하영이 냉소를 흘렸다. “그럼 제발 부탁인데, 양다인씨를 잘 좀 단속하세요. 걸핏하면 찾아와서 나한테 시비 걸지 못하도록!”말을 마친 강하영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사무실에 서 있었다.잠시 후, 정유준은 핸드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사는 진전이 좀 있어?”“사장님, 부원장의 사망은 조사할 방법이 없지만, 우리는 당시 양다인씨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그 선생님 말이 양다인씨는 왕따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까지 겪었는데, 고아원에서 그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는군요.” 정유준의 눈썹이 일그러졌다.“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허시원이 계속 말했다.“말해.”“원장 말로는 당시 귓불에 붉은 반점이 있는 소녀를 아영이라고 불렀답니다. 양다인씨는 아마 입양된 후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정유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부모 쪽은 연락이 됐어?”“전에 이미 사람을 보내서 연락했었는데, 우리 사람이 다녀간 후 이사를 가버려서, 소식이 끊어졌습니다.”“계속 조사해!”똑똑똑-정유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구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정 사장님! 정 사장님 빨리 디자인팀에 가보세요. 양 부팀장이 갑자기 쓰러졌어요.”…………퇴근시간이 되자, 강하영은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혼자 회사를 나갔다.이상하게 허시원도 회사 앞에 없었다. 강하영은 내심 기뻐하며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갔다. 어머니를 보러 병원에 갈 작정이었다.10여 분을 기다렸지만, 택시는 보이지 않았고, 람보르기니 한 대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가고, 눈에 익은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강하영씨?”강하영은 깜짝 놀라며 재빨리 자신의 머릿속을 검색했다. 내가 아는 사람? “소……사장님?”소예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태워드리겠습니다.”“아니에요. 택시 타면 됩니다.”강하영은 완곡하게 거절했다.“지금 퇴근 시간이라, 여기서 택시를
양운희의 목소리는 여기에서 끊어졌다.강하영은 입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아이는 누구지?자신일 리는 없다. 그녀가 어떻게 아버지와 피 한 방울 안 섞일 수 있겠는가?아버지는 요 몇 년 동안 성격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어렸을 때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강하영은 머리를 흔들었다. 어떤 일들은 함부로 넘겨 짚어서는 안 된다.강하영은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침대에 앉아있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엄마, 아빠랑 또 싸웠어요?”목소리를 들은 양운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강하영을 바라보았다.“너는 오면 온다고 말을 하고 와야지!”강하영은 침대 옆에 앉아 잠시 침묵했다.“엄마,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라니, 누구 이야기예요?”양운희가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아버지 친척집 아이야. 너하고 상관없어. 신경 쓰지 마.”강하영은 여전히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도 더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사실 아버지 쪽 친척을 본 적이 몇 번 없다.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그 사람들은 모두 한 성격하는 사람들이다.안 만날 수 있으면, 만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강하영은 과일을 깎으며 말했다.“엄마, 몸도 안 좋은데,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나는 네 아버지가 계속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강하영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저녁 9시가 넘어 있었다.강하영은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난원으로 갔다.임신 때문인지 강하영은 차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꿈속에서 강하영은 큰 집을 보았다.정원에는 많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유독 머리를 땋은 한 소녀만 화단 옆에 외로이 앉아 있었다.그때,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한 소녀가 땋은 머리 소녀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너는 어떻게 매일 그렇게 보기 싫은 얼굴을 하고 있냐? 재수 없게!”땋은 머리 소녀가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친구에게 말
“사장님?” 양운희는 경악했다.강하영이 대충 둘러댔다. “아버지 빚쟁이들이 자꾸 쫓아다니니까, 사람 좋은 우리 사장님이 경호원을 몇 명 붙여줬어요.”양운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런 거면 다행이고. 앞으로는 전화 꺼놓지 마. 엄마가 너무 놀랐잖아?”강하영은 어머니를 달래는 몇 마디를 더 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긴장한 표정으로 아래층을 바라보았다.10분도 안되어 검은색의 마이바흐가 정원으로 들어섰고, 차에서 내린 정유준이 어두운 표정을 한 채 별장으로 들어왔다.강하영은 피곤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는 또다시 고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몸을 돌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녀가 문 손잡이에 손을 댄 순간,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쿵 하고 그녀에게 부딪혀왔다. 문이 그녀의 어깨를 쳤고, 강하영은 또렷한 둔통감을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린 채 앞에 선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표정의 그는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그의 아름다운 눈썹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고, 핏발이 서린 검은 눈동자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비록 약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강하영은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고 있는 강렬한 노기를 느낄 수 있었다.강하영은 그의 눈빛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남자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더니, 그녀를 벽에 세게 밀쳤다.“말해! 왜 핸드폰을 꺼놨어?”정유준은 이빨 사이로 차갑게 말을 밀어냈다.강하영은 어깨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들었다.“제가 말했잖아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돼서…….”툭-반쯤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에 차가운 사진 몇 장이 던져졌다.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강하영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눈에 익은 람보르기니와 차 밖에 서서 말하고 있는 그녀를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내가 없는 틈을 타 다른 남자와 놀
병원.정유준은 밤새 사무를 처리한 후에 양다인을 보러 왔다.양다인은 정유준을 보자마자 급히 병상에서 일어나 앉았다.“유준씨 왔어?”정유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일어날 필요 없어. 누워 있어.”정유준이 그녀의 곁으로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양다인의 표정에 옅은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괜찮아. 하룻밤 쉬었더니 많이 좋아졌어.” 양다인은 한숨을 쉬었다. “어제, 또 폐를 끼쳤어.”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는 강하영을 찾아가지 마. 그 여자 무슨 좋은 말을 하지 않을 거야. 너는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해.”양다인은 수줍게 물었다.“네가 나를 아끼고 있다고 생각해도 돼?”정유준의 눈동자가 반쯤 가라앉았다.“피할 수 있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아.”듣고 싶은 대답을 듣지 못한 양다인의 얼굴이 굳었다.그러나, 그녀는 곧 정유준의 잘생긴 얼굴에 피곤이 어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유준씨, 어젯밤에 잘 쉬지 못했어?”양다인이 배려하며 물었다.정유준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대답했다. “응! 괜찮은 것 같으니까, 나는 그만 갈게.”양다인은 감히 그에게 더 있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달갑진 않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 빨리 가서 쉬어.”정유준이 병실을 나서자 양다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걸까?그녀는 두 번이나 쓰러졌지만, 남자의 얼굴에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그저 보통 친구들끼리의 배려와 보살핌이 있을 뿐이다.그녀가 한창 생각에 빠져 있는데,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발신번호를 본 양다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젖히고 병실 입구로 달려갔다. 문을 열어 정유준이 이미 간 것을 확인한 양다인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다인아, 나 안 보고 싶었어?” 남자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양다인은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으며 불평했다. “보고 싶었지. 하지만, 앞으로는
연속 3일간, 매일 회사에서 돌아온 정유준은 가사도우미로부터 강하영이 단식하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며칠 전까지만 해도 정유준은 참을 수 있었다. 그러나, 이미 3일이 되었다!그녀는 다른 남자를 위해 건강을 해쳐가며 자유를 얻으려고 한다?!정유준은 어두운 얼굴로 위층으로 올라가 경호원을 보내고, 강하영의 방 문을 열었다.어두운 침실, 컴퓨터만 빛을 발하며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잠든 여자를 비추고 있었다. 정유준은 강하영을 향해 걸어가다가, 컴퓨터 앞에 놓여 있는 두 개의 약병을 언뜻 보았다.그는 약병을 들고 살펴보다가 눈살을 찌푸렸다.그도 위장병 때문에 약을 먹은 적이 있다. 이 약들은 모두 급성 진통제다.약병을 열어보니, 알갱이가 얼마 남아있지 않았다. 그의 표정이 어두워졌다.약병을 내려놓은 후, 정유준은 침대 옆으로 가서 손을 뻗어 자고 있는 강하영을 일으켜 앉혔다.“일어나!”배가 고파서 머리가 어지럽고 눈이 침침했던 강하영은 몽롱한 정신으로 깨어나 정유준의 잘생긴 얼굴을 보았다. 그녀는 자신이 허기가 져서 헛것을 보는 줄 알았다.그녀는 자신의 몸을 두르고 있는 팔을 두드리며 두 눈을 감고 중얼거렸다.“어떻게 꿈속에도 이 사람이야?”그녀의 말은 정유준의 귀에 또렷이 들렸다.그는 어리둥절해서 그녀의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했다.강하영이 말하는 건, 나?그렇게 생각한 정유준의 안색이 많이 부드러워졌다.침대 옆에 앉은 그가 큰 소리로 물었다.“당신 어머니 보러 나가고 싶지 않아?”처음 소리를 들었을 때, 강하영은 환청이라고 생각했다.그러나 두 번째, 그녀는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녀는 눈을 번쩍 뜨고 옆에 앉아 있는 정유준을 쳐다보았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지만, 사흘 동안 밥을 먹지 않은 탓에 정말 힘을 쓸 수가 없었다.강하영은 침을 삼키며 의아하게 물었다.“당신이 왜 여기 있어요?”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어설픈 핑계를 댔다.“며칠 더 있으면 새해야. 집에서 사람이 죽어 나가게 할 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