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다인은 정유준이 놀라서 급히 나간 이유를 깨달았다.정유준의 안색이 이렇게 굳어져 급히 떠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하영 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그런데 강하영이 유준 씨한테 왜 그렇게 중요한 거지? 얼굴만 반반한 오피스 와이프 주제에!’위치 전송을 마친 하영은 천연덕스러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었다.차에서 뛰어내리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 아기를 위해서라도 경솔한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하영은 차 문에 기대어 눈을 붙이고 잠시 뒤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생각했다.약 10분 후 차가 멈춰 섰다.고개를 들어 보니 허름한 창고가 하나 있었다.“내려!”갑자기 차문이 열리면서 그녀의 팔이 남자에 의해 잡혔다.하영은 겁에 질린 척하며 앞에 있는 낯선 남자를 바라보았다.“누구세요?! 여기가 어디예요?”남자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자신에게 물어봐야지…… 네가 누구한테 미움을 샀는지!”배 속의 아이를 다치게 하지 않기 위해 하영은 즉시 입을 열었다.“내릴게요! 나 혼자 갈 수 있어요!”“너 수작 부릴 생각하지 마!”하영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철저한 감시하에 어두침침한 창고로 끌려 들어갔다.창고에 들어서니 쇠 냄새가 확 풍겨왔다.고개를 들어 앞을 바라보자, 눈 앞에 낯익은 비서 세 명과 가운데 제왕처럼 앉아 있는 남자가 보였다. 자신의 예측이 맞았다.정명헌이 그의 비서들과 이번 일을 공모한 것이다.정명헌을 향해 걸어가며 하영은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혼자서 여러 명을 당해낼 수 없는 바, 방법을 강구해서 정유준이 구하러 올 때까지 시간을 끌 수밖에.정명헌 앞에 도착한 하영은 눈시울이 빨개졌다.현재 해야 할 일은 정명헌의 여색을 밝히는 약점을 이용하여 동정표를 얻는 것이다.“도련님…….”나긋나긋한 하영의 목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뼈가 녹는 것 같았다.하영의 얼굴을 본 정명헌의 눈에 놀라움이 떠올랐다.그러나 체면을 중시하는 그는 근엄한 말투로 말했다.“날 그렇게 부르지 마! 왜 널 여기로 잡아온 지는 알겠
그가 왔다. 드디어 왔어.유준은 차가운 바닥에 쪼그리고 앉아 있는 하영을 보곤, 분노로 매섭도록 차가운 기운을 내뿜었다.그는 살기 어린 눈으로 정명헌을 바라보았다.“둘째 조카, 제법인데. 감히 내 사람까지 납치하고…….”정명헌은 갑자기 일어서서 뒤에 있는 비서들 사이에서 벌벌 떨었다.“셋……, 셋째 삼촌!”정유준은 몇 걸음 걸어서 그의 앞에 가서 눈을 가늘게 뜨고 말했다.“삼촌? 넌 내가 네 삼촌이라는 건 알고 있어? 아는 새끼가 그래?”정명헌은 놀라서 침을 꿀꺽 삼켰다.갑자기 그는 무슨 생각이 났는지 시선이 하영한테서 멈췄다.“셋째 삼촌! 제가 사람을 보내서 이 여자를 잡아온 것은 사실이지만, 모두 삼촌을 위해서 한 일이에요! 삼촌도 모르셨을 걸요? 제가 방금 저 여자 속을 다 떠봤는데…… 글쎄 이 여자가 삼촌에게 앙심이 있더라구요……!“저 여자는, 삼촌을 독살하고 싶을 정도로 삼촌을 엄청 미워해요…… 삼촌, 절 믿으셔야 해요!”정유준은 옆에 아무렇지 않게 서 있는 하영을 힐끗 쳐다보았다.“둘째 조카가 이렇게 내생각을 하는데…… 삼촌인 나도 가만 있을 수 없지. 나도 너에게 선물을 좀 줘야겠구나.”말이 떨어지자 정유준은 눈을 돌려 경호원을 바라보았다.“조져.”처참한 고함소리가 울리는 순간, 정유준은 하영을 데리고 창고를 떠났다.차에 오르자 정유준은 비꼬아 말했다.“제법 끼를 부리는 법도 배웠네.”하영 마음속에 우러나왔던 감격이 순식간에 사라졌다.그녀는 속으로 숨을 크게 들이쉬며 빈정대는 말투로 되물었다.“그럼 사장님께 이런 기회를 준 것에 대해 감사해야 되겠네요…….”자신을 지사에 데리고 가서 피를 묻히는 인사 이동을 감행하지 않았더라면, 굳이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미움을 살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울렁거리는 속을 참으며 정명헌에게 비굴한 아부를 할 필요는 더더욱 없었을 거다.운전석에 앉아 있는 허시원의 마음은 가시방석에 앉아있는 것 같았다. 정유준에게 이렇게 바득바득 대드는 사람은 아마도 강하영 밖에 없을 것이다.
[부진석: 오늘 아버님이 병원에 오셔서 어머님하고 한바탕 하셨어요. 병원비라도 내놓으라고 난리를 치시더라고요.]강하영은 미간을 찌푸렸다.[저희 어머니는 어떠신가요?!][부진석: 어머니는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20만원 드렸더니, 아버님이 더는 소란을 피우지 않으셨어요.]강하영은 경악했다. 아버지는 무슨 염치로 부진석의 돈을 받았단 말인가?!강하영은 부진석이 자신에게 묻지도 않고 마음대로 아버지에게 돈을 준 것이 거슬렸지만, 어머니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뭐라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돈 맛을 봤으니, 아버지는 또 돈을 받으러 올 것이었다.강하영은 부진석에게 미리 알려주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다.부진석에게 20만 원을 보낸 뒤 강하영이 말했다. [선생님, 어머니를 위해 애써주신 것은 감사하지만, 다음 번엔 아버지에게 돈을 주지 말아 주세요. 다음에 아버지가 또 찾아오면, 그땐 제게 말해주세요. 번거롭게 해드려 죄송합니다.]부진석은 강하영이 돌려주는 돈을 거절하지 않았다. 그는 강하영이 다른 사람에게 신세 지는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돈을 거절해 봐야, 그녀는 그가 받을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돈을 받으라고 고집을 부릴 것이다. 차라리 한 번에 시원하게 받아버리는 것이 낫다. 돈을 받은 후 부진석이 말했다. [부진석:알겠습니다……언제 돌아오시나요?] [강하영: 며칠 더 있어야…….]그녀가 아직 메시지를 다 치지 못했는데, 욕실 쪽에서 문 여는 소리가 났다.검은색 가운을 입은 정유준이 수건으로 짧은 머리를 닦으며 욕실에서 나왔다.강하영은 얼른 뒤에 있는 쿠션에 휴대전화를 쑤셔 넣고 텔레비전을 보는 척했다.그러나, 이 행동은 오히려 정유준의 의심을 샀다.그는 강하영 곁으로 다가오더니 어두운 눈빛으로 쳐다보며 물었다. “뭘 숨겨?”강하영은 긴장된 마음을 누르며 말했다.“쿠션이 불편해서……위치를 좀 조절했어요.”정유준은 실눈을 뜨더니, 재빨리 손에 든 수건을 던지고, 강하영을 소파에서 일으
다만, 많은 사람들 앞이라 그녀는 여전히 온화하고 얌전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몇 시간 후, 그들은 김제로 돌아왔다.이번에는 정유준이 강하영을 난원으로 바로 보내지 않고, 그녀와 함께 회사로 왔다.오랜만에 사무실로 돌아온 강하영은 경악한 표정으로 없어진 유리벽 쪽을 바라보았다.원래 강하영의 사무실과 사장실 사이에는 유리벽이 있었는데, 지금은 하나로 터버렸다.회사로 돌아와 기뻐하던 강하영의 마음이 순식간에 무너져 내렸다.그는 지금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겠다는 것인가??화가 난 강하영은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정유준을 향해 걸어갔다.“정말 너무한 거 아니에요?”정유준은 그윽한 눈을 치켜뜨고 말했다.“기분 나빠?”기분 나쁘냐고?!그는 어떻게 이렇게 뻔뻔할 수가 있을까?이렇게 감시당하면, 당신은 기분 좋겠어??강하영은 이를 악물었다.“저는 일할 수 없어요! 돌아가겠습니다!”정유준의 잘생긴 얼굴이 일그러졌다.“나 없는 데서 부 선생님과 언제 만날지 의논하려고?”강하영의 눈동자가 동그래졌다.“당신은 억지를 좀 부리지 않을 수 없나요?”정유준은 화내지 않고 오히려 웃었다. 요즘 이 여자는 그의 앞에서 자주 감정을 드러낸다.차가운 그녀의 얼굴을 보는 것보다는 지금 고양이처럼 파르르하는 것이 훨씬 재미있다.정유준은 책상 위의 서류를 강하영 앞으로 던졌다.“여기서 쓸데없는 말 할 시간에 하나라도 일을 더 하는 게 나을 거 같은데?”강하영의 분노는 그렇게 묵살되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서류를 주시하다가, 결국 화난 표정으로 서류를 집어 들고 옆으로 가서 일을 시작했다.…………오후 5시.양다인은 퇴근시간에 칼같이 정유준의 사무실로 달려왔다.강하영과 정유준의 사무실이 합쳐진 것을 본 그녀의 표정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정유준이 없는 것을 확인한 그녀는 강하영에게로 걸어갔다.“강하영! 수완이 정말 좋아!" 양다인이 비웃으며 말했다.강하영은 눈을 들어 차갑게 그녀를 바라보았다.“칭찬 고마워요.”양다인이 화를 내며 말했다
강하영이 냉소를 흘렸다. “그럼 제발 부탁인데, 양다인씨를 잘 좀 단속하세요. 걸핏하면 찾아와서 나한테 시비 걸지 못하도록!”말을 마친 강하영은 문을 박차고 나갔다.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린 채 사무실에 서 있었다.잠시 후, 정유준은 핸드폰을 꺼내 허시원에게 전화를 걸었다.“조사는 진전이 좀 있어?”“사장님, 부원장의 사망은 조사할 방법이 없지만, 우리는 당시 양다인씨를 가르쳤던 선생님을 찾았습니다. 그 선생님 말이 양다인씨는 왕따 때문에 심리적 어려움까지 겪었는데, 고아원에서 그 일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았다는군요.” 정유준의 눈썹이 일그러졌다.“그리고, 한 가지 더 있습니다.” 허시원이 계속 말했다.“말해.”“원장 말로는 당시 귓불에 붉은 반점이 있는 소녀를 아영이라고 불렀답니다. 양다인씨는 아마 입양된 후 이름을 바꾼 것으로 보입니다.”정유준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부모 쪽은 연락이 됐어?”“전에 이미 사람을 보내서 연락했었는데, 우리 사람이 다녀간 후 이사를 가버려서, 소식이 끊어졌습니다.”“계속 조사해!”똑똑똑-정유준의 말이 끝나자마자 입구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정 사장님! 정 사장님 빨리 디자인팀에 가보세요. 양 부팀장이 갑자기 쓰러졌어요.”…………퇴근시간이 되자, 강하영은 사무실에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 혼자 회사를 나갔다.이상하게 허시원도 회사 앞에 없었다. 강하영은 내심 기뻐하며 택시를 잡기 위해 길가로 나갔다. 어머니를 보러 병원에 갈 작정이었다.10여 분을 기다렸지만, 택시는 보이지 않았고, 람보르기니 한 대가 그녀 앞에 와서 멈춰 섰다.차창이 내려가고, 눈에 익은 준수한 얼굴이 드러났다.“강하영씨?”강하영은 깜짝 놀라며 재빨리 자신의 머릿속을 검색했다. 내가 아는 사람? “소……사장님?”소예준이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어디로 가십니까? 제가 태워드리겠습니다.”“아니에요. 택시 타면 됩니다.”강하영은 완곡하게 거절했다.“지금 퇴근 시간이라, 여기서 택시를
양운희의 목소리는 여기에서 끊어졌다.강하영은 입구에 멍하니 서 있었다. 어머니가 말한 아이는 누구지?자신일 리는 없다. 그녀가 어떻게 아버지와 피 한 방울 안 섞일 수 있겠는가?아버지는 요 몇 년 동안 성격이 많이 변하긴 했지만, 어렸을 때는 책임을 다하는 사람이었다.강하영은 머리를 흔들었다. 어떤 일들은 함부로 넘겨 짚어서는 안 된다.강하영은 문을 밀고 병실로 들어갔다. 분노로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른 채 침대에 앉아있는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엄마, 아빠랑 또 싸웠어요?”목소리를 들은 양운희는 당황한 표정으로 강하영을 바라보았다.“너는 오면 온다고 말을 하고 와야지!”강하영은 침대 옆에 앉아 잠시 침묵했다.“엄마, 피 한 방울 안 섞인 아이라니, 누구 이야기예요?”양운희가 눈길을 피하며 말했다.“아버지 친척집 아이야. 너하고 상관없어. 신경 쓰지 마.”강하영은 여전히 좀 이상하다고 느꼈다.하지만, 그녀도 더 어떻게 물어봐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녀는 사실 아버지 쪽 친척을 본 적이 몇 번 없다. 어머니 표현에 의하면, 그 사람들은 모두 한 성격하는 사람들이다.안 만날 수 있으면, 만나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강하영은 과일을 깎으며 말했다.“엄마, 몸도 안 좋은데,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마세요.”“나는 네 아버지가 계속 나쁜 짓을 하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어서…….”…………강하영이 병원에서 나왔을 때는 이미 저녁 9시가 넘어 있었다.강하영은 서둘러 택시를 잡아타고 난원으로 갔다.임신 때문인지 강하영은 차에 탄 지 얼마 되지 않아 까무룩 잠이 들었다.꿈속에서 강하영은 큰 집을 보았다.정원에는 많은 아이들이 뛰어다니며 놀고 있었고, 유독 머리를 땋은 한 소녀만 화단 옆에 외로이 앉아 있었다.그때, 포니테일 스타일로 머리를 묶은 한 소녀가 땋은 머리 소녀 앞으로 달려가 말했다.“너는 어떻게 매일 그렇게 보기 싫은 얼굴을 하고 있냐? 재수 없게!”땋은 머리 소녀가 불쾌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친구에게 말
“사장님?” 양운희는 경악했다.강하영이 대충 둘러댔다. “아버지 빚쟁이들이 자꾸 쫓아다니니까, 사람 좋은 우리 사장님이 경호원을 몇 명 붙여줬어요.”양운희는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그런 거면 다행이고. 앞으로는 전화 꺼놓지 마. 엄마가 너무 놀랐잖아?”강하영은 어머니를 달래는 몇 마디를 더 하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창가로 다가가 긴장한 표정으로 아래층을 바라보았다.10분도 안되어 검은색의 마이바흐가 정원으로 들어섰고, 차에서 내린 정유준이 어두운 표정을 한 채 별장으로 들어왔다.강하영은 피곤한 눈을 감았다 떴다. 그녀는 또다시 고된 전투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그녀는 몸을 돌려 떨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침실 문 앞으로 걸어갔다.그녀가 문 손잡이에 손을 댄 순간, 갑자기 방문이 열리며 쿵 하고 그녀에게 부딪혀왔다. 문이 그녀의 어깨를 쳤고, 강하영은 또렷한 둔통감을 느꼈다.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어깨를 움켜쥐고 눈살을 찌푸린 채 앞에 선 남자의 잘생긴 얼굴을 쳐다보았다. 어두운 표정의 그는 이마에 핏줄이 선명하게 드러나 있었다.그의 아름다운 눈썹에는 피로가 배어 있었고, 핏발이 서린 검은 눈동자에는 짙은 먹구름이 끼어 있었다.비록 약간의 거리를 사이에 두고 있었지만, 강하영은 그의 몸에서 뿜어 나오고 있는 강렬한 노기를 느낄 수 있었다.강하영은 그의 눈빛에 놀라 자기도 모르게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남자는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움켜쥐더니, 그녀를 벽에 세게 밀쳤다.“말해! 왜 핸드폰을 꺼놨어?”정유준은 이빨 사이로 차갑게 말을 밀어냈다.강하영은 어깨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을 참으며 고개를 들었다.“제가 말했잖아요. 핸드폰 배터리가 다 돼서…….”툭-반쯤 설명하고 있는데, 갑자기 얼굴에 차가운 사진 몇 장이 던져졌다.사진이 바닥으로 떨어졌기 때문에, 강하영도 덩달아 고개를 숙였다.눈에 익은 람보르기니와 차 밖에 서서 말하고 있는 그녀를 찍은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내가 없는 틈을 타 다른 남자와 놀
병원.정유준은 밤새 사무를 처리한 후에 양다인을 보러 왔다.양다인은 정유준을 보자마자 급히 병상에서 일어나 앉았다.“유준씨 왔어?”정유준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일어날 필요 없어. 누워 있어.”정유준이 그녀의 곁으로 오지 않는 것을 보고, 양다인의 표정에 옅은 실망이 스쳐 지나갔다.“괜찮아. 하룻밤 쉬었더니 많이 좋아졌어.” 양다인은 한숨을 쉬었다. “어제, 또 폐를 끼쳤어.”정유준은 눈살을 찌푸렸다.“앞으로는 강하영을 찾아가지 마. 그 여자 무슨 좋은 말을 하지 않을 거야. 너는 자신을 보호할 줄 알아야 해.”양다인은 수줍게 물었다.“네가 나를 아끼고 있다고 생각해도 돼?”정유준의 눈동자가 반쯤 가라앉았다.“피할 수 있는 일은 피하는 것이 좋아.”듣고 싶은 대답을 듣지 못한 양다인의 얼굴이 굳었다.그러나, 그녀는 곧 정유준의 잘생긴 얼굴에 피곤이 어려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유준씨, 어젯밤에 잘 쉬지 못했어?”양다인이 배려하며 물었다.정유준은 아무런 감정도 없이 대답했다. “응! 괜찮은 것 같으니까, 나는 그만 갈게.”양다인은 감히 그에게 더 있으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그녀는 항상 그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달갑진 않지만, 참을 수밖에 없다. “그래, 빨리 가서 쉬어.”정유준이 병실을 나서자 양다인의 표정이 싸늘해졌다.도대체 어떻게 해야 이 남자의 마음을 얻을 수 있는 걸까?그녀는 두 번이나 쓰러졌지만, 남자의 얼굴에 걱정하는 마음이 드러나는 것을 보지 못했다.그저 보통 친구들끼리의 배려와 보살핌이 있을 뿐이다.그녀가 한창 생각에 빠져 있는데, 핸드폰이 갑자기 울렸다.발신번호를 본 양다인의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졌다.그녀는 재빨리 이불을 젖히고 병실 입구로 달려갔다. 문을 열어 정유준이 이미 간 것을 확인한 양다인은 통화 버튼을 눌렀다.“다인아, 나 안 보고 싶었어?” 남자의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양다인은 이를 악물고 미소를 지으며 불평했다. “보고 싶었지. 하지만, 앞으로는
시현은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알았어, 알았어. 공주님 제발 살려주세요!!”세희는 그제야 흐뭇하게 손을 거두었다.“참, 지난번에 말한 그 사건 말이에요, 언제 해결하러 갈 거예요?”“시간이 좀 더 지나면.” 시현이 말했다. “네 몸은 아직 완전히 나아지지 않았으니까, 지금 계속 바쁘게 움직이면 안 돼. 만약에 저쪽에도 이런 악독한 귀신이 있다면, 너 또 상처를 입을지 몰라. 난 이미 죄책감 때문에 너와 결혼을 해서 평생 챙겨주고 싶으니까, 또 그런 일이 생긴다면, 나 정말 방법이 없어.”세희는 웃으며 말했다.“내가 언제 시현 오빠와 결혼한다고 했어요?”“쳇.” 시현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내가 뭐가 어때서? 나도 어깨가 넓고 근육이 있는 미남이라고! 인기가 얼마나 많은데.”세희는 말문이 막혔다.‘정말 뻔뻔하네. 아무렇지 않게 자신을 칭찬하다니.’세희는 숨을 돌리며 입을 열었다.“시현 오빠.”“응?”“내가 지금 귀신을 잡는 일을 종사하고 있잖아요. 그러니 난 사실 아주 좋은 신붓감은 아니에요. 눈치 없는 귀신들이 가끔 날 찾아와서 귀찮게 할 수도 있으니까요. 난 인우와 반대로, 팔자에 음기가 가득 찼거든요.”“그러면 어떻게 되는데?”“7월 중순이 되면 많은 귀신들이 날 찾아올 거예요. 그럼 난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심지어 다칠 수도 있거든요.”“그게 나랑 무슨 상관이야?”“만약 우리가 함께 한다면, 그 귀신들은 심지어 시현 오빠를 귀찮게 할 거예요.”“그래서, 이것 때문에 네가 최고의 신붓감이 아니란 거야?” 시현은 말을 마치고 웃으며 말했다. “이까짓 일로 내가 물러설 수 있을 것 같아? 세희야, 너도 날 너무 얕본 것 같아.”“그때 가면 나 때문에 모든 일이 잘 안 풀릴 텐데, 그게 두렵지도 않아요?” 세희는 시현에게 물었다.시현은 입술을 구부리고 웃었다.“넌 우빈이를 그렇게 좋아하는데, 우빈에게 영향을 미치는 건 하나도 두렵지 않은 거야? 세희야, 넌 날 뭘로 보고. 설령 그게 사실이라 하더라도, 난 두렵지
시현과 인우는 비록 귀신을 보지 못했지만, 지금 검은 연기가 자신의 앞에서 천천히 흩어지는 것을 똑똑히 보았다.인우는 세희를 바라보며 물었다.“누나, 지금 어떻게 된 일이에요?”세희는 몸을 돌려 말했다.“그 귀신은 환생하고 싶지 않아서 이미 죽었어.”“귀신이 죽었다고?” 시현이 물었다.“이 세상에서 사라졌다는 뜻이야?”세희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방을 바라보았다.“캐리 아저씨, 이제 그 여섯 명의 귀신을 좀 잡아주세요.”캐리는 고개를 끄덕였고, 불과 몇 분 만에 겁에 질린 그 귀신들을 세희의 앞으로 데려왔다.세희는 그들을 바라보며 물었다.“당신들은 그 처녀귀신과 같은 선택을 할 건가요? 아니면 나와 같이 서낭당에 갈 건가요?”“서낭당에 갈래요!”“우리는 그 여자의 협박을 받아서 여기에 갇힌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벌써 떠났을 텐데!”“죽어도 우리를 괴롭히려 하다니!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는데!”이 귀신들은 그 처녀귀신이 사라진 후, 불평하기 시작했다.세희는 그들의 원망을 듣고, 마음속에 분노가 치솟았다.“지금 그 처녀귀신을 비난할 면목이 있는 거예요?!”세희는 노발대발하며 말했다.“당신들을 죽인 것은 그 여자의 잘못일지라도. 당신들은 자신에게 그 어떤 책임도 없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만약 당신들이 그 여자를 괴롭히지 않았다면, 오늘처럼 귀신으로 되어 이곳에 갇히지 않았겠죠!”“풉.” 한 여자 귀신이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우리에게 책임이 있다고요? 그 여자는 늘 자신의 성적을 가지고 남을 비웃었어요. 그러지만 않았어도 우리에게 괴롭힘을 당하지 않았을 텐데.”세희는 이 말을 듣고 어이가 없었다.“남의 성적이 우수해서, 당신들은 또 그 사람을 따라잡을 수 없어서, 그걸 자랑이라고 생각했던 거예요? 정말 불쌍하네요! 이 세상에 당신들 같은 질투심이 강한 쓰레기가 없어서 정말 다행이에요! 안심해요, 당신들은 다음 생에도 이번 생에 지은 죗값을 치러야 하니까!”귀신들은 세희가 한 말에 화가 났지만, 캐리와 인우 때문에 화가
“말이 쉽지!” 처녀귀신은 화가 나서 말했다.“날 죽인 그 사람들은 비록 귀신이 되었지만, 나도 그들이 환생하지 못하게 붙잡아둬야 한단 말이에요!”세희는 눈살을 찌푸렸다.“그 여섯 명의 학생들이 당신을 죽인 사람이었어요?”“그렇지 않으면 내가 왜 그들을 죽였을 것 같아요??”“그 사람들 찾아 복수를 한 이상, 이제 그만 그들을 놓아줘요. 이렇게 자신을 괴롭혀가며 그들을 붙잡고 있을 필요가 더 있을까요?”“그럴 순 없어요! 이렇게 쉽게 환생을 하라고 하는 건 너무 말이 안 되니까!!”처녀귀신이 노발대발했다.세희는 웃었다.“당신은 집념이 너무 커서 줄곧 이곳에 갇혀 있는 거예요. 영원히 자신의 고통으로 자신을 괴롭히고 있잖아요. 만약 내려가서 벌을 받고 환생하여 다시 이 세상에 태어난다면, 이것 또한 자신의 과거를 내려놓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니겠어요?”“이렇게까지 날 가르칠 필요 없어요!”처녀귀신이 말했다.“오늘 당신들이 죽든지, 아니면 내가 죽든지, 둘 중 하나 선택하자고요!”말을 마치자, 처녀귀신은 세희를 향해 공격하려 했다.세희는 바로 인우를 부르려고 했고, 이때 갑자기 어두운 그림자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빠른 속도로 달려온 캐리는 즉시 그 처녀귀신을 먼 곳으로 밀어냈다.“좋은 말로 타일러도 듣지 않고, 심지어 세희에게 손을 대려고 하다니. 오늘 사라질 준비를 하는 게 좋겠어!”캐리는 차가운 목소리로 붉은 옷을 입은 처녀귀신에게 말했다.“그게 뭐가 무섭다고.” 처녀귀신이 소리를 질렀다. “나도 이젠 지긋지긋해요! 이 더없이 더러운 세상! 내 부모님은 내가 학교폭력을 당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들의 돈을 받고 바로 이 일이 없던 걸로 하자고 했어요. 내 오빠는 심지어 그들이 부자라는 것을 알고, 그들을 친구로 여겼고요! 환생할 게 뭐가 더 있겠어요? 환생해도 이렇게 더럽고 추악한 세상을 마주해야 하니까, 차라리 날 죽여요. 더 이상 이 징그러운 세상을 보고 싶지 않으니까!”처녀귀신의 말을 듣고, 캐리는 바로 손을 써서
세희가 이렇게 말하자, 세준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저녁 무렵, 인우는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세희가 이미 집에 있는 것을 보았고, 무척 흥분해하며 달려갔다.“누나, 돌아왔어요?” 인우는 싱글벙글 웃으며 입을 다물지 못했다.“어때요, 다 나은 거예요?”세희는 의미심장하게 인우를 보더니 웃으며 말했다.“인우야, 오늘 저녁에 나 좀 도와줘.”“그래요.” 인우는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학교에 가는 거 맞죠?”세희는 의아하게 인우를 바라보았다.“뭐야? 너 이제 무섭지도 않는 거야?”인우는 미소를 천천히 거두었다.“누나, 귀신은 무섭지만, 난 누나가 더 이상 그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아요. 그때 누나가 그렇게 고생하는 것을 보면서, 난 그날 정말 학교로 달려가서 그 귀신들을 죽이고 싶었어요. 그러나 시현 형이 누나의 생각을 존중해야 한다고 말했기 때문에, 억지로 참고 가지 않았던 거예요.”세희는 뿌듯해하며 인우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우리 인우 다 컸네. 누나를 걱정할 줄 다 알고.”인우는 세희의 손을 잡고 그녀의 손을 꼭 잡았다.“누나, 난 줄곧 누나를 걱정하고 있었어요. 다음에 이런 위험한 일을 하러 간다면, 꼭 나 데리고 가면 안 돼요? 난 누나를 지켜주고 싶어요.”“그래! 저녁에 우리 가족들 함께 밥을 먹은 후에 바로 출발하자!”“좋아요!”저녁에 하영과 유준 그리고 희민이 돌아왔다. 세희가 이미 퇴원한 것을 보고, 세 사람은 기뻐해하며 그녀를 에워싸고 수다를 떨었다.저녁을 먹은 다음, 하영은 세희를 데리고 위층에 가서 간단하게 몸을 씻어주고서야 세희를 보냈다.문을 나서자마자, 세희는 시현이 그의 포르쉐와 함께 집 앞 정원에 있는 것을 보았다.세희와 인우는 의아함을 느끼며 시현을 쳐다보았다.세희가 먼저 물었다.“여긴 어쩐 일이에요?”시현은 별장을 바라보았다.“세준이 마음이 놓이지 않아서 나한테 연락했지 뭐. 네 기사 되어 달라고.”“우리 집에 기사가 없는 것도 아닌데. 그러면 시현 오빠가 너
“그래, 우빈아, 넌 15년 동안 세희를 좋아했고, 또 세희를 위해 많은 것을 바쳤지. 하지만 그거 알아? 세희는 아주 이성적인 사람이야. 세희가 만약 무슨 일을 알고 싶다면, 바로 감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호흡이 흐트러진 우빈은 시현을 바라보며 다시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알아요.” 우빈이 대답했다.“세희는 그 누구보다도 감성적이고 또 이성적이죠.”“그럼 만약 세희가 정말 날 선택한다면, 넌 어쩔 계획이야?”“그런 건 없어요.”우빈은 솔직하게 말했다.“내가 말했잖아요, 난 세희의 모든 선택을 존중할 거라고. 마찬가지로 다른 걱정 할 필요 없어요. 세희에게 거절을 당했다고 복수를 할 정도는 아니니까요.”시현은 계속 물었다.“그러니까 내가 세희와 함께 하더라도 넌 세희와 계속 친구를 하겠다는 말이야?”우빈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나와 세희는 줄곧 친구였어요. 우리 두 사람이 사귀지 않아도, 앞으로 여전히 사이가 좋은 친구예요. 고 과장님, 세희를 좋아해도 되지만, 내가 세희와 계속 친구로 되는 것을 막을 순 없어요.”시현은 갑자기 웃었다.“그럼 됐어!”우빈은 시현의 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시현은 엘리베이터 앞으로 가서 버튼을 눌렀다.“난 내가 세희와 사귀면, 넌 불편해서 세희와 연락 끊을 줄 알았거든.”우빈은 말문이 막혔다.“사실 나도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있어. 이제 세희를 포기하자고. 넌 정말 세희가 필요한 것 같으니까...”말을 하다 시현은 우빈을 힐끗 바라보았다.“네 마음을 상하게 하는 말들은 하지 않겠어. 아무튼 후에 생각해 봤는데, 만약 널 향한 내 개인적인 생각 때문에 세희를 포기한다면, 그건 널 무시하는 것과 같잖아.”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시현은 안으로 들어갔고 우빈도 뒤를 따랐다.두 사람이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서자, 우빈은 잠시 침묵하다 입을 열었다.“그 결정은 틀리지 않았어요. 난 확실히 가족을 모두 잃었지만, 그래도 피와 살이 있는 사람이에요. 이 세상에 나 혼자만이 이런 상황이 아니잖아
시현은 말을 이어받으며 오른손을 들었다.“그때 내 오른손에 피가 가득 묻은 거 있지? 심지어 의사가 네 등의 썩은 살을 모두 베어낸 것을 직접 봤는데, 며칠째 잠을 못 잤어.”“에이, 그건 간단하죠!” 세희는 히죽거리며 말했다.“수면제 처방받으면 편안하게 잘 수 있지 않겠어요?”시현은 웃으며 침대 옆에 쪼그리고 앉았다.“세희야, 날 원망하고 싶지 않아?”“원망이요?” 세희는 시현의 뜻을 잘 몰랐다.“내가 왜요?”시현은 콧등을 긁적였다.“내가 널 데리고 그곳에 가지 않았다면, 너도 이렇게 다치지 않았을 거야.”세희는 눈을 부라리며 시현을 바라보았다.“그건 시현 오빠 탓이 아니에요. 그 귀신들이 겁도 없이 나한테 덤빈 것뿐이니까요. 다 회복되면 그 귀신들 전부 잡아버릴 거예요!”“또 그곳에 가려고?” 시현은 경악하며 물었다.“그럼요!” 세희는 손을 내밀었다.“일곱 명의 귀신을 전부 다 데려갈 수 있다면, 염라대왕님은 좋다고 박수를 치실지도 몰라요.”시현은 세희의 얼굴에 나타난 즐거운 미소를 애틋하게 바라보았다.“난 오히려 네가 날 욕하면서 분풀이를 했으면 좋겠는데. 이렇게 홀가분한 말투로 말하는 거 보니까 마음이 너무 아파.”“그럼 너무 재미없죠! 난 시현 오빠 돈 뜯어먹는 게 더 좋은 거 같은데? 내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 있으면, 날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오케이!” 시현은 시원스럽게 대답했다.“먹고 싶은 거 다 사줄게.”세희는 고개를 끄덕였다.“참, 세준 오빠가 그러던데, 미정 할머니를 찾아갔다면서요?”시현은 숨김없이 대답했다.“응, 가서 어떻게 해야 널 보호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여쭤봤어.”“하하하.” 세희는 갑자기 웃으며 말했다. “날 보호한다고요? 왜 그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리고 시현 오빠는 귀신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귀신과 싸우려는 거예요? 정의감과 용기로 귀신을 제압하려고요?”“내가 만약 내 정의감을 이용할 수 있다면, 이 세상엔 귀신이 없을 거야?”세희는 웃으며 말했다.“그냥
시현은 세준 그들에게 돌아가서 쉬라고 한 다음, 혼자 의자에 앉아 멀리서 세희를 바라보았다.그녀는 아주 평온하게 잠을 자고 있었고, 숨을 고르게 쉬고 있었다.이때 간호사가 걸어왔다. 시현은 그녀를 보며 얼른 일어나 물었다.“선생님.”간호사는 그를 쳐다보았다.“무슨 일이시죠?”“세희는 언제 중환자실에서 나올 수 있는 거죠?”“이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아마도 요 며칠 더 관찰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아가씨는 제가 본 여자아이들 중에서 가장 엄중한 상처를 입으신 환자라서요. 잘못하면 흉터가 남을 텐데... 어휴...”말이 끝나자, 간호사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시현은 그녀의 말을 듣고, 마음속으로 또 엄청난 죄책감을 느꼈다.‘이번 생은 철저히 세희에게 빚진 셈이네.’사흘 후, 세희는 중환자실에서 나왔고, 이 일을 알게 된 하영과 유준도 얼른 병원에 찾아왔다.세희가 침대에 엎드려 멍을 때리는 것을 보며, 두 사람은 가슴이 아팠다.하영은 허리를 굽혀 세희의 머리를 어루만졌다.“세희야, 미안해. 네 오빠들이 아침에 금방 이 일을 알려줘서, 엄마와 아빠도 이제야 달려온 거야.”세희는 고개를 저으며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괜찮아요, 엄마. 이거 봐요, 나 아직 멀쩡하잖아요?”하영은 눈시울이 붉어졌다.“걱정 마. 무슨 방법을 써서더라도 네 등의 흉터를 치료할 테니까.”“사실 난 이런 거 신경 안 써요. 등일 뿐이니, 평소에 남에게 보여주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나 자신도 볼 수 없으니까, 심리적인 스트레스도 없어요.”“네가 꾸미길 좋아한다는 거, 여기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걸?” 세준은 벽에 기대며 말했다.세희는 고개를 돌려 세준을 보려 했지만, 상처가 땅기는 바람에 아파서 이를 악물었다.세준은 마음이 아파서 눈살을 찌푸렸다.“좀 움직이지 마. 나도 안 비웃을게.”유준은 세준을 바라보았다.“세준아, 너희들은 외국에 아는 사람이 많으니까, 무슨 방법을 쓰더라도 좋은 성형과 의사를 찾아. 세희의 등에 절대로 흉터 남지 않게.”세준은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오자, 시현은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눈을 뜨고 창밖의 하늘을 바라보았다.‘난 세희가 하는 일에 아무런 도움도 주지 못하는데. 그럼 세희를 보호하려면 난 대체 무엇을 할 수 있지?’생각하다 시현은 핸드폰을 꺼내 세준에게 톡을 보냈다.[그 할머니 지금 어느 호텔에 계시는 거지?]얼마 지나지 않아, 세준은 시현에게 나미정이 지내고 있는 호텔 주소와 방번호를 보냈다.[고마워, 세준아.]세준은 이 문자를 보며 차갑게 웃었다.[세희의 일, 난 이대로 넘어가지 않을 거야.][날 때리고 싶든, 죽이고 싶든 네 마음대로 해. 다 내 잘못이니 나도 변명할 말이 없어.]이 문자를 보낸 후, 더 이상 답장이 들어오지 않았다.시현도 더 이상 아무것도 보내지 않고, 차에 시동을 걸어 호텔로 갔다.30분 후, 시현은 나미정이 있는 룸 앞에 도착했는데, 잠시 심사숙고한 다음, 손을 들어 문을 두드렸다.곧 안에서 나미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조금만 기다려.”문을 열자, 시현이 문밖에 서있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약간 의아해했다.“네가 바로 병원에 있었던 그 총각인가?”시현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할머니. 저와 잠깐 얘기를 좀 나누시면 안 될까요?”“그래.” 나미정은 몸을 비키며 말했다. “들어와서 말하자꾸나.”시현은 들어가서 소파에 앉았고, 나미정은 그의 옆에 있는 소파에 앉았다.“무슨 일로 날 찾는 거지?”시현은 긴장이 돼서 두 손을 비볐다.“할머니, 저도 솔직히 말씀드릴게요. 저처럼 평범한 사람은 대체 어떻게 해야 세희의 안전을 보호할 수 있을까요?”“평범한 사람이라...”나미정은 웃기 시작했다.“왜, 네가 보기에 우리와 같은 무당은 평범하지 않은 건가?”시현은 멈칫하더니 얼른 설명했다.“그런 뜻이 아니에요. 아무튼 저희보다 강하고 특수한 능력이 있으시잖아요.”“그것도 다 하늘이 내려준 신기일 뿐이지.”나미정이 말했다.“그러나 우리도 평범한 사람들이야. 밥을 먹어야 하고, 또 때가 되면 죽는 법이니
세희는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부적은 비록 뚜렷하지는 않지만, 그녀는 여전히 강렬한 양의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세희는 숨을 들이마신 다음 천천히 일어섰다. 그 순간, 옆에서 놀던 그 귀신들은 고개를 홱 돌리더니 모두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그들의 시선을 알아챈 세희도 눈을 돌려 귀신들을 보았다.‘또 이런 느낌이야! 이곳을 못 나가게 하는 그런 느낌!’세희는 밀려오는 공포를 참으며 용기를 내어 문 앞으로 걸어갔다.문과 가까워질수록 주위의 음기는 더욱 강렬해졌다. 심지어 세희는 자신의 영혼이 억압된 느낌을 받았다.“누나, 무서워하지 마요!!”“세희야! 용기를 내서 그곳에서 나와! 그 귀신들은 널 건드리지도, 널 다치게 하지도 못할 거야!”“누나! 나랑 형들이랑 그리고 고 과장님이 여기서 누나를 기다리고 있어요!”인우와 나미정의 목소리를 듣고, 세희는 눈물을 뚝뚝 흘렸다.그녀는 이를 악물며 가깝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다가갈 수 없는 문을 향해 계속 나아갔다.세희는 숨을 깊이 들이마셨고, 부적이 그려진 손을 들어 다시 시도했다.이번에 그 귀신들은 섬뜩하게 웃기 시작했다. 세희가 문손잡이에 손을 얹으려 하자, 그들은 재빨리 앞으로 돌진했다.이때, 매몰찬 음기가 덮쳐왔고, 세희는 부적이 있는 그 손을 들고 돌아섰다.그 귀신들은 하마터면 세희의 영혼과 닿을 뻔했다. 그러나 세희의 손에서 나는 강렬한 양기가 서려 있는 부적을 감지한 그들은 표정이 돌변했다.세희는 뒤로 물러섰고, 등이 문에 닿는 순간, 재빨리 몸을 돌려 문손잡이를 잡았다. 그리고 문을 연 후, 그녀는 즉시 뛰쳐나갔다.이때, 줄곧 병상에 누워있던 세희는 눈을 번쩍 뜨더니 숨을 들이마셨다.세희가 깨어나는 것을 보고, 인우는 감격에 겨워 소리쳤다.“누나! 왜 이제야 깨어난 거예요!!”그러나 세희는 그의 말을 듣지 못한 듯, 눈을 천천히 감았다.인우는 완전히 멍해지더니 당황해진 표정으로 나미정을 바라보았다.나미정은 아주 침착하게 대답했다.“별일 아니야, 피곤해서 그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