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시의 최고 재벌 강지혁의 약혼녀가 하루아침에 교통사고로 죽게 되면서 임유진은 음주운전 가해자라는 죄명을 안고 3년 형을 선고받는다. 지옥 같았던 3년간의 복역 생활을 어렵사리 버텨낸 그녀, 겨우 출소하여 자유를 찾는가 싶었는데 소문의 그 강지혁을 건드리게 됐을 줄이야? 남자의 정체를 알게 된 그녀는 그의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다. “강지혁, 제발 나 좀 놔줘.” 이에 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말아 올렸다. “난 누나 절대 안 놔줘.” 모두 말한다. 강지혁은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고. 하지만 그는 옥살이하고 나온 환경미화원을 위해 간이고 쓸개고 모두 빼줄 것처럼 사랑을 속삭였다. 하지만 교통사고가 나던 날의 진실이 밝혀지면서 둘의 사랑은 산산이 조각나 버린다. 그렇게 두 사람의 사랑은 그녀의 도망으로 그렇게 끝나는 듯했으나……. 몇 년 후의 어느 날, 남자가 그녀의 앞에 무릎 꿇고 애원했다. “유진, 너만 나한테 돌아온다면 나 뭐든 할게.” 그런 남자의 눈빛을 지그시 바라보던 여자의 입에서 이윽고 한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그러면 죽어.”
View More임유진은 딸의 옷매무새를 바로 해주며 웃었다.“현이랑 율이가 서로를 지켜주려 하는 모습은 아주 좋아. 현이가 엄마랑 지영이 이모를 엄청 많이 아끼고 좋아한다는 것도 아주 잘 알겠어. 하지만 두 사람 다 명심해. 싸우기만 해서는 결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어. 오히려 갈등을 더 키우고 작은 일도 크게 만들 뿐이지.”강선율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싸우는 것이 문제 해결의 좋은 수단이 아니라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듯했다.하지만 현이는 그런 율이와 달리 볼을 부풀리며 납득이 안 된다는 얼굴을 했다. 그녀의 세계에서는 말로 하는 것보다 주먹을 쓰는 게 훨씬 더 깔끔하고 쉬웠으니까. 게다가 아까 소안나를 제지할 때도 일전에 임유진과 했던 약속을 떠올리고 처음에는 말로 해결하려고 했다. 하지만 소안나는 말이 통하지 않는 아이였고 그렇게 결국 현이도 주먹을 쓸 수밖에 없었다.임유진은 아들과 딸의 전혀 다른 반응을 보고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현이는 똑똑한 아이지만 정의감이 넘쳐서인지 다른 건 다 하라는 대로 하는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타협이 없었다.“괜찮아. 지금은 모를 수 있어. 나중에 크면 현이도 차차 알게 될 거야.”임유진은 아이의 생각을 꺾으며 억지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아닌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세상에는 직접 경험해보고 나서야 알게 되는 것들도 있으니까....저녁 7시경.갑작스럽게 울린 초인종 소리와 함께 두 모녀가 강씨 저택에 찾아왔다.소민아는 거실에 들어선 후 소안나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며 강지혁의 앞으로 다가갔다. 그러고는 앞머리가 휑한 딸을 옆에 세우며 미안함 가득한 얼굴로 얘기했다.“밤늦게 죄송합니다. 이렇게 찾아온 건 현이한테 사과하고 싶어서예요.”“사과?”강지혁이 미간을 찌푸렸다.“아... 혹시 사모님한테서 오늘 일에 대해 전혀 전해 듣지 못하신 건가요?”소민아는 당황한 듯한 얼굴을 하며 조심스럽게 말을 내뱉기 시작했다.“그게 오늘 유치원에서 안나가 말을 잘못하는 바람에 현이가 우리 안나를
“기사? 소민아 씨는 평소 아이한테 그런 기사를 보여주나 봐요?”임유진이 눈썹을 꿈틀거렸다.“서, 설마 내가 보여줬겠어요? 아이가 휴대폰으로 이것저것 누르다 우연히 보게 된 거지?”소민아는 마른기침을 하며 슬며시 눈을 피했다.“그래요? 그렇다는 건 안나가 기사 내용을 완전히 다 이해한다는 말이 되는데 어디 아무 기사나 하나 안나한테 보여주고 내용이 뭔지 물어볼까요?”“영상으로 봤을 거예요. 요즘은 뉴스 영상도 첨부되잖아요!”소민아가 다급하게 말했다.“뉴스 영상?”임유진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그럼 그 ‘상간녀’라는 세글자가 나온 뉴스 영상을 나한테도 좀 보여줄래요?”임유진은 ‘상간녀’나 ‘세컨드’라는 단어는 기사의 댓글에만 존재하는 단어고 뉴스나 기사에는 전부 우회적인 표현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다.일전에 과격한 댓글로 한지영이 상처를 받을까 봐 강지혁에게 조치를 취해달라고 했을 때 관련 기사와 뉴스를 한번 쭉 훑은 적이 있었으니까.그리고 설령 자극적인 기사 제목만 쓰는 언론사가 생긴다고 해도 백연신이 손을 쓸 게 분명했기에 그런 단어를 언급하는 기사나 뉴스가 떠돌 리가 없다.소민아는 상황이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자 상당히 당황한 듯 입술을 꽉 깨물었다.“뭐... 뭐가 됐든 남의 머리카락을 이렇게 뜯어 놓으면 안 되죠. 애들 모발이 얼마나 약한데 이러다 평생 자라나지 않게 되면 그때는 어떻게 할 거예요? 이런 건...”“안나 머리카락은 의사한테 봐달라고 할 생각이에요.”임유진이 말을 끊었다.“그리고 진찰과 치료에 드는 돈은 모두 내가 대줄 생각이고요.”‘고작 그거로 될 것 같아?!’소민아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지금 이곳에는 평소 잘 보이려고 굽신거리던 선생님들이 가득 있었으니까.그래서 그녀는 고개를 살짝 치켜들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그전에 현이 보고 우리 안나한테 사과하라고 하세요.”“사과는 현이뿐만이 아니라 안나도 해야 해요.”“안나가 사과를 왜 해요?”소민아가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그도
강선율은 차가운 눈길로 소씨 모녀를 보며 태어나서 처음으로 자기가 한 선택을 후회했다.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애초에 여동생이 갖고 싶다는 말은 하는 게 아니었다.그리고 소민아는 율이가 소안나를 많이 좋아했다고는 하지만 율이는 한번도 그런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다. 예전에 소안나와 소민아가 길바닥에서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그저 가엽다는 마음만 들었을 뿐 소안나가 자기 동생이었으면 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그리고 지금은 소민아와 소안나가 이러는 게 불편하고 또 참을 수 없을 만큼 언짢았다.“그야 현이는 내 동생이니까.”율이의 단호한 한마디에 소안나는 얼굴이 화끈해졌다.‘그럼 나는... 나는 오빠 동생이 아니야? 나는 동생으로 인정 안 해주는 거야? 왜? 내가 아빠의 친딸이 아니라서?’이 순간 소안나는 소민아의 말이 정확하다고 생각했다. 임유진 때문에 엄마가 강지혁과 결혼을 못 하고 있다고, 그래서 자신 역시 강지혁의 진정한 딸이 될 수 없는 거라고 생각했다.소안나는 단 한 번도 양녀라는 말이 고까웠던 적이 없다. 어른들에게는 강씨 가문의 아가씨로, 그리고 유치원에서는 율이 동생이라고 불리는 것이 좋았다.하지만 강선현이 유치원으로 온 순간부터 저택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아가씨라고 부르며 예뻐하지 않았고 유치원 친구들은 율이 동생이라고 하면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시선을 돌려 현이만 바라보았다.어느 하루 선생님이 교실 문을 열고 강선율의 동생이 누구냐고 물었을 때도 강선율은 한 치의 고민도 없이 현이의 손을 잡고 일어났으며 소안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하지만 쟤네 엄마 친구는 상간녀야. 그리고 쟤네 엄마도 마찬가지고. 그러니까 쟤는 커서 꼭 똑같은 상간녀가 될 거야. 오빠는 자기 동생이 상간녀여도 괜찮아?”소안나가 씩씩거리며 외쳤다.그리고 아이의 말이 떨어짐과 동시에 분위기가 삽시간에 차갑게 얼어붙었다. 이제 고작 5살밖에 안 된 아이가 이런 말을 입에 올릴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으니까.“당장 그 말 취소해! 그리고 우리
“엄마, 너무 걱정하지 마요. 이번 일이 무사히 마무리되면 그때는 내가 보란 듯이 남자친구를 데리고 집으로 갈 거니까.”한지영은 배시시 웃으며 이해영의 근심을 덜어주었다.부모님에게는 이미 너무 많은 걱정을 끼쳤기에 그녀는 이제라도 마음을 다잡고 제대로 남자를 만나볼 생각이다. 결혼하는 것이 지금 그녀가 할 수 있는 최고의 효도라면 얼마든지 그렇게 할 생각이다....임유진은 느긋하게 앉아 서류를 정리하다가 유치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현이 어머니, 지금 바로 유치원으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다급해 보이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임유진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현이한테 무슨 일 생겼어요?”“그게... 현이가 안나랑 싸웠어요. 그런데 말싸움에서 그치지 않고...”통화내용은 이러했다. 현이와 소안나가 유치원에서 대판 싸웠고 몸싸움까지 번졌는데 그 과정에서 소안나에게 가벼운 상처가 생기고 머리 역시 현이 때문에 잔뜩 뽑혔다고 한다.그리고 뒤늦게 상황을 알아채고 달려온 선생님들은 두 아이 모두 강씨 집안의 아이들이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결국 이렇게 아이들의 엄마에게 전화를 건 것이라고 한다.임유진은 통화를 마친 후 곧바로 유치원으로 향했다.유치원에 도착하고 교무실 쪽으로 뛰어간 그녀는 채 도착하기도 전에 복도 전체를 울리는 소민아의 호통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너 대체 가정교육을 어떻게 받은 거야? 너희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어? 안나는 네 동생인데 대체 우리 안나 머리카락은 왜 뜯어? 너 일부러 그랬지? 어린 게 어쩜 이렇게 독해?”“소안나가 왜 내 동생이에요? 아니에요!”현이가 맞받아치며 외쳤다.“얘가 진짜! 안나도 회장님 딸인데 그럼 당연히 네 동생이지!”“아니에요! 나한테는 오빠밖에 없어요!”현이는 소민아에게 한마디도 지지 않았다.“너 그 말 너희 엄마가 가르쳐준 거지? 일부러 네 동생한테 모질게 굴라고 너희 엄마가 시켰지?! 대체 커서 뭐가 되려고 이렇게 못 된 짓만 하지?”소민아 역시 아이를 상대로 점점 더 목소리
사람들에게 요즘 제일 핫한 뉴스가 뭐냐고 물으면 아마 고민도 하지 않고 고씨 가문과 그 가문이 경영하고 있는 해진 그룹의 일이라고 얘기할 것이다.해진 그룹이 장기간 추진하고 있던 대규모의 부동산 프로젝트는 현재 중지된 상태고 백선 그룹은 얼마 전에 해진 그룹과의 협력을 완전히 중지하겠다고 선언했다. 정략결혼 얘기까지 나왔던 두 가문이라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또한 해진 그룹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가짜 장부와 비리들이 쏟아져 나왔다.앞으로 어떤 일이 더 생길지는 아직 모르지만 이것만으로도 해진 그룹 이미지는 이미 바닥을 친 거나 다름없다.심지어 오늘 아침에는 해진 그룹의 경제적 상황이 위태로워 제대로 돈을 갚지도 못하고 있다고 하며 3일 뒤까지 자금을 마련하지 않으면 그때는 회사 전체가 망하는 최악의 상황으로까지 치달을 수 있다고 했다.연이은 해진 그룹의 얘기에 한지영의 일은 어느 정도 열기가 식었고 치정으로 시작했던 흐름은 어느새 비즈니스상의 문제로 변해버렸다.[백씨 가문이랑 고씨 가문은 이제 완전히 척을 진 건가요?][자세하게는 몰라도 결혼은 물 건너갔겠죠.][설마 그 세컨드 때문에 고은채랑 관계를 끊은 건가?][그럴 리가 있겠어요? 누가 여자 하나 때문에 이런 소란을 일으켜요. 다 돈 때문이지. 내가 볼 때는 그냥 이해관계가 맞지 않아서인 것 같아요.][나도 여자 때문은 아니라고 봐요. 고씨 가문과 결혼을 맺으면 어마어마한 돈이 알아서 굴러올 텐데 고작 여자, 그것도 세컨드 하나 때문에 이런다는 게 말이 안 되죠. 백연신이 사랑에 미친 놈도 아니고. 내가 볼 때 백연신은 결혼에 매이지 않은 채로 고씨 가문을 먹고 싶었던 거라고 봐요. 비즈니스맨이잖아요, 백연신은.]‘비즈니스맨이라...’한지영은 복잡한 얼굴로 네티즌들의 댓글을 읽어내려갔다.‘며칠만 기다려달라는 게 고씨 가문의 일이 터지길 기다려달라는 뜻이었나? 하지만...’아무리 해진 그룹 일로 인터넷이 들끓고 있다고는 하나 그녀는 여전히 사람들에게 세컨드 또는 상간녀라고 불
하지만 이제는 그 확신이 점점 사라져갔다.“나를 허울뿐인 회장으로 내세우고 이익은 다 너희 쪽에서 챙길 생각에 기분이 좋았을 거야, 아마?”백연신은 입꼬리를 올리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하지만 그 웃음이 얼마나 섬뜩했던지 고은채는 몸이 다 움찔 떨렸다. 이렇게까지 누군가의 손아귀에 잡힌 것 같은 기분은 지금이 처음이었다.줄곧 자신이 모든 걸 틀어쥔 채 컨트롤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크나큰 오산이었다.만약 백연신이 지난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고씨 가문의 지시만 듣고 과하게 순정적이었으면 의심이라도 했을 것이다. 하지만 백연신은 그간 권세에 대한 욕망을 가감 없이 드러냈고 고씨 가문과의 사사로운 충돌에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으며 그녀와도 많은 갈등을 빚었다.그래서 고은채는 오히려 안심했고 오히려 그를 더 믿었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 보니 그건 모두 연기에 불과했고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었다.세상에 이보다 더 무서운 남자가 또 있을까?고은채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야 했다.하지만 막 두 걸음 정도 움직였을 때 갑자기 백연신이 다가와 앞을 막아섰다.“뭐 하는 거예요?”고은채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당분간 이곳에 있어 줘야겠어.”“날 감금이라도 할 생각이에요?”“감금이라니. 그저 여자친구가 내 집에 머물렀으면 남자친구의 소소한 바람일 뿐인데. 걱정하지 마. 오래 안 걸려. 며칠 뒤면 나가고 싶지 않다고 해도 보내줄 거야.”백연신의 말에 고은채는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며칠 뒤? 설마... 그간 뭘 준비라도 한 거야?’“난 이곳에 머물 생각 같은 거 없어요. 비켜요.”고은채는 단호하게 말하며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호원들이 다가와 그녀의 양팔을 잡으며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겼다.“방으로 데려가. 내가 내보내도 된다고 할 때까지 방 안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게 하지 마.”백연신이 차가운 목소리로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그 말에
“이렇게 될 줄 몰랐어? 인플루언서에 기자들, 그리고 댓글 알바까지 돈을 꽤 다양하게 뿌렸던데.”고은채는 이 말로 확신했다. 백연신이 알고 있다는 것을.“고은채, 나는 그저 네 장난질에 어울려 선택을 했을 뿐이야. 날 몰아세운 건 너라고.”고은채는 백연신의 말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앞에 있는 남자가 모든 걸 다 꿰뚫어 보고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다.그녀가 이번 일을 벌인 건 백연신을 시험해보고 싶어서다. 일부러 한지영을 궁지로 내몰고 그녀를 인터넷 한가운데 던져 뭇매를 맞게 한 다음 백연신이 어떻게 행동하는지 보고 싶었다.만약 백연신이 단호하게 한지영을 끊어내면 그때는 정말 마음 놓고 그와 결혼할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하지만 기대했던 그림과 달리 백연신은 한지영을 선택했다. 기자들 가득한 그곳에서 그는 한지영의 손을 잡는 선택을 했다.“그 선택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는 생각 안 해봤어요? 우리 가문과 척이라도 지고 싶은 거냐고요. 당신이 지금 그 자리에 있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많은 도움을 줬는지 벌써 잊은 건 아니죠?”고은채가 은근히 협박했다.하지만 그녀가 그러든 말든 백연신은 시선을 내린 채 손에 든 칵테일에만 집중했다. 그가 들고 있는 건 한지영이 제일 좋아하는 맛으로 그녀가 몇 번이나 만들어달라고 했던 칵테일이다.지난 5년간 백연신은 이 칵테일을 수도 없이 마셨고 마실 때마다 한지영에게 만들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이제는 훨씬 더 능숙한 솜씨로 만들어 줄 수 있게 됐으니까.“다시 한번 말하지만 상황을 이 지경까지 몰고 온 건 너야. 두 가문이 계속해서 원만한 관계를 이어나가길 바랐으면 내가 선택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지. 안 그래?”백연신이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내가 지금 이 자리에 이르기까지 누구 도움이 제일 컸는지 잘 알고 있어. 하지만 5년 전에 고씨 가문이 내게 무슨 짓을 했는지 역시 한번도 잊은 적이 없어.”고은채는 그 말에 몸을 움찔 떨며 아주 잠깐 당황한 기색을 내비쳤다. 하지만 이내 그럴 리가 없
한지영은 임유진의 말에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임유진은 항상 이랬다. 백연신을 만나러 갔다가 목숨이 간신히 달린 상태로 돌아왔을 때도 임유진은 자신의 모든 것을 내걸어서라도 도움을 주려고 했었다.“응, 고마워. 네가 내 친구라서 정말 다행이야.”...고은채는 차가운 얼굴로 영상을 바라보았다. 내용은 다름 아닌 백연신이 기자들 다 있는 곳에서 한지영의 손을 잡고 차에 올라타는 장면이었다.1분도 채 안 되는 영상이었지만 그녀는 벌써 해당 영상을 스무 번이나 넘게 보고 있었다. 그리고 보면 볼수록 그녀의 얼굴은 차갑다 못해 이제는 무섭게 굳어지기까지 했다.백연신과 한지영의 영상이 인터넷에 올라온 후 고은채의 부모님은 그녀에게 곧바로 전화를 걸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고 고은채는 이에 백연신과 얘기를 해볼 테니 기다려보라며 짜증을 냈다.하지만 아무리 전화를 걸어봐도 백연신은 전화를 받지 않았고 백연신의 부하직원에게 전화를 걸어도 말을 돌리며 우물쭈물하기만 할 뿐 백연신이 어디에 있는지는 끝까지 함구했다.결국 고은채는 이를 꽉 깨물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백연신의 별장으로 향했다.별장 대문 앞에 다다르고 당연하게 안으로 들어가려 하는데 경호원이 갑자기 그녀의 앞을 막아섰다.“내가 누군지 몰라?”고은채가 사납게 쳐다보며 물었다.“회장님께서 본인을 제외한 그 누구도 별장에 들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경호원은 무표정한 얼굴로 백연신에게서 지시받은 내용을 전했다.“그럼 그 잘난 회장님께 전해. 지금 나 안 들여보내면 당신이 아껴마지않는 그 여자를 두 번 다시 보지 못하게 처리해버리겠다고!”고은채의 강경한 말투에 경호원은 어쩔 수 없이 별장 내부로 전화를 걸었고 1분 정도 흐른 후 별장 대문이 스르르 열렸다.고은채는 한지영의 이름을 대고서야 안으로 들어갈 수 있게 됐다는 게 상당히 자존심이 상했는지 바득바득 소리가 나도록 이를 갈았다.곧 터질듯한 분노를 끌어안고 별장 내부로 들어가자 백연신이 거실 소파에 앉아 느긋하게 칵테일을 마시고 있
지금 이 감정이 질투라는 못난 감정이라는 걸 알면서도 참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녀가 화를 낼 걸 알면서도 그런 말을 입 밖으로 내뱉었다.‘고은채, 이런 식으로 날 시험하겠다 이거지? 네가 이렇게 나오면 나도 이제는 못 참아.’사실 계획을 실행하기까지 아직 시간이 조금 더 필요했지만 한지영이 불필요한 욕을 먹고 질책을 받게 된 이상 백연신도 이판사판이었다.더 이상 한지영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다....임유진이 한지영 사태에 대해 알게 된 건 늦은 저녁 시간이었다. 그것도 강지혁이 먼저 얘기를 꺼내고 나서야 허겁지겁 기사를 검색해보았다.“백연신은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지금 이 타이밍에 나서면 지영이만 더 곤란해지잖아!”임유진이 마음에 안 든다는 얼굴로 말했다.“백연신은 충동적인 인간이 아니야. 오늘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한지영을 데리고 간 걸 보면 뭔가 생각이 있겠지. 가령 모든 준비를 다 마쳤다던가.”강지혁의 의미심장한 말에 임유진이 고개를 갸웃했다.“그게 무슨 뜻이야?”“만약 여전히 한지영을 좋아하고 있는 거라면 백연신이 그때 헤어지자고 했던 건 단순히 고씨 집안의 힘이 필요해서라는 뜻이 되겠지. 실제로 그 덕에 줄곧 걸리적거렸던 배다른 형제들을 치워버리기도 했고. 그런데 백연신 같은 남자가 앞으로도 계속 고씨 가문이 원하는 대로 어울려줄 것 같아?”“설마... 고씨 가문이랑 척이라도 지려는 거라고?”“고씨 집안 딸과의 결혼 얘기가 나왔을 때 흐름대로라면 백연신은 한지영과의 모든 관계를 싹 다 끊었어야 했어. 그런데 지금은 엮이다 못해 아예 함께 사라지기까지 했지. 머리에 총이라도 맞은 게 아니라면 백연신도 다 생각이 있어 이러는 걸 거야. 나는 백연신과 고씨 가문 사이의 협력이 깨지는 날이 머지않았다고 봐.”강지혁이 차분하게 분석했다.임유진은 생각지도 못한 얘기에 머리가 멍해졌다. 이러한 반전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으니까.“그럼 지영이는 어떻게 되는 건데?”임유진이 물었다.“백연신이 알아서 지켜줄 거야. 내 추측
“피고 임유진, 음주 운전으로 피해자 진애령을 사망에 이르게 하였으므로 징역 3년에 처한다!”“유진아, 미안한데, 그 일 때문에 우리 부모님이 널 반대하셔. 탓하고 싶으면 그 사고를 저지른 널 탓해. 그러게 왜 하필이면 진애령을 쳐 죽이냐고.”“진애령은 진화 그룹 큰딸이자 강지혁의 약혼녀였어. 너 강지혁 몰라? S시에 있는 그 누구도 감히 그를 건드릴 수 없어. 그런데 왜 하필이면……, 우리 그만하자. 우리 집안까지 화를 입게 할 수는 없어.”“임유진 씨, 죄송하지만 당신은 이미 변호사 자격을 박탈당했으므로 아무리 좋은 경력을 갖고 있더라도 채용할 수가 없습니다. 게다가 그 사건과 연루된 지라, 자격증이 있다고 할지라도…… 어려울 겁니다. 죄송합니다.”“네가 무슨 낯짝으로 집에 기어들어 와? 그 일로 우리 집안이 얼마나 곤욕을 치렀는지 알기나 해? 네 동생은 여주인공으로 데뷔할 수 있었는데, 너 하나 때문에 무산됐다고! 넌 네 여동생의 앞길을 망쳤어. 당장 이 집에서 나가! 난 너 같은 범죄자를 딸로 둔 적 없어!”……유진은 꽁꽁 얼어붙은 손을 비볐다.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은 1월의 밤이었다.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그녀의 살과 뼈를 파고들었다.노란 형광색의 환경미화원 복장을 입고 있는 유진의 청초한 얼굴은 찬바람을 맞아 어느새 붉게 물들었다. 예쁘고 맑은 두 눈 아래에 오뚝한 코와 빨간 입술, 긴 머리를 대충 질끈 묶어 올린 그녀의 모습은 온갖 풍파를 겪은 여성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그녀의 얼굴만 보면 아마 갓 대학을 졸업한 사회 초년생 정도로 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는 젊음의 활기 대신 사회의 모든 풍파를 겪은 듯한 체념과 무기력함이 담겨 있었다.유진은 3년의 옥살이로 거칠거칠해진 자기 손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본래 새하얗고 보드라웠던 그녀의 손은 온데간데없었다.손에 감각이 돌아온 그녀는 계속해서 빗자루를 들고 길을 쓸다가 돌연 그녀의 시선은 길 건너편의 검은 실루엣에 멈췄다.이른 아침, 그녀가 이 거리를 청소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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