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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임유라의 낯빛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그리고 옆에서 듣고 있던 임정호는 망설임도 없이 임유진의 뺨을 때렸다.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니? 네가 사고로 사람을 죽여 감옥에 간 거로 우리 집 체면이 얼마나 깎였는지 알아? 네 인생 망쳤다고 동생 앞날도 망칠 셈이야?”

임정호의 눈에는 유진에 대한 원망이 가득 담겨있었다. 그가 유진 덕에 서씨 집안과 인연을 맺게 되었을 때 친구들과 친척들 사이에서 많은 부러움과 질투를 샀지만, 그 일이 있고 나서 그 부러움은 모두 비아냥으로 변했고 우쭐대던 그도 체면이 완전히 깎여버렸다.

유진의 한쪽 뺨은 이미 붉게 부어올랐지만, 눈빛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차분했다.

“어머니 제사 때문에 왔는데, 보아하니 이곳에서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앞으로 이 집에 다시는 발 들일 일 없을 겁니다.”

말을 마친 유진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집을 나섰다.

이 ‘집’에는 이제 그녀의 자리가 없었다.

……

유진이 다시 자취방으로 돌아왔을 때, 방 안은 캄캄했다. 불을 켠 뒤 그녀를 맞이하는 건 그저 쓸쓸한 적막감뿐이었다.

5평 남짓한 방은 아무도 없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었다.

‘혁이 씨는 간 건가? 결국 또 혼자구나.’

유진은 문득 공허함을 느꼈다.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문을 닫으려고 몸을 살짝 돌렸을 때, 자신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그림자에 멍해졌다.

‘혁이 씨잖아!’

그는 여전히 어제와 똑같은 남루한 옷차림으로 봉투 하나를 들고 있었다. 두꺼운 앞머리가 얼굴을 반 정도 가려 얼굴조차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유진은 그 앞머리에 가려진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알고 있다.

‘이런 사람이…… 정말 노숙자라고?’

그녀는 아무런 친분도 없고 어떤 사람인지조차 모르는 그를 받아들인 것이 얼마나 충동적이고 위험한 일인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한 충동을 억누를 수 없었다.

어쩌면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는 인간의 본능이었을지도 모른다.

“나 왔어요.”

차갑고 무심한 목소리였지만 그녀에겐 그저 듣기 좋은 빗소리와 같았다.

유진은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목이 메어왔다.

“난…… 혁이 씨가 안 오는 줄 알았어요.”

“뭐 좀 사 오느라 늦었어요.”

자기를 빤히 바라보는 남자를 한참 동안 보던 유진은 얼른 몸을 틀어 그를 집안으로 끌어당겨 문을 닫았다. 그리고 진혁이 들고 있던 봉투 속에 하얀 찐빵 두 개가 들어 있는 것을 봤다.

그 순간 유진은 아까 전의 긴장이 모두 사라지는 것만 같아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

“나중에 같이 먹어요. 하지만 그 전에…… 어머니 제사를 치르고 싶어요. 오늘이 우리 엄마 기일이거든요.”

유진은 말과 함께 가방에서 낮에 사 온 양초와 향을 꺼내 어머니의 영정 사진 앞에 놓았다.

액자 속 흑백 사진엔 유진 어머니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많아도 30살밖에 되어 보이지 않은 어머니는 보는 사람이 마음 아플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유진은 막걸리를 두 번 돌리더니 어머니의 사진 앞에서 두 번 절했다.

“엄마, 나 이제 새롭게 살기 시작했어. 난 잘살고 있으니까 걱정 마. 이제 직업도 가졌고, 돈도 많이 모아놨어. 그러니까 마음 놓고 엄마 딸 얼마나 잘 사는지 지켜봐 줘…….”

강지혁은 옆에 서서 유진이 씩씩하게 말을 마치는 것을 보고 있었지만, 그녀의 두 눈엔 어느새 눈물이 고여 있었다. 앞에서 일렁이는 촛불이 그녀의 얼굴을 비추다 말다 반복했다.

긴 아치형 눈썹에서 오뚝한 코, 적당히 도톰한 빨간 입술의 그녀는 아름다웠지만, 지혁의 눈엔 그저 평범한 여자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여태 많은 미인을 봐 왔고, 그의 전 약혼녀인 진세연만 해도 S시에서 손에 꼽히는 미인이었기 때문이다.

이미 그녀에 대한 자료를 훑어본 그는 오늘이 유진의 어머니 기일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건 그렇고, 얼마 전에 출소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면서 잘살고 있다고?’

“그리고 지금은 나랑 같이 살고 있는 사람도 있어.”

생각에 잠겨 있던 지혁의 귀에 유진의 목소리가 또다시 들려왔다.

그녀는 부드러운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돌려 지혁을 바라보았고, 촛불 빛의 일렁임 아래 덤덤했지만, 그녀의 눈은 행복해 보였다. 마치 그라는 존재가 그녀에게 행복을 주고 있다는 듯이.

그리고 유진은 고개를 돌려 또다시 사진 속 어머니를 바라봤다.

“그러니까 걱정하지 마.”

말을 마친 그녀는 막걸리를 모아두고 다른 반찬에 수저를 놔둔 후, 액자 속 사진을 멍하니 바라봤다.

그러기를 반복하던 유진은 옆에 켜 놓았던 촛불을 끄고 지혁에게 말했다.

“됐어요. 얼른 치울 테니까 같이 저녁 먹어요.”

“네.”

그녀의 동작은 어찌나 빠른지 눈 깜짝할 새에 정리를 끝내고 제사상에 올라온 반찬들로 비빔밥을 만들고 소고기뭇국을 꺼내 왔다.

그렇게 두 사람은 찐빵에 비빔밥과 국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참, 혁이 씨는 예전에 무슨 일 했어요?”

밥을 먹던 유진은 갑자기 생각났는지 고개를 들어 지혁을 바라봤다.

“이것저것 다 했어요. 일이 있으면 하고 없으면 아무 데나 가서 쉬고.”

‘쉰다고? 어제처럼 길바닥에서 꼼짝도 안 한다는 건가? 혁이 씨도 참 힘들었겠네. 그게 아니라면 한겨울 밤에 거리를 나돌 필요도 없잖아.’

“혹시 나이는 어떻게 돼요?”

유진이 다시 물었다.

“27살이에요.”

“어? 우리 동갑이네요?”

지혁의 대답에 유진은 놀란 표정이었다.

“몇 월생이에요?”

“11월이요.”

“그럼 우리 말 놓을까요? 난 7월에 태어났으니까 누나라고 불러. 너나 나나 가족이 없는 건 마찬가지니까, 누나 동생 사이로 지내는 거지.”

“누나?”

지혁은 피식 웃었다.

‘누나라고 부르라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너무 겁이 없는 거 아니야? 내가 누군지 알면 이런 말이 나오지 않을 텐데. 뭐, 모르니까 재밌는 거지.’

“싫어?”

반응이 없는 지혁을 보자 유진의 눈빛은 이내 어두워졌다.

어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유진은 고작 3살이었다. 그녀는 집안 친척들에게 어머니가 유산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을 우연히 들었다. 그 아이는 6개월이 된 남자아이였지만, 안타깝게도 10분도 살지 못하고 어머니와 함께 하늘나라로 갔다. 만약 그 아이가 살아있었다면 자신의 남동생이었을 거고, 지금처럼 홀로 외로이 지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정말 내 누나가 되고 싶은 거야?”

진혁이 침묵을 깨고 말했다.

유진은 고개를 들어 앞머리에 가려진 그의 눈과 마주쳤다. 그 눈은 맑았지만 안개가 낀 듯 속을 알 수 없었다.

“응.”

“난 집도 없고, 직장도 없어. 기본적인 생활도 못 하는데 왜 내 누나가 되고 싶은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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