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야…….”임유진은 손에 들고 있던 한 입 남은 찐빵을 한입에 털어 넣었다. 맛은 생각보다 별로였다. 예전 같았으면 맛없다고 투정 부렸을 테지만, 지금 그녀에게 맛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배를 채우면 되는 거였다.“우리는 많이 닮았으니까? 이 사회로부터 버림받고 발버둥 치고 있는 사람이잖아. 어쩌면 그 누구도 우리를 원하지 않을 거고, 관심을 주지 않을 테지만, 적어도 우리는 서로에게 힘이 될 수 있지 않을까?”말을 마친 그녀는 강지혁을 향해 살짝 미소 지었다. 희망과 기대 속에 김장감도 섞여 있었다.“그런가? 하긴, 우리가 비슷한 부류긴 하지…….”진혁은 나지막이 중얼거렸지만, 그의 눈은 마치 덫에 걸린 동물을 바라보는 것 같았다.진혁에게는 하루하루가 지루했다. 원하는 게 있으면 뭐든 가질 수 있는 그에게 삶은 아무런 재미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유진의 말은 꽤 흥미로운 게임으로 다가왔다.“누나.”그는 유진이 그토록 바라던 단어를 입 밖으로 꺼냈다.순간, 유진의 미소는 봄에 핀 꽃들처럼 화사하게 피어났다.……저녁을 먹고 난 뒤, 유진은 지혁을 데리고 야시장으로 가, 그가 입을 옷을 샀다. 분명 세일하는 싼 옷을 골랐지만 금액은 10만원을 훌쩍 넘었다.하지만 유진은 뿌듯한 마음으로 지혁에게 새 패딩을 입혀줬다.“따뜻하지?”“응.”지혁은 담담하게 대답하며 자신과 머리 하나 정도 차이가 나는 아담한 유진을 바라봤다.“사실 안 사줘도 돼. 원래 있던 옷으로도 충분해.”“충분해도 새 옷을 입을 순 있잖아. 물론 돈이 없어서 많이는 못 사주지만, 적어도 너한테 옷 한 벌 정도는 사줄 수 있거든?”“왜 나한테 이렇게 잘해줘?”진혁은 나지막이 물었다.“그야 내가 네 누나니까.”유진은 싱긋 웃으며 지혁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 우연히 닿은 차가운 그의 손에 유진은 양손으로 감싸 입김을 불어주며 이리저리 비벼댔다.“손이 너무 차가운데? 이렇게 문지르다 보면 좀 따뜻해질 거야.”스스럼없는 여자의 행동에 지혁은 약간 굳어버렸고
“그딴 영광 필요 없어.”임유진의 말에 하 감독은 술기운을 빌려 그녀에게 달려들어 뺨을 갈겼다.“내가 마시라면 마실 것이지 무슨 말이 그렇게 많아? 아무것도 아닌 주제에 비싼 척은!”이윽고 욕설을 퍼붓더니 옆에 놓인 와인병을 들어 유진의 입에 마구 부어 넣었다.유진은 상대방을 밀쳐내려고 애썼지만, 여자 혼자서 건장한 남자를 힘으로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게다가 임유라까지 옆에서 그를 돕고 있었으니.하 감독은 유라의 눈치 있는 행동에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유라 씨, 가만 보면 참 기특하다니까. 내가 유라 씨 분량 꼭 늘려준다. 총감독님한테는 내가 말 잘해볼게.”그 말에 임유라는 더 신이 나서 열심히 옆에서 도왔다.“하 감독님, 감사합니다. 저희 언니가 이런 데 좀 서툴러서 그러니 감독님이 이해해주세요.”한편, 유진은 자기가 술을 얼마나 많이 마셨는지도 몰랐다. 주량이 약하다 못해 거의 알코올 쓰레기라고도 불리었기에 벌써 술에 취해 정신이 온전치 못했다. 하지만 의식이 꺼지지 않도록 본인을 통제하려고 노력했다.“나…… 나 집에 갈래…….”“그래, 이따가 데려다줄게.”하 감독은 술에 취해 나른해진 그녀를 얼른 끌어안았다.유진은 화려한 미녀는 아니지만 일전에 소민준의 여자친구였다는 것만 생각하면 하 감독은 흥분을 감출 수 없었다.하지만 그때, 하 감독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솔직히 전화를 무시하려고도 했지만, 액정에 뜬 총감독의 이름을 보는 순간 그는 본능적으로 수신 버튼을 누르고 말았다.총감독은 그의 큰 형인 데다 그가 감독의 자리를 꿰찬 것도 총감독인 형이 힘을 실어준 덕분이었다.하지만 그가 전화를 받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이 창백해지더니 급기야 호흡마저 가빠졌다.“그…… 그럴 리가 없어. 이, 이 여자…… 이 여자는 환경미화원인 데다 백도 없다고. 전 남자친구인 소민준과도 헤어진 지가 언젠데, 게다가 지금 소민준은 약혼녀까지 있잖아.”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자기 여자친구가 환경미화원으로 길바닥 청소나 하는
“아니.”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지만 강지혁의 뇌리에는 어제의 일이 갑자기 들이닥쳤다. 임유진을 침대에 눕힐 때, 유진이 갑자기 자기를 깔아 눕히던 기억.그 순간만 떠올리면 놀랍기만 하다. 자기가 방심했다는 것에 대한 놀라움. 만약 상대가 지혁의 목숨을 노렸다면 아마 반항도 못 하고 바로 죽었을 거다.언제나 경계심이 많던 지혁이었기에 자신의 경계가 허물어졌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하지만 그때, 그가 다시 몸을 일으키기도 전에 유진은 두 손으로 그의 얼굴에 손을 갖다 대고 눈을 덮고 있던 앞머리를 들어 올리고는 두 눈을 소중하다는 듯 어루만졌다.“혁아, 너 눈 진짜 예뻐…… 마음에 들어…… 좋아…….”나지막한 중얼거림이 잇따라 귓가에 들려왔다.“좋다고?”이 단어는 그가 살아오면서 수도 없이 들었던 단어라 낯설지 않았다. 여자들은 다 지혁에게 좋아한다 눈이 마음에 든다 등과 같은 말을 해왔었으니까.지혁의 두 눈은 아마 유일하게 어머니를 닮은 부분일 거다.그리고 지혁이 어렸을 때, 지혁의 아버지는 매번 지혁의 눈을 멍하니 바라보며 조용히 읊조리곤 했다.“이런 눈은 다정해 보이지만 제일 매정해. 혁이 넌 앞으로 다정할지 매정할지 모르겠네.” 하고 말이다.생각에 잠겨있던 그때, 유진의 대답이 들려왔다.“응…… 왜냐하면…… 딸꾹…… 아주 맑고 깨끗해.”‘깨끗하다고?’지혁은 피식 웃었다. 지혁의 눈이 깨끗하다고 말해준 사람은 유진이 처음이다.“마치…… 죄악에 물들지 않은 것처럼…… 엄청 깨끗해.”유진은 술에 취한 모습으로 자기의 얼굴을 지혁의 얼굴에 바싹 붙인 채로 읊조렸다.“혁아, 무서워하지 마…… 내가…… 너 보호해 줄게…….”그리고 말을 채 끝마치지도 않고 지혁의 가슴에 엎드려 잠들어 버렸다.‘날 보호한다고? 자기도 보호하지 못하면서 누가 누굴 보호한다고 그래? 진짜 바본가?’“아무 짓도 안 했어. 그냥 고꾸라져 자던데?”지혁은 어제의 기억을 접어두고 아무렇지 않은 듯 대답했다.그리고 그 말을 들은 유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
저녁 9시가 넘도록 강지혁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임유진은 그가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고 마음 졸였지만, 하필이면 지혁한테 핸드폰도 없는지라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방법이 없었다.이윽고 아예 집을 나와 동네를 둘러보며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유진은 그 어느 때보다 지혁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도했다.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먼발치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본 유진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혁아!”지혁은 멀리에서부터 달려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순간 멍해졌다.그리고 유진이 앞에 도착했을 때에야 지혁은 유진이 숨을 헐떡이는 건 물론 얼굴도 얼어 벌겋게 물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유진의 눈은 오히려 예쁘게 반짝거렸다.“돌아와서 다행이다.”“혹시…… 나 기다렸어?”지혁은 조심스럽게 물으며 손을 들어 유진의 얼굴을 쓱 문질렀다.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운 냉기로 보아 유진이 밖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지 짐작이 갔다.“응.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했어.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유진은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그런 유진의 눈에서 지혁은 유진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혁이지 GH 그룹 대표 강지혁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의 신분이 밝혀져도 유진이 자기를 이렇게 걱정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전단지를 돌리는 게 생각보다 늦게 끝났어. 손 차갑지?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이윽고 싱긋 웃더니 유진의 두 손을 잡은 채로 지난번 유진이 했던 대로 유진의 손을 살살 비벼주기 시작했다.점점 따뜻해지는 손에 유진의 마음에도 점차 온기가 차올랐다. 분명 추운 날씨임에도 유진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네가 있어서 참 좋아.”지혁은 유진의 말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그 말 꼭 기억해. 앞으로 절대 후회하면 안 돼.”“당연하지. 절대 후회하지 않아. 이제 됐어, 나 이제 따뜻하니까 얼른 집에 돌아가자. 저녁 다시 데워줄게.”당연하다는 듯 대꾸한
“대표님, 저택으로 돌아가실 겁니까? 아니면…….”“서흥구로 가.”병원에서 나오기 바쁘게 물어 오는 고이준의 물음에 강지혁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서흥구는 바로 임유진이 살고 있는 동네다. 이준도 자기의 상사가 그 자그마한 단칸방에 얼마나 더 머물 예정인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서흥구로 향하던 중, 신호등이 바뀌는 찰나 이준은 갑자기 지혁을 불렀다.“대표님, 저기 임유진 씨가 있습니다.”아니나 다를까 지혁이 고개를 돌려 봤을 때, 맞은편 거리에서 바닥을 쓸고 있는 가느다란 그림자 보였다.형광색 작업복에 질끈 묶어맨 머리를 한 채 추위에 오돌오돌 떠는 유진의 입에서는 숨을 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흘러나왔다.그리고 그때, 스쿠터 한 대가 적색 신호등에 걸리지 않기 위해 쏜살같이 유진의 곁을 지나면서 유진의 다리를 스치고 가는 바람에 유진은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하지만 스쿠터 주인은 잠시 멈칫하지도 않은 채 그대로 쌩 지나가 버렸다.지혁과 이준 역시 그 모습을 보고 말았다.“대표님, 저 차주에 대해 조사하고 책임을 물을까요?”이준은 자기의 상사가 유진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는 데다 지난번 클럽에서도 유진을 위해 나섰기에 이번 일도 당연히 나설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길 건너편에 넘어진 유진을 보는 순간 지혁의 뇌리에는 할아버지의 말이 스쳐 지나갔다.“오늘 네가 한 말 꼭 기억해 두거라 영원히. 네 아비처럼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그래, 난 절대 아버지처럼 여자 때문에 인생 망치는 짓 안 해. 이건 그저 게임일 뿐이야.’게다가 지혁은 지금 평소의 자신이 아니기에 유진이라는 환경미화원에게 신경 쓸 이유가 없었다.“참견하지 마.”지혁은 눈빛을 거두며 담담하게 명령했다.하지만 그 명령을 받은 이준은 어안이 벙벙해졌다.‘설마 내가 잘못 짚은 건가? 대표님이 유진 씨한테 마음이 없나?’전방의 적색 신호등은 어느새 녹색으로 변해 차들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그리고 그 시각, 서미옥이 넘어진 유진을 일으켜 세웠다.“유진 씨, 어때?
“네가 범죄를 저지르지만 않는다면 실망할 일은 없을걸?”임유진은 이 말만 남기고 다시 양말을 신고는 식탁 쪽으로 걸어갔다.그런 유진의 뒷모습을 보고 있던 강지혁은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그러면 나중에 절대 실망하면 안 돼.”--클럽에서의 일이 있고 난 뒤 임유라는 매일매일을 불안에 시달렸다. 그날의 하 감독의 태도는 이상하다 못해 지금까지도 이해되지 않았으니까. 더욱이 그다음 날 하 감독은 촬영장에 나타나지 않았고 며칠 지나지 않아 총감독마저 다른 사람으로 교체되었다.심지어 교체된 이유를 제작진들조차 모르고 있다는 게 함정이었다. 하지만 유라는 왠지 모르게 총감독까지 교체된 이유가 하 감독의 일과 관련 있으며 나아가서 유진과도 관련이 있다고 느껴졌다.그렇게 의심만 하기를 며칠째, 유라는 하 감독이 오른손이 부러져 병원에 입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완전히 넋을 잃고 말았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오른손은 하 감독이 임유진을 때린 손이었던 것 같은데.’그런 생각이 들자, 유라는 몹시 불안해졌다. 이게 대체 어찌 된 영문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도통 답을 얻을 수 없었다.‘그날 하 감독이 전화를 받고 난 뒤부터 임유진에 대한 태도가 변했어. 게다가 하 감독이 이렇게 된 건…… 너무 우연의 일치 아닌가? 아니면…… 임유진 뒤에 정말 대단한 백이 있는 건가?’하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렇게 대단한 백이 있다면 유진이 고생을 하며 길거리에서 청하고 있을 리가 없었다.혼자서 끝내 결론을 얻어내지 못한 유라는 그날 클럽에서 있었던 일을 곧이곧대로 부모님께 털어놓았다. 하지만 임정호는 작은딸이 큰딸더러 술 접대를 하게 했다는 걸 듣기 바쁘게 유라를 째려보았다.“넌 어떻게 네 언니한테 술 접대를 시킬 수가 있니? 아무리 그래도 우리 집안은…….”“술 접대가 뭐 어때서요? 게다가 유라도 우리 집을 위해서 그런 거잖아요. 유라가 유명해져야 우리 가족도 잘 먹고 잘살 거 아니에요. 설마 당신, 그 감옥 다녀온 큰딸한테 희망 거는 거예요
임정호, 방미령과 임유라 세 사람은 갑자기 벌어진 상황에 어안이 벙벙해서 서로를 살폈다.그리고 그때 미령은 그제야 반응했는지 몇 마디 욕설을 퍼부으려고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정호가 한발 빠르게 방미령을 제지했다.“됐어, 저 남자도 감옥에서 알게 된 사람이면 어쩌려고! 감옥이라는 곳이 얼마나 위험한데, 저 남자가 어떤 죄로 옥살이했을지 누가 알아.”그 말에 미령은 목구멍까지 올라온 욕설을 애써 삼키며 분을 삭이다가 한참 뒤에야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러면 당신 이 일 이대로 넘어갈 생각이에요?”“상황을 지켜보자는 거야. 만약 하 감독이 유라한테 책임을 물으면 그때 다시 방법을 생각해 보자고.”이건 한참을 고민해서 얻은 정호의 결론이었다. 솔직히 지금 안에 들어가 남자와 다툴 배짱도 없었다.하지만 옆에 있던 유라는 미간을 구기며 깊은 생각에 빠졌다.방금 유라는 안에 있는 남자를 보는 순간 그 사람이 정말로 옥살이하고 나온 남자가 맞나 하는 의문이 들었다. 남자는 분명 두꺼운 앞머리로 눈을 가리고 있었지만, 지혁의 잘생긴 얼굴은 유라의 눈을 벗어나지 못했다.특히 왠지 모르게 익숙하게 느껴지는 남자의 얼굴과 분위기는 분명 어딘가에서 본 것처럼 낯익은 느낌이었다.이윽고 저 사람도 연예계 사람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그 시각, 방 안.“고마워.”유진은 지혁을 보며 감사 인사를 했다. 만약 그가 제때 나서지 않았다면 유진은 아마 아버지에게 손찌검당했을 것이다.“에이 동생이 누나를 돕는데 고마워할 필요가 뭐가 있어? 당연한 거 아닌가?”지혁은 유진의 진지한 태도에 장난기 섞인 말투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넘겼다. 그러더니 이내 시선이 유진의 발목에 닿았다.“발목은 괜찮아? 내가 또 약 발라줄까?”지혁은 말하면서 벌써 약을 꺼내 들고 손에 덜어내더니 유진의 발목을 살살 문지르며 약을 발라주기 시작했다.다시 조용해진 분위기에 유진은 쭈뼛거리다가 자기 입술을 꽉 깨물었다.“저 세 사람이 나 왜 찾아왔는지 안 물어봐?”“누나가 말 안 하면
예전에, 감옥에 있을 때 한지영이 시간 날 때마다 면회 와주고 힘내라고 응원해 주고 또 임유진을 도와주겠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지 않았다면 유진은 아마 살아서 나올 수 없었을 거다.그 힘든 3년 지영이 곁에 있어 줬기에 유진이 버틸 수 있었다.‘생명줄이라고?’강지혁의 눈빛은 순간 번쩍였다.‘한지영이라는 그 여자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말이네?’“그런데 누군가를 생명줄이라고 여기는 거 바보 같은 생각 아닌가? 만약 언젠가 그 사람한테 버려지면 더 절망적이잖아.”“지영은 그럴 리 없어.”유진의 눈빛에는 확신과 절대적인 믿음이 차 있었다.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유진한테 그렇게 믿을만한 사람이 있다는 게 심술이 났고, 유진이 그 사람을 위해 모든 걸 바칠 것 같다는 게 불편했다.--그 후 며칠 동안 상급 부서에서 환경위생과에 검사하러 온다는 소식 때문에 유진의 업무량도 늘어나 야근이 잦아졌다.다행히 집에 도착할 때마다 지혁이 미리 음식 준비를 마치고 유진을 기다렸기에 번거로움은 덜 수 있었다. 심지어 늦게 들어올 수 있으니 먼저 먹으라고 했는데도 기어코 자신을 기다리는 지혁을 볼 때마다 유진의 마음은 따뜻한 기운이 솟곤 했다.그 때문인지 유진은 가끔 두 사람이 이 작은 공간에서 서로에게 의지하면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동생이 있다는 게 이런 느낌인가 보네.’새벽, 길거리를 청소한 뒤 유진은 환경위생과로 돌아가 모든 청소도구를 공구함에 넣고 빈자리에 섰다.잠시 뒤 도시정비국에서 검사하러 온다는 말에 모든 사람이 업무 보고를 위해 담당자를 맞이하는 중이었다.가녀린 몸을 가진 유진이 4, 50대 되는 아줌마들 사이에 서 있으니 멀리서도 눈에 띄었다.그렇게 얼마나 기다렸을까?“유진? 너 임유진 맞지?”검사하러 나온 도시정비국 사람들 사이에 웬 20대 후반으로 돼 보이는 여자가 유진을 보자마자 유진을 불렀다.고개를 들어 확인해 보니 남색 수트를 차려입고 머리를 깔끔하게 올린 여자가 서 있었다. 좁은 눈매에 평범한 외모 하지만 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