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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Author: 유진
last update Last Updated: 2023-09-12 17:11:25
저녁 9시가 넘도록 강지혁은 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임유진은 그가 무슨 사고라도 당한 건 아닐까 하고 마음 졸였지만, 하필이면 지혁한테 핸드폰도 없는지라 연락을 하고 싶어도 할 방법이 없었다.

이윽고 아예 집을 나와 동네를 둘러보며 그를 기다리기로 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유진은 그 어느 때보다 지혁이 눈앞에 나타나기를 기도했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먼발치에서 익숙한 실루엣이 가까이 다가오는 것을 본 유진은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혁아!”

지혁은 멀리에서부터 달려오는 여자의 모습을 보고는 순간 멍해졌다.

그리고 유진이 앞에 도착했을 때에야 지혁은 유진이 숨을 헐떡이는 건 물론 얼굴도 얼어 벌겋게 물들었다는 걸 알아챘다. 하지만 유진의 눈은 오히려 예쁘게 반짝거렸다.

“돌아와서 다행이다.”

“혹시…… 나 기다렸어?”

지혁은 조심스럽게 물으며 손을 들어 유진의 얼굴을 쓱 문질렀다. 손끝에 전해지는 차가운 냉기로 보아 유진이 밖에서 얼마나 오래 기다렸을지 짐작이 갔다.

“응. 늦게까지 들어오지 않아서 걱정했어. 그래도 무사히 돌아와서 다행이야.”

유진은 말하면서 싱긋 웃었다.

그런 유진의 눈에서 지혁은 유진이 걱정하고 있는 것은 혁이지 GH 그룹 대표 강지혁이 아니라는 걸 알아챘다. 그리고 그 순간 자기의 신분이 밝혀져도 유진이 자기를 이렇게 걱정할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전단지를 돌리는 게 생각보다 늦게 끝났어. 손 차갑지? 내가 따뜻하게 해줄게.”

이윽고 싱긋 웃더니 유진의 두 손을 잡은 채로 지난번 유진이 했던 대로 유진의 손을 살살 비벼주기 시작했다.

점점 따뜻해지는 손에 유진의 마음에도 점차 온기가 차올랐다. 분명 추운 날씨임에도 유진은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네가 있어서 참 좋아.”

지혁은 유진의 말에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말 꼭 기억해. 앞으로 절대 후회하면 안 돼.”

“당연하지. 절대 후회하지 않아. 이제 됐어, 나 이제 따뜻하니까 얼른 집에 돌아가자. 저녁 다시 데워줄게.”

당연하다는 듯 대꾸한 유진은 그의 손을 잡고 동네 입구로 들어섰다. 하지만 동네 밖의 구석에 세워진 검은색 차량은 발견하지 못했다.

그 시각, 고이준은 차 안에서 믿기지 않는 표정으로 눈앞에서 벌어진 광경을 지켜봤다.

‘대표님이…… 저렇게 로맨틱하다고? 어 저거 지금…… 여자의 손을 녹여주는 거 맞나?’

솔직히 그는 지혁이 다른 여자에게 이렇게 다정하게 행동하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심지어 전 약혼녀였던 진애령한테도 이런 대접은 해주지 않았다.

그런데 유진에게 지금 하는 행동은 뭐란 말인가? 그것도 애령을 사고로 죽게 만든 가해자한테!

더욱이 전에 클럽 문 앞에서 술에 취한 유진을 위해 나서던 지혁을 떠올리자 이준은 머리가 복잡했다.

‘대표님 대체 무슨 생각이지? 임유진이 대체 대표님 마음속에 어떤 자리를 차지하는 거지?’

--

이튿날, 이준이 대표실에서 지혁에게 일정과 업무를 보고할 때 눈은 저도 모르게 지혁의 손을 훔쳐봤다.

지혁의 손은 길고 뼈마디가 뚜렷하지만 남자의 손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예뻤다. 심지어 남자인 이준도 그의 손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일전에 지혁은 그 손으로 다른 사람의 목을 조르며 사람을 죽일 뻔한 적이 있다. 또한 손에 피가 흥건히 묻은 걸 본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소름이 돋지만 그런 짓을 하던 손으로 다른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해준다니, 그것도 감옥에 갔다 온 여자의 손을 그렇게 보듬었다니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손에 뭐 문제 있어?”

지혁의 말이 귓가에 울리자 이준은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 아닙니다.”

이내 눈길을 다른 데로 돌리며 청첩장을 지혁 앞으로 내밀었다.

“이건 진씨 가문에서 보내온 청첩장입니다. 2주 뒤 진세령 씨와 소민준 씨의 약혼이 있다고 진 회장님께서 보내온 겁니다.”

“약혼?”

지혁은 청첩장을 힐끗 흘겨봤다.

지혁은 당연히 진씨 가문에서 본인에게 이 청첩장을 보내온 의도를 알고 있었다. 진씨 가문의 죽은 큰딸이 자기의 약혼녀인데, 소민준이 바로 그 사고를 냈던 여자와 사귀었던 사이니 그의 태도를 보고 싶은 게 분명하다.

“가보지 뭐.”

지혁의 말에 이준은 얼른 노트에 메모를 해두었다.

그날 오후, 이준은 지혁과 함께 시내에 있는 한 사립 병원에 도착했다. 그 병원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보통 재벌가가 아니면 유명 인사들이다.

이준을 병실 밖에 세워둔 지혁은 문을 열고 안으로 느릿느릿 들어갔다.

병실 안에 있는 노인은 한때 S 시를 쥐락펴락하며 위세를 떨었던 대단한 인물이다. 하지만 노인의 유일한 아들은 여자 때문에 집을 나가 몇 년 뒤 유골이 되어 어린 아들과 함께 돌아왔다.

지혁은 병상에 누워 있는, 자기가 할아버지라고 불러야 할 노인을 지그시 바라봤다. 노인은 환자복을 입은 채로 링거를 맞고 있었다. 점차 쇠약해져 몸은 비쩍 말라 있었다.

“왔구나.”

강문철은 유일한 손자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네. 왔어요.”

잇따라 지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은 그렇게 조용히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대화 없는 시간이 그들에게는 아주 익숙해 보였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이 지나 문철이 오랜 침묵을 깼다.

“비서한테서 들었다. 진씨 가문과 소씨 가문이 정략 결혼 관계를 맺었다지?”

문철이 입원해 있는 동안에도 문철의 비서는 매일 중요한 일들을 문철에게 보고하곤 한다.

“2주 뒤래요. 청첩장도 이미 받았고요.”

“갈 테냐?”

“안 갈 이유가 없죠.”

손자의 말에 문철은 지혁을 빤히 바라보더니 한참 뒤에 갑자기 웃음을 터뜨렸다.

“그래, 그래. 넌 아비를 닮지 않았구나.”

애령이 죽은 이후 3년 동안 여자와 사귀지도 않은 지혁을 보며 문철은 손자마저 아들의 길을 똑같이 걷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더욱이 애령 때문에 소가와 진가의 정략 결혼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했었다.

어찌 됐든 민준의 전 여자친구가 애령을 죽인 가해자이니까.

지혁은 당연히 할아버지가 말한 “닮지 않았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네, 전 아버지가 아니니까요. 당연히 다르죠.”

그 말에 문철은 지혁의 손을 덥석 잡으며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에 힘을 주었다.

“오늘 네가 한 말 꼭 기억해 두거라. 영원히 네 아비처럼 바보 같은 짓 하지 말고. 애초에 그 애가 내 말만 들었어도 그런 일은…….”

노인의 눈빛은 순간 원망이 서렸다. 이를 갈며 손을 꽉 쥔 탓에 지혁의 팔에 붉은 자국이 늘어났다.

하지만 지혁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비웃음 담긴 미소를 지었다. 지혁은 한 여자를 위해 자신의 모든 걸 바칠 생각도, 더욱이 한 여자 때문에 비굴하게 세상에서 사라질 생각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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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ast Updated : 2023-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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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유진의 몸은 저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매번 두 사람의 이름을 들을 때마다 유진의 기억은 유진을 다시 악몽 속으로 끄집어들이곤 한다.유진도 당연히 그 6캐럿짜리 핑크 다이아에 대해 알고 있다. 뉴스에도 대문짝만한 사진까지 첨부하며 보도해 댔으니 모를 리 없었다. 게다가 그런 기사는 읽고 싶지 않아도 핸드폰을 켜고 웹페이지를 확인할 때면 계속 맨 위에 나타난다.오래전, 유진이 민준과 쥬얼리숍을 구경할 때 그 핑크 다이아를 본 적이 있다. 그때 민준은 유진에게 마음에 들면 결혼반지로 사주겠다고 약속까지 했었다.하지만 민준도, 그 핑크 다이아도 결국은 유진의 것이 아니게 됐다.그렇게 잠시 추억에 잠겨 있던 그때.“유진 씨, 혹시 지금 집에 가려고요?”웬 남자의 목소리가 유진의 귓가에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맑으면서도 약간의 부끄러움이 섞여 있었다.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30살 전후로 보이는 남자가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남자는 짧은 스포츠머리에 직업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을 살짝 붉히며 유진을 바라보고 있었다.‘저 사람 곽동현 씨 아닌가?’놀라기도 잠시, 유진은 이내 남자의 물음에 대답했다.“네.”“그러면 제가 집까지 모셔다드릴게요. 저 지금 마침 시간 있거든요.”곽동현은 어렵게 용기를 낸 것처럼 입을 열었다.동현의 말을 듣는 순간 유진은 상대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던 미옥의 말이 생각났다. 그렇다는 건 지금 눈앞의 남자가 유진에게 작업을 걸고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지금의 유진은 연애를 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다.“아니에요, 괜찮습니다.”“괜찮아요, 제 차 있으니 유진 씨도 편할 거예요.”유진은 완곡히 거절했지만, 동현은 한 번 더 기회를 쟁취하기 위해 다급히 말했다.하지만 도구를 정리하고 있던 방현주가 먼저 끼어들었다.“흥. 그깟 차 한번 태워주는 걸로 어디 만족하겠어요? 유진 씨는 외제 차 아니면 취급 안 해요. 동현 씨도 6캐럿짜리 다이아 반지를 사다가 바치면 아마 좋아할지도 모르죠.”동현은 순간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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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7화

    “응. 친구가 앞으로는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 간절하게 기도했으니 부처님도 분명히 들어주실 거야.”“친구? 친구 누구?”“나도 아직 본 적 없는 친구야. 아마 기회가 되면 그 어디선가 만날 수도 있겠다.”탁유미가 환하게 웃었다.“친군데 한 번도 본 적이 없다고? 뭐 인터넷으로만 아는 친구야?”“비밀. 나중에 얘기해줄게.”탁유미는 그날 미소를 지으며 끝내 친구에 관해서 얘기해주지 않았다.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그녀가 말한 친구는 바로 그였다.탁유미는 기증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이름도 모르는 그 젊은이를 위해 건강해지기를 빌어주고 있었다.정작 그 기도 덕에 살아난 그는 그녀의 인생을 처참하게 무너트렸는데 말이다.어쩌면 그날 그녀에게 친구가 누군지 조금만 더 자세하게 물어봤더라면 기증 사실에 대해 알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이경빈은 당시 그녀를 그저 복수의 대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었고 그녀와는 미래를 꿈 꿀 생각조차 하지 않았기에 그 친구에 관해서도 크게 관심이 없었다.그때 이경빈의 경호원이 다가와 그를 부축했다.“대표님, 괜찮으십...”경호원은 말을 하다 말고 조금 벙찐 얼굴로 이경빈을 바라보았다.그도 그럴 것이 이경빈의 모습이 꼭 영혼이 다 빠져나간 듯한 사람 같아 보였기 때문이다....임유진이 탁유미를 보러 찾아왔을 때도 이경빈은 여전히 병실 앞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아무런 움직임도 없는 것이 꼭 죽은 사람 같았다.임유진은 그 모습을 보며 속으로 짧은 한숨을 내뱉었다.‘아주 조금이라도 공수진을 의심했으면 이렇게까지는 안 됐을 텐데.’하지만 그의 초췌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어쩌면 이경빈은 정말 탁유미를 진심으로 사랑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사랑이 아니면 이렇게까지 고통스러워하지 않았을 테니까.“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어요?”임유진이 병실을 지키고 있는 경호원들에게 물었다.“어젯밤부터 줄곧 이곳에 있으셨습니다.”임유진은 이경빈을 힐끔 보더니 별말 없이 병실 안으로 들어갔다.병실 안에는 탁유미 혼자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6화

    탁유미는 차갑게 말을 내뱉은 후 이경빈의 손에 잡힌 자신의 옷을 반대로 잡아당겼다.하지만 아무리 잡아당겨도 도저히 잡아당겨 지지를 않았다.이경빈은 이대로 그녀의 옷을 놓쳐버리면 두 번 다시 그녀를 만나지 못할 것 같아 손이 하얘질 때까지 꽉 쥐고 놓지 않았다.탁유미는 이에 미간을 찌푸리며 강지혁의 경호원을 바라보며 말했다.“이거 놔. 손 다치고 싶지 않으면.”경호원은 그녀의 눈빛에 얼른 앞으로 다가가 탁유미의 옷을 꽉 잡고 있는 이경빈의 손을 잡았다.하지만 이경빈은 경호원의 엄청난 손아귀 힘에도 눈 한번 깜짝하지 않고 계속해서 탁유미를 바라보았다.“네가 나 원망하는 거 알아. 당연해. 네가 날 싫어하는 것도, 날 증오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야. 하지만 내 말 좀 들어줘. 너랑 단둘이서 얘기를 나누고 싶어. 너한테 하고 싶은 얘기가 너무 많아!”“난 너랑 할 얘기 없어.”그녀의 단호한 대답에 이경빈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졌다.옷을 꽉 잡은 손이 경호원의 힘으로 하나둘 펴지며 서서히 고통이 일고 있는데도, 얼마나 힘을 줬는지 손가락이 꺾여서는 안 될 방향으로 꺾이고 있는데도 그는 여전히 그녀의 옷을 놓아주지 않았다.이대로 놓아주면 다시는 그녀 가까이 갈 수조차 없을까 봐, 그녀와는 이로써 모든 게 다 끝이 날까 봐 그는 너무나도 두려웠다.탁유미는 제 옷을 꽉 잡은 채 놓아주지 않는 그를 보며 경멸의 눈길을 보냈다.“너는 항상 이런 식이야. 너는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사람이야. 너는 네가 다 맞다고 생각하지? 만약 네가 조금이라도 남을 배려하는 인간이었다면 억지로 끌고 가 무릎을 꿇리고 머리를 조아리게 하는 짓은 강요하지 않았을 거야. 너는 항상 네 기분만 중요하고 네 생각만 중요한 사람이었어! 존중이라는 게 뭔지도 모르는 최악의 인간이라고!”이경빈은 그 말에 마치 몸이 얼어버린 것처럼 제자리에 굳어버렸다.크나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그는 천천히 고개를 숙이더니 이내 손아귀의 힘을 스르르 풀었다.탁유미는 옷을 정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5화

    이경빈의 말에 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한발 앞으로 나섰다.인수로만 놓고 보면 이경빈 쪽이 훨씬 우세였지만 그럼에도 강지혁의 경호원들은 비켜줄 생각을 하지 않았다.특정 인원들의 출입은 무슨 수를 써서든 막으라는 강지혁의 명령을 받았으니까.“비켜드릴 수는 없습니다. 돌아가세요.”긴장감이 흐르고 상황은 일촉즉발이었다.그런데 그때 갑자기 병실 문이 열리고 안쪽에서 탁유미가 걸어 나왔다.강지혁의 경호원들은 그녀를 보자마자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소란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이경빈 대표님은 저희가 금방 되돌려보내겠습니다.”그들은 말을 마친 후 다시 이경빈을 바라보며 경계태세를 갖췄다.탁유미는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들어 이경빈을 바라보았다.그는 마지막으로 봤던 때와 달리 깔끔한 차림이기는 했으나 턱 쪽에 수염이 까끌까끌 나 있었고 머리도 헝클어져 있었으며 다크서클은 물론이고 눈가도 엄청 빨개 있었다.이제껏 줄곧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자신을 세팅하고 다니던 남자였는데 말이다.이경빈은 탁유미가 문을 열고 나온 순간부터 그녀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움직이지 않았다.며칠 만에 보는 그녀는 환자복을 입고 있었고 얼굴은 더 야위어 있었으며 길게 늘어트린 머리카락은 오늘따라 유독 더 힘이 없어 보였다.게다가 이마에는 까진 상처가 있었는데 복도 조명 때문에 더 잘 보였다.이경빈은 그 상처를 보는 순간 심장에 마치 칼에 찔린 듯한 고통이 일었다.그녀의 이마에 난 상처는 그날 그의 명령으로 머리가 조아려졌을 때 생긴 상처가 분명했다.그렇게도 사과하는 것을 거부했는데 그는 억지로 그녀의 무릎을 꿇리고 강제로 머리를 조아리게 했다.이경빈은 그날 경호원의 손에 의해 몇 번이고 바닥에 머리를 박는 그녀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했다.왜 바보같이 그녀에게 그런 수모를 줬을까.왜 등신처럼 그녀의 고통과 절망을 외면하고 공수진에게 사과하게 했을까.이경빈이 과거의 자신을 질책하던 그때 탁유미의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늦은 시간에 여기까지는 무슨 일이야. 왜, 또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4화

    주원호의 말에 이경빈의 몸이 움찔 떨렸다.탁유미는 그저 복수대상일 뿐이라고?아니. 탁유미는 그에게 단지 복수대상뿐인 여자가 아니었다. 그가 유일하게 진심으로 사랑했던 여자였다.이경빈은 심장이 점점 더 세게 아파 와 이윽고 벽에 몸을 기댔다.꼭 이 통증에 잠식되어가는 듯한 기분이다.그는 멀고 먼 길을 돌아 이제야 자신이 탁유미를 아직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했다.한때는 고작 원수 집안의 딸일 뿐인 여자라 그녀와 함께했던 시간 따위는 금방 지워질 줄 알았다. 그녀를 감옥에 보내 복수를 하고 나면 아주 손쉽게 그녀를 마음속에서 떨쳐낼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그의 희망했을 뿐 그는 줄곧 그녀를 마음에 담고 있었다.만약 탁유미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허름한 모습으로 있는 게 신경이 쓰일 리도 없고 그녀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모습이 질투 날 리도 없다.또한 상처만 줬던 그녀에게 배신감이 들 리도 없다.이경빈은 항상 공수진의 편에만 서고 한 번도 탁유미의 얘기를 들으려 하지 않았다.그는 자신의 감정을 직면하는 것에서 늘 도망쳐왔다.죽도록 미운 원수의 딸을 사랑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할 용기가 없었다.이경빈은 몸 옆으로 축 늘어진 자신의 두 손에 서서히 힘을 가했다.얼마나 세게 주먹을 쥐었는지 손톱이 살을 뚫어버리고 이내 바닥으로 피까지 뚝뚝 흘러내렸다.하지만 그는 고통 따위 전혀 느껴지지 않는 듯 텅 비어 버린 얼굴로 탁유미의 병실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갔다.탁유미를 만나 그간 상처를 줘서 미안했다고, 아무것도 모른 채 멍청하게 굴어서 정말 미안했다고 사과를 해야만 한다.그녀의 아버지를 향한 증오를 그따위 비열한 방식으로 그녀에게 화풀이해서는 안 됐다고 사과해야만 한다.또한 앞으로는 정말 잘 해주겠다고, 지금까지의 고통을 전부 다 잊을 수 있을 만큼 잘해주겠다고 말을 해야만 한다.이경빈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해놓고는 막상 탁유미의 병실에 점점 가까워지자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탁유미가 전과 같은 원망과 증오가 서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3화

    이경빈은 말 그대로 공수진에게 생지옥이라는 게 무엇인지 맛보게 해줄 생각이다.그와 탁유미의 인생을 가지고 논 대가를 평생에 걸쳐 갚게 할 생각이다....병실에서 나온 이경빈은 심장께가 무언가에 짓눌린 것처럼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았다.그는 탁유미를 모함하려고 한 공수진도 물론 증오스러웠지만 그녀의 거짓말에 넘어가 자신의 목숨을 살려준 여자에게 무자비했던 자신이 더 증오스러웠다.아까 병실로 들어간 순간 이경빈은 억지로 탁유미의 무릎을 꿇리고 그녀에게 머리까지 조아리게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바닥에 쿵쿵 부딪히던 소리가 아직도 귓가에 생생해 마음이 짓이겨지는 것 같았다.왜 그렇게 못되게 굴었을까?정말 공수진을 위해서였을까?사실은 그저 그런 방식으로 탁유미에게 상처를 줘 그녀를 향한 마음을 애써 덮으려고 했던 건 아닐까?윤이를 이용해 이씨 집안 재산을 노리고 있다는 사실을 들었음에도, 공수진이 어렵게 생긴 아이를 유산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자꾸 상처받은 듯한 탁유미의 얼굴들이 떠올라 더 모질게 굴었던 건 아닐까?탁유미는 그에게 등신이라고 했다.맞는 말이다.그는 정말 구제 불능의 등신이었다.“저... 저기, 저는 그저 공수진의 부탁을 들어준 것뿐이에요. 제가 아는 건 다 털어놨으니 이제 그만 저 풀어주세요...”주원호가 이경빈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몇십 분 전 그는 비행기에 탑승하려는 찰나 검은색 정장의 사람들에 의해 강제로 병원으로 데려와 졌고 이경빈의 앞에서 공수진에 관한 모든 얘기를 실토하라는 협박을 받았다.만약 사실대로 얘기하지 않으면 평생 감방에서 썩게 할 수도 있다면서 말이다.주원호는 솔직히 그저 공수진에게 돈만 조금 얻어낼 생각이었는데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은 몰랐다.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돈이고 뭐고 공수진 근처로는 절대로 가지 않았을 것이다.‘그런데 대체 누가 날 데리고 온 거지? 상황을 볼 때 이경빈은 아닌 것 같은데.’“풀어달라고?”이경빈은 그 말에 헛웃음을 쳤다.공수진을 도와 진실을 덮어버린 그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2화

    이경빈은 공수진에게로 더 바짝 다가가 그녀의 두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그래서 네 배 속의 아이가 주원호의 아이라는 걸 다 알고 일부러 그런 식으로 유산해 아이도 제거하고 탁유미도 제거하려고 했던 거야?”공수진의 흥분한 목소리와는 달리 이경빈의 목소리는 지나치게 차분했다.하지만 그건 꼭 거대한 해일이 밀려들기 전의 고요함으로 차라리 화를 내는 게 더 낫겠다 싶을 정도로 무서웠다.공수진은 이경빈의 질문에 머리가 새하얘지고 아니라는 말이 목구멍에 꽉 막힌 채 좀처럼 튀어나오지 않았다.이경빈은 그녀의 머릿속을 다 꿰뚫어버리려는 듯 눈조차 깜빡이지 않았다.“나는... 나는...”공수진의 목소리가 덜덜 떨리기 시작했다.“네 유산 수술을 집도했던 의사를 불러올까? 태아가 정확히 몇 개월 된 아이였는지 물어봐 줘? 그것도 아니면 너희 집안이 의사한테 돈을 먹인 증거를 가지고 올까?”공수진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부인해봤자 큰 의미가 없을 거라고 생각해 노선을 바꿔 그에게 매달리며 눈물을 글썽였다.“경빈 씨, 미안해요. 경빈 씨를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요.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한 일로 경빈 씨가 나를 싫어할까 봐... 그래서 말을 못 했어요. 그리고 일부러 탁유미 씨를 모함하려고 했던 것은 아니에요. 유미 씨가 나를 밀어버려서,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유산하게 된 거예요. 절대 일부러 그럴 생각은 아니었어요. 경빈 씨, 나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요...? 전에는 내가 한 잘못은 다 용서해줬잖아요. 그리고 날 평생에 걸쳐 사랑하고 또 아껴주겠다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이번도 한 번만 봐줘요. 네...?”그녀의 눈물과 애처로운 말은 더 이상 이경빈의 동정심을 자아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의 심기만 건드릴 뿐이었다.“용서?”이경빈이 코웃음을 치더니 그대로 공수진의 팔을 뿌리쳤다.공수진은 그 충격으로 뒤에 있는 벽에 몸이 부딪쳐버렸다.그리고 외마디 비명을 지를 겨를도 없이 이경빈에 의해 목이 졸려졌다.냉랭하고 차분했던 기색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지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1화

    이경빈의 말에 공씨 집안 사람들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다.공수진은 등줄기를 타고 오는 오싹함에 저도 모르게 몸을 움찔 떨었다.‘무슨 뜻으로 하는 말이지? 설마...!’“그,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나는 경빈 씨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속이다뇨... 그럴 리가 없잖아요.”공수진은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으며 눈물을 글썽였다.예전이면 가여워 보였을 그녀의 모습이 지금은 혐오스럽기 그지없었다.“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몰라?”이경빈은 가볍게 웃더니 휴대폰을 꺼내 들고 화면을 두어 번 터치하더니 곧바로 공수진 쪽으로 휴대폰을 내밀었다.그러자 휴대폰 안에서 의사와 공수진의 통화 녹음이 흘러나왔다.공수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을 때 공수진은 물론이고 공씨 부부 역시 표정이 확 어두워졌다.심지어 공수진은 많이 당황한 것인지 이마에서 식은땀까지 흘러내렸다.‘임유진이 말했던 녹음이라는 게 이거였어?! 그 여자가 기어코 경빈 씨한테 이 녹음 파일을 전해준 거야?!’공수진은 임유진을 향한 분노에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말아쥐었다.“참 대단해.”그때 이경빈이 천천히 병상 옆으로 다가와 공기조차 얼려버릴 것 같은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이 나를 몇 년이나 가지고 놀고 말이야. 참 대단해, 공수진.”“이... 이거 거짓말이에요! 가짜라고요! 누가 내 목소리로 일부러 이런 통화 녹음을 만든 거예요!”“네가 아니라고?”공수진의 부인에 이경빈은 손에 든 자료를 그대로 그녀의 얼굴에 던져버렸다.“당시 너랑 통화했던 의사 선생님도 찾았고 네 목소리가 맞는지 전문가한테 의뢰하기까지 했어. 그런데도 네가 아니야? 증거가 버젓이 있는데?”공수진은 당황한 듯 말을 버벅거렸다.“그. 그렇게 의심스러우면 병원 기록을 알아보면 되잖아요! 기, 기록에 다 적혀 있어요. 내가 경빈 씨한테 기증했다는...”드르륵.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이 열리고 누군가가 병실 안으로 들어왔다.공수진은 갑자기 나타난 주원호의 얼굴을 보고는 얼굴이 새하얗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10화

    심지어 이경빈은 네티즌들의 말이 틀린 거 하나 없다고 생각했다.그도 그럴 것이 그는 몇 년이나 공수진에게 속아 넘어갔으니까.평생에 걸쳐 엉뚱한 여자를 지키겠다고 약속이나 하는 멍청이였으니까.은인에게 복수나 하는 등신이 세상에 또 있을까?그 뒤로 이틀 동안 이경빈은 호텔 방에서 한 걸음도 나가지 않았다.앞으로 탁유미의 얼굴을 무슨 낯으로 봐야 하지?그녀에게 뭐라고 해야 할까. 먼저 사과라도 해야 하나? 아니면 그간의 일에 대한 보상부터 해줘야 하나?줄곧 복수의 대상이라고 여겼던 사람이 한순간에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되었으니 머리가 복잡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아마 이경빈은 이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아직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이경빈은 소파에 앉아 천장을 보며 의미 없는 가정을 해보았다.만약 그때 공수진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것을 빠르게 알아챘으면, 회복 중이던 당시 눈앞에 나타난 게 공수진이 아니라 탁유미였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까?그랬으면 아무리 원수 집안의 딸이라고 해도 복수의 마음 같은 건 접어두고 그녀에게 상처를 주려는 생각 같은 건 털어버릴 수 있었을까?그랬다면 탁유미의 입에서 증오한다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있었을까?그때 휴대폰이 울리고 이경빈은 상념에서 빠져나와 전화를 받았다.“대표님, 알아냈습니다. 당시...”부하직원의 말이 계속되면 될수록 이경빈의 심장은 점점 더 심연으로 가라앉았다.처음 듣는 이야기의 연속이었지만 이미 추측을 하고 있어서 그런지 썩 놀랍지는 않았다.그는 정말 구제 불능의 멍청이였다.공씨 가문과 공수진에게 이토록 쉽게 당했으니 말이다....공수진은 불안한 마음에 손톱을 물어뜯었다.이경빈에게 해명이라도 하고 싶어 전화도 해보고 문자도 해봤지만 답장 한번 오지 않았다.지금쯤이면 이경빈도 해당 기사와 영상을 본 게 틀림없다.설사 못 봤다고 하더라도 부하직원이 얘기해줬을 것이다.사실 이렇게까지 뉴스가 크게 났으니 이경빈은 몰라도 이씨 집안 쪽에서는 뭐라도 연락이 왔어야 정상인데 마치

  • 길에서 주운 노숙자가 알고보니 유명그룹 대표님?!   제1409화

    주원호와 공수진이 뜨겁게 서로를 끌어안는 모습은 만천하에 공개되었고 사람들은 혀를 차며 그 영상을 찍고 있었다.공수진은 휴대폰을 꽉 쥔 채 두 손을 덜덜 떨었다.‘저 영상이 왜 저기 있는 거지? 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공수진은 얼굴이 뜨거워짐과 동시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졌다.누구지?누가 이런 거지?이경빈에게 대체 뭐라고 얘기를 해야 하지?!공수진은 지금 제대로 된 사고를 할 수 없었다.공씨 부부는 공수진의 외침에 이상함을 눈치채고 옆으로 다가가 물었다.“왜, 무슨 일인데 그래?”한영애는 공수진의 휴대폰 속 영상을 보더니 그대로 사색이 되었다.“이, 이게 어떻게 대체 뭐야? 누가 이런 짓을 한 거야? 빨리! 빨리 영상 내리라고 해봐! 경빈이가 보면 안 된다고!”공한철은 한영애의 외침에 다급하게 휴대폰을 빼앗아 가더니 휴대폰 속 영상을 보고는 얼굴을 굳혔다.“이런 멍청한 것! 임신까지는 그렇다 쳐도 이런 영상까지 찍게 허락하면 어떡해!”“저는... 저는 모르는 일이에요! 이런 영상이 있는지도 몰랐다고요!”공수진은 입술을 덜덜 떨며 공한철을 바라보았다.“아빠, 나 이제 어떡해요? 이렇게 영상이 버젓이 돌아다니는 이상 경빈 씨가 보는 건 시간 문제라고요. 나, 나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공수진은 이경빈과의 결혼이 무산이 될까봐 너무나도 두려웠다.몇 년을 공들인 것이 고작 이런 것 때문에 무너지고 수포가 될까 봐 정말 너무나도 무서웠다.“임유진 그 여자 짓일 거예요! 그 여자 탁유미랑 친하잖아요. 틀림없어요. 분명히 임유진일 거예요!”공수진이 이를 바득바득 갈며 무서운 표정을 지었다.그녀는 임유진이 왜 사사건건 태클을 거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임유진? 설마 아까 그 여자?”공한철은 임유진이라는 이름에 문득 아까 임유진의 옆에 있던 강지혁의 얼굴이 떠올랐다.강씨 가문이라고 하면 이씨 가문보다 더 위에 있는 가문으로 전국적으로 영향이 큰 가문이다.이씨 가문은 건드려도 어떻게든 살아남을 구석이 있지만 강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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